캠핑 가자! 좋다!!!
7월31일(금) 오후 다음날 토요일 오전에 잡힌 약속이 취소가 된다.
잘 됐다 싶어 김관길에게 전화 하여 내일 10시에 우리들이 잘
가는
Muir 공원에서 만나기로 약속 하고 가만히 생각 하니 이왕이면
하룻만 자고 오는 캠핑도 좋을듯 싶어 다시 전화하여
"너 일요일도 괜찮으면 우리 렉타호로 캠핑 갈까?"
"좋지~" 시원스럽게 대답한다.
"지금 서울서 딸네집에 다닐려 온 집사람 대학 친구가 있는데 가겠다면 같이 가도될까? "
"좋다."
일단 허락을 받고 대학시절 함께 어울려서 여행 다녔다는
집사람 친구을 금요일 저녁때 집으로 데리고 와서 다음날 관길내
동네에서
만나 5명이 아름다운 Lake Tahoe로 향했다.
관길이가 준 워키토키로 서로 앞차,뒷차가 연락 하며 가는데 어린아이가 따로들 없다.
내가 단골로 가는 캠핑장에 진을 치고 근처에 있는 야외
온천장에서
하루의 피로를 풀고 각집에서 준비해온 불고기,반찬, 시원한
맥주로
근사한 저녁을 하며 살살 부는 시원한 산속의 공기에 취하기도
한다.
몸이 취하는것이 아니라 마음들이 취하여 웃음이 입가에서 떠나질
않는다.
다음날 8월2일 해발 2,356M 되는곳에 주차하고 산을 오르기 시작
한다.
어제 북쪽에서 난 산불로 시야가 흐린것과 다르게 오늘은 청명하기 그지
없다.
뒤에 보이는 봉우리가 Round Top 3,000m 가
넘는다.
사실 이곳 등반길을은 험하지 않지만 고도로 힘이 든다.
그것들도 아직은 못 느끼고 즐거운 표정들.
사진 가운데 보이는 눈 있는곳에 내가 보가 원한는 야생화들이
있다.
삼사십분 후에 만나는 Frog Lake.
언제나 이곳에는 항상 멋진 구름이 있다.
흐르다가 경치에 반하여 쉬여 가는 모양이다.
우리도 과일로 갈증을 달래면서 쉬기로 했다.
다른 호수가 눈 아래 펼처진다. Caples
Lake.
꽃잎들을 날씬하게 하늘로 치켜 올린 Columbine
사진 찍기 위하여 무릅을 끓고 숨을 잠시 멈춘후 일어 나기가
힘이든다.
고도가 높아서 다른곳과 다른 점이다.
힘들어서 삼발이를 차에 두고 왔는데 후회했다.
한국 음지에도 많다. 스컹크 배추라 부른다.
스컹크배추,갈색과 노랑이 썩인 페인트 부라쉬,보라색
루파인이 멋지게 어울려 있다.
예쁜 보라색의 Larkspur
내가 이곳을 8월에 찾는 이유가 바로
야생화가 많이 있기에...
여름은 없고 7월20일 8월말이 봄
기운에 해당 된다.
곧 눈이 내리고 이 식물들은 눈
속에서 10개월을 지내야 한다.
자연 정원.
위니묵카 호수 (Winnemucca 는 개척 시절 백인을 도운 인디안 처녀 이름)
백두산에도 있는 가솔송. (Pink
Mountain Heather) 꽃이 많이 시들었다.
멸종 위기에 처한 푸른 나비.
운수 좋게 만났다.
내가 좋아 하는 White Heather.
은방울 꽃 닮았다.
꽃이 예뻐서 그런지 미국 여자 이름에 해더(Heather)가
많다.
"아~ Heather다!" 하며 반기는 나를 보고 서정완이
"여자 이름 그 해더?' 하며
개량종 정원에 심는 해더를 인터냇을 통하여 여러번 심어 보았으나 매년 실패 했다고
한다.
무슨 꽃이지? 뭐 이름이 중요한가? 예쁘면
최고지.
Primerose. 옆에는 아직도 눈이 쌓여 있다.
가솔송,Heather, Primerose 는 찾아 오기도 힘든 고도 3,000M에 있다.
숨을 몰아 쉬면서 금년도에도 찾아 보곤 " 잘 있었냐 ?"한다.
처음 이곳을 찾은 관길,정완부부도 정말 멋진 등산 코스라고들 좋아하여
안내한 나로써도 기분이 좋다.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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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모임은 가든에서
8월 모임을 김정수네서 주관 했다.
모처럼 함께 등반도 하고 식당 보다는 쾌적한 공기도
마시면서 즉석구이 BBQ를 즐기기로 하고 2시 약속시간
10여분전에 도착하니 상혁이 먼저 와 있고 정각 두시에
김관길내외가 손명혜,미세스 김홍철과 같은 차로 왔다.
오늘도 김기사(관길)가 수고 한다.
