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우산, 용마산, 아차산(상봉역-우림시장-용마랜드-이중섭 묘역-용마산5보루-아차산-기원정사-어린이대공원, 15km, 2024. 3. 14.)
서울둘레길 구간에 해당하는 망우산에서 용마산, 아차산을 걸었다. 쌍문역, 노원역, 상봉역에 2번 출구로 나왔다. 중랑구에서 상봉, 신내 지역은 변화가 엄청나게 크다. 1986년도 포도밭 등 시골 향이 듬뿍 날 때 신내동에 살았었다. 야반도주나 다름없이 시골을 떠난 부모님은 신내동에 방 한 칸짜리 월세를 겨우 구할 수 있었다. 보증금 50에 월세 5만 원이었다. 그것도 친척의 도움이 없었다면 어려운 일이었다. 그 와중에 나는 86년 5.3인천투쟁으로 수배가 되었다. 지금은 고층 빌딩이 즐비하다. 중랑구청도 신내동으로 옮겨온 지 오래다.
상봉역에서 옛 추억을 주억거리며 우림시장 쪽으로 걸었다. 우림시장에서 장사하시던 분들은 어떻게 되었는지 가늠조차 하기 어려운 시간이 흘렀다. 시장 건너편에 둘째가 태어났던 산부인과는 여전히 자리하고 있다. 우림시장은 꽤 큰 시장이다. 아직 오전이라 그런지 사람이 많지는 않았다. 시장은 구경거리가 많다. 시선 가는 대로 이것저것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길이 좁은 이유로 다른 사람들의 보행에 장애를 끼쳐서는 안 된다. 식자재마트에서 캔 커피 두 개를 샀다. 한때는 시장에서 무조건 술국에 소주 한 병을 먹는 재미에 빠지기도 했었다.
지도 앱을 보면서 용마랜드, 이중섭 묘역 방향을 걷는다. 용마랜드는 영업이 정지된 지 꽤 오랜 시간이 흐른 것으로 보였다. 촬영된 영화, 드라마 등 포스터가 입구에 많이 보였다. 용마랜드도 그렇지만 산을 끼고 공사가 중단된 건물이 많이 보였다. 사유재산을 하느님 모시듯이 하는 자본주의 체제에서 쉽사리 해결하지 못하는 장면이다. 안양역 앞에 고층 건물은 어떻게 되었는지, 창동역 공사도 수십 년씩 해결책을 찾지 못하고 방치되고 있다. 지자체, 정부에서 나서야 하는데 책임을 회피하는 무능력으로 보여지는 장면이다.
이중섭 묘역이다. 오래전 왔을 때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망우산 공원묘지가 전체적으로 좀 더 손길이 가면서 관리가 이루어지는 느낌이다. 이중섭의 말년은 가족과 이별, 가난의 고통으로 힘든 시간이었다. 40이라는 아까운 나이에 요절하고 말았다. 어릴 적 이중섭의 소에서 느끼던 묘한 매력은 지금도 여운이 남는 것만 같다. 이중섭은 1916년에 태어나 1956년에 죽었다. 일제강점기를 살았다. 이중섭이 독립운동가였다는 소리를 듣지 못했다. 그렇다고 친일매국노 짓에 앞장섰다는 소리도 듣지 못했다. 계급, 민족 해방 투쟁의 과정에 작가, 지식인을 지켜보거나 용서할 수 있는 최소한의 경계 지점이 아닌가 싶다. 그런 측면에서 나는 서정주, 노천명, 길활란 등 친일매국노 작가에 대해 용서가 되지 않는다. 작품에 대해서도 어떤 감흥이 없다.
망우산 보행길은 잘 다듬어져 있다. 그런데도 공사 소리가 요란했다. 현재 보행길 옆으로 데크길 만드느라 분주했다. 나무가 잘리고 시멘트, 철근이 박히고 있었다. 왜 이렇게까지 하는 걸까? 버스라도 지나게 하려고 하는 걸까? 지금의 길도 부족하지 않아 보인다. 넓다. 괜히 업자와 구청 관계자의 어떤 꿍꿍이가 있는 건 아닌가 의심하게 된다.
평일임에도 사람들은 꾸준하게 이어지고 있었다. 중랑전망대에서 바라보게 되는 전망은 가슴을 뚫는다. 아파트공화국의 실체를 확인하는 장면이지만 산에서 바라보는 풍경은 기분을 좋게 한다. 깔딱고개에서 바라보이는 구리시와 한강, 강동구 풍경도 호강이다. 여러 보루를 거치게 된다. 고구려 시대의 유물이 발견되었고, 본격적인 발굴까지는 아직도 많은 시간이 필요로 한다. 아차산의 풍광은 올 때마다 여러 느낌으로 작용한다.
기원정사로 내려왔다. 아차산역을 지나 어린이대공원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어린이대공원은 입장료가 없다. 언제든 편하게 찾을 수 있는 곳이다. 산책 나온 사람들이 많다. 열심히 걷는다. 걷는 날 가방에는 물, 캔 커피, 빵, 바나나, 계란 등이 들어있다. 언제든 한적한 곳에서 혼자의 시간을 위로한다. 모이 한번 먹고 하늘을 바라보는 닭처럼, 먹는 중에도 눈길은 멀리 닿는다. 배가 찬 듯싶으면 일어선다. 또 걷는다. 교감을 나눌 수 있는 이가 같이 걸으면 좋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