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owee 10.09.30 21:29
ME에서 "느낌에는 무엇이 없다"고 했죠?
참으로 일리가 있는 말입니다.
"느낌에는 ooo이 없다"는 말이!
느낌은 단지 느낌으로 끝나죠.
느낌이 생각으로 끝나면,
느낌을 갖은 것이 아니라, 생각을 갖었었던 거겠죠.
느낌이냐 생각이냐를 잘 구분해야 하겠죠.
<moowee10.09.30 22:52
크~~~
세레나님 한테 뒤게 혼나네!
맥주 한 잔 한지 오래 도ㅑ서 혼나는가부다.
지는 세레나님과 같이 가는데요 뭘~~
지가 맥주에 소주 한 잔 말아 드리리이다.
맥주를 한 잔 시원하게 마시는 이의 느낌은 사람마다 다 다릅니다.
땀 흘려 등산갔다 내려온 이의 맥주 한 잔!
추운 겨울에 호프집에 들려 들이키는 맥주 한 잔!
금주 기간을 마친 후의 맥주 한 잔!
내맡긴 영혼은 생각을 멀리 하라는 말씸임다.
생각보담 느낌을 자주 접하라는 말씸임다.
생각과 느낌을 분별하라는 말씸임다.
느낌과 친밀하고 느낌을 사랑하시기 바랍니다.
"느낌에는 윤리성이 없다"는 말씸을 가르쳐 드리기 위함입니다.
크~ 철학은 아닌디 ~~~>
사랑하는 아버지, 감사합니다.
부족한 저희 모두가 아버지만을 죽도록 뜨겁게 사랑하게 하소서.
마카리오스와 모든 사제와 내맡긴 영혼들을 통하여
아버지의 완전한 사랑과 완전한 영광을 크게 드러내소서.
아버지의 완전한 사랑과 완전한 영광을 위하여!
[ moowee 2010.10.13. 17:46
하느님이 주시는 영감을 저는 아주 확신하기에
어떤 영감이든
거기에 저의 지식이나 경험을 완전히 배제합니다.
★그냥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무조건 따릅니다.★
제가 그렇게 철저히 "느낌"을 소중히 했고,
"아님말구"에 순종했고,
그러했기에
수시로 "영감"을 받을 수 있게 되었던 것이라고 저는 굳게 믿어지기에
여러분도 느낌을 소중히 여기시라는 뜻에서
저의 체험을 조심스럽게 말씀드린 것입니다.
정말로 내맡긴 영혼은 이 세상의 어떤 것에도 "얽매임"이 없습니다.
얽매임과 내맡김은 완전히 서로 극대 극입니다.
따라서 과거의 지식과 경험에 자꾸 얽매이는 사람은
내맡긴 사람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물론, 초보이기에 처음부터 완전해질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서둘러 완전을 바라는 것도 내맡김이 아닙니다.
과거의 지식과 경험에 얽매이지 않는 가장 좋은 방법이
★"하느님을 정말로 뜨겁게 사랑하는 것"입니다.★
하느님을 뜨겁게 사랑하면
저절로 하느님께만 집중하게 되어 있습니다.
하느님께만 집중하면
저절로 과거의 지식이나 경험을 쉽게 멀리할 수 있게 됩니다.
너무나 당연한 일이 아닙니까?
사람의 마음은 하나이기에 두 마음을 지닐 수 없는 것입니다.
두 마음 중 하나는 분명 거짓 마음일 겁니다.
"아무도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
한쪽은 미워하고 다른 쪽은 사랑하며,
한쪽은 떠받들고 다른 쪽은 업신여기게 된다.
너희는 하느님과 재물을 함께 섬길 수 없다." (마태6,24)
하느님께 온 마음을 다하는데
어떻게 세상의 지식이나 경험에 얽매이겠습니까?
내맡긴 영혼은 ★매순간 떠오르는 "느낌"과 "영감"에 집중★하며
거기서 하느님의 뜻을 찾으며 그 뜻을 따라 살아야 합니다.
내맡김은 진정한 자유의 삶입니다.