여자 3명 태우고 다니기 힘들텐데 군소리 한마디 안한다.
나도 전에 해 봤는데 여자 3명 태우고는 길을 놓쳐 혼났다.
그 분들 말이 "여자가 많으니 정신을 못 차리네"하며 놀리더라.
새로히 단장한 정수네 앞마당.
일본식 정원으로 한결 마당이 넓어 보이고 산뜻해 보인다.
가까운 곳 소위 정수가 말하는 "우리집 뒷동산"으로 갔다.
레드우드가 하늘을 가리고, 뒷동산 치고는 너무 큰산이다.
오른쪽 부터 남상혁,김관길,손명혜,김정수,박순영,서정완,미쎄스김홍철 그리고 홍경삼
오르막길은 가파르다.
정완이가 명혜를 가르키며
"중일때는 내 앞에 앉더니 중이땐 내 바로 뒷줄 중삼때는 아주 먼 뒷줄로...
그리고 복도에서 말 타기 선수였어, "
물이 차고 맑아서 도롱룡이 물 속에서 움직이는것이 보인다.
상혁,경삼,관길...
정수남편은 BBQ 불 피고 가든파티 준비 하느라 집에 있었다.
약 3.5Km 걷고 등산 했다고 폼들 잡고 마무리 사진.
빙 들러 앉아서 우선 시장기를 달랜다.
해가 산마루에 걸치니 더위는 물러가고 더 이상 바랄 것 없는 온도로 변한다.
친구들이 있고 술이 있고 좋아 하는 불고기,삼겹살, 꽁치구이가 있으니 무엇을
더 바라리요?
주위를 살피니 배가 주렁주렁...
사과도...감,레몬,라임도
"야~ 이집 과수들 안주인 닮아서 열매도 잘 맺는다." 정수는 아들만 셋.
정수는 불고기 재고 총각김치 담그는라 수고를 해서 그런지
오늘 서브는 전부 남편 몫이다. 굽고 나르고...
"자~ 오늘 이 술 먹자."
병안에 용이 승천을 하는 모습이 정교하게 있다.
고량주로 무척 좋은 (고가) 술이라고 한다.
사돈양반이 처음 자기 집에 올 때 가지고 온 것인데 먹을 기회가 없었다고
.
정수 남편 김근창이 퀴즈를 냈다.
아랍부호가 아들 3명에게 유언을 했다.
17마리의 낙타를 큰아들은 1/2 둘째는 1/3, 막내는 1/9를 갖어라.
도저히 나눌 수가 없었다. 그런데 현자가 나타나서 해답을 주었다. 어떻게???
답은 맨 아래에 있음.
사실 오늘 축하주를 마실 사람은 바로 손명혜다.
어제 8월15일 첫 손자를 보았다.
즉 아들이 3살된 딸이 있는데 두번째 아이로 아들을 순산했다고 한다.
술 대신 보리차로...
안사돈이 딸 해산을 돕기 위하여 와 있기에 명혜는 2주전에 미리
아들네 집을 다녀 왔단다.
친구의 경사는 우리 모두의 경사인지라 마음이 더욱 즐겁구나.
어둠이 깃드니 냉기를 느껴 얇은 잠바들을 입고 반짝이는 별들을 바라보며
옛얘기로 젊은 시절로 돌아들 간다.
거실로 장소를 옮겨 웃고 지나는 사이 시계는 자정을 가르친다.
" 헤여저야 하잖아?" 아쉽다. 허나 어찌 할 것인가?
다음은 홍철이네서 모이기로 하고...
*** 낙타 답.
내가 한마리를 너희들에게 주마. 그리고 유언대로 나눠 갖어라.
큰아들 9마리(1/2) 둘째가 6마리(1/3) 막내가 2마리(1/9) 모두 17마리.
그리고 나눈 후 주었던 한마리를 현자가 다시 가저 간다.
8월 200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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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재밋다.
김관길에게 금요일(8/7일) 저녁때 김관길에게 일요일 별일 없으면
등산 가자고 이-메일을 보내고 기다리고 있는데 집사람이 오더니
"관길씨가 전화 했어요?" 한다.
"아직, 일요일 등산 가자고 했으니 연락 올거야."
"아니, 내일 가기로 정완언니하고 벌써 약속 했는데요."
"뭐? 난 일요일 가려고 했는데."
"지금 관길씨가 집에 없어 확정되지 않았지만 명혜언니
한데도
연락해서 같이 가기로..."
십분 후 내일 10시 뮤어 공원에서 만나기로 했다며 좋아 한다.
일주일전에도 관길내외와 소위 말하는 번개띵으로 캠핑을
다녀 왔는데 또 이렇게 쉽게 손발이 착착 맞아 이루워 진다.
여행,산행은 이렇게 훌쩍 떠나는 것이다.
아름다운 금문교.
오늘은 그 모습을 다 보여 주지를 않고 살짝 일부분만...
그래서 더 아름답게 느껴지고 여운을 남긴다.
