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동안 공해상에서 터득한게 한두가지 아닙니다 우선은 먹는것에대한 부분입니다 매일하는짓거리가 고스돕에 포커판 그런데 이것도 모두가 돈을 쓸수가 없으니 무용지물 입니다 간간이 호카이도 티비가 나오지만 상업방송에 먹는거에서 드라마에서도 음식이나 과일 빙과류등의 먹거리가 다양하게 나오는데 당장 이를 해결할 방도가 없으니 티비보는것도 흐지부지되고 . . . 우리가 살아가면서 제일 우선시되는게 자금 돈이라지만 해상에서는 이루어질수 없는 먹는것에 대한 절박함을 이때 알았습니다
회장님 지시사항이 떨어졌습니다 김해시내 골프연습장에 단체등록을 해놨으니 1개월이내에 쎄미프로의 스윙연습을 마칠것 각자 컴퓨터 학원에 등록하여 회사의 컴라인이 완성될시 업무수행에 지체되는일이 없을것 .학원비는 영수증 첨부하면 지급한다는 조건.
새벽부터 해저물어까지 책상머리에서 쓰고 그리고 해도 모지랄 시간에 왠 골프연습장 거기에 컴퓨터학원은 또 어찌 모두들 투덜거리고 더러는 저영감쟁이 미쳤다 이런 이야기 까지 .그동안 차고 다니던 빽빽이 삐삐는 무거운 모토로라 휴대폰으로 바뀌고 책상위에는 워키토키까지 . . .당시 회장님은 화장실에 전화받으면 야이놈아 짜르고 얼른나와 이정도 였는데
결과는 모두들 끝을 냈지요 컴학원은 각자 인성에 따라 3개월에서 6개월까지 걸리고
토요일 오후 평일이래두 우중충 비오는날은 술먹는날 입니다 대형 건설업체 4곳에서 우리들에게 술을 사지못해서 안달이날 정도
김해현장에서 인제대학교를 지나 남해고속도로 타고 구포 동래 온천장까지 불과 20여분
당시 온천장은 국내 최대의 환락가로 내국인은 물론 일본인들이 불야성을 이루고 온천장 요정에서 배출된 마담들이 전국으로 퍼져나가 기생들의 배출과 요람으로 명성이 자자하던 곳입니다 부산상고 정문앞 자리 지금은 롯데호텔이 들어서 있지만 여기도 풍성한 자리 서구 부민동 법원주위와 대신동 요정들도 당대에는 모두 한가닥쓱 하던 업계에서는 명문가라고 할수 있겠지요
서구 완월동은 익히 아시다시피 하룻밤 회포를 풀수있는 지역으로 당시에도 50만원을 주어야 출입이 가능하고 부산역 근처의 호텔 이발소 여기도 불야성 여기모습은 입장객을 발가벗기고 뜨거운타올로 구석구석 청소한뒤 멘소레담 물액으로 1시간 찜질을한후에 몸속에 진액을 빼어내니 이런곳에 환장하는 인간들도 다수가 있었습니다
우리가 즐기는곳은 온천장 요정 4명이 한방에서 자리를 잡으면 밥한상에 80만원 양주 그렌피딕이나 조니워커등 한두병 곁들이면 100여만원이 훌쩍 넘어가지요 색색들이 고운자태의 한복으로 치장한 아낙들이 옆자리에서 시중을 들고 이네들이 간간이 들려주는 노랫가락에 한시간여 식사가 끝이나면 각각 자기고유의 춤과 여흥과 쑈행사가 이어지고 가랭이 사이로보이는 속고쟁이 흰속살은 우리들 아랫도리를 불끈 솟아오르게 이르니 마무리에서 고전음악 최신판 뽕짝까지 메들리가 압권입니다
만원짜리 지폐와 때로는 수표까지 방바닥에 널부러지고 아낙들의 속고쟁이에 연분홍빤스가 나뒹굴면서 식사자리는 종료가 됩니다
이윽고 양장으로 옷을 갈아탄 여인들과 동방호텔 서림호텔 아미고호텔등 최상층 옥상의 나이트클럽으로 비비고 뗑기고 자정이 훨넘어서야 도로변 포장마차에서 입가심 한쭉배기를 한후 다시 객실로 올라가 . . . 아침 6시경 부시시 깨어나 집으로 들어가는
당시 온천장에는 수도 없는 일본인들이 그도 일본판 노가다 공사장에서 돈을 벌어 한국땅 기생집 구경을 오는 인파가 많았습니다
요정에 아가씨들 우리들과는 3만원에 하루를 팔지만 일본인들은 10만원의 거금을 뿌려제끼니 당연 우리들은 다소 질낮은 인간들로 취급을 당하는 경우도 다반사 였습니다 그러나 일본이란 동네의 인간들 본전생각인지는 모르겠으나 하룻밤 여인들을 6회에 걸쳐서 조지는데 막판 여섯번째는 뒷문 출입을 필히 한다고 합니다 그러니 이아가씨들 니뽄 구다사이 일본인들과 1박을하면 평균 일주일 이상을 업소에 못나오고 집에서 전전긍긍하는 경우가 대다수
여러곳에서 서서히 마무리되는 부분들이 눈에 들어옵니다 골프장 공사라는게 알고보면 산허리를 잘라서 높은지역의 토량은 저지대로 보내고 절성토 작업과 산마루측구 공사 페어웨이 지하에는 격자로 500-800짜리 흄관이 주욱 깔리고 그사이로 전력과 통신선이 지나며 홀당 너뎃개의 모레벙커와 해저드 폰드 오비지역 측면으로는 작업도로를 만드는 공사라는것도 알았습니다
산허리에는 씨드스프레이로 풀씨를 뿌리고 그린조성은 펜타그라스 종자를 수입해서 씨를심어 이곳을 발아시키는 공사이며 페어에 잔디는 시내 인근의 전답을 임차하여 거기에 잔디를 키워 이것을 골프장으로 이기 성장시키는일로 . .