우리를 "내맡김의 길"로 이끌어주신 하느님께
다시 한번 더 깊은 감사를 드리며,
그분의 이끄심에 충실한 "내맡긴 영혼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한 번 빛을 받아 하늘의 선물을 맛보고 성령을 나누어 받은 사람들이,
또 하느님의 선한 말씀과 앞으로 올 세상의 힘을 맛본 사람들이
떨어져 나가면,
그들을 다시 새롭게 회개하도록 만들 수가 없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스스로 하느님의 아드님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고
욕을 보이는 것입니다." (히브6,4~6)
"여러분 각자가 희망이 실현되도록
끝까지 같은 열성을 보여 주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리하여 게으른 사람이 되지 말고,
약속된 것을 믿음과 인내로 상속받는 이들을 본받는 사람이 되라는
것입니다. (히브6,12) ]
[ 위무위.보조.지도사제23.11.01 00:59
【 moowee 17.05.16. 23:52 new
<님께서도 댓글에 열심히 참여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여러분과 저와의 통로는 오직 < 댓글뿐 >입니다.
여러분의 댓글이 돌아가시면 저의 영적지도는 < 죽습니다.> 】
아버지께서 이끌어 주셔서,
저의 영적지도는 이제 < 댓글에만 > 머물지 않게 되었습니다!
댓글(말)은 < 기똥차게 잘 쓰면서도 >,
제가 직접 대면하여 대화해 보면?
그것은 삶 속에서는 실천 없는
< 죽은 댓글 >이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 다음부터는,
댓글 차원을 넘어서서 그 사람의 < 실행력 >까지 지도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제가 요즘 자주 말씀드리는
< 입으로만, 머리로만, 댓글로만 >이라는 말이 거기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거내영은 참으로,
실천(실행)이 중요합니다, 참으로!
거내영을 삶으로 실천하는 하내영이 됩씨다! ]
【 2022 영감(靈感)에 대한 지도사제의 글 모음 ①
무화22.06.29 21:39
[ 생각이 많은 사람은,
아버지께서 주시는 ★ 靈感(直觀) ★ 을 받을 수 없습니다.
<생각이라는 그물>이
하늘로부터 내려오는 直觀(靈感)을 가로채기(막기) 때문입니다.
지가 그토록 <생각을 없애라~>고 외쳐대는 것이
바로 그것 때문입니다. ]
[ 하느님이 좋아하시는 것은 단 하나!
당신을 뜨겁게 사랑해 드리는 것뿐입니다.
하느님을 뜨겁게 사랑하면
하느님이 우리 각자에게 무엇을 원하시는지 알게 되고
(靈感),
하느님이 우리 각자에게 원하시는 것을 행하여 드리면 되는 것입니다.
(응답)
그것이 바로 "하느님 뜻대로 사는 것" 입니다. ]
[ 당신을 향한 끊임없는 사랑가에 흡족하신 하느님께서는
더욱 우리를 사랑해 주시며
우리 마음에 사랑의 말씀을 속삭여 주신다.
그 말씀이 바로 '영감'이다.
그러면 그 영감, 사랑의 속삭임대로 이끌려드리는 삶이 바로
<거룩한 내맡김의 삶(영성)> 것이다. ] 】
[ ■ 내맡긴 영혼은 ■ The abandoned soul
내맡겼다는 것은 도대체?
지도사제 1610.10.13 17:46
<"영감"은 성인들의 전유물이 아닙니다.>
영감은 하느님을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의 공동의 선물입니다.
하느님을 뜨겁게 사랑하면
저절로 하느님께만 집중하게 되어 있습니다.
내맡긴 영혼은 매순간 떠오르는 "느낌"과 "영감"에 집중하며
거기서 하느님의 뜻을 찾으며 그 뜻을 따라 살아야 합니다. ]
[ 사랑하는 사람은 상대방의 의사를 늘 ‘물어본다.’
그리고 상대방의 의사대로 다 해 준다.
그 사람을 진실로 사랑하기 때문이다.
나중에는 ‘척’하면 ‘착’이다.
텔레파시가 통한다.
하느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모든 일을 하느님께 늘 ‘여쭈어본다.’
그리고 하느님의 뜻대로 모든 것을 다 해 드린다.
하느님을 진실로 사랑하기 때문이다.
나중에는 그냥 ‘척’하면 ‘착’이다.
영감을 주셔서 ‘영감’이 즉시 통하는 것이다.
( 영감을 주셔서 ★"영감"이 즉통★할 것이다. ) ] 창 화살 제2부 06
< 대천사여, 물러나십시오. 당신은 그늘입니다.
당신의 순간은 빠르게 흘러가고, 당신은 사라져 갑니다.
마리아가 당신을 추월하여 당신보다 항상 앞서 가고 있으며,
이제 당신은 그녀에게 아주 뒤쳐져 있습니다.