한바퀴 돌아서 내려 오는 거리가 7-8마일(12Km) 6시간 정도로
우리 체력상 가장 알맞다.
옻나무들이 가끔 있어 몸에 달까봐 조심스럽게 걷는다.
특히 옻에 약한 집사람에게 주의를 준다.
8월에 잎이 붉게 물들면서 독기운을 발한다.
이틀 후 집사람은 괞찬은데 내 팔뚝에 붉은 점이 두개가 생겨
소독하고 약을 발렸으나 가려워 참기가 정말 힘들다.
다른 사람들 괞찬았으면 좋겠다.
이곳은 준국립공원으로 지정될 만큼 레드우드가 잘 보존되여 있다.
상항에서 30분거리에 이런 숲이 있어 계곡의 등산로는 항상 사람이
넘쳐 흐른다. 대개가 관광객들이고 우리 처럼 등산을 즐기는 사람은
10% 정도 될까?
이런 나무숲을 걷기에 산림욕도 하며 건강을 챙긴다.
명혜가 준비해온 샌드위치로 요기들 하고 이세상 부러울것이 없는
우리들의 모습.
헤여지기 섭섭한지 관길이가 상항시내 짜장면 잘하는 중국집을 알아 두웠다며
가자 한다.
싫어 할 사람이 있을까?
짜장면 먹고 물만두,오향정육,찐만두... 왜 이리 많이 주문 했는지...
실컷 먹고 남어지 싸가지고 돌아 오며
"매일 오늘만 같아라."한다.
집사람 "집에가도 저녁 걱정 없어 좋다. 다음 일요일 또 만나잖아!"
"그래..." 부고 나옴을 자랑스럽게 느끼며 대답 한다.
동부에 사는 명혜는 올때 마다 우리들과 항상 함께 등산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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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손녀에게 한수 배우다.
로스앤젤래스에 살고 있는 큰아들 집을 3개월만에 방문을 했다.
초인종을 누르니 할아버지,할머니 오셨다면 시끄럽게 떠드는 소리가
먼저 우리를 반기며 문이 열리더니 손주들이 방방 뛰면서 손을 벌린다.
7살짜리 손녀는 크다고 동생들 뒤에 서 있고 5살짜리 손녀는 할아버지에게
안기고 3살짜리 손자는 할머니 품에 안긴다.
5달 된 손자는 부억에서 군만두 만들고 있는 엄마 등에 엎혀 있고...
이렇게 귀여운 녀석들을 3개월만에 만나니 차례로 품에 안고 싶어서
이놈 저놈을 안아 본다. 그리움이 반가움, 환희로 바뀐다
벽에 제법 큰 종이에 힘 차게 오색의 2cm 정도의 큰 선이 6개가 나란히 그려진
그림이 걸려 있다. 그리고 그 밑에 크리스타 홍 이라고 손녀 이름이 적혀 있다.
학교 선생님이 나름대로 검은 종이와 투명한 프라스틱으로 후레임을 만들어
학교에 전시 되였던 것인가 보다.
이 그림을 보는 순간 대담한 붓질이다. 아니 이럴 수가....
덧질이라고 하나도 없이 단번에 훌겨 친 굻은 선들인데 놀랍다.
멍하니 쳐다만 보고 있는데
"할아버지 내가 그렸어요, 이리 오세요."하며 손을 잡고
자기 방으로 데리고 들어 가서 위 그림을 가리킨다.
"이것도 내가 그린거에요."
화려 하면서 색상이 곱고 밝다.
"무엇을 그린거냐?"
"산,강물,태양,햇빛,나비,꽃이에요."
"어디가 위고 밑이냐?"
"이렇게 보셔도 되고 이렇게 보아도 되고 마음대로 보세요."하면서
좌우로 그림의 위치를 돌려서 보여준다.
추상화라는 말도 들어 보지를 못한 어린 나이에 어떻게 이런 말을 할까?
어린아이가 어른의 스승이라는 말이 있는데 바로 지금이 그 상황이다.
붓이 가는대로 색상을 잎혀 손 가는대로 종이 위에 생각 없이 함부로(?)
그린 그림이겠지만 나에겐 너무나 휼륭하게 보인다.
마침 큰아들 줄려고 15호짜리 요세미티의 해프돔을그린 그림을 가지고 내려 갔기에
"할아버지가 그린 멋진 큰 그림 하고 바꾸자."
"음........." 선뜻 대답을 안한다.
見物生心이라 싶어서 나의 오일 페인트를 가지고 들어 와서 보이니
"생각해 보겠어요...." 정중히 거절한다.
나는 이 그림 못 가질까봐 안달이 났는데 집사람은 옆에서 웃기에 바쁘다.
5살짜리 한데 아무리 큰 그림이지만 요세미티 해프돔 그림이 무슨 호감를 유발 시키겠는가?
백설공주,도라등 자기들이 좋아 하는 인물화면 몰라도.
