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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 장 아버지와 아들
1
살을 간지르는 미풍(微風)이 대륙 최남단 광동성(廣東省)에 불고 있다.
광동성 서남부에 위치한 뇌주반도(雷州半島)의 한 해안가에도 미풍은 스쳐 가고 있었다.
결이 고운 바닷가 모래사장.
그 하얀 모래 위로 바다 특유의 뜨거운 햇볕이 내리 쪼였다.
잔잔한 파도가 모래사장에 부딪쳐 하얗고 자그마한 포말(泡沫)을 일으키며 바다 소리를 내고 있다.
"하하핫! 황아(凰娥)야, 넌 아직 멀었다."
"해린(海麟)오빠 거기 서! 내가 못 잡을 줄 알고?"
맑고 치기 어린 목소리들이 바다에 울려 퍼졌다.
촤촤촤……!
두 개의 작은 인영(人影)이 물살을 가르며 쫓고 쫓기고 있었다.
앞서 가는 이는 열 살 정도의 사내애였고, 그를 뒤쫓는 이는 여덟 살 가량의 여아였다.
둘 다 또렷한 이목구비를 지니고 있었는데, 조금 평범한 얼굴을 지닌 사내아이에 비해 여아의 얼굴은 천상(天上)의 소녀 마냥 예뻤다.
하나 평범한 얼굴의 사내아이를 자세히 본다면 그 평범함 속에 감추어진 비범함과 신비한 기운을 엿볼 수 있을 것이다.
쫓고 쫓기는 소년소녀.
그들은 용해린(龍海麟)과 담황아(譚凰娥)라는 이름을 지녔다.
물속에서 움직이는 그들의 움직임은 쾌속(快速)했다.
한 쌍의 돌고래가 거침없이 물속을 헤집는 듯한 그들의 재빠른 몸놀림은 수공(水功)을 익힌 무림의 절정 고수들의 그것처럼 빨랐다.
그 작은 몸들에 상당한 내력과 무공이 담겨 있음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었다.
"하핫! 황아야, 포기해라."
"흥, 포기 못해. 꼭 잡아서 오빠에게서 무공을 얻어내고 말 거야."
담황아는 입김을 뿜으며 더욱 속도를 가했다.
한 마리 물 찬 제비처럼 그녀의 몸놀림이 빨라졌다.
두 소년소녀가 만나면 매일 하는 일 중의 하나였다.
담황아는 항상 용해린에게 무공을 가르쳐 달라 매달렸고, 용해린은 그런 그녀에게 자신을 잡는다면 무공을 가르쳐 준다고 했다.
무림인들이 알면 기절할 일이었지만, 용해린의 머리에는 무려 오백 종(五百種)이 넘는 무공이 담겨 있었다. 또한 그 무공을 모두 펼칠 수가 있다.
그가 그렇게 많은 무공을 알고 있는 것은 그의 가문(家門)의 비밀에서 비롯된다.
담황아는 용해린이 그렇게 많은 유(類)의 무공을 익히고 있음을 아는 몇 되지 않는 사람 중 한 명이었다.
용해린을 죽어라 추적하는 담황아였지만 그녀가 아무리 속도를 더해도 그와의 거리는 좁혀지지 않았다.
용해린과의 거리는 항상 일정한 간격을 유지할 뿐이었다.
"이익, 못 참겠다!"
약이 오른 담황아가 돌연 쌍장(雙掌)을 내뻗어 연속 칠팔 장(掌)을 후려갈겼다.
파팡! 파파팡―!
그녀의 손짓에 바닷물이 사방으로 비산했다. 여덟 살 어린 소녀가 휘두른 손바람에 바닷물이 분탕질 쳤다.
고도의 내가장력(內家掌力)으로 파괴력도 있었지만 놀라운 사실은 그 수법이다.
무림에서 실전(失傳)된 중원 방파의 이름난 장력들이 어린 소녀의 손에서 펼쳐졌다. 중원의 뭇 고수들이 보았다면 경악할 일이었다.
담황아가 내뻗은 수십 장의 장력은 간발의 차이로 용해린의 신형을 벗어나 버렸다. 용해린이 살짝살짝 몸을 비틀 때마다 담황아의 장력이 비껴갔던 것이다.
