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밤, 꿈자리가 사나웠다. 민욱은 이부자리를 뒤척이다가 오한을 느끼며 잠에서 깨어났다. 그는 관자놀이를 누르며 몸을 일으켰다.
꿈에서 영섭을 보았다. 영섭의 집에서 쫓겨난 직후엔 종종 그가 나오는 악몽을 꾸곤 했지만 새아버지를 죽인 이후에는 처음이었다.
꿈 속에서 민욱은 새아버지에게 맞고 있었다. 언제나처럼 같았다. 새아버지는 화가 나 있었고 엄마는 또 집에 없었다.
민욱이 기억하기로 새아버지는 늘 화가 나 있었다. 그는 엄마를 사랑한다 말할때조차 화를 냈고, 엄마와 사랑을 나눌때조차 폭력을 휘두르는 것과 다를 바 없이 행위를 치루던 사람이었다.
영섭의 상사였다는 그 남자는 본래 가정이 있는 사람이었다고 했다. 그러니까 피차 불륜인 셈이었다.
이혼을 당한 것인지, 아니면 이혼을 한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다만 엄마와 재혼을 한 후엔 모든 걸 그녀의 탓으로 돌렸다.
‘네 엄마가 내 인생을 망쳤어!’
예선이 사랑한다는 남자는 대부분이 그랬다. 이번에도 여지 없이 그랬고, 이번에도 여지없이 예선의 사랑은 빠르게 식었다. 다음 수순도 언제나와 같았다.
분노의 대상은 예선에게서 민욱에게로 전가되었다. 예선은 그가 제 아비를 닮았다는 이유로 그를 싫어했으나 예선이 택한 남자들은 그가 예선을 닮았단 이유로 그를 증오했다.
‘니 애미 말이야! 정말 내 애 가진 거 맞아? 어? 아니지? 다른 놈이랑 배 맞아놓고 나한테 뒤집어씌운 거지?! 실은 여영섭, 그 새끼 애인거지?!’
‘개새끼! 너도 네 어미랑 짜고 친 거지? 너도 내 재산 노리고 들러붙은 거지? 이 빌어먹을 거지새끼!’
처음엔 한대, 두대로 시작해 나중엔 셀 수도 없이 많이, 손과 발로, 의자로, 벨트, 각목 혹은, 달군 후라이팬, 도마, 접이식 테이블, 손에 들 수 있고, 던질 수 있는 것이면 무엇이든 상관없는 것들로 깨지고 맞았다. 그러다 개수대에 놓인 식칼을 집어 대문을 박차고 뛰쳐나온 적도 여러 번이었다.
그럴 때마다 민욱은 영섭을 떠올렸다. 그와 함께했던 꿈 같던 순간들을 떠올리다 끝내 자신을 버렸던 날을 헤집으며 눈물을 떨궜다. 그러고나면 꼭 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민욱에게 절실히 어른이 필요한 순간은 도망을 갔다가, 고통이 지나고, 엉망이 되어 버려지면 모친은 습관처럼 그를 찾았다. 다시금 방패막이 필요하다는 듯이. 그런 하루하루가 도돌이표처럼 반복되었다.
그래서 새아버지를 죽였다. 그렇게 사는 게 너무 지긋지긋하고 더는 버려지고 싶지 않아서. 더는 도망가고 싶지 않았고 더는 자신을 함부로 하게 둘 수 없었으며 더는 누구도 용서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지독해지기로 했다. 어차피 이따위로 밖에 살지 못한다면, 아무리 발버둥 쳐도 결국 이런 삶이라면 그렇다면 두 번 다시 끌려들어 가지 않겠노라, 어차피 이런 지옥 속이라면 그는 차라리 제 발로 걸어 들어가겠노라고 마음먹었다. 그게 훨씬 덜 아팠다. 적어도 덜 고통스러웠다.
