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차 코스 : 나밭고개~매리교(낙남정맥 마지막 구간)
▼나밭고개 도착
나밭고개는 경남 김해시의 삼계동과 생림면 나전리 사이에 위치한 고개이다.
나밭이란 지명은 풍수적으로 "선녀나대하강전형(仙女羅帶下降田形)"의
명당이라는 것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지나 번 하산지점 사거리에서 산행 들머리인 나전고개(나밭고개) 천리교 안내판이
있는 곳으로 조금 걸어 와야 하는데..
산악회 버스가 배려 차원에서 들머리까지 올라 와 곧바로 산행을 시작 할 수 있었다.
▼들머리 도착
천리교 한국 전도청 입구 50m 전 쓰레기 불법투기 경고문 옆으로 난 우측
숲으로 올라 묘지 좌측으로 등로따라 이어간다.
곧바로 좌측편으로 천리교 한국 전도청 건물이 보인다.
▼이번 기회에 천리교가 무엇인지 자료를 찾아 알아본다.
천리교 [정의]
일제 강점기 포교를 위해 부산으로 진출한 일본 교파 신도의 한 교파라 한다.
[개설]
천리교는 1882년 정부 포고령에 따라 국가 신도(國家神道)에서 분리된 13개 교파
신도(敎派神道) 중 하나로, 일제 강점기 조선으로 진출한 교파 신도 중 교세를
가장 크게 넓혔던 교파이다.
1838년 일본 농촌에 거주하던 평범한 주부 나카야마 미키[中山美伎]가 나라
현[奈良縣] 덴리[天理]에서 천리왕명(天理王命)이라는 신이 강림하면서 시작된
천리교는 나카야마 미키가 주변 사람들의 병을 고쳐주자 그녀를 중심으로 신도
집단이 형성되었다.
처음에는 현세 이익적인 내용으로 출발했으나 기성 종교의 압박에 대항하여 교의를
정비해 자기 몸은 신에게서 빌린 것임을 알고 욕심을 버림으로써 질병 없는 평화
세계에서 살 수 있다고 설법하였다.
조선으로의 포교는 처음에는 교단 본부의 정책적인 차원이 아니라 산하 개별 교회
신자들의 자발적인 포교 노력에 의해서 시작되었다.
[조선 포교의 배경과 목적]
천리교의 조선 포교는 1893년 코치현[高知縣] 분교회의 사토미 한지로우[里見治
太郞]가 부산에서 3~4년에 걸친 포교 활동을 하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천리교 기관지인 『미찌노토모[道の友]』에 따르면, “개정 조약이 크게 진척되고
정청군(征淸軍)은 육지와 바다에서 계속 크게 승리를 거두고 있는 지금이야말로
일본 국내 사람들이 많이 들어가 계림으로 포교를 시도하여야 한다.”고 하여 청일
전쟁 전후 해외 포교의 필요성을 제기하고 있다.
포교 초기에는 조선에 들어와 생활하고 있던 일본인 이주자들이 그 대상이었으나,
점차 조선인에 대한 포교에도 많은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1920년대부터는 교단 본부 차원에서의 해외 포교가 본격적으로 전개되었는데,
외국어 학교를 설립해 포교사 양성에 힘쓰는 한편 이에 부속된 도서관 등을 두어
포교 관계 자료도 수집하였다.
그 결과 1930년대 말 조선에서의 천리교 신도는 일본인 약 4만 명에 조선인 약 2만
3,000명에 달할 정도였는데, 다른 교파보다도 특히 조선인 포교에 큰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활동 사항]
천리교는 일본인뿐만 아니라 조선인에 대한 교화(敎化)·전교(傳敎)를 목적으로
종교 활동과 포교 활동을 전개하였다.
정기적으로 대제(大祭)를 개최하고 참배단을 모집하여 나라현의 천리교 본부로
보내는 한편 가족이나 친족, 지인 등 가까운 사람들 가운데 병자를 구제하는 것을
통해 교리를 알리며 교세를 확장해 나갔다.
1929년 6월 부산 지역에 심한 가뭄이 들었을 때에는 기우제를 지내기도 하였다.
천리교는 특히 1930년대 이후 전시 체제 하에서는 후방에서 식민지 종교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담당하고 있었다.