"하핫! 그런 손짓엔 굼벵이도 맞지 않겠다."
요리조리 담황아의 장력을 피하며 용해린의 입가에는 부드러운 미소가 맺혔다. 사위가 분탕질치는 데도 아주 여유로운 미소였다.
바닷물이 거센 회오리를 피어 올리며 거세게 요동쳤다.
멀찍이 떨어져 있는 해안가의 돌출된 암벽(岩壁) 위.
삼십대의 장한과 육십 대의 노인이 서서 두 아이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들은 평범한 인물들이 아니었다.
삼십대 장한의 전신에서 뿜어지는 노을 같은 패기(覇氣), 그 앞에서라면 태산이라도 무너질 것 같이 느껴졌다.
잠자고 있는 태풍 같은 가공할 패기를 지닌 인물이었다.
천패대공(天覇大公) 용잠(龍潛).
이것이 그의 신분이었다.
오직 일맥(一脈)으로만 전해 내려오는 천패문(天覇門)의 이십 구대(二十九代) 문주가 바로 그였다.
천패문은 천 년이 흐르는 유구한 세월 동안 고금제일패(古今第一覇)의 자리를 지켜 왔다.
그들의 목적은 오직 하나. 핏빛 선혈로 천하를 혈세(血洗)하려는 악마의 세력 혈마천(血魔天)을 무너뜨리는 것이다.
천패대공 용잠의 무심한 시선은 바다를 주시하고 있었다.
그의 옆에 선 노인도 평범한 인물은 아니었다.
물이 흐르는 듯한 기운이 전신에서 흐르는 노인, 기이하게도 그의 주위에서는 약향(藥香)이 진동했다.
창해약선(蒼海藥仙) 담대우(譚大宇).
대해제일(大海第一)의 무역단체(貿易團體)를 들라면 누구나 당연히 창랑상회(滄浪商會)를 으뜸으로 친다.
뇌주반도에 근거지를 둔 대해제일(大海第一)의 무역 단체 창랑상회(滄浪商會)의 회주(會主)가 바로 그였다.
또한 그 가지고 있는 의도(醫道)가 깊어 천하이대신의(天下二大神醫) 중의 한 명으로도 불리는 담대우는 신비에 가려진 천패문의 몇 되지 않는 지기(知己)였다.
천패대공 용잠과 창해약선 담대우.
두 사람은 부드러운 시선으로 바다에서 노는 아이들을 지켜보고 있었다.
용해린이라는 소년은 천패대공 용잠의 아들이었으며 다음 대의 천패문주이기도 했다.
담황아는 담대우의 손녀(孫女)였다.
아이들을 바라보는 그들의 입가에는 흐뭇한 미소가 어려 있었다.
2
침묵을 깨고 먼저 입을 연 것은 담대우였다.
"작별(作別)의 말 정도는…… 하고 가는 것이 어떤가?"
부드러움이 담긴 담대우의 물음에 용잠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대로 그냥 가겠습니다."
"음……!"
담대우의 얼굴이 조금 굳어졌다.
그는 용잠이 아주 먼 길을 가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천하를 암흑에 빠뜨릴 혈마천이 또다시 움직이려 한다. 천패문의 패력만이 혈마천을 막을 수 있다.
혈마천은 당세에도 그 악마의 이빨을 내밀려 하고 있었다.
그런 혈마천의 도발을 천패문의 제 이십 구 대 문주 용잠이 막아야만 했다.
혈마천의 주력인 천 명의 혈왕마인(血王魔人).
하나같이 가공할 마공(魔功)을 익힌 천 명의 마인들을 용잠은 홀로 상대해야만 했다.
누구도 도와 줄 수 없고 간섭할 수 없다. 오직 천패의 무공만이 그들을 쓰러뜨릴 수 있기 때문이다.
'혈마천은 과거의 그들이 아니다.'
천패대공 용잠의 얼굴에 일순 그늘이 졌다 사라졌다.
역대 천패문주 중 개파조사 다음으로 무공이 강한 용잠이다.
하나 그런 자신의 힘으로도 혈마천을 완전히 뿌리 뽑을 수 없음을 그는 누구보다도 잘 알았다.
혈마천은 과거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가공할 힘을 축적해 왔기 때문이다.
