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 : 아버지의 영향력 | ● 일 시 : 2017년 2월 26일 오후 2시 ● 장 소 : 동두천성당 소성전 ● 진 행 : 김재기 대건안드레아 ● 강 사 : 김학룡 형제 | |
◯ 아버지학교의 설립배경과 남성회복운동,아버지회복운동, 가정회복운동을 설명 한다 ◯ 아버지 영향력에 대한 강의를 통하여 아버지로부터 받은 영향력과 자신이 아버지로서 자녀에게 끼치고 있는 영향력에 대하여 배운다 ◯ 주요한 것과 소중한 것의 의미를 배우고, 가계에 흐르는 나쁜 영향력을 끊고 좋은 영향력은 계속 유지하여 계승시키도록 격려한다 ◯ 허깅을 통하여 형제들과 교제를 나눈다 | ||
● 진행순서
시 간 | 주 요 내 용 |
12:00~13:50 | 강의실 세팅, 봉사자 식사, 봉사자 대표기도 |
13:50~14:20 | 지원자 환영 / 찬양, 영상물 시청 |
14:20~15:45 | 신부님 환영인사, 아버지학교 배경, 현황 설명, 진행자 시작 인사말, 안내 구호제창, 조이름 / 구호 / 포스터 그리기, 발표 |
15:45~17:50 | 영상물 시청, 봉사자 체험나눔 ,아버지의 영향력 강의(전반), 조별나눔, 간식 / 찬양, 전체나눔 |
17:50~18:30 | 허깅지도, 아버지의 영향력 강의(후반), 묵상, 허깅 및 축복기도 연습, 폐회 |
● 참여 봉사자 : 33 명
김재기 대건안드레아, 한인규 미카엘,
황철순 마르띠노, 박범이 마테오
장선경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오건석 야고보
서교문 바오로, 이호섭 아우구스티노
김장섭 프란치스코 강정식 안드레아
김학경 스테파노 하원호 안드레아
김영복 말셀리노 하재환 하상바오로
최종문 세례자요한 양회선 안토니오
염용훈 가롤로 이호철 스테파노
박인설 바실리오 이계성 요셉
권영훈 라파엘 황선근 마르티노
김기회 베드로 방대식 도미니꼬
이명우 베드로 이승용 안젤로
주맹범 프란치스코 한경수 레오
이기주 루까 박홍점 바오로
조용희 토마스모어 변내호 레오
윤순식 레미지오
● 봉사자들의 준비
<강의실 세팅> 소성전 장의자를 정리하고 있다. 봉사를 할려면 힘도 좀 써야 한다 장의자가 다행이 그리 크지 않아서 행복 하단다 | <음향기기 점검> 아버지학교의 흥을 돋구어 줄 찬양팀이 미리 음향기기를 점검하고 있다 | |||||
<팀장회의> 이 시간 부터는 팀장들이 잘 판단하시어 하셔요, 매뉴얼 대로... | <우리의 다짐> 양쪽옆 가장 잘 보이는 곳에는 우리의 다짐이 자리를 잡는다 |
● 봉사자 대표기도 (기도팀장 김장섭 프란치스코)
사랑이신 하느님 지금이 시간 이곳에서 시작하는 아버지학교에 지원자 형제님들과 함께 할 수 있는 봉사자로 기회와 여건을 마련해 주심에 감사 드립니다 저희는 앞으로 5주간 이곳에서 그동안 깊이 돌아보지 못했던 진정한 삶의 가치와 방향을 생각해 보며 찾아가는 소중한 시간을 갖고자 합니다 |
