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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신년 1박2일 군산 여행 - III
일시: 2013/1/19-20(토-일) 둘째 날 전반
여행지: 군산, 새만금, 부안
참가자(네부부 8명): 김 우용, 홍 승표, 채 희묵 등
동선: 월명공원등산(5:50~7:50) - 아침 식사(일흥옥 8:10~45) - 이성당 (8:53~9:00) - 동국사 (9:10~22) - 신흥동 일본식 가옥(10:15~50) - 숙소 고우당 커피숍 (11:05~25)
일본식 가옥을 군산시가 다다미 방 체험용으로 리모델링해 지난해 11월 여행객들에 개방한 고우당 앞에서 전 일행이 한 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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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명공원 등산
월명동 수산시장- 조각공원 - 해병태탑 - 김인식 동상 - 수시탑(守市塔) -3.1탑(월명산:101m)- 장계산(108m) - 점망산(전망대:139m) - 장계산 옆구리 - 청소년수련관
군산시민의 휴식처이자 녹색허파인 월명공원. 올망졸망한 산으로 구성돼 있고 호수도 끼고 있으며 구(舊)시가와 공단을 구분해 주고 있어 캄캄한 밤이라도 한번 올라보고 싶었다.
5시에 일어났다 방바닥의 온기를 떨쳐버릴 수 없어 누워있다 보니 6시 15분전. 부랴부랴 일어나서 귤 하나, 떡 하나, 생수 한 병을 배낭에 넣어 밖으로 나갔다. 어제 우리가 마지막 갔던 군산 근대역사박물관 쪽으로 향했다. 가는 김에 팥빵으로 유명하다는 이성당의 위치를 지나는 주민에 물어 확인하고 해망로 박물관에서 서쪽으로 횟집거리를 지나 톡 튀어나온 어시장까지 걸어갔다. 입은 게 좀 무겁다 싶을 정도로 날씨는 포근하다.
커브를 지나 건널목에 서 있는 아주머니에 월명산 오르는 길을 물으니 바로 뒤라고 손으로 가리킨다. “월명공원 가는길”이라는 입간판과 시멘트 계단이 있다. 그 계단을 따라 올라갔다. 조각공원도 나오고, 다시 시멘트 길을 오르다보니 해병대 기념비와 김 인식 동상도 나오고 타오르는 불꽃과 나부끼는 돛을 형상화했다는 수시탑(守市塔)도 나타난다.
월명공원 가는 길- 여기서시작
수시탑(守市塔)-- 군산시를 수호해주는 탑-- 남의 것 가져와봤음
응달에는 눈이나 얼어붙은 빙판도 있다. 그러나 숲길이 아니더라도 산책로가 다 되어 있는 것 같다. 동백이 몰려 있는 곳도 있고 편백이 가로수처럼 서 있는 길도 있다. 3.1탑에 이르러서는 잠깐 안내판을 유심히 보기도 했다. 월명산(101m)이 바로 북쪽에 있고 남쪽으로 산길을 올라가면 장계산(108m)이라고 해서 따라 올라갔다. 얼마가지 않아 나온다. 높지는 않지만 오르락 내리락 계속 등로를 따라가다보니 전망대가 있다는 점망산(139m)까지 갔다. 낮이면 사방이 훤히 조망이 될텐데 불빛만 어렴풋이 보일뿐이다.
정상에 올라서니 바람이 세, 손과 얼굴이 시렵다. 처음 집을 나설 때와는 완연히 다르다.
월명호수, 인공섬이 어렴풋이
그래도 시간이 흐르면서 정상이라 월명호수가 어렴풋이 보이고, 새만금 방조제로 가는 공단길도 가로등으로 짐작이 가고 장항도 준설한 모래를 쌓아 만든 인공섬 서북쪽으로 있을 것이고 오른쪽으로는 강점기에 활발했던 군산 내항도 시야에 들어온다. 시계를 보니 7시 30분. 이제는 서둘러 내려가야 할 시각이다.
사방을 조망할 수 있는 월명공원 전망대
새만금 가는 공단길
준설한 모래를 쌓아 만든 인공 섬... 왼쪽 멀리 장항제련소 굴뚝이 있을텐데
과거에 번창했던 군산 내항
왼쪽이 오성산(?)
