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도시
부산
부산을 대표하는 일간지가 1면 톱으로 우리나라 초기의 커피역사를 실어 시선을 끈다. 박물관에 소장된 커피역사를 불러내어 부산을 재조명하기 위해 앞으로 며칠 더 시리즈로 싣는다고도 했다. 이 신문은 어쩌면 우리 기호식품 중 선호도가 높은 커피를 통해 점점 움츠러들고 있는 부산의 위상에 활력을 불어넣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1890년대 문헌에는 개항 때부터 향유한 부산의 커피역사가 나온다. 맛있는 커피의 비결은 신선한 원두에 있는 만큼 전 세계 커피 수입의 통로이자 첫 도착지 부산의 역할이 그만큼 컸을 터이다. 일제 때 신문에도 그 당시 부산항을 통해 백국브라질 커피가 지속적으로 수입돼온 사실이 기사로 올라있다. 그 당시 이미 부산엔 커피를 마시는 공간으로 끽다점과 카페 그리고 다방이 있었다. 끽다점은 일본식 카페 ‘깃사텐’을 한국식으로 말한 것으로 1909년 처음 생기면서 카페와 다방이 대중화됐다.
1925년 일본어판 부산일보현재의 부산일보와 무관 광고에도 ‘카페 런던’이 시설을 확장하고 미인여급 12명을 두고 영업을 재개한다는 소식이 실렸고 1927년엔 부산에 50여 개의 카페가 있었다는 기록도 나온다. 한국에 커피를 처음 소개한 집단은 선교사들이지만 부산에 커피가 널리 알려진 계기는 해관이었다. 1876년 부산항 개항 이후 초량왜관이 사라지고 1883년 부산해관이 들어서면서 영국인과 미국인 등 외국인 해관장이 부임했고 이들과 함께 일한 조선인이 커피를 마셨을 것으로 본다. 지난해 국내에 들여온 생두 95%가 부산항을 통해 수입되어 명실 공히 부산은 스타벅스가 태동한 미국 시애틀처럼 커피도시로 불러도 손색이 없을 거란 분석이 나온다. 부산은 현대에 들어서도 우리나라 커피역사의 중심지였다. 미군부대에서 흘러나온 커피는 부산 자유시장현 국제시장에 풀려 팔려나갔다.
임시수도 시절 부산 원도심지역에서 상점을 수리했다 하면 그 자리에는 어김없이 다방이 들어섰다. 그때 작가 김동리는 <밀다원 시대>라는 단편까지 썼다. 소설무대인 광복로 '밀다원'이 바로 피란시절 문인들의 휴식처였다. 부산의 커피문화는 해외에서도 관심을 가질 만큼 특이했었다. 1968년 미국 정보국이 ‘Tea room and communication in Korea'라는 부산의 다방 554곳을 전수 조사한 흥미로운 보고서까지 냈다. 여기서 Tea Room이 바로 커피숍이었다. 도쿄올림픽이 열린 1964년 여름, 남포동 골목에 띄엄띄엄 박힌 다방의 영업방식은 좀 특이했다. 올림픽 경기장에서 펼쳐지는 권투나 배구 레슬링 등 우리 선수들이 출전한 종목 경기가 열리는 날이면 다방에선 미리 단골손님들에게 연락하여 커피를 비싸게 팔았다. 흑백 티브이 중계를 보겠다고 몰려드는 손님들에게 100원짜리 커피에 계란 노란자를 추가해서 거의 배나 받았다.
