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수나무’와 ‘계수’는 다른 나무이다.
통상적으로 ‘계수’라고 하면 향기를 내는 녹나무과와 물푸레나무과에 딸린 몇 나무의 총칭이고, 한국에서 특정적으로 한 나무를 지칭하는 ‘계수나무’는 이 ‘계수’에서 유래한 일본산의 계수나무를 유일하게 부르는 이름이다.
또한 달 속의 ‘계수나무’는 일본산의 계수나무가 아니라 ‘계수’이며, 계수 중에서도 ‘월계수’이다.
이번 호에서는 지난 호의 글머리로 나열한 ‘계수(桂樹)와 계수나무’의 풀이를 보충 설명한다. 어느 독자가 필자에게 전자우편으로 좀더 자세한 설명을 요구해 왔기 때문이다.
계수나무가 어떤 나무인지 전혀 모르는 독자인데도 관심있게 알고 싶어하는 뜻에 감명을 받은 것도 보충설명을 하게 된 계기다. 전자우편을 전송한 독자가 인천 계양산과 관련이 있는지는 잘 모르지만, 필자는 올해 인천 계양산(桂陽山)의 식물조사를 하면서 이 산의 정상 표지석에 뚜렷하게 새겨진 지명유래에 대해 잘못됐음을 지적한 바 있다.
즉 현지에서 쓰는 계양산의 뜻풀이를 그대로 옮긴다면 ‘계수나무와 회양목이 많이 자라는 산’인데 이의 잘못을 지적한 내용이다.
계양산의 지명유래는 계양산의 첫 글자인 ‘계(桂)’를 계수나무로 풀이했는가 하면 둘째 글자인 ‘양(陽)’을 회양목으로 해석한 데서 잘못됐다는 지적이다. 왜 잘못됐는가 하면 계양산의 첫 글자인 ‘계(桂)’는 계수나무와 ‘계수’가 다른 나무인데도 동일한 나무로 착각한 것이고 이와 함께 계양산의 둘째 글자인 ‘햇빛 양(陽)’도 회양목의 가운데 글자인 ‘버들 양(楊)’과는 거리가 먼 한자이기 때문이다.
이는 인천 계양산의 식물을 필자가 직접 조사해 책으로 펴낸 『인천식물도감』에서 ‘인천 계양산 지명유래의 재검토 소고’라는 제목으로 피력한 내용의 요약이다. 다음의 설명을 보면 ‘계수(桂樹)와 계수나무’가 어떻게 다른 지를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을 것으로 여겨진다.
달 속의 나무는 녹나무과의 ‘월계수’
‘계수나무’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이 달 속에 박혀 있다는 나무이다.
달 속의 계수나무는 옛날 중국의 노래 가사에 따른 나무지만 이 나무를 지칭함에 있어 일본 원산의 계수나무를 일방적으로 선택하는 것은 억지일 수 있다.
달 속의 계수나무가 계수나무과(科)의 일본원산인 계수나무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생각에서 하는 말이다.
생각건대 달 속의 계수나무는 유럽의 지중해 원산인 ‘월계수(月桂樹, 달 속의 향기나는 나무)’를 지칭하고 있는 듯해서다. 녹나무과(科)의 늘푸른 넓은잎큰키나무인 월계수(Laurus nobilis)는 월계관을 만드는 나무로 잘 알려져 있는데, 태양신인 아폴로의 영수(靈樹)로서 승리와 영광의 자리에 쓰이고 있다.
영명도 Apollo laurel이다. 이렇게 볼 때에 월계수는 태양과 관계가 있는 나무이다.
그런데 중국에서는 이 나무의 이름을 한자명으로 정할 때에 태양이 아닌 달과 연관시킨 것이 기묘하다.
이 나무의 이름도 넓은 뜻으로는 ‘계(桂)’자가 들어간 ‘계수’나무이다. 그렇지만 ‘계수나무’와 ‘계수(桂樹)’는 이름은 비슷하지만 별개의 나무를 일컫고 있다. 그러면 ‘계수나무’와 ‘계수’를 좀더 쉽게 풀이해 보자. 식물의 한자명 ‘계(桂) 또는 계수’는 향기를 내는 방향성의 나무를 통틀어 일컬을 때에 통용하는 용어이다.
한국에서 일상적으로 부르는 일본산의 ‘계수나무’를 특별히 지칭하지는 않는다. ‘계’ 또는 ‘계수’는 중국에서 향기가 있는 녹나무과의 계피나무류를 비롯해 물푸레나무과(科)의 목서나무류를 이름할 때에 일반적인 용어로서 쓰고 있음이 이를 뒷받침한다.
‘계수’는 향기를 내는 나무이름의 총칭
중국에서 ‘계’ 또는 ‘계수’가 들어간 나무이름의 예는 녹나무과의 육계, 천계, 산옥계, 관계, 가계 등이 있고, 목서나무류 중에는 은계목, 금계목 등이 있다.
