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텔 아침 창밖 풍경
3월 9일 토요일 아침이 밝았네요 06시 기상하여 07시부터 호텔식으로 아침 먹고 08시 부터 투어시작합니다.
달랏
베트남 중부 고원 지대에 있는 도시이다. 베트남 럼동 성의 성도로 인구는 약 20만 명이다. 베트남 도시 이름들 중 유일하게 라틴어가 어원인 도시이다. Đà Lạt이라는 말은 "Dat Aliis Laet]tiam Aliis Temperiem 어떤 이에게는 즐거움을, 어떤 이에게는 신선함을" 이라는 라틴어를 줄여서 프랑스인들이 달라트 (Dalat)라고 부른것이 달랏이라는 이름의 유래가 되었다. 어원은 라틴어이지만 한자로 多樂이라고 표기하기도 한다. 해발고도 1,500m에 위치해 고산기후를 띤다. 연평균기온은 18도 정도로[1] 연중 따스한 날씨를 유지한다. 영원한 봄의 도시라고 불릴 정도 17세기에는 원래 참족등 소수민족들이 모여 사는 작은 촌락에 불과했지만 프랑스가 베트남을 식민화 하는 과정에서 이 지역에 휴양도시를 건립하자는 계획이 착수되었고 이곳은 약 1500m의 고산지대이기 때문에 날씨가 덥고 습한 베트남에선 최고의 피서지이다. 그 결과 프랑스 식민정부가 관광도시로 만들기위해 더욱 예산을 투자하면서 1916년 프랑스 식민정부의 후에법원에서 달랏 시 수립을 선포하며 도시가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1950년대 초 잠시 존재했던 바오다이 황제의 왕실령 황조강토의 수도이기도 했다.
베트남전쟁 때는 교통의 요지에 위치해있어 이곳을 뺏기는 순간 남베트남수도인 사이공과 미군과 한국군 등 연합군 기지가 몰려있는 동부해안지대가 위험에 빠질 수 있기 때문에 남베트남군은 이곳을 철저히 방어해냈다. 때문에 구정공세 당시에도 공산세력의 공격으로부터 비교적 안전하게 도시를 지켜냈으며 1975년 사이공이 함락되는 와중에도 공산군이 이곳으로 진주한적이 없다.
이곳 시민들의 증언에 의하면 도시분위기는 구정공세가 있었던 1968년을 제외한 전쟁 종전 직전까지 평화로웠으며 사이공 함락소식이 들려오자 그제서야 남베트남이 망한줄 알았다고 한다.
원래 해안도시인 판랑탑짬[3] 과 달랏을 연결해주는 산악철도가 존재했지만 1968년 베트남전쟁으로 파괴되고 현재는 일부 구간만 복원되어 운행중이다. 달랏은 날씨에 걸맞게 열대,온대작물이 모두 재배되는데, 베트남 전체의 식품수요의 상당수를 충당하는 농업이 이루어지고 있어 하우스와 노지재배 농장을 어딜가나 많이 볼 수 있다. 사실 달랏의 풍광은 냉정히 말해 한국과 다소 유사하여, 다른 지방, 특히 다낭, 나트랑, 호찌민 시 등 열대국가의 느낌이 물씬 나는 곳들과 비교하여 한국인들에게 어딘가 많이 봐온 느낌을 준다. 한국의 동네 뒷산 같은 느낌의 산들이 많고, 호수 역시 아름답지만 춘천이나 제천에 있을 법한 느낌을 준다.
차이점이라면 프랑스령 시절의 계획도시이므로 건물들 상당수가 유럽풍 건축 구조라서[5] 발코니에서 바라보는 풍광은 꽤나 그럴듯하며 보급형 유럽의 느낌을 준다. 이 도시의 중심은 나이트마켓을 중심으로 형성되어 있는데, 이곳은 베트남인들에게도 주요한 관광지이므로 다른 여느 관광지들처럼 외국인 타겟의 인공적인 야시장보다는 조금 더 낫다.
0840 랑비엥 전망대에 도착했습니다.
짚차타고 해발 1900m 달랏의 지붕인 랑비엥 전망대
달랏의 지붕이라 불리는 랑비엔 고원(Nui Langbiang)에서 달랏 시내와 자연을 조망할 수 있습니다. 랑비엥산은 베트남판 '로미오와 줄리엣'으로 불리는 랑(Lang)과 비엔(Biang)의 애절한 전설이 있는곳입니다. 랑비앙 산은 달랏 시내를 에워싼 다섯 개의 봉우리를 품은 베트남 중남부에서 가장 높은 산으로, 전망대에 오르면 달랏 시내는 물론 주변의 산과 계곡 등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어 '달랏의 지붕' 또는 '어머니의 산'이라고 불리는 곳인데요. 가장 높은 봉우리의 해발은 약 2,167m로 여행자들에게 가장 널리 알려진 전망대인 라다 정상(Dinh Rada)의 해발은 약 1,950m랍니다.
해발 1500m의 랑비앙 산 매표소에서 전망대까지는 약 6km 정도로, 숲길을 따라 트레킹 (약 2~3시간 소요) 또는 매표소에서 지프차를 타고 올라갈 수 있는데요 시간적 여유가 있고 트레킹을 좋아한다면 걸어서 올라가도 좋겠지만 여의치 않기에 대부분의 여행자들은 지프차 또는 SUV를 이용합니다.
랑비앙 산에는 아주 특별한 사랑 이야기가 전설로 전해져 내려오고 있습니다. 먼 옛날, K'lang이라는 소년과 Ho Biang이라는 소녀가 있었는데, 소녀가 무시무시한 늑대로부터 위험에 처해 있을 때 소년이 구해 주었고, 이를 계기로 둘은 사랑에 빠지게 되었다고 해요. 하지만 서로 다른 부족이었던 그들은 결국 산 높은 곳으로 올라가 사랑의 결실을 맺었고, 훗날 그들의 무덤이 각각 랑비앙 산의 봉우리가 되었다는 전설입니다. 이 전설은 소년과 소녀가 서로 결혼하지 못하고 함께 죽었다는 설 등 조금씩 다르게, 여러 갈래로 전파되어 전해져 오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