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사 역동 우선생 추모제의 제문
유(維) 세차(歲次) 단기(檀紀) 4342年 6月 13일, 단양군수 김동성은 삼가 선사역
동우선생영전(先師易東禹先生靈前)에 고(告)하나이다.
오늘 우리는 선생의 높은 충절과 학문을 추모하면서, 역동시조문학제(易東時調文
學祭)를 거행(擧行)하게 되었습니다. 선생께서는 관직에 나아가서는 충의대절이 천
지를 움직이셨으며, 향리에 물러나 후학을 양성하고 도학을 가르침에 있어서는 백
세의 사범이 되셨습니다.
미혹(迷惑)한 백성(百姓)을 교화(敎化)함에 있어서는 확연명철(確然明哲)하셨으
며, 왕의 패륜(悖倫)에 대하여는 목숨을 걸고 극간(極諫)하시었습니다.
새로운 학풍이었던 정주의 성리학을 가명(講明)하시어, 려말신유학(麗末新儒學)
의 진흥(振興)과 후진 양성에 지대한 업적을 남기시었습니다.
이리하여 해동(海東) 도학(道學)의 역사(歷史)에 태산북두(泰山北斗)와 같이 우뚝
하게 서셨으니, 퇴계 선생은 안동지역에 처음으로 역동서원(易東書院)을 세워 선생
의 충의대절(忠義大節)과 경학(經學)의 몀명(明明)함을 만세(萬世)에 기리었습니
다.
특히 당시(當時)까지 미지(未知)의 학문이었던 주역을 들여오셔서, 터득하시어 제
자(弟子)들에게 가르치심으로, 비로소 주역이 東에서 行해졌으며, 해동(海東) 주역
(周易) 학문(學問)의 종사(宗師)가 되시었습니다.
또한 우리 민족문학(民族文學) 가운데 가장 자랑으로 삼을 시조문학(時調文學)에
있어서 최초(最初)의 시조(時調)를 남기셨으니, 국민문학(國民文學)의 한 장르인
시조문학(時調文學)의 조종(祖宗)이 되시었습니다. 이리하여 우리 丹陽은 民族史
에 빛나는 시조문학(時調文學)의 태동지(胎動地)라는 영광(榮光)을 안게 되었습니
다.
이에 우리는 선생의 충절과 학문과 예술의 세계를 오늘날에 현양(顯揚)하고 계승
(繼承)함으로써, 우리 丹陽郡이 문화예술도덕(文化藝術道德)의 본향(本鄕)이 되도
록 정성(精誠)을 다하여 가꾸어 나가겠나이다.
이에 삼가 간소(簡素)한 제물(祭物)과 맑은 술을 올리오니 굽어 살피시옵고 흠향
(歆饗)하시옵소서.
본 제문은 2009년 6월 13일 사인암에서 열린 역동우선생 추모제에서 단양군수님이
고한 글을 역동우탁기념회 카페에서 옮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