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악산(冠岳山)629m
백두대간상의 속리산에서 서쪽으로 갈라진 정맥이 안성 칠장산에 이르러 북쪽으로
다시 갈라져 주맥은 김포시 문수산까지 이어지는데 관악산은 그 중간지점에 있는
백운산(567m)에서 한강쪽으로 갈라져 이수봉과 과천 갈현(葛峴)을 넘어 서울과의
경계선에서 암릉과 암봉으로 우람하게 솟아오른 명산이다.
탐방한 코스☞ 정부과천청사앞-중앙공무원교육원 갈림길-용문암가는길-관리소-은하교-계곡길-문원폭포-갈림길-좌측은 서폭포 6봉(360m 1봉. 420m 2봉. 450m 3봉. 495m 4봉. 515m 5봉 . 525m 5봉)암릉올라가는길-우측은연주대가는 쉬운길-359봉-420봉-케불카선능선-연주암-연주대-8봉능선-(551m 8봉-525m 7봉-475m 6봉-445m 5봉-440m 4봉-425m 3봉-405m 2봉-왕관바위-350m 1봉)-무너미고개-삼거리약수-제4야영장-호수공원-서울대정문입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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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가 관악산 정상봉이며 명찰과 문화유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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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악산은 관악구,금천구와 경기도 안양시,과천시의 경계에 있는 산으로 전체면적 1,922만m2(약582만평),최고봉은 연주대(해발 629.1m)이며,1968년1월15일 건설부고시 제34호로 지정된 도시자연공원이다.
관악산은 예로부터 경기금강 또는 소금강이라고 불리우기도 하였으며, 近畿五岳(송도의 송악,가평의 화악,적성의 감악,포천의 운악,서울의 관악)중의 하나이기도 하다.
풍수지리설에 따르면 한양을 에워싼 산중에서 남쪽의 뾰족한 관악산은 화덕을 가진 산으로 조선조 태조가 한양에 도읍을 정할때 화기를 끄기위해 경북궁앞에 해태를 만들어 세우게한[불기운의 산]이라고 하는 유래도 있다.
산의 형세는 비록 태산은 아니나, 준령과 괴암이 중첩하여 장엄함을 갖추었고, 봄철에 무리지어 피는 철쭉꽃과 늦가을의 단풍이 장관을 이루고 있으며, 그 정기가 뛰어나 많은 효자,효부와 충신 열사를 배출한 명산으로 고려시대의 강감찬장군과 조선시대의 신자하 선생이 그 대표적인 인물이라 하곘다.
그 외에도 1,500여 봉우리와 구릉곳곳에 사찰(관음사.보덕사.호암사.성주암.자운암.약수암.연주암등)이 산재하고 있으며, 계절마다 변화무쌍한 아름다운 경치가 있고 관문을 비롯한 각종 편의 시설과 등산로가 말끔이 정비되어 있어 수많은 서울시민이 즐겨찾는 휴식처로 그 쾌적함과 신선함은 가히 서울의 명소이다..
*연주대(戀主臺)*
경기도 기념물 제 20 호
소재지 : 경기도 과천시 중앙동 ![](https://t1.daumcdn.net/cfile/cafe/205A660B4A9ED82A3B)
관악산은 빼어난 산세로 연주대 절벽 꼭대기에 아슬아슬하게 세워져 있는 응진전은 절묘한 풍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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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연주대는 신라의 고승 의상대사가 문무왕 17년(677년)에 관악사(지금의 연주암) 창건과 동시에 암자를 세우고 의상대라 이름한 것을 조선 초 에 연주대라 개칭한 것이다.
이 는 태조 이성계가 고려를 멸망시키고 조선을 개국한 새왕조에 반대하며 고려에 충성을 다했던 강득용(康得龍)등 유신(遺臣)들이 항상 이곳에 들려 멀리 송경(松京..開京)쪽을 바라보며 두문동에서 순국한 72인의 충신열사와 망국 고려를 연모하였으므로 연주대라 개칭 하였다고 전한다.
또 한 태종이 셋째왕자 충녕대군을 장차 태자로 책봉하려 하자 이를 눈치챈 첫째와 둘째왕자인 양녕과 효령대군이 궁을 나와 관악산에 입산 수도하면서 이 연주대에 자주 오르곤 했다고 전해진다..
연주암(戀主庵)
조계종 직할 제1교구
연주암 [관악산 연주암]
연주암은 관악산의 비경속에 자리잡은 유서깊은 사찰이다. 깎아지른 듯한 기암절벽의 정상에 서면 서울의 전경이 한눈에 잡힌다. 지금은 등산객들의 쉼터로 인식되고 있지만 예부터 기도도량으로서 널리 알려져 왔다. 창건은 677년 의상대사가 했다. 그러나 현존하는 건물이나 석물 등에는 신라때의 유적, 유물이 남아 있지 않다.
고려말의 충신이었던 강득룡 등은 왕조가 멸망하자 관악산으로 은신하였다. 여기서 멀리 송도를 바라보며 고려왕조를 그리 워했기에 붙여진 이름이라는 것이다.
효령각(孝寧閣)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 81 호
소재지 : 경기도 과천시 중앙동 85-1
효령대군(孝寧大君. 1396~1486)은 태종과 원경황후 민씨의 둘째아들로 세종의 형이다. 효성이 지극했으며 독서를 즐기고 활쏘기에 능하여 늘 태종을 따라 사냥터에 다녔다고 한다.가로74cm 세로90cm의 효령대군 영정은 정면을 바라보며, 왕이 평상시에 쓰는관인 익선관(翼善冠) 형태의 황색관모(黃色冠帽)를 쓰고 깃과 소매에 녹색의 선을 댄 홍포(紅袍)를 입고서 용과 봉황으로 장식된 의자에 앉아 있는 모습이다.의자와 발을 놀려놓는 족좌대(足坐臺)는 흔히 보기 어려운 독특한 형태로 비록 여러번 옮겨 그려 정확한 제작 연대를 알기 어려우나 원본의 형태를 전하고 있다. 얼굴은 정면을 보는 관계로 각 세부가 도식 적이고 미숙하게 처리되었다.하지만 오른손으로 물건을 잡고 있는 자세는 조선전기 초상화에서 보기드문 것으로 이 그림이 갖는 특이한 표현이다. 이작품은 비록 여러번 모사된 그림이지만, 조선전기 초상화를 연구하는데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