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경공 민기 묘역(김포 향토유적 12호) written by 한국의 능원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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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기선생 묘역 뒤에서 바라 본 묘역군 |
민기(閔箕, 1501~1568)는 조선 명종 때의 문인이다. 호는 관물제(觀物濟)인데, 1539년(중종34) 별시에 급제하여 옥당(玉堂)에 들어가 대사간, 대사헌, 병조, 이조참판을 지냈으며 그 후 군기시정(軍器寺正)을 거쳐 경상도암행어사·홍문관제학·동부승지·좌부승지·공조참의·병조참의 등을 역임한 후 1551년(명종6)에 대사성에 올랐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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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묘역 입구에 세워진 민기선생 신도비각 전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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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기선생 신도비 머릿돌의 용 조각 문양이 역동적입니다. |
1552년 동지사(冬至使)로 명나라에 다녀왔으며, 1555년(명종10) 청홍도(靑洪道)관찰사가 된 뒤 대사간·대사헌·대사성 등 여러 관직을 거쳐 1568년(선조1) 우의정을 역임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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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각 좌측으로 조금만 오르면 묘역군이 보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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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맨 앞에 위치한 민기선생 손자 민대인(閔大仁) 묘 |
▲ 두 번째 위치한 민기선생 아들 민수도(閔守道) 묘 |
문경공 민기묘역은 김포시 월곶면 개곡리에 있다. 여흥민씨의 재실(齋室) 현모재(賢慕齋) 뒷산 동쪽과 남쪽 능선에는 모두 30여기의 민씨 묘가 있고, 서쪽 능선에는 6기의 묘가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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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 번째 위치한 민기선생 묘역 전경 |
민기의 신도비는 현모재로 들어가는 제방길 옆에 남쪽으로 향하여 세워져 있으며, 신도비에서 100m 정도 떨어진 언덕의 남쪽 면에 민기의 묘가 조성되었다. 묘역에는 봉분2, 상석1, 향로석1, 묘표2, 문인석 2기가 갖추어져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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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기 선생과 배위 정경부인 안동김씨(부좌) 쌍분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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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기선생 부부 쌍분은 특이하게 봉분과 봉분 사이를 살짝 연결시켜 놓았습니다. |
신도비는 의정부 영의정을 지낸 금육이 비문을 짓고, 이조참판을 지낸 금광이 전액을 썼다. 이조판서를 역임한 이정영이 비문을 썼는데 비록 비의 곳곳이 풍화와 나무뿌리의 성장으로 파손되기는 했지만 아직까지 섬세한 필체가 잘 남아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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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기선생 묘역 뒷편에 위치한 묘역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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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기선생 묘역 뒷편 안쪽에도 묘역군들이 있으며, 석물들도 좋은데 시간상 사진 두어 장 찍고 철수... |
문경공 민기 묘역 위치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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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선 하단 묘역 입구에 신도비가, 빨간선 상단 노란 압정이 위치한 지점이 민기선생 묘역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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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 중앙의 노란 압정이 위치한 지점에 민기선생 묘역이 위치하고 있습니다. 소재지 : 경기 김포시 월곶면 개곡리 산119-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