ㅇㅇ선생 그의 집에 도착해서 들어가니 낯선 여성 두 분이 있다. 낯을 몹시 가리는 나를, ㅇㅇ선생이 반겨주었다. 버스킹할 때 같이 다녔던 다른 분도 따듯한 표정으로 대해 주어서 금방 편한 자리가 되었다.
탁자위에는 옥천(협회행사)을 갔다가 돌아올 때, 누님같은 환우님이 버스안에서 따라 주시던 술병이 놓여 있었다. 그때 먹은 술이 너무나 써서 무슨 이런 술을 따라주나 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시간이 흐르면서 기분이 훈훈하니 좋았다.
중국 술로 <연태 고량주>란다. 34도짜리, 나는 그 술을 보고나서 낼름 소주잔으로 반 잔을 받아서 마셨다. 크윽~! 되게 쓴 그 뒷맛이 희안하게 좋다. 평소 그들 앞에선 술을 안 먹는 술을 먹으니 ㅇㅇ선생이 다른 눈으로 쳐다 본다.
ㅇㅇ선생하고 나하고 오가는 말로 인해 처음 본 여성들의 시선도 낯선 사람인 나에게로 초점이 맞춰졌다. 한 여성의 이름은 ㅇ씨란다. 결국 ㅇㅇ선생이 나를 소개했다. 내가 파킨슨을 앓고 있으며 나의 성품이 아픈 사람에게 나타나기 쉬운 밴댕이처럼 속 좁은 그런 것이 없다며 나를 칭찬해 준다. 순간 나는 찔끔했다. 한 달 반전 별안간 그가 싫어져 관계를 끊었다가 노래를 배우려는 속셈으로 다시 찾았는데 속 좁은 그런 것이 없다니...
그랬었다. 나를 얕보는 듯하여 한동안 그가 되게 미웠었다. 그런데 미웠던 부분이 인간의 본 모습으로 느껴지기 시작했다. 맞다, 그는 그냥 인간인데 그에게 성자처럼 너무 많은 것을 기대했던 것이다.
ㅇ씨는 자기가 예전 산악회 다닐 때, 망년회 한다길래 따라갔다고 한다. 그런데 어디 벌판같이 추운 곳에다 불을 피워놓고 공사장 모래치는 채 같은 것에다 고기를 구우려고 하더란다. 그것을 보고 여성인 자기를 홀대하는 기분이 들어서 울컥! 했단다. 추운 곳에다 여자를 데려다 뭐하는 짓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는 것이다. 당황한 남자들이 컵에다 술을 벌컥벌컥 딸더니 반강제로 한 잔만 해보라고 하더란다. 그래서 못 이기는 체 마셨단다. 그 순간 좀전에 홀대받는 느낌과 추위는 사라지고 주위가 환하고 포근하니 느껴지더란다. 글라스에 따라진 그 술이 50도짜리 중국 고량주 였다는 것이다.
술 한잔에 마음까지 녹일 수 있는 그녀의 성품이 피곤해 보이지 않아서 호감이 갔다.
내가 비환우들과 대화하면서 느껴지는 것들이 있었다. 주위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그냥 숙명처럼 받아 들이고 골치 아프게 생각을 안 한다는 것이다.
그에 반해서 우리 환우들 대부분 스트레스를 맨몸 그대로 받은 경험이 있고 전전긍긍하는 점이 다르다. 자식처럼 키우다시피 했던 형제가 돌아오지 않는다거나, 자식이 부모를 앞세우거나, 사랑하는 이가 갑자기 세상을 등지거나, 큰 일을 겪고 맨 정신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스트레스를 그대로 받아야 하는 처지에 놓여있었거나, 회피하지 못하는 성향이었다는 것이다.
나도 그때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며 술 한 모금도 마시지 않고 그 생지옥을 두 눈 시퍼렇게 뜨고 다 지켜보며 나의 가슴에 새겼었다 그때 만일 직시만 하지 말고, 술이라도 마시며 한동안만이라도 몽롱하니 꿈결처럼 그것을 피해갔었음 어땠을까...
그랬으면 비록 안개비에 젖었을 망정. 퍼붓는 장대비는 피하진 않았을까, 그래서 홀딱 적어 콜록콜록 건강을 중대하게 위협하는 폐렴까진 걸리게 하지는 않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암튼 성인군자도 바늘 하나 꽂을 곳이 없을 정도로 속이 좁을 때도 있다던데 내가 이 정도면 본래대로 회복하는 복원력이 썩 괜찮은 편이라고 스스로를 토닥토닥 해본다.
그리고 반대로 이번에는 내가 ㅇㅇ선생 그를 꽉 잡고 놓지 않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나의 외로움만은 아닌 것 갈다. 계산만도 아닌 것 같다.
추신ㅡ 그분들과 망년회를 했습니다. 그리고 어제는 그가 선생으로 있는 교실을 찾아가 초급반, 중급반 다 지켜보았습니다. 강의하는 그가 교수 뺨치게 진지해서 멋있었습니다. 따듯한 미소와 그의 볼은 포근하게 느껴졌습니다.
참, 저도 기타를 배우려고 합니다. 손떨림이 있어도 시도를 하려고 햡니다. 그분 제자 중에 손가락이 공장 프레스 기계에 잘린 분이 있었는데 기타 배울 수 있냐고 찾아 왔다고 합니다. 그래서 가능하다고 말을 했다고 합니다. 그분 나머지 잘린 짧은 손마디로 남보다 기타를 더 잘 치더라는 말을 선생한테 들었습니다
초급반 학생이 부른 노사연의 노래 <이 마음 다시 여기에> 가 가슴에 남아서 올립니다. (뒷모습만 촬영)
※소리 주의
![](https://t1.daumcdn.net/cafeattach/1Hn9q/d01c40708930f60f7a32aad879a8029639559a6c)
![](https://t1.daumcdn.net/cafeattach/1UAhq/a4d37a1aa1a1e7d78490179320d8789498941e6b)
첫댓글 와~~글 잘 읽었습니다. 우리는 자신을 이기지 못하면 결국 나약한 모습만 남습니다.
기타연주가 있고 맛있는 음식이 엄청 많습니다. 보기만 해도 행복해지려합니다.
사진속의 병이 그 말로만 듣던 고량주인가봅니다. 저두 술을 정말 못 먹는데 시원한 맛으로 맥주로
두어잔 마시며 즐깁니다.
맞습니다. 나를 극복하지 못하면 결국 자괴감이 들더군요. 방어회, 노래미회 장어 먹었어요. 근데 내가 먹어 본 회중에 그래도 광어 회가 제일 맛있어요. ㅎ
연태 고량주래요. 마트에서 500미리 17,000원이래요. 그 정도면 꽤 비싼 술이죠.
무엇보다 분위기가 좋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