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詠盆松(영분송) : 壄隱 田祿生
山中三尺歲寒姿(산중삼척세한자) 산속에 석자높이 세월의 한파에 그 모습
移托盆心亦一奇(이탁분심역일기) 화분에 옮겼더니 또 한 번 기특하네.
風送濤聲來枕細(풍송도성래침세) 바람은 속삭이며 파도소리는 베개머리에 와 닿고
月牽疎影上窓遲(월견소영상창지) 달빛은 우거진 가지에 걸쳐 창가에 뜨기 더디어라
枝盤更得栽培力(지반경득재배력) 힘들여 가꾸었더니 새가지가 힘이 돋아나고
葉密會沾雨露私(엽밀회첨우로사) 이슬비 흠뻑 적셔 주니 잎마저 무성하네.
他日棟樑雖未必(타일동량수미필) 훗날 대들보 재목 될지 비록 알 수 없지만은
草堂相對好襟期(초당상대호금기) 서재에 마주보면 마음대로 이야기하기가 좋다네.
야은 전녹생은 고려 말 재상이고 명현으로 학덕과 정의감이 있는 강직한 인물이었으며 탁월한 자질로 선생이 8세 때 지은 시
영분송은 고결한 선비의 품격을 표현한바 어린 나이 때에 자신의 일생 처신을 암시하고 있는 듯하다.
2. 暎湖樓次韻(영호루차운) : 壄隱 田祿生
(東文選 15권 七言律詩의 형식)
北望松都疊嶂多(북망송도첩장다) 북으로 송도 바라보니 산이 겹겹
樓高客恨轉來加(루고객한전래가) 누각이 높으니 나그네 한이 새삼 더해지네.
仲宣作賦非吾土(중선작부비오토) 중선은 부를 지어 내 땅 아니라 했거니
江令思歸未到家(강령사귀미도가) 강령은 돌아기길 생각하나 집에 정작 못 가네.
楊柳自搖愁裏線(양류자요수리선) 버들도 흔들거리고 시름 속에 잔가지를
辛夷初發亂餘花(신이초발난려화) 개나리가 피었군 난리 뒤의 첫 꽃이
弱爲江水變春酒(약위강수변춘주) 어쩌면 저 강물을 봄 술로 변하게 하여서
一洗胸中澤與査(일세흉중택여사) 가슴속에 쌓인 찌꺼기를 활활 씻어 버릴고.
야은이 고려 말 홍건적의 난으로 공민왕을 호송하여 복주(안동)로 피난하여 다음해 봄이 되어 새싹이 돋아나고 꽃이
피는데 영호루에 올라 북녘의 송도를 바라보며 돌아가지 못하는 안타까운 심정을 한수 시로 표현한 것이라 생각한다.
3. 鷄林東亭(계림동정) : 壄隱 田祿生
(東文選 15권 七言律詩의 형식)
終日昏昏簿令閒(종일혼혼부령한) 공문서 더미 속에 하루를 정신없이 보내다가
偶因迎客出郊關(우인영객출교관) 우연히 손 맞으러 성 밖에 나왔네.
俯看浙水歎流景(부간절수탄유경) 가는 물을 굽어보며 흐르는 세월 탄식하고
坐對靑山多厚顔(좌대청산다후안) 청산을 마주 대하니 내 얼굴 부끄러워라
半月城空江月白(반월성공강월백) 반월성 비었는데 강달만 희고
1
孤雲仙去野雲閑(고운선거야운한) 고운선이 간 뒤에 들 구름이 한가롭구나.
更尋陶令歸來賦(경심도령귀래부) 다시금 도연명의 귀거래사를 읊어 보노니
千載高風未易(蠻)(천재고풍미이) 천고에 그 높은 풍을 뉘라서 따르리.
4. 送鄭副令寓按干慶尙(송정부령우안간경상) : 壄隱 田祿生
경상 안찰사로 가는 정부령 우를 전송하며 (東文選 7권 七言律詩의 형식)
君看種樹槖駝傳(군간종수탁타전) 그대 보았지 종수탁타전의 나무 심는 법에
移之官理可養人(이지관리가양인) 정치에 옮기면 백성 기를 수 있다는 말을
解道安民在無事(해도안민재무사) 백성을 편안히 하려면 일을 꾸미지 말아야 한다는
牧隱詩語醇저眞(목은시어순저진) 목은의 시도 순진한 말이다.
古人今人意不遠(고인금인의불원) 옛사람과 지금사람의 뜻은 서로 같으나
蓋傷世法多立新(개상세법다립신) 세상 법령 새로 많이 만들어지는 것 탄식한 것이다.