꿈에 나온 영섭은 새아버지에게 흠씬 두들겨 맞는 민욱을 가만히 지켜보기만 하였다. 손을 뻗으면 닿을 정도의 거리에 서서 아주 슬픈 표정으로. 그건 무슨 의미일까. 그 슬픈 얼굴 말이다.
미래를 매매 시장에서 발견했을 때 사채꾼에게 전해 들었다. 삼 년 전 여미래의 부친이 목을 매 죽어버렸다고. 그 덕에 빚을 대신 갚아줄 가족이 없어 일이 아주 곤란하게 되었다고 말이다.
당신 딸이 가엽단 건가. 그래서 그렇게 슬픈 얼굴로 나타난 건가. 아니지. 그건 내 꿈이니 그의 얼굴조차 내 마음이 만들어 낸 허상일 테다.
민욱은 마른세수하고 방을 나섰다. 집안은 여전히 고요하였고 밤새 내린 비 덕에 조금은 쌀쌀하였다. 그는 뒷목을 주무르며 계단을 내려가 부엌으로 향했다. 건조대를 열어 머그잔을 꺼낸 뒤 정수기에서 물을 받아 마셨다. 부엌의 작은 창문으로 휑한 거육도의 풍광이 비쳤다.
민욱은 마른 가지 위에 낀 살얼음을 구경하다가 남은 물을 개수대에 뿌리고 머그컵을 내려놓은 뒤 몸을 돌렸다.
방으로 들어가려다 고개를 돌린 건 순전히 우연이었다. 왜 눈이 쪽방으로 향한 건지는 알 수 없었다. 그러나 평소와 다르게 반쯤 열린 쪽방 문에 자꾸만 신경이 쓰였다. 영섭의 꿈을 꾸어서일지도 몰랐다.
새까만 어둠뿐인 그 방의 문을 민욱은 주저없이 안으로 밀었다. 어둠뿐인 방안에, 민욱의 그림자를 뚫고 어스름한 빛이 드리워졌다.
“…….”
거기에 미래가 있었다. 까만 머리카락을 바닥에 늘어뜨리고 모로 누워 몸을 동그랗게 만 채 그녀는 세상에서 가장 여리고 연약한 아이처럼 잠들어 있는 것이다.
기대하지 않았는데 문을 열기 전부터 알고 있었던 것 같았다. 그녀가 안에 있다는 것이 놀랍지 않았다.
나 원.
민욱은 헛웃음을 켰다.
이래서였네. 여영섭이 그렇게 슬픈 얼굴로 꿈에 나온 거 말이다.
참. 기가 막혀서. 그렇게 딸이 걱정되면 목을 매 뒤지지 말았어야죠. 아저씨. 비겁하게 도망쳐놓고 이제 와 누굴 원망해. 당신이. 안 그래?
민욱은 잠든 미래를 바라보다 몸을 돌렸다.
방으로 돌아온 그는 침대에 걸터앉아 태블릿을 펴들었다. 메일함을 열자 거육도에 오며 메일링 해둔 구글 키워드가 메일함에 쌓여있었다.
[K호텔 스위트룸, 20대 여성 사체 발견]
[K그룹 미모의 여비서 돌연 변사]
[20대 대기업 여비서, 스위트룸에서 타살?]
[K호텔에서 숨진 20대 여인, 알고 보니 구독자, 팔로워 20만의 인플루언서!]
똑똑똑, 누군가가 성의 없이 문을 두드렸다. 민욱은 그 소리만으로도 상대가 명훈임을 알아차렸다.
민욱은 대답하지 않았고, 명훈도 기다리지 않고 문을 열었다.
“뭐야. 일어나 있었네.”
쩝, 입맛을 다시고는 까치집 진 뒷머리를 긁으며 명훈은 안으로 들어와 민욱의 손에서 타블랫을 뺴앗아 들었다.
“뭐 보냐?”
그는 툭, 툭 태블릿을 건드리며 내용을 쭉 읽어 내려갔다. 그러더니 곧 끌끌 혀를 차며 태블릿을 침대에 던져버렸다.
