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을 봉인하기 위해 떠나는 여행‘앙코르와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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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을 통틀어 사랑은 몇 번이나 우리를 찾아올까. 하나의 사랑이 다가왔다 멀어져갈 때면 깨닫게 된다.
시작하는 모든 사랑은 언제나 첫사랑이고, 끝나는 모든 사랑은 늘 마지막 사랑이라는 것을. 사랑에 빠질 때마다 우리는 의심 없이 믿는다. ‘영원이 바로 인생의 시간 속에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을’
새로운 밀레니엄이 시작되던 해, 왕가위 감독의 영화 <화양연화>가 찾아왔다.
1960년대 홍콩이 배경인 영화의 주인공은 화려한 치파오로 공허한 마음을 감추는 첸(장만옥)과 물기에 젖은 눈을 한 차우(양조위).
어둡고 좁은 아파트에서 시작되었던 두 사람의 사랑은 환하게 트인 앙코르와트에서 끝이 난다. 찬란했던 한 시절을 사원의 석벽에 봉인하는 차우의 모습을 마지막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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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아름답게 빛나는 한 시절을 뜻하는 화양연화(花樣年華). 자신의 화양연화가 언제인지 알 수 있는 건 그 시절이 지나간 후에나 가능하다. 다만 우리는 여전히 믿고 있을 뿐이다. 내 인생의 화양연화는 아직 시작되지 않았다고.
언젠가 시간조차 지울수 없는 한 번의 사랑이 나에게도 찾아온다면, 그 사랑을 잃어버린 후에야 화양연화의 시절이 가버렸음을 알게 된다면, 앙코르와트의 석벽에 그 사랑을 묻어두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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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후, 앙코르와트를 찾아갔다. 나에게는 아직 묻어두고 싶을 정도로 간절한 사랑이 없었다. 나는 가벼운 발길로 밀림 속의 돌무더기 사이를 돌아다녔다.
어느 날은 앙코르와트의 북쪽 연못가에서 해돋이를 보며 하루를 시작하고, 또 다른 날은 프놈바켕 언덕에서 해넘이를 보며 하루를 보냈다.
꼬박 일주일을 폐허 속에서 보내며 돌무더기 사이에 고여 있는 시간의 흔적을 어루만졌다.
벵골 보리수가 돌 사이로 파고들며 자라났고, 무너진 탑과 부서진 신전이 자리한 숲은 깊고 어두웠다. 맹렬한 더위 속에서 돌과 돌 사이를, 나무와 나무 사이를 걸었다.
그곳은 과거의 시간만이 의미 있는 공간이었다. 지나가버린 시간의 가치가 살아있는 폐허야말로 기억을 밀봉하기에 완벽한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과거의 시간이 머무르는 자리라면 한 사람을 향해 멈추어버린 마음 한 자락도 단단히 묻어둘 수 있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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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허에 관한 차갑고 아름다운 글을 쓴 제프 다이어는 태국의 섬 코팡안을 떠나 치앙마이로 향하는 배에서 이렇게 적었다.
“삶을 뒤에 남기고 떠나지만, 당신은 여전히 뒤에 남기고 떠나는 그 삶의 일부이기 때문에, 당신의 일부는 그곳에 남는다.”
나는 이 글에서 ‘삶’을 ‘사랑’으로 바꾸어 읽는다.
“사랑을 뒤에 남기고 떠나지만, 당신은 여전히 뒤에 남기고 떠나는 그 사랑의 일부이기 때문에, 당신의 일부는 그곳에 남는다.”
기억을 봉인하고 앙코르와트를 떠날 때, 우리 자신의 일부를 남겨두고 떠나는 셈이다.
<영화 화양연화>
1962년 홍콩을 배경으로 같은 날 한 아파트로 이사 온 두 남녀의 이야기. 각자의 배우자가 서로 외도하는 것을 알게 되면서 싹튼 외로움과 사랑을 섬세한 연출과 감각적인 촬영으로 담았다.
왕가위 감독 연출, 양조위 장만옥 주연. 칸 영화제 남우주연상과 기술대상을 수상했다.
<영화 속 명대사>
모르죠? 옛날엔 뭔가 감추고 싶은 비밀이 있다면 어떻게 했는지... 산에 가서 나무를 하나 찾아 거기에 구멍을 파고는 자기 비밀을 속삭이곤 진흙으로 봉했다하죠. 비밀은 영원히 가슴에 묻고...
<그 외 앙코르와트가 등장하는 영화>
천공의 성 라퓨타 :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애니메이션. 라퓨타 성의 모델이 벵밀리아 사원이라는 설이 있다.
툼 레이더 : 안젤리나 졸리가 전사 라라 크로프트로 나온 영화. 타프롬과 바이욘 사원이 영화의 배경으로 나온다.
투 브라더스 : 장자크 아노 감독의 영화. 호랑이 형제 샹가와 쿠말이 주인공. 감독이 캄보디아 왕자와 절친한 사이라 캄보디아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았다고 한다. 타 프롬의 사원, 800m가 넘는 대나무 다리로 유명한 콤퐁 참이 배경으로 나온다.
<앙코르 유적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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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보디아의 소도시 시엠리압 외곽의 일곱 개 지역에 흩어져 있는 천여 개의 사원을 일컫는다.앙코르 유적을 건설한 주인공은 크메르 왕조(802~1431).
캄보디아 역사상 가장 크게 영토를 확장하며 전성기를 누리지만 아유타야 왕국(태국)의 침략으로 멸망한다. 정글에 묻혀있던 앙코르 유적은 1860년 프랑스 동식물학자 앙리 무오에 의해 재발견됐다. 서울의 60%가 넘는 면적의 유적지.
<앙코르와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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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리야바르만 2세(1112~1152)가 축조한 힌두사원. 크메르어로 앙코르(Angkor)는 도시를, 와트(Wat)는 절을 뜻한다. 드넓게 흩어진 거대한 앙코르 유적 중 하나인 사원이다.
앙코르 유적의 백미로 섬세하고 우아한 부조를 자랑한다. 경사가 가파르고 좁은 중앙탑 계단이 유명하다. 화양연화에서 양조위가 찾은 곳은 중앙사당의 서벽.
<반티아이 스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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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문화부장관을 지낸 작가 앙드레 말로가 젊은 날에 이곳 조각품을 밀반출하려다 체포되기도 했다. 붉은 사암과 라테라이트을 사용한 사원으로 섬세하고 우아해 ‘여인의 성채’라는 뜻과 어울린다.
<타프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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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툼레이더’에 등장한 곳. 자야바르만 7세가 1186년에 지은 사원이다. 벵골보리수와 열대 무화과 나무가 돌벽을 뚫고 뿌리를 내려 사원을 장악한 곳.
<앙코르 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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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도시’ 혹은 ‘위대한 도시’를 뜻한다. 12세기 후반에 건설된 성벽으로 둘러싸인 도시. ‘앙코르의 미소’라 불리는 거대한 석상으로 유명한 바이욘이 이곳에 있다.
<프놈바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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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켕 언덕에 위치한 힌두사원. 전망이 좋아 일몰 장소로 인기 있다.
(출처:네이버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