① 닌토쿠 덴노가 대체 뭐하던 사람이야?
닌토쿠 덴노[인덕천황(仁德天皇 재위 313~399)]는 일본의 제16대 덴노입니다. 당시의 태자였던 이복동생과 서로 덴노의 자리를 양보했다는 미담(!)이 있던 인물이지요. 나중에 태자가 자살한 까닭에 덴노의 지위에 올랐다고 합니다. 선선히 미담이라 받아들이기에는 뭔가 석연치 않은 대목이지요. 여하튼 그는 오사카의 다카쓰 궁을 도읍으로 삼았다고 합니다.
닌토쿠 덴노는 오사카 일대에 하천과 제방 공사, 둔창의 설치 등 많은 토목 공사를 실시했다고 합니다. 여기서 미야케[둔창(屯倉)]는 야마토 쵸테이[대화조정(大和朝廷)]가 전국에 걸쳐 소유한 광대하고 기름진 직할령(直轄領)을 말합니다. 간략히 말하면 조정의 직할지를 말하지요. 직할지(直轄地)는 중간에 다른 기구나 조직을 통하지 아니하고 직접 관할하고 있는 땅입니다.
즉 덴노가 일정한 권한을 가지고 통제하거나 지배함을 말합니다. 또는 그런 지배가 미치는 범위이기도 하고요. 그는 백성들의 어려움을 살펴 세금 면제를 하도록 했습니다. 그가 정말로 이복동생의 양보를 받았든 혹은 제거했든 간에 그는 성군으로 추앙받았다고 합니다. 일본 최대 규모의 전방후원분인 다이센료 고훈[大仙陵古墳]이 바로 그의 능일 것으로 보고 있지요.
다이센료 고훈 즉 대선릉 고분(大仙陵古墳)이라는 말을 들으면 바로 도교(道敎) 혹은 선교(仙敎)라는 인상을 받게 됩니다. 불교에서도 대선(大仙)은 신선 가운데 가장 높다는 뜻으로, ‘부처’를 이르는 말이라 하지요. 참고로 대선과 비슷한 뜻으로 금선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금선(金仙)은 금빛이 나는 신선이라는 뜻으로, ‘부처’를 이르는 말이라 하지요.
② 닌토쿠 덴노가 정말 성군 맞어?
닌토쿠 덴노는 일단 ‘인덕’(仁德)이라는 이름 그대로 어질고 덕이 있는 덴노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닌토쿠 덴노는 백성의 곤궁함을 얼른 알아챘다고 하지요. 저녁 무렵 밥을 지을 때가 되어서도 마을에서 연기가 피어오르지 않는 것을 지켜봐서라고 합니다. 그는 3년간 세금을 면제하는 조치를 취해 백성들로부터 성군이라고 칭송되었다 하지요.
그는 앞에서 말씀드린 대로 오사카 평야의 대대적인 개발과 농업 발전에 관련된 많은 이야기를 남기고 있습니다. 나니와(오사카)의 인공하천 공사, 간규 지역의 대규모 도랑 공사, 만다 지역의 제방 건설과 둔창의 설치, 요코미 제방의 축조 등이 그러하지요. 각 지역의 이름들이야 굳이 아실 필요는 없겠지만 중앙집권과 민생에 나름 열심인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그러는 한편으로, 닌토쿠 덴노에게는 성군의 이미지 이외에도 또 다른 모습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오토리 황녀에 대한 구혼이 이와노히메노미코토 황후의 방해로 이루어지지 않았던 것이지요. 이 무슨 해괴한 족보 관계인가 싶은 생각이 얼른 듭니다. 다만 이 경우도 보기에 따라 일종의 ‘파워 게임’ 같은 영역으로 해석할 여지도 있지요.
역사서는 인간적인 모습의 이야기가 바로 그것이라는 식으로 이야기합니다. 황후의 심한 질투로 인해 고민하는 등의 모습 말이지요. 여기에 대해 닌토쿠 덴노와 관련된 성군 전설은 허구에 지나지 않는다는 반론이 있습니다. 실제로는 거대한 고분을 조영한 전제군주였다고 하는 견해를 제시하기도 하지요. 흘려 듣기에는 사실성이 상당히 강하다고 판단되고요.
