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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마술 조우
공원의 친실장.
그녀는 공원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평범한 들실장이었다.
남들보다 완력이 우수한 것도 아니었고, 딱히 잔머리가 돌아가지도 않았다.
그저 전대로부터 배운 얕은 지식을 바탕으로 남들이 하는 짓을 유심히 지켜보다가,
그게 도움이 된다 싶으면 곧장 따라하는 정도의 관찰력이 약간 있을 뿐이엇다.
그렇게 남들과 비슷한 수준의 생활력으로 동료들이 굶는 날에는 굶고, 보스에게 맞는 날에는 같이 맞으며,
마라가 나타나면 같이 겁탈 당하고 하는 특별할 일 없는 평범하기 짝이 없는 공원 분충의 삶을 영위하며
사육실장의 꿈을 키워가고 있던 어느날이었다.
그 날도 평소와 마찬가지로 남들과 다를 바 없는 하루를 시작하고 있었다.
"데에... 뜨거운 데스우.... 비씨가 안온지 오래오래 된 데스우..."
뜨거운 여름날의 공원을 친은 혓바닥을 내밀고 지친걸음으로 타박타박 걷고 있었다.
평소처럼 이른 아침부터 일찍 일어나 곤히 자고 있는 자들을 위해 비닐봉투를 들고 밥을 모으러 나섰지만,
다른 동료들도 그러하였듯이 소득을 얻지 못한 채 패잔병의 걸음으로 귀가하고 있었다.
"이젠 밥씨도 뜨거뜨거워서 먹을 수가 없는 데스우...."
빨갛게 덴 뭉툭한 손을 낼름낼름 핥으며 친은 아침의 참상을 다시금 떠올렸다.
불과 엊그제까지만 해도 인간시간으로 7시면 충분히 일찍 일어나 쓰레기청소차가 오기전에 비닐봉투를 뜯을 수 있을 터였다.
그러나 어제부터 시작된 태평양고기압의 열돔현상과 이상고온으로 아침 5시부터 작열하는 태양은
아스팔트를 40도 가까이 뜨겁게 달구어 7시쯤 도착할 즈음엔 음식물 쓰레기가 담긴 검은 비닐봉투는 작열하는
숯덩이처럼 달궈져있었다.
엄살많은 실장석으로선 비닐봉지를 뜯기는 커녕, 3초 이상 쥐는게 불가능할 정도의 온도다.
"이대로 가면 공물도 못 바쳐서 또 뒤지게 처맞는 데스우...."
사정이 어떻든 보스는 알바가 아니니 친과 동료들은 줄줄이 분노의 철권을 맛보고 말리라..
보스의 힘이 빠져 그나마 펀치가 약해질 뒷줄에 설 방법을 고심하다가 자기 신세가 서러워진
친은 전대 부모를 생각하며 눈물지었다.
마마라면 어떻게 했을까?
세레브함과 강인함 현명함 모든 요소를 갖추었던 마마.
마마와 함께 여름을 나긴 했지만 절망적인 뇌용적의 한계로 친은 독립하기전 봄 정도만 어렴풋이 기억하고 있을 뿐이었다.
물론 친이 그토록 숭상하는 전대는 이 이상 더위가 찾아온 첫날 더위를 먹고 정신이상에 걸려 그토록 금기시하던 탁아.
그것도 셀프 탁아를 시전하기 위해 인간들 앞에서 비장의 엉덩이 춤을 추다가 더위에 짜증난 인간의
손에 엉덩이를 기준으로 몸이 두개가 되어버렸지만 말이다.
"마마라면 어떻게든 했을 것인데스우! 마마 지켜봐쥬는 데스우!"
'데 데챠 데챠아악! 벌리지 마는데스 또옹니잉게에에엔!!'
아직 구천을 떠도는 전대의 영혼이 하늘 너머에서 비참한 비명을 질러댔지만 친에게 들릴리가 있나.....
그저 친은 결의를 다지며 오늘도 살아가리라를 굳게 가슴속에 새길 뿐이었는데....
바로 그때 공원 입구에서 들리는 소리가 있었다.
"야 ㅅㅂ ㅋㅋㅋ"
"뎃! 이 소리는...."
공원에 찾아온 인간의 소리!
친은 긴장하며 그늘로 몸을 감췄다.
공원에 찾아오는 닝겐은 두종류가 있으며 그게 파악되기 전까진 결코 니서선 안된다는걸
친은 동료들의 희생을 통해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과연 저 닝겐들은 이로운 자들인가 해로운 자들인가 숨죽이고 동정을 살피는 친의 눈에
들어온 것은 자기보다 두배는 큰 꼬마아이들이 야구모를 뒤집어 쓴 채 깔깔거리는 모습이었다.
"꼬마닝겐!!"
친은 탄식을 내뱉었다.
꼬마어린이는 70%이상이 해로운 쪽에 가까운 소악마들이었다.
거기에 모습을 찬찬히 지켜보니 뒤집어쓴 야구모는 물론 볼에 대일밴드 마저 붙이고 있는게 아닌가?!
이건 더 볼 것도 없이 빼박 확정이다.
저들은 해로운 닝겐들 중에서도 악질중의 최악질.
개구쟁이 들이었다.
일단 걸리면 곱게 죽을 생각은 버려야만 하는게 기본.
그날 죽음을 맞게 해주면 정말 운이 좋은 케이스일 것이다.
'시.발 좆된데스.... 숨는 데스..'
다행히 개구쟁이들에겐 약점이 있었다.
그리고 친은 그걸 잘 알고 있었다.
개구쟁이들은 한가지에 몰입하면 시야가 극단적으로 좁아져 주변색적을 소홀히 하기 때문이었다.
아직 들키지 않은 친으로서는 안전지대로 대피할 여유가 있었다.
바로 평소에는 죽음이 도사리는 관리사무소였다.
개구쟁이는 모두 넷. 뒤집은 야구모에 뚱댕이 빠박이와 실눈 말라깽이라는 전형적인
악마의 파티였는데 친은 이중 가장 시야가 넓은 실눈 말라깽이가 망을 보느라 주위를 살피기 직전에
관리사무소 밑틈으로 몸을 숨기는데 성공했다.
