p.43~47
제 1 장
우리의 몫을 행하고 그 나머지는 하느님께 맡겨 드림에 관하여
03
거룩해질 수 있음은 얼마나 쉬운 일인지.
p.43
거룩하게 되기 위해 힘쓰는 일이 견디기 힘들만큼 어려운 것처럼 보인다면,
그것은 우리가 그것에 대해 잘못된 생각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 거룩함은 한 가지 일로만 이루어지는데,
그것은 하느님의 뜻에 완전히 충실함으로써 가능합니다.
이제 우리 모두는 적극적이든 소극적이든 간에
이 충실성을 실천에 옮길 수 있습니다.
적극적으로 충실하다는 것은
하느님의 법과 교회에 순종하는 것이며
주어진 모든 의무를 우리의 생활태도로 채워나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소극적으로 충실하다는 것은
매일의 순간순간마다 하느님이 우리에게 베푸시는 모든 것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것을 뜻합니다.
자, 그렇다면 우리를 정말 힘들게 하는 그 무엇인가가 있단 말입니까?
물론 적극적인 충실성에는 아무런 어려움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의무들이 우리의 능력을 넘어서 있을 경우,
우리는 그런 의무들을 감당하는데 미칠 수 있는 힘이 없기 때문입니다.
가령 누가 몸이 너무 아파 미사에 갈 수 없다면 그것은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의무적인 여타의 모든 규칙들과 관련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물론 이것은 악한 짓을 금하는 계명과는 차원이 다릅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죄를 짓는다는 것은 결코 용납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p.44
그렇다면 어떤 어려움이 더 쉽게 다가오는 건가요?
아니 더 쉽게 참아 낼 수 있단 말인가요?
우리에게는 아무런 변명도 있을 수 없습니다.
하느님은 고통과 인내심 외에
그 어떤 것도 우리에게 요구하지 않으십니다.
그분은 누구에게나 예외 없이
고통과 인내심을 요구하고 계십니다.
계층, 시간 그리고 장소는 아무런 의미도 없습니다.
모든 이는 순종해야 합니다.
그분이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모든 것은
대단히 직선적이고 매우 쉬운 것들입니다.
우리는 이 단순한 규율들을 따름으로써
참으로 거룩해질 수 있습니다.
그런데 십계명과는 별도로
하느님은 성덕에 관한 고견들을 우리에게 건네주십니다.
그분은 그것들을 실행하는 것이
우리 기질과 삶의 처지에 꼭 들어 맞는다는 것을 환기시켜 주십니다.
그분은 절대로 힘과 능력 밖에서 그 누구를 이끌려 하지 않으십니다.
이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하느님은 필자로 하여금 거룩해지려고 힘쓰는 여러분을 돕고
또 성인들의 삶과 영적 문제들을 다룬 책들을 읽고 실망한 독자들을 위해
이 책을 쓰도록 하셨습니다.
그러기에 나는 여러분에게 가르침을 줄 수 있다고
감히 확언하는 바입니다.
모든 선(善)이신 하느님은 땅과 공기 그리고 물과 같은 것,
즉 살아가는 데 필요한 모든 것을 손쉽게 사용하도록 해주셨습니다.
숨을 쉬며 먹고 마시는 것보다 그 무엇이 더 생동적일 수 있겠습니까?
그리고 무엇이 더 용이한 일이겠습니까?
p.45
우리가 영적인 문제로 돌아갈 때,
사랑과 충실성은 아주 생동적이어서
우리가 상상하는 것만큼 그렇게 얻기가 힘든 것이 아닙니다.
그대의 삶을 눈여겨보십시오.
그러면 그대의 삶은
헤아릴 수 없을 만큼의 하찮은 행위들로
이루어져 있음을 알게 될 것입니다.
그렇지만
하느님은 이러한 것들에 대해 크게 만족하고 계십니다.
왜냐하면 이루어져야 하는 바대로 그것들을 행한다는 것은
완덕을 위한 우리의 노력을 통해 연출해야 할 몫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대해서는 추호의 의심도 있을 수 없습니다.
성경은 이 점을 아주 평범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느님을 경외하고 그분의 계명들을 지켜라.
이야말로 모든 인간에게 지당한 것이다" (코헬 12,13).
이것이 우리가 행해야 할 전부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적극적 충실성입니다.
만일 우리가 우리의 몫을 다한다면
하느님께서는 그 나머지를 채워 주실 것입니다.
은총은 우리에게 흘러들고
우리 이해의 폭을 넘어 경이로움을 가져다 줄 것입니다.
"어떠한 눈도 본 적이 없고 어떠한 귀도 들은 적이 없으며
사람의 마음에도 떠오른 적이 없는 것들을
하느님께서는 당신을 사랑하는 이들을 위하여 마련해 두셨다" (1고린 2,9).
소극적으로 충실하다는 것은 훨씬 더 쉽습니다.
