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바지 여름휴가, 동해안 해수욕장 여행 | ||||||||||||||||||||
올여름 막바지 여름휴가는 어디가 좋을까? 우리 가족은 동해에서 삼척으로 이어지는 7번 국도를 따라 해수욕장 이정표가 보이는 곳은 빠지지 않고 들어가 보았다. 우리가 찾는 곳은 단 하나. 시원한 나무 그늘에 텐트를 칠 수 있는 옥계 해수욕장이다. 그곳은 시원한 송림 그늘이 있어서 딱 안성맞춤이었는데, 아쉽게도 텐트 칠 자리가 없었다. 그만큼 사람이 많았다. 옥계 해수욕장을 빠져나와 동해 쪽으로 방향을 잡고 달렸다. 망상해수욕장 이정표가 보였지만 이곳 역시 나무그늘이 없다는 것을 알기에 그냥 지나쳤다. 그런데 그냥 지나치기도 힘들 만큼 사람과 자동차가 많았다. 점점 날이 어두워진다. 이래선 안 될 것 같아서 사람이 비교적 적은 대진항 옆에 있는 해수욕장에서 1박을 했다. 텐트를 치고 늦은 저녁을 먹는데 바로 옆 망상에서 들려오는 가수들의 노래 소리가 아내의 마음을 안타깝게 했다. 당장이라도 달려가고 싶다는 아내. 그래서 젊은 청춘들은 규모가 큰 해수욕장에 몰리는 가보다. 저런 행사도 볼 수 있으니 말이다. 몇 시인지도 모르고 그저 잠이 들었다. 시원한 바닷가에서 파도소리를 들으니 저절로 잠이 온다. 만약 이곳이 집이었다면, 열어 논 창문으로 들리는 자동차들의 소음소리와 찜질 방 같은 답답함 때문에 잠을 설쳤을 텐데, 너무 시원해서 오랜만에 깊은 잠을 잘 수 있었다.
다음날 뜨거운 햇살에 노출된 우리는 텐트의 조그만 그늘 막에 숨에서 간신히 아침을 챙겨먹고 다시 길을 떠났다. 아침에도 이렇게 푹푹 찌는데 오후가 되면 이 텐트에서 과연 지낼 수 있을까? 7번 국도를 계속 달려 추암 해수욕장에 도착했다. 여러 번 와본 곳이라 나무 그늘이 당연히 없는 줄 알고 있었지만 그냥 지나치기 서운해서 한번 들렀다. 그러고 보니 여름에 이곳에 와본 것은 처음이다. 항상 시원한 계절에만 찾았으니 사람들로 이렇게 북적이는 추암의 모습이 괜히 낯설다. 추암을 빠져나와 삼척 해수욕장에 도착했다. 와! 정말 사람 많다. 야영장을 보니 뜨거운 모래사장에 텐트들이 옹기종이 모여 있다. 여기도 아니다. 망설임 없이 그냥 지나쳤다. 어디까지 가야할까? 길을 달리다보니 어느새 아름다운 도로가 눈앞에 펼쳐져있다. 이 길이 말로만 듣던 새천년도로였다. 깎아지른 절벽의 아름다운 모습이 바다와 함께, 또 파란 파도의 포말과 함께, 바라보는 나의 눈을 시원하게 해준다.
삼척 해수욕장에서부터 삼척항에 이르는 4.6㎞의 이 해안도로는 드라이브를 목적으로 만들어진 계획적인 도로하고 한다. 도로 어디서든지 동해의 아름다운 일출을 볼 수 있을 것이고, 해안의 기암절벽과 함께 어우러진 해송은 동해의 푸른 바다 빛을 받아 더욱 선명하게 빛나 드라이브를 하는 동안 감탄사가 연발하게 해줄 것이다. 도로변에 조성된 조각공원과 소망의 탑도 볼 만하다. 차 세워둘 공간도 넉넉하게 마련돼 있어 잠깐 잠깐 드라이브하다 쉬었다가도 좋을 듯하다.
