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아코디언클럽 '아코쌤' 김영남 대표
"봉사로 인생 덧칠"
성북구 최초로 돈암1동 '아코디언 교실' 개강
7세 때부터 미8군 베이비쇼 단원으로 활동
가을향기가 무르익고 있는 지난 7일. 성북구 월곡2동 한 식당에서 추억의 악기 아코디언 연주가 흘러나왔다. 끊이질 듯 끊어지지 않는 슬픔의 감정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목포의 눈물’.
아코디언 연주에 흠뻑 빠져든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옛 추억을 반추라도 하는 걸까. 귀를 쫑긋 세우고 감성에 도취됐다. 쓸쓸하고 때로는 따뜻한 곡을 만드느라 기계주름을 좁혔다, 넓혔다하는 장년의 사내 아코쌤(본명 김영남·한국아코디언클럽 대표)의 애잔한 연주에 노인들은 점점 녹아들고 있는 거였다.
그도 잠시. 베르디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 중 ‘축배의 노래’가 연주되자 분위가 들썩였다. 아코디언이 잔잔하고 서정적인 곡을 더 잘 표현한다는 생각을 완전히 벗어던진 것. 흥겨운 노래보다는 사연이 있을 것 같은 아코디언의 편견을 완전히 깬 것이다. 그는 이날 월곡2동 새마을부녀회 초청으로 노인들에게 무료공연 차 나온 것이다.
그는 한국 아코디언계의 거장으로 손꼽힌다. 일곱 살부터 미8군 ‘Baby Show'로 활동했지만 그는 서너 살적부터 부친의 뜻에 따라 아코디언을 손에 잡게 됐다고.
“고향이 이북인 아버지 손에 이끌려 아코디언을 배웠는데 사실은 미8군 돈벌이로 나선 거죠. 공연이 끝나면 모자를 들고 객석을 다녔어요. 소위 ‘앵벌이’로 나선 거죠. 그런데 아버지가 밉기는커녕 되레 감사해요. 음악을 통해 제 인생이 행복하니 말예요.”
아픈 기억을 그는 남의 얘기처럼 환히 웃으며 말했다. 낙천적이고 긍정적인 그의 천품 탓일까, 불우했던 유년시절을 그는 잘 솎음질해 음악계 대부로 자리 매김한 셈이다.
전 KBS. MBC 관현악단, 서울 스튜디오 및 각 녹음실 세션 맨, 각 방송국 음악편곡 및 프로음악인 레슨, 현 킴스녹음실, 노래교실 운영, 뮤직디렉터 등 그의 화려한 이력이 이를 뒷받침한다.
명성에 걸맞지 않게 그는 자신의 연주를 필요로 하는 곳이라면 어디든 내딛는다. 자신이 가진 재능을 사회에 환원함으로써 사람들이 즐거워하면 더 바랄 나위가 없다는 것. 그래서인지 아코쌤 모셔가기 경쟁이 치열할 정도라는 게 최측근의 전언.
그의 실력을 알만 한 사람은 다 안다. 종로 낙원상가에서 한국아코디언클럽을 운영하고 있는 그가 양성해낸 음악인은 수만 명. 기초 음악이론과 아코디언 실기 레슨은 제치고 노래교실과 아코디언 강사 약 1000명도 그의 손을 거쳐 갔으니 그의 명망을 짐작하게 할 수 있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아코쌤의 봉사영역은 전국구다. 경로당, 암 병동 등 안 거친 곳이 없을 정도. 공연이 있던 이날 그는 돈암1동 주민자치프로그램으로 지정된 아코디언교실 첫 강의(오후 6시30분~8시30분)에 나가게 됐다며 이같이 말했다. “아코디언교실 프로그램이 성북구 최초라는군요. 아코디언을 배우려는 강학들이 있다는 게 얼마나 기쁜지 모른답니다.”
36년 전부터 장위2동에 정착해 살고 있는 그는 “지역에 봉사하면서 내 인생이모작을 풍요롭게 가꾸겠다”며 환히 웃으면서 말했다. “35세 된 아들과 31세인 딸이 11월9일 결혼해요. 한꺼번에 둘 다 해치우니 너무 좋아요. 허허.”
아코디언 벨로우즈(공기주머니)에 수없이 바람을 불어넣으며 소리를 만들어낸 그의 55년 세월. 그리고 힘든 풍파를 이겨내고 소나무처럼 우뚝 선 그의 58년 인생이 고스란히 마음속에 와 닿았다.
<새성북신문>2013.10.10., <newsb21>2013.10.14.
● 아코샘 블러그
http://blog.daum.net/_blog/BlogTypeView.do?blogid=0rNB3&articleno=60&categoryId=0®dt=201610021756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