'하늘에 계신 세레브 실장신께서 돌봐주신데스... 조금만 늦었어도 저꼴이 됐을게 분명한 데스우...'
친은 안도의 한숨을 작게 내쉬며 개구쟁이들이 하는 짓을 지켜보았다.
평소엔 죽음의 사자인 관리인이 있는곳이지만 개구쟁이는 결코 범접할 수 없는 안전지대.
친이 할 수 있는건 관리인이 나타나 개구쟁이들을 쫓아낼때까지 여기서 꼼짝달싹하지 않는 것 뿐....
"테치이이잇! 뜨거운 테치이잇! 와타시의 금비단결 머리를 질투하지 마라는 테챠아아앗!"
개구쟁이들이 벌이는 광경은 너무나 무서운 것이었다.
개구쟁이들은 겁없이 접근한 자실장 하나를 붙잡고 돋보기를 들고 빛을 조사해 자실장의 머리를 산채로 태우고 있었다.
본디 돋보기로 검은색 이외의 물체를 태우는데는 꽤 시간이 걸리지만 지금은 초고온의 이상열돔
현상으로 태양이 말 그대로 끓고 있었다.
거기다 거의 이주째 비가오지 않아 공원 수도도 단수된지 오래였다.
씻지않아 푸석푸석한 자실장의 머리에 불꽃이 피어오르는데는 단 30초도 걸리지 않았다.
그리고 한번 타오른 불꽃은 왕성한 생명을 얻어 자실장의 전신을 지배할 기세로 온몸을 태우기 시작했다.
"씨발 테챠아아아아아아! 뜨거워 뒤지는 테챠아아아! 마마 살려줘 테챠아아아아아!
세계를 지배할 플라티나 퀸의 후보인 와타시가 죽는건 세계멸망급 손실 테챠아아아아!
똥마마가 세상을 멸망시키고 있는 테치아아아 구해줘 구해줘 시발 테챠아아아아!"
울부짖는 자실장.
그러나 그 작은 수분마저 불꽃은 허락하지 않았다.
그리고 아이들은 자실장의 비명을 들으며 자지러지게 웃어제끼고 있었다.
가히 지상에 강림한 소악마가 따로 없었다.
"푸하하하 이 등신 하는 소리를 봐.ㅋㅋ 시발 판타지 소설 써도 되겠네 ㅋㅋㅋ."
야구모 소년이 눈물을 닦자, 빠박이 소년이 씨익 웃으며 호주머니에서 액체가 찰랑이는 물약통을 꺼내었다.
"그냥 죽이긴 존나 아까운데 생명 연장 좀 해줄까?"
"미친 빠박이 같으니라고 야 공원에 조질 참피가 얼마나 많은데 다양한 반응을 즐겨야지."
야구모가 반박했지만 실눈 말라깽이는 액체의 정체를 눈치채고 교활한 미소를 지었다.
"난 빠박 말에 찬성. 재밌어 보이는데?"
타죽어가는 자가 열렬히 찾는 친에게 배빵을 신나게 놓고 있는 뚱땡이를 제외한 셋의 의견이 갈렸다.
그러나 2:1로 빠박의 유리.
빠박은 잔인한 미소를 지으며 타들어가는 자에게 무릎을 끓어보였다
.
"이거이거 세계를 구할 플라티나 퀸을 알아보지 못해 죄송하나이다."
태울걸 다 태운 불꽃은 이제 생명을 다해 자실장과 함께 꺼져가고 있었지만 빠박의 말이 들리자
자실장은 행복회로를 풀가동하며 남은힘을 끌어모아 고개를 들었다.
"너무..늦은테치 씨발똥닝겐.... 그치만 늦을때가 가장빠른 때라는 말도 있는 테치이...
그걸 알면 어서 와타치를 구하는테치이... 와타치를 늦게 구한 죄는 오마에 똥닝겐 구족을 산채로
포를 떠도 부족한 대죄인 테치. 그치만 세계를 다스릴 와타치는 관대한..테치... 그러니 이베리코 황제살과
독일 비어스부르켄 소세지 호주 와규 슈퍼 스페샬 등급 스테이크와 300년 명인의 참치 대뱃살 스시를
갖다바치면 마라노예정도로 용서해주는 테치....."
"대박 ㅋㅋ 이거 완전 개소리 마스터인데? 실눈 찍고있지? 티비플레이에 올리면 우리가 탑먹겠다!"
즐거워하는 야구모의 말에 실눈은 고개를 끄덕인다.
당연히 이런 재미를 1초라도 놓칠 순 없는 법.
실눈의 휴대폰 녹화는 열심히 돌아가고 있었다.
"알겠사옵니다. 분부 받들어 모시겠습니다. 그럼 불을 꺼드릴테니 몸을 활짝 펼쳐주시옵소서."
"아..알겠는테치...어서 물을 주는 테치...."
자는 갈망하는 눈초리로 물약통의 액체를 올려다보며 온몸을 쭉 피려 애썼다.
불에 잔뜩 타올라 오그라든 전신은 이미 운동기능을 상실한채로 굳어져 있었지만
자실장은 행복회로를 풀가동한다!
몸만 활짝펼치면 남아있는 이 버릇없는 불꽃을 해치우고 경각에 달한 자신의 생명은 태양처럼
피어오를 생명수를 맞이할 수 있다고!
그 근거없는 소망을 향해 행복회로가 풀가동하며 위석이 최후의 힘을 짜내었다.
카오스파워가 발동하는 것이었다!
"테에에에에에치이이이이야아아앗!"
똥을 뿌직뿌직 뽑아내며 전신 3도 화상에 가까운 그 몸이 덜덜 거리며 움직이기 시작한다.
자실장의 몸은 신비로운 녹색광채로 휩싸여 상처가 아물고 옷이 생성되기 시작한다.
옷에 새겨지는 666의 글자.
지옥의 고통을 행복만으로 이겨낸 실장에게 쥐어지는 진화의 증거였다.
