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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3장 바울의 1차 전도 여행 시작 및 구브로와 비시디아 안디옥 등지에서의 사역
구속사적 개관
본장은 넓게는 13:1-21:16까지 이어지는 바울을 중심으로한 전 3차의 이방 전도 여행 일련기사의, 그리고 좁게는 13:1-14:28에 기록된 바울을 중심으로한 제 1차 전도여행(A.D. 47-49년) 일련기사의 개시 부분이다. 이 바울의 전 3회에 걸친 전도 여행 기사는 과거 철저한 유대주의자로서 열렬히 복음을 탄압하던 바울을 회심시키시고 바로 그를 이제는 정반대로 순교(殉敎)의 위험을 무릅쓰고 그것도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하는 사명을 감당하게 하신 하나님의 오묘하신 섭리를 보여 준다. 또한 사도 바울의 그야말로 생명을 던진 철저한 헌신으로 주 예수께서 숭천하시면서 명령(commision)과 동시에 약속(promise)으로 남기셨던 말씀 곧 성령이 강림한 후에는 성령의 주도로 주의 사도들이 땅끝까지 이르러 주의 말씀을 중언함으로 복음이 세계 만민에게 전달되리라던 말씀(행 1:8)이 분명히 그리고 강력하게 성취되어 가는 과정을 생생하게 보여 준다.
이런 문맥하의 본장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초반부 1-3절은 바울 일행이 성령에 의하여 안디옥 교회로부터 이방인 선교를 위하여 파송 되었음을 간략히 보도한다. 중반부 4-12절은 선교 여행을 떠난 직후 첫 사역지인 구브로 곧 사이프러스(Cyprus) 섬 일대에서의 바울 일행의 사역을 보도한다. 그리고 후반부 13-52절은 구브로를 떠나 바보(Paphos)에서 버가(Perga)를 거쳐 비시디아 안디옥(Antioch in Pisidia)에 이르러 기존 유대교 회당(會堂, Synagogue)을 통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한 사실 및 그로 인해 많은 유대인과 유대교를 믿던 이방인들이 회심한 반면 유대주의자들과는 갈등이 심화되자 사도들은 그 동안의 선교 사역 성공에 더욱 큰 용기를 얻어 다시 새 사역지를 향해 이고니온으로 출발한 사실을 보도한다.
전반부 1-3절의 성령에 의한 바울과 바나바의 이방 선교 파송 기사는 우리에게 다시 한번 구속사의 주체는 사람이 아니라 삼위일체(三位一體) 하나님이라는 단순하지 만 절대적으로 중요한 사실을 새삼 확인시켜 준다. 본문은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복음을 이방인에게 본격적으로 전하기 시작한 것은 당시의 유대인 성도들이 계획하거나 결정한 것이 아니라 오직 성령이 무조건 명하신 것이었음을 분명히 보여 준다. 이는 전날 빌립 집사의 에디오피아 내시전도(행 8:26-40)와 베드로의 이방인 고넬료 전도(행 10:1-48)의 경우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이런 사건들은 모두 다 전날 스스로 타락한 인간의 구속의 법을 세우시고 또 이루신 것이 성부와 성자이셨듯이 이제 신약 시대의 구속의 복음을 선민(選民) 이스라엘의 후손인 유대인을 넘어서 땅 끝까지 이르게 사역하시는 분은 궁극적으로 성령임을 보여 준 것으로써 결국 태초부터 종말까지의 구속사의 주체는 삼위 하나님임을 확인시켜 주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처럼 불완전한 인간이 아니라 절대자이신 삼위 하나님이 이를 주도하시기에 우리는 구속사의 모든 계시와 약속을 절대 신뢰할 수 있는 것이다.
중반부의 구브로 전도 사역 기사는 무엇보다도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세상의 거짓 신들을 믿는 거짓 종교를 이기며 예수 그리스도의 종들은 헛된 신을 섬기는 자들을 이길 수 있음을 보여 준다. 우주와 역사를 초월하여 자존하시는 절대자는 오직 한 분 삼위일체 하나님 뿐이시다. 따라서 궁극적으로 신은 오직 한 분 삼위일체 뿐이시다(신 4:32-35; 고전 8:5,6). 다만 전역사를 걸쳐 각 지역에서 횡행하고 있는 온갖 거짓 신들은 인간의 눈으로 보기에는 신적 존재인 것처럼 보이나 기실은 사탄과 그를 따르는 귀신과 악령들이 어떤 방법으로든지 하나님을 거역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취하고 또 인간과 하나님을 이간(離間)하기 위하여 시도한 다양한 현현(顯現)에 불과한 것이다. 그러므로 당연히 예수 과리스도와 그분의 이름으로 나아가는 예수의 종들은 그런 거짓 신들을 이기는 것이다.
후반부 13-52절의 비시디아 안디옥의 유대교 회당을 중심한 선교 사역의 과정과 결과를 기록한 기사는 이와 관련된 전반적인 구속사적 배경 상황을 이해하여야만 사건의 전모와 그의 의가 충분히 파악된다. 즉 구속사의 시대가 구약 시대에서 신약 시대로 갓 이전된 이 당시에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한 구약의 율법 및 예언과 신약 복음의 관계 그리고 지금껏 구약 구속사의 주역(主役)이었던 선민 이스라엘의 후손인 유대인과 이제 주의 복음을 받아 새로이 신약 구속사의 주역으로 떠오르기 시작한 이방인들과의 관계가 아직 충분히 이해되지 않았었다. 더욱이 당시 선민 이스라엘의 후손인 유대인 대부분은 다음과 같은 유대교의 오류에 빠져 있었다. 먼저 그들은 구약(舊約) 우리 예수 그리스도의 초림과 구속 사역의 성취를 약속 예언한 것으로서 주의 초림으로 일단 성취된 것은 물론 주님이 다시 구약과 연결하여 자신의 재림과 구속 사역의 최종 실현인 천국 개시의 약속을 중심으로 새로이 주신 신약(新約)으로 성취 확장된 것이라는 구약의 본질을 올바로 깨 닫지 못했다. 그래서 구약 전체가 아니라 그 일부 내용에 다 인본주의 적 이 고 민족주의적인 유대인 자신들의 전승(tradition)까지 하나님의 말씀과 똑같이 받아들여 이를 유대교의 경전(經典)으로 삼았다. 그리고 하나님이 주시고자 계획한 구원이란 자신들 유대민족을 이 땅의 지배자 민족으로 만들어 땅위에 군림하게 만들어 주시는 것이라고 착각했다. 그 결과 그들은 구약의 성취로 오사 세계 만민을 위한 구속의 복음을 전파하시는 예수를 거부하였고 또 죽였을 뿐만 아니라 명백한 주의 부활과 승천도 부인하고 이제는 주의 구속의 복음을 믿는 초대 교회까지 핍박하였던 것이다. 그리고 이런 상황의 연장으로 본문에 기륵된 사건도 발생하였던 것이다. 이와같은 구약 시대가 신약 시대로 갓 교체된 이 시기에 구약을 왜곡한 유대교와 신 ․ 구약 전체를 계숭한 기독교가 벌였던 여러 가지 첨예(尖鏡)한 문제들을 두고 벌인 갈등 관계는 사도행전 전체는 물론 여러 신약서의 배경도 되고 있다. 따라서 이에 대한 전반적 고찰이 필요한 바 이에 대해서 행전 서론 특별자료 '기독교와 유대교의 관계'와 롬 제 11장의 연구자료 '이스라엘에서 세계 만민에로의 구속사의 확장'등을 참조하라.
다만 본장에서는 이처럼 신 ․구약에 대한 온전한 신학적 이해가 미비되고 또 유대교와 초대 교회가 갈등을 겪고 있었던 그 당시에도 유대인은 물론 유대교(the Judeism)를 신봉하던 이방인들조차도 순수하게 열린 마음을 갖고 있었을 때에는 예수의 사역과 그의 복음이 구약의 정통성을 계승한 것을 깨닫고 또 믿었던 반면 무조건 유대교를 고수하던 자들은 다만 시기(淸忌)로 바울을 추방시킨 사실에 주목하고자 한다. 이는 우리에게 먼저 예수의 복음은 그 자체가 진정한 마음으로 대할 때에는 수납할 수밖에 없는 참 진리임을 보여 준다. 그리고 나아가서는 언제나 진리에 대하여 순수한 자세로 열린 마음을 가져야 할 필요성을 깨닫는다(시 119:43). 그럴 때만이 진리가 나에게 다가 왔을 때 내가 그 진리에 동참하여 구원을 얻을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행 15:7-9).
이렇게 생각할 때 지금 이 순간 바로 나 자신이야말로 기독교 복음의 진정성을 바로 깨닫고 있는지 또 참으로 순수한 영혼을 갖고 있어서 복음의 진리를 날마다 더욱더 깨달아가고 있는지를 돌아보게 된다.
외울 말씀
36 다윗은 당시에 하나님의 뜻을 좇아 섬기다가 잠들어 그 조상들과 함께 묻혀 썩음을 당하였으되 37 하나님의 살리신 이는 썩음을 당하지 아니하였나니(행 13:36,37)
안디옥 교회의 바울과 바나바의 파송
1 안디옥 교회에 선지자들과 교사들이 있으니 곧 바나바와 니게르라 하는 시므온과 구레네 사람 루기오와 분봉왕 헤롯의 젖동생 마나엔과 및 사울이라
2 주를 섬겨 금식할 때에 성령이 가라사대 내가 불러 시키는 일을 위하여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 하시니
3 이에 금식하며 기도하고 두 사람에게 안수하여 보내니라
바울과 바나바의 구브로 사역
4 ○ 두 사람이 성령의 보내심을 받아 실루기아에 내려가 거기서 배 타고 구브로에 가서
5 살라미에 이르러 하나님의 말씀을 유대인의 여러 회당에서 전할새 요한을 수종자로 두었더라
6 온 섬 가운데로 지나서 바보에 이르러 바예수라 하는 유대인 거짓 선지자 박수를 만나니
7 그가 총독 서기오 바울과 함께 있으니 서기오 바울은 지혜 있는 사람이라 바나바와 사울을 불러 하나님 말씀을 듣고자 하더라
8 이 박수 엘루마는 (이 이름을 번역하면 박수라) 저희를 대적하여 총독으로 믿지 못하게 힘쓰니
9 바울이라고 하는 사울이 성령이 충만하여 그를 주목하고
10 가로되 모든 궤계와 악행이 가득한 자요 마귀의 자식이요 모든 의의 원수여 주의 바른 길을 굽게 하기를 그치지 아니하겠느냐
11 보라 이제 주의 손이 네 위에 있으니 네가 소경이 되어 얼마 동안 해를 보지 못하리라 하니 즉시 안개와 어두움이 그를 덮어 인도할 사람을 두루 구하는지라
12 이에 총독이 그렇게 된 것을 보고 믿으며 주의 가르치심을 기이히 여기니라
바울과 바나바의 비시디아 안디옥 사역
13 ○ 바울과 및 동행하는 사람들이 바보에서 배 타고 밤빌리아에 있는 버가에 이르니 요한은 저희에게서 떠나 예루살렘으로 돌아가고
14 저희는 버가로부터 지나 비시디아 안디옥에 이르러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가 앉으니라
15 율법과 선지자의 글을 읽은 후에 회당장들이 사람을 보내어 물어 가로되 형제들아 만일 백성을 권할 말이 있거든 말하라 하니
16 바울이 일어나 손짓하며 말하되 이스라엘 사람들과 및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아 들으라
17 이 이스라엘 백성의 하나님이 우리 조상들을 택하시고 애굽 땅에서 나그네 된 그 백성을 높여 큰 권능으로 인도하여 내사
18 광야에서 약 사십 년간 저희 소행을 참으시고
19 가나안 땅 일곱 족속을 멸하사 그 땅을 기업으로 주시고 (약 사백오십 년간)
20 그 후에 선지자 사무엘 때까지 사사를 주셨더니
21 그 후에 저희가 왕을 구하거늘 하나님이 베냐민 지파 사람 기스의 아들 사울을 사십 년간 주셨다가
22 폐하시고 다윗을 왕으로 세우시고 증거하여 가라사대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 내 뜻을 다 이루게 하리라 하시더니
23 하나님이 약속하신 대로 이 사람의 씨에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구주를 세우셨으니 곧 예수라
24 그 오시는 앞에 요한이 먼저 회개의 세례를 이스라엘 모든 백성에게 전파하니라
25 요한이 그 달려갈 길을 마칠 때에 말하되 너희가 나를 누구로 생각하느냐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라 내 뒤에 오시는 이가 있으니 나는 그 발의 신 풀기도 감당치 못하리라 하였으니
26 형제들, 아브라함의 후예와 너희 중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아 이 구원의 말씀을 우리에게 보내셨거늘
27 예루살렘에 사는 자들과 저희 관원들이 예수와 및 안식일마다 외우는 바 선지자들의 말을 알지 못하므로 예수를 정죄하여 선지자들의 말을 응하게 하였도다
28 죽일 죄를 하나도 찾지 못하였으나 빌라도에게 죽여 달라 하였으니
29 성경에 저를 가리켜 기록한 말씀을 다 응하게 한 것이라 후에 나무에서 내려다가 무덤에 두었으나
