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경기에서 가장 재미있는 스코어라는 3-2보다 무려 3골이 더 터진 ‘난타전’이 지난 2일 포항과 안양LG의 프로축구 경기에서 벌어졌다. 꼭 골이 많이 나와야 재미있는 경기라고 할 수 없지만 손에 땀을 쥐게 하는 공방전은 보기만 해도 한여름 밤의 무더위를 날려버릴 청량제인 것만은 분명하다. 한가지 애석한 점은 좀처럼 나오기 힘든 4-4의 박진감 넘치는 경기를 넉넉잡아 1만여명밖에 보지 못했다는 것이다.
축구중계가 실종됐다. 좀더 정확히 말하면 프로축구 중계가 TV에서 사라졌다. 국내에서 스포츠중계를 하는 지상파 TV 3개사의 4개 채널과 케이블TV 3개 스포츠채널을 아무리 돌려봐도 프로축구 중계는 가물에 콩 나듯 좀처럼 찾아볼 수 없다. 더 이상한 것은 한국의 프로축구문화다. 역대 월드컵 4강에 오른 나라에서 도저히 생각할 수 없는 ‘축구중계 실종사건’이 벌어지고 있는데도 누구 하나 따지는 사람도 없고 책임지는 사람도 없다.
이웃 중국에는 종일 축구를 중계하는 채널이 있고 일본에도 주말이면 꼭 프로축구를 중계하고 있지만 한국에서는 그저 그러려니 하고 모두가 넘어가다보니 속을 태우며 안타까워하는 것은 ‘사명감’을 가진 축구팬들뿐이다. 독점 중계권을 가진 방송사는 시청률을 이유로 프로축구 중계를 외면하고 프로축구연맹은 방송사가 중계를 안 하니 도리가 없지 않느냐고 한다. 프로축구 경기를 외면하고 대표팀 경기만을 중계하려는 공영방송의 자세도 한심하고, 엉터리 중계권 계약을 해놓고 책임을 방송사에만 떠넘기는 프로연맹의 태도 또한 이해할 수 없다. 연간 수십억원의 적자를 내면서 프로축구단을 운영하는 구단들이 이 같은 사실을 알면서도 연맹 이사회에서 책임을 묻지 않는 것도 정말 ‘한국적 프로축구 문화’가 아니면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프로스포츠에서 차지하는 TV중계의 비중은 거의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독일의 스포츠커뮤니케이션 연구학자 하크포르트 요셉이 지은 ‘스포츠 저널리즘과 스포츠 마케팅’을 보면 90년대 중반 국제적인 스포츠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단체나 기관에 대해 전 세계 기자 500명의 95.3%가 TV방송을 지목했다. 현대 스포츠에서 차지하는 TV중계의 비중이 얼마나 큰가를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국제축구연맹(FIFA)이 적자에서 흑자로 돌아설 수 있었던 것은 1954년 스위스월드컵에서 TV중계가 처음 도입되고 66년 잉글랜드월드컵부터 위성중계가 되면서부터다. 베컴이 중국을 포함한 아시아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누릴 수 있는 것은 바로 TV라는 강력한 대중매체의 영향력 때문이다. 잘생긴 외모와 화려한 개인기를 거의 매일 안방에서 접하다보니 잉글랜드를 넘어선 지구촌의 월드스타로 탄생하게 된 것이다.
월드컵 이후 국내 프로축구 중계는 더 드물어졌다. 평균 15% 이상을 기록한 피스컵의 시청률을 보면 프로축구의 성장 가능성은 풍부하다. 게다가 요즘에는 축구토토까지 발행돼 프로축구에 대한 관심은 더욱 커지고 있다. 여기에 TV중계만 더해지면 불이 붙을 수도 있는데 그 구실을 해야 할 사람들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 ‘프로마인드’를 갖추지 못한 사람들은 이제 프로축구판을 떠날 때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