그러나 카오스보다 악마가 강했다.
당연히 빠박이는 자실장이 카오스로 진화하는 꼬라지를 지켜볼 생각이 자기 머리털 만큼도 없었다.
"진화! 실패닷 똥벌레야!"
"흙은 흙으로! 똥은 똥으로 돌아갈 지어다!"
빠박이는 마치 성수를 뿌리듯 열십자로 액체를 흩뿌렸고 실눈이 영창하듯 주문을 외친다.
그러자 액체가 정말 성수라도 되는 양 막 카오스로 개화하기 시작한 자실장의 전신에
붉은 불꽃을 꽃피우기 시작하는게 아닌가?!
"테챠아아아아아아아아!"
원래 모든 장르가 그렇듯이 변신하는 중에 공격당하면 데미지가 배로 들어가는 법이다.
빠박이가 과학실에서 빼돌린 알콜램프의 알콜 세례를 얻어맞은 자실장은 행복회로가 깨지는
동시에 느껴지는 불꽃의 포옹에 다시금 찢어지는 듯한 비명을 내질렀다.
빠박이와 실눈은 동시에 외쳤다.
"마무리다!"
그 말에 호응하듯 조금 떨어진 장소로 이동했던 야구모가 도움닫기를 해오며 근처 벤치를 딛고
공중도약을 하며 폼을 잡는다.
그리곤 땅에 착지함과 동시에!
호주머니에서 돋보기를 꺼내어 자실장에게 조사하며 외쳤다.
"받아라!! 홀리이이이이잇 버스터!!!!!!"
"테챠!!!!테에챠아아아아아아아아아!"
"내 기를 주마!"
어느새 달려온 뚱댕이가 양 손바닥을 펴서 야구모의 등에 대고 기를 주는 시늉을 하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성수처럼 뿌려지는 알콜.
끊임없이 내리쬐는 돋보기 광선.
전신을 포옹하는 타오르는 불꽃.
자실장이 내지르는 비명이 쉬어갈라질 무렵이 거의 다 되서야 쩌적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청명한 파킨 소리가 울렸다.
"모두 수고했어!"
"악은 멸망한다!"
"퇴마완료!"
"언제든지 덤벼라 마귀들아!"
누가 누굴 보고 마귀라고 하는걸까.. 친은 이를 달달떨며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미..미친 데스우.. 카오스마저 이기지 못하는데스우. .
태어나 단 한 번도 본적은 없지만, 카오스 파워가 얼마나 절대적인 힘인지 위석으로 전해지는 본능을 통해
친은 알고 있었다.
그런데, 완전하게 개화하지 못했다곤 하지만 카오스의 가능성을 보인 자실장을 개구쟁이 소악마들은 불꽃을
부리며 철저하게 농락. 죽음에 이르게 만든 것이다.
'있을 수 없는 데스우... 걸리면 죽는 데스우.... 저건..저건.. 현실이 아닌 데스우....'
개구쟁이들은 잔인하기만 할 뿐. 힘은 성체 인간보다 미약하다는 사실을 친은 잘 알고 있었다.
카오스는 성체 인간을 순식간에 엉망진창으로 만들 수 있는데, 그런 카오스를 잿더미로 만드는 개구쟁이들은
친실장의 눈에 악마 그 자체였다.
열심히 현실도피를 하던 친실장. 공포에 질린 그녀는 자기도 모르게 성대한 빵콘을 하고 말았고, 더운날씨에 풍기는
자극적인 악취를 개구쟁이들은 놓치지 않았다.
"숨어있는 분충 발견~☆"
"조....조땐 데스야아아아아!! 마마아아아!!!!!!"
실눈이 창틈으로 관리인이 있는지 확인하는 사이, 빠박이는 친의 머리채를 붙들고 관리실 컨테이너
밑에서 손쉽게 끄집어내었다.
"이놈은 뜸들이지 말고 바로 태워버리자. 덩치가 커서 뜸들이면 오래 걸릴 것 같아."
빠박이의 제안에 야구모자가 고개를 끄덕인다.
압도적인 공포와 공황상태에 빠진 친은 이들이 무슨말을 하는지 알아듣지도 못했지만, 단 한가지는 알 수 있었다.
죽음의 선고가 내려진 것이다.
"그럼~ 이번엔 불임 시술을 해보겠습니다~!"
야구모자가 싱글벙글 웃으며 작은 돋보기를 친의 빨간 눈에 들이댄다.
안그래도 눈이 멀어버릴 듯 빛나는 태양이 더욱 강렬한 빛을 뿜으며 친실장의 눈에 쇄도해온다.
눈부심을 넘어선 고통. 눈을 구성하는 액체들이 순식간에 보글보글 끓기 시작하고, 이윽고 시력의 끝을 알리는 토톡하는
은행 튀기는 소리가 막 들리기 시작하기 직전에 친을 구원하는 고함소리가 있었다.
"야이 싸가지 없는 색히들아!!!"
쉬어꼬부라진 가래기침 섞인 고함소리에 힘은 없었다.
그러나 세상에 대적할자 없어보였던 개구쟁이들이 혼비백산하게 만드는 신기한 목소리였다.
저 멀리서 목소리의 주인공. 경비할배가 쇠부지깽이를 흔들며 달려오고 있었다.
"망할 놈들아! 이젠 불장난 질이냐?! 니네 부모 모셔와 이 호로자식들아!!"
모순 가득한 경비할배의 말이었지만, 개구쟁이들은 그걸 지적할 여유따위는 없었다.
"열여덟! 조때따!! 튀어 얘들아!!"
리더격인 야구모자의 지령이 떨어지기도 전에 이미 실눈과 빠박이는 일행을 버려두고 전력질주를 하고 있었다.
뒤이어 쿵쾅거리며 뚱땡이가 혼신의 힘을 다한 레이싱을 펼쳤고, 야구모자도 짐이 되는 친과 범행도구인 돋보기를 내던진 채
이들의 뒤를 따랐다.