30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저를 살리신지라
31 갈릴리로부터 예루살렘에 함께 올라간 사람들에게 여러 날 보이셨으니 저희가 이제 백성 앞에 그의 증인이라
32 우리도 조상들에게 주신 약속을 너희에게 전파하노니
33 곧 하나님이 예수를 일으키사 우리 자녀들에게 이 약속을 이루게 하셨다 함이라 시편 둘째 편에 기록한 바와 같이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 너를 낳았다 하셨고
34 또 하나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저를 일으키사 다시 썩음을 당하지 않게 하실 것을 가르쳐 가라사대 내가 다윗의 거룩하고 미쁜 은사를 너희에게 주리라 하셨으니
35 그러므로 또 다른 편에 일렀으되 주의 거룩한 자로 썩음을 당하지 않게 하시리라 하셨느니라
36 다윗은 당시에 하나님의 뜻을 좇아 섬기다가 잠들어 그 조상들과 함께 묻혀 썩음을 당하였으되
37 하나님의 살리신 이는 썩음을 당하지 아니하였나니
38 그러므로 형제들아 너희가 알 것은 이 사람을 힘입어 죄 사함을 너희에게 전하는 이것이며
39 또 모세의 율법으로 너희가 의롭다 하심을 얻지 못하던 모든 일에도 이 사람을 힘입어 믿는 자마다 의롭다 하심을 얻는 이것이라
40 그런즉 너희는 선지자들로 말씀하신 것이 너희에게 미칠까 삼가라
41 일렀으되 보라 멸시하는 사람들아 너희는 놀라고 망하라 내가 너희 때를 당하여 한 일을 행할 것이니 사람이 너희에게 이를지라도 도무지 믿지 못할 일이라 하였느니라 하니라
42 ○ 저희가 나갈새 사람들이 청하되 다음 안식일에도 이 말씀을 하라 하더라
43 폐회한 후에 유대인과 유대교에 입교한 경건한 사람들이 많이 바울과 바나바를 좇으니 두 사도가 더불어 말하고 항상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있으라 권하니라
유대인들의 비방과 박해
44 ○ 그 다음 안식일에는 온 성이 거의 다 하나님 말씀을 듣고자 하여 모이니
45 유대인들이 그 무리를 보고 시기가 가득하여 바울의 말한 것을 변박하고 비방하거늘
46 바울과 바나바가 담대히 말하여 가로되 하나님의 말씀을 마땅히 먼저 너희에게 전할 것이로되 너희가 버리고 영생 얻음에 합당치 않은 자로 자처하기로 우리가 이방인에게로 향하노라
47 주께서 이같이 우리를 명하시되 내가 너를 이방의 빛을 삼아 너로 땅 끝까지 구원하게 하리라 하셨느니라 하니
48 이방인들이 듣고 기뻐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찬송하며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자는 다 믿더라
49 주의 말씀이 그 지방에 두루 퍼지니라
50 이에 유대인들이 경건한 귀부인들과 그 성내 유력자들을 선동하여 바울과 바나바를 핍박케 하여 그 지경에서 쫓아내니
51 두 사람이 저희를 향하여 발에 티끌을 떨어 버리고 이고니온으로 가거늘
52 제자들은 기쁨과 성령이 충만하니라
본문 & 자료노트
보감-13:1-3 안디옥 교회의 7대 특징
1. 그리스도의 복음에 기초한 교회(11:19-21)
2.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자라는 교회(11:23)
3. 그리스도인이라 불린 최초의 교회(11:26)
4. 형제들을 구제하는 일에 힘쓰는 교회(11:29)
5. 선교하는 교회(13:3)
6. 성령의 충만함이 있는 교회(13:1-3)
7. 이방 전도의 전초기지가 된 교회(13:1-3)
지도-13:4-52 전 3차에 걸친 바울의 전도 여행
본장 연구자료 참조
보감-13:6-12 바예수 엘루마가 소경이 된 사건을 통한 교훈
1.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는 반드시 사탄의 훼방이 있음(6,8절)
2. 성령이 충만할 때 사탄의 궤계를 물리칠 수 있음(9,10절)
3. 복음을 전파할 때 하나님의 권능이 함께함(11절)
4. 복음이 전파될 때 사탄이 반드시 패배함(11절)
5. 사탄의 훼방이 역으로 복음 전파에 유익을 주기도 함(12절)
지리배경-13:4, 구브로
안디옥 교회에서 복음 전도자로 파송받은 바울과 바나바가 첫 번째 전도여행의 시발점으로 삼은 곳이 바로 구브로(Cyprus)이다. 이곳은 바나바의 고향이기도 하다. 이에 간략히나마 구브로 섬의 지리적 ․ 역사적 배경에 대해 살펴봄으로써 초대 교회 시대의 이 도시의 중요성을 이해하는 데 보탬이 되고자 한다.
1. 이름과 위치
지중해에서 세 번째로 큰 섬인 루브로는 오늘날의 터어키인 길리기아 남쪽 74km, 시리아 서쪽 96km 지점에 위치해 있다. 구약 시대에는 수도 키티온(Kition)의 이름을 따서 '깃딜(Kittim)이라 불렸다. 오늘날 우리에게는 '키프로스'(Kypros)로 잘 알려져 있다.
2. 지리적 배경
구브로 섬은 그 길이가 224km에 달하며 그 폭은 96km 가량 된다. 길리기아와 시리아의 해안에 인섭해 있으며, 소아시아와 이집트 사이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역사와 문명에 있어 중요한 요충지였다.
구브로의 남서 지역은 산악지대인데, 제일 높은 산봉우리는 해발 1951m인 트루도스(Troodos)이며, 북동부에는 메조리아(Mesorea) 대평원이 있다. 오늘날 키프로스의 수도인 니코시아(Nicosia)가 이곳에 위치해 있다.
구브로는 비교적 농업과 목축이 발달하였으며 또 천연자원이 매우 풍부했다. 특히 구리(copper)가 유명했는데, '구브로'에 해당하는 헬라어 명의 뜻이 바로 '구리'라는 뜻일 만큼 일찍부터 광범위하게 구리가 채금되었다. 그리고 고대로부터 많은 꽃들과 과일로도 유명한 곳이 바로 이곳 구브로였다.
3. 역사적 배경
이 섬은 지중해의 전략적 요충지에 위치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구리와 재목에서 나오는 막대한 수입으로 오랜 기간동안 넓은 무역망을 가진 상업적 요충지로 인정받았다. 그래서 B.C. 58년 로마의 통치를 받게될 때까지 구브로는 계속해서 페니키아와 이집트의 정복을 받아 한때는 이집트 왕국의 일부가 되기도 했으며, 또 한때는 페르시아 제국의 일부가 되기도 했다. 또한 짧은 기간 동안이지만 로마의 통치 직전에 알렉산더 대왕의 통치 아래 놓이기도 하였다.
한편 구브로(Cyprus)는 1960년 8월에 영국의 식민 통치 하에서 독립하였다.
4. 관련 성경 기사
구브로에 유대인이 거주하기 시작한 것은 B.C. 320년경부터이다. 그리고 A.D. 30년경 유대파 그리스도인들이 유대교인들의 핍박을 피해 팔레스틴에서 이곳으로 이주해 와서 교회를 설립하였으며, 또 수리아 지역의 안디옥에 있는 이방인들에게 전도하여 최초로 이방인들을 중심으로 하는 교회가 세워지게 하는데 결정적인 공헌을 하였다(행 11:19,20). '안디옥'에 관해서는 행 11장 자료노트를 참조하라.
한편 A.D. 47-47년경 바울이 제 1차 전도 여행 중 구브로를 통과할 당시 이곳 관할 로마 총독은 서기오 바울(Sergius Paulus)이었는데 그에 대해서는 고대 문서와 로마 화폐를 통해서도 잘 나타난다.
도표-13:2,3 본서에 나타난 기도들
기도자(목적)
1. 제자들, 120문도: 오순절 성령의 임재 위에(1:12-14)
2. 열한 사도: 새 사도 선출에 앞서 하나님의 뜻을 구함(1:24,25)
3. 사도와 성도들: 담대한 복음 전도 위해(4:23-31)
4. 베드로와 요한: 사마리아인들에게 성령이 임재하시도록(8:15)
5. 교회 성도들: 옥에 갇힌 베드로를 의해(12:5,12)
6. 안디옥 교회 성도들: 바나바, 사울의 선교사 파송 위해(13:2,3)
7. 바울과 실라: 옥중에서 하나님 찬미(16:25)
8. 바울 일행과 두로 성도들: 하나님의 종의 안정 위해(21;4,5)
보감-13:2,4 본서에서 성령의 역사가 나타난 대표적인 경우들
1. 교회가 함심하여 기도할 때(2:4; 4:31) 2. 하나님의 종들이 애수 그리스도의 복음에 대해 변론할 때(4:8) 3. 초대 교회의 순수성 보전을 위해 권징을 베풀 때(5:3) 4. 하나님의 종들이 복음을 전파할 때(6:10) 5. 사도들이 믿는 자들에게 세례를 베풀 때(8:17)
6. 교회가 점점 왕성히 부흥할 때(9:31) 7. 선지자들이 예언할 때(11:28) 8. 선교사를 파송할 때(13:4) 9. 하나님의 섭리를 이룰 때(16:6,7) 10. 하나님의 종들로 하여금 환난과 핍박을 대비캐 하실 때(20:23) 11. 교회의 감독자를 임명할 때(20:28)
보감-13:4-52 바울의 선교 사역의 특징
사도 바울은 교회사에 등장한 인물들 가운데 가장 위대한 선교사이다. 그는 다메섹 도상에서 주님의 부르심을 받아 변화되었고, 연단과 훈련 등을 통하여 성장한 후 주님의 보내심을 받아, 이후 소아시아 및 유럽 지역에까지 복음을 전파하였다. 이 사도 바울의 복음 선교 사역의 특징은 다음과 같다.
1. 교회의 안수를 받음으로 권위를 인정받음(행 13:3)
2. 성령의 보내심에 순종하여 선교 사역을 시작함(행 13:4)
3. 부르심을 입은 다른 동역자들과 함께 복음 사역을 수행(행 15:40; 20:4)
4. 복음의 불모지부터 복음을 전함(롬 15:20)
5. 유대인들의 복음 거부로 이방인들에게 복음 전함(행 13:46-48)
6. 각 지역마다 교회를 세움(행 14:19-23; 19:1-10)
7. 각 교회마다 지도자를 세워줌(행 14:23)
8. 각 교회를 두루 방문하며 돌보아 줌(행 15:40,41)
9. 각 교회에 계속 관심을 갖고 서신으로 교육 훈계함(엡 1:1; 빌 1:1)
10. 여러 교회로부터 도움을 받지 않고 생업에 종사하며 사역함(행 18:3)
11. 자신이 가진 것들을 적절히 사용하며 사역함(행 16:36-39; 22:24-29)
12. 핍박과 환난에도 굴하지 않고 끝까지 복음을 전함(행 16:23-34)
역사배경-13: 14, 회당의 이해
본서 14권 신약 총론, '신약 시대의 사회 ․ 문화적 배경' 참조
보감-13:14-43 예배의 7대 요소
1. 말씀 봉독(행 13:15)
2. 말씀 선포(행 2:14-36)
3. 찬양(엡 5:19)
4. 기도(행 2:42)
5. 예물 봉헌(고후 8:1-15)
6. 성도의 교제(행 2:42)
7. 성찬식(행 2:46)
도표-13:16-41 바울의 설교 속에 나타난 하나님
1. 백성을 택하신 하나님(17절)
2. 백성을 높이신 하나님(17절)
3. 권능의 하나님(17절)
4. 인도의 하나님(17절)
5. 인내의 하나님(18절)
6. 승리의 하나님(19절)
7. 은혜의 하나님(19절)
8. 언약의 하나님(23절)
9. 구원의 하나님(26절)
10. 부활의 하나님(30절)
지도-13:4-14 구브로, 밤빌리아, 갈라디아의 위치
원어연구-13:18 소행을 참으시고
여기에 해당하는 헬라어는 '트로포포레오'인데, 이 단어는 '트로포스'와 '포레오'의 합성어이다.
먼저 '트로포스'는 '돌다' 즉 '회전하다'라는 뜻의 '트레포'에서 유래한 것으로서 '돌아서서 다시 제자리로 향하다'라는 의미를 가진다. 이에서 '동일하다'(행 15:11) 또는 '같다'(행 7:28)라는 의미가 파생되었다.
여기에서 더 의미가 확대되어 '반복적인 태도나 성향' 또는 '방법'(빌 1:18)을 의미하기도 한다. 본문에서 '소행'이란 이스라엘의 반복적인 범죄 행위 즉 '고질적인 죄악'을 가리킨다.
한편 '포레오'는 '짐을 지고 나르다'라는 뜻의 동사 '페로'에서 유래한 것으로서 '인내하다', '오랫 동안 견디다', '계속해서 짐을 짊어지고 있다'라는 뜻을 가진다.
그러므로 '트로포포레오'를 직역하면 '고질적인 죄악에 대해 오랫동안 참아 주다'가 된다. 하나님온 걸대 거룩하신 분이시기 때문에 죄를 가만히 보고 계신다는 것은 참으로 힘겨을 일일 것이다. 더옥이 한번의 죄도 아닌 계속해서 저지르는 고질적인 범죄에 대해 참는 일은 더욱 힘들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40년 동안 계속해서 범죄하는 것에 대해 참으셨다. 그것은 자기 백성들을 향한 하나님의 무한한 사랑이 아니고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이처럼 이 단어 하나를 통해서도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이 얼마나 큰가를 새삼 발견하게 된다.