천 년의 대립은 그만큼 상대를 키워 놨던 것이다.
그러나 천패문주 용잠은 아무런 걱정을 하지 않았다.
'혈마천이 과거와 비교할 수 없는 힘을 키워 왔기에 그들을 완전 섬멸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그것은 나의 얘기일 뿐이다.'
용잠의 시선이 강렬해졌다.
그의 시선은 바다에서 놀고 있는 자신의 아들 용해린을 주시했다.
'천왕신체(天王神體)…… 해린이는 본문의 조사(祖師)님과 똑같은 신체를 타고 났다.'
용잠은 내심 미소를 짓고 있었다.
'대대로 본문의 역대 문주들은 패도무공을 익히기에 가장 좋다는 철왕지체(鐵王之體)를 타고 난다. 그런데도 본문의 무공을 완벽히 익힐 수 없었다. 본문의 무공을 완벽히 익힌다면 혈마천이 아무리 강해도 그들을 무너뜨릴 수 있다. 철왕지체보다 십 배는 더 뛰어난 천왕신체를 타고난 자라면 본문의 무공을 완벽히 익힐 수 있다. 천왕신체인 해린이로 인해 혈마천과의 천년전쟁(千年戰爭)은 종식을 고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했다. 자신의 아들이 완전하게 성장할 시간이.
허나 혈마천은 당장 천 명의 혈왕마인을 앞세워 중원으로 들어오려 하고 있었다.
'혈왕마인을 잠재운다면 십 년의 시간은 충분히 벌 수 있으리라.'
용잠이 혈마천주(血魔天主)를 상대하지 않고 오직 천 명의 혈왕마인만을 쓰러뜨릴 계획을 한 것은 바로 그 이유 때문이다.
아들의 능력을 누구보다도 잘 아는 용잠이기에 혈마천과의 건곤일척(乾坤一擲)의 승부는 아들에게 맡길 작정을 한 그였다.
지금 용잠이 떠나가면 그는 십년(十年) 후에나 돌아올 것이다.
호랑이가 자신의 새끼를 벼랑 밑으로 던져 금수의 왕으로 키우듯 그는 십 년이라는 세월 동안 아들 곁을 떠나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하러 떠날 예정이다.
아들에 대한 모든 것에 절대적 믿음과 정을 끊는 단호함이 없다면 도저히 실행할 일이 아니었다.
이대로 그냥 몸을 돌리면 십 년이란 기나긴 세월 동안 두 부자(父子)는 만나지 못할 것이다.
헌데 인사도 없이 어린 아들을 두고 떠나려는 용잠의 얼굴은 담담하기만 했다. 대부분의 아버지가 가졌음직한 슬픔 따위 같은 것이 전혀 나타나 있지 않았다.
그러나 담담한 표정의 용잠을 바라보는 담대우의 얼굴에는 안타까움이 어려 있었다.
그는 느낄 수 있었다. 용잠의 저 담담함 속에 감춰진 가슴이 찢어지는 듯한 진하고 애잔한 부정(父情)을. 하나 용잠은 담담한 표정뿐이었다.
담대우의 시선이 바다로 향했다.
용해린과 담황아는 여전히 쫓고 쫓기며 뛰놀고 있었다.
용해린은 자신의 아버지가 머나먼 곳으로 떠난다는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담황아와 노는 데 정신이 팔려 있었다.
담대우의 눈가에 애처로움이 스쳤다.
'허어, 녀석! 얼마나 가슴이 아플 것인고…….'
담대우는 안다.
용해린이 자신의 아버지가 지금 먼 길을 떠날 것이고, 십 년 안에는 절대 돌아오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음을 말이다.
하나 그것을 알면서도 용해린은 아무 것도 모르는 양 즐겁게 뛰놀고 있었다.
열 살의 어린 나이였지만 용해린은 어떻게 해야 아버지가 편안히 떠날 수 있는지를 알고 있기 때문이다.
―떠날 때는 말없이.
그런 생각이 어린 용해린의 머리 속에 담겨 있었다.
또한 그것은 아버지 용잠의 생각과도 일치하는 것이다.
'허헛! 아버지도 그렇고 아들도 그렇고 참말로 대단한 부자지간이다.'
