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평
시각, 청각 이미지의 복합적 융합 --황인선의 작품에 대하여
김 송 배 (시인. 한국현대시론연구회장)
1. 시각적으로 투영한 그리움 우리가 현대시를 창작하거나 감상할 때 살펴보는 주안점은 이미지의 재생으로 발현된 시적 상황과 전개과정에서 창출하는 주제에의 접근이라고 할 수 있다. 일찍이 영국의 시인 워즈워스는 시란 힘찬 감정의 발로이며 고요로움 속에서 회상되는 정서에 그 기원을 둔다는 교훈적인 명언으로 우리 시인들을 유로(流露)하고 있는 것을 보면 시 창작에서 이미지의 활용을 가장 중시하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 이미지의 생성은 그 시인의 삶을 통해서 과거의 체험을 상상력으로 재생하여 현재의 현실과의 상생 또는 화해와 융합으로 새로운 심상(image)을 창출하게 되는 것이다. 여기에는 우리 인간들이 간직한 오관(五官-눈, 코, 입, 귀, 손)에 의해서 접목하거나 접촉하는 현장에서 이미지는 생성되어 작품으로 연결하는 특성을 지니고 있다. 이러한 이미지의 투영을 연관지으면서 살펴본 황인선 시인의 작품들은 우선 시각과 청각에서 흔하게 접할 수 있는 상황들이 그의 진솔한 언어의 그림으로 발현하는 점을 간과(看過)하지 못한다. 먼저 그의 시각적인 이미지로 언어의 그림을 그려내고 있다.
얼마나 기다렸기에 바다 빛깔이 하얗게 바래었을까.
하늘과 바다가 맞닿은 곳으로 창백한 낮달이 가고 있다.
그물질하는 어부들과 조개를 캐는 아낙들, 꼬부랑꼬부랑 울엄니도 그리움을 캐고 있었다.
아득한 수평선 저 멀리 바라보기만 해도 왈칵 눈물을 쏟을 것 같던 추억의 그림자.
석양이 내려앉은 해변에 나란히 놓여져 빈 바람 맞는 고무신 한 켤레. --「송도 앞바다에서」 전문
황인선 시인은 시각적으로 착목(着目)한 인천 ‘송도 앞바다에서’ 바라본 삶의 현장에서 우리들의 애환이 질펀하게 널브러져 있어서 바다와 인간과의 교감에서 탐구하는 ‘추억의 그림자’를 발현하고 있다. 그는 시적인 상황 설정을 하얗게 빛바랜 바다와 창백한 낮달, 어부들과 아낙들 그리고 ‘꼬부랑꼬부랑 울엄니’까지 ‘추억의 그림자’를 시적인 발상의 동기를 부여하면서 작품을 전개하고 있다. 이러한 그의 ‘그리움’의 진원지는 결론으로 적시한 마지막 연 ‘석양이 내려앉은 해변에 / 나란히 놓여져 / 빈 바람 맞는 / 고무신 한 켤레.’에서 그는 ‘왈칵 눈물을 쏟을 것 같던’ 바다와 울엄니와의 그리움과 추억이 복합적으로 이미지로 투영되고 있는 것이다. 황인선 시인은 이처럼 그의 정서와 사유(思惟)는 그의 시선이 착목하는 어떤 지점에서나 ‘그리움’이라는 절실한 내면의 진실이 잠재하고 있어서 그가 접목하는 시각적 사물에서 상관하는 그의 관념은 삶에서 사무치는 애환의 결괴이리라.