● 지원자 환영 및 찬양 (찬양팀장 : 박범이 마테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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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학교 개설 10주년을 맞이하여 최북단 지역인 동두천에서 드디어 39기 아버지학교를 시작하였다. 입구에서는 관리팀 봉사자들이 웃는 얼굴로 지원자들을 반갑게 맞이하여, 테이블까지 안내해 주었다. 테이블에서는 조장님들이 더욱 반가이 맞이하며 명찰까지 달아 주고 있고 찬양팀의 흥겨운 노래가 아버지라는 무거운 짐을 지고 있는 지원자들의 긴장을 풀어 주고 있다 |
● 영상물 시청
<가족사진> (노래 : 김진호)
바쁘게 살아온 당신의 젊음에 의미를 더해줄 아이가 생기고 그날에 찍었던 가족사진 속의 설레는 웃음은 빛바래 가지만
어른이 되어서 현실에 던져진 나는 철이 없는 아들이 되어서 이 곳 저 곳에서 깨지고 또 일어서다 외로운 어느 날 꺼내본 사진 속 아빠를 닮아 있네
내 젊음 어느새 기울어 갈 때쯤 그제야 보이는 당신의 날 들이 가족사진 속에 미소 띈 젊은 아가씨의 꽃피던 시절은 나에게 다시 돌아와서
나를 꽃 피우기위해 거름이 되어버렸던 그을린 그 시간들을 내가 깨끗이 모아서
당신의 웃음 꽃 피우길~ 피우길~ 피우 길~ 피우길~ |
● 신부님 환영 인사
홍석정 가시미로 동두천성당 주임신부님 좋은 아버지 되셔요 |
● 아버지학교 배경, 현황 설명 (운영위원장 한인규 미카엘)
2006년 12월 백석동 성당에서 1차 준비모임을 가졌다. 2008년 5월 17일 마두동성당에서 제1기 아버지학교를 개설하였고, 지난해 10월 덕소성당에서 열렸던 38기 아버지학교를 거치며 총2,098명의 아버지들이 아버지학교를 수료하였다. 39기 아버지학교가 여러분들의 인생을 돌아보고 아버지로서의 참된 역할을 생각해 보는 귀중한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
● 인사말/구호제창 (진행자 김재기 대건안드레아)
아버지학교에 오신 여러분을 환영합니다. 저는 이번 39기 아버지학교 진행을 맡은 김재기입니다. 아버지학교는 2002년도에 일산 11기를 수료했고, 아버지학교를 통해서 받은 은혜를 갚고자 부족하지만 아버지학교에 봉사자로 참여하고 있습니다. |
우리는 아버지학교를 축구경기의 하프타임에 비교합니다.
일단 땀을 식하고 한숨 돌리며 쉬는 시간이죠.
그러면서 전반전 경기를 돌아보고 후반전을 승리하기 위해 준비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한 가지 다른 점은 감독과 코치가 없다는 것입니다.
단지 우리들 스스로가 감독이고 코치이고 선수입니다.
여기 줄무늬 유니폼을 입은 저희들은 평범한 아버지들입니다. 아마츄어들입니다.
단지 여러분보다 아버지 학교를 조금 먼저 수료한 사람들일 뿐입니다.
역할도 사정 되는 껏 돌아가면서 합니다.
단지 여러분들과 함께 있으려고 왔습니다.
이제 39기 5주간 아버지학교 1주차를 시작하겠습니다.
이제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 우리의 아비 됨을 고하도록 하겠습니다.
주님! 제가 아버지입니다.
