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의 증거♡
성경: 야고보서 2장 14~17절
찬송: 249, 263, 254, 186
설교: 이 경준 목사님
내 형제들아 만일 사람이 믿음이 있노라 하고 행함이 없으면 무슨 유익 있으리요 그 믿음이 능히 자기를 구원하겠느냐, 만일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일용할 양식이 없는데 너희 중에 누구든지 그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덥게 하라, 배부르게 하라 하며 그 몸에 쓸 것을 주지 아니하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야고보서 2:1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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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말씀은 예수님의 제자 야고보가 그리스도인들이 간과하기 쉬운 선행에 대하여 말하고 있습니다. 야고보는 참믿음의 생활을 하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선한 행실이 있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 행실을 보아 믿음이 참인지 거짓인지도 판단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초대교회로부터 오늘날까지 그리스도인들은 이 같은 선한 행실로 불신앙에 있는 사람들을 구원의 길로 인도하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서는 이런 선한 행실이 잘 나타나지 않고 있습니다. 오히려 믿음을 갖지 못한 사람들의 선행 소식이 들려올 뿐입니다. 반성해 보기는 우리는 자기만을 위한 신앙생활에만 몰두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웃을 염두에 두지 못했고 그저 바리새(Pharisai) 적인 신앙으로 천국을 논하였던 것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이런 모습을 야고보 사도는 행함이 없는 죽은 믿음이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의 복음 사역을 보면 불쌍히 여기고 나누어 줌으로 나타납니다. 누가복음 6장 35절부터 43절을 보면 오병이어의 기사가 나오는데. 그 기적의 시작을 34절에 “ 예수께서 나오사 큰 무리를 보시고 그 목자 없는 양 같음으로 인하여 불쌍히 여기사”라고 기록되었는데, 예수님의 마음이 잘 드러나 있습니다. 불쌍히 여기고 도움을 주고자 하는 마음이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리스도교는 나눔 위에 세워진 종교입니다.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 위에서 피와 살을 나누며 죽기까지 베풀어진 그 사랑이 그리스도교의 근본입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이기주의에 빠져만 있습니다. 나만의 천국을 이야기하며 남들에게 베푸는 것보다는 내가 받을 상급만을 기대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입으로만 외치는 사랑은 아무짝에도 쓸데가 없는 것입니다. 그런 사랑을 말하는 사람을 일컬어 죽은 믿음을 가진 자라고 했습니다. 아무에게도 유익하지 않은 공허한 말장난으로 스스로 속이는 자일 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지구촌 곳곳에는 전쟁과 또는 갑자기 당하는 기상이변으로 고난과 죽음에 처하게 된 사람들이 아주 많습니다. 그들의 대부분은 이 시대의 빈자이거나 약자에 속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그런 처지에 놓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의 이웃에는 우리 그리스도인이 여러 형편의 모습으로 더불어 살아가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더러는 나누어도 모자람이 없을 정도의 재물을 지니고 말입니다.
우리가 참된 그리스도인들이라면 어떻게 처신하며 살아가는 것이 옳겠습니까? 우리의 믿음 선배들은 자기의 생명을 희생해가며 남을 위한 삶을 살기도 했었는데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하며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요? 베풀 수 있을 만한 물질을 주신 하나님의 뜻이 어디에 있는지를 생각해 보아야 할 때가 아닌가 싶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특별히 우리에게 선행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신 것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이런 때에 선행으로 믿음 꽃을 피우는 우리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초대교회 안디옥에서는 그리스도인들을 칭찬받는 사람들이 이라고 했습니다. 로마의 유적 중에 카타콤(catacomb) 이라는 곳이 있습니다. 우리는 흔히 초대교회 성도들이 지하무덤으로 사용하였던 곳이라고만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카타콤은 성도들이 무덤으로 사용하기 위하여 판 땅굴이 아닙니다. 카타콤은 초대교회 성도들이 폭군, 네로 황제의 핍박을 피하려고 숨어들었던 무덤 속이었습니다. 그들이 가진 믿음으로 로마에서 이웃하며 살아가던 사람들에게 본의 아니게 끼치게 되는 피해를 주지 않으려고 그 무덤 속으로 숨었던 것입니다. 우리가 잘 알듯이 로마의 대화재가 그런 유형의 피해이기도 합니다. 그 무덤 속 시체들 사이에서 초대교회 성도들은 믿음을 이어 나갔습니다. 땅굴을 더 확장하면서 그들과 그들의 자손들이 살았으며, 그리고 그곳에서 순교하였습니다.
그들은 사랑을 실천하기 위하여 그렇게 죽어갔습니다. 카타콤이라는 지하묘지는 그들이 지켜낸 놀라운 믿음의 증거입니다. 그들이 보여주었던 숭고한 믿음의 증거들이 행함이 없는 믿음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를 부끄럽게 합니다.
그런데 터키의 갑바도기아(Cappadocia)에도 로마의 카타콤보다 더 크고 더 긴 지하 유적지가 있다고 합니다. 그곳은 ‘깊은 우물’이라는 뜻을 가진 데린쿠유(Derinkuyu)라는 곳인데 지하로 8층에 이르기까지 수천 개의 방으로 이루어진 거대한 지하도시입니다.