도표-13:42-52 바울과 바나바의 비시디아 안디옥 선교 결과
1. 기독교인
1) 하나님의 말씀 듣기를 사모하게 됨(42절)
2) 바울과 바나바를 좇는 자가 많이 생김(43절)
3) 온 성안 사람들에게 복음이 전파됨(44절)
4) 하나님의 말씀을 찬송하며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자는 다 믿음(48절)
2. 유대교인
1) 이방인 무리를 보고 바울을 시기함(45절)
2) 바울의 선교를 변박하고 비방함(45절)
3) 사람들을 선동하여 바울과 바나바를 핍박하며 좇아냄(50절)
4) 끝내 구원의 복음을 받지 못함(51절)
보감-13:44-49 능력있는 설교의 10대 유익
1. 세상 삶에서 하나님만 의지케 함(시 119:105,133)
2. 영육 간에 새 힘을 얻게함(렘 15:17)
3. 죄악된 모습을 바로 보게함(눅 11:32)
4. 참된 진리를 알고 분별케 함(요 8:32)
5. 심령을 변케하여 믿음을 얻게함(행 8:29-39)
6. 하나님 말씀을 진정 사모하게 함(행 13:44)
7. 복음 전파에 열심을 갖게 함(행 13:49)
8. 하나님의 소명으로 무장케 함(엡 3:8)
9. 소망 중에 믿음 위에 굳건히 서게함(골 1:23)
10. 세상에 대해 미련을 갖지 않고 천국을 사모하게 함(골 3:1,2)
신학용어-13:42, 안식일
신 5장 자료노트 참조
주요주제-13:44-49 이스라엘에서 세계 만민에로의 구속사의 확장
롬 11장 연구자료 참조
13:1-3 제 1차 전도 여행의 준비와 파송
본장에서부터는 사도행전의 전반기 기록이 끝나고 새로운 선교의 역사가 시작된다. 즉 행 1-7장까지에서는 성령 강림으로 시작된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한 교회 의 태동과 성장을 베드로의 사역을 중점적으로 해서 기록했었으며, 다음으로 8-12장까지에서는 예루살렘 교회가 유대교의 대대적인 박해로 인해 복음이 예루살렘에서 유대와 사마리아 및 팔레스틴 근경 지역으로까지 확산됨과 동시에 본장 이후에서부터 전개될 이방 세계에로의 복음 전파를 용이하게 하기 위한 준비를 갖추는 과정을 언급했었다. 이제 본장에서부터 마지막 장까지에서는 이방 지역에 설림된 안디옥 교회를 중심으로 해서 복음이 아시아와 유럽 및 로마를 통해 땅 끝까지 전파되는 과정을 바울의 사역을 중점으로 해서 소개한다. 물론 당시의 복음 전파 사역이 단지 바울에 의해서만 이루어지지는 않았다. 전숭에 의하면 베드로는 로마에서 선교하다가 거기서 순교하였다고 하며 사도 안드레는 헬라, 소아시아 등지에서 그리고 도마는 페르시아, 인도 등지에서 각각 선교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외에도 여러 사도들과 흩어진 성도들에 의해 복음은 유대와 사마리아를 거쳐 점차 이방 세계로 전파되어 나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 누가가 본서의 후반부에서 바울의 사역만을 중점적으로 해서 소개하고 있는 것은. 자신이 사도 바울과 전도 사역에 함께 했을 뿐 아니라 바울의 전도 사역이 복음이 땅 끝까지 전파되는 과정을 가장 분명하게 보여 주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의 마지막 지상 명령(행 1:8)대로 이미 얘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에 전탁되었으며 이제 마지막으로 '땅 끝'을 향하여 선교의 발걸음을 내딛는 순간이 다가온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본문은 바울의 제 1차 전도 여행 준비 과정 및 파송을 소개하고 있는데 그 중심 내용은 다음과 같다.
첫째는 선교의 출발지와 파송지가 안디옥 교회라는 사실이다(1절). 안디옥 교회는 이방인들을 주축으로 한 교회로 유대주의적 편견으로 인해 이방인에게 배타적인 예루살렘 교회보다는 이방 선교에 더 적합했다. 그리고 로마 제국 내에서 로마, 알렉산드리아 다음으로 큰 도시로 지정학상으로도 동양과 서양을 연결하는 요충지에 자리 잡고 있어서 이방 선교에 더욱 용이했다. 더구나 안디옥 교회는 복음을 영접한 이후 급성장하여 모교회인 예루살렘 교회에 구제금을 보내는 등 신앙에 대한 열심과 성도들에 대한 사랑이 헌신적인 곧 선교에 적합한 모습을 갖추고 있었다. 그래서 성령께서는 안디옥 교회를 이방 선교의 전진기지로 준비하시고 여기에서 바나바와 바울을 선교사로 훈련시키신 것이다.
둘째는 선교사를 파송한 일꾼들의 준비이다(1-3절). 안디옥 교회의 주요 일꾼들은 바나바와 바을 외에도 다양한 인물들로 구성되어 있었는데. 그들은 교회를 훌륭한 신앙 공동체로 이끌어 가고 있었다. 더구나 이들은 교회를 금식과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뜻대고 운영하였으며 바나바와 바울을 선교사로 파송할 때에도 온 성도들과 합심하여 금식과 기도로 준비하는 등 모든 일에 있어서 전적으로 성령의 역사에 의존하였다. 안디옥 교회는 선교사를 파송하는 데에 있어서 가장 적합한 자질을 갖추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셋째, 안디옥 교회는 바나바와 바울을 선교사로 파송하였다(3절), 바나바와 바울은 안디옥 교회의 중심적인 지도자들로서 실질적으로 목회를 담당하고 있었지만, 안디옥 교회는 눈앞에 보이는 교회 유익에 급급하지 않고 더 넓은 세계 선교를 위하여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며 선교사로 파송한 것이다. 사실 바나바와 바울은 안디옥 교회의 목회자로도 훌륭하였지만 선교를 위해서는 더욱 중요하고 적합한 인물이었다. 바나바는 이미 예루살렘 교회에서부터 인정을 받은 성령이 충만한 인격자였고(행 4:36; 11:22-24) 바울을 키운 후견인이었다. 또한 바울은 이미 이방인의 사도로 택하심을 받은 자인 것이다(행 9:15). 한편 본문을 보면 바나바와 바울을 선교사로 택한 이는 안디옥 교회가 아니라 바로 성령이셨는데(2절), 이는 이후 이방 선교 사역이 전적으로 성령의 주도하에 진행될 것임을 암시한다. 그러므로 안디옥 교회의 선교사 파송은 모든 것이 하나님의 뜻대로 이루어진 선한 사역으로 모범적인 선교사 파송의 모습을 교훈해 준다.
13:1 안디옥 교회에. - '안디옥 교회'란 '안디옥에 있는 교회'를 뜻한다(행 11:26). 여기서 '교회'(에클레시아)란 명칭을 사용한 것은 안디옥 교회가 예루살렘 교회와 같이 강력한 조직력을 갖춘 교회로 성장했음을 가리킨다. 그런데 본장 첫머리에서 이러한 안디옥 교회를 특별히 명시하고 있는 것은 지금까지 베드로를 중심으로 유대 지역 전도를 담당했던 예루살렘 교회와 더불어 이제 바울을 중심으로 이방 전도에 앞장설 안디옥 교회의 중요성을 일깨워 주기 위함이다.
선지자들과 교사들이 있으니. - 초대 교회 당시 중요한 직책 중 하나였던 '선지자'에 관해서는 행 11:27 주석을 참조하라. 한편 초대 교회 당시 선지자와 교사의 직무는 어느 정도 구별되었다. 선지자는 성령의 능력을 입어 예언하고 설교하며 때로는 교회를 다스리기도 했지만, 교사는 가르치는 은사를 받아 말씀을 연구하고 그 깨달은 바로써 사람들을 가르치는 일을 감당하였다. 그러므로 선지자는 교사의 직분을 수행할 수 있었으나 교사는 선지자의 직분을 담당할 수 없었다.
바나바와‥‥사울이라. - 바나바와 사울에 대해서는 행 11장 연구자료, 롬 1장 연구자료를 참조하라. 여기서 바나바의 이름이 먼저 나오고 사울의 이름이 뒤에 언급된 것은 바나바가 사울보다 신앙 연륜이 더 오래되었기 때문이거나 아니면 당시에는 아직 바나바가 사울보다 더 지도적 위치에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행 11:30 주석 참조. 한편 '니게르라 하는 시므온'이란 표현은 로마식과 유대식 이름이 결합된 형태로 '니게르'는 흑인(negro)이란 뜻이다. 어떤 주석가들은 그가 예수의 십자가를 진 구레네 시몬(눅 23: 6)이라고 주장하나(Spitta) 확실한 증거가 없다. 그러므로 단지 그는 아프리카 출신의 개종자라고 보는 것이 바람직하다(Alford). 다음으로 루기오(Lucius)란 이름의 뜻은 '빛'이다. 이외 그의 인적 사항에 대해서는 달리 알려진 것이 없다. 혹자는 이를 바울의 친척 누기오(Lucius, 롬 16:21)로 보기도 하는데(Lumby) 확실치 않다. 한편 여기서 '젖 동생'(쉰트로포스)은 '함께 길러지다', '함께 양육받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이 말은 마나엔의 어머니가 분붕왕 헤롯, 즉 세례인 요한의 목을 베고 예수님을 심문하며 조롱했던 헤롯 안디바(마 14:1-12; 눅 23:7-12)의 유모였을 가능성을 시사해 준다. 아울러 이러한 사실은 헤롯과 어떠한 식으로든 연관이 있는 마나엔의 신분을 말해 주고 있는 것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일반 민중들에게 뿐만 아니라 당시 상류층에도 알려졌음을 증거해 준다.
13:2 주를 섬겨 금식할 때에. - '주를 섬기다'는 말은 구약에서 제사장들이 성막에서 봉사의 일을 수행했던 사실을 묘사하는 것으로 자주 사용되었고(출 28:35,43), 신약에서는 교회의 총적인 예배 행위를 표현하는 단어로 자주 사용되었다(눅 1:23; 롬 15:27). 그러므로 공동 번역은 된절을 '단식을 하며 주님께 예배드리고 있을 때에'라고 번역하고 있다. 한편 행 27:9에 의하면 유대인들은 신약 시내에도 정규적으로 날을 정 해 놓고 금식하였음을 알 수 있다. 그렇지만 기독교인들에게 있어서는 그러한 금식이 의무 사항은 아니었다. 고럼에도 불구하고 저들이 금식을 했던 이유는 어떠한 일을 놓고서 하나님의 온전한 인도를 구하기 위해서였던 것 같다. 삼하 1장 자료노트 '금식을 하는 바른 이유' 참조.
성령이 가라사대 내가 불러 시키는 일을 위하여. - 선지자들촤 교사들이 교회에서 그들에게 맡겨진 사역을 감당하며 하나님께 예배드리고 있을 때 성령께서 특별한 계시를 주셨다. 그런데 성령께서 어떠한 방법으로 계시하셨는지에 관해서는 언급이 없으니 고 방법 여부를 알 수는 없다. 하지만 계시의 내용은 사울이 회심할 때 환상과 계시를 통해 성령께서 이미 예고한 이방 세계에 복음을 전하라는 사명과 관계된 것인것 같다(행 9:15).
따로 세우라. - 바나바와 사울에 대한 하나님의 특별한 소명(召命)을 나타내 주는 말이다. 즉 '따로 세우라'(아포리사테)는 말은 '경계' 또는 '범위'를 구분하라는 말로서, 바나바와 사울이 특수한 사역을 위해 하나딤 앞에서 성별되어 이방인의 사도가 되어야 할 것을 의미한다.
13:3 이에 금식하며‥‥안수하여 보내니라. - 이제 본절에서부터 행 14장까지에서는 바울의 제 1차 전도 여행이 언급된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안디옥 교회는 바나바와 사울을 이방인의 사도로 구별하여 파송을 한 것이다. 이러한 바울과 바나바의 제 1차 전도 여행은 A.D. 47-49년 사이에 이루어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하여튼 여기서 '안수하여'란 말은 성령께서 명령하신 선교 사역을 수행하도록 바나바와 사울을 성별하여 사명을 맡겼음을 표하는 의식 행위를 가리킨다. 창 48장 자료노트, '안수' 참조. 이러한 본절을 통해 우리는 그 근본 정신과 의미를 받드는 교회의 거룩한 예식이 얼마나 중요하고 필요한 것인가를 느낄 수 있다. 그런데도 오늘날 일부 교회가 그러한 교회 예식을 간과하거나 그 근본 정신을 망각해 버리는 경우가 흔히 있는데, 마땅히 지양해야 할 태도이다. 한편 사도 바울과 바나바의 1차 전도 여행의 여정에 대해서는 본장 연구자료를 참조하라.