● 조 이름, 조 구호, 포스트 만들기
1조 | 2조 | 3조 | 4조 | 5조 | 6조 | 7조 | 8조 |
구 분 | 조 장 | 조 이 름 | 조 구 호 |
1조 | 주맹범 | 제일좋아 | 일보다 가족! 조아~조아 |
2조 | 장선경 | 느티나무 | 사랑합시다! |
3조 | 서교문 | 원더풀 아빠 | 원더풀*5 아빠 화이팅! |
4조 | 김학경 | 화합 | 기둥 아버지! |
5조 | 하원호 | 5형제 | 오! 데디 차차차! |
6조 | 김영복 | 꼬기오 | 사랑만이 살길이다, 사랑, 사랑, 사랑! |
7조 | 한인규 | 럭키세븐 | 아빠의 힘, 아빠의 힘, 아빠의 힘, 파이팅! |
8조 | 하재환 | 앗싸 앗싸 | 팔팔한 아버지가 되자! |
● 조별 발표
◎ 1조
000 형제 : 나는 아버지로서 잘 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더 잘 하라고 아내가 보냈다. 많이 배우고 가겠다
000 형제 : 부드러운 아버지 노릇을 제대로 하고 싶어서 지원 했다
000 형제 : 자녀를 9명 두고 있다. 더 좋은 아빠가 되라고 아내가 나 몰래 신청하여 왔다
000 형제 : 내가 뺀질거리며 생활을 하니까, 정신 좀 차리라고 아내가 보낸 것 같다. 알찬 시간이 되도록 하겠다
000 형제 : 아내의 강요에 의하여 할 수 없이 지원 하였다
◎ 2조
000 형제 : 이번 기회에 술을 좀 줄여 보라고 아내가 접수를 하였다. 노력해 보겠다
아내는 000성당 성가대 지휘자이고, 자녀들도 모두 음악을 전공했다
000 형제 : 둘째 아들이 작년에 세상을 떠났다. 나는 최근에 영세를 받았다 (81세로 최고령자임)
000 형제 : 70세를 넘긴 나이에 내가 잘못 지원했나 생각하고 봉사자에게 다시 물어 보았는데
괜찮다고하여 오게 되었다. 꼭 수료를 하겠다
000 형제 : 사위와 같이 왔다. 아버지학교에 오는데 20년 걸린 것 같다, 꼭 수료 하고 싶다
000 형제 : 예비자 교리중에 있다. 재혼을 하였는데 아내가 가장 먼저 신청서를 접수했다
암수술을 받은 계기로 산에 다니며 거의 심마니로 생활을 하고 있다
◎ 3조
000 형제 : 딸만 다섯으로 모두 시집 보냈는데 막내가 44세인데도 아직 시집을 안 가고 있다
000 형제 : 장인과 함께 39기 아버지학교에 지원했다. 딸이 9개월 밖에 안 되었지만
좋은 아빠가 되기 위해 미리 노력해 보려고 지원 했다
000 형제 : 동두천으로 이사를 온지 1년정도 되었다. 냉담을 하다가 다시 신앙 생활을 시작했다
아내의 권유도 있었지만, 나의 아버지의 마음을 알고 싶기도 하여 스스로 지원했다
000 형제 : 사업의 성공에만 너무 몰두 하다가 가정을 소홀히 하였다
여러 선배님들에게 많이 배워서 인생의 턴잉 포인트가 되는 계기를 마련하고 싶다.
멋진 아버지가 되어 보고 싶다. 많은 것을 배우는 5주간이 되고 싶다
000 형제 : 군대생활을 16년간하고, 동두천 시청에도 20년간 근무를 한 후 2015년도에 퇴직했다
세례를 받은지 1년 됐다. 아들이 십 몇 년전에 나의 욱하는 성격 때문에 하늘나라로 갔다
그 후 내가 어떻게 생활을 하였는지 나 스스로도 잘 모르겠다.
그래서 나는 아빠 자격이 없다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 같은 아버지가 되지 않토록 돕고 싶은 마음에서 지원하게 되었다
현재 효.인.성 전문강사로 활동 중이다. 이번 기회에 진정한 아버지로 재 탄생하고 싶다
◎ 4조
000 형제 : 딸에게 좋은 아버지가 되고 싶어서 지원을 하였다
000 형제 : 아내가 신청을 했다. 아버지학교 분위기가 어떻게 돌아 가는지도 모르고 왔다
아무튼 5주간 열심히 해 보겠다
000 형제 : 오래전부터 아버지학교에 관심이 많았다.
본당의 주변 사람을 보니 아버지학교 수료자의 모습이 참 좋아 보였다
나는 가정에서 고양이 보다도 서열이 낮은 것 같다. 그래서 내가 살기 위해 지원을 했다
000 형제 : 결혼을 늦게 했고, 자식이 없어 고생을 많이 했다
자녀를 포기 하려던 45세때 아들을 낳았다. 그 아들이 지금 8살이다
하나 뿐인 아들을 잘 키워 보고 싶은 마음에서 지원했다
000 형제 : 자녀들이 성당에 나가지 않아 많은 기도를 하고 있다
마침 동두천성당에서 아버지학교가 개최되어 좋은 기회로 알고 신청했다. 많이 배워 가겠다
◎ 5조
000 형제 : 아내의 강요로 신앙생활을 한지 3~4년 정도 됐다.