4,000년 전부터 있던 이곳에 초대교회 성도들이 당시 로마와 유대인들의 핍박을 피하려고 그곳에 은밀하게 생활 터전을 만들고 그곳에서 예배를 드리며 살던 곳이라고 합니다. 이곳은 최대 3만 명까지 수용할 수 있다고 합니다. 현재 관광객들에게 개방된 지하 8층까지의 면적은 전체의 10% 정도에 불과하며 내부에는 교회, 감옥, 무덤, 식당, 마구간 등 많은 유적이 남아있고, 지하 8층에는 성찬식을 가졌던 곳도 있다고 합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약 400여 년 동안 이곳에서 숨어 지내며 목숨을 건 신앙생활을 하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와 같은 믿음은 서기 313년 콘스탄틴 대제의 밀라노(Milano) 칙령으로 기독교가 공인된 후, 서서히 생명력을 잃어가기 시작하였습니다. 고난이 없어지고, 핍박도 없어지자, 그들은 신앙의 껍데기만 내세워 떠받들어지고, 군림하는 교회의 모습으로 변하여 갔습니다. 그들은 그리스도를 빙자하여 전쟁을 일으켰고 수많은 살육을 자행하고 재물을 갈취하며 악취를 내는 종교집단으로 변하였던 것입니다. 그들의 겉모습은 살아 숨 쉬는 교회인 듯 보였으나 실상은 믿음의 참모습을 잃어버린 ‘행함’도 없고, ‘열매’도 없는 더러운 집단이었습니다. 그들의 악행은 종교개혁이 일어나기까지 계속되었습니다.
그런데 근래에 이르러 한국교회가 그보다 더한 악취가 뿜어내기 시작하였습니다. 부귀와 영화만을 추구하고, 사회를 위한 봉사와 희생을 거부하는 사이비 종교집단으로 변질이 된 교회가 늘어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봉사와 희생을 두려워하고 부귀와 영화만을 추구하는 교회는 비난받아 마땅한 것입니다. 더군다나 다른 사람의 생명은 소중하게 여기지 않고 가슴 아파하지 않는 행태가 더욱 그렇습니다. 우리는 훗날 주님 앞에서 값을 치르게 될 것입니다.
이제라도 우리 자신을 스스로 돌아보는 성찰의 시간을 가져야 할 것 같습니다. 과연 나는 살아있는 믿음을 가진 성도인가? 라고, 자기 자신에게 물어보아야 할 것입니다. 듣는 것만으로 만족했던 신앙, 행함이 없는 죽은 믿음, 그것이 우리의 모습이 아닌지 냉정히 판단해 보아야 할 필요가 있지 않겠습니까?
야고보서 1장 27절에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 중에 돌보고 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그것이니라.”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 곧 ‘성도의 옳은 행실’은 고아와 과부를 돌아보고 이웃을 사랑하며 믿음을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않고, 세상을 품는 것입니다.
야고보 사도는 말하고 있습니다. “내 형제들아 만일 사람이 믿음이 있노라 하고 행함이 없으면 무슨 이익이 있으리요. 그 믿음이 능히 자기를 구원하겠느냐?”라고 말입니다.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사랑을 베풀지 못하는 신앙을 행함이 없는 죽은 믿음이라고 합니다. 죽은 믿음은 아무 곳에도 쓸데가 없습니다. 제발 남들에게 사랑을 베풀지는 못할지언정 해악은 끼치지 말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세상 사람들을 가슴으로 품읍시다. 그리고 섬기시기 바랍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말입니다. 그런 모습이 믿음의 증거가 되어서, 믿지 못하는 사람들을 구원의 길로 인도하는 힘이 될 것입니다.
사랑과 은혜가 많으신 하나님 아버지!
오늘 본문 말씀에서 하나님께서는
“내 형제들아 만일 사람이 믿음이 있노라 하고 행함이 없으면 무슨 유익 있으리요 그 믿음이 능히 자기를 구원하겠느냐, 만일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일용할 양식이 없는데 너희 중에 누구든지 그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덥게 하라, 배부르게 하라 하며 그 몸에 쓸 것을 주지 아니하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야고보서 2:14~17)고 하셨습니다.
신앙을 가진 우리가 믿음 안에서 선한 마음을 품고 선한 사업에 힘쓰며 우리의 가진 것으로 후히 베풀고 나누는 사랑과 섬김을 살게 하소서!
우리에게 허락하신 모든 것들이 주께로부터 왔사오니 주님의 형상을 덧입은 형제와 자매를 감사함으로 사랑으로 섬길 때 우리 마음에도 주님 주신 감사와 기쁨으로 나눌수록 더욱 풍성해지는 은혜와 축복이 임하게 하소서!
우리도 예수님을 구주로 믿기 전에는 핍박자요, 포행자였으며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의 긍휼이 없었다면 영원한 지옥의 형벌을 받을 수밖에 없었던 죄인이었음을 알아 주님의 피 값으로 사신 바 된 형제와 자매를 사랑으로 봉사하며 섬기게 하소서!
주의 말씀과 기도로 나누게 하시고, 허락하신 물질로 나누게 하시고, 허락하신 지위, 명예, 재능으로 나누게 하소서!
우리 영혼이 잘되고 범사에 형통하고 자손 천대까지 아름다운 신앙의 유산을 물려주며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 오직 은밀한 중에 보시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하나님께 영광는 돌리는 삶이 되게 하소서!
그리하여 어느 날엔가 하나님 앞에 서는 날에 잘했다 착하고 충성된 종이라는 칭찬 듣는 우리가 되게 하소서!
감사드리며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 올렸습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