“한 일이 주, 어째 잘 틀어막는다- 했다. 지들이 뭐 나라님도 아니고 기자들 손모가지를 어떻게 꺾어.”
민욱은 픽 웃으며 머리맡에서 담배를 가져와 입에 물었다. 명훈은 골치 아프다는 듯 다시 뒷머리를 벅벅 긁더니 ‘아우’하고 진저리를 쳤다. 그러고는 ‘저기 뭐야’ 하고 입을 뗐다.
“어제 여미래 내가 여기다 데려다 놨다.”
민욱은 대답 대신 담배에 불을 붙이고 연기를 내뿜었다. 명훈이 그의 눈치를 살피다 흠, 흠 목소리를 가다듬고 말했다.
“밤에 민태종이 다녀갔어. 병구 그 새끼가 여미래를 얼마나 쥐어패 놓았는지 아주 얼굴에 성한 곳이 없다더라.”
병구? 민욱이 손가락에 담배를 끼우며 명훈을 보았다.
“좆 물어뜯긴 애?”
“그래. 그 새끼.”
“그 새끼 민의원네 있다고 하지 않았어?”
“그저께 퇴원했대. 퇴원하고 바로 여미래 잡으러 갔대.”
나민욱이 고개를 한쪽으로 기울였다. 그의 아연한 표정에 명훈은 얕게 숨을 내쉬고 말을 이었다.
“여미래가 너랑 엠파이어에서 떡 치고 화대로 오십만 원이나 챙겨 받았단 소문이 거육도에 쫙 퍼졌잖아. 지는 함부로 자지 들이밀었다가 잘릴 뻔 했는데. 눈깔이 돈 거지 뭘.”
이야기를 전해 든 민욱의 표정이 잠시 멍해졌다. 초점이 흐려졌다가 곧 벌겋게 달아오르는 그의 낯빛이 무엇을 뜻하는지 명훈은 모르지 않아 다급하게 덧붙였다.
“별 일 없었대. 알잖아. 그 새끼 거기 기능 잘 안되는 거. 억지로 하려다가 괜히 꿰맨 곳만 덧나서 괴사 일보 직전이란다. 지금은 뭐 어쩔 방법이 없대서 일단 항생제 먹여서 숙소에 처박아 두라고 했어.”
“…….”
“먹는 약이랑 연고 두고 갔어. 영 못 봐주겠다 싶으면 아침에 진료소로 보내래. 멍 잘 빠지는 주사랑 영양제 놔준다고. 진짜 별 일……”
“종수한테 그 새끼 데려오라고 해.”
“……여기?”
명훈이 놀란 안색으로 되물었다. 민욱은 고개를 끄덕이며 담배를 물었다. 명훈은 눈을 몇 번 깜빡이다가 또 물었다.
“그럼 여미래는?”
“데려다 놔.”
“엠파이어에?”
“엠파이어에.”
“…….”
터질 듯 붉어졌던 나민욱의 얼굴은 어느새 평정을 되찾은 듯 본래의 무감한 빚을 띠고 있었다.
본래의 그는 이런 사람이 아니었다. 원래의 나민욱은 조금 더 잘 웃고, 잘 울고, 조금은 다채로운 감정을 가진, 그래서 누구에게나 쉽게 그 감정을 들킬 줄 아는 사람이었다.
명훈은 그런 그가 지금과 같은 사람이 된 것이 부디 그가 바래고 마모되어 버린 게 아니길 바랐다. 적어도 지금의 그는 덧입혀진 것이길. 그래서 본래의 그가 사라지지 않고 남아있는 것이길 바랐다. 그래야 언젠가 명훈도 늘 보고 싶어 하던 오래전 그를 만날 수 있을 테니까 말이다.
따듯한 온돌방에서 미래는 시간가는 줄 모르고 단잠에 빠져들었다가 미래는 문밖에서 나는 사내의 비명에 간신히 정신을 차리고 몸을 일으켰다. 오랫동안 한 자세로 잠을 잔 탓인지 왼쪽 어깨와 허리가 뻐근했다. 그녀는 신음을 흘리며 제 어깨를 주무르다가 쾅,하고 육중한 무언가가 나무 문에 부딪히는 소리에 놀라 문밖으로 뛰쳐나갔다.