이 밖에 닌토쿠 덴노를 중국 역사책인 『송서(宋書)』에 나오는 왜5왕 가운데 찬(讚) 왕 또는 진(珍) 왕으로 추정하는 설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 역시 이런저런 논란이 많지요. 가령 그를 닌토쿠 왕조의 개조(開祖)로 보는 설이 그러합니다. 개조는 쉽게 말해 창업자이지요. 이른바 일본 왕실의 반세이잇케이[만세일계(萬世一系)] 계보를 부정하는 학설입니다.
그런가 하면 닌토쿠 덴노를 기록상 아버지라는 오진 덴노와 연결해 말하기도 합니다. 즉 오진 덴노와 닌토쿠 덴노를 동일 인물로 보는 설이 그러하지요. 이 경우 수명이 엄청나게 늘어나는 문제점도 있습니다. 혹은 겹치는 기간을 제외한다고 해도 설명이 충분하지 않은 문제점도 있고요. 여하튼 이 닌토쿠 덴노에 대해서는 다양한 견해가 있습니다.
③ 닌토쿠 덴노가 정말 실존인물 맞어?
재위 기간이 비현실적으로 길어 실존성을 의심할 수도 있습니다. 다만 고구려의 태조대왕처럼 기간의 문제는 있을지언정 일단은 실존 인물임이 거의 확실시되고 있지요. 게다가 후임인 리추 덴노부터 갑자기 재위 기간이 현실적으로 짧아지는 현상이 나타납니다. 그런 것을 감안하면 닌토쿠 덴노도 실존 인물일 가능성은 충분하지요.
보통 실존 인물로는 보이는데 수명이 비정상적으로 길게 기록된 고대 군주의 경우 다음과 같이 추론합니다. 후대의 왕실 족보 정리 과정에서 정통성 강화를 위해 교통정리를 하는 것이지요. 가령 혈통이 다르다든지 할 때 그와 관련된 군주들의 기록을 제거하는 것이 그러합니다. 그런 연후에 한 군주에게 기록을 몰아줘서 수명이 매우 길게 되었다 보는 것이지요.
이런 방식으로 역사책이 왜곡되었다고 추정하는 방식이 일반적입니다. 일본사만큼 극심하지는 않지만 한국사에서도 고민하는 쟁점이기도 하지요. 여하튼 닌토쿠 덴노는 오사카 지역과 관련된 여러 전설이 내려오고 있다 합니다. 그의 능이 오사카에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것을 볼 때
오사카 일대 출신으로 추측되지요. 하다 못해 일개 호족도 자기 근거지가 중요하니까요.
일단 닌토쿠 덴노의 기록상 생몰년은 서기 290~399년입니다. 기록된 대로라면 서기 280년대에 태어난 고구려 미천왕과 서기 300년대에 태어난 고국원왕의 중간에 해당되는 세대이지요. 40대에서 50대에 세상을 떠났을 것으로 추정되는 미천왕은 일단 배제해보겠습니다. 그렇다 해도 비교적 오래 살았을 것으로 추정되는 고국원왕조차 60대에서 70대이지요.
고국원왕도 상당히 장수한 마당인데, 닌토쿠 덴노는 고대인들이 오래 살 수도 있음을 감안해도 너무 지나칩니다. 고국원왕의 라이벌이었던 전연(모용선비)의 모용황의 생몰년이 서기 297~348년임을 감안하면 더더욱 의심의 여지가 커지지요. 고국원왕과 비슷한 연령대일 것으로 보는 백제 근초고왕도 60대에서 70대임을 감안하면 합리적 의심이 가능해집니다.
이렇게 문제의 인물 닌토쿠 덴노에 대해 간략히 살펴보았습니다. 지나치게 의심만 한 것 아닌가 싶지만 『일본서기』나 『고사기』의 경우 재고의 여지가 있지요. 이렇게 거칠게나마 살펴보았는데 다이센료 고훈[대선릉고분]의 이야기를 제대로 하지 못해 아쉽습니다. 이 이야기는 현장에서 들을 수 있으리라 여기고 아쉬움을 접고자 하고요. 다음 글에서 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