1932년에는 만주로 파견된 장병의 노고를 위로하기 위한 위문대(慰問袋) 보냈고,
비행기 ‘부산호(釜山號)’를 헌납했으며, 부산 공회당에서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한
강연회도 개최하였다.
1938년에는 천리교 부인회 부산 지부에서 장병의 노고를 위로하기 위해 모포를
헌납했고, 천리교 일여회(一如會) 부산 지부에서는 총후보국(銃後報國) 강조 주간을
맞이하여 1일 1식 ‘야채 없는 날’을 정해 근검·절약을 실천하기도 하였다.
일제 강점기 천리교에서 부산에 설립한 선교소로는 1910년 11월 남빈희평(南濱喜平)
의 관리 하에 부평동에서 포교를 개시한 동한선교소(東韓宣敎所)와 1912년 11월
관리자 대봉인삼랑(大峰仁三郞)의 알선으로 대청동에 신축된 부산선교소(釜山宣敎所)
를 비롯해 개부선교소(開釜宣敎所), 경부선교소(京釜宣敎所), 궁선선교소(宮鮮宣敎所),
보수선교소(寶水宣敎所),본상선교소(本尙宣敎所),부남선교소(釜南宣敎所),부초선교소
(釜草宣敎所), 양부선교소(梁釜宣敎所), 애조선교소(愛朝宣敎所), 절영도선교소
(絶影島宣敎所), 조남선교소(朝南宣敎所), 초량선교소(草梁宣敎所) 등이 있었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font>
▼지난 구간에 내려 온 마루금 봉우리.. 뒤 돌아 바라보고..
▼완마하게 등로길이 이어지다, 가파른 오르막길을 오르다 등로 좌측 소마무에
붙어있는 준.희님의 낙남정맥을 종주하시는 산님들 힘내라고 산꾼들에게 무언의
힘을 팻말을 지나서..암릉 구간을 우회하며, 오르고..
▼378봉/능선삼거리 도착
가파르게 올라오면, 삼거리 갈림길에서 정맥길은 우측으로 꺽어져 내려간다.
▼안부에서 편백 숲길을 따라 잠시 편안한 길이 이어가면 옥선봉에 도착한다.
▼옥선봉(330.7m) 도착
돌무덩이 가운데 큰 돌에 낙남정맥 옥선봉이라 매직펜으로 표기하여
놓은 330.7m봉에 오른다.
돌무덩이 중앙의 나무 막대기와 옥선봉이라고 노란 표시가 붙어있다.
정맥길을 이어가면 옥녀봉~소도마을 갈림길을 지나고...옥녀봉?
▼완만하게 안부 지나고..편백나무옆 등로길이 이어지고..
▼402.7m봉 도착
우측으로 안내판과 삼각점을 지나서 등로길은 편백나무옆 완만하게 이어진다.
▼사거리 갈림길 도착
입산금지 표지석이 있는 갈림길을 직진으로 이어가고..
우측 아래에 있는 가야CC에서 설치 한 듯...
▼수로봉(418m) 도착
봉우리에 태극기가 게시되어 있고,바위앞 수로봉이라고 정상석이 자리잡고 있다.
저분이 수박을 가지고 와 산우님들과 함께 먹으려고 기다리는 것을 보고 이어간다.
▼갈림길 도착
수로봉에서 내려오면 갈림길에서 좌직진으로 넓은길따라 이어가면 등로길은
좁아지고, 계속 이어가면, 갈림길에 도착하게 된다.
▼임도 쉼터 도착
갈림길에서 임도를 만나 우직진으로 조금 나가면 의자쉼터 2개가
있는 임도 갈림길에서 정맥길은 정면 직진 숲길로 이어간다.
▼가야CC/능선 갈림길 도착
우측으로 김해 천문대로 향하는 길이 더 뚜렷하지만, 정맥길은 좌측으로 간다.
등로길은 족적은 뚜렷하지만, 잡목들이 있는 등로따라 내려간다.
▼가야CC 도착
갈림길에서 우직진 등로따라 내려오면, 우측으로 골프장이 보인다.
가야CC의 퍼블릭 코스 4번홀 티박스 옆으로 내려서 좌측 화살표 방향으로 간다.
▼영운리고개 위 다리 도착
평소에 이 다리 출입문이 잠겨 있는 날이 있다는 선답자 후기도 있다.
