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 식민사학 1세대 학자들
서울대 이병도
식민사학의 거두(巨頭) 이병도(이완용의 조카)(李丙燾 1896∼1989)
광복 후 서울대학교 교수가 되었고, 1954년 서울대학교 대학원장, 이듬해 국사편찬위원, 1956년 진단학회 이사장, 1960년 교육부장관, 1966년 성균관대학교 교수를 거친 식민 사학의 거두(巨頭)이다.
고려대 신석호
한국의 사학자. 성균관대학교 문과대학장, 영남대학교 대학원장, 문교부 편수국장, 고등고시위원을 역임했다. 국사연구기관 진단학회, 한국사학회, 한국사학연구회 등을 조직했다. 저서는《국사신강》등이다.
손진태 (孫晋泰 1900∼?)
1949년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장에 재직 중 6·25로 납북되었다.
한국의 사학자, 민속학자. 한국 최초 민속학회지 《조선민속》 간행, 진단학회 창설에 참여했다. 서울대학교 문리대 학장, 문교부차관 겸 편수국장을 지냈다. ‘신민족주의사관’을 제창했다. 저서는《조선고가요집》등이다.
연세대 이홍직
이홍직[李弘稙] 1909 경기 이천~1970.
8·15해방 후 연세대학교 교수(1953~58), 고려대학교 교수(1958~70)를 지냈다
나. 식민사학 2세대 학자들
이화여대 이기백 - 이병도 직계
이기백 (李基白 1924∼2004)
이화여자대학교 교수, 1963~1985년 서강대학교 교수, 1985년~1995년 한림대학교 교수로 재직하였다.
그런데, 이기백이 이병도씨가 생전에 활동하였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습니다.『한국사 시민강좌』란 이기백이 책을 펴내는데, 한국사 시민강좌 제 2권은 완전히 단군을 신화로, 도깨비로 만드는 특집시리즈입니다..
『단군신화론』이라는 책을 내면서 자기 할아버지를 귀신으로 만들고, 그것이 과학적이라는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이 책을 보면 비록 표현을 완곡하게 쓰고는 있지만, 이것은 강력한 단군부정론입니다.
'단군신화의 문제점'이라는 글에서 '오늘날 한국인의 마음속에는 단군을 신화라 생각하는 쪽과 반대로 단군을 역사적 사실로 믿는 쪽이 서로 대립되어있는데, 신화라고 생각하는 것이 오늘의 상식이요 사실이라 믿는 쪽이 상식 밖이다'
김철준
김철준 (1923 ~ 1989)
한국의 사학자로 단국대학과 연세대학 조교수·부교수, 서울대학 국사과 교수, 문화재위원·국사편찬위원, 학술원회원, 서울대학교 인문대 학장, 정신문화연구원장 등을 역임하였다.《한국고대국가발달사》(1975), 《한국고대사회연구》(1975), 《한국문화사론》(1976), 《한국문화전통론》(1983)
다. 식민사학 3세대 학자들
서울대 최몽룡 - 이병도 직계
1999.09~ 문화재위원회 위원 전국 국립대학 박물관협회 회장
1995.09~1999.08 서울대학교 박물관 관장 한국상고사학회 회장 서울대학교 인문대학 고고미술사학과 학과장
1986.08~1988.09 서울대학교 인문대학 부학장
1981.11~ 서울대학교 인문대학 고고미술사학과 교수
아직도 생존해 있음
성균관대 이기동 교수 - 이병도 직계
성균관대 이기동(53) 교수로 '곰이 성공하는 나라'를 펴내 ‘변신’이 뜻밖이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식민사학자의 대표주자인 이기동 교수의 본색을 숨길 수가 없다. <단군은 신화이다>라는 망할놈의 식민사학이 보인다.