아들 며눌아이가 도와 주고 다음 날 YMCA 수영장에 데리고 가서
수영 연습 열심히 가르쳐 주고 내가 가지고 왔다.
지금은 어울리는 액자속에 소중이 들어가 우리 집
거실 벽에 걸려 있다.
난 이 그림을 보면 마음이 맑아지고 생기가 난다.
난 언제나 이런 그림을 그릴 수 있을까?
그림 그릴때 욕심이 많아서 잘 안된다.
마음을 비우고 그려야 하는데,
5살짜리 손녀한데 그림 그리는 마음을 배운다.
June 10th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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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듯 40년이란 세월이...
흔히 듣는 말 중에 세월은 눈 깜박할 사이에 지나간다
하면
"그런거지~ 뭐~"하는 식으로 흘려 들었는데 두 달 전에
"아니~ 벌써?" 하며 스스로 놀란 적이 있었다.
다름아니 작은아들의 전화를 받고서였다.
"아빠~ 9월 20일 정도 해서 아이들을 한 일주일간만 봐
주시겠어요?
다름 아니라 저희들이 결혼 10주년 기념일이라서 여행 좀
갈려고요...."
"뭐?~~~ 너희가 10주년이면, 아빠엄마는 40주년이
되잖아!!!"
정말 눈 깜박할 사이에 40년이 벌써 흘렀구나.
그저 자식들 자라 결혼하고,손주들 태어나고, 자라는 것 보며 지낸
세월.
"아빠~ 그럼 저희가 다른 분께 부탁해보죠." 하더니 다음 날 우리가 원하는
제안을 한다.
"우리 모두 함께 Mexico 해양도시로 결혼기념여행 가시면
어떨까요?"
9월 21일 오전 San Francisco 공항에서 3시간 반 걸리는 Mexico
Puerto Vallarta로 출발했다.
도착 첫날(9/21) 호델옥상 스시빠에서...
결혼 10주년(9/29일)의 작은
아들 정민 내외.
결혼 40주년(9/23일)의
우리.
아들과 함께 여행하기를 항상 좋아하는
집사람.
지금 마냥 행복하기만
하지만
큰 아들네가 함께 오지 못하여 서운한 마음이 가슴에 가득 한 모양하다.
신혼 때 해운대 옛 생각하며 파도
타기를 원하는 집사람를 조심스럽게 데리고 나가는 것을 아들이 찍었나 보다.
파도 타기 보다는 boogie
board를 더 즐기는 집사람.
"아빠가 할머니 보다 더
빠르다!"
손주와 하늘로
나르는 할아버지.
아름답게 살아가는 자식의 모습은
모든 부모들의 바램이다.
항상 어린 즐만 알았던 녀석이 이젠
의젓한 두 아이의 아빠
그리고 믿음직한 남편으로 한 가정의 가장이 되어 있다.
이렇게
단란한 가정을 이룬 자식이 가까이 있음은 나에겐 말할 수 없는 축복이며
우리에게 항상 새로운 활기를 넣어 주고 삶을 풍요롭게
만들어준다.
40년 전의 우리 모습.(덕수궁.
1971년 4월 약혼식 끝나고)
40년이 지난 우리. 9월 24일
2011년.
9월24일 1971년 해운대 (신혼
여행)
바닷가에서도 정장을 하고 걷던
여인.
40년이 지난 9월24일 2011년
정장은 어디가고 젊은 남자들이 즐기는 Boogie Board를즐기는
여인으로...
세월이
흐르면 사람도 변하기 마련인가보다.
40년전 신혼
여행지 해운대를 연상하며 보낸 Vallarta를 떠나 Fosre city가 눈 아래 보이니
아~ 역시 여기가 나의 보금자리구나.
과거 속에서 헤매며 살 것이 아니라 현실에 충실하자.
윗사진에서 보는 젊음 모습으로 돌아 갈 수는 없는 노릇이 아닌가?
얼굴에 주름이 많이
생겼지만은 우리 눈빛은 옛 그대로 사랑스러움을 담고 있다.
함께 살아 온 40년이란 세월 속엔
후회,불행,질투,미음 같은 것은 없었고
서로서로를 보살피며 앞만 보고
살아왔다.
앞으론 더욱 그리할
것이다.
2년 전의 유방암 발병으로 남편의
존재가 어떤 것이고
삶을 어떻게 영유할 것인가를 알게된
계기가 되엇다.
어떤 사고방식,식생활,운동,대인관계
등을 새롭게 설정하고
새롭게 태어나게 한 사건이라 오히려
감사히 생각한다.
"왜 하필이면 우리에게 이런
시련을?"하는 생각은 한번도 해 본적이 없었다.
운적은 딱 한번.
암이란 전화연락을 받고 공포에 쌓어
두 사람이 잠시 울었다.
그 후로는 겸혀히 받아 드리고
다스러 나갔다.