"서지 못해!! 망나니 놈드을!! 더운날에 숨차게.... 허.. 시펄... 날도 더워 죽겠는데 쓰레기 치울 거리만
잔뜩 만들고 지뤌이여... 저것들 나중에 꼭 부모한테 배상을 받아내고 말끼야..."
경비할배는 지친 숨을 몰아쉬며, 악마들이 벌인 만찬장을 돌아보았다.
악마들의 뒷풀이는 참혹했다.
시꺼멓게 타버린 자실장의 소사체가 하나. 배빵을 맞다못해 눈이 빠지고 내장을 입으로 모두 내뱉은 채 죽어있는 친이 하나.
그 친의 고기를 탐닉하는 겁을 상실한 들실장들 여럿.
만찬을 벌이기 전, 입맛을 돋우는 전채요리로 치뤄졌던 [지렁이 밟기]에 쓰인 우지차 여럿.
경비 할배는 날도 더운데 내려진 일감의 보너스에 땅이 꺼져라 깊은 한숨을 쉬며 빗자루를 들고 쓰레기를 치웠다.
물론, 여기에 방금까지 잡혀있던 친은 없었다.
친은 내달리고 있었다.
"드디어............드디어..........."
그리고 웃었다.
"손에 넣은 데스!! 마술의 정수를 손에 얻고야 만 데스!!"
친실장의 손에는 반짝이는 돋보기가 쥐어져 있었다.
밤새 심각한 내부 화상으로 부풀어오른 눈두덩을 매만지며, 친은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다행히 눈의 상처는 최악을 맞이하기 직전 멈춰져 다음날이면 어떻게든 복구가 될 것이라고 위석의 느낌으로 판단했다.
친실장이 생각하는 것은 꼬마들과 돋보기에 대한 일이었다.
카오스를 물리친 아이들. 성인보다 약한 아이들. 성인보다 강한 카오스.
본래 세상의 이치대로라면 아이들은 카오스를 당해낼 수 없어야 마땅했다.
그러나, 친이 겪은 참상은 달랐다.
이 기묘한 방정식을 풀어내려면 변수 X가 필요했고, 친실장은 그 변수 X가 바로 자신의 손아귀에 있다고 믿고 있었다.
아이들에게 잡히기 전까진 미처 생각하지 못했지만, 아이들에게 잡혀 눈앞으로 끌려온 태양을 본 순간, 고통과 함께
친실장은 깨닫고야 말았다.
"그랬던 데스우.... 마술.... 그것은 마술이었던 데스우..."
보존식 박스에 있는 실장푸드 하나를 소리나지 않도록 씹으며, 원기를 보충하는 친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마술. 그것이 아니면 이 모든 이야기는 성립되지 않는다.
아이들이 벌인 이해할 수 없던 이야기 "홀리 버스터! 흙은 흙으로!" 도 지금 생각해보면 마술의 주문이 틀림 없다고
친은 생각했다.
그 말과 동시에 무슨일이 벌어졌던가?
생명을 잃었던 불꽃이 생명을 되찾음과 동시에 카오스로 진화하던 자실장을 한 줌 잿더미로 만들지 않았던가?!
"정말 무서운 힘이었던 데스가...."
친은 사악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그간 평범함에 억눌려있던 야심과 야망이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이었다.
"이제 그 힘은 와따시에게 있는 데스."
"데푸풋... 데푸푸푸푸풋....! 데푸푸푸푸푸푸푸푸푸퍄!!"
"마마! 잠좀 자는 테치이잇!"
그렇게 친의 골판지의 밤은 깊어만 갔다.
2.대야망
억눌렸던 친의 야망이 깨어나는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바로 다음날 아침. 평소처럼 먹이를 구하러 나선 친의 차림새는 평소와는 약간 달랐던 것이다.
편의점 비닐 봉투안에 돋보기를 챙겨넣은 친은 기세등등하게 먹이봉투를 향해 길을 나섰다.
평소라면 많은 동료 및 경쟁자들이 봉투 앞에서 사투를 벌이며 먹이를 챙기고 있었겠지만, 이틀간 이어진
뜨거운 실패를 겪어서인지 해가 이글거리는 아침에 음식쓰레기 주위에 얼씬 거리는 녀석은 없었다.
"마침 잘된 데스우."
친은 미소지으며 음식쓰레기 봉투 하나를 만졌다가 화들짝 놀라며 뒷걸음질 쳤다.
그러나 친의 표정은 결코 일그러지지 않았다.
"니깟 분충이 뜨거워봐야 불을 다스리는 와타시보다 강할 수는 없는 데스우! 봉인을 태워주는 데스우!!"
친은 어제 꼬마들이 벌인 짓을 생각하며 집중했다.
카오스가 되기전 자실장에게 불을 붙일 때, 야구모자 꼬맹이는 빛을 최대한 작게 만들었다.
"태양이여! 작아지는 데스우!!"
친은 빛이 최대한 작아지도록 하기 위해 노력하면서 주문을 외웠고, 과연 친실장의 마력에 반응한 것인지
봉투에는 금새 하얀 실오라기가 하늘로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된데스! 된데스! 불꽃을 불러온 데스!!"
순식간에 역겨운 냄새를 내며 비닐을 녹이는 불꽃!
안의 내용물이 젖어있는터라 불은 크게 번지지 않았고 친은 안에서 모처럼의 수확을 마음껏 챙길 수 있었다.
그리고 내용물 중에 특히 마음에 드는 것 또한 있었다.
"럭키데스! 참피갓께서 도우시는 데스!"
말안듣는 사육실장을 폐기한 것인지 안에는 음식물 쓰레기와 함께 뭉개진 사육실장이 꺼져가는 숨을 내쉬고 있었다.
다죽어가는 사육실장은 두 눈이 빠지고 으깨진 상태에서도 뭐가 그리 소중한지 콘페이토 봉지와 분홍색 리본을
소중하게 끌어안고 있는모습이었는데, 이제 야망에 불타오르는 친이 그걸 그냥 둘리가 있나.
"다 뒤져가는 분충에 마술을 쓸 필요도 없는 데스! 와타시의 핵펀치를 받고 뒤지는 데스!!"
"데규가봇!!"