담대우는 두 부자의 진정한 내심(內心)들을 잘 알고 있었다.
용잠과는 이십 년을 넘게 친분을 유지해 왔고, 용해린이 태어나고 자라는 것을 지켜봐 왔기 때문이다.
담대우가 그러한 생각에 잠겨 있을 때 용잠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
"해린이의 배필감이나 잊지 마시고 찾아 주십시오."
"걱정 말게. 이래 뵈도 나도 이름 좀 있는 의원이 아닌가?"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염려 마시게나……."
웃음을 끝으로 두 사람 사이에 다시 침묵이 흘렀다.
해가 하늘 중앙에 걸려 있다. 저 해가 방향을 틀 때 용잠은 떠날 것이다.
물에서 놀던 용해린과 담황아는 어느 새 하나의 거선에 다가가 있었다.
용해린의 신형이 미끄러지듯 바다에 떠 있는 거선(巨船)으로 향했다. 그 배는 창해약선 담대우의 배였다.
용해린을 뒤쫓던 담황아가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
"해린오빠! 어디 가려는 거야?"
"술 먹으러."
용해린이 침을 꿀꺽 삼켰다.
"후훗, 약선(藥仙) 할아버지의 배에 만약정주(萬藥精酒)가 있단 거 다 알아."
"만약정주를……?"
담황아의 두 눈이 동그래졌다.
만약정주란 만여 가지의 약초들을 삭여 만든 최고의 술로써 맛도 일품이지만 내공(內功)을 증진시켜 주고 젊음을 되찾아 준다 하여 창해약선이 꽤나 아끼는 술이었다.
"안 돼! 그건 할아버지가 가장 아끼는 거야."
담황아가 손을 저으며 용해린을 말렸다.
"해린오빠, 그만둬! 걸리면 혼나."
용해린은 담황아를 돌아보며 씨익 웃었다.
"황아야 걱정 마! 약선할아버지는 그걸 너무 아끼기 때문에 죽을 때까지도 만약정주를 드시지 않을 걸? 다 먹고 난 뒤 물로 채워 놓으면 감쪽같이 모르실 거란 말야. 어차피 할아버지는 평생 바라보고만 있을 건데 뭐."
용해린은 한쪽 눈을 감으며 시원하게 미소 지었다.
이어 그는 물 속에 잠겼던 신형을 뽑아 올려 배의 뒤편에 내려섰다. 부력답수(浮力踏水)의 절묘한 신법이었다.
담황아도 어쩔 수 없이 그를 따랐다.
갑판과 달리 선실의 뒤편에는 선원들과 무사들이 없었다.
용해린과 담황아는 살금살금 걸음을 옮겨 선실을 돌아 안으로 들어갔다.
선실 안은 꽤 넓었다.
용해린은 거침없이 선실 벽에 세워진 선반[懸盤]가로 걸어갔다. 선반 위에는 여러 개의 크고 작은 약병들이 놓여 있었고, 그는 그 중에서 한 자 크기의 반투명한 자색(紫色) 옥병을 꺼내었다.
"역시, 향(香) 하나만 해도 끝내 주는구나."
마개를 따 향을 맡던 용해린은 이내 병을 통째 입에 갖다 댔다.
담황아의 커다란 눈이 더욱 커졌다.
"정말 마실 거야?"
그녀가 근심스러운 눈초리로 쳐다볼 때 이미 술은 그의 목젖을 타고 흘러 들어가고 있었다.
"꿀꺽꿀꺽!"
용해린은 맛도 음미하지 않고 그대로 만약정주를 벌컥 들이켰다.
"크윽!"
목이 화끈화끈 타는 듯했다.
용해린이 술병을 입에서 떼고는 입가를 쓰윽 훔쳤다.
짐짓 사내답게 호기를 부렸으나 술은 너무 독했다. 더구나 그의 나이 이제 열 살, 술맛을 알 나이는 아니다.
그럼에도 용해린이 독하디 독한 만약정주를 거칠게 들이킨 것은 자신의 마음을 주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아무리 대범하게 생각하려 해도 천하에 오직 하나 뿐인 가족인 아버지와 십 년 동안 생이별을 해야 함은 열 살의 어린 나이에 감당하기 힘든 일이었다. 그것을 잊기 위해 만약정주를 들이킨 것이다.