예전에는 가족은 안중에도 없이 내 마음대로 살았었다.
그러나 잘못 살아 온 것을 깨닫게 되어 속죄하는 마음으로 신앙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아버지로서 제대로 역할을 하지 못해서 많이 배우려 왔다
000 형제 : 철저한 개신교 신자이신 장모님과 같이 살고 있다
000 형제 : 현재 전곡성당에서 예비자 교리중에 있다
개신교에서 35년간 신앙생활을 했었다. 오래전부터 아버지학교를 가고 싶었다
늦었지만 아버지 역할을 잘해 보고 싶어 지원했다
000 형제 : 덕계동으로 이사온지 20일 정도 됐다
신앙생활을 한지 3년정도 됐는데, 작년에 ME를 다녀 온후로 아내와는 관계가 많이 좋아졌다.
그러나 자녀들과는 관계가 아직 서먹 서먹하다
주보를 보고 스스로 지원을 했다. 5주간 열심히 해서 좋은 아버지가 되고 싶다
000 형제 : 아내가 신청을 했다.
아들이 아버지학교에 가는 것을 반대하였는데 더 좋은 아빠가 될 것을 약속하고 왔다
● 영상물 시청
<아버지의 영향력>
당신은 아버지로부터 어떤 영향력을 받았습니까? 그리고 지금 당신은 어떤 아버지입니까? 어릴 때 자신이 그렇게 싫어했던 아버지의 소리 지르는 모습을 어느 듯 자신이 재현하고 있었다 어떻게 해서든지 이런 상황을 빨리 해결하기 위해 도움을 받고 싶은 마음이 컵니다 |
● 봉사자 체험나눔 (000 0000)
저는 36살에 결혼하였습니다.
결혼 전에 자신만만 했습니다.
사랑하는 남녀가 같이 사는데 무슨 문제가 있겠나 라고 생각했고
부부관계의 어려움을 겪는 분들 이야기를 들으면 이해가 안 되었습니다.
“아니, 남자가 잘하면 되지, 어지간히 뭘 못하니까 저렇지”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웬걸요! 그게 아니었습니다. 살아보니 “소와 사자의 동거”였습니다.
결혼하기까지 쌓아온 제 나름의 가치관을 전부인양 생각하고,
남녀의 역할에 대한 보수적인 마음을 그대로 지닌 채 결혼하여 가정을 이루고,
자녀를 낳고 키워왔으니, 여러 경우에 아내와 마찰이 있었습니다.
아내를 먼저 아끼고 사랑하기 보다는 “나의 아내이기에 이러이러 해야 한다”는
당위적 생각이 앞섰고 아내와 상의하고 아내의 의견을 존중하는 자세가 부족하였고,
아내가 실수했을 때 먼저 감싸고 격려해 주기보다는 왜 그 모양이냐 하는 식으로 비난을 하였습니다.
특히 잘못했던 것은 아내와의 말다툼 막바지에 물건을 던진 폭력입니다.
힘이 더 센 사람이 참지 못하고 폭력으로 위협을 하여 아내의 마음에 깊은 상처를 남겼고,
곁에서 울며 그 싸움을 말리던 자녀들의 가슴을 멍들게 하였습니다.
저는 2013년 그러니까 벌써 4년전이군요.
그해 1월과 2월 2주차에 걸쳐 아버지와 아들이 같이 참여하는 “품은꿈” 프로그램에서
큰아들 00이와 편지를 쓰고 많은 대화를 하였습니다.
그런데 000가 어릴 때, 아마 5-6살 때 였을 것입니다.
제가 아내와 다투면서 설거지통에 그릇을 던졌는데,
옆의 것까지 깨진 것을 생생하게 기억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제 머리를 아무리 쥐어짜도 기억이 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이 편지를 보면서 제 마음이 아팠습니다.
“아, 어린 나이에 받은 아픈 상처가 이렇게 까지 남아있는 거구나.”