그 녀는 나의 보살핌에 늘 고마워하고
주어진 하루하루를 감사하며 지낸다.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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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태평양
1950후반-60년초반에 Musical 영화가 많았는데 생각 나는것들은 왕과 나,오크라호마,
7인의 신부, 마리오 란쟈가 주연한 황태자의 사랑, 카라미타 제인, 지지, 치리치리뺑뺑이 있고 세계적으로 힌트 친것은 웨스트사이드 스토리, 남태평양, 사운드 오프 뮤직이다.
웨스드사아드 스토리는 1960-61년 52주 연속 빌보드 1위을 한 대기록을 가지고 있고
남태평양은 아직도 공연되는 최장기록을 세우고 있다.
영화 남태평양을 찍은 하와이 섬 8개 중 가장 아름답다는 Garden Island Kauai에서
뮤직칼 쑈를 보며 현지의 감각을 느끼고 뮤직칼 분위기에 매료 되었다공연장면은 사진,비데오 촬영 금지라 눈,귀,마음으로만 담았다.
영화에서의 대화 노래를 거의 다 한것 같다.
영화에서 간호장교 Nellie Forbush를 캐스팅 할때 Broadway에서 역활을 맡았던
Mary Martin는 너무 늙었어 Doris Day, Elizabeth Taylor 중에서 뽑을려다가
감독 Joshua Logan이 참신한 26세의 Mitzi Gaynor를 발탁한것이 영화를 힌트 시켰다.
매주 수요일 하루만 Kauai beach resort에서 공연을 하는데 매진이라 사전 예약을 하고 갔다.
같은 데이불에 앉은 결혼 60주년기념 여행 온 부부. Mr & Mrs.
Sturdivant.
60년을 같이 산것은 완전히 부인의 실수이고 나이가 자기 보다 많은 부인에게
자기는 Toy boy란다.
부인은 자기가 만든 멋진 레이스 목거리를 하나 벗어서 집사람에게 선물 한다.
무대 뒷배경.
극중 장교 Joe Cable로 분한 Sean Texeira.
영화의 John Kerr(하바드대 출신)보다 더 멋지고 어릴적 피아노를 배우고
California
santa clara 대학에서 음악을 전공했고 현직 Kauai 검사로 재직 중인
법조인이다.
현직 검사가 뮤직칼 배우로 활약 중이라니 멋진 녀석이다.
남태평양을 찍은 Princeville Hanalei Bay.
익살꾸러기 해군,간호원들이 놀던 바닷가는 그대로 있다.
지금 그들의 합창,웃음소리는 파도소리로 들린다.
1958년 남태평양을 Kauai 섬에서 찰영한 후 이곳의 아름다움에 반하여
많은 영화가 이곳에서 촬영 되었다고 한다.
행운의 시간이라는 2012년 12월 12일 12시 12분 우린 Na pali 해안을
걸었고
Kauai beach resort에서 South Pacific Dinner Show를 감상하고 영원히 잊지 못할
날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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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lerey 언덕.
노래로 친숙한 로렐라이 언덕과 전후 독일의 부흥을 이룩한 라인 강의 기적을
찾아보고 느꼈다.
하루는 차로 다니며 로렐라이 언덕, 포도밭,독일 통일 기념비를 들러 보고
3일 후엔 유람선을 타고 5시간 동안 강 주변의 도시,성을 먼발치에서 보았다.
건물은 모두 고풍스럽다. 3~5층이고 그 이상 높은 건물은
없다.
이곳 라인가우(Rhinegau)지방은 모두 백포도주를
생산한다.
1 km 만 가면 로렐라이
언덕.
와~ 소리가 저절로 난다.
죽마고우와
함께.
라인 강 남쪽
면
로렐라이(Loreley)석상.
옛사람들이 말하기를 금발처녀가 아리따운 노래로 이 언덕에서 노래를
부르며
뱃사공들을 유혹했단다. 실상은 급물살 때문이다.
죄 없는 여자들만 들먹이며 소설을 쓴다.
언덕 밑에 있는 아담한 식당 겸
호텔.
독일 식당에선 점심,저녁식사 때 꼭 포도주,맥주 아니면 물을 시켜야
한다.
물값도 맥주와 맞먹게 비싸다. 예의이고 안 시키면 손님은 고사하고 사람대접을 안
해준단다.
난 낮부터 술을 못하는 관계로 얼굴이 불그스레하다.
"어~ 이건 뭐야? 로스 로이스 아냐? 당신 가져." 약간 술이
취해서...
아래 도시 Rudesheim의 철새골목(Drosselgasse)은 폭이
3-5메타이고
길이는 144메타이며 양옆에 기념품 상,술집이 즐비하다.
이곳 포도주 맛을 보기 위해 방문객들이 꼭 찾는 곳이다.
몇백 년은
되었을 술집 간판.
철새골목을 벗어나 곤돌라를 타고 초록색 융단 같은 포도밭 위를 스르르
산으로
오른다.
산 정상에는 독일 통일(1871년)을 기념하는 게르마니아 여신상이
있다.