월명공원 한 가운데 있는 아름다운 월명호수... 설림산과 내가 서 있는 점망산 사이의 계곡을 막아 생긴 호수. 일제 강점기에 그들의 군산 상수도원
2시간 가까이 운동을 한 셈
다시 장계산 쪽으로 내려오다 지나는 산책객에게 시내로 내려가는 가장 가까운 곳이 어디냐고 물으니 청소년수련관이란다. 표지판을 따라 내려오니 대로변에 큰 건물이 떡 버티고 있다. 청소년수련관. 한 등산객에 월명동까지 얼마나 머냐고 하니까 택시나 버스를 타란다. 한참 내려와서야 택시가 보인다. 택시를 잡아타고 월명동 고우당에 가자고 하니 잘 모르겠단다. 그런데 금방 눈에 익은 거리가 나온다. 바로 고우당 옆이다. 방에 들어가니 아내가 아직 이불 속에 있다. 8시 10분 전이라고 하니 그때서야 서두른다. 우용 부부는 옆에 있는 성당에 다녀왔을 것이다.
토렴식 콩나물국밥으로 아침 때워
우리 8명 일행은 50미터거리에 있는 일흥집으로 들어갔다. 콩나물국밥이 5,000원이란다. 토요일 마라톤 연습 후 먹는 일원동 예향과 값이 같다. 따뜻한 국물을 여러 번 국밥에 부어 따뜻하게 만들어 내 놓는 “토렴식” 국밥이라고 벽에 붙어 있다. 예향과 달리 김을 처음부터 넣어서 준다. 어젯밤에 많이 먹어 소화가 덜 된 걸 새벽 2시간 가까이 운동을 해 배를 비워 입맛을 회복할 수 있었다.
주방장이 지금 토렴을 하는 중이라네요
정기 휴일에 찾아간 팥빵집 이성당
우리는 음식점을 나와 중앙로에 있는 이성당 빵집으로 발길을 옮겼다. 9시 문을 열기 전부터 관광객들이 줄을 선단다. 그런데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첫째, 셋째 일요일은 쉬는 날. 한참만에야 승표가 알아챈 것이다. 효진 엄마가 꼭 사야된다고 벼르고 있어 일찍 줄을 서겠다고 간 것이 그렇다. 다른 한 사람도 서성이다 그만 우리와 같이 발길을 돌렸다. 효진 엄마는 팥빵 때문에 다음에 군산을 다시와야한단다.(?)
셔터가 굳게 내려져 있는 중앙로 한 복판의 이성당 단팥 빵집... 효진엄마 모르는 아저씨도 빵사러 나왔답니까... 줄을 서라고 해요
“전국구”의 이성당 “100년” 갈 비법은?
“전국구”가 된 이 빵집은 1945년부터 이 자리를 고수해왔단다. 1920년대 일본인이 운영하던 화과점으로 해방 직후 가게를 인수한 주인이 이(李)씨 성을 가진 사람이 운영하는 빵집이라고 해서 이성당이란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얇은 빵에 팥앙금을 듬뿍 넣은 단팥빵이 하루 5,500~10,000개씩 팔려나간단다. 이 빵집의 매출이 지난해 약 60억. 직원도 60여명.
지난 13일 방송된 KBS ‘100년의 가게’에 소개된 빵집이기도 하다. 어떻게 하면 100년을 유지할 수 있을까 대안을 모색하는 프로그램이었다고 한다. 경주에는 1939년 생겼다는 황남빵이 있다. 이성당 빵은 도너츠 모양인데 역시 팥빵인 황남빵은 구멍이 뚫리지 않았다.
숙소 인근에서 꽈배기를 보더니
국내 유일의 일본식 사찰 동국사
동국사가 숙소에서 멀지않은 것으로 알려져 먼저 들르기로 했다. 일흥옥에서 남쪽으로 월명로를 지나 월명산 끝자락 금광초등학교 바로 옆에 있다. 경내에 들어가니 인기척이 없다. 대웅전 문고리를 잡아당겨봤더니 잠겨 있다. 현재 조계종 산하로 돼 있다.
우리나라에 유일한 일본식 사찰. 일본을 굳이 방문하지 않아도 이 곳에 와 특징을 관찰할 수 있다. 후에 해설사한테 들은 건데 겉으로 봐서 제일 눈에 띄는 게 단청이 없는 것과 지붕이 급경사라는 것이란다. 이유는 습해 단청이 금방 녹아내리고 비가 많이 와 빗물이 빨리 흘러내리도록 한 것이란다.
월명로 지나서 골목에
요사체(살림집)과 붙어있는 대웅전
귀엽게 생긴 대웅전 앞 동자스님... 우리 아들 장가가게 해 주세요... 정성을 담아
범종각
일본은 90%가 신또이고 이중으로 종교를 가지는 경우도 있으나 불교도는 우리나라처럼 많지 않다. 특히 불교는 생활 종교로 승려들이 결혼을 해 절에 살고 있다. 대처승이라고나 할까. 그래서 우리의 불교는 살림을 하는 요사체가 불당과 떨어져 있는데 일본에서는 붙어 있어 복도를 통해 살림집에서 바로 들어갈 수도 있단다. 그리고 일본 사람들의 생활양식인 다다미가 깔려 있었는데 이것만은 마루로 바꾸어 놓았다고 설명해 주었다.