거기에 종수가 서 있었다. 그러니까 닫힌 서재 문 앞이었다. 안색이 파리하게 질린 그는 잔열에 떨리는 서재 문을 바라보며 안절부절못하다가 미래와 눈이 맞자 얼른 시선을 바닥으로 떨구었다.
미래를 피한다기보다 무서워하는 눈치였다.
흐어어어엉. 하고, 서재에서 사내가 구슬프게 우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나 이사! 나 이사! 하고 누군가가 민욱을 만류하는 소리도 함께 들렸다. 미래는 퉁퉁 부어 잘 감기지도, 그렇다고 잘 떠지지도 않는 눈을 끔뻑거리며 상황을 파악해 보려 애썼다.
종수가 왜 여기에 있는지, 서재 안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인지.
잠시 후, 벌컥 서재 문이 열렸다. 종수가 깜짝 놀라 바퀴벌레처럼 뒤로 물러섰고 벌어진 문틈을 비집고 비대한 몸뚱이를 지닌 남자가 네 발로 엉금 엉금 기어나왔다. 반삭에 가까운 짧은 머리에 푸른색 문신이 번져있는 귀밑부터 남자의 뒤통수까지도 온통 붉은 기운으로 물든 남자였다.
미래는 아, 하고 탄식을 삼켰다. 그가 누군지 단번에 알아본 탓이었다.
“벼, 병구…”
종수가 기어 나오는 병구의 이름을 중얼거리다가 곧 다물었다. 병구를 아는 체할 상황이 아니었다. 자칫 놈을 감싸주었다가 놈과 같은 처지가 되어버리면 곤란했다. 그는 침을 꿀꺽 삼키고 문 안쪽을 들여다보았다.
소매를 걷어 올린 민욱이 등을 돌린 채 책상 위에 벗어두었던 시계를 다시 차고 있었다. 명훈이 두 손으로 허리를 집은 채 그런 그와 기어가는 병구를 번갈아 바라보았는데 표정이 말도 못 하게 복잡했다.
“야, 종수야.”
“아, 예, 예! 형님!”
명훈의 부름에 종수가 총알같이 튀어 나가 대답했다.
“이 새끼 데려가. 그리고 날 좋아지는 대로 배 태워서 내보내.”
“……아예 섬 밖으로……”
명훈이 말없이 그를 보았다. 그러나 그것으로 충분했다.
“아! 예!”
종수는 냉큼 머리를 조아렸다.
“알겠습니다, 형님! 분부대로 하겠습니다!”
그러고는 신음하며 기어다니는 병구를 현관으로 질질 끌었다. 그가 끌려가는 자리마다 핏물이 쓸려 있었다. 그의 몸 어디서 나온 것인지 모르겠다. 얼굴에서인지, 아니면 무릎에서인지 아니면 가랑이 사이에서인지.
덜컹, 덜컹, 종수가 곰 같은 병구를 중문 밖으로 끄집어 낼 때마다 얇은 유리를 덧댄 나무 중문이 요란하게 흔들렸다. 병구는 그때마다 짐승 같은 울음소리를 냈다.
미래의 뺨을 후려치고 아스팔트에 머리를 으깰 때와는 사뭇 달랐다. 이제야 병구가 제 나이로 보였다. 그러니까 스무 살, 젖살도 빠지지 않은 철부지로.
현관문이 닫히고 미래는 멍하니 서 있다가 서재 문을 닫으려 문간으로 걸음을 옮긴 명훈과 마주쳤다. 문간에 병구가 남기고 간 핏방울이 지저분하게 번져 있었다. 둘은 한참동안 말없이 서로를 응시했다. 명훈은 잠깐 곤란한 표정을 짓다가 안쪽을 바라보며 말했다.
“야, 여미래 일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