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도보방을 따라 전북 부안군 변산국립공원을 다녀왔다.
젊었던 시절
국방색 전투복을 입고 3년간 머물렀던 곳으로
청춘의 야영지 같았던 곳이었기에
그곳으로 가는 동행이나 발걸음이 있다는 냄새만 맡아도
한 가랑이에 양다리 집어넣고 따라나서는 길 중에 하나가 변산국립공원,
아니 정확하게 말해서 변산반도 길이라 하겠다.
1980년 11월 10일. 신군부의 서슬이 추상같던 그 시절에
징집명령을 받고 논산으로 입대하여 보병 104 병과를 부여받고
같은 훈련소 27연대에서 6주간의 전,후반기 교육을 마치면서
당시 유행하던 장발과 히피의 사회적 물기를 완전히 빼내고
바리캉에 밀려 버린 빡빡머리와
햇볕에 그을려 새까만 얼굴에 눈알만 반짝거리던 육군이등병으로
논산훈련소 신병교육을 마치고
입대동기들이 모두 북행열차를 타고 북으로 북으로 이동할 때
대열의 맨 꽁지에서 따블 백 하나를 동지삼아
어디로 팔려갈지 몰라 안절부절하다가
맨 나중에 호송병의 호명에 이끌려
연무대역 밤열차에 올라
남으로 가는 지,
북으로 가는지에
온 신경을 곤두세우고 호송병의 눈치를 봐가면서
몰래 몰래 차창 밖을 응시했던 절망과 희망의 교차점 같았던
이송의 밤
그렇게 군기 바짝 든 이등병을 태운 열차는
헛기침 같은 기적을 내뱉으면서 옆구리에서 흰수증기를 내뿜고는
덜컹거림을 멈추며 긴 한숨같은 기적을 뽑아올리면서
객실 옆구리로 꺼병이 같은 신병 몇몇을 플랫폼에 내려놓았다.
코 끝을 스치는 두 달만의 사회 공기의 신선함을 감지하면서
주위를 둘러보니 이리(현 익산)역이었고,
그제서야 남행열차 타고 논산보다 더 남쪽으로 내려왔음에,
전방이 아닌 후방으로 배속됨을 감각적으로 알아차리고는
심장 쫄깃거리던 밤샘의 경직에서 풀려나 다소 안정을 찾을 수 있었던 순간
호송병의 호루라기 소리가 귓전을 불나게 후려쳤고, 이에 놀란 꺼병이들은
황급히 전재산인 따블백을 짊어지고 1시간여를 더 달려 전주역에 내렸던
윤슬처럼 반짝이며 윤기로 다가서는 그날의 아스라한 기억들은
40년이 지난 지금도 어젯일처럼 또렷하게 기억되는 젊은 날의 초상이다.
전주역에서 다시 보병 제35사단 호송버스에 실려
신병대기반에서 사단 동계훈련이 끝날 때까지
사단 저탄 창고인 연탄 굴에 콧구멍이 새카맣게 타들어가도록 분진을 마셔가며
가루탄을 퍼내어 [당카]라 부르던 2인 1조의 양손잡이 들것에 실어
운밤한 다음 캐내어 온 가루탄에 황토흙과 물을 일정한 비율로 섞어
물컹한 연탄 반죽을 만들어 그것을 난로에 퍼넣고 난방을 하면서
1주일간 광부같은 신병대기를 마치고
사단에서 다시 연대로 팔려 가는데 또 다시 서쪽 군산의 101연대도 아니고
동쪽 지리산 언저리 남원의 103연대도 아닌
남쪽 정읍의 105연대로 팔려갔는데
이런!
여기서는 연대 동계훈련 기간 중이라고 하면서
또 다시 훈련이 끝날 때까지 사단에서와 똑 같은 채탄부 생활을 1주일이나 한 끝에
마지막으로 팔려가 안착한 곳이 부안의 105연대 3대대였었다.
