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흥왕의 정복 활동에 관한 사실은 단양 적성비와 4개의 순수비를 통하여 잘 알 수 있다.
진흥왕 순수비의 비문은 대개 비슷한 내용이다.
단양 신라 적성비(충북 단양), 551년 건립
신라가 고구려 영토인 충북 단양군 단성읍 하방리 성재산의 적성(赤城)을 점령한 후 세운 비석이다. 이 비의 발견으로 산성의 이름이 적성임이 밝혀지게 되었다. 이곳은 남쪽에서 죽령을 넘어 남한강을 건너기 직전에 위치해 있는 전략적 요충지이며, 부근에는 고구려 장군 온달의 전설이 전해 오는 온달산성이 있다. 단양 적성비의 내용은 크게 세부분으로 나뉘며, 진흥왕이 세운 다른 순수비와는 다르게 영토 편입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척경비이다.
이 비는 이사부(伊史夫)를 비롯한 여러 명의 신라 장군이 왕명을 받고 출정하여 고구려 지역이었던 적성을 공략하고 난 뒤, 그들을 도와 공을 세운 적성 출신의 야이차(也老次)와 가족을 비롯한 주변 인물을 포상하고 적성 지역의 고구려 유민들의 민심을 안정시킬 목적에서 세웠다. 이는 장차 여이차와 같이 신라에 충성하는 사람에게는 똑같이 포상을 내리겠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또한, 신라의 새로운 관등과 관직명, 율령 반포에 대한 중요한 사실 등을 담고 있어 학술적인 자료로 중요시되고 있다.
비문 내용
(첫째) … (년) … 월에 왕이 대중등(大衆等)인 탁부(喙部) 출신의 이사부지(伊史夫智) 이간지(伊干支), (사탁부(沙喙部) 출신의?) 두미지(豆弥智) 피진간지(佊珎干支), 탁부(喙部) 출신의 서부질지(西夫叱智) 대아간지(大阿干支), ▨부지(▨夫智) 대아간지(大阿干支), 내례부지(內礼夫智) 대아간지(大阿干支), 고두림성(高頭林城)에 있는 군주(軍主)들인 탁부(喙部) 출신의 비차부지(比次夫智) 아간지(阿干支), 사탁부(沙喙部) 출신의 무력지(武力智) 아간지(阿干支), 추문촌(鄒文村) 당주(幢主)인 사탁부(沙喙部) 출신의 도설지(噵設智) 급간지(及干支), 물사벌(勿思伐 : 城 幢主)인 탁부(喙部) 출신의 조흑부지(助黑夫智) 급간지(及干支)에게 교(敎)하시었다.
(둘째) 이 때에 적성(赤城) 출신의 야이차(也尔次)에게 교(敎)하시기를 … 중에 옳은 일을 하는데 힘을 쓰다가 죽게 되었으므로 이 까닭으로 이후 그의 처(妻)인 삼(三) … 에게는 … 利를 허(許)하였다.
(세째) 사년 소녀(小女), 사문(師文) … 공형(公兄)인 추문촌(鄒文村) 출신의 파진루(巴珎婁) 하간지(下干支) … (전(前))자(者)는 다시 적성연(赤城烟)으로 가게 하고 후자(後者) 공형(公兄)은 … 이엽(異葉)이건 국법(國法)에는 분여(分與)하지만 비록 그러하나 伊 … 子, 도지(刀只) 소녀(小女), 오례혜(烏礼兮) 찬간지(撰干支) … 법(法)을 적성전사법(赤城佃舍法)으로 만들었다.
(넷째) 별도로 관(官)은 … 불혜(弗兮) 여(女), 도두지우열리파(道豆只又悅利巴) 소자(小子), 도라혜(刀羅兮) … 합하여 5인(五人)에게 … 를 내렸다.
(다섯째) 별도로 교(敎)하기를 이후로부터 나라 가운데에 야이차(也尒次)와 같이 … 옳은 일을 하여 힘을 쓰고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일하게 한다면※ 만약 그가 아들을 낳건 딸을 낳건 나이가 적건 (많건) … 형제이건 이와 같이 아뢰는 자가 대인(大人)인가 소인(小人)인가 …
(여섯째) … 部 출신의 나불탐학실리(奈弗耽郝失利) 대사(大舍), 추문(鄒文)(촌) … 물사벌성당주사인(勿思伐城幢主使人)은 나리촌(那利村) … 인(人)은 물지차(勿支次) 아척(阿尺), 서인(書人)은 탁부(喙部) 출신의 … 인석서립인(人石書立人)은 비금개리촌(非今皆里村) … 지(智) 대오(大烏)이다. [출전 : 『譯註 韓國古代金石文』Ⅱ(1992)], 해석자 : 주보돈
북한산 진흥왕 순수비(현재는 국립 중앙박물관에 옮겨져 있음), 555년 건립
비문 내용
세상의 도리가 진실에 어긋나고, 그윽한 덕화가 펴지지 아니하면 사악함이 서로 다툰다. 제왕은 왕위를 계승하고 스스로 삼가며 사방으로 영토를 개척하여 백성과 토지를 널리 획득하니 이웃나라가 신의를 맹세하고 화친을 요청하는 사신이 왔다. 이에 관경(管境)을 순수하며 민심을 살펴서 백성의 노고에 보답하고자 하며 충성과 신의를 갖추고 재주를 다해 나라에 충절한 공을 세운 자가 있다면 벼슬을 올려주고 공훈을 표창코자 한다. 이때 왕의 수레를 따른 이는 법장(法藏) 혜인(慧忍) 등이었다.