왜냐하면 이것은 우리가 흔히 회피할 수 없는 것을 받아들이고
지겨움과 혐오감을 가져다 줄 수 있는 일들을
사랑과 포기로 견디어 내는 것만을 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 역시 거룩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마치 알아내거나 거두어 들이기에는
너무나 작은 겨자씨와도 같고
복음에 나타난 은화와도 같으며
너무나 잘 감추어져 있어 찾아내기가 거의 불가능하기에
그 누구도 쉽게 발견하지 못하는 보물과도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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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이 보물을 찾아내는 비결입니까?
거기엔 비밀도 없습니다.
이 보물은 어디에나 존재합니다.
이 보물은 우리가 어디에 있든지 간에
항상 우리에게 주어집니다.
모든 피조물과 친구들 그리고 적대자들은
이 보물을 풍부히 쏟아 부어주기에
이 보물은 우리 존재의 바로 그 중심에 다다를 때까지
몸과 영혼의 모든 조직을 거쳐 흘러들어갑니다.
만일 우리가 입을 벌린다면,
입 안이 이 보물로 가득 찰 것입니다.
하느님의 활동은 우주를 꿰뚫고 나갑니다.
그분의 활동은 솟아나고 있으며 모든 피조물을 관통합니다.
피조물이 있는 곳에는 하느님께서 활동하고 계십니다.
그분의 활동은 피조물에 앞서 가며,
피조물과 함께하고 피조물을 뒤따릅니다.
피조물이 해야 할 것이 있다면,
그것은 하느님께서 일으키시는 파도를 타고
자신들을 앞으로 나아가게끔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만 된다면,
왕들과 대신들, 추기경과 군주들, 사제들과 군인 그리고 평범한 사람들이
드높은 성덕에 다다르는 것이
얼마나 쉬운 일인지를 알게 될 것입니다!
사람들이 전적으로 행해야 할 것은
그리스도교 신앙의 단순한 의무들과
자신들의 생활 태도에서 요구되는 것들을 충실히 이행하고,
직면하는 모든 괴로움을 기꺼이 받아들이며,
스스로 괴로움을 찾지 않으면서 행하고,
고통 받아야 옳은 모든 것 안에서
하느님 뜻을 따르는 것입니다.
이것은 수많은 영성의 방법론과 영혼의 수많은 지도자들이 있기 오래 전에 사셨던
총대주교들과 예언자들에게 탁월한 성덕을 쌓게 해 준 삶의 자세인 것입니다.
p.47
이것은 진정한 영성이며,
모든 시대와 사람들에게 유효한 영성입니다.
분명코 우리는 더 이상의 훌륭하고 특별한 방법으로
선해질 수는 없습니다.
그렇지만 우리가 선하게 되는 방법으로써
영혼의 유일한 지도자이신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시는 수단들을
단순하게 사용하게 된다면,
이것보다 더 쉬운 방법은 없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 매순간 우리에게 다가오는 모든 것을
그때그때마다 재빠르게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첫댓글
< 사실 거룩함은 한 가지 일로만 이루어지는데,
그것은 하느님의 뜻에 완전히 충실함으로써 가능합니다. >
[ 지도사제 2010.09.06 15:13
(...)
"내맡김"이란 이렇게 자신의 모든 것, 자신의 뜻을
온전히 하느님께 봉헌해 드리고 하느님의 뜻대로 사는 것이다.
하느님께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내맡겨 드리면,
자신의 부족함과 죄스러움마저도 하느님께서 온전히 다 받아주시어
나의 모든 것이 하느님의 것이 되어 즉, "무아(無我)"가 되는 것이며,
나의 모든 것이 온전히 다 하느님의 것이 되었기에,
또한 역으로 하느님의 모든 것이 곧 나의 것이 되는 것이다,
소위 "하느님을 소유하게 되는 것"이다.
한마디로, 나를 버려 무아(無我)가 되어 하느님을 얻게 되는 것이다.
하느님을 소유하는 수많은 방법 중에서 이렇게 내맡기는 것이 가장 뛰어난 방법이다.
道를 깨우치기 위해서 입산하여 수십년의 세월을 참선이니 면벽수도할 필요가 없다.
하느님을 관상하기 위해 세상을 끊고 봉쇄된 장소로 피신하여
평생을 무릎 썩히는 생고생을 치르지 않아도 된다.
내가 하느님의 것이 되고 하느님이 나의 것이 될때야 비로소
내가 하느님의 뜻대로 살아 갈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하느님께 자신의 모든 것을 내맡겨 하느님의 뜻대로 살기를 원하는 사람은
자신의 모든 것이 하느님의 것임을 인정하고 하느님의 뜻대로 살 "굳은 결심"을 하고
그 굳은 결심을 미사를 통해 하느님께 봉헌해 드리면 그것으로 끝이다.
(...)
하느님께 내맡기면, "하느님의 뜻"대로 살게 된다.
그런데 하느님의 뜻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우리가 평소에도 "하느님 뜻대로 살라"고 자주 말하는데 "하느님의 뜻"이란 과연 무엇인가?
하느님의 뜻이란 무엇인가를 아시는 분이 계시면 손들어 보시기 바란다.
하느님의 뜻이란 다른 무엇이 아니다.