그때 그것에 대해서 용서를 청했습니다.
또한 어느 때는 자녀를 교육한다는 이유로 자녀의 입술이 파랗게 질릴 정도로 때린 적이 있습니다.
사내 아이들이 어렸을 때 서로 싸우면 원칙을 정했습니다.
둘 다 “엎드려 뻗쳐” 시키고 구두주걱으로 두 대씩 때렸던 것입니다.
교육효과를 내야 했으니 눈 감고 때렸었습니다.
그때 둘째는 그래도 꼼짝 않고 맞았었습니다.
그런데 첫째는 아주 아파하면서 피하고 무서워했습니다.
그래도 때렸고, 그때 울면서 입술까지 파래졌던 큰아이의 얼굴은 아직도 제 기억에 남아있습니다.
나름대로 열심히 한다고 하는 데
가정에서 자주 삐걱거리는 어려움을 겪으며 뭔가 실마리를 찾아 다시 새롭게 시작하고 싶었고,
다른 사람의 도움도 받아야 겠다는 간절함이 있을 때
“아버지학교” 라고 쓴 현수막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때 “그래, 배워야겠다.
아버지의 역할이 어떠해야 하는지 배우고 싶다”는 생각으로 등록을 하였습니다.
1주차 토요일이었습니다. 직장을 마치고 부지런히 달려갔습니다.
오후4시부터 밤 10시까지의 시간, 그런데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르겠습니다.
봉사자 형제님들의 뜨거운 환송과 격려를 받으며
마치고 와서 아내와 자녀들에 대한 허깅과 축복기도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아버지께 쓰는 편지” 숙제는 집중하기 위해 긴 시간을 내야 하기에 어려웠습니다.
며칠을 미루다가 어느 날 날이 밝지 않은 이른 시간에 일어나
돌아가신 아버지께 편지쓰기 숙제를 하려는데 쓰지도 못하고 내내 눈물을 쏟아야만 했습니다.
저는 어지간히 겁쟁이였나봅니다. 어릴 때 별명이 울보였습니다.
그 선하셨던 어머님이 “너에겐 무슨 말을 못 하겠다”고 할 정도였습니다.
무슨 꾸중이나 싫은 소리를 듣기만 하면 먼저 지레 울었기 때문입니다.
아버지가 왜 그리 무서웠는지 모릅니다. 그분께 뭐 하나라도 사달라고 졸랐던 기억이 없습니다.
제가 먼저 아버지에게 무슨 말을 시작했던 기억이 없습니다.
뭘 크게 잘못했는지 아버지의 그 산같이 큰 손으로 뺨을 맞아서 별이 보였던 기억이 납니다.
아버지가 저를 어떻게 가르치셨는지 학교 공부시간에 움직이면 큰 일 나는 줄 알았습니다.
아마 초등학교 6학년 때까지는 공부시간에는 로보트처럼 의자에 앉아 있었습니다.
그런데 일 년에 이틀정도만 쉬시는 그 아버지가 제가 초등학교 5학년 때
3박4일 경주와 부산으로 가는 수학여행을 같이 가시겠다는 거였습니다. 정말 싫었습니다.
그때 어른들 숙소는 따로 떨어져 있었는데
다른 아이들은 부모를 만나러 왔다 갔다 하는데 저는 한 번도 안 갔습니다.
하도 안가니까 선생님이 가보라고 해서 딱 한 번 갔었습니다.
그 3박4일중 아버지랑 둘이 찍은 사진은 딱 하나입니다. 그것도 남이 억지로 찍어준 것입니다.
지금도 그 사진의 제 얼굴은 싫어서 마지못해 찍었던 한 어린이의 찡그린 표정이 전부입니다.
그런데 제가 결혼하고 사회생활을 하면서 40을 넘겼던 어느날
문득 그 무서웠던 아버지가 참 힘드셨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1.4후퇴 때 남쪽으로 홀홀 단신 내려와
천지에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이 자리를 잡기가 참 힘드셨겠구나 였습니다.
