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3대 박물관 중의 하나인 파리의 루브르 박물관은
그 소장작품 숫자만 치더라도 약 40만점으로써
루브르의 역사는 16세기초 프랑스와 1세 때
다빈치의 <모나리자>를 비롯해 티치아노의 작품 12점 등의
이태리 거장들의 작품과 고대 조각 작품들을 보관하면서 시작되었다.
나폴레옹 시절에는 패전국으로부터 약탈해온 미술품들로
루브르를 메꾸어 그 당시 루브르는 세계 제1의 미술관이 되었다.
루브르 궁전 - 외부 및 내부정원의 전경
루브르 박물관(Le musée du Louvre)은 프랑스 파리의 중심가인 리볼리 가에 있는 국립 박물관이다.
소장품의 수와 질 면에서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과 대영박물관와 함께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박물관이다.
지금의 건물은 루브르궁을 개조한 것으로, 파리의 세느강변에 포함하여 세계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프랑스어로 뮈제 뒤 루브르, 그랑 루브르, 또는 단순히 루브르 라고도 불린다.
1692년 루브르 건물에 왕립 아카데미가 들어서고 1699년에는 첫 번째 살롱전이 개최되었다.
아카데미는 루브르에 100년동안 남아있었다. 프랑스 대혁명당시,
국민회의는 루브르가 박물관으로서 국가의 걸작을 전시해야 한다고 선포하였다.
루이 13세 때 리슐리외 추기경이 왕을 위해 뛰어난 예술작품들을 수집했고,
루이 14세와 그의 대신 마자랭 추기경은 영국 찰스 1세의 소장품을 포함한 훌륭한 예술품들을 수집했다.
건축가 클로드 페로와 루이 르 보, 실내장식가이며 화가인 샤를 르 브룅으로 구성된 위원회는
루브르 왕궁 중 콜로나드[柱廊] 부분을 설계했다.
루브르 궁전은 파리에 있는 12세기 존엄왕 필리프 요새지(要塞地) 오른쪽 기슭에 지어진
커다란 궁전의 일부이다. 1546년 예술품 수집가 프랑수아 1세가 이 낡은 성곽을 부수고
그 터에 새로운 왕궁인 루브르 궁전을 짓기 시작했으며 뒤이어 거의 모든 왕들이 증축해왔다.
오늘날의 루브르 중 일부는 프랑수아 1세 때 건축가 피에르 레스코의 감독하에 완성되었는데,
이것이 현재의 카레 궁 남서쪽 부분이며, 대부분의 루브르 건축시설은
그뒤 17세기 루이 13, 14세 때 추가 조성된 것이다.
루브르 박물관은 루브르 궁전 내부에 위치해있다.
루브르 궁전은 12세기 후반 필립 2세의 명으로 착공되었는데,
그당시만 해도 궁이 아닌 요새였다. 아직도 당시의 요새 잔재들을 볼 수 있다.
이 요새가 루브르 궁이 되기까지 수차례에 걸친 건물 확장 공사가 이루어졌다.
1672년 루이 14세가 베르사유 궁전에 거주하기로 결정하고
루브르를 왕실의 수집품을 전시하기 위한 장소로 쓰도록 했다.
유리 피라미드
루브르 박물관 앞의 유리 피라미드 조형물은 근대에 건설된 것으로
한 때 어울리지 않다는 평이 많았으나 현재는 루브르를 대표하는 조형물이 되었다.
박물관으로서의 루브르는 1793년 8월 10일 537점의 회화를 전시하며 첫 문을 열었는데
전시된 작품은 대부분 몰락한 귀족과 교회에서 징발된 수집품들이었다.
박물관 건물 내부의 구조적 문제로 인해 박물관이 1796년에서 1801년까지 문을 닫았다.
나폴레옹이 통치하던 시기에 소장품의 규모가 크게 늘었고 이름도 뮈제 나폴레옹으로 바뀌었다가
워털루에서 나폴레옹이 대패하자 나폴레옹 군대에 빼았겨 루브르로 보내졌던 많은 작품들이
고국으로 돌려보내졌다. (사실 당시 박물관장이 지하실에 빼돌려 돌아가지 못한 작품도 여럿 된다고 한다.)
루이 18세와 샤를 10세 재위기간에 다시 한번, 더 큰 규모로 소장품이 늘었고,
제2 제정(나폴레옹 3세 통치기간)중에 20,000여점의 수집품이 들어왔다.