13:4-12 구브로에서의 전도 사역
본문에서부터는 드디어 바울의 제 1차 전도 여행(행 13:4-14:28)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는데, 그 가운데 본문은 바울과 바나바의 구브로 지방에서의 전도 사역을 소개하고 있다. 안디옥 교회로부터 파송받은 바울과 바나바(1-3절)는 안디옥 서남쪽, 지중해 동북쪽에 위치한 구브로 섬을 첫 선교지로 정하고 복음을 전하였다(4절). 이곳은 바나바의 고향이기도 한 곳(행 4:36)으로, 헬라인 거주지였지만 유내인이 많이 살고 있어 유대인의 회당이 여러 개 있었다. 그래서 두 전도자는 회당을 중심으로 복음 전파 활동을 펴나갔는데. 이는 여호와 신앙을 가지고 있어 복음 증거에 용이한 유대인들에게 먼저 복음을 전하고 차츰 자연스럽게 이방인들에게까지 복음을 증거하기 위함이었다. 한편 바울과 바나바의 1차 전도 여행 시에 마가 요한이 함께 동행했는데, 그는 아마도 예루살렘 교회에서 파송되어 바울과 바나바를 도와 안디옥 교회를 섬기다가 1차 전도 여행 시에 함께 동행하게 된 것 같다(5절).
한편 이러한 구브로 전도 사역에서 우리가 주목할 만한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는 사도 바울이 박수 엘루마에게 능력을 행한 것이다(6-11절). 이 박수 엘루마는 거짓 선지자요 사술을 행하는 자로 미신을 퍼뜨리고 사람들을 미혹하였으며 또한 바나바와 사울의 전도 사역을 힘써 방해하였다. 이 박수 엘루마를 사도 바울이 성령의 능력으로 소경되게 함으로써 복음이 참된 하나님의 말씀임을 입증시킨 것이다. 둘째는 성령의 능력을 본 구넌로의 총독 서기오 바울이 주의 복음을 영접하게 되었다는 것이다(12절). 이 총독은 이방인의 대표를 상징하는데 그가 바울의 이방 선교의 공식적인 첫 개종자가 되었다는 것은 이제 성령의 능력과 복음 전파로 인하여 세계 선교가 이루어질 것을 예시해 준다.
이외에 본문에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는데, 첫째는 히브리식의 사울의 이름이 로마식의 바울로 개명되었다는 사실이다(9절). 이는 바울의 생애가 새로운 전환점을 맞이했음을 보여 주는 것으로 바울이 이방인의 사도가 되었음을 알리는 표긱이라 하겠다. 9절 주석 참조. 둘째는 구브로에서 처음 행한 전도 사역에꺼 바울은 거짓 영을 분별하고 성령의 능력을 행하게 되었는데, 이는 바울의 선교 사역을 하나님께서 인준하신다는 표징으로 바울은 아마도 이로 인하여 앞으로 전개되 그의 전도 사역이 성공적으로 수행될 것을 확신했을 것으로 여겨진다. 셋째로 구브로 전도에서 전도의 주역은 역시 성령이셨는데, 이는 인간은 성령의 조력자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 순다.
13:4 실루기아에 내려가. - 안디옥 교회로부터 파송 받은 두 사람은 실루기아(Seleucus)로 갔다. 실루기아는 수리아의 한도시로서 안디옥에서 서쪽으로 약 25km 떨어진 항구 도시였다. 이 도시는 안디옥과 함께 B.C. 301년 셀류쿠스 1세(Seleucus Nicator)에 의해 건설되었는데, 이 곳은 당시 중동과 소아시아 그리고 유럽을 연결하는 중요한 항구였다(Whitelaw).
배 타고 구브로에 가서. - 구브로(Cyprus)는 지중해에서 상당히 중요한 지리적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섬으로서, 바나바의 고향이기도하다(행 4:36). 구브로에 관해서는 본장 자료 노트를 참조하라. 당시 구브로에는 많은 유대인들이 살고 있었고 그들 중 일부가 복음을 이미 받아들인 상황이었는데, 안디옥 교회의 성도 중 적지 않은 수가 이곳 출신이었다(행 11:19,20). 이러한 요인들이 바나바와 사울로 하여금 첫 선교 대상지로 구브로를 선택할 수 있도록 작용했던 것으로 보인다. 즉 이 기회를 통하여 두 사람은 그곳에 살고 있는 헬라인과 유대인들에게 복음을 전하고자 했던 것이다.
13:5 살라미에 이르러‥‥여러 회당에서 전할새. - 살라미(Salamis)는 간브고의 동쪽 해안에 위치한 도시로서, 이 도시는 구브로에서 가장 큰 도시임과 동시에 통치 중심지였다. 아울러 이곳에는 유대인이 특히 많이 살고 있었기 때문에 유대인의 회당이 여러 개 있었다. 회당(synagogue)에 관해서는 본서 14권 신약 총론, '신약 시대의 사회 ․ 문화적 배경'을 참조하라. 한편 본서에 나타난 바나바와 바울의 전도 특징을 살펴볼 것 같으면, 그들은 언쩨나 방문한 도시의 유대인 회당을 먼저 찾아가서 복음을 전파했다(행 13:14; 14:1; 17:1,10,17; 18:4,19; 19:8). 이러한 그들의 태도는 매우 현명한 것이었다. 왜냐하면 첫째 당시 회당은 유대인들이 여호와 신앙을 고수하던 처소로서 각종 집회 장소로 활용하기 쉬웠으며, 둘째 그곳에 모인 유대인들이 이미 구약 성경과 여호와 하나님에 대하여 잘 알고 있었기에 복음을 증거하는 것이 용이하였다. 그리고 셋째 이를 기틀로 삼아 이방인들에게도 자연스럽게 복음을 중거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요한을 수종자로 두었더라. - 여기서 '요한'은 바나바의 생질인(골 4:10) 마가 요한을 가리킨다. 행 12:12 주석 참조, 그런데 그가 바나바와 사울을 도와 구체적으로 어떠한 일을 감당했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새로운 개종자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가르치고 세례베푸는 일을 도우는 등(고전 1:14-17). 그가 할 수 있는 모든 방면에서 엘리야를 수종든 엘리사(왕상 19:19-21)처럼 바나바와 사울을 도왔던 것으로 보인다(Lumby).
13:6 온 섬 가운데로 지나서 바보에 이르러. - 바보(Paphos)는 살라미에서 서쪽으로 약 180km 떨어진 곳으로서, 이곳은 흔히 비너스 신 숭배로 유명했던 인근의 '구바보'(Old Paphos)와 구별하기 위해 '신바보'(New Paphos)로 불려졌다. 당시 이곳에는 로마 총독의 관저가 있었을 뿐만 아니라 수리아의 여신 파피안(Paphian)을 숭배하기 위한 아프로디테(Aphrodite) 신전이 있었다. 한편 바나바와 사울 두 사람이 '온 섬 가운데로 지났다'는 표현은 그들이 구브로 섬의 모든 마을을 순회하며 전도했다는 것을 시사한다. 바예수라 하는… 박수를 만나니. - 당시 이방인들 가운데 흩어져 살던 유대인들 중에는 상당수가 여러 가지 미신에 빠져 있었던 것 같다. 본절의 '바예수'도 정통 유대인으로 그 이름이 '여호수아의 아들'이라는 뜻을 갖고 있었으나, 그는 사람들을 미혹시키는 거짓 선지자이자 '박수'(마고스), 즉 '마술사'였다. 율법에 따르면 박수는 반드시 죽여 공동체 가운데서 제하도록 규정되어 있다(레 20:27; 신 18:11). 그런데도 유대인들이 저를 용납한 것은 저에게 미혹당하였음을 시사해 준다.
13:7 서기오 바울은 지혜있는 사람이라. - 구브로는 B.C. 57년에 로마에 합병되었고, B.C. 27년에는 단독 지방(道)으로 승격되어, 로마 황제 아구스도(Augustus)를 대신하는 로마 총독의 지배를 받았다. 서기오 바울(Sergius Paulus)은 이 당시 구브로를 지배하고 있던 로마 총독이다. 그런데 박수 바예수가 이 서기오 바울과 함께 있었다는 것은 그가 총독의 수행원으로 '궁중 마술사'의 역할을 맡았다는 것을 암시한다. 하지만 서기오 바울은 바예수의 가증하고 허황된 미혹을 뿌리치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자 하는 지혜로운 사람이었다. 이는 그가 바나바와 사울이 바보에 도착하기 전에 이미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 대해서 관심을 갖고 있었다는 것을 시사해 준다.
13:8 박수 엘루마. - 본명은 바예수(Bar-Jesus)이다(6건). '엔루마'(엔뷔마스)는 헬라어로서 '점성가', '마술사', '박수'라는 뜻이다. 저희를 대적하여 총독으로 믿지 못하게 힘쓰니. 박수 바예수는 총독 서기오 바울이 복음을 받아들이지 못하도록 모든 방법을 동원하여 방해하였다. 그는 총수의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새로운 신앙을 갖게 되면 자신의 직책이 위태롭게 된 것을 이미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도 가증하고 허황된 술책과 속임수로 우리들을 혼란시키는 사단의 세력이 도처에 잠재하고 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수호하고 그분의 영광에 동참하기 위해서는 매순간 이러한 세력들과 싸워 승리해야 할 것이다.
13:9 바울이라고 하는 사울이. - 누가는 간단한 이 문구를 통하여 사울(Saul)의 생애가 바야흐로 새로운 전환점에 들어섰음을 알리고 있다. 이제 바울(Paul)이라는 이름이 처음으로 언급되어 이후 계속 사용되는데, '사울'은 '(하나님께) 간구하다'란 뜻이며 '바울'은 '작은 자'란 뜻이다. 그런데 어떤 주석가들은 바울이라는 이름이 서기오 바울의 회개와 관련되어 이 때 지어진 로마식 이름이라고 주장한다(Bengel, Meyer). 그러나 이는 사울이 원래 가진 이름을 누가가 이때부터 사용했다는 주장이 더 타당하다(Ramsay, Vincent). 왜냐하면 당시 로마 지배하에 있던 유대인들은 유대식과 로마식의 두 가지 이름을 가지는 것이 흔한 일이었기 때문이다(1절; 행 1:23; 12:25). 더욱이 비록 유대인으로 태어났지만(행 22:3) 나면서부터 로마 시민권을 갖고 있었던(행 22:27-28) 사울이 두 가지 이름을 가지고 있었다고 보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므로 누가는 유대식 이름인 '사울' 대신 로마식 이름인 '바울'이라는 이름의 구체적인 명시를 통해서 이제 바울이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파하는 일꾼으로 준비된 모습을 강조하고 있다고 하겠다.
성령이 충만하여. - 성령의 충만한 역사는 본서의 전체 주지(主旨)이다. 사단의 세력을 제압하기 위해 바울은 성령의 능력을 덧입어 전력을 기울이고 있는데, 하나님의 일을 행할 때 성령의 도우심과 인도하심을 받는 것은 가장 기본적인 자세이다. 왜냐하면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악의 영들에게 대함'(엡 6:12) 이니 하나님의 권능을 힘입지 아니하고서는 패배할 뿐이기 때문이다.
13:10 모든 궤계와 악행이 가득한 자요. - 하나님의 말씀 전파를 훼방하는 바예수에게 격렬한 책망과 무서운 저주가 선언되고 있다. 여기서 '궤계'(돌로스)는 '물고기의 미끼', '어떤 속임', '속이려는 욕망이나 의향'을 뜻한다. 그리고 '악행'(라디우르기아스)은 '악을 행함에 있어 거리낌없이 자행하는 것'을 뜻한다. 이 단어들은 바예수의 마음과 행동이 얼마나 패역하고 부패했는가를 잘 나타내주고 있다.
마귀의 자식이요 모든 의의 원수여. -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복음 전파를 방해하는 바예수는 바울로부터 이처럼 마귀의 자식이라고 저주받았다. 이 '마귀의 자식'이란 말은 요 8:44에서 예수께서 바리새인들에게 말씀하신 저주와 유사한 것으로서 '중상모라자'(디아볼로스)와 같은 뜻이다. 다음으로 '모든 의에 대한 원수'라는 말은 '나쁜짓만 골라가면서 하는 악당'(공동번역)이란 뜻으로 이 역시 바예수가 모든 측면에서 완전히 부패했음을 나타내 준다. 한편 오늘날에도 바예수와 같이 하나님을 모욕하고, 복음을 전파하는 자들을 공공연하게 대적하고 방해하는 악한 세력들이 많이 존재하는데, 우리는 이러한 세력들에 대해서 하나님의 말씀에 의거하여 단호하게 대처해야 할 것이다. 주의 바른 길을 굽게 하기를. - 여기서 바울이 말하는 '주의 길'이란 하나님의 올바른 인도 내지는 생명으로 인도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바예수가 이것을 왜곡하고 있다는 것은 곧 그가 바나바와 바울의 복음 전파 사역을 훼방하고 있는 것을 가리킨다. 그런데 그같은 마귀의 간계는 오늘날에도 곳곳에서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함과 그분의 인도하심을 받는 것을 방해하고, 미혹케 하고 있으니 삼가 경성해야 할 것이다(벧전 5:8).
13:11 주의 손. - 성경에서 '주의 손'은 대개 두 가지 의미로 쓰인다. 첫째는 본절에서와 같이 하나님의 심판을 의미하며, 둘째는 하나님의 권능과 보호하심이다(행 11:21). 사도 바울은 이 '손'이 바예수에게 일격을 가하는 것으로 묘사하는데, 이것은 바예수를 직접 심판하는 분이 하나님이시고 자기는 대리인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밝히고 있는 것이다.