돌아가신 아버님께 편지를 쓰던 그 새벽에 아버지의 모습이 하나하나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제 돌사진 안에는 소아마비여서 서지 못했던 형을 뒤에서 잡아 세우시고 뒤에 숨어 계셨던 분,
그 형을 재활시킨다고 그 옛날 이화여대 재활 훈련소까지 업고 다니시던 모습,
4-5살 된 저를 팔에 안고 늠름하게 서 계셨던 아버지 사진, 그 옛날 동네에 TV가 하나밖에 없던 때,
어느 날 밤 TV가 있던 친구네 대문 앞에서
친구 이름을 부르며 문 열어 주기를 기다리던 제 모습을 보셨는지,
바로 그 다음날 TV를 사오셨던 아버지, 그런데 중고 TV라 그날 밤으로 고장이 났던 기억....
저에게 “개관천선”이란 한자를 신문 귀퉁이 여백에 쓰시며 설명해주시던 모습,
나중에 당뇨병이 심해지셔서 큰 대접에 설탕물을 타서 벌컥벌컥 들이키시던 모습,
빠짝 마르셨던 그 분이 제가 중학교 1학년이었던 어느 가을 날
청량리 고모네서 학교를 다니던 저를 보러 일부러 오셨었습니다.
저는 청량리 시장 바깥 어느 길 위에서 아버지를 만났습니다.
저는 한 마디도 못한 것 같습니다.
아버지께서 서서 저를 물끄러미 쳐다 보시며 뭐라 하셨고 웃으셨던 기억이 납니다.
그리고 한 두 달 후 11월 고모네서 자다가 새벽 창을 두드리던 소리를 들었습니다.
그리고 친척 아저씨가 조금 전에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전해 주었습니다.
편지를 쓰면서 보니 참 좋으신 분이었습니다.
아무리 잘못했어도, 사실 어릴 때 잘못했어야 뭐 큰 잘못이 있었겠어요
하여튼 어릴 때 제 생각에 “이제 죽었구나” 라고 생각한 잘못도
그날 밤만 무사히 넘기면 다음날은 거기에 대해서는 일체 한마디도 안하셨습니다.
어느날 낮이었습니다. 부모님께 허락을 못 받을 게 뻔하니까
말도 안하고 황금철인이라는 영화를 몰래 보고 늦게 날이 어두워 졌을 때 돌아왔던 저와 제 동생은
어떡하든 그 날 아버지한테 들키지 않고 뒷방 이불 속에 들어가서 자는 척만 하면 됐습니다.
초등학교 5학년때 3박4일 여행, 아버지와 단 둘이 있었던 데이트였습니다.
그때 아버지가 고모님에게 “그 많은 애들 가운데서도 내 아들만한 아이가 없다”고 하셨답니다.
이것은 제가 받은 “자녀가 사랑스런 20가지 이유”였습니다.
친구 빚보증을 서셨다가 그 옛날 500만원을 대신 갚으시고 힘드셨을 때도
한 번도 누구를 탓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그 고생이 나중에 자식들에게 복이 될 거라고 하셨습니다.
일 년에 이틀 추석과 설날만 쉬실 수 있었습니다.
당신이 책임져야할 가족을 부양하고 지키기 위해 그리 성실하게 일을 하셨습니다.
중1때 저를 보러 청량리로 오셨던 아버지, 돌아가시기 전에
그 어린 아들을 이 세상에 남겨 놓고 떠나야만 한다는 것을 아시고
마지막으로 그 아들을 보러 오셨던 것이었습니다.
그땐 제가 너무 어렸습니다.
겁쟁이고 울보고 뭘 모르고 저 하나 크기도 힘들었던 때,
아버지는 또 너무 일찍 돌아가셨습니다. 제가 조금 더 컸더라면 뭐라도 물어봤을 겁니다.
또 아버지 마음과 처지도 더 깊이 생각할 수 있었을 겁니다.
나중엔 남자대 남자로 이야기도 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때 제가 좀 더 컸더라면 한 번 안기기라도 했을 것입니다.
아니 아버지가 표현을 할 줄 알았던 분이었다면
저를 마지막으로 뜨겁게 안아주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셨을 것입니다.