오늘은 열려 있어서 통과에 어려움이 없이 정맥길을 이어간다.
우측 아래쪽 바라보며..좌측 영운리고개 내려다 보고 간다.
다리 아래쪽 2차선 지방도로가 지나는 이 곳을 영운리고개로 부르고 있다.
▼다리를 건너오면 9번 홀 티박스를 지나고..화살표 방향따라 이어간다.
▼굴다리 골프장 갈림길 도착
좌.우 어느 도로를 이어가도. 클럽하우스 앞에서 만나게 된다.
그러나 좌측이 기존 정맥길이라 좌측으로 올라가 들머리 숲속을 보니, 잡풀이
무성하여 다시 되 돌아 와 우측 화살표 도로따라 클럽하우스까지 이어간다.
▼클럽하우스 앞 도착
클럽하우스 앞에서 우측으로 난 도로를 들어서면, 클럽하우스 앞에
설치된 등산로 안내판은 산길로 유도한다.
좌측 전방으로 100m 정도 진행하여 우측 방향 시멘트길따라 산길로 가라는 안내이다.
우리는 곧바로 신어코스 1번 홀 티박스 우측 도로따라 가다 골프장을 가로질서
좌측에서 올라오는 시멘트길따라 올라간다.
▼시멘트 포장길을 따라 오르다 보면, 좌측으로 휘어져 봉우리로 오르는 길
우측으로 정맥길이 꺽어져 내려간다.
우리는 좌측에 시멘트길따라 조금 올라가면 나오는 봉우리에 "지장보살 상"이 있다.
지장보살 상을 보고, 다시 되돌아 와 정맥길 따라 내려간다.
▼지장보살...
지장보살은 지옥에서 고통 받는 중생들을 구원하는 보살로, 그 자비심에 예로부터
민간에서 많이 신봉되어 왔다.
석가모니의 입멸 때부터 미륵불이 출현할 때까지의 부처가 없는 동안에, 육도(六道)
즉 (지옥,아귀,축생,아수라,인간,천의)에 몸을 나타내어 천상에서 지옥까지의 모든
중생을 교화한다는 것이다.
지장보살은 본래 천관을 쓰고 가사를 입었으며, 왼손에는 연꽃을 오른손에는 보주를 든
모습으로 묘사된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지옥문을 깨뜨린다는 석장인 육환장과 어둠을 밝히는 보석
구슬인 장상명주(여의주)를 들고 있는데, 육환장의 6고리는 육바라밀을 상징한다.
보통 장례를 치른 후 좋은 곳에 태어나게 해달라며 지장보살을 모시고 49제를 올리는
것은 그런 연유에서 전해지고 있다.
서봉을 등지고 가야CC 방향을 내려다 보고 있는 지장보살은 아마도 골프장에서
마루금길 폐손한 골프장측에 자비를 바라는 마음으로 설치 하였나?.....
▼신어코스 8번홀 그린 도착
다시 골프장으로 내려서서 정면에 보이는 서봉 들머리로 이어가고..
▼서봉으로 오르는 등로길은 상당히 가파르게 올라간다.
대략 300m 정도의 고도를 급격하게 쳐 올려야 하는 힘든 오름길이다.
바위지대에서 올라가는 것 또한 조심해야 겠다.
▼우측 전망바위에서 잠시 숨을 고르며 지나온 가야CC를 내려다 본다..
▼선두에서 리딩하시느라 수고 하시는 경준대장님...
▼신어산(630m) 서봉 도착
정상에는 제법 큰 돌탑과 대리석 정상석이 세워져 있는데, 2006.1.12.
가락산악회에서 세운 정상석(신어산 서봉 630m)이라 적어져 있다.
개념도상에는 640.2m로 표기되어 있는 곳으로.. 서로 많이 차이가 난다.
정상 이정표 신어산헬기장 0.3km 방향으로 이어가고..
▼헬기장 도착
가는 길에 영지버섯도 보이고...
헬기장 직전에서 1시간정도 아침식사를 하고 헬기장 통과 좌측으로 간다.
신어산 정상 1.0km방향으로 이어가고..