여신상 밑부분에는 빌렐힘1세가 말을 타고 그 옆에 비스마르크 재상이 서
있다.
3일 후 라인 강 관광 백미라는 뤼데스하임에서 코불랜츠까지 4-5시간 걸리는
크르즈을
탔다.
마주 보는 마을이지만 건너다니는 다리가 없어 배로
다닌다고.
포도밭 위로 게르마니아 여신상이
보인다.
앞에 보이는 배는 스위스 기를 달고 있다.
라인 강은 스위스 알프스산에서 발원하여 콘스탄츠호수를 지나 독일 남북으로 흘러
북해로
들어간다.
장장 그 길이가 1320 km (825 miles)
라인 강 작은 섬에 1326년 세워진 성인데 이곳을 통과하는 선박들 통과를
관장하는세관 역활을 했단다. 17-18세기에 증축 보수하여 아름답게
보인다.
오른쪽 언덕이 바로 로렐라이(Loreley).
물살이 급류로 바뀌면서 언덕을 돌아내려 간다.
자연적으로 사고가 자주 나게 생긴 곳이다.
모두
그림엽서 처럼 아름답다.
강 양쪽에 차로는 물론 철도가 다 있다.
전후 독일 부흥을 이룩한 라인강의 기적을 이르는데 기여한 기차,자동차,수송선 3박자가
이곳에
있다.
석탄
수송선
야영장
강폭이 넓어지고 물살이
잔잔하다.
경치 좋아 이곳 집값이 많이 나갈 줄 알았는데 밤낮으로 기차,큰화물차가
다녀
시끄럽고 관광객이 많아서 살기에 불편하여 부동산 가격을
별로란다.
배 타고오며 십여 채의 성을 보았지만 제일 아름답고 1117년 세워진 이래 한 번도 파쾨된
적이
없어 원형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는 Marksburg
castle.
경치를 안주 삼아 한잔 살짝 들고...
시 한 수 읊어
볼까요?
종착지 코불렌츠(독일의 두물머리가 있는 곳)
내릴 때 본 이상한 젊은 친구들.
옛 성을 원형대로 수선해주는 기술을 가르치는 학교의
수강생들이란다.
라인 강,로렐라이 언덕에서의 추억은 영원히 잊지 않고
우리 가슴 속 깊이 조용히 자리를
할것이다.
방문일 ; July 20,23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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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이 무슨 날인고 하니?
11년 전 오늘 2002년 11월18일 친구 현춘갑군이 우리 곁을 떠난 날이다.
하여 사흘 전 남상혁부부, 김관길, 서정완, 손명혜, Mrs.현, Mrs.김홍철
그리고 우리 부부가 만났다. 정수내외는 아쉽게도 여행 중이라 불참.
2002년 11월16일(금요일) 9시경에 내게 전화가 왔다.
"병길아~ 내 오늘 친구가 보고 싶구나. 올 수 있니?"
곧 친구들에게 연락하니 우리 집으로 범종이가 잠시 후 상혁이가 왔다.
두 친구를 태우고 춘갑네로 향하는 우린 별 말들이 없었다.
암투병하는 친구가 한스럽기 때문이었다.
만나면 무슨 말을 할까?
예전 처럼 웃고 지낼 수도 없고 그렇다고 우울한 얼굴로 대 할 수도 없고...
30분 쯤 후 도착하니 앞마당 우리 키 보다 조금 큰 단풍나무 아래 돌에
앉아 11월의 찬 공기 기운을 쫒기에 충분한 햇살을 즐기며 앉아 있다.
"세희아빠(병길을 의미)한데 전화 하고 그 때부터 저리 앉아 기다리고 있어요"
Mrs.현이 웃음을 머금고 우릴 맞이 한다.
한시간 반을 찬 돌에 앉아 있었다니...
춘갑이 얼굴에서 환자의 모습은 안보이고 밝고 행복한 모습이 가득하다.
"오늘 저녁 때 아이들이 모두 오기로 했다. 가족회의 열기로 했다."
시아틀에서 딸이, 나성에서 아들이, 모처럼 온가족이 모이는 날이라
기분이 한껏 좋아 보이나 우리와 한시간 반 정도 얘기 하더니 피곤함을
보여 오늘 저녁을 위해서 푹 쉬라며 작별 인사를 했다.
3일이 지난 19일(월) 가족회의는 잘 끝났는가? 궁금하여 전화를 하니
아들 창수가 받는다.
"너 아직 집에 있구나~, 아빠 좀 바꿔라.~"
"아빠~ 어제 돌아가셨어요"
"뭐!!!"
청천벼락이 이런 경우를 말하는 모양이다.
3일 전에 만나 즐겁게 지냈는데...
옛사람들 말이 생각이 났다.
사람이 운명하기 전 잠시 반짝 한다고...
춘갑이는 자식들 친구들 모두 만나고 갔다.