잔물결로 밀려와 물안개로 핀 내밀한 그리움을 품고 물 위에 투영된 푸른 산 그림자 속에 흔들리는 벗풀 그 가녀린 흰 꽃이 되어 너에게 간다 한바탕 자란 풀들은 주체하지 못하여 바람에 휘둘리고 산을 관통하는 터널과 같이 일직선으로 다가선 너와의 거리 후드득 산돌림이 시작되자 고요하던 수면엔 수없이 많은 파문이 꽃으로 피어난다 목화솜만 한 그리움이 먹장구름으로 소나기로 뿌려지고 있는 것 강 건너 신작로에 멈춰 선 버스가 외로 간 나의 찬란한 형상을 태우고 너를 향해 가쁘게 달려가고 있다. --「산돌림」 전문
그는 이 작품에서도 이러한 그리움이라는 관념 이미지를 확인할 수 있겠으나 시적 정황(situation)은 ‘물 위에 투영된 푸른 산 그림자 속’ 또는 ‘고요하던 수면엔 수없이 많은 파문’ 그리고 ‘강 건너 신작로에 멈춰 선 버스’ 등의 시각에서 추출한 이미지는 한 폭의 해변의 수채화를 감상하는 듯한 흡인력을 발산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이미지는 시 창작에서 아주 중요한 핵심으로써 과거 회상뿐만 아니라, 미래지향성의 기원이나 희망도 우리들의 성정(性情) 곧 오욕칠정(五慾七情-喜怒哀樂 愛惡慾)에서 생성하는 정의(情誼)에서 시적인 지향점이 다양하게 형상화하는 경향을 엿보게 한다. 그는 여기에서서도 ‘잔물결로 밀려와 물안개로 핀 / 내밀한 그리움을 품고’나 ‘목화솜만 한 그리움이 먹장구름으로 / 소나기로 뿌려지고 있는 것’과 같은 어조(語調)로 그가 평소에 각인(刻印)해 둔 ‘그리움’에 대한 이미지가 그의 시야에서 사라지지 않고 작품으로 승화하는 시법을 이해하게 한다. 이처럼 시각적 현장에서 취택한 이미지들은 작품 「꽃차를 마시며」에서 ‘아버지 병수발하며 / 가슴 쓸어내리시던 /수많은 낮과 밤도 지금은 /빈 잔에 남아있는 꽃송이처럼 / 홀로 계신 어머니 // 꽃차를 마시며 /어머니와 제 인생을 봅니다.’라거나 작품 「감꽃 목걸이」에서 ‘아카시아꽃 지고 뻐꾸기 우는 / 청록빛 숲에 / 노란 밤꽃이 번져간다 / 제비집 덩그러니 비어있는 한낮 / 털북숭이 봄이는 / 문지방에 눙치듯 있고 / 반쯤 열린 대문 사이로 / 만화책 실은 엿장수 지나고 / 아이스케키 장수 지나고 / 느티나무 옆집 아이 실금실금 지나간다’ 그리고 작품 「역방향」에서도 ‘끝없이 펼쳐지는 눈 덮인 평야를 / 가로지르는 열차는 / 나를 역방향에 앉혀놓고 / 지나간 풍경만을 보여주고 있었다.’라는 상황을 시각적으로 전개하여 추억 속에서 재생한 그리움이 주제로 형상화하고 있음을 이해하게 한다.
2. 공명(共鳴)의식과 청각적 이미지 현대시의 이미지 중에서 시각 다음으로 청각적인 이미지에 많은 관심이 집중되는 것은 만유(萬有)의 자연 사물에서는 시각적으로 감지한 후에 모든 감각이 형성되는데 먼저 청각의 접근은 우리들의 신체 조건상 어쩔 수 없는 형태의 습관성인지도 모른다. 황인선 시인은 ‘소리’에 민감하다. 그것도 현장에서 들리는 현재의 소리를 비롯하여 지금은 사라져서 들을 수 없는 ‘인연의 소리’까지도 유심히 경청(敬聽)하는 특성이 바로 작품에 투영되어서 주제와 연결하는 시법이 남다르게 공감할 수 있게 한다.
신새벽 어둠을 밀어내는 푸른 물결이 산협(山峽)을 타고 안개를 헤치며 내려온다.
천상에서 내려와 흐르는 소리 땅속까지 미물을 깨우고 잔물결로 끊겼다 이어지는가.