▼헬기장 이정표: 우측은 은하사 1.3km 가는 길
은하사[銀河寺]
소재지 : 경상남도 김해시 신어산길 167 은하사(경상남도 김해시 삼방동 882)
종파 : 대한불교조계종
창건시기 : 1세기경
창건자 : 장유
대한불교조계종 제14교구 본사인 범어사(梵魚寺)의 말사이다.
서림사(西林寺)라고도 한다.
구야국(狗耶國) 수로왕(首露王: 재위 42∼199) 때 인도에서 온 승려 장유
(長遊)가 창건하였다고 하나 이 시기는 아직 우리 나라에 불교가 전래되기
전이라 확실한 고증은 할 수 없다.
전하는 설에 따르면 신어산 서쪽에 인도불교가 들어온 것을 기념하여 이 절을
지었으며, 동쪽에 동림사(東林寺)를 지어 구야국의 번영을 기원했다고 한다.
이 절의 가락국의 김수로왕 때 장유화상(長遊和尙)이 창건하였다고 하며,
임진왜란 때 불타버린 것을 1600년대에 중창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절 이름은 처음에 산 이름과 관련시켜서 은하사라고 하였는데,
최근 장유화상이 인도로부터 와서 가야에 불교를 전파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서 서림사로 바꾸었다고 하며, 현재도 은하사라고 부르는 사람이 많다.
김해의 영산인 신어산(神魚山 630.4m)의 중복에 위치한 은하사는 역사의
사찰로서 옛 서림사(西林寺)라 하고, 낙동강의 강바람을 막으며 남해로
달리는 형상의 신어산은 그 이름에서 김해의 신비로운 역사를 머금고 있다.
가락국을 세운 수로왕의 왕비로 인도 아유타국에서 시집온 허후(허황옥)가
전래했다는 서역문화의 이름 신어를 수로왕릉 납릉정문 신어문양과 함께
그대로 간직하고 있어 더욱 아름답고 신비롭다.
제2 금강산이라 불리울만큼 아름다운 산을 병풍처럼 둘러친 위치에 허왕후를
동행해온 형제 장유화상(허보옥)이 창건했다고 전한다.
장유화상(長遊和尙)은 이곳에다 모국의 번영을 기원하며 서림사를 지었고,
조금 떨어진 곳에 가락국의 번성을 위해 동림사를 지었다고 한다.
아무리 이름난 명산일지라도 한 골짜기에 두 개의 절을 짓지 않는다는데..
아득한 옛날에 동림과 서림사가 함께 들어섰으니 김해의 역사 문화가 더욱
아름답게 느껴진다.
임진왜란(1592)때 모두 불타버렸는데 그후에 서림사만 창건하였으며, 대웅전은
경남도 유형문화재 제238호로 83년 12월 20일 지정되어 있다.
이곳에는 숙종 14년(1688)의 십왕전상량문(十王殿上樑文), 영조 43년
불상중수개금(佛像重修改金), 정조15년(1791) 십왕전 이건 상량문, 헌종
원년(1835)의 대웅전 관음존상개의 후불탱화진성기 및 부사 심웅기(1837~39)의
대웅전 중창기 취운루 등의 현판이 보존되어 있다.
현재의 대웅전은 1837~39년에 중창한 것으로 볼 수 있다.
1989년 3월의 신어산 큰 화재시에도 서림사만 피해가 없어 가락불교의 성지임을
더욱 거룩하게 했다.
그러나 대웅전 수미단에 조각되어 있던 신어문양이 도난 당해 불교계는 물론
불교미술 관계자들을 안타깝게 하고 있다.
현재 대성 큰 스님이 서림사의 본 모습을 중창하기 위해 몇 년째 땀을 쏟고 있어
머지않은 날 가락불교의 성지로서 참모습을 보게 될 것이다.
[김해의 문화재-김해향토문화연구소]
영화 '달마야 놀자1' 촬영 장소가 은하사라 한다.
▼헬기장에서 앞 마루금 봉우리 능선과.. 우측 아래 시내 조망하고 이어간다.
▼이정표 상동 장척 1.7km 지나고.. 완만하게 이어가고..
▼우측편에 신령 거북바위에서 조망 후..등로길 이어가고..
▼출렁다리 통과...
▼삼거리(영구암 갈림길) 도착
넓은 쉼터 평상과 벤치등 안내판이 세워져 있는 쉼터를 지나고..