네가 소경이…어두움이 그를 덮어. - 이것은 바울이 행한 첫 번째 이적으로서 복음전파시 유대인과의 첫 충돌로 이루어진 사건이다. 그런데 '얼마 동안 해를 보지 못하리라'는 말은 바예수가 일정한 기간 동안에만 소경이 되고 그 후에 다시 보게될 것을 의미한다. 이렇게 형벌의 기간을 제한한 것은 회개의 여지를 배려한 교정적(矯正的)인 응징으로서 죄인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게 해준다. 이러한 바울의 첫 기적은 다메섹 도상에서 자신이 초자연적 현상에 의해 눈이 먼 것과 유사한 바(행 9:8,17,18) 바울은 이를 통해 과거 자신의 체험을 회상했을 것이다. 한편 여기서 '안개'(아클뤼스)라는 말은 백내장 등의 질병으로 인해 눈이 어두워지고 흐려지는 것을 뜻하는 의학 용어이다(Hervey).
13:12 이에 총독이…기이히 여기니라. - 바울이 박수 엘루마에게 선언한 심판이 즉시 임하는 것을 목격한 총독 서기오 바울은 놀라움에 사로잡히고 말았다. 그런데 총독이 이렇게 큰 충격을 받게 된 것은 하나님의 심판에 대한 두려움 뿐만이 아니라 바울이 전해준 복음의 진리가 너무나 심오했기 때문이었다. 즉 그는 이적과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말미암아 자신이 그 동안 세상의 헛된 우상 숭배의 올무에 빠져 있었음과 또한 진리가 무엇인지를 분명히 깨닫게 된 것이다. 한편 본절에서는 총독이 고넬료의 경우와 같이 세례를 받았다는 직접적인 언급은 없다. 그러나 사도행전 전체의 문맥에서 '믿으며'(에피스튜센)라는 말이 예수를 자기의 구주로 영접하여 그리스도인이 되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을 볼 때(행 2:44; 4:4; 8:12,13; 11:21; 19:18), 총독의 개종했다는 사실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Earle). 한편 총독 서기오 바울은 이방인의 대표를 상징하는 인물로 그가 바울의 이방 선교계 의한 공식적인 첫 개종자가 되었다는 것은 이제 성령의 능력으로 인하여 복음이 세계로 확산될 것을 제시해 준다.
13:13-43 비시디아 안디옥에서의 전도 사역
구브로에서의 전도 사역을 언급한 전단락(4-12절)에 기사 본문은 비시디아 안디옥에서의 전도 사역을 소개하고 있다. 이러한 본문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뉜다.
먼저 구브로 선교 이후의 선교 현황을 언급하고 있는 부분이다(13,14절). 바울과 바나바 일행은 구브로 섬의 바보에서 출항하여 밤빌리아의 버가에 이르렀는데 이때에 마가 요한이 선교 여행을 중도에 포기하고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는 사태가 발생한다. 어떤 이유인지 알 수 없지만 나중에 요한의 동행 문제가 바울과 바나바가 갈라지는 원인이 된 것으로 보아 바울은 마가 요한의 귀환에 매우 실망한 것 같다(행 15:37-39). 그러나 어쨌든 바울과 바나바는 흔들리지 않고 전도 여행을 계속하여 비시디아 안디옥에서 복음을 전파하게 된다.
다음으로 바울이 비시디아 안디옥의 회당에서 설교를 통해 복음을 증거하는 장면이다(15-41절). 여기서 바울의 설교에 나타난 특징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① 베드로의 설교(행 3:13-26)나 스데반의 설교(행 7:2-53)와 같이 이스라엘 역사에 나타난 하나님의 섭리와 언약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메시야되심을 선포한다. 즉 출애굽 이후 이스라엘의 구속 역사를 통하여 다윗의 자손으로 언약된 메시야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며 그분의 죽음과 부활이 우리의 구원을 이루셨다는 것이다. ②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는 이신득의(以信得義) 사상이 나타난다(39절). 이후로 이신득의 사상은 바울 신학과 기독교 신앙의 제일 원리가 되었다(롬 1:17; 3:28; 갈 2:16). ③ 바울은 구약 역사에 나타난 하나님의 섭리와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을 접목시킴으로 예수님의 신성과 메시야되심을 강조했는데, 이것은 또 한편 선민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구원 섭리와 역사를 분명히 하는 것으로서 바울이 이방의 사도로 부름받기는 했지만(롬 11:13) 강한 민족애와 하나님의 궁극적인 뜻을 바탕으로 '먼저는 유대인에게 다음은 이방인에게'라는 선교의 기본 전략(롬 1:16)을 지니고 있었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마지막으로 바울의 설교를 들은 청중들의 반응을 언급하고 있는 부분이다(42,43절). 즉 바울의 설교는 청중들에게 감동을 주어 많은 사람들이 복음을 받아들이는 역사가 일어났다. 이것은 성령의 역사로 바울과 바나바의 전도 사역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져가고 있음을 보여 주는 것이다.
13:13 바울과 및 동행하는 사람들이. - 여기에서부터 바울의 이름이 행 14:14; 15:12,26를 제외하고는 바나바보다 앞서 언급이 된다. 이처럼 바나바와 바울의 이름의 위치가 뒤바뀌어 기록된 것은 본서 저자 누가가 구브로에서 바울이 행한 이적과 전도 실적 결과, 선교사역에 있어 바울이 자연스레 지도자적 위치에 서게된 것으로 평가하였기 때문일 것이다. 한편 여기서 '동행하는 사람들'이란 표현은 이번 전도 여행에 있어 바울과 바나바, 마가 이외에도 수행자가 더 있었음을 시사해 준다.
밤빌리아에 있는 버가에 이르니. - 밤빌리아(Pamphylia)는 북쪽은 타우르스(Taurus) 지방, 서쪽은 루기아(Lycia), 동쪽은 길리기아(Cilicia), 남쪽은 지중해로 둘러싸인 소아시아 남부 해안 지방이다. 그리고 버가(Perga)는 지중해 연안으로부터 12km 정도 떨어진 밤빌리아의 주요 무역로상에 위치한 도시이다. 바울 일행은 바보에서 서쪽으로 280km의 항해 끝에 오늘날의 안탈랴(Antalya)에 해당하는 앗달리아에 도착하여(행 14:25) 그곳에서 약 20km를 걸어 버가에 도착했을 것이다. 기록에 의하면 당시 구브로의 수도였던 바보와 밤빌리아의 수도였던 버가는 서로 비너스와 다이아나 여신을 섬기는 탓에 잦은 교역이 이루어졌다고 한다(Hervey). '밤빌리아'의 위치에 대해서는 본장 자료노트, 지도를 참조하라.
요한은 저희에게서 떠나. - 마가 요한이 버가에서 바울과 바나바를 떠난 이유는 분명하지않다. 다만 학자들은 다음과 같은 견해들을 제시하고 있다. 첫째, 요한은 바나바의 생질로서 선교 사역에 있어서의 지도자적인 위치가 바나바에게서 바울로 바뀐 것에 대하여 불만을 품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Alexander). 둘째, 그는 소아시아 지역 선교에 있어 뒤따를 위험과 고난을 감당할 만한 마음의 준비가 없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Lenski). 셋째, 나이가 어렸던 마가가 집과 고향을 그리워하였기 때문이라는 것이다(Holtzmann). 넷째, 바울이 이곳에서 풍토병에 걸렸는 바, 마가도 같이 병에 걸릴까 두려워하였기 때문이라는 것이다(Ramsay). 이 중 어느 견해가 보다 타당한 것인지 단정하기란 쉽지 않다. 하여튼 이때 마가 요한이 떠난 것은 바울에게 많은 실망을 주어, 후에 바울은 마가 요한을 전도 여행에 다시금 동행시키느냐 마느냐를 놓고서 바나바와 의견을 달리하였다(행 15:37-39).
13:14 비시디아 안디옥에 이르러. - 이곳은 로마 제국의 식민지인 비시디아(Pisidia) 지방의 주요 도시로서 막강한 요새이며, 로마인이 갈라디아 라고 부르는 광대한 지방의 남부에 있는 군사 및 정치의 중심지였다(Ramsay). 사실 이 도시는 비시디아의 경계선 안에 포함되어 있지 않고 그 근방인 갈라디아의 브루기아로 알려진 지역 내에 위치하고 있었지만 바울과 바나바 일행이 출발한 곳인 수리아의 안디옥(1절)과 구별하기 위해 좀더 항간에 널리 알려진 지명인 '비시디아 안디옥'이라고 명시한 것으로 보인다. 비시디아 안디옥의 위치에 대해서는 행 6장 자료노트, 지도를 보다 참조하라. 아무튼 바울과 바나바는 1차 전도 여행에서 살라미, 바보, 버가, 비시디아의 안디옥 등 계속해서 중요한 지리적 요충지를 찾아다녔는데, 이는 복음의 효과적 전파를 고려한 그들의 선교 전략의 일환이었다.
13:15 율법과 선지자의 글을 읽은 후에. - 회당에서의 예배는 대개 월요일과 안식일에 드려졌다. 이때 기도문이 낭독된 후 두 번에 걸쳐 성경 교훈이 낭독되는데, 하나는 모세 오경에서, 다른 또 하나는 그 모세 오경의 주제와 관련된 예언서에서 낭독되었다. 이러한 의식은 바벨론 포로 시대 이후에 형성된 유대인들의 전통으로여기서 '율법과 선지자의 글'이란 좁은 의미에선 모세 오경과 예언서를, 넓은 의미에선 구약 성경 전체를가리킨다. 이 유대인들의 회당 예배에 관해서는 본서 14권 신약 총론, '신약 시대의 사회 · 문화적 배경'을 참조하라.
회당장들이…말하라 하니. - 율법과 선거자의 글이 낭독되고 나면 랍비나 회중 가운데서 지명된 사람이 나와서 강론하는 것이 다음 순서였다. 그런데 이처럼 강론할 사람을 선택하는 것은 회당장의 권한이었다(Bruce). 물론 바울은 전 공회원이었고 바나바는 레위인이었으므로 그들이 회당 집회에 참석할 만한 자격은 충분했지만, 그들은 회당장의 눈에 낯선 사람으로 보일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도 회당장이 바울과 바나바에게 강론을 부탁한 것으로 보아 그가 바울 일행의 전도 사역에 관해 소문을 접해 이미 알고 있었으며 관심을 지니고 있었던 것 같다. 한편 '권할 말'이란 '격려' 또는 '위로의 말'이란 뜻이다. 여기서는 회중 앞에서의 '강론'을 의미한다.
13:16 바울이 일어나 손짓하며. - 유대인들은 습관상 대개 앉아서 가르치나 그리이스와 로마인들은 대개 서서 가르친다. 예수님께서도 사람들에게 가르치실 때는 유대의 관습에 따라 앉아서 말씀하셨다(마 5:1; 눅 4:20). 그러나 바울은 청중들의 시선을 끌기 위해 헬라 풍습을 따라 일어났으며, 이로써 회당장들의 정중한 요구(15절)를 수락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한편 여기서 '손짓하다'는 말은 웅성거리는 청중들을 향해 조용히하라는 수신호(受信號)를 취한 것을 가리킨다.
이스라엘 사람들과 및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아. - 바울의 설교 대상이다. 그런데 이들에 대해서는 학자들간에 견해를 약간 달리한다. 즉 일부 학자들은 이들 가운데 '이스라엘 사람'들은 유대인을 가리키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은 유대교로 개종한 이방인을 가리킨다고 한다(Lenski, Robertson). 그리고 또 다른 일부 학자들은 '이스라엘 사람'이란 유대인 및 유대교로 개종한 사람 모두를 가리키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란 유대인이나 유대교로 개종한 사람은 아니나 하나님을 경외하면서 유대인의 예배에 관심을 갖고 참석한 이방인들을 가리킨다고 한다(Bruce, Neil, Haenchen). 이상의 두 견해 가운데 유대교로 개종한 이방인은 일반적으로 유대인으로 간주된 점을 감안할 때 두 번째 견해가 보다 타당하게 여겨진다.
13:17 이 이스라엘…인도하여 내사. -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택하시고 지금까지 권념해 오신 역사에 대한 회상을 통하여 바울은 유대인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효과적으로 전파하고자 한 것 같다. 그래서 바울은 먼저 이스라엘 민족이 다른 민족에 비해서 하나님의 은혜를 더욱 풍성하게 받았다는 사실 즉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민족을 언약 백성으로 선택하셨다는 사실을 일깨우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바울의 설교는 행 7장에 나오는 스데반의 설교와 비슷한 것을 느낄수 있는데, 이는 바울이 스데반이 순교당할 때 행한 연설을 듣고 깊은 감동을 받았음을 시사해 준다. 즉두 사람의 설교의 공통점은 유대인들이 자부심을 갖고 있는 자기 조상들의 역사에 관한 서술을 통해 마침내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의 당위성을 증명하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바울과 스테반의 설교에 있어 차이점도 분명히 나타나는데, 스데반은 이스라엘의 역사를 통하여 조상들의 강퍅한 마음에 영향받아 그 후손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박았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으나, 바울은 이스라엘에게 주어진 언약이 어떻게 완성되었으며 유대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못박은 사실이 결국 율법과 예언의 성취라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다(Hervey).