장례식이 끝나고 친척,조문객들과 헤여지고 단출하게 식구들만
집에세 쉬고 있을 때 소파에서 너무나 지친 Mrs.현이 잠시 눈을 감고
쉬다가 잠이 들어 꿈을 꾸웠는데 춘갑이가 구름을 타고 하늘로 오르며
손을 흔들면서 "잘 있어~바이 바이..."하며 멀어저 가기에 Mrs.현도
손을 흔들며 바이를 했단다. 그리고 눈을 뜨니 아들,딸이 보고
"엄마, 지금 손을 흔들면서 바이 바이를 했는데, 뭐야.~잠고대를 하고..."
"너희 아빠 천당 갔다. 내 눈으로 보았다."
남편 잃은 슬픔은 곧 기쁨으로 변했다.
착실한 기독교 교인 Mrs.현은 이렇게 쉽게 슬픔에서 벗어났다.
그 분은 남편 춘갑이가 천국에서 잘 지내고 있다고 믿고 있기에...
오늘 그가 살고 있는 천국은 이러 하지 않을까?하고 내가 가고 싶은 곳
Netherlands의 아름다운 정원(8만여평) Keukenhof 사진을 들러 본다.
일년에 한두번 그의 무덤을 찾아가 명복을 빌어 준다.
오늘 춘갑이를 생각하며...
어제는 오랫만에 현진건의 "운수 좋은 날"을 읽어 보았다.
* 사진은 인터넷에서 발췌한 것이다.
11월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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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 말리는 친구들.
3월20일이 지나면서 예상치 않은 폭설이 요세미티에 며칠간 내리는 바람에
나무가 눈 무개를 이기지 못하고 부러지고 넘어지면서 도로를 막고 전깃줄을
끊어 놓아 요세미티 국립공원 자체를 며칠간 문을 닫고 계곡에 있는 호텔등 숙박시설은
전기가 없거나 자가발전하여 간신히 추위를 이기는 사태가 발생 했었다.
3일간의 긴급복구로 도로가 열리고 전기가 들어 오면서 다시 활기를 찾은 요세미티는
언제 그랬느냐듯이 기온이 올라가면서 눈이 놓아 도로 곳곳이 눈과 물로 범벅이 되었다.
계곡 안에 있는 5개의 캠핑장에서 오로지 겨울에는 이곳 upper pine camping ground만 오픈한다.
Tent, Camper로 거의 만원을 이른 상태다.
정말 못 말리는 친구들이다.
우리 옆 친구는 Camper를 몰고 산 디아고에서 왔는데 자기 생일이라 다른 곳에 사는
아들,딸들이 다 와서 낮에는 등산들 하고 저녁때 생일 파티를 한다.
요세미티의 아버지하는 John Muir가 살던 집터.
정말 전망이 좋다.
보고 싶던 Frazil ice는 때가 늦었는지 볼 수가 없었다.
Mirror Lake로 향하는 김관길내외와 집사람.
이름 그대로 明鏡之水 (Mirror Lake)
어린 시절 동화에서만 존재 하던 파랑새. Blue Jay.
Vernel Fall 가는 길. 더 이상 갈 수가 없다.
El Capitan Peak에서 떨어지는 계절성 폭포 Horsetail Fall이 바람에 날리면서
무지개가 되여 봉우리를 감싼다.
3월말 4월초 오후 5시를 기준으로 10분전후에 생긴다.
다음날 바로 밑에서 본 Horsetail Fall.
요세미티 폭포을 마시는 못 말리는 사나이.
귀가 길에 도시에서는 볼 수 없는 석양에 마음을 뻬앗긴다.(박순영 作品)
;On Apr.1st-3rd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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훌쩍 떠난 결혼기념일 여행.
결혼 기념일을 며칠 앞두고 은근 슬적 여행을 떠났으면 하는 바램을 내비친다.
다른 날도 아니고 하여 콤퓨터로 Reno에 있는 Hotel을 이틀간 잡고 놀음은
안하기로 하고 주위 경치를 즐기기로 하고 9월23일 훌쩍 떠났다.
도박장에 가서 돈을 따는 경우는 10% 미만이다.
90%는 잃기 마련인데도 그 10%에 목을 걸고들 한다.
갔다 온 사람들에게 "땃어?"하고 물으면 대답이 희안하다
"뭐 따러 갔나? 놀려 갔지."
참 속 넓고 대범한 사람 처럼 말들 하나 그 속은 얼마나 씁쓸 할까?
장 보려 가서도 조금이라도 싼것을 살려고 이곳 저곳을 기웃거리면서.
돈 많은 도박장 주인 좋은 일 시키고들 있다.
처음 들린 곳은 서부 개척사에서 꼭 알고 지내야 할 곳 Donner Lake.
숲에 둘려 쌓여 아름답지만 가까히 있는 Lake Tahoe 때문에 한가하다.
.
옛 명성은 찾을 길 없이 초라한 Reno Main Street. Virginia St. Nevada.
우리가 묵은 Harrah's Hotel.