삼척항을 지나 맹방해수욕장에 도착했다. 해송 군락이 보여서 차를 세우고 잠깐 들어가 보았는데 아쉽게도 군사지역인지 출입금지 표시가 돼있다. 동해바다를 이리 저리 돌아다닐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길게 이어진 철조망이나 군사지역은 제발 빨리 없어졌으면 좋겠다. 맹방과 이어진 해수욕장인 덕산으로 발길을 돌렸다. 가는 길의 경치가 참 좋다. 맹방과 덕산은 가운데 덕복산이라는 봉긋하게 올라온 산을 경계로 나눠져 있다. 마을 상류에서 내려오는 마읍천이 바다와 만나는 지점이고 두 해변이 산봉우리 사이에 나눠져 있으니 정말 멋진 광경이다. 이곳도 솔직히 별 기대는 하지 않았다. 주차장을 따라 쭉 들어가는데 작은 규모의 소나무 숲 사이로 텐트를 친 사람들의 모습이 보인다. 장소가 넓지가 않아서 자리가 없을 것만 같았는데 다행히 2자리 정도의 여유가 있었다. 재빨리 자리를 잡고 짐을 풀기 시작했다. 이렇게 우리가족은 덕산해수욕장의 시원한 나무 그늘 아래 자리를 잡았다. 텐트를 치고 보니 그 뒤편은 다 무덤가였다. 별 상관은 없었지만 괜히 기분이 묘해진다. 덕분에 더 시원한 기분을 느낄 수도 있으리라. 이곳 덕산 해수욕장은 평균수심 1~2m 정도이며 길이 580m, 폭 50m의 백사장으로 이뤄져있고 근처에는 덕산항(남애포)이 있어 신선한 수산물도 그 자리에서 맛볼 수 있다고 한다. 점심을 먹고 바닷가에 나가 물놀이를 하였다. 같이 물에 들어가기로 한 아들은 약속을 저버리고 모래사장과 파도의 경계에서만 놀고 있다. 아무리 끌고 들어오려고 해도 물이 무섭다며 안 들어오려고 한다. 참 이상한 일이다. 다른 아이들은 물만 보면 신나서 들어가려고 난리인데 우리 아이는 정 반대이다.
아내와 나만 물놀이를 하고 아들은 모래사장에서 우리가 노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 뭔가 바뀌어도 한참 바뀌었다. 우리 가족의 휴가는 항상 어딘가 한곳에 정착하지 못하고 이리저리 떠돌아다녔다. 하지만 이번 여름 휴가는 이곳에서 쭉 보내봐야겠다. 솔직히 내일 해가 뜨면 생각이 어떻게 바뀔지 모르지만 말이다. 삼척 죽서루, 규모는 작지만 볼게 많습니다. 해수욕장 해변에서 새벽을 맞았다. 이렇게 바닷가 모래사장에서 텐트치고 자본 게 얼마만인지 가물가물하다. 정확히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성인이 된 후론 처음이지 싶다. 전날 밤 늦게 도착한 동해의 한 조그만 해수욕장에서 텐트를 치고, 잠을 잘 때까지는 참 좋았다. 도시에서 열대야에 시달리며 밤잠을 설치던 일은 이곳에서는 상상도 못할 일이다. 새벽의 해변은 이불을 덮어야 할 정도로 쌀쌀하기까지 했다. 아! 정말 좋다.
그런데 멀리 수평선 너머에서 해가 떠오르자마자 이런 생각은 멀리 도망가 버리고 말았다. 그늘 한점 없는 모래사장에 무방비로 노출 돼버린 텐트 안은 금방 찜질방이 되어 버렸다. 조금만 움직여도 땀이 줄줄 흘러내린다. 서둘러 아침을 먹고 다른 해수욕장을 찾아 떠나기로 했다. 나무 그늘에 야영장이 있는 곳을 찾아야한다. 동해에서 삼척 방향으로 차를 몰았다. 강릉에서 속초 쪽으로는 그런 해수욕장이 더러 있는 것 같은데, 이곳 동해에서 삼척 쪽은 어떨지 모르겠다. 휴! 아침부터 정말 덥다. 열심히 해수욕장 이정표를 찾으며 달리고 있는데, 난데없이 죽서루라는 이정표가 보이더니 나도 모르게 이끌리고 말았다. 해수욕장을 찾기보다는 먼저 저곳을 둘러봐야겠다. 길가 큰 도로에서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 죽서루가 있었다. 아직 이른 시간이라 그런지 사람은 별로 없었다. 무료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안으로 들어가 보았다. 입장료도 역시 없었다. 정문으로 들어서자 정면에 죽서루가 보이고 좌측으로는 시원하게 쫙쫙 뻗은 대나무 숲이 보인다. 오른쪽으로도 우람한 나무들이 줄지어 서있다. 이곳은 좌에서 우로 고개를 한번 돌리면 안이 다 보이는 참 조그맣고 아담한 공간이다. 우선 좌측으로 걸어 들어갔다. 대나무 숲이 있는 그곳엔 희한하게 생긴 바위들이 들어서 있었다. 커다란 은행나무가 뒤편에 있는 바위는 ‘용문바위’라고 한다. 이 바위에도 전해오는 이야기가 있다. 신라 제30대 문무왕이 사후 호국용이 되어 동해바다를 지키다가 어느 날 삼척의 오십천으로 뛰어들어 죽서루 벼랑을 아름답게 만들어 놓았는데, 그때 죽서루 옆 바위를 뚫고 지나갔다는 이야기이다.