13:18 저희 소행을 참으시고. - 비단 출애굽 이후 광야에서의 40년간 뿐 아니라 그 이후에도 이스라엘 백성은 부단히 하나님께 대한 불신과 반항으로 역사를 점철지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저희 소행을 '참으셨다'(에트로포포레센)는 말은 악을 행하는 저희를 유모처럼 '보살폈다'는 뜻으로서 이는 하나님의 변함없는 사랑과 신실하심을 가리키는 구체적인 표현이다(신 1:31).
13:19 가나안 땅 일곱 족속을. - 이는 가나안의 후기 원주민인 헷 족속, 기르가스 족속, 아모리 족속, 가나안 족속, 브리스 족속, 히위 족속, 여부스 족속을 가리킨다. 수 9장 연구자료, '가나안의 원주민들' 참조. 이들 모두는 이스라엘보다 수가 많고 강한 족속이었지만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과의 언약(창 12:5-9)을 기억하시고 가나안을 이스라엘 백성에게 유업으로 주신 것이다. 본서 1권 성경 총론, '성경의 주요 무대 가나안' 참조.
약 사백오십 년간. - 이 450년이란 기간이 무엇을 가리키는지 분명치 않다. 그러나 만일 이스라엘이 가나안을 차지하기까지의 기간을 가리킨다면 이것은 400년간 애굽에서의 포로생활(행 7:6 주석 참조)과 광야생활 40년 그리고 여호수아 14장에 나타난 것과 같이 이스라엘이 가나안에 들어가서 토지 분배를 받고 정착하는 기간인 약 10년을 합친 450년을 가리킬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이스라엘이 가나안을 차지한 미래의 450년 간을 가리킨다 이는 사사 시대를 거쳐 통일 왕국 시대, 즉 이스라엘이 남북 왕국으로 분열되기 이전까지의 약 450년 간을 가리킬 것이다. 이중 대부분의 학자들은 첫 번째 견해를 지지한다(Bruce, Lenski, Knowling).
13:20 그 후에… 사사를 주셨더니. - 이스라엘 역사상 사사들의 통치 기간(B.C. 1390-1050년)은 선지자 사무엘까지로 끝나고 만다. 사무엘은 하나님의 지시에 의해 이스라엘 최초의 왕, 사울을 선출한 마지막 사사이다. 유대인들은 사무엘을 모세 이후 최초의 선지자로 간주하는데, 그는 시대적으로 사사와 선지자 시대를 연결시켜 주는 다리 역할을 하였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선 삿 4장 연구자료 '사사의 이해'와 삼상 3장 연구자료 '사무엘'을 보다 참조하라.
13:21 그 후에 저희가 왕을 구하거늘. -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께 왕을 요구한 것은 자신들이 말하는 열강의 침략 등과 같은 고통의 원인이 자신들의 신학 부족 탓임을 깨닫지 못한 채 다만 자기들의 성지 제제가 이방인들의 왕정 체제에 비해 비효율적이라고만 생각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왕정 제재를 수락하시면서도 저들의 불신앙적, 인본적 자세에 대하여서는 책망하셨다(삼상 8:6-9). 이에 관한 보다 자세한 사항은 삼상 8장 구속사적 개관을 참조하라.
기스의 아들 사울을 사십 년간 주셨다가. - 사울의 통치기간이 40년(B.C. 1050-1010년)이라는 사실은 구약 성경에는 정확히 나타나 있지 않다. 그러나 유대 역사가 요세푸스(Josephus)의 주장에 의하면 사울은 사무엘 생존시 18년을 통치하고 그의 사후에 22년을 더 다스렸다고 한다. 사울이 이스라엘의 초대 왕으로서 블레셋의 침략으로부터 백성들을 보호하고 국방력을 튼튼히 한 것은 과소 평가할 수 없는 그의 공적이다. 그러나 불행히도 그는 끝까지 여호와 제일주의를 고수하지 못하고 거듭 인본주의적 자세를 견지한 탓에 하나님께로부터 버림당하고 말았다. 이에 관해서는 삼상 10장 연구자료, '사울'을 보다 참조하라.
13:22 폐하시고. - 사울왕은 하나님께 불순종했기 때문에 그의 왕조는 오래 가지 못하고 다른 사람이 그 왕위를 대신하게 되었다. 여기서 '폐하시고'(메타스테사스)란 말은 누가만이 독특하게 사용하는 단어로 이는 청지기가 주인에 의해 그 직분을 빼앗긴 사실을 가리키는 것이다(눅 16:4).
다윗을 왕으로 세우시고. - 하나님께서 다윗을 왕으로 세우시고 그에게 영속적인 통치권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이유는 그가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삼상 13:14). 다윗에 대한 이러한 하나님의 보증은 구약성경 여러 곳에 잘 나타나 있다(왕상 14:8; 시 89:19-21).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 바울이 자신의 설교에서 다윗을 언급하고 있는 것은 단순히 다윗을 칭찬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유대인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혈통의 기원을 구체적으로 설명하기 위한 의도에서 였을 것이다. 또한 바울은 다윗이 이새의 아들이었다는 언급을 통해 가축을 기르던 보잘 것 없는 이새의 집안에서 가장 막내인 다윗을 택하셔서 왕으로 세우신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를 강조하고자 하였을 것이다(삼상 16:113). 이러한 다윗에 대한 보다 자세한 사항은 삼상 16장 연구자료, '다윗'을 참조하라.
13:23 하나님이 약속하신 대로. - 여기서 말하는 '약속'이란 하나님께서 이미 여러 번 말씀하셨듯이(시 132:11; 사 11:1,10; 렘 23:5; 슥 3:8), 이스라엘을 위하여 그리스도를 보내시겠다는 언약이다. 그런데 이 약속은 다윗(삼하 7:12,13)에게만 주어진 것이 아니라 이미 여러 세대를 통하여 주어진 하나님의 변개치 아니할 약속이었다. 이에 관해서는 삼하 7장 자료노트, '다윗 언약'을 보다 참조하라.
이스라엘을 위하여 구주를 세우셨으니 곧 예수라. - 바울은 다윗까지의 이스라엘 역사를 개관한 후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약속하신 구주가 바로 예수인 것을 밝혀, 예수는 혈통상 다윗의 계보에서 나셨으며 다윗은 예수 그리스도의 모형인 것을 알리고 있다. 한편 '예수'란 이름의 뜻이곧 '구원자'(마 1:21)이니 그가 '구주'란 언급은 중첩적인 의미를 지녀 보다 강조적 용법을 띤다. 다음으로 본절의 '이스라엘'은 문자적으로 유대 백성을 의미하지만, 바울은 그의 서신서에서 이것을 영적 이스라엘, 즉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택한 백성이 될 모든 성도들을 가리키는 것으로 밝히고 있다(롬 9:4).
13:24 그 오시는 앞에. - 원문을 직역하면 '그가 안으로 들어가는 바로 앞에'란 말이다. 이는 예수께서 그의 공생애에 임하시기 전에라는 뜻이다.
요한이 먼저…전파하니라. - 말 3:1에 예언된 것과 같이 세례 요한의 사명은 예수 그리스도의 앞길을 예비하는 것이었다(요 1:19-28). 바울은 유대인들이 이미 잘 알고 있는 구약 성경의 예언을 상기시킴으로써 자기가 예수에 관해 허구적인 사실을 전파하는 것이 아니라, 선지자 중에 가장 위대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는 세례 요한이 그리스도라고 증거한 그 예수에 관해 전파하고 있다는 것을 강조한다. 아울러 요한이 직접 말하고 있는 것과 같이, 그가 행한 '회개의 세례'는 예수 그리스도의 출현을 예비하고 알리기 위한 것이었다는 사실을 밝히고 있다(말 3:1; 마 11:10). 눅 3장 연구자료, '예수의 선구자 세례 요한' 참조.
13:25 요한이…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라. - 요한은 예수 그리스도의 앞길을 예비하는 자로서, 자신의 사명을 다한 후에 자기를 그리스도로 착각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자신이 그리스도가 아니라 예수가 그리스도시라는 사실을 모든 사람에게 선포했다(마 3:11; 막 1:7; 눅 3:16; 요 1:26,27). 세례 요한은 이처럼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자신의 사명에 충실했고, 그 사명을 완수하고선 순교자적 최후를 맞이하였다(막 6:17-29). 그런데도 당시 많은 유대인들은 세례 요한에 대해서는 존경심을 갖고 있으면서도 그가 증거한 예수에 대하여 배척하였다. 이에 바울은 세례 요한과 예수와의 관계를 성경적 고찰을 통해 정확히 규명함으로써 유대인들의 잘못과 편견을 깨우쳐 주고 있는 것이다.
13:26 아브라함의 후예와. - 바울이 유대인들을 가리켜 '아브라함의 후예'라 부르는 것은, 그들에게 하나님의 영원한 언약의 상속자가 곧 그들이라는 사실(창 17:7)을 주지시켜, 이 명칭에 적합하게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해야 한다는 필요성을 주장하기 위함이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 - 16절 주석 참조.
이 구원의 말씀을 우리에게 보내셨거늘. - '이 구원의 말씀'이란 '구주 예수에 대한 소식'을 가리킨다. 그러므로 본절은 오래 전의 하나님 약속에 따라 마침내 예수가 온 세상의 구주로 이 땅에 오셨다는 것을 뜻한다.
13:27 예루살렘에 사는 자들…선지자들의 말을 알지 못하므로. - 유대인들이 예수를 죽인 것은 그들의 '무지' 때문이라는 것은 비단 여기 뿐만 아니라 베드로도 이미 주장한 사실이다. 행 3:17 주석 참조. 그리고 바울 역시 자기의 회심하기 건의 행동이 그 같은 '무지' 때문이었다고 거듭 말하고 있다(딤전 1:13). 그러나 이러한 무지로 인해 그들의 유죄성이 약화될지는 몰라도 그들의 죄가 완전히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그들의 철저한 편견에 입각한 무지였기 때문이다(Robertson).
선지자들의 말을 응하게 하였도다. - 사실 유대인들은 '선지자의 말'을 안식일마다 회당에서 읽고 낭독하였지만(14,15절) 영적 무지로 인해 선지자들이 예언한 구세주를 죽이고 말았다. 그런데 비록 그들의 무지로 인해 이처럼 부지 중에 예수를 정죄하고 죽였지만 이것은 또한 '메시야가 고난을 당하여 죽임을 당할 것'이라는 선지자의 예언을 성취한 것이었다(사 53:5,12). 이러한 사실만 보아도 예수가 곧 성경에 예언된 장차 오실 메시야였다는 사실이 분명하다는 것이 바로 바울의 논지(論旨)이다.
13:28 죽일 죄를…죽여 달라 하였으니. - 예수께서 죽을 이유가 하나도 없지만 죽임을 당했다는 것을 깨닫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왜냐하면 이를 이해 못하고선 인류의 죄를 대신하여 대속적 죽음을 당하신 예수께서 근본 하나님이면서 또한 무죄한 인간이셔야 하셨던 이유를 깨달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에 관해서는 막 10장 자료노트, '예수의 성육신과 수난의 필연성'을 참조하라. 아무튼 비록 산헤드린 공회가 예수를 정죄하여 빌라도에게 고소하였으나 빌라도는 예수가 죄인이라는 증거를 도무지 찾지 못했다(마 26:6; 눅 23:4,14,22). 그러므로 예수에 대한 사형 선고는 부당한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대인들은 예수를 통해 자신들의 사악함이 들어날 것을 염려하여 빌라도에게 예수를 '죽여 달라'고 요청한 것이다(요 19:12-16).
13:29 후에 나무에서 내려다가 무덤에 두었으나. - 바울이 십자가를 '나무'로 표현한 것은 신 21:23 말씀과의 연관성을 고려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한편 예수를 고소한 유대인들은 안식일에 예수의 시체를 십자가에 놓아 두면 안된다고 하여 빌라도에게 다리를 꺾어 치워 달라고 요청했다. 그리하여 예수의 시체는 로마 군병들에 의해 십자가에서 내려져 경건했던 아리마대 요셉과 니고데모에 의해 장사된다(눅 23:50-56; 요 19:38-42). 그러나 바울은 본절에서 이와 같은 사실을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고 단순히 예수의 시체를 '무덤에 두었다'는 사실만을 말하고 있다. 이는 예수의 무덤에 장사되심보다는 그의 부활하심을 보다 부각시키기 위한 바울의 의도라고 볼 수 있다.
13:30,31 하나님이…그의 증인이라. - 예수께서 죽으신지 사흘만에 부활하신 것(마27:62-28:15)은 간악한 인간들의 사형 집행을 단숨에 뒤집어 놓은 충격적 사건이었다. 당시 예수를 죽이는 데 앞장섰던 유대인들의 관념상 현세에서의 죽은 자의 부활이란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었지만, 예수 그리스도는 부활을 통해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메시야이심을 직접 증명하심으로 그들의 잘못된 생각과 패역함을 드러내셨다. 아울러 예수님의 부활 사건은 사단의 세력에 대한 하나님의 공개적인 승리를 입증하는 것으로서 바울 뿐만 아니라 모든 전도자들의 선교 사역에 있어 중심된 강조점이 있다. 여러 날 보이셨으니. - 예수께서 부활하신 이후 승천하시기 전까지 그의 제자와 성도들에게 출현한 사실을 가리키는 말이다. 예수께서 다메섹 도상에서 바울에게 나타난 사실을 말할 때도 이러한 표현이 쓰였다(고전 15:8). 여기서 '여러 날'은 문자적으로 몇날보다는 많은 날'을 의미하는데, 이는 정확히 40일을 가리킨다(행 1:3). 한편 '부활하신 예수를 만난 사람들'에 관해서는 눅 24장 자료노트를 참조하라.