저승길이 문밖인데 생사의 갈림길에서 살아오는 소리 미망(迷妄)을 깨트리는 소리 번뇌를 털고 일어나는 소리
사생구계(四生九界)를 허공에 걸어놓고 안개구름 사이로 부서지는 햇살 끊겼다 이어지는 인연의 울림. --「범종 소리」 전문
그는 우선 이 ‘범종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이 종소리는 ‘미망’을 깨트리거나 ‘번뇌’를 틀고 일어나 ‘사생구계’의 허공에서 울리는 ‘인연의 울림’을 의미심장하게 듣고 있다. 옛날 이태백이 어떤 절에 새긴 종명(鐘銘)에서 ‘마음을 맑게 하고 풍속을 깨우치고 음향을 조화시키며 또한 원기(元氣)를 통달케 한다’라는 종(鐘)소리가 던져주는 의미는 예사롭지가 않다. 황인선 시인도 이러한 종소리에 매료되어 새벽 안개 속에서도 은은하게 들리는 종소리를 그는 ‘천상에서 내려와 흐르는 소리 / 땅속까지 미물을 깨’우는 새 생명에 활기를 불어넣는 ‘생사의 갈림길에서 / 살아오는 소리’라는 청각(聽覺)의 위대한 경지를 설정하고 있다. 이처럼 그는 범종이 일깨우는 산사의 메아리가 바로 ‘안개구름 사이로 부서지는 햇살 / 끊겼다 이어지는 인연의 울림.’으로 이 세상의 모든 미망과 번뇌를 해소하는 해법으로 그의 진정한 내면의 심기(心氣)가 형상화하고 있는 것이다.
참나무 숲을 지나 산모롱이 돌면 동춘동 284번지 초가 한 채
흙담에 이엉 얹어 두른 뒤란에는 탈곡한 콩 키질하는 할머니 촤르르 촤르르 찰진 소리로 쭉정이며 검불이며 날리셨다.
촤르르 촤르르 키질하는 소리는 바닷물 드나들 때 몽돌 소리 조개 잡아 오시는 어머니 바랑에는 갯내음에 묻어오는 바람 소리
참나무 숲을 지나 산모롱이 돌면 되감긴 시간이 흑백사진으로 돌아와 차르르 차르르 영사기 돌아가는 소리. --「키질하는 소리」 전문
황인선 시인이 지금까지 허공에서 울리는 범종 소리의 정감에서 인간의 인연에 의한 고뇌를 분사(噴射)했다면 이제는 ‘탈곡한 콩 키질하는 할머니 / 촤르르 촤르르 찰진 소리로’ 그의 청각은 전환하고 있다. 이러한 할머니의 키질하는 소리는 바로 ‘바닷물 드나들 때 몽돌 소리 / 조개 잡아 오시는 어머니 바랑에는 / 갯내음에 묻어오는 바람 소리’로 승화하여 ‘흑백 사진’ 속의 ‘되감긴 시간’으로 감회(感懷)를 적시하고 있어서 그가 발상하는 ‘소리’에 대한 시법은 바로 ‘키질하는 소리=영사기 돌아가는 소리.’라는 등식이 성립하여 그의 사유의 중심축을 형성하고 있는 것이다. 이 밖에도 그가 작품 「암울한 밤의 기억」에서 ‘괘종시계의 태엽 풀린 타종 소리는 / 할아버지 / 가래 끓는 기침 소리 // 뒤란의 무성한 앵두나무만큼 / 해묵은 날들을 / 해소기침으로 살아오셨다.’거나 작품 「정경」에서도 ‘허리가 엉거주춤한 주인 아낙의 잔소리’와 ‘아낙의 성화가 괭과리 소리를 닮아가도’ 그리고 ‘얼굴이 불콰한 사내의 큰 기침 소리’ 등에서 황인선 시인이 구가하는 청각적 이미지의 적절하게 형상화하는 시법을 읽을 수가 있을 것이다.