안내문을 읽어보니 이곳에는 선혈이라는 선사 암각이 있다고 한다. 성혈은 선사시대에 풍요, 생산, 다산을 상징하는 것으로 한국적인 원시신앙의 형태로 발전하였다고 한다. 조선시대에는 칠월칠석날 자정에 부녀자들이 성혈 터를 찾아가 일곱 구멍에 좁쌀을 넣고 치성을 드린 다음 그 좁쌀을 한지에 싸서 치마폭에 감춰 가면 아들을 낳는다는 민간신앙이 성행했다고 한다. 죽서루 경내의 성혈의 이 용문바위 위에 직경 3~4cm, 깊이 2~3cm의 크기로 10개가 있다고 한다. 호기심이 발동한 나는 용문바위에 올라서 보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아무런 자국을 볼 수 없었다. 옆의 바위를 쳐다봐도 조그만 구멍이 뚫린 성혈 자국은 볼 수가 없었다. 그렇게 한참을 성혈을 찾는다고 둘러보고 있는데 전화가 왔다. 죽서루에 먼저 올라가 있던 아내와 아들이 전화를 한 것이다. 도대체 어디에 있는데 아직도 안 오냐는 것이다. 성혈 찾기를 포기하고 오른쪽으로 돌아 나와 죽서루에 올랐다.
삼척의 ‘죽서루’는 보물 제213호로 지정돼있다. 이 누각이 언제 창건되었는지는 확실하지 않다고 한다. 다만 고려 명종 때, 김극기라는 사람이 쓴 죽서루시가 남아있는 것으로 봐서 12세기 후반에는 이미 존재하였다고 짐작할 뿐이라고 한다. 그 후 1403년(태종 3년), 삼척 부사 김효손이 고쳐지었다고 한다. 이 죽서루 기둥의 길이는 다 제각각이라고 한다. 전부 17개의 기둥이 있는데 9개는 자연 암반을 기초로 하였고, 8개는 돌로 만든 기초위에 기둥을 세웠다고 한다. 그래서 기둥의 길이가 각각 다르다는 것이다. 마루에 올라섰다. 시원한 바람이 가끔 불어온다. 가만히 앉아 있으면 잠이 솔솔 올 것 같다. 진주의 촉석루처럼 신발을 벗고 들어오게 했다면 마루바닥에 앉아서 좀 쉬었다 가고 싶은데 신발을 신고 들어오게 돼있으니 그저 잠시 서 있다가 내려갔다.
죽서루 옆에는 “송강 정철 가사의 터”라는 표지석이 있다. 문화부에서는 송강 정철의 기념표석을 두개 세웠는데, 하나는 성산별곡의 무대인 전남 담양의 식영정 부근이고, 또 다른 하나가 바로 이곳 관동팔경의 하나인 죽서루 경내에 세웠다고 한다. 8각형의 기단 각 면에는 송강의 대표작과 친필 등을 새겨 놓았다. 짧은 시간 동안 죽서루를 모두 돌아보고 정문 옆의 작은 문으로 나갔다. 경내에는 죽서루뿐만 아니라 각종 보호수가 뿌리 내리고 자라고 있어 대나무와 함께 그 또한 볼 만하다. 우리 가족은 해송이 있고, 그곳에 야영을 할 수 있는 그런 해수욕장에서 막바지 여름휴가를 즐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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