친은 분홍색 리본을 털어 품안에 넣고, 콘페이토 봉투를 챙긴 채 의기양양하게 개선장군처럼 귀가를 재촉했다.
먹이도 충분하고, 전날 바치지 못한 공물도 바칠 수 있게 되었다.
아름다운 리본은 세레브한 자신에게 충분히 어울리는 물건인지라, 당장이라도 머리에 붙이고 싶었지만 그런 건 언제든지 할
수 있다고 친은 생각했다.
일단, 보스에게 공물로 바치고 다시 되찾는게 중요했다.
"이제.... 공원의 보스가 되는 날도 얼마 남지 않은 데스!"
그렇게 행복회로를 돌리며 공원입구에 들어섰을 때, 친은 공원의 분위기가 평소와는 다르다는 사실을 눈치챘다.
어제는 꼬맹이들의 출연으로 도망가고 없던 경비 실장들이 공원 입구에서부터 친을 막아서는게 아닌가?
경비 실장들은 친의 수확물을 확인하더니, 고개를 끄덕이고는 친에게 말했다.
"오마에는 실적이 좋은데스. 보스의 오른쪽 줄에 서는 데수."
왼쪽에 서면 무슨일을 당한단 말인가? 친은 묻고 싶었지만 그 해답은 바로 알 수 있었다.
보스는 공원의 실장들을 도열해 놓고 왼쪽에 줄 선 개털 실장들을 닥치는대로 패고 있었던 것이다.
일반 실장보다 1.5배는 큰 보스는 더위에 짜증이 잔뜩 났는지 크게 흥분한 상태였다.
"오마에타치는! 아무 짝에도!"
"데챠악!"
친과 친하던 옆집 댁이 보스의 철권에 강냉이를 흩날리며 구른다.
"쓸모가 없는!"
"데삐익!!!"
맞은편에 골판지를 편 새댁이 발차기에 배빵을 당하곤 입으로 분대의 일부를 내뱉었다.
치명상이었다.
"똥 분충인 데스우!!"
"한 번만 기회를 주시는 데갸악!!"
이미 수십여구의 성체 실장들이 어딘가 장애를 입거나 목숨을 잃은 채, 바닥에 나뒹굴고 있었다.
피를 본 보스는 더욱 흥분하여 손발을 붕쯔붕쯔 휘둘렀고, 덧없는 들실장의 목숨도 허공에 흩날리고 있었다.
"와타시에게 자랑할만한 실적을 가져온 개념실장은 없는 데스까?
날이 좀 덥다고 빈손질이면 조만간 굶어 죽게 되는 데스!
굶어죽기전에 와타시가 자비롭게 세레브 랜드로 보내주는 데스!!!"
분을 못이기고 씩씩거리며 일장연설을 하는 보스.
물론, 스스로 적당히 했다고 판단했다기 보다는 더위에 체력이 후달려서 더 이상 무리했다간 위석이 터질 것
같아 폭력을 잠시 중단한 것이지만, 그 사실을 알리가 없는 실장들은 그저 고개를 조아리며 보스의 눈치만 살폈다.
하지만 그때, 그런 보스에게 당당히 나서는 실장석이 있었으니 바로 친이었다.
"고정하시는 데스. 보스! 와타시가 보스를 위한 세레브한 공물을 준비한 데스!"
"데뎃?"
"보스의 세레브함을 더욱 빛내줄 리본과, 더운 날씨에 보스의 몸보신을 해줄 콘페이토 데스!"
"콘페이토!?"
모여있는 모든 실장이 아연실색한다.
평범한 먹거리조차 구하지 못하는 판에 평범하기 짝이없는 저 친이 봉투가 터질 정도로 가득한 음식물 뿐만 아니라,
진미인 콘페이토까지 구해오다니!
그러나 보스는 보스자리를 거저먹은 실장은 아니었다.
의심 가득한 눈초리로 콘페이토 봉투를 바라보고는 고개짓으로 친위대에게 신호를 보내자,
친위대는 재빨리 달려가 우지챠 하나를 가져오며 외쳤다.
"수랏상 점검인 데스우!"
콘페이토가 독인지 아닌지 확인하는 과정!
그것까진 미처 생각하지 못한 친은 마른침을 삼켰다.
만약 저 우지챠가 콘페이토를 먹다 죽으면, 친도 함께 그 옆에 나란히 눕게 될 것은 불보듯 뻔한 일.
제 아무리 자신이 불꽃의 마술을 부린다 하더라도 보스를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친은 잘 알고 있었다.
불꽃의 마술을 쓰는데는 약간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약점을 친은 이미 알고 있었던 것이다.
"레훙.. 레후우웅..."
'제발.. 제발 데스...'
찢어진 콘페이토 봉투를 향해 느릿느릿 기어가는 우지챠를 바라보며 친은 참피신에게 기도하고 또 기도했다.
느려터진 우지챠가 콘페이토 한알을 향해 기어가 혀를 내미는 그때까지 영원과도 같은 시간이 흘렀고,
"레후웃! 레후웃!"
탄성과 함께 콘페이토를 탐닉한 우지챠가 기쁨의 탄성을 내지른 그 순간, 무거운 침묵이 깨졌다.
"이 실장은 개념 실장인 데스! 큰 공을 세운 데스! 오마에는 내일 공물을 바치지 않아도 되는 데스! 쉬는 데스!"
보스는 기쁨에 활짝 웃으며 친의 공을 치하했다.
그리고 친 역시 다시 찾아온 행운과 야망을 이룰 기회에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감사한 데스! 보스! 감사한 데스!!"
'정말 감사한 데스. 내일이 오마에의 마지막인 데스.'
어젯밤부터 세워왔던 무서운 계획이 이제 결실을 맺을 때가 다가오고 만 것이다.
다음날. 친은 아침일찍 일어나 보스의 처소로 향했다.
공물을 바치는 일을 쉬게 된 만큼 자유시간을 갖게된 친이었으나, 친은 모처럼 찾아온 기회를 놓칠 수 없었다.
"보스는 수면중인데스! 무슨일인 데스까?"