況今時勢如理絲(황금시세여리사) 하물며 지금 시세는 실 가리기와 같아서
欲速環自成紛繽(욕속환자성분빈) 빨리 서둘수록 도리어 헝클어지기만 하나니
願言爲事務從簡(원언위사무종간) 원컨데 그대는 일을 간소하기에 힘써서
勿使一牽加諸民(물사일견가제민) 털끝만큼이라도 백성에게 부담을 주지 말아라.
鄭君共稱慷慨士(정군공칭강계사) 남들은 정군을 강개한 선비라 일컫는다.
世微鄭君吾誰親(세미정군오수친) 세상에 정군 아닌들 내 누구와 친할고
傷心豈獨惜離別(상심기독석이별) 상심함이 어찌 이별을 애처로 와서 뿐이랴
南望不覽沾衣巾(남망불람첨의건) 남쪽을 바라보니 나도 모르게 옷깃이 젖어간다.
5. 題舍浦營(제사포영) : 壄隱 田祿生
(동문선 21권 七言律詩의 형식)
一見初驚眼不塵(일견초경안불진) 한번 보자 처음으로 깨끗해짐을 놀랐나니.
靑裙縞袂照人新(청군호몌조인신) 푸른 바지 흰 소매로 사람을 빛 춰 새로워라.
隔窓風雪徒爲惡(격창풍설도위악) 창밖의 바람과 눈은 헛발악이나
好向華堂己報春(호향화당기보춘) 분매 화당을 향해 이미 봄을 알려주네.
6. 贈金海妓玉纖纖(증김해기옥섬섬) : 壄隱 田祿生
海上仙山七點靑(해상선산칠점청) 바다위에 신선산은 일곱 개 점으로 푸르고
琴中素月一輪明(금중소월일륜명) 거문고 칠현금 가운데 둥근 달이 밝구나
世間不有纖纖手(세간불유섬섬수) 세상에 섬섬의 손 존재하지 않는다면
誰肯能彈太古情(수긍능탄태고정) 어느 누가 태고의 정 탈 줄이나 있으랴
공민왕 때 경상도 도순문사(慶尙道 都巡問使)로 재직 중에 김해 기생인 옥섬섬이 달 밝은 밤에 거문고 타는 자태에
매료되어 시상으로 읊었다고 생각한다.
7. 拱北樓應製(공북루응제) : 壄隱 田祿生
(按與地勝覽淸州拱北樓在州北三里)
一人登眺日(일인등조일) 임이 오르시어 조망하는 날
萬物喜瞻初(만물히첨초) 만물을 처음으로 우러러 보고
美景誰能賦(미경수능부) 아름다운 경치 뉘라서 능히 쓰며
荒詞不用書(황사불용서) 이 몸의 무딘 문장 쓸 수 없네.
面南顔甚通(면남안심통) 남쪽을 향한 얼굴을 가까이 보니
拱北意無虛(공북의무허) 공북(임을 향한 뜻)의 뜻이 우연이 아니며
寓目山河秀(우목산하수) 눈에 닥아 오는 산과 강은 수려한데
雲烟亦媚予(운연역미여) 구름은 연기처럼 나를 사랑하는 듯하네.
(見與地勝覽)
고려 공민왕이 몽진 때 야은선생이 왕을 따라 청주에 있는 공북루에 올랐다가 왕의 명을 받고 이 시를 지었다고 한다.
8. 送江陵道按廉使金先生(송강능도안염사김선생) : 壄隱 田祿生
白露秋氣高(백로추기고) 찬이슬에 가을이 깊어
風聲葉辭木(풍성엽사목) 바람소리 나무의 낙엽이 지고.
値子按轡行(치자안비행) 그대와 나란히 다닐 때는
山川爲之肅(산천위지숙) 산천도 경의를 표했지.
凜然氷雪姿(름연빙설자) 빙설 같은 늠연한 그대 자태.
觀者首先縮(관자수선축) 보는 이의 머리가 먼저 숙였지.
缺却自怡 (결각자이) 못내 기뻐하여
勝處詩盈軸(승처시영축) 명승지 찾아 시를 쓰고 갔다가 돌아와
行入新春歸(행입신춘귀) 명년 봄 다시 만나면
吾儕當刮目(오제당괄목) 우리들의 괄목한 모습으로 맞으리.
고려 공민왕 때 김구용이 강원도로 안염사로 부임하기 위하여 떠날 때 전송하면서 야은 선생이 지은 시이다.
9.題淸德樓(제청덕루) : 壄隱 田祿生
廨宇崇岡底(해우숭강저) 관청사는 언덕 아래 높다랗고
危樓壓上頭(위루압상두) 높은 누각은 꼭대기를 누르고 있네.