그러나 그늘이라는 이런 감각적 외양 아래,
이런 사명을 띠고 그녀 안으로 막 침투해 들어간 성령은
결코 그녀를 떠나지 않을 것입니다. >
- 하느님 섭리에 내맡김(韓)새 번역 -
[ 지도사제 2023.10.15
느낌 ㅡ 사람으로서의 직감, 예감
영감 ㅡ 영혼이 느끼는 감각 ]
[신비.보조.기조실(SG)작성자 14:46 새글
< 그에게는 아무것도 감추지 않았다
제4장 3. 고통을 어떻게 할 것인가 (상위카페 마리아처럼예수님함께)
김소영데레사무소 19.02.26
하느님께 자신을 내맡기고 열심히 그분의 뜻을 행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는
하느님께서 무엇을 보내시든 그것이 가장 좋은 것이다.
참으로 그것은 최선의 것이며, 더 나은 것이 있을 수 없다.
다른 것들이 더 좋게 보일지라도 그것은 그대에게 좋은 것이 아니다.
하느님은 다른 길이 아니라 이 길을 원하시기 때문에
이 길이 가장 좋은 길일 수밖에 없다.
병이나 가난, 배고픔이나 목마름 등
하느님께서 그대에게 주시는 것이나 주시지 않는 것은,
비록 그대가 그것에 대해 열성이나 내적 활기를 가지고 있지 않더라도
그대에게 가장 좋은 것이다.
그대가 가졌거나 가지지 못한 모든 것을
하느님의 영광을 위하여 받아들인다면
하느님께서 그대에게 보내시는 것은 최선의 것이 된다.
아마 그대는 "그것이 하느님의 뜻인지 아닌지 어떻게 알 수 있는가?"라고 물을 것이다.
하느님의 뜻이 아니라면 그것은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병이든 다른 어떤 것이든 하느님의 뜻이 아니고서는 그대에게 일어나지 않는다.
그러므로 그 일이 하느님의 뜻임을 안다면 그대는 기뻐하고 만족해야 한다.
그렇게 한다면 어떤 고통이라도 찌르는 듯한 아픔이 사라질 것이다.
그러므로 고통이 아무리 심하더라도 번민이나 고뇌를 느끼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그것을 하느님에게서 오는 가장 좋은 것으로 받아들여라.
왜냐하면 그것이 당신에게는 가장 좋은 것이 되기 때문이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모든 것을 잘 이용하는 것은
하느님을 곤궁할 때나 부유할 때나 한결같이 사랑하고,
병들 때나 건강할 때나 그분을 소중히 여긴다는 말이다.(..)
어떤 식으로든 그대 자신 때문에 당하는 고통은
그대에게 상처를 주며 견디기 어렵다.
그러나 하느님을, 오직 하느님만을 위하여 당하는 고통은
상처를 주지도 않고 부담이 되지도 않는다.
하느님께서 그 짐을 지시기 때문이다.
내 말을 믿으라.
어떤 사람이 하느님을, 오직 하느님만을 위하여 고통을 받고자 한다면
갑자기 온 세상의 고통을 모두 당하게 된다 하더라도
그를 괴롭히거나 꺾지 못할 것이다.
하느님께서 그 짐을 지실 것이기 때문이다.
내 어깨에 지우는 짐이 수십 킬로그램이 넘는다 하더라도
마치 몇 그램 밖에 안 되는 것처럼 기꺼이 질 것이다.
그것이 나에게는 무겁거나 괴롭지 않기 때문이다.(..)
간단히 말해서
하느님을, 오직 하느님만을 위하여 지는 고통은 가볍고 즐겁다.
친구들이여,
하느님 안에서 죽고자 함으로써 우리는 고통에서 벗어나게 된다.
모든 고통은 육신과 그 하위 능력과 감각들에게 맡겨두고,
영혼은 그 모든 능력들과 함께 자유롭게 하느님께로 올라가야 한다.
감각과 하위능력들의 고통과 투쟁은 영혼을 괴롭히지 않는다.
싸움이 길고 힘들수록 승리와 승리의 열매는
더욱 훌륭하고 영광스럽게 되기 때문이다.
하느님 안에는 슬픔도 고통도 번민도 없다.
그대가 모든 역경과 고통을 벗어나고자 한다면
하느님만을 향하여 나아가야 한다.
의심할 여지없이 그대의 모든 고통은
그대가 하느님을, 하느님만을 향하지 않는 데에서 온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