친위대가 보검을 들고 친의 앞을 가로막자 친은 비굴한 웃음을 띄며, 어제 수확물 중 가장 상태가 좋은
비엔나 소세지 반쪽을 꺼내들었다.
"뎃! 그... 그것은!!"
"송구하지만 수고하시는 데스. 와타시는 오늘 공물을 쉬는 데스가... 케도 항상 고생하시는 보스를 위해
봉사하고 싶은 데스. 와타시가 끝내주는 안마기를 구한 데스요."
돋보기를 꺼내 흔들어 보이는 친.
당연히 친위대는 그게 무슨일에 쓰는 도구인지 알 길이 없었다.
하지만 뭐 어떠랴. 저 물건으로 보스를 때려죽이는건 불가능하고, 조금이라도 소리가 났다간 자신들이 달려들어
도륙내고 말 것이 뻔 한 일.
오히려 저 친이 마사지를 훌륭하게 해내면, 그걸 통과시켜준 자신은 보스에게 특별 포상을 받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라고 행복회로를 돌린 친위대는 소세지를 게걸스럽게 먹어치우며 친으로부터 등을 돌렸다.
그리고 친은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은 채, 보스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보스는 그늘에 누워 늘어지게 잠을 자고 있었다.
그러나, 그 머리가 그늘 밖으로 살짝 삐져나와있는 것을 친은 놓치지 않았다.
행여 보스가 잠을 깰까 숨을 죽이며 다가간 친은, 보스의 머리 끝자락에 돋보기를 대고 빛을 조사하기 시작했다.
'태양이여... 작아지는 데스우...'
주문을 외웠다가 보스가 일어나면 낭패다.
친은 불꽃이 성대하게 붙을 때까지 끈기있게 태양빛을 모았다.
그리고 1분도 지나지 않아 보스가 있는 방은 불바다가 되었다.
"데갸아아아아!!! 데갸아아아아아아!!"
"데푸푸푸푸풋! 꼴 좋은데스 똥분충! 이젠 와타시가 보스인 데스야!!"
보스의 비명에 달려온 친위대가 본 것은 불구덩이가 되어 뒹굴고 있는 보스와
그 옆에서 미친듯이 웃고 있는 친의 모습이었다.
불타고 있는 보스! 빛나는 친의 돋보기!
친은 친위대에게 자신만만하게 외쳤다.
"와타시는 불꽃의 마법을 손에 넣은 데스! 반항하는 똥분충은 숯덩이로 만들어버리는 데스!!"
친위대는 황급히 무릎을 끓을 수 밖에 없었다.
이미 보스는 온몸 가득히 맛있는 냄새를 풍기는 바베큐에 불과한 상태로 변해버리고 말았기 때문이었다.
3. 마술의 끝.
"이제부터 와타시는 보스가 아닌 데스. 와타시를 위대한 불꽃의 마술왕으로 부르는 데스!"
"하...하이 데스.."
"왕 만세 데스!!"
친은 보스가 머리에 차던 리본을 자신의 머리에 달았다.
끝이 검게 그슬리긴 했지만, 그정도 하자는 자신의 위엄으로 충분히 감쌀 수 있다고 믿었다.
자신은 세레브하고 강인한 불꽃의 마술왕이니까!
친이 돋보기를 손에 넣은 그 날밤, 많은 계획을 세웠다.
본래 머리가 좋은 개체가 아닌 친이었으나, 억눌렸던 야망과 분충끼가 터져나오면서 함께 나쁜 쪽으로의
잔머리도 개방되었던 것이다.
"마마! 대단한 테치이!"
"마마가 왕이면 와타치는 공주인 테치!!"
"장녀인 와타치는 공주보다도 위대한 세녀인 테치잇! 왕위를 이을 존재인 테치잇!
오마에타치 차녀, 삼녀 따위하곤 비교도 안되는 테치잇!!"
"이제 와타치를 엄지라고 무시한 똥분충들은 다 뒈지는 일만 남은 레치잇!! 와타치도
왕위 계승권이 있는 엄지인 레챠!!!!!!!"
친의 사랑스러운 자식들은 갑작스러운 신분상승에 호들갑을 떨며, 오도방정을 떨고 있었다.
그리고 친은 그 모습을 오래 볼 생각이 없었다.
"저 똥벌레들을 모두 운치굴에 쳐넣는 데수."
"뎃? 전하?"
"마마?!"
"자는 또 낳으면 되는 데스. 그리고 왕국을 이끌 자들은 저런 분충들이 아닌 데스."
"세녀를 폐하면 안되는 테치이잇!"
"와타시타치는 세레브한 프린세스 테치이잇!!"
"이거 놓는 레치잇! 천한 것들이 어딜 만지는 테챠앗!!!"
오도방정을 떨던 자들은 이제 공중에서 옷이 찢겨지고, 머리카락을 빼앗기며, 훌륭한 독라로 변하고 있었다.
자들이 공용 운치굴로 끌려가는 모습을 시큰둥하게 바라본 친은 친위대들에게 말했다.
"왕국을 이끌 자는. 흑발의 자가 아니면 안되는 데스!"
"흐... 흑발의자?! 사육실장이 되실 생각인 데스까?"
"저 멍청한 똥분충은 자판기로 만드는 데스."
"데갸아아앗!!"
친위대 하나를 자판기로 만들어버린 친은 돋보기를 태양을 향해 높이 치켜들며 외쳤다.
"와타시는 사육실장따위 노리지 않는데스! 불꽃의 마술사왕인 와타시의 이름으로 오늘 선언하는데스!
인간들을 불구덩이에 처넣어 정복전쟁을 벌이는 데스!!! 잘생긴 꽃미남들을 독라노예로 만들어 대대손손
흑발의 자로 왕국을 가득가득 채울 것인 데스!! 흑발과 콘페이토가 넘치는 왕국을 오마에들에게 안겨주겠단 데스야!!"
"오...오오오오!"
공원 참피들은 환호성을 질렀다.
꽃미남!
흑발!
콘페이토!
이 얼마나 달콤한 약속이고, 얼마나 위대한 야망인가!