백제역사를 지키자. (이기동교수 임명반대 서명운동) 2005.03.16
충청남도역사문화원 백제사연구소에 식민사학자의 대표주자인 이기동 교수가(2005. 2. 14) 월요일날 편집위원으로 내정 반대서명 추진
경북대 주보돈
경북대학교 (교수)학력계명대학교 대학원 박사
경력 한국고대사학회 고문 한국목간학회 회장
문화재청 사적분과위원회 위원
국사편찬위원회 위원
서울대 노태돈 - 이병도 직계
서울대학교 (교수)학력서울대학교 대학원 국사학과 박사수상2010년 제35회 월봉저작상경력한국고대사학회 회장
한국사연구회 회장
서울대학교 규장각 한국학연구원 원장
1981~ 서울대학교 국사학과 교수
고려대 김정배 - 신석호 직계
1940년 8월 1일 (서울특별시)소속고려대학교 (명예교수)학력고려대학교 대학원 한국고대사 박사
수상 2011년 제14회 효령상 문화부문경력
2009.07~2012.04 제14대 고려중앙학원 이사장
2008.04 제14대 한국학중앙연구원 원장
2004~2006 고구려연구재단 이사장
라. 민족사의 미래를 어둡게 만드는 식민사학 4세대 학자
교원대 송호정
1964년 3월 1일
한국교원대학교 (부교수), 한국교원대학교 (처장)
노태돈의 제자 송호정 자칭 고대사 국내 1호박사
마. 한국상고사학회 (韓國上古史學會)
1. 설립
1987년
2. 학회위원
최몽룡(崔夢龍), 조유전(趙由典), 손병헌(孫秉憲), 이기동(李基東), 노태돈(盧泰敦), 이종욱(李鍾旭), 이현혜(李賢惠)
3. 설립주최
1987년 가을 고고학과 고대사 등 한국상고사를 연구하는 여러 분야의 소장학자, 즉 고고학 전공의 최몽룡(崔夢龍)·조유전(趙由典)·손병헌(孫秉憲) 등과 고대사 전공의 이기동(李基東)·노태돈(盧泰敦)·이종욱(李鍾旭)·이현혜(李賢惠) 등이 중심이 되어 출발하였다.
4. 조직구성
2000년 3월 현재 학회의 회원은 종신회원 약 3백여 명, 일반 및 학생 회원 약 150여 명 등 모두 약 450명에 이른다.
학회의 구성은 회원·임원·자문위원·운영위원·편집위원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회원은 종신회원·일반회원·학생회원 등으로 구분되며, 자격은 이 회의 목적에 찬동해 소정의 회비를 납부함으로써 취득된다. 학회의 일을 집행하는 기구로 임원을 두는데 회장·총무·간사·감사 등으로 구성되어 있고, 임기는 2년이다.
운영위원회는 학회의 중요한 문제를 의결하는 기구로 임원을 포함해 15명 이내로 구성되고 편집위원을 겸하며, 임기는 2년이다.
5. 활동내용
학회의 연구활동은 크게 두 가지 방향이다. 먼저 학술대회는 연 2회로 현재 22회를 개최, 매회 하나의 주제를 설정해 이를 집중적으로 토론함으로써 한국상고사의 실마리를 풀어나가고자 한다.
신진학자들까지도 토론에 참가할 수 있도록 문호를 개방했으며 그들의 등용문과 같은 역할도 병행해 왔다. 그리고 최근에는 학술대회의 결과를 단행본으로 출간하기도 한다. 학회지는 『한국상고사학보(韓國上古史學報)』인데, 1988년 창간호를 시작으로 1999년 말 현재 제31호를 발간하였다.
선사시대로부터 역사시대에 이르기까지 고고학과 고대사가 다룰 수 있는 전 분야에 대한 논문들을 포괄적으로 발표해 왔다. 특히 고고학과 고대사를 연결하는 주제의 논문들을 집중적으로 수록함으로써 본 학회의 취지를 살려나가고 있다.
또한 동북아시아권을 대표하는 국제적인 학술지로 발전시키기 위해 국외의 논문들도 게재해 왔으며, 가깝게는 중국·러시아·일본·태국 등과 멀리는 스웨덴과 미국 등지의 여러 학자들의 논문을 실었다.
그 밖에 학술정보의 전산화작업으로 학회의 홈페이지를 만들어 각종 소식을 인터넷상으로 전하고 있고, ‘토론과 문답’ 코너에서는 한국상고사의 여러 가지 문제를 활발하게 토론하고 있다.