13:32 우리도 조상들에게…전파하노니. - 바울은 사도로서 자신의 사명과 직분을 깨닫고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있다. 여기서 바울이 전하고 있는 복음은 전혀 새로운 율법이나 가르침이 아니라, 하나님게서 자신의 조상들에게 주신 그리스도에 대한 약속이 이제 예수에 의해 성취되었다는 사실이다. 한편 본절 이하 37절까지의 사도 바울의 설교 내용은 오순절 때의 베드로의 설교(행 2:24-32)와 유사성을 보이고 있다. 이는 당시 사도들이 복음의 중심 내용과 사상에 있어 공통적으로 일치된 신학적 견해를 가지고 전도에 임했음을 시사해준다.
13:33 하나님이 예수를 일으키사. - 여기에서 '예수를 일으키사'(아나스테사스 예순)라는 말은 예수의 부활을 뜻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또 한편으론 예수의 높아지심, 즉 그가 본래의 영광을 회복한 승귀(昇貴)를 가리키기도 한다(빌 2:5-11). 이러한 사실은 본절에 '일으키다'(아나스테오)란 말이 행 3:22,26; 7:37에서 '높임'의 의미로 사용된 점에 의해서도 뒷받침 된다. 즉 예수의 부활 그 자체가 그분이 근본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거해 준 영광스러운 사건이었던 것이다.
시편 둘째 편에. - 이것은 시 2:7을 말한다. 그런데 여러 사본과 편집본에서는 '둘째'가 '첫째'로 기록되어 있는데, 이는 유대인들이 종종 시편 첫째 편을 숫자상 1편으로 헤아리지 않고 시편 전체의 서문으로 간주하고, 둘째 편을 첫째 편으로 헤아렸기 때문이다.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 너를 낳았다. - 이 말씀은 본래 다윗 언약(삼하 7:14)에 근거하여 시편 저자가 다윗의 왕위를 계승할 자와 하나님과의 친밀한 관계를 노래한 것이다. 그러므로 다윗의 왕위를 계승하는 왕의 대관식 때 이 말씀은 자주 낭송되었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이는 메시야에 관한 예언이다. 즉 하나님께서는 원수를 정복하시고 그분이 보내신 메시야로 하여금 열방을 통치하실 것을 약속하셨는데,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가 부활하심으로 이러한 궁극적 승리를 얻으셨음을 이 말씀을 인용하여 밝히고 있는 것이다(롬 1:4).
13:34 다시 썩음을 당하지 않게 하실 것. -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신 예수께서 부활하지 않았다면 하나님께서 다윗과 그의 후손들에게 주기 야속(삼하 7:4-17)은 온전히 성취될 수가 없는 것이었다. 그러나 예수께서 죽으셨지만 부활의 첫 열매로 다시 살아나셨다는 것은 사망이 그를 더 이상 지배하기 못할 뿐만 아니라 저가 온 인류의 주권자요 영원한 통치자이심을 증가해 준다. 그리하여 누구든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으며 또한 저와 더불어 왕노릇하게 되니(계 20:4; 22:5) 다윗 언약은 영생에 관한 언약으로 발전, 전개되고 있는 것이다. 이에 관해서는 삼하 7장 구속사적 개관을 참조하라.
다윗의 거룩하고 미쁜 은사. - 이것은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약속한 거룩하고 확실한 축복'을 가리킨다(공동번역). 이 약속에는 하나님께서 다윗의 혈통에서 그리스도를 나게 하시어 다윗에게 영원토록 은혜를 베푸시겠다는 말씀이 묵시적으로 표현되어 있다(삼하 7:12-16). 그런데 이 약속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육신(成肉身)하사 자기 백성을 위하여 대속 죽음을 당하시고 부활, 승천하사 하나님과 인간들 간의 영원한 화해의 길을 터 놓으심으로 성취된 것이다(히 9:11-15).
13:35 주의 거룩한⋯않게 하시리라. - 본절은 시 16:10의 인용이다. 여기서 '주의 거룩한 자'는 하나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친히 살리신 예수를 가리키는데, 예수는 부활로써 그의 메시야되심을 직접 증명하셨다. 이렇게 바울이 구약 성경의 구체적인 증거를 계속 인용하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강조하는 것은 구약에 익숙해 있던 유대인들을 효과적으로 반박하기 위해서이다. 그리고 베드로의 경우도 바울 사도처럼 구약성경을 복음에 대한 자신의 논증으로 자주 인용(행 2:16-21,25-28,34,35; 3:22)하였는 바, 이를 통하여 우리는 당시 사도들이 구약 성경을 해석하는 데 있어서로 통일된 하나의 견해를 소유하고 있었음을 엿볼 수 있다.
13:36,37 다윗은…당하였으되 하나님의 살리신이는…당하지 아니하였나니. - 바울은 다윗과 예수 그리스도를 비교하여 그들 사이에 존재하는 큰 차이를 설명함으로써 예수의 부활 사건을 강조하고 있다. 다윗은 그리스도를 예언하였던 자이다(시 110:1-7). 그런데 그러한 다윗은 자신이 살고 있던 시대에서 한정된 일을 하고 죽어 썩음을 당했지만, 예수께서는 영원한 일을 친히 감당하셨고 죽음에서 부활하심으로 썩음을 당하지 않으셨다. 이러한 차이는 예수가 바로 성경에 예언된 그리스도로서 우리의 영원한 생명의 보장이 되신다는 사실을 분명히 증거해 준다.
13:38 이 사람을 힘입어 죄 사함을. - 예수께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그가 이루신 대속(代) 사역이 영원한 효력을 지니게 된 것과 관련하여 이제 바울은 그러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죄 사함에 관해 역설하고 있다. 즉 여기서 '이 사람'은 유대인들이 십자가에 못박아 죽였으나 하나님이 무덤에서 일으킨 예수를 가리키는 것으로, 바울은 모든 사람이 그 예수를 통하여 하나님으로부터 '죄 사함을 얻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이처럼 바울은 '죄 사함'의 필요를 주장함으로써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죄 사함'이 있기 전에는 하나님과 죄인인 인간은 서로 화목할 수 없다는 사실을 새롭게 인식시키고 있는데, 바로 이러한 사상은 바울이 행한 여러 설교의 핵심이다(행 26:18; 골 2:13).
13:39 또 모세의 율법으로…얻는 이것이라. - 로마서나 갈라디아서를 통해 바울 신학의 특징을 알고 있다면 바울이 자신의 설교에서 이신칭의(以信稱義) 문제를 자세히 언급하고 있는 이유를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사실 모세의 율법은 인간으로 하여금 하나님이 요구하신 의를 온전히 이를 수 없다는 사실을 자각케한 것이었지 결코 구원을 가져다 주는 것은 아니었다. 왜냐하면 모세의 율법에는 죄의 용서에 대한 보장이 전혀 없기 때문에 그중 하나만 범하여도 하나님의 진노 아래에 처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었다(약 2:10,11). 그러나 하나님과 인간과의 중보자인 예수는 율법이 보장해 주지 못한 죄의 용서를 보장함으로써 사람이 율법을 행함으로 구원을 얻는 것이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다 칭함받아 구원에 이르게되는 길을 열어 놓으신 것이다. 결국 이러한 바울의 설교는 비시디아의 안디옥에 있던 유대인과 이방인들이 전혀 들어보지 못한 새로운 설교로서 그들에게 매우 큰 충격을 주었다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 할 수 있다. 이처럼 본절에서 바울이 강조하고 있는 율법보다 우월한 복음의 능력은 부분적인 능력이 아니라 완전한 능력이다(Bruce).
13:40,41 그런즉…일이라. - 바울 사도의 설교는 합 1:5에 나타난 심판의 경고를 인용함으로써 끝을 맺는다. 과거에 하박국 선지자는 유다의 패역함과 불신앙으로 인해 그들이 바벨론에 의해 패망할 것과 이것이 하나님의 심판이라고 예언했다. 그리고 이러한 선지자의 경고를 무시하던 유다 백성들은 결국 예고된 재난을 당하고 말았다. 그런데 이제 바울은 완고하고 목이 곧은 유대인들에게 만일 그들이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그들도 결국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경고를 하고 있다. 이것은 자발적인 순종을 거부하는 유대인의 습관적 심성을 바울이 직시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즉 바울은 유대인들이 아브라함의 후손이라는 혈통만을 고집하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구원을 업신여기다가 도리어 하나님께로부터 버림당할 수 있음을 경고하고 있는 것이다.
13:42 저희가 나갈새. - 여기서 '저희'는 바울의 설교를 들은 유대인과 이방인 회중이 아니라 바울 일행을 가리킨다. 그리고 헬라어 원문을 주의깊게 살펴보면 '나갈새'(엑시온톤)라는 말은 '밖으로 나가다'(엑세이미)의 현재 능동태 분사로서 바울과 바나바는 회중이 모두 해산되기 전에 먼저 회당을 떠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사람들이…이 말씀을 하라. - 바울의 설교는 회당에 있던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그리고 바울의 설교에 감동을 받은 사람들은 흥분된 마음으로 다음 안식일에도 또다시 설교해 줄 것을 간청하기에 이르렀다. 즉 바울의 설교에 감동을 받은 사람들은 바울과 바나바 이 두 사람을 에워싼 채 밖으로 따라 나가면서 다음 안식일에도 설교해 달라고 요청했던 것이다.
13:43 입교한 경건한 사람들이. - 이들은 율법에 따라 할례를 받고 유대교로 개종한 이방인들을 가리킨다.
바울과 바나바를 좇으니. - 바울의 설교에 감동을 받은 많은 사람들은 더욱 깊은 가르침을 듣고자 하는 열망 때문에 다음 안식일까지 기다리지 못하고 바울과 바나바의 숙소까지 따라 가서 가르침을 받았다. 어떤 사본에는 그들이 바울과 바나바에게 세례를 요청했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이것은 당시 상황으로 보아 있을 수 있는 일이다.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있으라. - 바울과 바나바를 좇은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구원의 복된 소식을 받아들일 만한 자세를 지닌 사람들이었다. 이제 바울과 바나바는 그러한 그들에게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거하라고 권면하고 있다. 여기서 '하나님의 은혜'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 뿐 아니라 아울러 거기에 부가되는 하나님의 축복, 영원한 구원에 대한 신자의 소망을 모두 포괄하고 있는 말이다.
13:44-52 유대인들의 박해
지난 단락(13-43절)에서는 바울의 설교로 비시디아 안디옥의 많은 사람들이 복음을 영접하는 역사가 일어난 사실을 살펴보았다. 이어 본문은 비시디아 안디옥에서 복음을 좇는 사람의 수가 점차 증가하자 자신들의 권위와 지지 기반이 약화될 것을 우려한 유대인들이 바울과 바나바를 핍박하고 축출하는 장면이다.
이러한 본문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뉜다.
첫째는 유대인들이 바울과 바나바를 변박하고 비방하는 장면이다(44,45절). 바울과 바나바의 복음 전파로 복음에 대한 놀라운 반응이 일어나자 유대인들은 바울과 바나바의 복음 전파를 비방하며 방해하고 나선 것이다. 즉 유대인들은 민족적 선민의식에 젖어 이방인들에게까지 구원의 문이 열려있는 복음을 인정할 수 없었으며, 또 자기 종교에 대한 지나친 열심히 인해 복음의 진리를 배척하고 무시한 것이다. 그리고 더 나아가 저들은 바울과 바나바의 복음 증거가 자신들의 권위와 지지 기반을 약화시킬 것으로 판단하여 바울과 바나바로 하여금 복음을 증거하지 못하도록 그들을 비방하며 방해하고, 성내 권력자들을 선동하여 바울과 바나바를 쫓아내기에 이른다(50절).
둘째는 바울과 바나바의 답변 장면이다(46-49절). 바울은 비난하던 유대인들을 향해서 그들이 복음을 거절하므로 이제 복음의 빛이 이방인에게로 옮겨지게 될 것을 선포하였다. 여기에는 구원의 놀라운 원리가 제시되는데 그것은 육적 아브라함의 자손이 참된 언약의 자손이 아니라 복음을 영접하는 영적 아브라함의 자손이 참된 언약의 자손임을 말해주는 것이다(롬 10:12). 이런 바울의 변론에 대하여 유대인들은 비방하였지만 이방인들은 환영하고 복음을 영접하였다. 이는 복음의 주도권이 유대인에게서 이방인에게로 넘어갔음을 보여 줌과 동시에 성령의 작정하신 뜻에 의하여 세계가 복음화될 긍정적인 모습을 예시해 준다.
셋째는 박해 중에서도 계속되는 성령의 기쁨과 능력을 보여주는 부분이다(50-52절). 유대인들이 성내의 권력자들을 선동하여 바울과 바나바를 핍박하고 쫓아내려 하자 바울과 바나바는 '누구든지 너희를 영접도 아니하고 너희 말을 듣지도 아니하거든…너희 발의 먼지를 떨어 버리라'는 예수님의 말씀(마 10:14)을 실천하고 이고니온으로 떠난다. 그러나 비시디아 안디옥의 성도들은 성령의 은혜로 기쁨이 충만하였고 융성해져 갔다. 이는 고난 중에서 기뻐하는 성도의 진실한 신앙을 보여 주는 것으로(마 5:12; 요 16:22; 벧전 1:8) 세상의 그 어떤 박해나 핍박으로도 하나님의 나라는 무너뜨릴 수 없으며 성령께서 주신 영적 기쁨을 빼앗을 수 없다는 교훈을 준다(롬 14:17; 고후 6:10).