소장품은 제3 공화정때 부터도 기증과 선물로 계속해서 규모가 커지고 있으며
2008년 기준으로는 8개의 전시관에 나뉘어 있다.
이집트 고대유물관, 근동 유물관, 그리스와 에트루리아, 로마 유물관, 이슬람 미술관,
조각 전시관, 장식품 전시관, 회화관 그리고 판화와 소묘관 등이다.
조각 전시실
승리의 여신상(사모트라스의 니케 = Nike of Samothrace)이 있는 조각 전시실
밀로의 비너스
1820년 그리스의 밀로섬에서 출토된 헬레니즘 예술의 극치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인체의 환상적인 8등신의 모습을 보여주는 전형적인 작품으로 BC2세기경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프쉬케와 큐피트 / 안토니오 카사노바, 1793년
큐피트가 연인인 프쉬케를 키스로 살려내려고 하는 장면
잠든 자웅동체 조각상
잠든 자웅동체 조각상의 앞면
회화 전시실
회화
루브르 박물관의 회화 소장품은 13세기부터 1848년까지의 작품들로 약 6,000점 이상이며
소장품의 전시를 총괄하는 12명에 이르는 큐레이터에 의해 관리된다.
이중 약 2/3는 프랑스 작가들의 작품이고 약 1,200점 이상이 북유럽 작품이다.
이탈리아 회화는 대부분 프랑수아 1세와 루이 14세의 유품으로 남겨진 소장품들로 구성되었고
몇몇은 나폴레옹시대의 전리품으로 들여왔다가 그대로 남은 것들이며 몇몇은 사들인 것들이다.
소장품의 수집은 프랑수아 시대에 시작되었는데 그는 라파엘이나 미켈란젤로와 같은
이탈리아의 거장들로부터 작품을 들여왔으며 레오나르도 다빈치를 그의 궁정으로 데려오기도 하였다.
프랑스 대혁명 이후 왕실의 수집품은 루브르의 핵심을 이루었다.
1986년 오르세(d'Orsay) 기차역이 오르세 미술관(Musee d'Orsay)으로 개장되자
루브르의 소장품을 1848년 혁명이전과 이후의 작품으로 나누어
1848년 이후에 완성된 작품들을 새로운 미술관으로 옮겼다.
프랑스와 북유럽 작품들은 리슐리외 관(Richelieu Wing)과 Cour Carree에 전시되어 있고
스페인, 이탈리아 작품들은 드농 관(Denon Wing)에 전시되어 있다.
프랑스 미술품들 중에는 앙게랑 콰르통의 아비뇽 피에타,
장 푸셰의 King Jean le Bon 후고전시대 이래
남아있는 서유럽 작품중 가장 오래된 독립 초상화인 하시엔디 리고의 루이 14세,
자크 루이 다비드의 나폴레옹 황제의 대관식,
외젠 들라크루아의 자유는 민중을 바리케이드로 이끈다 등이 있다.
북유럽 작품들로는 요하네스 베르메르의 레이스 짜는 여인과 천문학자,
캐스퍼 다비드 프리드리히의 Trees of Crows, 렘브란트의 엠마오에서의 저녁식사,
욕실의 바세바 그리고 도살되는 소 등을 소장하고 있다.
이탈리아 작품들의 수집은 주목할만 한데 르네상스 시대의 소장품들이 특히 훌륭하다.
작품들 중에는 리얼리즘과 세밀함(위대한 영적 세상의 중요한 사건을 세밀히 묘사한다는 의미로)이
투영된 안드레아 만테냐와 조반니 벨리니의 기병대가 있다.
르네상스의 이름높은 소장품중에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모나리자, 성 안나, 성 요한과 성모
그리고 아기예수, 그리고 바위위의 마돈나가 있다.
카라바조의 작품으로 점성술사와 동정녀 마리아의 죽음이 소장되어 있다.
또한 루브르는 16세기 베니스의 화가 티션(티티안, 티치아노 베첼리)의 전원의 합주,
그리스도의 매, 가시 면류관을 전시하고 있다.
라 카스 컬렉션은 1869년 루이 라 카스가 루브르 박물관에 유품으로 남긴 것으로
루브르 역사상 최대규모의 개인 기증이다. 라 카스는 개인적으로 보유하고 있던
584점의 회화를 박물관에 기증하였다.
이중에는 앙투안 와토의 Commedia dell'Arte player of Pierrot가 있다.