6. 참고문헌
「발기인(發起人) 창립취지문(創立趣旨文)」(최몽룡, 『한국상고사학보(韓國上古史學報)』 1, 1988)
바. 한국고대사학회 (韓國古代史學會)
1. 설립
1987년 2월 14일
2. 학회임원
김상현, 김태식, 노중국, 이명식, 이형우, 임세권, 조인성, 주보돈, 최광식, 한규철
3. 개설 및 취지
1985년부터 영남지역의 각 대학에서 한국고대사를 전공하는 연구자들 사이에 새로운 연구 방법론의 모색, 이데올로기적 제약에 따른 역사 인식의 한계 극복, 기존의 연구성과의 소개를 통한 대중적 기반의 확대 등에 대한 논의가 있어 왔다.
이러한 논의과정에서 학회 설립이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형성되었고 그 결과 1987년 2월 14일대구 계명대학교(啓明大學校)에서 창립 총회를 열었다. 창립 발기인은 김상현(金相鉉)·김태식(金泰植)·노중국(盧重國)·이명식(李明植)·이형우(李炯佑)·임세권(任世權)·조인성(趙仁成)·주보돈(朱甫暾)·최광식(崔光植)·한규철(韓奎哲) 등이다.
4. 기능과 역할
한국고대사학회는 창립 이듬해인 1988년 7월에 울진봉평신라비(국보 제242호)에 대한 종합토론회를 개최하였고, 1989년 7월에 영일냉수리신라비(국보 제262호)에 대한 종합토론회를 개최하고 그 연구 결과를 각각 출간함으로써 짧은 시간 내에 전국적인 학회로 발돋움하였고, 한국고대사 분야에서는 핵심적인 학회로 되었다. 창립 당시 명칭은 한국고대사연구회(韓國古代史硏究會)였으나 1997년 2월 14일 한국고대사학회(韓國古代史學會)로 개칭하였다. 학회의 구성은 회원·임원회·평의원회로 되어 있다.
회원은 종신회원·일반회원·학생회원으로 구분되며, 자격은 본 학회의 목적에 찬동하여 소정의 회비를 납부함으로써 취득된다. 2009년 12월 현재 종신회원은 개인 174명, 기관 31곳이 있으며 일반회원은 개인 63명 기관 14곳이 있다. 이외에 학생회원 17명과 특별회원 15명이 있다.
임원회는 학회 운영에 관한 실제적인 일들을 의결·집행한다. 처음에는 대표간사-간사체제였으나 1996년 2월에 회장-이사체제로 변경하였고 1999년 2월에는 해외지역이사를 신설하였다. 평의원회는 학회의 최고 평의 기관으로 고문과 평의원으로 구성되며 그 권한은 임원의 선출, 사업 계획의 수립·예산 심의, 결산 감사 등이다.
본 학회는 설립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학회지인 『한국고대사연구(韓國古代史硏究)』를 연 4회 발행(2009년 12월말 현재 56집까지 발행)하며, 월례 발표회의 개최, 유적지 공동 답사, 동계·하계 합동토론회의 개최, 인접 학문단체 및 외국 학술단체와의 교류와 자료 교환을 하고 있다.
그리고 학회의 소식을 전하는 『한국고대연구회 회보』를 발간하였고, 『한국고대사강독자료집』 등을 발간하였다. 또 보다 신속한 정보의 교환을 위해 1997년 5월 30일 '한국고대사학회 홈페이지'를 개설하였다.
본 학회는 한국고대사에 대한 관심을 제고하기 위해 서울·대구·부산·광주·전주·대전·춘천·청주 등의 지역을 돌아가며 연구발표회를 하고 있다. 그리고 경상북도·울진군·창원문화재연구소 등 공공기관의 협찬으로 가야사, 울진봉평신라비, 함안성산산성 출토 목간에 대한 학술대회를 개최하기도 하였다.