그렇게 받아도 빈자리가 없을 정도였으니 그 축에 끼지 못하는 사람만 벙어리 냉가슴 앓듯 했을 터이다. 당시 7000원 약간 넘는 월급을 생각하면 얼마나 비쌌나를 알 수 있다. 그 앞서 2년 가까이 근무한 대전에도 다방은 있었지만 직장 선배들은 그쪽에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부산이 그만큼 국제적인 도시였다는 걸 알 수 있다. 미군부대에서 공짜라고 마구 마셔댄 커피가 위벽에 구멍을 낸 남부끄러운 악몽도 잊히지 않는다. 부산에서 비싼 때문에 못 마신 커피를 의정부 군부대 식당에서 원도 없이 마셔댄 결과였다. 미군병원 코쟁이 군의관은 본국에서 왔을 암포젤엠 한 병을 꺼내주면서 당장 커피부터 끊으라고 권고했다. 비위가 약해 주식으로 나오는 칠면조 등 육고기를 제대로 먹어내지 못하면서 커피를 입에 달고 살았던 게 발병 원인이었다. 1960년대까지만 해도 미군부대에서 흘러나온 커피가 암시장을 통해 국내시장에 상당히 퍼졌다.
부대 내 식당이나 장교사병 막사 클럽 등에서 일하는 한국인 종업원을 통하거나 심지어는 쓰레기차에 숨겨서도 반출되는 걸 목격할 수 있었다. 다시 커피를 많이 마셔대기 시작한 것은 봉지에 든 믹서커피가 나온 1980년대였다. 때마침 나라의 국운마저도 치솟았던 그때가 내 인생의 봄날이 아니었을까 싶다. 사무실에서 업무를 보다가 옆 사무실을 찾아가면 물어보지도 않고 종이컵에 든 커피부터 내놓을 때였다. 하루에 적게는 다섯 잔 많게는 그 배로 마셨을 터이다. 우유 등 첨가물 때문인지 아니면 커피에 내성이 생긴 때문인지 위장에 구멍은 더 이상 생기지 않았다. 외국으로 이민 간 동포들이 어쩌다 귀국하면 가장 먼저 챙긴다는 품목이 믹서커피라는 말도 그때 떠돌았다. 우리나라에선 수목원 온실에서만 커피나무를 키우나 했더니 이제 아파트 베란다에서도 재배하면서 너도나도 블로그와 카페에도 체험기를 올리고 있다. 이런 세상을 살고 있다는 게 꿈만 같다.
국내에 들어오는 커피나무는 대부분 아라비카 품종이다. 반짝거리는 광택을 지닌 커피나무의 진녹색 잎은 가장자리가 구불구불한 레이스 같은 모양을 하고 있다. 커피나무는 키에 비해 가느다란 원줄기를 가지고 있는데 윗부분에는 곁가지가 생기고 큰 잎이 달리면서 밑으로 처진다. 원산지에서는 5m까지 자라는 상록수지만 커피의 재배를 위해 보통 2m 크기로 키운다. 나무는 씨앗을 심어 열매를 수확하기까지 3년 정도의 시간이 필요하며 그 후로는 30년 동안 계속 열매를 수확할 수 있다. 씨앗을 심은 후 두 달 정도 지나면 발아하는데 기후와 환경에 따라서 다르지만 발아 후 20~30일이 지나면 잎이 두 장 나온다. 파종 후 5개월이 되면 어느 정도 커피나무의 모습을 보이기 시작한다. 2~3년이 지나면 하얀 꽃이 피고 재스민 꽃과 비슷한 향이 난다. 또 꽃이 지면 녹색의 둥근 열매가 맺히고 6~8개월 후부터 점점 붉은색으로 변한다.
일반적으로 1년에 1~2회 정도 수확하며 열매 안에는 씨앗이 1~2개씩 들어 있다. 열매 속의 씨앗을 볶으면 원두가 된다. 이 원두를 갈아서 물을 이용해 용해시켜 추출해 낸 용액이 바로 우리가 마시는 커피다. 커피를 재배하는 곳의 자연환경과 로스팅, 커피를 내리는 방법에 따라 향과 맛이 달라진다. 풍성하고 깊은 커피의 맛은 이 모든 것의 복합적인 결과물인 것이다. 커피나무는 적도를 중심으로 북위 25°와 남위 25° 사이 아열대 지역에서만 재배된다. 이 지역은 띠 모양을 이루는데 커피존 또는 커피벨트로 불린다. 커피는 신맛과 단맛 쓴맛을 가지고 있다. 커피나무가 재배되는 곳의 기후와 토양 종자 가공방법에 따라 맛이 서로 다르게 어우러져 커피의 맛과 향이 결정된다. 커피나무가 재배되는 지역은 라틴아메리카와 아프리카․아라비아, 아시아, 태평양으로 나뉜다. 지역별로 맛과 향이 다른 것은 앞서 밝힌 대로다.
