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해피랑길 시작점에 서다 . . . 부산 둘레길 중에서 으뜸으로 알려진 이기대 둘레길은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지정한 동해안 탐방로 "해피랑길" 시작점으로 강원도 고성 통일전망대까지 총 688km를 잇고 있는데 이기 대는 4.7km 코스로 해안절경이 뛰어나 해안을 계속끼고 거닐 수 있다는 매력이 있는 곳... . . 이기대 둘레길 . . .
. . . . . . . . 이기대는 군작전지구 육군문서보존소로 민간인 출입이 통제되다 군부대가 이전 1993년에 시민의 품으로 돌아왔다. 이기대는 해안경관이 빼어난 곳으로 동래영지(1858) 산천조에는 이기대는 좌수영에서 남쪽으로 15리에 위치해 있고 두 기생의 무덤이 있어 이기대라 부른 다며 "이기대" 유례를 밝히고 있다. . . 두 기생의 이야기는 임진왜란 당시 수영성이 함락되자 왜군은 해안에서 축하연을 벌리는 과정에서 두 기생이 왜장에게 술을 권하고 취기가 오른 왜장을 껴안고 바다로 뛰어 들었 다고 한다. . . . .
. . . . . 동생말 전망대를 시작으로 출발 . . . . . . . . 군사용 해안경계 철책은 과거 군부대에서 간첩침투 예방을 위해 설치한 해안경계용 철책으로 1997년 군사보호지역 해체 조치로 해안절경을 시민에게 돌려 주면서 2005년 이기대 해안산책 호 조성사업을 계기로 대부분 철책을 철거하였지만 역사, 교육용으로 일부 구간 보전하고 있 다. . . . . . . . . 파도가 바위를 깍아 만든 작은 동굴과 돌이 깍여 나가 떨어지면서 기이한 모습을 하고 있 는 동굴체험길로 해안과 인접해 있으며, 해안길과 산위로 향하는 길 두갈래가 있어 산 길 로 올라가면 동굴 바로 위로 걸어가므로 빠뜨리기 쉽다. . . . . 동굴의 모습이 오묘하다 . . . . 윗 길에서 내려다 본 동굴입구 모습 . . . . 동굴 앞 해안절경이 자갈돌로 이루어져 아름답다. . . . . . 해안을 따라 이어져 있는 해안길 . . . . 둘레길에서 바라본 동백섬 누리마루 전경 . . . . 해녀막사를 기암괴석 뒷편에 만들었다 . .
. . 해녀들이 물작업을 하기위해 잠수복으로 옷을 갈아입거나 물건을 보관하는 장소로 사용하던 해녀막사가 이기대 해안가에 위치해 있다. 지금 만나는 해녀막사는 40년 전에 만들어져 사용 하던 곳을 해안산책로를 조성하면서 정비 복원하였다. . .
. . 공룡발자국은 2000년 3월 자연사환경학회 조사로 인하여 발견된 공룡 발자국으로 중생대 백악기 당시인 약 6.500만년전 추정되는 울트라사우르스 발자국이 선명하게 남아있다. . . 이기대공원의 친환경공원화 추진사업으로 이 일대에 집단 서식하는 늦반딧불을 알리는데 적극적 홍보와 함께 공룡발자국을 관광자원화 하려는 노력을 하고 있지만 공룡발자국 생 성이 화산활동 위 화산탄층에 집중되어 공룡발자국으로 인정을 받지 못하고 있다. 공룡 발 자국은 초대형 울트라급으로 지름 1.2m, 깊이 15cm이며, 공룡 발자국으로 인정만 된다면 국내에서 가장 큰 용각류공룡발자국이 되는 것이다. 공룡발자국은 백악기 전기로 약 9천만 년 전으로 추정되며, 부산대 김향묵 교수에 의하면 해안층에서 40여개를 확인했다고 한다. . . . . . 해운대 영화에서 엽기적인 커플이였던 희미와 형식이 광안대교 야경을 바라보면서 이기대 관련하여 이야기를 나눈다. 이기대가 사람 이름을 닮았다는 희미..형식은 희미에게 사람이 름이 아니라 임진왜란 당시 기생 두 명이 적장을 껴안고 투신했다하여 이기대라 부른다며 설명을 해주는 장면을 촬영한 곳이다. .