半空有平地(반공유평지) 공중에 평지가 있어
炎夏似凉秋(염하사량추) 더운 여름이 서늘한 가을 같구나.
民力元無借(민력원무차) 백성의 힘은 원래 빌지 않았으니.
樓名果不浮(누명과불부) 누대 이름이 과연 뜬 말이 아닐세.
何須論四景(하수론사경) 굳이 사시의 경치를 말할 것 있나
淸德說崔侯(청덕설최후) 청덕 그 이름이 최후(崔侯)를 말해주게
⏏ 이 시는 전녹생이 청덕루(淸德樓)를 세운 최안을(崔安乙)의 덕을 칭송한 것이다.
충목왕조의 인물인 최을안이 청도군(淸道郡)의 지군(知郡)으로 있을 당시 객관 동쪽에 세운 것이 청덕루이다.
10 送鄭副令寓按于慶尙(소정부령우안경상) : 壄隱 田祿生
君看種樹橐駝傳(군간종수탁타전) 그대 보았지 ⎡종수곽탁타전⎦의 나무 심는 법을
移之官理可養人(이지관리가양인) 다스리는 일에 옮기면 백성을 기를 수 있다네
解道安民在無事(해도안민재무사) 백성을 편안히 하려면 일을 꾸미지 말아야 한다는
牧隱詩語醇且眞(목은시어순차진) 목은의 시어도 순후하고 참된 말이네
古人今人意不遠(고인금인의불언) 옛사람 지금 사람 뜻은 서로 같으니
盖傷世法多立新(개상세법다입신) 세상 법령 새로 많이 만드는 것 탄식한 말이네
況今時勢如理絲(황금시세여이사) 하물며 지금의 시세는 실 가닥 같아서
欲速還自成紛繽(욕속환자성분빈) 서둘수록 저절로 헝클어지기만 하니
願言爲事務從簡(원언위사무종간) 원컨대 말하고 행하는 일을 간소히 하기에 힘써
勿使一毫加諸民(물사일호가제민) 털끝만큼도 백성들에게 부담은 주지 마오.
⏏ 위의 시는 1367년(공민왕 16) 봄에 경상도안렴사로 나가는 정우(鄭寓)를 전송하며 지은 작품의 앞부분이다.
11. 直夜(직야) : 壄隱 田祿生
玉漏丁東夜未央(옥루정동야미앙) 물시계 소리 깊은 밤이 아닌데
推枕欲起先歎息(추침욕기선탄식) 일어나려고 베개를 밀자 한숨이 먼저 나네.
同舍人人鼾如雷(동사인인한여뢰) 곁에 잠든 동료의 숨소리는 요란한데
奈何耿耿眠不得(나하경경면부득) 나는 어찌하여 잠이 오지 않나.
傷時憂國淚盈升(상시우국누영승) 나라 걱정과 상심으로 눈물이 고이고
感槪閒愁復幾尺(감개한수부기척) 여러 생각 시름이 꼬리를 물고 일어네.
嗟余不才夊尸素(차여부재쇠시소) 부재한 나는 시위소찬오래 하니
獨臥愧衾那安席(독와괴금나안석) 홀로 누워 생각할 때 잠이 편히 올 것인가.
君恩如海報無門(군은여해보무문) 바다 같은 임의 은혜 갚을 길이 없으니
暖日香芹徒謾說(난일향근도만설) 따뜻한 날 향근 부질없는 말이네.
荏苒光陰催老大(임염광음최노대) 덧없는 세월이 늙기를 재촉하니
昨日少年今白髮(작일소년금백발) 어제 젊음은 어디가고 지금은 백발인가.
出門剩見鬼揶揄(출문잉견귀야유) 문을 나서면 귀신의 조롱뿐이고
萬事腐心空仰屋(만사부심공앙옥) 이것저것 생각하다 지붕만 바라보네.
通宵强綴一篇詩(통소강철일편시) 밤 세워 억지로 시 한편을 지어
呼燈自寫還自讀 (호등자사환일독) 불을 밝혀 혼자 쓰고 읊어 보네.
(見師友名行錄)
숙직을 하면서 쓴 글
12. 送田祿生司諫按全羅道 -李齎賢-(出益齊亂稿에서)
田郞作倅吾鷄林.(전랑작졸오계림) 그대가 우리 계림에 목민관으로 왔기에
父老至今懷德音.(부노지금회덕음) 노인들은 지금도 칭송이 자자하다네.
拜囊懇惻叫閽辭(배낭간측규혼사) 상소문은 간절하게 대궐문을 두드렸고
枕弋慷慨終軍詩.(침과강개종군시) 의분하여 창칼을 잡아 종군시에 나타났네.
