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장에 대한 과장스러운 분석
여권사진 및 각종 서류용 프로필사진(증명, 반명함, 여권 등등..)은 아시다시피 사진관 및 스튜디오들의 주 수입원 중 하나입니다.
십여 년 전만 해도 사진은 대부분 필름으로 찍었기때문에 현상과 인화(스캔이란 게 없었죠)로 많은 수입을 올렸었지만,
이제는 필름을 찍어서 동네사진관 가져가지도 않고 심지어는 현상기를 빼는 곳도 많습니다.
동네사진관 업소들의 수익모델이
촬영(가족사진, 증명사진, 영정사진, 출장촬영, 기타 촬영 등)
약간의 인화(디지털인화.. 대부분은 인터넷에 뺏겼지요)
액자, 앨범제작(직접 한다기보다는 거래처 통해서 가공, 판매)
리터칭, 합성 등 사진 제반 업무
소품 판매(배터리.. 필름.. 액자 등등)
등입니다.
이 중에서 여권사진 부분은 대략 20~30% 정도의 매출비중을 차지하고 있는데, 매출은 2~30%이지만 사실 이미 갖춰놓은
촬영시설, 장비, 인화장비와 약간의 약품/인화지를 제외하면 순익비율이 대단히 높아서 전체 순익규모에서는 아마도 4~50% 정도나 될 거라고 봅니다.
그러니 이 중에서 여권사진을 뺏긴다면 어지간한 사진관들은 그냥 문닫아야 되는 거죠.
여권사진을 무료로 찍어준다는 게 그냥 그 돈 줄이는 거 정도만으로 추진되는 사업은 아닙니다.
국민편의 증진..이라는 모토로 운전면허/주민증/여권까지 모두 구청에서 직접 디지털장비로 얼굴을 인식해서 자동으로 촬영하
고 바로바로 서류에 반영되도록 한다는 겁니다. 물론 면허증 주민증 여권에 들어가는 사진들은 모두 디지털로 프린트되지만
지금까지는 사진관에서 촬영해온 사진들을 스캔해서 쓰는 거였으니까, 처리시간도 획기적이 될테고, 잘못 찍어왔거나 옛날에 찍
어놓은 사진 가져오거나 혹은 포토샵 등으로 과도하게 수정해서 불합격 딱지맞는 사진 같은 것도 없어질테니 시비거리도 줄 겁니
다.
물론 사진관에서 목적을 정확히 밝히고 촬영한 사진들은 기준에 불합격당하는 게 없죠. 규정들 알고 그에 맞게 촬영하니까요.
여권사진은 대략 1만원에서 2만원 정도의 시세를 형성하는 것 같습니다.
예전에는 사진기술이 그래도 뭔가 대단한 것이어서(실제로 필름으로 작업하는 것은 어렵기도 했습니다) 돈들 내고 찍었지만, 디지
털카메라가 이만큼 보급되고 누구나 셔터만 누르면 그럴 듯한 사진이 찍히게 된 상황에서는 '그깟 여권사진 찍고 한 열 장 준다
고 몇만원씩 받아쳐먹는' 사진관들이 폭리처럼 보일 수도 있습니다. '내가 편집해 가져가서 한 장만 뽑아달랬더니 몇 천원 내라더
라, 혹은 안 해준다더라'면서 욕하는 분들도 많이 계셨습니다.
즉석에서 촬영해서 바로 디지털화하는 것이 당연히 기술추세이고 이미 몇몇 나라에서는 그런 서비스도 하고 있다고 합니다.
문제는 그걸 전면적으로 도입하면 대부분 영세한(이제는.. 영세해 진) 사진관들은 견디지 못할 거라는 점에 있습니다.
여권사진 하나 안 찍는다고 사진관들이 망하나 싶지만, 현실은 그렇습니다. 기술이 바뀌고 시대가 바뀌는 거 대비하지 못하고
그깟 여권 하나 안 찍는다고 망하는 게 말이나 되냐고 하실지 모르지만, SSM 들어와서 동네수퍼 망하는 거랑 다를 바가 없죠.
그런데 가만 생각해보자면 소비자 입장에서 SSM 들어와서 동네수퍼 망하는 거랑 구청에서 여권사진 찍어준다고 사진관들
망하는 거랑은 전혀 다른 이야기입니다.
껌 한 개 사려는 소비자는 어제까지는 동네수퍼에서 사면 됐지만, 거기 망했으면 오늘은 새로 문 연 SSM에서 사면 됩니다.
SSM은 동네수퍼를 완전히 대체합니다. 소비자는 불편이 없습니다. 심지어 싸거나 혹은 환하고 깨끗하고 물건도 다양하거나..
그런데 구청은 사진관을 대체하지 못합니다. 구청 가서 영정사진 찍으실 건가요? 구청 가서 핸드폰 내밀고 사진 뽑아달라고
할 건가요?
뭐, 업자들 얘기 들어보면 이런저런 문제점들 이야기도 합니다. 구청에서 사진기술도 없는 사람이 얼굴만 들이밀고 찍으라그런다
고 사진관에서 찍던 만큼의 퀄리티가 나오겠느냐, 라든지 혹은 구청에 여권 신청하러 갈 때 메이크업하고 머리 하고 옷도 잘 입고
가야된다고.. 물론, 여권용 규정에 맞는 헤어, 메이크업 및 의상 입고 가야지 안 그러면 찍기도 전에 빠꾸맞겠지만요.