“참회와 사죄의 글”이 비석에
한 귀퉁이에 일본 종단에서 보낸 참사문 (참회와 사죄의 글)을 돌에 음각해 1992년 11월 20일 세워놓았다.
이 수근의 아기업은 소녀와 빨래하는 여인들(?)
다시 나오는데 통영 언덕의 동피랑 마을의 벽화를 떠올리는 그림들이 담벼락에 그려져 있다. 군산이 관광에 눈을 크게 뜨고 있는 것 같다. 그렇지 않아도 음식점들만은 활기가 넘쳐보였다.
동국사 입구에 있는 운치있는 골목길 ... 길도 이쁜 돌이깔려 있어... 들어가서 한번 묵고 싶은 여인숙
신흥동 일본식 가옥 확인
그 길로 다들 숙소로 돌아왔다. 아침 날씨가 꽤 차가워진다. 나와 우용은 대표적인 부자 일본식 가옥이 인근에 있다해서 확인을 해 두고 돌아왔다. 10시에 문을 연다고 돼 있어 방에서 손을 좀 녹이고 모두가 다시 갔다. 문이 열려있고 벌써 사람들의 신발이 많다. 우리끼리 돌아보다 사무실용 방에 해설사가 있어 부탁을 해 다시 처음부터 돌았다.
일찍 갔더니 문이잠겨 있어... 10시에 열린다고
영화의 촬영 장소로 스타괸 신흥동 일본식 가옥
영화동에서 포목점과 조그만 농장을 경영하는 히로쓰 게이사브로가 1925년 지어 살았던 전형적인 상류층 일본식 2층 가옥으로 일본식을 알려면 꼭 들려야 할 곳이란다. 이 신흥동에는 당시 유지들이 살던 부촌. 영화 “장군의 아들”(1990), “바람의 파이터”(2004),“타짜”(2006) 등의 촬영지이기도 했다.
이 재순 해설사는 당시 군산에 무슨 제조업이 있었겠느냐며 일본에서 만든 비누, 치약, 칫솔을 수입해다 팔아 돈을 벌었지 않았나 추측했다. 번 돈으로 논도 사들였을 것이다. 부원(府員) 즉 시의원도 했다. 당시 시(市)를 부(府)라고 함. 이집이 온전하게 보존되었던 것은 그 당시 악독하게 한 일본인들은 해방되자 지역 주민들이 이들의 집을 불살라버려 잿더미로 만들었는데 이 사람은 인정있게 했던 모양이란다.
접견실 코너에 불당이사 사당으로 만들어진 공간.. 창문의 원안의 직선이 만들어낸 기하학적 조형미가 색다르게 느껴지네요
접견실에 불당이나 사당이
집 왼쪽으로 들어가면 사무실 겸 접견실이 있다. 책상이 하나 있으며 귀빈을 맞는 곳이었단다. 그리고 귀퉁이에 흑단으로 만든 불단이 있다. (당시 80만원이라는 엄청난 가격) 기둥 하나 있는 게 중간이 잘려있다. 이는 대추나무로 잘라서 위아래로 붙여 놓음으로써 불당이나 신사임을 표시했단다. 옆 창살이 있는 밖으로 판자가 붙어있는데 아랫사람이 결재를 할 때 이 창문을 열고 하는 곳이기도 하단다.
창밖에 결재 판자가
삐걱삐걱거리는 긴 복도
겨울이라 스산해보이는 정원
정원 좋아하는 일본인들
일본 사람들은 정원을 좋아한단다. 산과 연계한 정원을 구상한다. 앞에 보이는 월명산에 와 있으며 나무와 꽃이 많이 있다고 상상하면서 꾸민단다. 그래서 그들이 좋아하는 편백, 금송, 향나무 등을 심는다. 자연석과 바위를 비치하고 계곡을 생각하고 모래 물길을 만들어놓는다. 지금은 다니는 길로 되어 있다. 그리고 히데요시 등 무사시대에는 언제 자신이 적의 공격목표가 될지 몰라 가옥구조를 미로로 만들어 놓는단다. 이 집도 그런 요소가 가미되어 있다. 쳐들어오는 동안 도망해 숨을 수 있게 하기 위함이란다.
그리고 남천이라는 나무를 심는데 회를 즐기는 일본 사람들에게는 상한 것을 먹을 경우 식중독이 날 수 있어 이의 잎으로 가라앉히기 위한 것이란다.
"타짜"가 촬영된 방이랍니다
정면 가장자리에 좀 높여 마루처럼 만들어놓은 "도코노마" 옆방은 앞쪽보다 조금 높음. 주인이 손님보다 높다는 생각으로...