晏嬰高節凌首陽.(안영고절능수양) 여리고 고결한 행동은 수양산을 넘보는데.
誰貴食粟曹交長(수귀식속조교장) 키 크고 밥이나 먹는 조교를 누가 알아주나
登車攬轡志澄淸.(등거람비지징청) 방어사로 나갔을 때 뜻이 맑고 밝아서
南方草木亦知名.(남방초목역지명) 남쪽의 초목까지 공의 이름을 알 것이네.
南方近者頻年荒(남방근자빈년황) 남방은 근래에 흉년이 거듭되어
損瘠往往僵路傍.(손척왕왕강로왕) 배고파 굶어 죽은 백성들이 길가에 보이겠지.
守令識字百二三.(수령식자백이삼) 유식한 수령이 백에 한 둘뿐이
坐視弄法猶旨喑.(좌시농법유지암) 아전들의 농간에 모두 까막눈이 된다네.
旋驅農夫防海倭.(선구농부방해왜) 농부들을 데리고 바다에서 왜적과 맞서자니
賊刃未接先奔波.(적인미접선분파) 싸워보지도 못한 채 먼저 달아나겠지.
大將坐幕擁笙歌(대장좌막옹생가) 대장의 막사에는 음악소리 쌓이고
小將汗馬輸弓戈.(소장한마구궁과) 소장은 열심히 활과 창을 수송하는데
豪奴聯騎壞公田.(호노연기양공전) 호족들은 말을 몰아 공전의 소출을 훔쳐가고
官徵逋租不計年.(관징포조불계년) 관리들은 계산 없이 세금만 거두어 가네.
鳴呼民生至此極.(오호민생지차극) 오호라! 백성의 고초가 이같이 열악한데.
誰與吾君寬旰食.(수여오군관간식) 누가 있어 우리 임금의 엉성한 음식을 없게 할고
益齊也曾玷廊廟(익제야증점랑묘) 나 익제도 일찍이 조정에 몸담고 허물이 있어
受侮老姦幷惡少.(수모노간병악소) 늙은이와 젊은이들에게 모욕을 당했지.
乞身自退僅免禍.(걸신자퇴근면화) 벼슬을 버리고 나니 큰 화는 면했지만
此日尋思顔可赭(차일심사안가자) 지금 와서 생각하면 얼굴이 붉어지네.
田郞夙慕君子儒.(전랑숙모군자유) 전랑은 처음부터 군자 선비를 배웠으니
豈比老我空囁嚅.(개비노아공섭유) 어찌 할 말 못하는 나 같은 늙은이에 비교 할고
往哉問瘼公無私(왕재문막공무사) 부디 지공무사하게 민막을 찾아서
馳秦得令明主知.(치진득명주지) 우리 임금에게 알아듣게 고 하소
□ 위 시는 공민왕 10년(1361) 봄 안염사(按廉使)에 임명되어 야은 전녹생이 전라도로 떠날 때 익제(益齊)
이재현(李齊賢) 선생이 송별하면서 지어준 시로 내용을 살펴보면 야은(壄 隱) 전녹생(田祿生)의 면모를 단편적으로 알 수 있는 것이다.
13. 謝酒田元師送倭(사주전원사송왜) : 이달충(李達衷)
元師坐吟誌(원사좌음지) 원수가 앉아서 시를 읊조리며
無心强攻敵(무심강공적) 무심히 적을 강공하네.
感化執尊來(감화집존래) 감화가 뜨겁게 베풀어지는데
河必煩羽檄(하필번우격) 하필 수고롭게 우서를 띄우리요.
위의 시는 야은 전녹생이 경상도 도순문사로 재직할 때 왜구로부터 노획한 왜주(倭酒)를 이달충에게 보내
주어 그 고마움에 대한 답례로 이달충이 지은 시이다.
至正丁未(지정정미) 원나라 순종 정미년에
出鎭合浦(출진합포) 합포에 진출하여
淸心省事(청심성사) 깨끗한 마음으로 일을 살펴
久不遞代(구불체대) 오래도록 교체되지 않은 것은 백성들의 소망에 따른 것이다.
이색 목은집에 壄隱 田祿生을 소개한 글제목인데 내용은 알 수 없음
次韻田御史祿生 二首 어사 전녹생의 시운에 차하다. 2수
讀田鄭二先生詩次其韻 전 · 정 두 선생의 시를 읽고 그 운에 차하다.
寄東京田判官 壄隱 동경 전 판관 야은에게 부치다.
哀哉行爲舍人田壄隱之父作 애재행. 전야은의 아버지 사인을 위하여 짓다.
출처 :담양전씨 야은후 벽제파 원문보기▶ 글쓴이 : 일각(逸覺)