이 기증품들을 주제로 2007년
1869:Watteau, Chardin...entrent au Louvre. La Collection La Caze
전시회가 열렸다.
나폴레옹 황제의 대관식
알프스를 넘는 나폴레옹
모나리자 - 1503~1506년 레오나르도 다빈치 나무판위에 유채, 77x53cm
모나리자 앞에 몰려있는 관람객들
오달리스크 / 장 오퀴스트 도미니크 앵그르
메두사의 뗏목 / 테오도르 제리코
1830년 7월28일,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 외젠느 드라클로와
기타 전시작품
첫댓글 루브르 박물관을 대하니 감회가 깊습니다. 여행은 젊어서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한참 바빴던 1985년 여름, 저희 부부는 결혼 10주년 기념으로 뉴욕의 한 여행사에 조인해 15박16일동안 유렵여행을 했었지요. 여러 곳을 다니며 감격하고 즐거워 했습니다. 그 때 가본 곳 중의 하나가 루브르 박물관...투어버스가 박물관 주차장에 들어섰을 때 사방으로 주차장의 끝을 볼 수가 없을 정도로 너무나 방대해 놀랐고 박물관 안은 그야 말로 인산인해....모나리자 상 앞에서는 인파로 저 처럼 작은 사람은 그림이 안 보여 꽤 기다렸던 생각이 납니다. 그리고 제 차례가 와 그림앞에 섰을 때의 그 벅찼던 감정은 지금도 저를 설레게 하지요.
그리고 '만종'등 유명 명화앞에 잠간씩만 머무러도 끝아 안났던 생각이 납니다. 또 하나 인상깊었던 것은 박물관안에서 볼 수 있었던 동양인들은 일본 사람들 뿐이었다는 것...한국사람들은 저희 구룹 15명을 빼고는 못 보았지요. 그래서 그 때 생각에도 일본이 우리보다 많이 앞섰구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제 36년이 지난 지금, 지난 주 불란서에 다녀온 친구가 르브르 박물관엔 중국사람이 인산인해를 이루더란 얘기를 듣고 세상이 많이 변한 것을 또 한번 실감했습니다. 아마도 한국사람들은 중국사람 전에 다 끝나지않았나 하는 생각이 드는데 제가 틀렸을 수도...지기님께서 좋은 자료 올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너무 귀중한 자료라 카페에 영원히 본존할 목적으로 이곳으로 퍼왔답니다.
36년 지난 오늘,,,이라 하셨는데 2011-1986=25인데요.ㅎㅎㅎ
저희도 1975년에 결혼했습니다
저는 너무 안 팔려서 좀 늦게 결혼 한 편인데 요사이 저희 아이들에 비 하면 효녀중의 효녀인 셈이지요.
큰 딸이 1976년생이니 35살인데 도무지 시집 갈 생각을 안 하고 있어서 속이 탑니다
작은 딸도 1979년생 인데....
제가 지난 2월. 루부르 박물관에 또 갔을때도 중국사람들리 떼거리로 다니며 떠드는 모습을 많이 보았습니다
진짜 중국은 인구턱을 단단히 합니다
6.25때 유엔군이 압록강까지 북진을 했으나 그 인간들 인해전술때문에 1.4 후퇴를 한 것이지요
아이쿵, 제가 미국에 온 햇 수를 뺐습니다.ㅎㅎ 너무 긴 자료를 펴 보느라 그만 헷갈렸으니 지기님 탓도 쬐끔 있으세여~~~~~
김분임 회장님, 요즈음은 고액 연봉의 똑똑한 젊은이들이 혼사에 관심이 없는 세상이니 두 따님 너무 똑똑한 것으로 만족하시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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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때는 너무 서드르게 돼 뭘봤는지 모르지요. 사진을 정리하면서 진짜 맛을 보는데 왜들 사진을 못찍게 하는지 이해가 안돼요.
기막힌 사진 기술로된, 루브르 박물관의 훌륭한 자료를 많이 잘 보관해 놓으셨네요!
귀한 자료지요.
하루에도 루브르 박물관, 이스크린을 통해, power 를, 껏다, 켯다,하며 두세번식 관람을 감상하지요.
이제 얼마남지않은 즐겁고 ,화끈하고, 아쉬운 정열의,여름, 잘보내세요.
여름이 넘어가니 서운합니다. 쓸쓸하기도 하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