대전 유성지역에서 값나가는 경치목과 유실수들을 매입 식재하고 조경용 소나무와 비탈면 리기다송을 식재하는등
양질의 페어웨이코스는 장마시 물빠짐이 속히 이루어져야 잔디의 생육에 지장이 없다는 것을 . . .
여하튼 공사는 그런데로 순조로이 흘러가다가 10월 일요일 아침 10시경 모처럼의 휴식을 가지는 시기에 현장에서 사고가 터진것입니다 그간 잔잔한 사고로 두명이 사망하고 코스관리과장이 과로사로 국립의료원에서 장례를 하는등의 일은 있었으나 대형사고는 처음인지라 적잖이 당황을 했음은 기정 사실입니다
잔디를 심는 아줌마팀들 18명이 탄 미니버스가 공사 성토지역 비탈면을 지나다 지반이 약하여 그만 아래로 굴러 떨어진것입니다
현장에 도착했을때는 10여명의 아줌마들이 비탈면 여기저기서 피를 흘리고 있고 토목과장 시설과장등 간부들은 피투성이가된 아줌마들을 들췌업고 사무실로 옮기는 중이 었습니다 두명의 아줌마을 업고 이동시켰는데 와이셔츠 양쪽 등드리에 피가 흥건히 뭇어있는 끔찍한 사고 .시내에 금강병원으로 이송하고 일부는 부산대학병원으로 이송작업중 내와함께 부산대병원으로 달리던 응급차내에서 55세의 아줌마 임종을 겪게 됩니다 3분여 긴호흡을 한뒤에 숨을 거두는 생사람 죽는모습을 처음 구경한게지요
당시에 모든병원에서 죽은자는 일절받지 않았습니다 여기저기 수소문하여 부산대학병원 안치실에 입고를 마치고 정문좌측 구멍가게에서 소주 한병을 단숨에 3분정도 후에 또한병을 . . 이때의 생사갈림길 인간의 모습이 5개월여 긴긴시간동안 내머리속에 남아 있었습니다 밤마다 환청과 흰치마를 입은 여인이 꿈에서 이리저리 나뒹굴고 신경외과치료도 병행하고 인고의 나날을 보냈습니다
사망 8명에 중경상 10명 이네들 가족들과의 지리한 보상싸움이 시작된게지요 이는 어찌보면 시공사인 건설회사의 책무소관이나 유가족의 극렬한 반대에 부딫쳐 부득이 네담당이 되었습니다 10개월이 훨 넘어서야 종료가 되었습니다
메인 본관의 클럽하우스 공사도 지하층을 마치고 1층 공사에 접어들 무렵 행정 업무 경리 관재팀은 지하실로 자리를 이동하게 됩니다
조립식건물에서 본건물로 들어서니 분위기도 잡히고 . .지하층이라 습기가 충만하던 시절이 었습니다
12월의초순 어느날 회장님이 래사를 하여 2백만원을 선듯 내놓고 가셨습니다 이런일은 종종 있었으나 이케도 큰액수는 처음
야 야 가르자 1인당 30만원씩 뒷주머니에 차고 코모도호텔 객실에서 고스돕판을 벌린것입니다 맥주에 이거저거 시중들던 하우스맨도 짜증을 부릴무렵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내리 세판을 설사를하고서리 손에 들고있는 넉장의 패를보니 또 설사를할수 있는것갇아서 양껏 " 고 " 판은 돌아가고 다음판에 3점으로 장을 세웠습니다 문제는 여기서 부터 .야 임마 설사세판에 고했으면 설사한번더해야 스돕이지 3점 스돕이란건 없다 이거지요
난리가 났지요 판은 깨지고 얼근하게 술은취해 있겠다 여기저기 물어보다가 광복동 문우당서점에 고스돕 책자를 사오게 되었습니다
당시 조선일보 논설위원 이규태씨가 쓴 고스돕의 정석 이라는 책자가 있었습니다 근데 여기서도 답이 없습니다
다음에 쓰겠습니다 너저분한 술판이야기 이해하십시요
첫댓글 고스톱도 정석이 있나요 ?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