다다미의 단점 보완용의 방 귀퉁이에 “도코노마”마루
일반적으로 손님들은 이 정원을 통해 다(茶) 접견실로 안내한단다. 정원에는 석수조가 하나 있어 깨끗한 물을 담아 놓아 다기를 행굴 수 있도록 했단다. 주인이 앉는 곳은 조금 높아 주인임을 강조한단다. 손님은 여기에서 맞고 안채에는 들여보내지 않는다. 방 한 귀퉁이에 “도코노마“라고 하는 조금 높은 마루 공간이 있는데 이곳에 꽃병, 두루마기나 신 등을 놓는단다. 다다미에 놓으면 넘어지거나 꾸겨지기 쉽기 때문이다. 에도시에 생긴 것. 바깥문이 안으로 접혀들어가는 이중문으로 되어 있어 겨울에는 꺼내 닫는다.
금고로 쓰인 방.. 금고방에는 다다미가 오히려 걸림돌.. 경사진 이유는 윗층 금고방으로 올라가는 계단 때문
방 하나가 금고 -- 골동품 등 문화재 보관용
일본 사람들은 금고를 무거운 쇠로 된 케이스로 하는 게 아니라 큰 방으로 한단다. 이들은 예술품 즉 그림, 글씨, 골동품 등을 보관하기 위해서다. 손님이 오면 나이에 맞게 꺼내 보여준다. 난방은 다다미로 하고 불은 피우지 않는단다. 다다미를 쓰는 이유는 지진 때문이다. 지진이 나도 오무라졌다 펴지기 쉬워 사람을 덜 다치게 하기 때문이다. 너무 추우면 이동식 화로를 쓸 뿐이다. 일본 어린이들은 겨울에도 반바지를 입는 경우가 많은데 이에 길들여졌기 때문이다. 안방 등 큰방에는 붙박이장(오시이레)이 있다. 예날 우리나라와 달리 화장실이 실내에 있는데 마루로 되어 있어도 냄새가 별로 나지 않았다고 한다.
1층 금고 방위에 있는 2층 금고... 온갖 문화재를 쟁여넣을 수 있는 큰 방
해방되자 국유화된 집을 한국제분 사장이 취득
해방이 되자 일본인들이 다 놓고 돌아가자 이들 가옥과 재산을 나라 소유로 하게 되고 돈 있는 사람들은 이들을 사들였는데 당시 구(舊) 호남제분(한국제분, 현재 동아원그룹) 이용구(李龍九:1914~93)사장이 이 집을 사서 살았다. 그 후 본사가 서울로 옮겨가면서 1986년 관리인을 두어 관리해 왔다.
이 가옥은 2005년 6월 18일 등록문화재 제183호로 등록됐으며 군산시는 현재 소유주인 이 용구씨 딸 낙영씨와 2019년까지 10년 동안 개방 관리해 주기로 계약을 맺어 일반인들이 둘러볼 수 있게 돼 있다고 설명했다.
가족이 드나드는 대문
실내 화장실
가족 출입문은 별도로 나 있는데 복(福)자가 입구 시멘트에 새겨져 있어 들어올 때 밟고 들어오면 복을 가져온다고 믿는단다.
현관에 복(福)자
일본식 가옥 게스트하우스 고우당
우리 일행은 다시 군산시가 마련해 운영하는 근대역사체험공간인 고우당에 돌아왔다. 커피숍에 들어가 커피와 차를 한 잔씩 하며 추운 곳에서 얼어붙은 손과 발을 녹였다. 고우당은 일본식 가옥을 리모델링해 다다미를 깔아 일본식 가옥체험을 원하는 관광객들에게 지난 해 11월 개방했다. 우리는 2인실 4개를 16만원에 들었는데 영업 시작한지가 얼마 되지 않아 깨끗하고 일본 가옥의 풍치를 느낄 수 있어 좋았다. 특히 관광지와 음식점들이 대부분 가까이 있어 좋다.
주차공간이 없어 이처럼 게스트하우스 주위에 댈 수밖에 없답니다.
천안에서 온 대학생들이 내 디카에... 젊어 풋풋해서 좋지요. 다들 세월 붙들어 매 늙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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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기드문 석탄 난로.. 주전자 손잡이에 갇힌 우용 어부인
자연스러워 괜찮은데 촛점이 흠... 석탄 난로 옆에서 얼었던 몸과 마음을...
우용 부부가 새벽 미사드리러 간 고우당과 인접해 있는 성당
채희묵 배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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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군산에 출장시 자주 들르던 곳인데, 1박2일 여행임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자세히 소개하는 희묵이야말로 역시 대기자임에는 틀림이없네. 항상 수고하는데 건강하시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