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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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농바위 전경 . . . . . 12만 년 전 육지와 연결된 소반도에 침식작용으로 육지에서 분리되면서 크고 작은 섬이 생겨나게 되었고 소반도는 오늘날 오륙도로 변하였다. . . 부산의 대표적 상징물 오륙도는 육지인 승두말로부터 남남동 방향으로 방패섬(2,166㎡)·솔섬 (5,505㎡).수리섬(5,313㎡)·송곳섬(2,073㎡)·굴섬(9,716㎡)·등대섬(3,416㎡) 등 6개의 작은 섬으로 면적 0.02㎢, 최고점 68m(굴섬)이다. 6개의 섬 중에서 육지와 가장 가까운 방패섬과 솔섬은 본래 하나의 섬이지만 바다밑에 1m 해식동굴이 있고 잠겨있어 썰물이면 방패섬과 솔섬이 하나가되고 그 섬을 우삭도라 부르며, 밀물 때면 우삭도는 두 개의 섬으로 보여 오륙도라는 지명이 생겨났다 는 설이 가장 많이 알려져 있지만 1740년에 편찬된 동래부지 산천조에는 오륙도 지명을 두고 다 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 . . .
“오륙도는 절영도 동쪽에 있다. 봉우리와 뫼의 모양이 기이하고 바다 가운데 나란히 서 있으니
동쪽에서 보면 여섯 봉우리가 되고 서쪽에서 보면 다섯 봉우리가 되어 이렇게 이름한 것이다. (五六島在絶影島東 峯巒奇古列之海中 自東視之則爲六峯 自西視之則爲五峯 故名之 以此)” . . 즉 오륙도를 보는 위치에 따라 섬의 숫자가 달라진다는 것인데 오히려 더 설득력이 있으며, 지
금의 우삭도관련 오륙도 지명은 일제강점기 당시 일본인이 잘못 해석하여 기록한 것이란 주장 이 있다. . . 5개 또는 6개로 보이는 오륙도 섬들은 굴섬이 가장 크고 높이가 다른 섬에 비하여 제일 높고 섬에는 자연적으로 형성된 동굴이 있다. 밭섬은 육지와 가장 먼 섬으로 섬의 지형이 흡사 밭 과 같다하여 붙여진 곳으로 1937년 11월 최초 오륙도 등대 점등과 함께 등대가 있다하여 등 대섬으로 부르며 유일한 유인도이다. 이외 바람과 파도를 막아준다는 방패섬, 섬 정상에 소 나무가 자생하는 솔섬, 갈매기를 ?아 독수리가 모여들었다는 수리섬(당나라 장수 만세덕의 비가 있었다하여 수리섬을 비석섬으로 부르기도 한다.),흡사 송곳처럼 생긴 송곳섬 등이 오 륙도의 자리를 지키고 아름다운 장관을 연출하여 시지정기념물에서 국가지정문화재인 명승 지로 승격되었다. . . . .
오륙도의 항로 개척은 신라시대 해상왕 장보고가 무역선을 이끌고 통과하면서 부산을 들어서는
길목 해상 관문으로 알려져 있으며, 예로부터 이 일대의 조류가 빨라 무사항해를 기원하는 의식 인 해신에게 공양미를 바쳤다고 한다. . . 오륙도에서 맞이하는 일출은 그야말로 압권이다. 일출과 일몰은 섬과 섬으로 사라지고 솟는 모
습이 최고로 오륙도를 배경으로 솟구치는 일출과 갈대숲으로 지는 몰운대의 낙조는 부산의 자 랑이 아닐 수 없으며, 1937년 11월 최초 오륙도 등대는 당시 높이 6.2m 이었지만 오랜 세월로 인하여 1998년 12월 등탑 높이 27.5m 로 높이고 전망대를 설치하여 부산의 야경을 바다에서 볼 수 있도록 하였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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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여행속으로 원문보기 글쓴이: 핏빛노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