친은 거드름을 피우며 돋보기를 들고 골판지에 대며 주문을 외친다.
"태양은 작아지는 데스!!"
타오르는 연기에 참피들은 맹렬한 환호성을 질렀다.
"이길 수 있는 데스!"
"왕은 불꽃의 마술사 데스!!"
"인간따위 태워죽이는 데스!!"
친은 참피들의 함성에 오른손을 흔들며 화답했다.
"이 불꽃의 마술의 첫 제물이 될 닝겐을 정한데스! 바로 우리의 철천지 원수!"
"오오...."
"우리의 보금자리를 뺏어가는 도적중의 도적인 데스! 도적단에 불의 심판을 내리는 데스우!!!"
"죽이는 데스우!"
"불태우는 데스우!"
"심판 데스우!!"
그렇게 폐지를 수거해 헐값에 팔아먹던 [조선족고물상]으로의 공격이 건국 첫날 엄숙히 선언되었다.
한편, 신생 참피 왕국이 자신의 고물상을 목표로 삼은 것을 꿈에도 알리가 없는 철웅은
노인들이 모아온 폐지를 검사하고 있었다.
할머니들이 모아온 폐지를 저울에 달고, 돈을 주는 단순한 작업이었지만, 순조롭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아.. 할머니 진짜."
철웅이 불만을 터뜨리자 할머니는 쑥스러운듯이 배시시 웃어보인다.
할머니가 가져온 폐지는 겉의 것만 멀쩡하고 속의 내용물은 전부 젖어있었다.
최근 비가 온 적도 없으니 분명 고의로 저지른 짓임에 분명했다.
내용물을 적셔 무게를 늘리는 가장 대중적이고 평범한 속임수.
이런 속임수에 베테랑 고물상인 철웅이 당할리가 없었다.
그리고 이 할머니는 이번이 처음도 아니었다.
"매번 이러시면 어떡해요. 내가 전에 말했죠? 할머니 한번만 더 이러면 할머니껀 안받는다고."
"봐줘 총각. 손주 생일 선물 사주고 싶어서 그래."
"아니 어제도 그소리 했잖아요!"
물을 적셔봐야 늘어나는 무게는 천원어치도 되지 않지만, 철웅은 결코 봐줄 생각이 없었다.
이런 일을 하나 둘 봐주다 보면, 다른 노인들도 따라하기 때문이었다.
누군 봐주고 누군 안봐주냐며 노인들 특유의 성질과 고집으로 고물상은 난장판이 될 것이고, 그런 꼴을 철웅은
결코 보고 싶지 않았다.
"안받아요! 돌아가! 그리고 할머니는 앞으로 오지마요! 한 두번도 아니고 진짜 너무 하는거 아냐?"
"제발 봐줘... 제발..."
급기야 할머니는 눈물까지 보이기 시작했지만, 이 역시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틈만나면 울어 진짜. 운다고 해결되요? 진작에 도덕을 지켜야 할거 아니야!"
"거 보자보자하니 너무하네. 철웅 자네는 애비도 없는가 그래?"
"아니 이 할아범은 또 왜 끼어들어? 할배도 물건 넣기 싫어?!"
철웅과 노인들의 양보할 수 없는 다툼은 점점 커져 언성이 높아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렇게 모두가 정신이 팔린 사이, 강아지 만한 검은 물체가 고물상 구석으로
후다닥 숨어든 것을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다.
숨어든 것은 바로 다름아닌, 자칭 불꽃의 마술왕!
친과 친위대 한 명이었다.
처음 친이 계획했던 작전은 많은 수의 참피를 끌고 앞에서 시위를 벌여 철웅의 시선을 끌어낸 다음.
자신과 보디가드 하나가 숨어들어 골판지 더미에 불을 붙이고 빠져나간다는 무서운 작전이었다.
실제로 친과 친위대가 숨어든 골판지 틈새로 작열하는 태양빛이 충분히 스며들고 있었다.
다수의 부하들이 목숨을 잃겠지만, 철웅의 고물상은 확실히 불타 없어질 것이고 그것으로 인간에 대한
멋진 선전포고가 된다!
라고 친은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어리석은 똥닝겐들은 스스로 싸우며 빈틈을 노출하고 있는게 아닌가!
부하들의 희생도 필요없이 잠입한 친을 향해 친위대는 연신 찬양을 멈추지 않았다.
"대단한 데스! 전하! 아무런 피해없이 똥닝겐의 기지에 잠입한 데스!!"
"조용히 하는 데스. 아직 작전은 끝나지 않은 데스. 이제 오마에의 임무가 막중한 데스!"
"하잇!"
"와타시가 마술을 부리는 동안 오마에는 와타시를 지켜야만 하는 데스.
오마에의 보검에 참피 왕국의 빛나는 미래가 달려있는 데스.
이번 일만 성공하면 오마에는 일등공신이 되는 데스야!"
"명심하는데스! 목숨을 거는데스!"
베테랑 친위대가 보검을 꺼내들고 고개를 빼꼼 거리며 밖을 살피기 시작하자, 친은 흡족하게 그 모습을 바라보곤
골판지 더미에 돋보기를 겨누었다.
".......태양이여......... 작아지는 데스...."
나지막히 주문을 외우며, 일점으로 집중된 태양빛이 치치칙 하는 듣기 좋은 소리를 내며, 흰색 아지랑이를 피워올린다.
그리고 친의 야망도 하늘 높이 퍼져 나간다.
"마마. 와타시 해낸 데스요.."
한편, 골판지 한쪽에서 화재의 씨앗이 시작되고 있는 것도 모른 채, 철웅과 노인들이 멱살잡이까지 하고 있는 바로 그때.
철웅의 뒤통수를 강하게 후리는 무언가가 있었다.
"이 빌어먹을 색히가 누가 어르신들한테 그따위로 굴랬어!"
"아.. 아부지!"
고물상 근처를 돌아보던 철웅의 아버지였다.
평소 폐지 할머니를 흠모하던 그는, 철웅이 할머니를 울리고 다른 노인들을 핍박하자 참지 못하고 와서 손찌검을 날렸다.