앞에 설명한 올림픽의 월계관으로 쓰는 방향성의 ‘월계수’도 나무이름으로 ‘계’자가 들어간다. 이 중에서 가장 일반적으로 쓰는 경우의 ‘계수’는 계피나무류이다. 따라서 좁은 의미에서의 계수라고 하면 향기가 강한 계피나무류를 지칭한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그런데 흔히 ‘계피(桂皮)’ 또는 ‘계피나무’의 이름도 어느 특정한 한 나무를 일컫는 것이 아니라 녹나무과에 속한 여러 나무를 총칭하는 말이다.
즉 육계(肉桂, Cinnamomum cassia), 천계(川桂, Cinnamomum wilsonii), 천계피(川桂皮, Cinnamomum mairei), 산옥계(山玉桂, Cinnamomum burmannii), 관계(官桂, Lindera fruticosa), 가계(假桂, Lindera tonkinensia), 가계피(假桂皮, Lindera caudata) 등이다. 넓은 의미에서는 우리말로 목서나무(또는 향목서나무)라고 하는 물푸레나무과의 향기 짙은 나무이름을 한자명으로 하면 은계목(銀桂木)이고 우리말의 별칭으로는 ‘꽃계수나무’라고 부르며, 황적색으로 꽃이 피는 ‘금목서나무’라고 하는 것은 금계목(金桂木)이라 쓴다.
이 나무이름은 향기가 있는 형질의 특징을 살려 ‘계’를 붙여 ‘계수’나무의 일종으로 하고 있다. 그리고 한국에서 우리말로 ‘계수나무(Cercidiphyllum japonicum)’라고 하는 일본산의 나무이름도 넓은 뜻으로 보면 ‘계수(桂樹)’의 통칭에 불과한 것이 아닐까.
‘계수나무’는 일본산의 한 나무만 지칭
지금부터 일본원산 계수나무의 이름유래를 찾아보자. 이 나무의 우리말 이름은 분명 계수나무이다. 나무이름만으로 따지면 이 나무를 달 속의 나무로 인정하기에 충분하다. 그러나 이 나무이름이 우리말로 계수나무라고 불리게 된 유래는 일본에서 쓰는 이름을 인용한 데서 비롯됐다. 즉 이 나무이름은 일본에서 한자로 ‘계(桂)’인데, 우리나라에서는 이를 우리말로 번역하면서 계수나무라고 썼던 것에 불과하다. 그러면 일본에서는 이 나무의 한자명으로 왜 ‘계’라고 썼을까. 이를 따질라치면 이 나무가 방향성이 있다고 해서 ‘계’를 차용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식물명의 계수나무에 한자명의 계를 처음으로 사용한 나라는 일본이며, 우리나라에서는 이를 그대로 받아들인 셈이다. 그런데 중국에서는 일본산 계수나무의 이름으로 계를 쓰지 않는다. 중국에서는 연향수(連香樹)가 일반적인 이름이며 그밖에 파초향청(芭蕉香淸), 오군수(五君樹), 산백과(山白果) 등의 별칭으로 부른다. 중국에서는 이 나무의 이름으로 ‘계’자가 들어간 한자명을 찾아볼 수 없다. 글을 정리해 보자. 설명이 복잡한 듯하지만 결론적으로 말하면 ‘계수나무’와 ‘계수’는 분명 다른 나무라고 할 수 있다. 통상적인 말로 ‘계수’라고 하면 향기를 내는 나무의 총칭이고, 한국에서 특정적으로 한 나무를 지칭하는 ‘계수나무’는 이 ‘계수’에서 유래한 일본산의 계수나무를 유일하게 부르는 이름이다. 그러니까 일본산의 ‘계수나무’는 통상의 ‘계수’에 포함되지만 ‘계수’는 ‘계수나무’에 포함되지 않는다. 또한 달 속의 ‘계수나무’는 일본산의 계수나무가 아니라 ‘계수’이며, 계수 중에서도 ‘월계수’를 일컫고 있다. 끝으로 머릿글에서도 언급했지만 필자는 올해 인천 계양산의 식물을 조사하면서 산 전체에 일본산의 계수나무와 회양목을 마구 심어 놓은 것을 보았다. 이는 ‘계수나무와 회양목이 많이 자라는 산’이라는 계양산의 지명유래가 잘못됐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절대적으로 믿어 그 뜻을 살리는 차원에서 심은 것 같다. 인천 계양산의 한자명 ‘계’는 계수나무과에 딸린 일본산의 계수나무가 아니라 통상적인 용어의 ‘계수’이므로 이 산에 많이 자라는 방향성의 녹나무과인 비목나무와 생강나무에 해당함을 밝혀둔다. 한편 올해도 『산림』지의 ‘나무이름 유래’편을 통해 여러 독자와 만날 수 있어서 좋았다. 한 해 동안 고정으로 읽어주신 독자께 좀더 재미있고 심층적으로 다가서지 못했다면 많은 해량을 바라면서, 만약 내년에도 이 지면이 허락된다면 이번 호의 내용처럼 일상에서 오해가 있는 나무이름 유래를 중심으로 정리해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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