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꾸는 네잎클로버/ 신언필
아침 신문을 편다. 맨 뒤쪽 사설란에서부터 역주행하며 큰 글씨의 제목 위주로 미끄러지듯 기사를 훑는다. 그러다가 문득 한 칼럼 기사에 눈이 멈췄다. 네잎클로버에 관한 내용이었다.
클로버는 일명 토끼풀로 잎이 보통 세 장이다. 그런데 태생이나 환경 등에 따른 기형으로 가끔씩 잎이 네 장인 클로버가 있다. 네잎클로버다. 이것은 만분의 일의 확률로 찾을 수 있다. 그래서 항간에서는 ‘행운의 상징’으로 여긴다. 일설에 의하면 그 유래는 19세기 초 나폴레옹 전쟁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전쟁에 나간 나폴레옹이 클로버 꽃이 잔뜩 핀 숲을 지나가다 우연히 네잎클로버를 발견하고, 신기해서 자세히 보려고 허리를 숙였다. 그때 적이 쏜 총알이 그의 머리 위로 스쳐 지나갔으며, 다행히 그는 목숨을 구할 수 있었다. 그때부터 네잎클로버가 행운을 상징하게 되었다고 한다.
한낮의 더위를 피해 해질녘에 산책을 나섰다. 길옆 풀숲에 제철을 만난 클로버가 지천으로 널려 있었다. 토끼 꼬리와 비슷한 하얀 꽃봉오리의 일반 클로버가 주종을 이루고, 군데군데 붉은 꽃의 레드클로버가 군락을 이루고 있었다. 반환점을 돌아서 오는 길에 푹신한 잔디가 밟고 싶어 풀숲으로 접어들었다. 얼마쯤 걸었을까. 걷다가 문득 고개를 숙여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그 순간 네잎클로버가 피사체처럼 클로즈업 되어 눈에 확 들어왔다. 관성에 의해 지나친 발걸음을 되돌려 다시 확인했다. 네잎클로버가 분명했다.
우연의 일치랄까. 아침에 신문에서 관련기사를 읽었는데 네잎클로버를 발견한 것이다. 난 생 처음이었다. 나는 마치 복권에 당첨된 것처럼 기뻤다. 들뜬 마음을 가라앉히고 훼손되지 않게 조심스레 채집한 후 사진을 찍어 가족 단톡방에 올렸다. 아들에게서 곧바로 답이 왔다.
“오우 대단해유! 행운이 올 건가 벼~”
‘정말로 내게도 행운이 오려나.’ 하는 생각에 곧장 복권판매점에 들러 로또복권 만원어치를 샀다. 대충 번호를 살펴보니 내가 좋아하는 숫자인 4가 들어간 44가 눈에 들어왔다. 왠지 좋은 결과가 있을 것만 같았다.
추첨은 매주 토요일 밤에 실시된다. 기다리는 며칠 동안은 당첨에 대한 기대감과 상상으로 행복했다. 1등에 당첨되면 당첨금을 어디에 쓸까. 우선 아들이 결혼하면 살 집 마련에 보태 쓰도록 해야겠다. 아들은 삼포세대에 속하지만 최근 들어 좋아하는 여친을 만나 결혼까지 약속했다. 그러나 근래에 집값이 천정부지로 치솟아 전세 들어가기도 어려운 실정이 되고 말았다.
또한 당첨금의 일부는 모교 장학금으로 기증할 것이다. 고3때 집안 사정으로 서울에서 학업을 지속할 수 없게 된 적이 있었다. 휴학을 하든가 시골 고향에 있는 학교로 전학을 해야 하는 양자택일의 기로에 서 있었다. 노란 개나리가 피어나기 시작하는 어느 봄날, 고민 끝에 교도부(상담실) 문을 조심스럽게 두드렸다. 머리가 하얀 주임 선생님이 친절하게 상담을 해주셨다. 얼마 후 그 선생님의 배려로 나는 일 년 간 장학금을 받았고 무사히 학업을 마칠 수 있었다.
상상 속에서나마 당첨된 기분을 조금이라도 더 오랫동안 누리고 싶었다. 추첨 발표가 난 후 하루를 더 기다렸다. 우리의 뇌는 실제와 상상을 구분하지 못하여 상상 속의 좋은 일에 대해서도 동일하게 행복 호르몬을 분비하기 때문이다. 드디어 떨리는 마음으로 번호를 확인했다. 열 게임 중 하나가 오천 원에 당첨되었다. 기대가 컸던 탓에 실망감도 있었지만 희망을 이어갈 수 있음에 만족했다.
그로부터 며칠 후 여느 때와 같이 나는 산책길에 올랐다. 이번에도 행여나 하는 마음에 길옆 풀숲 클로버에 눈길이 자주 갔다. 그리고 마침내 두 번째 네잎클로버를 찾아냈다. 돌아오는 길에 또 다시 로또복권 만원어치를 샀다. 이번에도 오천 원에 당첨되었다. 지난번보다 실망감이 더 컸다. 두 번째인 만큼 기대가 더 컸기 때문이다.
일과 중의 하나인 산책은 계속 되었고, 네잎클로버에 대한 집착은 점점 더 커져갔다. 길가 풀숲 클로버에 사로잡힌 눈길 탓에 산책길 발걸음은 더디기만 했다. 며칠 후 드디어 세 번째 네잎클로버를 찾아냈다. 기쁜 마음에 가족 단톡방에 사진과 함께 메시지를 남겼다.
“삼세판이여. 기대하시라, 개봉박두!”
“뭐여, 행운 폭탄이여?”
들의 답글이 즉시 올라왔다. 쇠뿔은 단김에 빼라고 복권판매점에 들러 로또복권 만원어치를 샀다. 그러고는 세 번째 네잎클로버의 마법을 기대했다. 행운의 여신은 무심했다. 결과는 꽝이었다. 그 후로도 산책은 계속되었고, 이제 네잎클로버에 대한 관심은 집착을 넘어 어느덧 중독 수준이 되었다. 그럴수록 네잎클로버는 시야에서 더욱 꼭꼭 숨어버렸다.
그렇게 네잎클로버에 대한 기대는 물거품으로 끝이 났다. 문득 행운은 어쩌면 황금알을 낳는 거위라는 생각이 들었다. 기다려주면 매일 황금알을 낳아 주지만 한꺼번에 알을 얻기 위해 배를 가르면 거위는 죽고 만다. 마찬가지로 행운은 노력하고 준비된 자에게 때가 되면 찾아오는 것이지, 마이다스의 손처럼 뚝딱 만들어 낼 수는 없는 것이다. 제비 다리를 일부러 부러뜨려 얻은 놀부의 박씨처럼, 억지로 만들어 낸 것은 행운이 아니라 불운이 되고 말기 때문이다. 행운은 준비가 기회를 만났을 때 나타나는 것임을 비로소 터득한다.
다음 날 다시 산책길에 올랐다. 그러나 여전히 내 시선은 네잎클로버를 찾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