본 학회의 활동 가운데 가장 핵심적인 것이 동계·하계 합동토론회이다. 동계 합동토론회는 공동 주제를 정한 후 몇 개의 세부 주제를 설정하여 공동으로 연구·발표하고 토론하는 형식으로 이루어진다. 하계 합동토론회는 학계에서 쟁점이 되는 사항에 대해 연구사적 검토를 한 후 이를 종합적으로 검토하는 형식으로 진행된다. 본 학회는 앞으로 한국고대사 연구자의 저변 확대, 연구 결과를 시민들과 공유하는 시민강좌의 개최, 연구 성과의 단행본 출간 등의 사업에도 주력할 것이다.
5. 참고문헌
『한국고대사연구(韓國古代史硏究)』 21(한국고대사학회, 2001)
『한국고대사연구(韓國古代史硏究)』 12(한국고대사학회, 1997)
『한국고대사연구(韓國古代史硏究)』 1(한국고대사연구회, 1988)
『한국고대사연구회회보』 1(韓國古代史硏究會, 1987)
사. 고구려발해학회
1. 설립
1995년 12월 28일
2. 설립자
서경대 서길수교수, 서영수 단국대 교수, 한규철 경성대 교수
3. 운영
고구려발해학회는 고구려와 발해사 및 북방사의 국내외의 연구와 발표를 통한 역사학 발전을 위해 1995년 12월 28일에 '사단법인 고구려연구회'로 설립된 대한민국의 학술단체이다. 설립은 서경대 서길수교수가 중심이 되었으며, 2005년 본격적인 학회체제가 되어서는 회장에 서영수 단국대 교수 그리고 2006년 한규철 경성대 교수로 이어오다가, 2007년 11월10일부터 학회 이름을 사단법인 고구려발해학회로 바꾸고 발해사학회와 통합하였다. 회장 겸 이사장에 한규철로 운영되다가, 2011년 3월14일에는 법인과 학회를 이원화하여 이사장은 이강현 현인코스메틱 사장이 취임하고, 회장은 한규철교수가 그대로 일을 맡고 있다.
아. 결론
식민사학자들의 이런 뿌리가 이어져 오고 있다.
참 통탄할 일이다.
이들이 더 이상 자라지 못하게 뿌리까지 싹을 잘라야 한다.
이들은 역사의 매국노들이고 한민족을 죽이는 놈들이다.
참고로 어제 식민사학자 송 모 교수에 대한 국제논문협회의 제제가 있었다.
왜냐면 국제논문에 제출한 논문이 표절이 95%가 나왔기 때문이다. 얼마나 국제적인 망신인가?
표절 내용은 이병도의 <한반도 고대사의 단군연구 고찰> 이라는 논문을 송 모 교수 본인이 공부를 하지 않고 이름만 바꿔서 그대로 냈기 때문에 표절시비가 붙은것이다.
정말 부끄러운 일이다.
이러니 우리가 정신을 차려야 한다는 것이다.
제대로 된 민족사학의 논문이 나오도록 현행 학계의 논문제도를 바꾸고 표절시비와 대필시비가 없도록 엄격하고 정당하게 심사해야 한다.
논문은 말 그대로 학자의 업적이자 얼굴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식민사학과 민족사학 할 것 없이 누구에게나 기회를 주어야 한다. 그리고 실력으로 승부해야지 지연, 학연으로 평가한다는 것은 후진국스러운 발상인 것이다.
요즘 " 나가수 " 나 " 슈퍼스타 K " 등의 실력으로 누구에게나 기회를 주는 TV프로가 있다. 그것이 한류열풍의 양성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진짜 한류인 우리 역사는 왜 일반인에게도 논문오디션을 하지 않는것인가?
논문오디션으로 진짜 한류인 우리 역사와 문화의 우수성을 전 세계에 이름을 떨치도록 해야 한다.
언젠간 필자는 " 나가수" 나 " 슈퍼스타 K " 처럼 역사논문 오디션을 개최할 것이다.
대상자는 남녀노소 상관없이 누구나 기회를 열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우리 학자들한테는 이런 말이 있다.
