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간 뒷길로 빠지자 관광객을 위한 마차가 보였다. 대형버스는 통제해 버리고 마차를 이용하게 한 행정에 슬며시 미소가 지어졌다. 여행사나 가이드의 체면을 살려주느라 면세점에 들리긴 했으나, 처음부터 살 물건이 없었던 나는 한 바퀴 둘러보고는 먼저 성당으로 간다는 말을 남기고 나왔다. 다음 일정이 성당이었기 때문이다.
‘성 스테판 성당(St. Stephen's Cathedral)은 면세점에서 멀지 않은 빈의 중심부에 마치 빈의 중심축처럼 굳건히 서 있었다. 성당의 정문을 서쪽에 두는 전통에 따라 스테판 성당도 서향인데, 광장이 넓었지만 앞의 건물 그림자가 이미 정문 하단을 가리고 있었다.
곧바로 안으로 들어갔더니 마침 미사가 진행되고 있었다. 그런데 특이하게도 철제차단막이 설치되어 있어서 관광객은 더 안쪽으로 들어갈 수 없었다. 아주 오래전 파리의 노틀담 성당에서는 미사를 참석하러 왔음을 알리고 통제구역 안으로 들어갔는데, 빈에서는 대중들과 함께 왔기에 혼자 장시간 미사에 참석할 수 없었다. 결국 차단막 밖에서 망원 줌으로 몇 컷 찍는 것으로 만족하기로 했다.
입체감이 분명한 좌우의 벽면과 기둥을 보며 감탄하면서 렌즈를 제단으로 향하니, 화려한 스테인드글라스(stained glass)로 좌우를 장엄한 가운데 금빛의 제단이 아련했다. 이미 여러 성당에서 본 적이 있는 떠 있는 십자가의 예수님상이 제단의 상당부분을 가렸다.
줌을 최대로 당겼더니 제단 앞에서 의식을 진행하고 있었는데, 손에 들고 흔드는 향로의 연기가 자욱하여 제단을 더욱 신비롭게 만들고 있었다. 그동안 유럽의 많은 성당을 참배하면서 미사에 참석하는 신자가 적은 것을 안타까워했는데, 성 스테판 성당을 가득 채운 신자들을 보면서 비로소 그 안타까움을 놓을 수 있었다.
기다릴 대중들을 생각하며 돌아서는데, 정문 위의 파이프오르간이 장엄하게 날개를 펼치고 있었다. 시간만 넉넉하다면 저 파이프의 연주를 들을 수 있으련만, 사진 촬영만으로 만족해야한 했다.
성당의 전체 모양을 촬영하는데 무언가 이상한 점이 보였다. 성당의 후면 남쪽은 높다란 첨탑이었는데, 북쪽은 첨탑이 없었던 것이다. 가이드 김선생에게 그 연유를 물었더니, 다음과 같은 설명을 했다. “옛날에는 권력의 상징으로 왕이나 백작 또는 대주교 등이 경쟁처럼 웅장한 성당을 지었습니다. 그러다가 권력을 잃게 되거나 재력이 뒷받침 되지 않으면 멈추었다가 다시 건축하기를 되풀이하기도 했습니다. 이 성당의 경우도 북쪽 첨탑을 지을 수가 없어서 방치하다가 좀 다른 방식으로 마감해 버린 것입니다.”
여행을 하다보면 자신의 버릇이나 고집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이가 있다. 그러나 혼자가 아닌 대중들이 함께 움직일 때는 개인적인 바람마저도 버려야 할 때가 많다. 그래야만 대중이 편하기 때문이다. 어디 여행뿐이겠는가. 한 가정도 그러하고 사회도 그러하며 국가도 그렇지 않겠는가.
▣사진 – (01)쇤브룬을 나와 호텔로 향하며 본 빈의 오후. (02)르네상스(Renaissance) 호텔 2층에 있는 로비의 일부분. (03)빈의 중심가에서 일요일을 즐기는 카페의 시민들. (04)살짝 뒷골목으로 돌아가니 승용차와 마차가 도로를 공유하고 있었다. (05)‘성 스테판 성당(St. Stephen's Cathedral)은 빈의 중심부에 마치 빈의 중심축처럼 굳건히 서 있었다. (06)광장이 넓었지만 앞의 건물 그림자가 이미 서향의 정문 하단을 가리고 있었다. (07)미사가 진행되고 있는 성당 내부는 관광객이 안쪽으로 들어가는 것을 차단하고 있었다. (08)입체감이 분명한 기둥의 조각. (09)화려한 스테인드글라스(stained glass)로 좌우를 장엄한 가운데 금빛의 제단이 아련하다. (10)공중에 떠 있는 십자가의 예수님상이 제단을 많이 가렸다. (11)손에 들고 흔드는 향로의 연기가 자욱하여 제단을 더욱 신비롭게 만들고 있다. (12)정문 위의 파이프오르간이 장엄하게 날개를 펼치고 있다. (13)성당 후면 남쪽의 높다란 첨탑. (14)성당 후면 북쪽의 첨탑은 중간에서 마감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