▼신어정(神魚亭)도착
신어정에서 데크 계단길을 오르면 신어산 정상에 오르게 된다.
▼신어산 표지석이 보이고..
표지석 내용을 보니, 신어정과 정상 전망대를 경남은행에서 협찬하여 세윘다는
김해시의 표석이 세워져 있다.
정맥길은 직진으로 정상석 갔다 화살표 방향 우측 아래로 이어진다.
▼신어산(神魚山 630.4m)
신어산(神魚山 630.4m)
소 재 지: 경남 김해시 삼방동, 상동면, 대동면
개 요
금관가야(金官伽倻)시조 수로왕과 허황옥(許黃玉) 왕비의 신화가 어린
성산(聖山)이다.
신어는 수로왕릉 정면에 새겨진 두 마리 물고기를 뜻하며 밀양 만어산
(萬魚山:670m) 전설에도 나오는 인도 아유타국(阿踰陀國)과 가락국(駕洛國)의
상징이다.
그 신어가 있다는 것에서 산 지명이 유래되었다고 한다.
일명 선어산(仙魚山)이라 하며, 동신어산은 동쪽 신어산의 와전이다.
북동쪽의 동신어산, 남쪽의 돗대산과 산줄기가 이어지며 신어천, 주중천 등이
발원해 남쪽으로 흐른다.
이 산을 핵으로 시 복판의 황새봉(393m)·경운산(慶雲山:379m)·분성산
(盆城山:375m)이 동쪽 백두산(白頭山:352m)·덕산(德山:457m)·까치산(342m)
등과 연봉을 이루고, 낙동강 건너 소백산맥의 산들과 대치하고 있다.
카펫처럼 부드러운 백두산∼신어산 종주능선은 부산 근교의 워킹 산행지이다.
산마루에 서면 부산을 에워싼 연봉들의 능선을 조망할 수 있다.
산림욕장이 문을 열어 가벼운 산책도 겸할 수 있는 가족동반 등산과 휴식을
즐길 수 있는 산이다.
금정산(金井山:801m)과 태백산맥의 구봉산(九峰山)에서 몰운대(沒雲臺)로
뻗은 낙동정맥(洛東正脈)의 산군은 물론, 지리산 영신봉(靈神峰:1,651m)에서
분성산에 닿는 낙남정맥(洛南正脈)의 연산들을 비롯해 이웃한 무척산
(無隻山:703m), 양산시 물금읍 오봉산과 원동면 토곡산(土谷山:855m), 웅상읍
원효산(元曉山:992m)과 천성산(千聖山:812m) 등 동부의 크고 작은 산들을
살펴볼 수가 있다.
가야의 올림포스산답게 초기의 고찰 은하사(銀河寺)와 영귀암(靈龜庵)
등이 있으며 조선시대 기우단도 있었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구암사(龜岩寺)·십선사(十善寺)·
청량사(淸凉寺)·이세사(離世寺)가 있다고 할 정도로 이 산은
불모산(佛母山:801m)의 신화와 함께 남방불교 전래의 성지라 할 수 있다.
정상의 오석 정상표지석(신어산631.1M)과 산불감시탑이 있다.
흔적을 남기고..
▼정상 이정표: 안동.선암다리 6.0km 방향으로 낙남정맥길이 이어진다.
신어산에서 내려서면서 가야할 방향으로 마루금 능선이 조망이 된다.
멀리 장척산과 백두산으로 향하는 능선이 보인다.
▼안부 사거리 이정표 도착
우측으로 부산과 김해의 경계지점인 대동면 선암다리와 천불사로 가는 길이다.
정맥길은 직진으로 이어가고..
▼신어산 동봉 도착
주변을 조망하고.. 정맥길따라 내리막 등로길이 이어간다.
▼동봉에서 내려서는 등로길은 나무계단이 곳곳에 설치되어 있다.
완만하게 내리막길 이어가면, 갈림길에 도착하게 된다.
▼갈림길 도착
우측으로 뚜렷하게 내려가는 갈림길에서 좌측으로 정맥길이 이어진다.
좌측으로 내려가면 곧바로 최근 설치한 나무데크 계단길따라 내려간다.
내리막길이 계속 이어지고..잠시 휴식 중인 맑은영혼님의 담아본다.
내리막길 내려가다 갈림길에서 좌측으로 내려서고...