13:44 그 다음 안식일에는… 듣고자 하여 모이니. - 한 주간이 지난 후에 더욱 많은 백성들이 모였다는 것은 그동안 바울과 바나바가 열심히 전도했다는 사실과 그들의 전도가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다는 것을 입증한다. 한편 '온 성'의 사람들이 조그마한 회당에 다 모인다는 것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때문에 바울과 바나바는 회당 가까이 사람들이 많이 모일 수 있는 곳에서 설교했을 것으로 보인다. 아니면 본절은 바울과 바나바의 전도 결과,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갖고 모인 것을 강조하는 강조법적 표현일 것이다.
13:45 유대인들이 그 무리를 보고 시기가 가득하여. - 유대인들의 자기 종교에 대한 지나친 열심은 결국 바울과 바나바에 대한 시기로 변해 복음의 진리를 무시하는 어리석음을 범하고 말았다. 여기서 '유대인들'이란 바울의 첫 설교에 감동을 받아 호의적인 태도를 보였던 유대인들(42,43절)이 아니라, 이방인에게까지도 열려진 이 구원의 복음을 달갑지 않게 생각하는 철저한 율법주의적 성향을 지닌 유대인들을 가리킨다. 그런데 이러한 유대인들의 적대 행위의 배후 주동자는 과거에 예수에 대하여서도 그러하였듯이(요 11:47-53) 자신들의 권위와 지지 기반이 약화될 것을 두려워하는 유대 종교 지도자들이라는 것은 의심할 바 없는 사실이다.
변박하고 비방하거늘. - 유대인들의 바울과 바나바에 대한 시기심은 바울의 주장을 애써 변박하고 두 사람을 비난하기에 이르렀다. 여기서 '변박하다'(안텔레곤)는 말은 '반대하는 말을 하다', '훼방하다'는 뜻으로 예배와 같은 공적인 모임을 방해하는 공개적인 적대 행위를 나타내 준다. 그리고 '비방하거 늘'(블라스페문테스)이란 말은 복음서에 자주 등장하는 단어로서 '저주하다', '욕하다'는 뜻이다. 이는 곧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모략하고 비난하는 유대인들의 패역한 모습을 잘 나타내주고 있다.
13:46 하나님의 말씀을…않은 자로 자처하기로. - 사도들은 처음에 유대인에게만 복음을 전파하였다. 그러다가 그 후에 이방인에게도 복음을 전파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임을 깨닫고 이방 전도에 나섰다(행 10,11장), 그 가운데 바울과 바나바는 특별히 이방 전도를 위하여 따로 세움 받은 자들이었다(2,3절).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유대인들에게 복음 전파하는 것을 완전히 저버린 것은 아니었다. 그들은 가는 곳마다 유대인과 이방인을 불문하고 복음을 증거하였다. 이러한 자세는 이곳 비시디아의 안디옥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일부 유대인들이 고의적이고 악의적인 방법으로 구원의 복음을 거부하자 바울과 바나바는 저들이 하나님의 축복(영생)을 받을 자격이 없다는 것을 분명하게 선언하고 있는 것이다.
이방인에게로 향하노라. - 본절의 헬라어 원문을 직역하면 '보라 우리는 이방인을 향하여 우리 자신을 지금 돌이켰다'는 의미이다. 즉 바울과 바나바는 유대인들이 거부한 복음을 이방인을 향해 전파하지 않을 수 없음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 배타적 선민(選民) 의식에 사로잡힌 유대인들이 거부한 복음은 도리어 공개적으로 이방인들에게 전파되었으며 그리하여 이방인들의 많은 무리가 계속해서 복음을 받아들이는 결실을 얻었다(행 28:28). 이는 실로 '먼저 된 자로서 나중되고 나중된 자로서 먼저 될 자가 많으니라'(마 19:30) 하신 예수의 말씀을 상기시켜 주는 일례가 아닐 수 없다.
13:47 주께서 이같이…하셨느니라. - 본절은 사 49:6의 인용으로, 장차 메시야께서 이방인의 빛과 구원이 되신다 사실을 예언한 것이다. 이 예언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성취되었으니 예수께서는 그의 제자들에게 비단 예루살렘과 유대 뿐 아니라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복음을 전파하라고 명하셨다(마 28:19,20; 행 1:8). 그리고 다메섹 도상에서 바울을 부르셨던 이유도 바로 이방 전도를 위함이었다(행 9:15). 그러므로 바울은 이같은 사실을 지적함으로써 이방인들에게도 복음이 증거된 데 대하여 못마땅히 여기고 있을지도 모를 자들에 대하여 이방 선교의 정당성을 피력하고 있는 것이다.
13:48 이방인들이 듣고 기뻐하여. - 바울의 설교를 변박하고 비방했던 유대인들과 달리 구원의 복음을 받고 기뻐하는 이방인의 모습이 대조를 이루고 있다. 사실 이방인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전파된다는 것이 유대인들에게는 못마땅한 일이었다. 그러나 한편으로 이방인들에게는 자신들이 구원의 소망에 참여할 수 있다는 사실이 갑자기 주어진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 의해서 오래 전에 이미 계획된 것이라는 말씀은 매우 기쁜 소식이었을 뿐만 아니라 그들에게 엄격한 유대인의 율법으로부터의 자유함을 알리는 은혜의 복음이었던 것이다.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자는 다 믿더라. - 이것은 '영생으로 작정된 자들 만큼은 다 믿었다'는 뜻으로서 여기서 '작정된 자'는 하나님에 의해 '선택된 자'(엡 1:4), 하나님께서 구원하시기로 미리 정하신 '예정된 자'(롬 8:29)를 가리킨다(Calvin, Alexander, Whitelaw). 여기서 우리는 구원이 율법의 행위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에 의해 주어지는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하나님의 '작정' 때문에 인간의 자유 의지적 측면이 간과될 수는 없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배격하고 여전히 죄악 가운데 거하는 자들은 자신들의 행위에 대한 심판의 보응을 받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13:49 주의 말씀이…퍼지니라. - 본절은 바울과 바나바 뿐 아니라 최근에 새롭게 개심한 사람들에 의해 복음이 비시디아 지방으로 확산되어 나갔음을 시사해준다. 그리고 동시에 바울과 바나바가 그 지방에서 일정한 기간 동안 복음을 증거했음을 암시해 준다. 즉 '두루 퍼지니라'(디에페레토)는 말은 미완료 과거로서, 복음의 확산이 일시적 현상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전파되었다는 사실을 나타내 준다.
13:50 경건한 귀부인들과 그 성내 유력자들을 선동하여. - 여기서 '경건한 귀부인들'이란 유대교로 개종한 이방 고위층 부인들을 가리킨다. 당시 여러 소아시아 도시들과 같이 이곳에서도 고위층 부녀자들은 정치적이고 종교적인 면에 있어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한 것 같다. 기록에 의하면 비시디아 안디옥의 고위층 여자들은 로마 황제에 의해 행정관이나 주요 경기의 대회장으로 임명되었으며, 심지어 스미르나(Smyrna)에서는 유대인들이 그같은 여자를 회당장으로 선출할 정도였다고 한다(Robertson). 그런데 이곳 유대 종교 지도자들은 이러한 귀부인들과 그 성의 유력한 지도자들에게 접근하여 그들을 선동해 바울과 바나바를 핍박한 것이다. 이는 약삭 빠르고도 세속 권력에 철저히 아부하는 유대인들의 면모를 잘 보여준다. 그리고 우리는 바울의 전도에 있어 그를 가장 괴롭히고 방해한 것은 이방인들이나 그들 통치자의 자발적인 박해가 아니라 동족 유대인들의 모함과 선동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13:51 저희를 향하여 발에 티끌을 떨어 버리고. - 원래 이러한 풍습은 유대인들이 이방인의 땅을 다녀올 때 이방인의 먼지 조차 부정한 것으로 여겨 그것에 접촉되면 부정하게 될 것을 염려하여 본국으로 돌아올 때 먼지를 떨어버리는 의식적 정결 예식이다. 그런데 바울과 바나바가 이렇게 행한 것은 결국 그리스도를 배척하는 불경건한 유대인들은 하나님 앞에 부정한 '이방인'과 같은 자들로서 그들에게 하나님의 심판이 있을 것을 경고하는 행위이다. 이와 관련해서는 마 10:13,14 주석을 보다 참조하라.
이고니온. - 비시디아 안디옥에서 남동쪽으로 약 120km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한 성읍이다. 행 14:1 주석 참조.
13:52 제자들은 기쁨과 성령이 충만하니라. - 여기서 '제자들'은 바울과 바나바의 전도를 받고서 예수를 믿게된 비시디아 안디옥의 새 신자들을 가리킨다. 그러므로 공동번역은 이를 '안티오키아의 신도들'로 번역하고 있다. 아무튼 본절은 저들에게 박해와 핍박 같은 심각한 장애물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도리어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신앙의 담대한 모습을 보여 주는데 그 이유는 그들이 계속적인 성령의 충만함을 받았기 때문이었다(행 2:46,47).
연구자료
전 3차에 걸친 바울의 전도 여행과 로마 여행
이방인의 사도였던 바울의 전 3차에 걸쳤던 전도 여행과 미결수의 신분으로 로마로 가서 1,2차 투옥을 거치면서도 꾸준히 전도 사역을 행했던 모라 여행은 그리스도의 복음이 세계 만방의 이방인에게로 전파되는 결정적인 동기가 되었었다.
따라서 바울의 행적들을 살펴보는 것은 먼저는 사도행전의 후반부의 내용과 바울 서신서들의 배경을 이해하는데 있어 매우 유익할 것이다. 더 나아가 세계 만민을 구원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구속사(救贖史)가 구약 선민 이스라엘 중심에서 세계 만민에게로 확장되어 초대 교회 시대의 역동적 역사를 이해하는데 큰 도움을 준다. 이에 전 3차에 걸친 그의 전도 여행과 로마 여행에 관한 개략적인 사실들을 도표와 지도를 통해 살펴보도록 하겠다.
제 1차 | 제 2차 | 제 3차 | 로마 여행 | |
관련성구 | 13:1-14:28 | 15:40-18:22 | 18:23-21:19 | 27:1-28:31 |
기간 (A.D.) | 47-49년(약 2년) | 49-52년(약 3년) | 53-58년(약 6년) | 59-61년(약 3년) |
거 리 | 약 2240km | 약 4,500-5,600km | 약 4,500-5,600km | 약 3,800-4,000km |
동반자 | 바나바, 마가 요한 | 실라, 디모데, 누가 (도중 합류) | 누가와 디모데 (도중 합류) | 로마 군인들과 다른 죄수들 |
주 요 사 역 | ․ 안디옥 교회의 파송을 받음(13:2) ․ 바보에서 박수 엘루마를 물리치고 로마 총독 서기오 바울에게 전도함(13:6-12) ․ 마가 요한이 예루살렘으로 돌아감(13: 13) ․ 루스드라에서 앉은뱅이를 치유함, 사람들이 그를 신(神)으로 받듦(14:8-18) ․ 안디옥으로 돌아와 보고함(14:21-28) | ․ 제 1차 전도지의 몇 교회들을 방문, 굳게함(15:47-16:5) ․ 성령의 인도로 마게도냐 지역으로 감(16 :6-17) ․ 빌립보, 베뢰아, 데살로니가, 고린도 지역에서 복음 전파함(17:1-34) ․ 에베소에서 아굴라와 브리스길라 부부와 동역함(18:19-22) ․ 예루살렘 교회 방문 후 안디옥으로 돌아옴(18:22) | ․ 2차 전도지의 몇 교회들을 방문, 굳게함(18:23) ․ 에베소 두란노 서 원에서 약 2년 6개월간 말씀을 강론함(19:1-4) ․ 고린도전․후서와 로마서를 기록함(20: 1-6; 롬 16:23; 고후7:5-16) ․ 가이사랴를 거쳐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전도여행 결과를 보고함(21:10-19) | ․ 총독 베스도가 바을을 로마로 송환토록 명령함(27:1,2) ․ 시돈에서 친구들의 대접을 받음(27: 3-5) ․ 뵈닉스로 가는 도중 유라굴로 광풍을 만났으나 기적적으로 살아남(27:9-44) ․ 멜리데 섬에서 바울은 독사에 물렸지만 살아남(28:1-10) ․ 2년간 로마에서 연금 상태로 있으면서 복음전파함(28:30,31) |
의의 | ․ 이방 전도의 가능성 확인 및 체계화 ․ 이방인 개종에 있어서의 할례 문제가 제기됨(15장) | ․ 소아시아 중심에서 유럽 지역으로 선교사역을 확장함 ․ 살전, 살후의 직접적인 배경이 됨 | ․ 제 1,2차 전도여행을 통해 세운 교회들을 굳게함으로 복음의 뿌리가 내리게 함 ․ 고전, 고후, 갈, 롬의 직접적인 배경이 됨 | ․ 제국의 수도 로마에 복음을 전파함으로써 복음의 새계 전파에 기틀을 다짐 ․ 옥중서신 엡․빌 골․몬의 직접적인 배경이 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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