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미의 추억
오 희 숙
오늘도 거실 유리창으로 금오산 한 줄기를 바라본다. 3월 중순의 날씨라 아직 나무들이 잎을 달지는 않았지만, 겨울과는 다르게 나무에서 푸른 기운이 느껴진다. 나무가 수액을 빨아올리고 있기 때문이리라.
대구에서 구미로 이사 온 지 6년째에 접어든다. 지금은 무디어졌지만, 처음에는 창문 바로 앞에 산이 있다는 것에 감동했다. 옅었다가 진해지는 초록 색감이며, 가을에 붉게 물드는 것, 겨울에 하얀 눈이 덮인 작은 산을 매일 볼 수 있다는 것은 일상의 또 다른 행복이었다.
처음에는 구미에 직장을 두고 대구에서 통근했다. 한 시간 정도의 거리였지만 그럭저럭 다닐 수 있을 것 같았다.
구미에 부임한 지 얼마 되지 않은 3월 초, 학교에서 학생이 극단적 선택을 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다른 학생들의 심리적 동요를 막고 학생들이 건강한 학교생활을 하도록 하는 것이 급한 일이었다. 극단적 선택을 학생은 3학년 여학생으로 1학년 때 정서·행동특성검사에서 심각한 관심군으로 나와 심리적 지원이 필요했지만, 학생과 학부모가 동의하지 않아 방치된 상태였다.
교육부 산하의 학생 정신건강 지원센터에서 개입하였다. 전교생을 대상으로 심리검사를 실시하여 심리적으로 힘든 학생을 가려내고, 그 정도에 따라 정신의학과 의사, 교육청 Wee센터 상담사들이 학교에 상주하거나 왕래하면서 학생들을 면담하였다. 학교 내에 다섯 개의 상담실을 만들고 밤낮으로 운영하였다.
이 일은 모두 상담교사인 나의 몫이었다. 동료 교사에게 도움을 받고자 했지만 여의찮았다. 출퇴근에 왕복 2시간 이상을 소모하고 아침 7시도 전에 집에서 나와 밤 10시에야 집에 들어가니 집에서 잠만 자고 나오는 일이 한 달여 동안 지속되었다. 건강이 나빠지는 것 같았지만, 내가 해야 할 일이었다. 전교생은 천 명이 넘는데, 인문계 고등학교의 특성상 심리적 어려움을 겪는 학생들이 많았다.
어느 정도 마무리가 된 후 보고서를 작성하고 퇴근한 금요일 저녁, 쓰러질 것 같은 느낌이 들었고 열이 나기 시작했다. 근 열흘을 병원에 입원했다. 더 이상 통근은 무리인 것 같았다. 구미로 이사를 결심했다. 살던 집을 팔고 이사하는 데만 1년이 넘게 걸렸다.
구미로 집을 옮긴 후 통근하는 불편은 줄었지만, 처음에는 구미 생활에 적응이 어려웠다. 대구에서 살던 동네가 지하철 역세권이었고 대형마트 등 모든 편의 시설 이용이 도보로 가능했던 곳이었다면, 구미에서 자리 잡은 곳은 산을 끼고 있어 공기는 좋지만, 편의 시설이 부족한 곳이었기 때문이었다. 이런 불편함 때문에 직장에서 기진맥진해서 퇴근한 어느 날 저녁을 사 먹으려다가 근처에 마땅한 음식점이 없어 엉엉 소리 내어 운 적도 있었다.
지금은 공기 좋고 조용한 우리 집이 좋다. 또 가까이 있는 금오산을 사랑한다. ‘구미에 금오산이 없었다면 얼마나 삭막했을까?’라는 생각을 가끔 해본다. 한동안은 주말마다 금오산 대혜폭포까지 등반했다. 체력적으로 큰 부담이 없고, 무리가 없어 남편과 함께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걷는 즐거움을 느낄 수 있고, 특히 비가 온 다음 날엔 폭포의 시원한 물줄기를 볼 수 있어 좋았다.
구미 관내에서 학교를 이동해야 하는 시기가 되어 어디로 이동해야 하는지 고민하던 중 A학교에 자전거를 타는 50대 여교사 모임이 있는데, 잘 운영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나도 자전거를 타보고 싶은 생각에 A학교로 이동하고 싶었다. 마침 기회가 와서 그 학교에 근무하게 되었다.
50대 중반에 이르도록 자전거를 타본 적이 없었다. 처음에는 동락공원 자전거 대여소에서 자전거를 빌려 남편이 잡아주고 가르쳐주어 조금씩 탔었다. 하지만 얼마 되지 않아 코로나 상황으로 인해 자전거 대여소가 문을 닫았다. 초보라서 전기 자전거가 낫겠다는 생각에 전기 자전거를 샀고, 1년이 되지 않아 MTB 자전거로 바꿀 수 있었다. 일 년 동안 자전거 두 대를 사들인 셈이다.
시간이 될 때마다 자전거를 탔다. 구미고 네거리에서 낙동 체육공원을 거쳐 흑두루미 공원까지, 혹은 매학정이 있는 강변하우스까지, 더 용기를 내면 힘들지만, 구미보까지도 수없이 달렸다. 넘어져서 여기저기에 멍이 들었던 적도 많았다.
라이딩 동호회에서는 구미보, 칠곡보, 대구 강정보까지의 라이딩 뿐만 아니라 섬진강도 라이딩했다. 자전거 덕분에 다리 근육도 탄탄해졌고 즐거움도 얻었다. 지금은 눈 건강이 좋지 않아 자전거를 오래 탈 수는 없지만 그래도 여전히 즐거운 활동이다.
정년퇴직한 남편이 집에서 노는 것이 힘들다면서 대구 인근에 재취업을 했다. 결혼생활의 반 정도를 주말부부를 했었는데 또 주말부부가 되었다. 나는 작년에 퇴직했기에 이제는 다시 대구로 이사해서 주말부부를 졸업할 예정이다. 집을 내놓은 지 한 달이 넘었는데 집을 보러 오는 사람이 없다. 그래도 크게 초조하지 않다.
자전거를 배우게 해주고 많은 좋은 추억을 안겨준 구미라서 조금은 미적거리다가 아쉬운 작별을 고하고 싶다. 비록 구미를 떠날지라도 구미에서의 지난날들은 내 생애에서 잊지 못할 좋은 추억이 될 것이다.
첫댓글 힘든 날 보내고 여유도 생겼는데.......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섭섭하고 아쉬워요. 어디에서도 건강하세요. 재미있게 지내시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