▼생명고개 도착
상동면 묵방리 절터골과 대동면 주동리 독지곡 및 주중리를 잇는 콘크리트
포장임도가 지나고 있다.
인근에 장척계곡이 있어 주민들의 피서지로 각광을 받는 곳이라 한다.
생명고개에서 부터는 이정표 백두산 방향으로 이어간다.
둔덕 언덕배기로 포장길따라 이어가고..
▼언덕에서 우측으로 조금 더 가다 우측 이정표가 있는 숲으로 이어간다.
▼시멘트 임도길 도착
우회하여 올라 온 시멘트 임도길 다시 만나, 우측으로 임도따라 조금 올라간다.
▼좌측으로 이정표가 있는 숲으로 진입하여 이어간다.
▼다시 만나 시멘트 임도길..
2분여 올라오면, 다시 시멘트 임도길 만나, 이정표 백두산 6.3km 방향
좌측으로 2분여 시멘트 임도길따라 올라간다.
▼나무데크 계단 들머리 도착
계단 입구 좌측 이정표에서 백두산 6.2km 방향을 안내하고 있다.
▼터실앞산/405봉 도착
임도 계단으로 올라 완만하게 오름길 올라서면 터실앞산 이정표에 도착한다.
좌측 백두산 방향으로 내려간다.
▼터실고개 도착
터실앞산/405봉에서 약 3분여 내려서면, 시멘트 포장길이 끝나는 임도와 만나
건너편 들머리에 이정표와 터실고개라고 표시하고 있다.
좌측 정자에서 잠시 휴식 후..
백두산 5.9km 방향으로 가파른 오르막길을 힘들게 올라간다.
▼452.6m봉 도착
묘지를 지나고.. 오르막길 이어오면 의자쉼터가 있는 452.6m에 지나간다.
정맥길은 안부에 내려 와 다시 오르막을 힘겹게 올라가면 장척산에 도착한다.
▼장척산 갈림길 도착
정맥길은 우측 백두산 5.1km 방향이지만, 그러나 좌측 롯데야구장 방향으로
10m 오르면 장척산 정상이다.
다시 되돌아 와 백두산 방향 우측으로 정맥길을 이어가야 한다.
▼장척산(534.8m) 도착
정상 주변에는 안내판과 쉼터의자와 넓은 공터가 자리잡고 있다.
다시 되돌아 백두산 방향으로 이어가고..
▼시례북산(522.8m) 도착
사각정 지나 이정표목에 누군가 시례복산이라고 새겨 놓았다.
정맥길은 백두산 4.8km 방향으로 이어가면 계단길따라 내려선다.
▼481봉. 소감마을,예덕산/ 갈림길 도착
좌측 화살표 방향으로 오르면 481m봉/예덕산에 도착하게 된다.
정상에는 준.희님 표지판이 달려있고, 이정목에는 예덕산이란 표시판이
붙어있다고 한다.
이곳에서 잠시 망설이다가 무더운 날씨 핑계삼아 산우님들이 가는
좋은 우회길따라 한 동안 481m봉 아래 사면길따라 이어간다.
▼안부 도착
481m, 예덕산에서 내려오면 합류하는 안부에 도착하여 이곳에서 잠시
휴식 후, 거리표시 없는 백두산 방향으로 올라 간다.
▼선무봉.475m봉/ 백두산 갈림길 도착
지금까지 따라 온 백두산길 버리고, 매리 낙남정맥길로 급하게 내려간다.
백두산 방향으로 10m 올라가면 안내판과 쉼터의자가 있는 선무봉 올라
특색없는 정상을 보고, 되돌아 와 메리 방향으로 가파르게 내려간다.
▼지금까지 정맥길과 함께 한 백두산(白頭山.354m)자료
백두산은 경남 김해시의 대동면 예안리, 괴정리,초정리에 걸쳐 있는 산이다.
낙동강가에 위치하며, 산 동쪽으로 부산~대구 고속도로가 지나고 있다.
동쪽 사면에 월며사가 자리잡고 있다.
"조선지지자료(김해)에 하동면(현재 대동면) 초정리에 있는 산으로 백두산이
기록되어 있고, 한국지명총람에는 백두산의 이칭으로 방산(膀山)을 수록하였다.