“아들아, 사랑하는 아들아, 이 아버지가 네가 다 클 때까지 지켜주지 못할 것 같구나.
미안하고 마음이 많이 아프구나. 그래도 00 야, 아빠는 네가 늠름하게 잘 크기를 바란다.
그렇게 믿는다. 그리고 하늘나라에서도 언제나 널 지켜 줄거다.” 라고요!
그렇게 일찍 돌아가신 선친께서 저에게 가장 소중한 선물을 주셨습니다.
그 분이 저에게 남겨준 가장 큰 선물, 바로 신앙이었습니다.
아버지가 편찮으셨을 때 영세를 받으셨습니다.
그리고 아버지가 돌아가신 다음 온 가족이 영세를 받았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땐 뭘 몰랐지만 저에게 신앙의 유산을 남겨 주지 않았다면
사춘기 성장과정에서 얼마나 방황했을까를 생각합니다.
자라나는 제가 크게 헤매지 않게 방향을 일러 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하늘의 아버지를 배울 수 있게 하셨습니다.
그 새벽에 울면서 돌아가신 아버지께 손으로 썼던 그 편지,
조장님에게서 돌려 받은 그 편지를 어디다 두었는지 아무리 찾아도 없습니다.
아마 맨 밑줄에는 이런 내용으로 “아버지 참으로 감사합니다” 라고 썼을 것입니다.
그 새벽 내내 눈물을 흘리며 첫 숙제를 하면서 저의 아버지학교는 시작하였고
매주 토요일 설레는 마음으로 달려와 같은 조원 아버지들과 함께 울고 웃으며 수료하였습니다.
아버지학교는 제 인생에서 놓쳐서는 안됐을 소중하고 크나큰 선물, 터닝 포인트였습니다.
제가 아버지 학교를 다니면서 가장 깊이 느낀 것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아버지 직분의 중요성이었습니다.
“남자라는 신분의 최고 절정은 바로 아버지됨이다”라는 것이었습니다.
가정의 머리로서, 목자로서, 영성을 가진 아버지로서의 신분에 맞는 인격과 행동으로
아내의 마음에 편안함과 행복을 주고, 자녀들이 안정과 편안함을 느끼며 무럭무럭 성장할 수 있고,
그들이 힘들 때 그냥 편히 가까이서 쉴 수 있는 쉼터, 버팀목, 밑거름이 될 수 있다면
그 이상 아버지로서의 영광은 없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아버지학교 5주간동안 아내가 저에게 말했습니다. 무엇보다 당신 얼굴이 참 밝아졌다고요!
아내도 말했습니다. 내 가슴속의 응어리가 풀린 것 같다고요!
그 때 아내와 자녀들의 얼굴이 얼마나 새롭게 사랑스러워 보였는지 모릅니다.
제가 아버지학교를 수료한 지 그새 십 여 년이 흘렀습니다.
저는 그 때 축복기도 숙제 단 한 가지 만으로도 5주간의 본전을 따 뽑은 아버지입니다.
올해 스물 네 살, 스물 두 살 청년인 아들들의 머리를 거의 매일 만질 수 있습니다.
이제 머리 다 큰 아이들의 속 마음 까지는 모릅니다. 고민이 뭔지 깊이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홀로 견뎌야 할 시험 보러 갈 때, 홀로 싸워야 할 시합에 나갈 때
제 손을 통해 하느님의 축복을 전할 수 있으니 대박난 아버지입니다.
그리고 아버지 학교를 통해 받은 은총이 크기에, 별다른 능력도 없지만
그 때 빚진 것을 조금이라도 갚는다는 마음으로 사정이 허락 되면은
아버지학교에서 이것 저것 봉사하기도 합니다.
끝으로 제가 어렸을 때 하늘나라로 가신 선친께 제 마음을 고백하며 마치겠습니다.
“아버지, 저와 형제들을 낳아서 모두 하나라도 잃지 않도록 보호하고 키워주고 사랑하셨던 아버지,
저도 어느새 아버지와 같은 나이의 아버지가 되었습니다.