"어디가서 아버지라고 하지마라 이놈아. 동네 창피해서 다닐 수가 없겠다!"
"그래도 이런거 봐주면 안된다구요!"
"마! 얼마나 한다고 그래! 이런거 잘 해드려야 응? 어르신들이 깡통이나 알루미늄 주워도 옆동네 고물상에 안주고
우리한테 오는거야! 내가 평소에 말해 안해? 말하잖아! 복창해봐!"
"...이씨.."
"처맞을 색히가 진짜!"
철웅애비가 손을 치켜들자 철웅은 움찔하며 기가 죽는다.
나이 30인데도 이 모양이다.
장가가서도 아버지의 폭력은 계속되지 않을까 한숨을 쉬며 철웅은 입을 열었다.
"베풀면 복을 받는다."
"그래 새꺄. 얼마나 좋은 말이냐. 그쵸? 어르신들."
"암! 그렇고 말구! 얼마나 좋아! 서로 돕고사는거!"
"내가! 선풍기 주으면 옆동네 안가고 꼭 여기로 올게! 응?"
노인들이 이구동성으로 철웅애비를 칭찬하자 철웅애비는 기분이 좋은지 수도 호스를 틀고 노인들이 들고온 폐지에
전부 물을 끼얹기 시작했다.
"기분이다! 오늘은 서비스야!"
'서비스는 뉘미...'
철웅은 투덜거리며 할머니가 가져온 젖은 골판지를 골판지 더미로 아무렇게나 던졌다.
평소의 마른 골판지라면 그저 위에 쌓일 것이었지만, 물을 가득 머금은 무거운 골판지는 골판지들의 틈을 헤치고
아래로 떨어졌다.
그리고
"데갸아아아아아!!"
비명이 터져나왔다.
"이게 뭔소리여?"
가장 먼저 반응한건 물론 철웅이었다.
골판지 더미 안에서 약간 타는 냄새와 함께 자지러지는 참피의 비명이 터져나오자 철웅은
재빨리 다가가 골판지 더미를 뒤집기 시작했다.
그런 철웅을 맞이한건 빛나는 커터칼 조각이었다.
"전하는 와타시가 지키는 데스!"
"미.친 벌레 색히가?!"
이전의 보스와 그 이전의 보스. 지금의 왕까지 3대를 지켜오던 백전노장의 실장.
숱한 전투에서 적의 피를 뿌리고, 많은 생명을 세레브랜드로 인도한 왕국의 저승사자는
그렇게 철웅의 싸커킥 한방에 허망한 참생을 마쳤다.
그 다음 철웅의 눈에 들어온 것은 검게 그을리다 만 골판지와 그 밑에 깔려 필사적으로
돋보기를 들어보이려 애쓰는 참피였다.
중등교육조차 마치지 못한 철웅이었지만, 그도 이 참피가 무슨짓을 벌이려했는지 알아채는건 어렵지 않았다.
"미.. 미친 똥벌레 아냐? 아부지! 이 개색히가 우리 고물상 불지르려 했어!"
"뭐?"
"어머나 세상에...! 진짜 불에 그슬렸네!!"
"폐지가 젖지 않았으면 그냥 다 홀라당 타버릴 뻔했어!"
모여든 노인과 사람들이 경악하여 숙덕거리는 가운데 친은 분노와 허탈함으로 몸을 떨었다.
"조금만... 조금만 더 있었으면 와타시의 야망이.. 와타시의 마술이... 성공할 뻔했는 데스.....
분한데스!! 분한데스!!! 세상의 왕이 될 수 있었던 데스!!"
"와 얘 말하는거봐. 진짜 미친 참피네. 야! 철수야! 이리와봐라! 이 참피 좀 봐바!"
철웅이 부르자 11살짜리 조카 철수가 친구들과 함께 쪼르르 달려왔다.
바로 그 야구모자와 4총사였다.
"왜 삼촌? .............와 대박. 지가 불꽃의 마술사래."
"오지구요 지리구요 ㅋㅋㅋ."
"삼촌. 나 이거 주라. 존나 좋은 생각이 나서 그래 ㅎㅎ 제발."
야구모자가 철웅에게 사정하자 철웅은 사랑하는 조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흔쾌히 허락했다.
"죽이든 살리든 알아서해라. 사고만 치지 말고!"
"응! 자 그럼 불꽃의 마술사님이 얼마나 불을 잘 다루는지 우리 빠박이네 창고에서 실험해 볼까?"
"아빠가 가스토치까지 써도 된댔어!"
소악마 사총사는 신이나서 빠박이의 창고를 향해 달려간다.
친을 한손에 움켜쥐고...
"이거 놓는데스!! 차라리 그냥 죽여주는 데스!!! 왕으로서 죽게 해주는 데스!!! 싫은 데스아야야야야!!"
아이들이 달려가는 모습을 보며 철웅애비는 철웅에게 말했다.
"어떠냐. 이 애비 말이 맞지?"
"............네..."
"오늘 베풀지 않았다면 무슨일이 일어났겠냐. 베풀면 다 복으로 돌아오는거야."
철웅은 아버지의 가르침을 되새기며 고개를 숙였다.
오늘일이 없었다면 사랑하는 가족과 조카들은 무슨일을 당했을까....
철웅이 오늘의 가르침을 잊는 일은 앞으로도 결코 없을 것이다.
*후일담. 공원은 철웅부자와 노인의 신고로 멸망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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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참피가 돋보기를 손에 넣는다. -> 자신을 괴롭혔던 이들에게 복수하고,
고물상에 불지르려 시도한다 -> 할머니가 가져온 물 젖은 폐지가 고물상을 구한다.
의 이야기였는데
쓰다보니까 이야기가 늘어져버렸네요.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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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훌륭한 아이디어인데스
고마운데스!! 데스웅!
출근길에 우마우마하게 본레치!
고마운데스! 오마에 짬피도 기대되는 데스!
@세레브한미도리 정말고마운레치 지금 짬피 2-2완성다되가는 레치 디쓰면 3편삽화그려야하는레치
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