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하는 사랑은 모두 표절이다.
사랑의 형태는 모두 받아온 것들을 그대로 돌려주는 것에 기인했기에 사랑에 대한 정의가 약한 편이다. 얄팍하고 명확하게 구분되지 않는 애정들을 전부 학습했고 대체로 사람들은 본인이 던진 사랑을 그대로 돌려주는데도 황홀해했다. 그러니, 사랑이 이토록 쉬울 수 밖에. 발 끝에 차이는 표절들이 수십개가 넘쳐나도 비난보다는 비명을 들었으니까. 사랑은 금세 흥미를 잃은 주제가 되어버렸다. 너희가 읊는 사랑 어디에도 특별한 것이 없다. 쟁취해서 가진 것의 벅찬 성취감을 알기에 자연스럽게 시선은 다른 곳으로 흘러간다. 가진 자는 언제나 오만하다.
손 안에 굴려지는 패를 보며 생각했다. 꽃패를 쥐었거나 상대가 둔 수에 따라 달리지는 표정들을 보면서 감정은 정말 쉽다고 생각한다. 상대의 기분을 바꾸는 건 참 가볍고 손쉽다. 운명을 손에 쥐어진 기분이다. 상아패들이 부딪치며 까드득 소리를 낸다.
나는 이제껏 몰이해한 상황 속에서 살아왔다. 찬양하는 그들은 나를 잘 안다고 시조를 송영하듯 까다로운 나의 취향에 대해 떠들었지만 그곳에 정답은 없었다. 그들이 적는 대부분의 취향들은 어머니와 황제 폐하에게서 빌려온 것들이었다. 그래, 그들이 정답을 적지 못하는 대에는 나의 잘못도 있다.
나는 그 누구에게도 솔직한 내 취향을 말한 적이 없으니, 그런데 미천하고 추잡한 투쟁이 난무하는 투전판에서 나의 취향에 부합하는 이를 만날 줄이야. 그것도 그 무해하고도 천진난만한 얼굴로 나를 등쳐 먹으면서 말이야?
마작판에 화려하게 치장하고 나타나 모두의 이목을 끈 것도 모자라서 천진한 귀공자 행세를 하며 판돈을 춘분에 날리는 앵화처럼 훨훨 잃는 꼴이라니, 누가 봐도 호구를 자처하는 모양새였다. 모두가 내가 있는 판에 끼기 위해 조그마한 틈도 놓치지 않고 치고 들어오려 한다. 매끈하게 올라가는 붉은 입술은 오랜만의 흥미에 내려올 줄을 몰랐다. 큼큼, 기침소리로 나를 말리는 위사를 보며 지는 것도 나쁘지 않은데? 란 복장 터지는 소리도 해 본다. 그래, 궁핍한 백성들의 구휼을 위해 이정도는 탕진할 수 있지. 나는 훌륭한 황가의 자손이니까. 그런 나의 고상하고 숭고한 마음가짐을 단번에 뒤집게 만드는 재주를 가진 너도 참 대단해. 범에게 주제도 모르고 짖는 강아지가 저럴까? 소년의 손목을 지긋이 보는 황자의 눈빛이 달라졌다. 그는 내가 짠 판에 끼지 않았다. 내가 들어오게 판을 만들었다. 흥미롭게도 너는 시선을 끄는 방법을 아는 듯 굴었다. 패를 바꾸고 있다는 걸 알았지만 손이 빠르니 어떻게 속이는지 방법을 알아내기 어려웠고 그를 엿 먹이려다 내가 된통 당하게 될 확률이 더 컸기에 나설 수도 없었다. 이렇게 계획적으로 당하면 정말 호구가 된 것 같잖아. 더구나 무해한 얼굴로 백해무익한 일만 저지르다니, 나는 그 모순을 사랑한다고.
조용하게 지시했다, 저새끼 잡아.
황자는 소년을 내려보았다. 긴 그림자가 어둠을 만들었다. 소년의 뒤로 위사들이 붙었다. 사람은 늘 선을 지켜야 해. 손톱을 정리하던 어머니는 갑자기 황자에게 가르침을 내렸다. 다들 내가 욕심이 많은 줄 아는데, 나 정도면 적당한 거야. 황제에게 사랑받는 방법 중 하나였을지도 모른다. 그녀는 선을 지켰고 허용된 범위 내에서만 탐냈다.
“너지? 전에 나한테 사기 친 놈?”
위사들의 손에 의해 그의 종잇장 같은 몸은 달랑달랑 황자궁으로 가는 말에 실렸다.
사나운 속을 정리하고자 나선 길이었으나 더 정신이 없었다. 마작패도 보이지 않고 떠나고 싶단 생각만 열렬하다. 그 널리고 널렸던 표절 속 사랑에 지금 내가 하는 사랑은 없었다. 답습할 것이 없다는 게 이토록 답답할 줄이야. 가장 쉬웠던 문제가 가장 어려워진 지금, 눈 앞에 모든 게 거슬리기 시작한다. 승리를 위해 애써주는 강아지의 꼬리 초자 보이지 않는다. 다만 나를 아는 듯 구는 태도가 거북해서 패를 보고 있던 황자의 시선이 해영에게로 향한다. 그러고 보면 요즘은 밤 외출이 드물었다. 내 사랑이 황실 안에 있기에 나갈 수가 없었다. 내가 없는 사이 또 누군가 그녀를 사랑하게 되면 어쩌지, 폐하께서 찾으면 어쩌지, 쉽게 끊을 수 없는 생각의 고리. 또 생각이 그녀에게 닿자 열이 치솟는다. 금일 굳이 황자궁을 비워가며 뛰쳐나온 원인이 생각났다.
너는 참 배움이 짧아. 조금만 곁을 주면 머리 위로 오르려고 고개를 빳빳이 쳐들어. 무구하다 해야 할지, 아둔하다고 해야 할지.
“왜? 외로워? 나랑 밤새 같이 있고 싶어?”
그가 나오기가 어렵다는 건, 돌아가야 할 시간도 있다는 뜻. 황자는 시선을 패로 돌리며 그가 부던히 주는 신호에도 느긋하고 또 느리게 패를 고르는 척 시간을 끌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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