어린 나이에 독한 술을 너무도 빨리 들이켜서인지 용해린의 목은 불이 난 듯 타는 듯했고 눈가에는 눈물방울이 맺혔다.
"오빠, 아파?"
용해린의 얼굴이 붉어지고 인상을 잔뜩 쓰자 담황아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용해린을 돌아보았다.
"괜찮아."
그리고는 다시 술을 들이켰다. 술이 들어가자 조금은 위안이 되는 듯했다.
"해린 오빠……."
거침없이 술을 들이키는 용해린을 보며 담황아는 왠지 자신의 가슴이 아려왔다. 무언가 알 수 없는 그 아릿한 아픔에 그녀는 두 손으로 가슴을 꾹 눌렀다.
왜 그런지 이유는 몰랐다.
아마도 용해린의 두 눈빛 속에 담긴 슬픔을 읽었기 때문이리라. 슬픈 눈빛으로 술을 병째 들이마시는 용해린의 모습에서 담황아는 무언지 모를 진한 아픔을 느낀 것이다.
담황아는 그런 용해린을 위로해 주고 싶었다.
그러나 여덟 살의 어린 나이로는 어떻게 해줘야 할지를 알 수 없었다. 생각보다 그녀의 몸이 먼저 움직였다.
"해린 오빠, 나도 줘!"
"뭐, 뭐야?"
담황아는 돌연 용해린의 입에서 술병을 빼앗아 자기 입에 처넣었다. 그녀의 목젖이 울리며 만약정주가 거침없이 삼켜졌다.
"콜록콜록……!"
그녀는 잔기침을 해대었다. 더불어 목 안에서 불이 났다.
생전 처음 술을 마시면서도 한 번에 너무 많은 양의 술을 그대로 목 안으로 넘겼기 때문이다. 그녀는 술병을 입에서 떼었다.
담황아의 얼굴은 홍당무처럼 붉어졌으며 눈가에는 보석 같은 눈물이 그렁했다.
"꺼억! 화아, 불난다 불나!"
취기로 인한 뜨거운 열기에 담황아는 손바닥으로 얼굴에 부채질을 해댔다.
"미련하기는, 이리 내!"
담황아에게서 술병을 챈 용해린이 술병에 남은 술을 마저 마셔 버렸다.
하늘이 빙빙 돌았다. 비로소 취기가 올라왔다.
그래도 기분만은 괜찮았다. 우울했던 기분이 처음보다는 많이 풀어진 듯했다.
용해린은 비척거리는 걸음을 옮겨 선실을 나왔다. 담황아도 그를 따라서 취기로 가누기 힘든 몸을 움직여 그를 따랐다.
얼굴이 벌게져서 나오는 그들을 보며 선원들과 무사들은 두 눈을 크게 뜨며 놀란 표정들이었다.
그런 그들의 표정을 아랑곳하지 않고 용해린은 배 뒤로 갔다.
배 앞쪽에 있으면 아버지의 모습이 보인다. 아버지를 보게 되면 울어 버릴 것 같았기 때문이다.
간신히 배 뒤쪽으로 온 용해린은 갑판 위로 벌렁 드러누웠다.
그런 그의 옆에 담황아도 같이 누웠다.
따가운 햇살이 그들의 얼굴 위로 화사하게 떨어져 내렸다.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용해린은 물 위를 걸어오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단 한 사람만의 물 밟는 소리! 약선 할아버지이신가? 그럼 아버지는…… 떠나셨구나.'
그랬다.
배 앞쪽에서 담대우가 물 위를 걸어오고 있었다. 그는 혼자였다.
천패대공 용잠은 말없이 떠나간 것이었다.
돌연 가눌 수 없는 슬픔이 복받쳐 올랐다.
'이젠…… 나 혼자군.'
그는 비로소 혼자라는 생각이 든 것이다.
용해린은 천천히 일어나 앉았다.
멍하니 고개를 들어 대륙쪽 하늘을 바라보았다.
'저 하늘 아래 어디쯤, 아버지는 가시고 계시겠지.'
울컥!
갑자기 목 부분이 화끈해지며 목이 메였다.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용해린은 그것을 참으려 이빨을 악물었고, 배에 힘을 주며 꾹 참았다.