3. 삶에 대한 애환과 기원 의식 황인선 시인에게서 다시 조망(眺望)할 수 있는 의식의 흐름은 우리 인간 모두에게 당면하는 애환에 대한 화해의 시법이다. 그는 어떠한 외적 사물이거나 생활 속 상황이거나를 불문하고 그의 시각이나 감각에는 우리 인생문제와 상관하는 이미지와 주제를 흡인하는 생동감을 갖는다는 점을 간과하지 못한다. 이러한 시적 발상이나 동기 그리고 상항 도입에는 그가 여망(輿望)하는 인성의 진실성을 탐색하기 위한 일련의 심리적인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인본주의(humanism)를 실현하기 위해서 전개하는 시법의 일환이라고 할 수 있다.
손두부 좋아하던 영감님은 저기서 잘 계시는지 높고도 높아 막막한 하늘엔 저 홀로 낮달이 떠가는데
쑥국새 우는 산골에 남겨져 해 뜨면 일하고 달 뜨면 잠드는 땅이나 파는 땅강아지 --「산골 살이」 중에서
어린 나이에 시집와서 갯일, 밭일에 가는 허리 끊어질 듯 아파도 바람꽃처럼 배시시 웃기만 하더니
돈독이 올라 한눈 팔린 사내를 물결 건너편에서 살려달라고 손짓을 하며 소리도 없이 울부짖던 여인 --「바람꽃」 중에서
그렇다. 그는 이러한 시적 상황을 도입함으로써 그가 지향해야 할 인본의 근원을 탐구하고 거기에서 인지한 현실적인 애환에서 야기되는 번민들을 화해시키는 시법을 탐색하고 있는 것이다. ‘산골 살이’하면서 ‘손두부 좋아하던 영감님’과 ‘살려달라고 손짓을 하며 / 소리도 없이 울부짖던 여인’이라는 상황은 바로 그리움의 진원지를 파악하는 추억이나 회상을 통해서 의식의 전환을 여망하거나 기원하는 시법을 이해하게 한다.
혹한(酷寒)의 눈보라 속에서 홀로 청청(靑靑)한 장송(長松) 되거든. 잘 벼린 톱과 칼로 베고 다듬어 간직한 말씀 올곧이 새겨 다음 세상(世上)에 전해주게나. --「만취」 중에서
그대 노을 짙어질수록 가슴엔 갈라진 상처 깊으니 함박눈 펑펑 내리시어 그대 품속에 잠들게 하소서. --「상렬」 중에서
여기에서 ‘다음 세상(世上)에 전해’ 달라거나 ‘그대 품속에 잠들게’ 해 달라는 기원의 의지는 그가 지금까지 적시해온 애환에 대한 간절한 기구(祈求)의 형태를 시적으로 염원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의 현대시를 분석해보면 대체로 자신의 삶에서 분화(分化)한 애환의 체험에서 이를 과거의 시간성을 인식하고 성찰하면서 현재와 미래에 대한 기원의 의지가 표출되어 나아가서는 새로운 인생관과 가치관을 재정립하는 형태의 시법으로 정리되는 것이 현대시의 기본 작법으로 이해하게 되는데 요즘은 복잡다단한 현실과 거기에 수반하는 의식의 변전에 따른 다채로운 시법이 성행하고 있어서 시 감상과 해석에 상당한 이론이 필요하게 되었음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황인선 시인은 결론적으로 지금까지의 시각, 청각 이미지에서 적시한 시법들이 다음과 같이 그의 사유를 정리하고 있어서 주목하게 된다. ‘바다로 길게 흘러내린 기슭을 휘돌아 / 그대가 다가온 것은 / 아니, 거침없이 밀려온 것은 / 갯바위로 얼어버린 내가 / 그대를 몹시 그리워하기 때문이며 / 그대 품속에 담뿍 잠겨 / 그대 눈빛 손짓에 피어나는 / 붉은 노을이 된 까닭입니다(「밀물」 중에서)’라는 어조와 같이 결국 그는 ‘그리움’이라는 명제를 성실하게 해법을 탐구하려는 그의 시학은 언젠fkeh 밝은 햇빛을 볼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갖게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