그것으로 유목민의 떠돌이 방랑 같은 시간이 끝나고 안착하는가 싶었는데
대대에서 또 다시 독립중대로 팔려가 최종적으로 안착한 곳이
바로 이 도보방에서 답사차 찾아나선
전라북도 부안군 변산면 격포리 채석강과 적벽강 사이에 있는
해안포 9중대였었다.
그곳에 최종적으로 안착하여
밤에는 해안경계근무 매복에 투입되고
낮에는 낮잠과 훈련을 병행하는 도깨비 생활을 3년 가까이 하다가
1983년 6월
탁란해 놓은 알의 부화를 기다리면서 자기가 어미라고
울어대던 뻐꾸기 소리와
무논에서 짝을 찾아 울어대던 개구리 울음소리가
보릿대궁 태우는 연기 냄새에 자지러질 무렵
전역을 명받고 집으로 되돌아오기까지의
그 길고 길었던 절망과 희망의 교차로에서
벗어난 기억으로 아롱지거나 혹은 점철된 공간,
그 공간으로의 시간 여행은 언제나
암울하면서도 가장 가슴 두근거리던 청춘의 기간으로
되돌아가는 것 같기에
본능처럼 이끌려 그곳으로 가게 되는데
이번 여행도 나에겐 그 추억을 소환하는 값진
경험이었기에 더 할 나위 없이 좋았다.
둘러봐야 할 곳은
최초 송포항 샤스타데이지 군락지→격포 채석강→모항 외계인 바위→능가산 내소사였는데
새만금 개발 사업으로 인해 송포항 샤스타데이지에 조성되었던 부안 마실길 일부 구간이
통제되었다는 보도가 있었으므로 송포항 대신 변산경찰수련원앞 샤스타데이지를 대타로 끼워놓고
잠정적으로 채석강-샤스타데이지밭-외계인바위-내소사로 동선이 깔렸는데
네비에만 의존한 관광버스 운전사는
호남고속국도를 타고 고창에서 서해안 고속국도로 접어들어
부안으로 향하는 게 아닌가.
그렇다면 줄포 나들목에서 내리는 게 되므로
황급히 답사코스를 앞서 설계한 위 코스를 역으로 진행한다는
안내를 받게되었는데 안내가 끝나 고창휴게소에서 잠시 쉬었다가
다시 북진하더니 줄포나들목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부안나들목에서 빠져 30번 국도를 타고
변산반도를 반 시계방향으로 도는 것이었고,
그렇게 되면 또 다시 동선이 안내받은 동선의 역순이 됨을 인지한 끝에
어찌어찌하여 격포 해수욕장에 내렸다.
화장실을 다녀오는 등 대략적인 중간 정비를 마치고 사구를 넘어서니
이번엔 바닷물이 만조기라 채석강의 대부분이 물에 잠겨 있어 채석강으로의
접근 자체가 불능인 상태인 게 아닌가.
그리하여 채석강 대신 수성당, 적벽강 코스를 답사하게 되었는데
수성당 주변에 가꿔놓은 유채꽃과 코스모스밭, 그리고
수성당 부근의 대밭 등이 좋았고,
물이 들어찬 적벽강의 원경은 적벽강 밑을 흐르는 바닷물 너머로
세계에서 가장 긴 길이를 자랑하는
44km의 새만금 방조제와
그 방조제 덕에 선유대교로 육지와 연결된 고군산군도의 섬들이
꽃밭과 해안단구의 배경으로 얼굴을 내밀면서 멋드러진 그림을 그려내고 있었다.