망연하게 하늘을 보던 그는 이내 자리에서 일어나 걸었다. 힘을 줬던 아랫배가 딴딴한 것이 오줌보가 꽉 찬 느낌이었다.
자신의 모든 감정을 시원하게 분출하고 싶었다.
"해린 오빠, 어디가?"
같이 일어나던 담황아가 취기에 얼굴이 벌개진 채 물었다.
"응, 바다에 물 뿌려 주려고."
한 마디 하고는 용해린이 갑판 옆 난간으로 올라섰다. 그리고는 이내 바지를 내려 자신의 물건을 꺼내었다.
담황아가 바로 뒤에 있는 데도 그는 거침없이 바지를 내린 것이다.
뒤돌아 선 상태라 담황아에게는 그의 물건이 보이지 않았다.
오줌보가 꽉 차서인지 용해린의 물건은 아이답지 않게 단단해져 있었고, 하늘을 향해 고개를 빳빳이 들고 서 있었다.
곧이어 그는 태양을 향해 조준하고는 시원하게 배출했다.
쏴아아아……!
시원한 소리와 함께 그의 오줌 줄기는 힘차게 하늘로 쏘아졌고, 곧 바다로 떨어져 내렸다.
시원했다.
배출과 함께 자신의 가슴을 짓누르는 암울한 기운마저도 빠져나가는 듯했다. 용해린이 바다를 향해 시원한 분출을 하고 있을 때 담황아의 두 눈은 휘둥그레진 상태로 두 눈이 반짝이고 있었다.
용해린 몰래 갑판을 슬금슬금 기던 담황아는 끝내 보고야 말았다.
태양을 향해 솟구쳤다가 떨어지는 찬란한 보석덩이들을.
용해린의 아랫도리 작은 돌기에서 뿜어진 물줄기는 기세 좋게 바다에 뿌려지고 있었다.
'저게…… 남자란 말이지.'
담황아는 신기한 물건을 보는 듯 눈을 반짝였다.
태어나 처음 보는 남자의 물건이었다.
말로만 듣던, 또한 자신에겐 없는 물건이라서 그녀의 눈빛은 더욱 초롱하게 빛났다.
분출은 계속되고 있었다.
"해린오빠, 뭐하고 있어?"
담황아가 불쑥 고개를 내밀며 말했다.
"어……?"
고개를 돌린 용해린의 흐릿한 눈으로 담황아의 시선이 자신의 하체를 보고 있음이 들어왔다. 바지를 추스러야 한다고 생각되었으나 아직 모든 걸 분출하지 못해 중단할 수는 없었다.
그는 오히려 입가에 미소를 피어 올리며 당당하게 대답했다.
"이 대해가 마를까봐 물을 뿌려 주고 있는 거야."
"피, 그런 말이 어딨어."
담황아가 혀를 삐죽 내밀었다.
"봐라, 저 하늘의 뜨거운 태양이 바닷물을 증발시키고 있잖아."
용해린은 여전히 입가에 미소를 짓고서 바다를 가리켰다.
저 멀리 수평선에서는 바닷물이 증발해 구름 위로 올라가는 것이 보였다.
취기가 오른 담황아는 용해린의 말이 맞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달아오르는 취기에 견디지 못하고 갑판 위에 쓰러졌다. 그런 그녀를 한 번 쳐다본 용해린도 이내 바다에 물주는 것을 끝내고는 갑판 난간에서 내려왔다.
그도 이내 갑판 위에 드러누워 버렸다. 그리고는 취기가 올라 그대로 정신을 잃었다.
"허헛. 그래, 이렇게라도 해야 마음이 풀어지겠지."
어느 새 배에 올라온 담대우는 쓰러진 용해린의 얼굴을 보며 안쓰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두 꼬마들이 자신의 만약정주를 마신 것을 알았으나 거기에는 신경 쓰지 않았다. 용해린의 안위만을 생각하는 것이다.
담대우는 고개를 들어 중원쪽 하늘을 향했다.
"용문주! 걱정 마시게나. 해린이는 그 동안 내가 곁에서 잘 돌볼 것이니."
하늘 위로 하나의 뭉게구름만이 중원의 하늘로 흐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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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