창녕 척경비(경남 창녕), 561년 건립
빛벌가야(지금의 창녕)를 신라 영토로 편입한 진흥왕이 이곳을 순수(巡狩:두루 돌아다니며 순시함)하며 민심을 살핀 후 그 기념으로 세운 비이다. 당시 빛벌가야는 신라가 서쪽으로 진출하는데 있어 마치 부채살의 꼭지와 같은 중요한 길목이었는데, 진흥왕 16년(555) 신라에 병합되어 하주(下州)로 바뀌었고, 565년에는 대야주(지금의 합천)와 합쳐져 비사벌군(比斯伐郡) 또는 비자화군(比自化郡)으로 불리워지게 되었다.
비는 목마산성 기슭에 있던 것을 1924년 지금의 자리로 옮겨 비각안에 모셔 둔 것으로, 자연석의 앞면을 평평하게 다듬어 비문을 새기고, 그 둘레에 선으로 윤곽을 돌려놓은 모습이다. 다른 순수비와 달리 ‘순수관경(巡狩管境)’이라는 제목이 보이지 않아 척경비(영토 편입을 기념하여 세운 비)라 일컫고 있으나, 임금을 수행한 신하들의 명단이 기록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순수비에 속한다 할 수 있다.
비문은 심하게 닳아 있어 판독하기가 힘든 상태이나, 후반부는 명확히 읽어낼 수 있을 만큼 선명하다. 다른 순수비의 내용을 참고할 때 대략 진흥왕이 빛벌가야를 점령하여 영토를 확장한 사실과 왕의 통치 이념, 포부 등이 실려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데, 후반부에 당시 왕을 수행하던 신하들의 명단이 직관, 직위, 소속의 순서대로 나열되어 있어 당시 지방 행정조직, 신분제 및 사회 조직을 파악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고 있다.
비를 세운 시기는 대가야가 멸망하기 1년 전인 진흥왕 22년(561)으로, 이 지역을 가야진출의 발판으로 삼고자 한 왕의 정치적인 의도가 엿보인다. 또한 진흥왕 당시의 사실을 기록해 놓아『삼국사기』의 기사를 보완해줌으로써, 이 시대의 역사적 사실을 밝히고 이해하는데 크게 기여하고 있다.
[문화재청 국보 설명 중에서]
황초령 순수비와 마운령 순수비(568)
같은 시기(568)에 세워졌기에 다음 비문 내용을 보면 알겠지만 그 내용도 비슷하다.
황초령비 비문 내용
8월 21일 계미에 진흥태왕이 관경(管境)을 하고 돌에 새겨 기록하였다. 세상의 도리가 진실에 어긋나고, 그윽한 덕화가 펴지지 아니하면 사악함이 서로 다툰다. 로 제왕(帝王)은 연호를 세워 스스로를 닦아 백성을 편안히 하지 않음이 없다. 그러나 짐은 태조(太祖)의 기틀을 이어받아 왕위를 계승하여, 몸을 조심하고 스스로 삼가면서 할까 두려워하였다. 하늘의 은혜를 입어 운수를 열어보여, 명명(冥冥)한 중에서도 신지(神祗)에 감응되어 사방으로 영토를 개척하여 백성과 토지를 널리 획득하니 이웃나라가 신의를 맹세하고 화호(和好)를 요청하는 사신이 서로 통하여 오도다. 아래로 하여 신·구민을 육(育)하였으나 오히려 왕도의 덕화가 있지 않았다고 하였다. 이에 무자년 가을 8월에 관경을 순수하여 민심을 살펴서 노고에 보답하고자 한다. 충성과 신의에다 정성을 갖추고, 재주가 하고 나라를 하여 충절을 다해 공을 세운 무리가 있다면 벼슬을 올려주고 상품을 더하여 공훈을 표창하고자 한다. 수레를 돌려감에 14 에 경계를 이 때에 왕의 수레를 따른 자는 사문도인(沙門道人)으로는 법장(法藏) 혜인(慧忍)이고, 대등(大等)은‘탁(喙) 부(夫) 지(知) 잡간( 干), 탁부(喙部) 복동지(服冬知) 대아간(大阿干), 비지부지(比知夫知) 급간(及干), 미지(未知) 나말(奈末), 혜대사(兮大舍), 사탁부(沙喙部) 무지( 知), 대사(大舍) 이내종인(裏內從人)은 탁부(喙部) 혜차(兮次) 탁부(喙部) 여난(與難) 대사(大舍)이고, 약사(藥師)는 사탁부(沙喙部) 독형(篤兄) 소(小) 이고, 나부(奈夫) 전(典)은 탁부(喙部) 분지(分知) 길지(吉之), 애공흔평(哀公欣平) 소사(小舍), 말매(末買) 탁부(喙部) 비지(非知) 사간(沙干), 조인(助人) 사탁부(沙喙部) 윤지(尹知) 나말(奈末)이다.
마운령비 비문 내용 -----
짐은 하늘의 은혜를 입고 …… 사방으로 영토를 개척하여 널리 백성과 토지를 획득하니, 이웃 나라가 신의를 맹세하고 화친을 청하는 사절이 서로 통하여 오도다. 스스로 헤아려 옛 백성과 새 백성을 두루 어루만지고자 하였으나, 오히려 말하기를 왕도의 덕화가 고루 미치지 않고 은혜가 베풀어짐이 없다고 한다. 이에 무자년 8월에 관경(管境)을 순수(巡狩)하여 민심을 살펴 위로하고, 물건을 내려주고자 한다.
첫댓글 진흥왕의 순수비 - 단양적성비, 북한산비, 창녕비, 황초령비, 마운령비
단양적성비, 북한산비, 창녕비, 황초령비, 마우령비-진흥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