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품 가이드 멋쟁이님의
詩 낭송중
靑山은 엇데하여 萬古에 푸르르며
流水는 엇데하여 晝夜에 긋디 아니는고
우리도 그치디 마라 萬古常靑 호리라
푸른 산은 어찌하여 영원히 푸르며
흐르는 물은 어찌하여 밤낮으로 그치지 않은가?
우리도 그치지 말아서 언제나 푸르게 살아가리라
-도산십이곡 중 언학5수-
퇴계/이황 선생님의 詩 복습시간~^^ㅎ
한바탕 웃음으로 도산서원을 마무리 하며
월영교로 달려 갑니다.
월영교 근처 간고등어 식당에서
안동찜닭에 간고등어로 저녁식사~^^^
저녁식사 후
월영교 야간 문보트/뱃놀이 까지~^^
월영교
먼저 간 남편을 위해
머리카락을 뽑아 한 켤레의 미투리를 지은
한부부의 아름답고 숭고한 사랑이 간직되어 있는 나무다리
2003년 개통 길이 387m 넓이 3.6m
국내에서 가장 긴 목책 인도교
밤 야경도 아름답지만
비내리는 날 운치도 상상해 봅니다.
월영교에서 야밤에 출발
우리 일행들이 하룻밤 묵었던
전통한옥 의관댁 앞마당에서 한컷~^^^
여행 2틀째를 맞이합니다.
내성천변에 물안개가 피어오르는
황홀한 풍광
몽환적 분위기를 연출합니다.
지은 지가 얼마 안되는
전통한옥 숙박단지
덕분에 식당도 편의점도 일체 없는
준비해온 컵라면과 떡으로
아침을 요기 합니다.ㅎ
내성천 물안개를 뒤로 한채
버스로 달려
이른아침 영주/소수서원에 도착합니다.
소수서원(紹修書院)은 우리나라 최초의 서원이다.
소수서원은 1541년(중종 36) 7월에 풍기군수로 부임한
주세붕(周世鵬)이 1542년(중종 37) 8월에 이곳 출신의 성리학자인 안향(安珦)을 배향(配享)하는
사당을 설립하기 위해 공사를 시작하였다. 이듬해인
1543년 8월 11일에 완공하여 안향의 영정을 봉안하고,
사당 동쪽에 백운동서원(白雲洞書院)을 같은 해에 설립한 데서 비롯되었다.
[네이버 지식백과] 소수서원
소백산 비로봉(1439m) 정상입니다.
취한대
"경(敬 :공경할 경)字 바위/백운동"
주세붕은 경이라는 글자 한자를 바위에 새겨 남겼다.
敬자는 신비의 덕목을 나타낸 글자로 공경과 근신의 자세로
더불어 "안향"을 공경하고 기리는 마음을 후대에 전한다는 뜻도 있다
敬자위에 백운동은 소수서원의 본래 이름이다.
주세붕이 서원 이름을 '백운동'으로 한 것은 소수서원의 자리가 중국 송(宋)나라 때
주희(朱熹, 1130∼1200)가 재흥시킨 백록동서원(白鹿洞書院)이 있던
"여산(廬山)에 못지않게 구름이며, 산이며, 언덕이며, 강물이며,
그리고 하얀 구름이 항상 서원을 세운 골짜기에 가득하였기" 때문에 '백록동'에서 취한 것이라고 한다.
주세붕이 편찬한 『죽계지(竹溪志)』 서문에는 "교화는 시급한 것이고,
이는 어진 이를 존경하는 일로부터 시작되어야 하므로
안향의 심성론(心性論)과 경(敬) 사상을 수용코자 그를 받들어 모시는 사당을 세웠고,
겸하여 유생들의 장수(藏修)를 위하여 서원을 세웠다"는 설립 동기가 적혀 있다.
백운동서원이 들어선 곳은 숙수사(宿水寺) 옛터로 안향이 어린 시절 노닐며 공부를 하던 곳이다.
현재 서원 입구에 있는 당간지주(幢竿支柱)는 이곳이 절터였음을 알려주고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소수서원
역광!!!
멋지게 어울립니다.
소수서원을 나와
선비촌 탐방~^^^
첫댓글 정겨운 모습 이쁜추억
함께라서 좋았어요
자수정색과 하얀유끼색이 아주 이쁘구나요
여행최고의 조건은
좋은 곳으로
좋은 사람들과 함께~^^ㅎ
즐거움만 가득찼던
반딧불+어쩌다 청춘 입니다.
여행을 풍요롭게 디자인하는 멋쟁이 명가이드님의 시낭송은 계속된다
늘 외우셨었는데 어려웠나 보고 읽으시네요
방대한 자료
기억력의 한계
아직은
生生하셨습니다.ㅎ
앞페이지에서도 안동찜닭 드신것 같던데 얼마나 맛났으면 또 드셨을까요!
모든 식당들이
안동찜닭과 간고등어 뿐!!!
세끼 안먹은게 다행인걸루~^^ㅎ
정말로
별일이였습니다.
2틀째 아침은 컵라면이
정말!!
좋았습니다.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