그렇게 그려진 그림을 배경으로 꽃밭에서 혹은 해안단구 위 난간에서
그 풍광의 일부가 된 사람들이 만들어 낸 또 다른 풍경을 그림으로 그리다가
점심을 먹기 위해 채석강으로 돌아와 보니
조금전까지만 해도 채석강 코밑에서 출렁거리던 바닷물들이 저 만치 밀려나
채석강 바위의 맨얼굴이 드러나고 있었으므로
빠른 속도로 음식물을 위 속으로 밀어넣은 후
채석강 답사에 나서 채석강 답사의 백미인 해식동굴까지도
눈에 넣어 아프지 않을 만큼의 매력을 체험하고 나서야 비로소 격포를 출발해
샤스타데이지꽃밭에 다다를 수 있었다.
샤스타데이지야 어디 가나 지천이고
이미 거창창포원에서, 함안강나루생태공원, 함안악양생태공원 등지에서
수없이 많이 봐 왔지만
굳이 이곳의 그 꽃을 봐야하는 이유는 그 배경이 되어 주는 바다 때문이었을 것이다.
뒤로 바다가 배경이 되어 주고 그 바다 한가운데 그림처럼 떠 있는 위도가
콧구멍만 물밖으로 내민 물개같은 형상으로
육지를 넘보고 있었기에 더욱 아름다운 그림이 그려지는 그런 이유였을 것이다.
샤스타데이지 밭을 벗어나 모항 외계인바위로의 이동은 접고
곧바로 능가산 내소사 주차장에 내려 전나무 숲길을
구도자의 마음으로 훑고 더듬으며 내소사 경내로 접어들었다.
전남 고흥 팔영산 밑에는 능가사가 있고,
전북 부안에는 능가산 밑에 내소사가 있다.
언듯 비슷한 두 절과 산의 이름이 오버랩되면서
서기 660년 백제를 멸하기 위해 결성된
나당연합군의 당나라 군대 장수 소정방이
온 곳(래소)이라는 전설에 절 이름이 유래되었다는 전설이
진실처럼 굳어 현재의 절이름이 되었다.
사찰 경내로 들어서자 때마침 비스듬히 누운 태양의 일사각으로 인해
경내의 청단풍을 비롯한 느티나무 등이
연두연두하면서 햇살을 튕겨내고 있었는데
튕겨나가지 못하고 투과된 빛 뒤에서 역광으로 바라본
연둣빛 세상은 또다른 황홀경을 선물처럼 내어주고 있었고,
거기에 묻힌 사람들은 대웅전 꽃무늬창살을 배경으로,
또는 능가산을 배경으로,
혹은 절집 처마 끝에 매달린 풍경을 배경으로, 각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절집을 배회하다가 돌아오니
비로소 하루 일정이 마무리된다.
모든 일정이 소화된 지금 누군가가 내게 굳이 아쉬운 점 하나를 꽂으라고 한다면
내소사 가는 길인 일주문에서 경내까지 이어지는 전나무길에
전나무보다 키 작은 잡목들이 밀고 들어와 전나무만이 주는 간결미가 전혀 없었음이었다.
전나무 숲길의 간결미와 정려미를 완상하려면 이제 내소사가 아니라
강원도 평창 오대산 선재길을 가야만 그런 풍경을 오롯이 즐길 수 있게 되었다.
내소사 전나무 숲길의 관리주체가 변산국립공원이 됐든
내소사가 됐든 누구든 빨리 나서서 전나무숲길 정비 좀 해줬으면 좋겠다.
내소사 일주문을 나오면 일주문에서 주차장까지 비교적 짧은 구간에 형성된 사하촌에서는
부안의 특산물인 뽕과 오디에서 추출된 각종 부산물 및 농수산 가공물을 팔고 있었는데
그 중에서 일행이 사준 뽕나무 열매인 오디 주스는 생애 잊지 못할 감미로운 맛으로
입안을 적셔왔고, 그 향과 맛은 집에 도착할 때까지 입안에서 맴도는 듯했으며
그런 오디 쥬스의 진한 맛과 향처럼
40년전의 기억을 소환하면서 청춘으로의 회귀를 꿈꿀 수 있도록 이끌어 준
이 도보방에 깊은 감사를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