"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 그리고 학자는 논문을 남긴다. "
첫댓글 텔레비전과 신문에 간혹 나오는 교수들이 많네요! 참조하세요~
출전이 어디인지 알 수 있을까요? 몇 군데 오류가 있습니다. 1. 이병도는 이완용의 조카라기 보다는 같은 '우봉 이씨'입니다. 문중이 같다는 것이지요. 서로 간의 항렬은 어떠한지 모르겠습니다. 2. 손진태는 윗 글에도 나오 듯이 '신민족주의사학자'로 분류되는 사람입니다. 3. 이기동은 동명이인입니다. 성균관대 이기동 교수는 동양철학(유학) 전공이고, 사학 전공의 이기동은 동국대 교수입니다. 4. 대체로 현재 고대사 전공 사학자들을 모두 식민사학자로 보고 있는 것 같은데, 중국의 동북공정이나, 일본의 '임나일본부설' 같은 고대사 왜곡에 맞서고 있는 학자들입니다. 이런 사정은 전혀 고려하지 않았네요.
제가 본 블로그가 여기입니다!
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donmany0203&logNo=30152907181&categoryNo=11&parentCategoryNo=0&viewDate=¤tPage=1&postListTopCurrentPage=1&userTopListOpen=true&userTopListCount=30&userTopListManageOpen=false&userTopListCurrentPage=1
교수님~궁금한게 있는데요...학생들이 배우는 교과서, 특히 항일, 독립운동에 관한 내용이 빈약한 것 같은데! 친일사학자들과 그들의 제자의 학문권력때문인가요??
이덕일교수는 반도사관, 노론사관이라고 하더라고요! 실제로 책을 읽어보면 수긍이 가는 내용이 많습니다. 일제치하 사학자들이 해방후에도 우리나라 학문권력을 독점했고
교과서 집필 또한 조선사편수회가 한 것을 그대로 옮겨놓았고, 80년대 초까지는 친일과 독재에 관한 것은 금기의 영역에 가까웠다고요.......
함세웅이사장님 취임식때 강만길교수님도 이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질문이 여러 개로 보여서 짧게 답하기 어렵네요. 독립운동 관련 내용 분량에 대해 조선사편수회 서술을 그대로 옮겨놓았거나 식민사학자들의 영향력 때문으로 보는 것은 어떤 면에서는 맞고 어떤 면에서는 맞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조선사편수회는 당대 역사에 대해 연구한 적은 없습니다. 독립운동사는 그들의 관심사 밖이었다는 것이지요. 구조적으로 볼 때 그들은 관심을 갖고 서술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래서 그들의 서술을 그대로 옮겨놓았다는 것은 틀린 말입니다. 또 친일사학자들의 영향력은 분량 보다는 독립운동 영역에 대한 것으로 봐야 할 것입니다.
해방 후에 친일사학자들이 일제의 식민통치를 옹호할 이유가 전혀 없었습니다. 자신들의 치부를 감추기 위해서라도 일제 식민통치를 욕하고, 항일운동을 높이 평가해야만 따가운 눈초리를 피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일제를 옹호하는 태도를 노골적으로 취했다면, 당시 민족 정서로 볼 때 돌 맞아 죽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독립운동을 한국근대사의 영역 속으로 포함시켜 서술했지만, 극우 반공 분위기 속에서 사회주의세력의 독립운동에 대해서는 배제하고, 우익 쪽의 독립운동사만을 취급했습니다. 또 친일 문제에 대해서는 아예 언급을 안했습니다. 그런 분위기가 바뀐 것이, 강만길 선생 말씀대로, 80년대 들어와서였습니다.
80년대 들어와서 사회주의자들의 독립운동을 비롯해서 다양한 분야의 독립운동에 대한 연구가 이루어졌습니다. 제가 초 중 고 학생들의 교과서 내용을 정확히 몰라서 그 분량이 얼마만큼인지 판단할 수 없지만, 대학에서 가르치는 근현대사 내용에서는 독립운동사 분량이 적다고 말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보다 자세한 이야기는 나중에 만나서 얘기 나누기로 하고, 이 정도로 마칩니다.
예! 알겠습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