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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에는 청화산(靑華山)이 두 곳 있다. 우선 상주시, 문경시, 충북 괴산군의 경계를 이루는 청화산(984.3m)은 백두대간 상에 솟아 있어 제법 알려진 명산이다. 그러나 구미시의 청화산을 아는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을 것으로 여겨진다. 이 산은 높이에 비해 면적이 꽤 넓은 산으로, 서남쪽에는 낙동강을 끼고 있는 구미시 도개면을 감싸고, 북쪽 산록에는 의성군 구천면 일대가 펼쳐진다. 또 동쪽 산자락은 군위군 소보면 일대다.
최근 들어 팔공기맥(낙동정맥 가사령 부근 742m봉에서 서쪽으로 분기하여 면봉산~보현산~팔공산~베틀산~청화산~장자봉~만경산을 거쳐 낙동강변의 새띠 마을에 이르는 도상거리 160km 정도의 산줄기)을 종주하는 산꾼들이 간혹 지나칠 뿐 아직은 사람들의 발길이 많지 않다. 그러다보니 때묻지 않은 깨끗함과 청정함을 간직하고 있는 한적한 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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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청화산을 오르며 뒤돌아본 냉산은 산줄기가 동서로 펼쳐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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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래 청화산(靑火山)으로 꽃(華)이 아닌 불(火)로 표기한 것을 꽃(華)으로 표기하게 된 데에는 그만한 연유가 있다. 불을 뜻하는 산이름 탓인지는 몰라도 유난히 산불이 잦았다고 한다. 이에 어느 선비의 제안으로 불을 뜻하는 화(火) 대신 꽃을 의미하는 화(華)로 바뀌게 되었다는 믿지 못할 얘기가 전한다. 어쨌든 산명의 표기를 바꾸었는데도 불구하고 최근까지 산불이 발생했다는 사실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청화산 북쪽 끝자락에 위치한 의성군 구천면 청산리에는 백운동(白雲洞)과 청운동(靑雲洞)이 있어 예부터 청산은 아름답고 흰 구름이 드높은 선경이라 했다. ‘무한청산 행욕진(無限靑山 行慾盡=끝없는 청산 산길 끊겨진 곳), 백운심처 유인가(白雲深處 有人家=흰 구름에 감춰진 곳 인가가 있더라)’라는 옛 글을 취하여 청산1리를 백운동, 조성지를 사이에 두고 반대편에 있는 청산2리를 대칭의 개념으로 청운동이라 한다.
또 서편의 구미시 도개면 다곡리 아래 도개리에는 최근에 지은 신라불교 초전기념관과 함께 도문화재자료 제296호인 전모례가정(傳毛禮家井)이라는 우물이 있다. 신라 최초의 불교 신자인 모례(毛禮)의 집에서 사용한 것으로 전해진다. 우물은 직사각형의 석재를 사용하여 큰 독 모양으로 돌을 쌓아 만들었다. 밑바닥을 두꺼운 나무판자로 깔아 만든 것이 특징이며, 나무판자는 아직도 썩지 않고 그대로 있다. 이 우물과 이웃마을의 도리사(桃李寺)는 신라 불교의 전파를 알려주는 유적으로 불교 성지다.
산행은 이 산의 동남쪽 당재에서 시작해 551m봉(헬기장)~정상~팔공기맥 갈림길~병산박씨·함창김씨 합장묘~주륵사지를 지나 다곡1리 버스정류장으로 내려선다. 당재(땅재)는 구미시 도개면에서 군위군 소보면으로 연결되는 68번 지방도가 지나는 고개다. 이 고개는 남쪽의 베틀산에서 청화산을 잇는 팔공기맥에 자리할 뿐만 아니라 냉산에서 청화산을 이어주는 곳이기도 하다. 고개 너머에는 소보(召保)라는 표지석이 보인다.
당재~정상~주륵사지~다곡1리 코스
고갯마루에서 왼편 산길로 들어서면 청화산 등산로 안내도가 산객을 맞고 옆에는 벤치가 있어 잠시 쉬면서 산행 준비를 한다. 소나무가 우거진 숲을 지나면 서서히 오르막이 시작되지만 그렇게 된비알이 아닌 탓에 여유롭게 오를 수 있다. 이 능선길은 구미시와 군위군을 가르는 경계를 이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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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헬기장이 있는 551m봉에 서면 정상은 보이지 않지만 산릉을 따라 이어지는 청화산의 일부를 읽을 수 있다. / 2 정상표석과 삼각점, 헬기장이 있는 산정에 올라서면 주변 조망도 시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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뚜렷한 등로를 따라 고도를 높이면 주변 조망도 쉽게 접하게 된다. 뒤돌아보면 산줄기가 동서로 펼쳐지는 냉산이 헌걸차게 솟아 있고, 그 아래 산자락의 다곡리 일대도 훤하게 볼 수 있다. 특히 냉산은 산행 내내 시야에서 떠나지 않을 만큼 가까운 이웃 산이다.
길섶에 함초롬하게 핀 야생화도 구경하면서 30분 정도 걷다보면 551m봉이다. 널찍한 헬기장이 차지한 이곳에 서서 가야할 방향으로 눈을 돌린다. 정상은 보이지 않지만 산릉을 따라 이어지는 청화산의 일부를 읽을 수 있다.
소나무와 참나무가 주종을 이루는 숲속으로 10분쯤 내려서면 갈림길이 있는 안부에 이른다. 왼편은 당재 마을, 오른편은 사촌 마을로 연결되는 지점이다. 잠시 휴식을 취하면서 땀을 식힌 후, 숲을 벗어나 마사토가 드러난 완만한 오르막길로 향한다. 둔덕처럼 밋밋한 봉우리 하나를 넘어 올라서면 612m봉. 억새가 뒤덮인 펑퍼짐한 이 봉우리에 서면 냉산 뒤로 우뚝 솟은 금오산이 시야에 들어온다. 남쪽으로는 팔공기맥이 뻗어가는 능선은 물론이고 그 너머로 펼쳐지는 팔공산 일대도 뚜렷하게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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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청화산 등산로 안내도가 산객을 맞고 벤치가 있어 쉴 수 있는 당재 등산로 초입. / 2 절은 사라지고 그 터에는 파괴된 석탑재와 초석만 폐기물처럼 쌓여 있는 주륵사 폐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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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부터는 능선길로 오르내림이 반복되지만 지루하지 않는 산길에 큰 어려움이 없는 외길이다. 방향을 틀어 완만한 내리막길로 따르다가 직진 아닌 오른쪽 2시 방향으로 틀면 약간 가팔라지는 산길은 안부에 이르게 된다. 다시 경사가 심해지는 오르막 능선에서 헬기장을 지나고 곧이어 백운동 갈림길이 만나는 690m봉에 닿는다. 이곳은 구미, 의성, 군위군을 가르는 경계점이다. 이제부터는 구미시와 의성군을 가르는 능선길로 가게 된다.
가까운 거리의 상봉을 바라보며 약간의 바위가 어우러진 날등을 지난다. 10분이 채 못돼 695m봉에 도착한다. 묘지가 자리한 이 봉우리는 당재쪽에서 보면 정상으로 착각하는 봉이다. 정상은 이 봉우리에서 한 굽이를 더 넘어야 닿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