백두산 지명과 관련하여 대홍수 때 산이 100마(碼)정도 남아 유해했다는 설이다.
▼안부 갈림길 도착
475m봉에서 내리막길을 내려오면, 아무런 표시가 없는 삼거리 갈림길에서
정맥길은 우측 방향으로 꺽어져 내려가면 감천고개에 도착하게 된다.
▼감천고개 도착
상동면 매리와 대동면 덕산리를 가르는 안부 고개길이다.
감천고개 안부에서 다시 오름막길이 이어지고..
▼등로 우측으로 약간 나가면 조망이 되는데..아래쪽에 낙동강이 보인다.
낙남정맥 끝지점 낙동강도 조금만 더 가면...
폭염날씨에 계속 오르막을 힘겹게 올라간다.
▼새부리봉(499m) 도착
산지킴이님의 팻말이 달려있는 봉우리 499m봉에 도착한다.
전방 방향으로 암릉 위에 새부리 같이 생긴 바위가 있어..새부리봉인가 보다.
이곳에서 잠시 휴식 후..이어가고..
▼새부리봉에서 내려가면 보이는 동신어산과 낙동강이 멋지게 조망이 된다.
암릉 내리막 좌측으로 우회해서 우측 화살표 방향으로 이어간다.
아래쪽 보이는 바위를 좌측으로 우회길 내려가면, 좌직진으로 내림길이 있는데..
아마도 암릉길 놓치고 희미한 등로따라 내려간 듯..산꾼들 흔적이 보인다.(주의)
정맥길은 우측 바위 끝지점으로 올라 화살표 방향으로 급하게 내려간다.
▼안부 통과..
급경사 내리막길을 내려서면, 안부에서 직진으로 정맥길이 이어진다.
다시 힘들게 오르막 올라가면 동신어산에 도착하게 된다.
▼동신어산(459.6m) 도착
오늘의 실질적인 마지막 산봉우리 동신어산에 도착하게 된다.
지형도에 신어산으로 표기되어 있는 정상에는 오석 대리석에 "낙남정맥이
시작되는 곳...동신어산 459.6m..대주L.C산악회"가 새겨진 정상석이 있다.
우리는 이 곳이 끝내는 봉우리인데, 여기서 시작하는 산꾼들도 많이 있다.
마지막 낱머리 낙동강변을 내려다 보며.. 완주 기뿜을 산우님들과 함께 한다.
▼동신어산에서 다시 암릉길을 지나서..암릉능선 봉우리를 넘어간다.
▼265.7m봉 도착
암릉봉을 넘어서 내리막길을 내려와 다시 오르면, 265.7m봉에 도착한다.
아래쪽 김해시 매리 낙동강하구에 있는 공장들과 상동터널으로 중앙고속도로
교곽도로가 시원하게 조망이 된다.
그 우측에 낙남정맥 끝지점 고암나루가 조망이 되고..
▼고속도로 도착
내리막길 내려서면 고속도로옆 수로따라 좌측으로 내려가서 대구~부산
잇는 고속도로 고가교 밑으로 통과하여 건너편으로 올라온다.
▼180m봉 도착
낙남정맥 끝지점에 있는 마지막 봉우리 180봉을 넘어 간다.
▼180봉에서 내려서는 길이 상당히 가파르고 거칠다.
낙남정맥 끝지점 낙동강이 코앞에 보이고..
▼좌측으로 도로따라 조금 나아가니 매리2교 다리가 보인다.
삼거리에서 건너편 우측길로 이어가고..
좌측길은 고속도로 건너서 180봉 가지않고 편안하게 오면 여기서 만남
▼매리2교 다리에 도착하여 낙남정맥 끝지점 흔적을 남기고..
▼낙동강까지 내려가 보기로 하고, 180봉에서 내려온 도로 반대쪽에 되돌아 와
좌측 시멘트길따라 이어가면, 낙동강 자전거길 안내판 지나서 좌측에 길없는 적당한
곳으로 내려가서 낙동강에서 낙남정맥 종주를 마무리 한다.
▼그 동안 낙남정맥 종주 완주를 위하여 고생하신 쑤꿀고문님이하 경준대장님,
총무님 그리고 함께 협조와 배려 하신 산우님들께 감사 드리며 낙남정맥 종주길
아름다운 추억으로 간직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