하느님의 뜻이란 <1테살 4,3 >의 말씀에 나와 있는 대로이다.
"하느님의 뜻은 여러분이 거룩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뜻은 우리가 "거룩한 사람", 즉 聖人이 되는 것, 그것 한가지 뿐이다.
왜, 하느님은 우리가 거룩한 사람이 되는 것을 그토록 바라시는가?
거룩해지지 않으면 도저히 하느님을 만날 수 없기 때문이다.
하느님은 완전한 거룩함 자체이신 분이시라 그분을 만나기 위해서는
우리에게 티끌 한 점의 더러움이라도 결코 묻어 있어서는 안되는 것이다.
우리에게 묻어 있는 티끌을 정화시키는 곳이 바로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연옥이며,
그 연옥에서 티끌을 정화한 후에라야 비로소 하느님을 만날 수 있는 것이다.
바오로 사도는 <히브12,14>에 다음과같이 말씀하셨다.
"거룩하게 살도록 힘쓰십시오. 거룩해지지 않고서는 아무도 주님을 뵙지 못할 것입니다."
그런데 그 연옥의 정화는 앞에서 말씀드렸듯이 엄청 고통스러운 것이라고 한다.
그 고통스런 연옥을 거처서는 아니 되겠다.
우리가 신안생활을 하는 목적이 무엇인가?
하느님의 뜻대로 거룩하게 사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바오로 사도에 이어 베드로 사도도 <1베드1,15>에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여러분을 부르신 분께서 거룩하신 것처럼, 여러분도 모든 행실에서
거룩한 사람이 되십시오."라고.
우리가 하느님의 뜻대로 거룩히 살기 위해서는 우리 자신의 노력만으로는
그것이 한계가 있는 것이며, 그 한계를 극복하는 방법이 바로
"자신의 모든 것을 하느님께 내맡겨 드리는 것"이며, 그것을 다른 말로 쉽게
"하느님께 귀의(歸依)하는 것"이라고도 말할 수 있는 것이다.
불교에서 "부처님께 귀의 하라(나무아비타불)"는 말과도 같을 것이다. ]
[ 내맡김 영성
< 후속 > 22. 바닥을 치지 않아도 됩니다, 내맡기면.
지도사제 10.04.24 11:58
(...)
하느님을 진실로 사랑하는 사람은 "하느님의 뜻대로" 살아 갑니다.
하느님을 진실로 사랑하는 사람은 "내 뜻대로" 살지 않습니다.
하느님이 우리의 주인이시기에 우리가 그분의 뜻대로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하느님을 만들었다면, 하느님도 우리의 뜻대로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만든 이가 만들어진 것의 주인"이기 때문입니다.
내 뜻대로 사는 사람의 주인은 "나"이며,
하느님 뜻대로 사는 사람의 주인은 "하느님"입니다.
하느님의 뜻대로 살기 위해서 우리 인간의 노력만으로는 도저히 불가능합니다.
하느님의 도우심, 하느님의 은총이 반드시 필요한 것입니다.
하느님의 은총의 통로가 바로 "하느님께 투신하는 것"입니다.
"투신"이라는 말은 국어사전에 "어떤 일에 몸을 던짐, 전력을 다함" 이라고 적혀있습니다.
그냥 던져버리는 것이 아니라, 아주 영원히 던져버리는 것 즉 "내던짐"을 말합니다.
신앙은 투기가 아니라 분명히 투신입니다.
하느님 나라는 "투기"로 얻어지는 나라가 아닙니다.
하느님 나라는 오로지 "투신함"으로 얻어지는 나라입니다.
신앙은 "내던짐"입니다.
"내맡김"입니다. ]
하느님아버지, 참으로 감사합니다.
<하느님은 고통과 인내심 외에
그 어떤 것도 우리에게 요구하지 않으십니다.>
아버지,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아버지의 이 아름다운 세상에 살면서,
아버지의 싱그러운 공기로 숨 쉬고, 아버지의 청량한 물로 마시며, 아버지의 견고한 땅 위에 살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것들의 찬란한 존재를 드러내기 위해 준비하신 무대의 배경은 인정 해야합니다.
아버지, 아버지께서는 완전하시고 무한하시며 영원한 생명이고 사랑이십니다.
또한 아버지께서는 이 땅에 불완전하고 유한하며 끝이 있는 생명을 창조하셨습니다.
아버지는 아버지의 완전함을 이 땅의 불완전한 존재로 하여금 파노라마로 연출하십니다.
아버지, 아버지가 창조하신 이원성의 세상에서 아버지의 섭리를 봅니다.
아버지는 완전하십니다.
저는 아버지의 창조물입니다.
아버지는 저에게 고통을 주시고 인내를 요구하십니다.
제가 아버지의 고통을 사랑의 인내로 받아들이면 평화와 참 기쁨을 얻습니다.
제가 아버지의 고통을 욕망과 교만 그리고 회피하면 불안과 갈애를 느낍니다.
아버지, 아버지께서 주신 모든 것을 인내로 받아들입니다.
아멘~!
아버지의 완전한 사랑과 완전한 영광을 위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