업자들이 마구 항의하자 외교부에서는 일단 유예기간을 두고 시범적으로 실시하면서 보완해나가고, 사진관에서 찍은 것도
병행접수해주겠다고 합니다만... 들리는 얘기로는 앞으로는 거기서 얼굴인식해서 찍은 '것만' 인정해준다고 하는 것 같습니다.
저로서는 좀 어이없기는 한 게, 여권용 사진은 국제신분증에 들어가는 것으로 본인을 잘 확인할 수 있어야 돼서 얼굴 크기 얼마 이
상에 뒷배경은 어떤어떤.. 귀 다 나와야 되고 눈동자 가리면 안되고 밝은 옷 입으면 안되고 장신구 끼고는 안되고... 뭐 그런 규정
들이 있습니다. 거기에 찍은 지 오래 된 것도 안되죠. 몇 개월 전 꺼도 원래는 안 됩니다.
그런데... 그 여권 10년 쓰죠. 10년동안 얼굴은 안 바뀌나... 그것도 민원 들어왔다고 국민불편 줄인다고 몇 년 전에 갱신기간을 5년
에서 10년으로 연장한 겁니다. 앞뒤가 맞지 않습니다.
자, 이렇게 해서 사진관들이 많이들 망하게 되면 견뎌낸 사진관들은 돈 잘 벌까요? 글쎄요. 원래도 여권 안 찍던 현상소나 스튜디
오 베이비, 웨딩스튜디오, 제품사진 촬영 스튜디오 같은 곳들은 괜찮을까요?
문닫고 갈 데가 없어져버린 전국 3만여 개의 사진관들 중 아마 절반 이상은 관련업종으로 전환을 시도할 겁니다. 배운 게 그건데
갑자기 무슨 식당 같은 거라도 하겠습니까. 찍으려고 하겠죠. 베이비도, 프로필도, 웨딩도, 이벤트나 출장촬영도 가리지 않고 마구
들 뛸 겁니다.
안 그래도 건당 5만원 10만원이면 해결되는 돌잔치 결혼식같은 스냅촬영도 그나마 더 치열해지고 덤핑이 횡행할 겁니다.
돈 잘 벌던 목 좋은 곳에 위치한 스튜디오들도 새로 넘치고 가격싼 다른 곳에 손님 많이 뺏기거나 혹은...
많이들 문 닫을 겁니다.
그리고 또, 그 수많은 사진관에 장비 대주고 약품 대주고 인화지 공급하던 업체들(한국후지필름, 한국코닥 및 몇몇 군소 공급업체
들)은 아마도 사업을 접거나 회사가 공중분해될 겁니다. 액자업체나 사진관을 거래처로 삼던 유통업체들도 모두 꼴까닥일거구
요, 촬영과는 전혀 상관없는 현상소도 약품 공급해주고 현상기계 수리해주던 업체가 훅 날아가버리면 다른나라에서 직접 약품 수
입하고 기계는 직접 고쳐 써야 하는 상황이 되겠죠. 약품이란 게 패딩점퍼처럼 부피만 크고 가벼운 게 아니라 죄다 액체라서 무게
가 어마어마하고, 운송비용이 장난아닙니다. 컨테이너 단위로 배로 수입하던 큰 공급업체가 망하면 직접 가져와야 할텐데 아마도
약품값보다 배송료가 더 들겠죠? 그럼 현상료도 많이 올려야 뭐가 되든지 할 겁니다. 물론.. 인터넷 인화업체들도
똑같은 일을 겪겠죠. 약품, 인화지 수입 직접들 해야 되고 기계 직접 고쳐야 되구요.
그렇게, 기반이 되는 사진업자들이 동네에서 많이 사라지면
말하자면 사진업계가 '붕괴'에까지 이르게 될 겁니다.
단지 업계가 시대의 흐름에 따라 정리돼서 경쟁력있는 부문들만 남는다... 수준이 아닐 거란 말씀입니다.
많이 걱정입니다. 필름이나 기자재는 또 누가 수입하려고 하겠습니까. 물론 디카들이야 문제가 없(을 수도) 있겠지요.
구청에서 여권사진 무료로 촬영 ->
3만여개의 사진관들 줄도산 및 폐업 ->
스튜디오, 촬영장 등 연쇄타격 및 망함
앨범, 액자 등 연계된 산업계 타격
사진관련 기자재, 약품 및 감재수입 공급업자 도산
-> 사진업계 몰살. 전국대학 사진관련학과 졸업생 매년 3천여명 필요없어짐. 딴데 알아보셈.
그래서 제가 요즘 외치고 다닙니다.
앞으로 사진은 그냥 셀프로 다 하는 시대가 된다고...
성능좋고 잘 나오는 디카로 혼자 찍으시고 뭐 뽑을 거 필요하시면 잘 나오는 잉크젯 사서 집에서 뽑으시라고..
조명? 그건 좀 어렵겠지만 그런 거 이해하고 사진술 고민할 필요까지야 없겠지요. 아무나 셔터만 누르면 찍는 사진따위를 왜 대학
같은 데에서 비싼 등록금 내고 전망도 비젼도 없는 고민을 하나요.
사진은 셀프~
[서울 충무로 현상소 근무하는분이 쓴글 퍼온글]
첫댓글 우리모두가 눈여겨 봐야만하는 분석이군요...
쉬운 문제는 아니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