저도 끝까지 아버지로서 살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아버지,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
“주님, 제가 아버지입니다!”
● 전반부 강의 : 아버지의 영향력 (김학룡 형제)
<내 마음속에 계신 나의 아버지를 찾아보자> -.아버지 모습과 나의 어떤 모습이 닮았는가? -.나의 자녀들은 나를 어떤 아버지로 생각하고 있을까? -.내가 조금도 닮고 싶지 않고 자식에게 상처만을 주는 아버지라 하더라도 그 아버지가 돌아 가시면 내가 더 잘 해드리지 못함에 후회로 남게 된다 -.내가 아버지에게 크게 실망을 드리어 나를 보지 않겠다고 하신 아버지라고 하더라도 언제나 아버지는 나를 기다리고 계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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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별나눔
● 찬양
● 전체나눔
● 허깅 지도
상처 입은 마음을 감싸 주는 가장 힘 있는 교감 이젠 더 많이 품어 주고 더 많이 안아 주세요 허깅(포옹) 사랑, 위로, 생명, 기적의 언어 입니다 |
● 후반부 강의 : 아버지의 영향력 (강사 : 김학룡 형제)
<사랑하면 닮고, 미워하면 똑 같아 진다> -동전의 뒷면을 보니 긍정적인 면을 많이 보게 되었다 그래도 나는 아버지의 좋은 면을 많이 닮았다 -지금도 아버지를 미워하는 형제는 아버지의 나쁜 면을 닮아가고 있다 -가문의 역사를 새로 쓰는 방법은 나의 아버지를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달려 있다 -아버지 사랑 합니다 |
● 축복기도 연습
유대교 성인식에서 아버지는 아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을 한다.
“아들아, 네가 살아가면서 무슨 일이 일어나든지,
성공을 하든 못하든, 중요한 존재가 되든 못되든,
건강하거나 병들거나
항상 너의 어머니와 내가 너를 얼마나 사랑하는가를 기억해라”
● 공지 및 폐회
아버지학교는 숙제가 있습니다.
숙제를 통하여 풀지 못하였던 부분들을 풀어보시기 바랍니다.
용서하지 못하였던 부분이 있으면 용서하시고 사랑을 고백하시기 바랍니다.
숙제1: 아버지에게 편지 써오기
숙제2: 아내와 자녀에게 축복기도하기
숙제3: 매일 아내와 자녀와 허깅하기
● 마침기도, 허깅
1주차 진행을 대폭 줄여 보려고 처음으로 시도를 해보았다
저녁식사를 간식으로 대체하고 식사 시간도 별도 할애 하지 않고 찬양시간을 이용하였다
강의 시간도 크게 단축 시키며, 모든 파트의 진행시간을 조금씩 줄여 보고자 노력하였다
그러나 당초 계획하였던 시간을 다소 초과는 하였지만, 8시가 조금 지난 시간에 마침기도 까지 마칠 수 있었다.
첫댓글 살아 있네요~ㅎㅎ~수고하셨습니다~
근데 저 스테파노가 아닌디요~ㅎ
스테파노 집안으로 양자 가셨나요?
에그
바실리오 형제님 생생감동 감사 드립니다.
1주차 생생 소식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바실리오 팀장님
사랑합니다^^
으앜 ^^ 카메라에, 녹음기에, 속기에, 큰 흐름따라 깡그리 통채로.... 그저 서기팀장님의 처분에 맡기옵니다 ^^ 정성과 노고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생생하고 꼼꼼한 1주차 현장 정리에 감사합니다. ^^
의정부 아버지학교의 큰 변화가 시작 되었네요 :)
서기팀장님의 정성이 서기록에 고스란히 잘 전달되었군요 ^0^
전반적인 진행사항을 물 흐르듯 전달한 내용 잘 읽었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
서울 아버지학교의 고수님께서 방문해 주셨군요
고재희 요셉님의 기록에서 많이 배웠습니다
관심가져 주셔서 고맙습니다
1주차에 못가서 깨름직했었는데, 생생한 소식 전달에 감사드립니다.
2주차에 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