커피를 최초로 발견한 에티오피아 칼디라에 따르면 목동이었던 그가 어느 날 염소들이 빨간 열매를 따먹고는 흥분하여 뛰어다니는 걸 보고서는 그 열매를 자신이 먹어 본 후 기분이 좋아지고 머리도 맑아지며 상쾌해지는 느낌을 받은 사실이 수도승에게까지 알려지면서 세계적으로 전파되었다. 커피는 이제 우리 일상 속에서 없어서는 안 될 기호식품이 되었다. 하루를 시작하는 아침에는 아메리카노를 마시고 날씨가 화창한 날에는 테라스에 앉아 카푸치노를 즐긴다. 때로는 졸음을 쫓기 위해 진한 에스프레소를 마시거나 식후에는 달달한 인스턴트커피를 마시기도 한다. 싱가포르 여행에서 우리나라 고속도로 톨게이트처럼 생긴 국경을 지나 말레이시아 커피농장을 찾은 적이 있다. 막 익기 시작한 열매를 조밀하게 매단 커피나무 군락지대를 지나 농막처럼 생긴 건물에서 커피열매가 음료로 제조되는 과정을 견학할 수 있었다.
가난에 찌들어 보이는 대여섯 아가씨들은 우리 방문객에게 향기로운 커피를 제공하는 대신 전통춤을 선보이고 있었다. 가이드는 관광객이 떠나면 농장 일에 매달려야할 그들과 기념사진까지 찍으라고 했었다. 오늘날 세계무역에서 커피는 원유 다음으로 물동량이 크다고 한다. 현재 커피의 연간 거래량이 750만 톤으로 하루 소비량은 27억 잔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하지만 커피가 유럽에 선보인 초기에는 너무 비싸 일반인들은 마시기 힘들었다. 커피가 경제사에 기록된 것은 525년 에티오피아가 예멘 지역을 침략했을 때 아프리카가 원산인 커피가 아라비아로 건너갔다고 본다. 커피라는 이름 자체가 에티오피아 커피 산지인 ‘카파’라는 지역 이름에서 유래된 것이라 한다. 다른 설은 이슬람교 창시자 무함마드가 졸음의 고통을 이기려 애쓸 때 가브리엘 대천사가 나타나 주고 갔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가브리엘 대천사가 주었다는 비약의 이름이 바로 카베였다.
인생 황혼에 들어선 지금도 하루에 서너 잔 커피를 마시며 무료함을 달랜다. 9세기에 이르러 최초로 이슬람 율법학자들이 커피를 먹었다는 기록이 전하는데 음료로 마신 것이 아니라 열매나 씨앗을 그대로 씹어 먹었던 것이다. 밤 기도 시간에 졸음을 쫓는 약으로 쓰였기에 이슬람권에서는 커피 씨앗의 유출을 막았다. 커피를 지키기 위해 이들은 싹이 터서 발아할 수 있는 종자가 아닌 열매를 끓이거나 볶아서 유럽행 배에 선적했다. 이러한 통제는 커피 가공법이 발달하게 된 계기가 되기도 했다. 그 바람에 커피 열매를 볶아서 갈아 마시는 방법이 고안되었고 이후 이슬람 율법학자들은 밤늦게까지 기도하며 신과 합일을 이루고자 각성제인 커피를 마셨다. 이슬람 사원에서만 한정적으로 음용되던 커피는 11세기에 이르러서야 일반 민중에까지 널리 애용되기 시작했다. 파란만장한 커피의 역사를 만나고 보니 노년에 마시는 한 잔의 커피가 얼마나 소중한지 알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