고급 방인데 이틀에 $132 .단 콤퓨터로 예약해야지만 이 가격이 가능. 싼 방은 하루에 $32 짜리도 있다.
다음 날 (9/24일) Pyramid Lake,( Nevada)으로 향하는데 붉은 산이 특이 하다.
멀리 가운대 삼각형으로 된 바위 때문에 Pyramid이란 이름을 가지게 되었다.
생각 이외로 넓었다.
호수 길이가 25 마일 폭이 11 마일. 깊은 곳이 300 휘트.
주위에 나무라곤 없고 Rabbit Brush가 대부분이다.
이 호수엔 큰 Lahontan Trout가 잡히는데 기록이 46 파운드.
보통 5-10 파운드 짜리가 잡힌다.
하두 커서 처음엔 샐몬 종류인가 하여 Salmon Trout라 불렸다고 한다.
10월 1일 부터 낚시 시즌이 시작 되여 각처에서 낚시꾼들이 몰린다고 한다.
9월 25일
1849년 금광 발견 때에 생긴 도시 Virginia City, Nevada.
1865년에 지워진 대장간.
1875년 하룻밤에 $78,000 잃고 그 자리에서 권총으로 자살한 사건 이후에도 이 테불에서 여러명이 자살 했다.
이 도시 건물들이 대부분 1860-70년데에 지어진것인데 원형 그대로 보존하고 영업을 하고 있다.
150년 전 모습 그대로. 단 보이는 자동차와 사람들의 의상만 옛것이 아니다.
사람이 사는 Ghost Town이라고 할까?
이층 창문에 선전문이 그대로 "방값 $1 , 목욕 $1/때밀이 포함"
150년 기념 예배 현수막이 장로교회에 걸어 있다.
이 도시에서 제일 크고 건사한 빌딩.
바로 1865년에 지은 재판소.
아마 당시 범죄가 많아 이렇게 큰 건물이 필요했었나 보다.
지금도 그냥 재판소로 사용 중이다.
옛 광산 건물,갱도입구가 도시 근처 산에 그대로 남아 있다.
Nevada의 수도 Carson City를 지나 산을 넘으니 Lake Tahoe가 앞에 펼처진다.
언제 보아도 투명하고 깨끗한 물 그리고 파노라마로 펼처진 산등선.
샌드위치를 커피,솔솔 부는 바람과 함께 먹으며 경치에 취해 본다.
아름다운 Emerald Bay를 끝으로 즐거운 결혼 기념일 여행 2박3일을 마무리 했다.
Sept.28th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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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대현박사와 길례언니
1946년 소년 정대현은 광주 서석초등학교 4학년 2반 반장이였고 담임 선생은 국어를 가르치는
서정주선생이 였는데 웃음기라고 일년내내 찾아 볼 수 없는 항상 근엄한 얼굴로 학생들을
대해신 반면 동경 여자미술전문대학을 졸업하시고 늘씬한 몸매에 세련된 의상과 행동은
이지방의 여성들과는 판이 하게 다른 천경자 미술선생은 어린 정대현의 마음을 사로 잡았다.
천경자화백.
천경자 선생은 고흥에서 1924년 출생하고 전주여고를 거처 일본 동경 여자미술전문대에서 동양화를 전공 했다.
유학시절 1944년 어린 시절에 만난 이철식이란 청년과 사랑에 빠저 결혼까지 했으나 이는 잘못된 만남이라
곧 파경을 맞이 하여 실의와 고독에 휩싸인다.
헤여저서 생활을 했지만 6.25사변으로 완전히 소식이 두절된다.
이런 실의에 빠진 시기인 1946년 서석초등학교에 부임하여 광주 동명동 1가에서 하숙하며 걸어서 학교를 다녔는데
동명동 2가 형님댁에 기거하던 정대현 소년은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아침마다 선생의 늘씬한 뒷모습을 훔처보며
졸졸 따라 등교하며 이성에 대한 사랑이 피어 오른다.
그 감정을 억지할 수가 없어서 편지를 써서 선생님에게 받친다.
정소년은 그때 무슨 말을 쎴는지 지금은 생각이 안나지만 선생님이 불려서
"학생은 공부에만 전염해야되요" 한 말을 토렸이 기억한다.
첫사랑 고백을 거절 당했는데, 뭇남성들은 실연한 첫사랑은 일생 잊지들 못하지만 기억 조차 하기 싫어 하는데,
정대현이란 소년은 남편과 헤어저 혼자 하숙한다는 사실을 몰랐겠지만 고독한 선생님의 심정을 마음으로 느낌을 받았는지
지금까지도 생생이 기억을 한단다.
초등학교 4학년생이 10년 연상의 선생님을 사모하였다니...
종종 그런 학생이 있다는 말은 들었으나 편지까지 쓴 학생은 천연기념물감이다.
未堂 서 정주
이렇게 밝은 웃음을 띄고 어린 학생들을 가르첬으면 좋았을것을 왜 근엄한 얼굴을 하여
60여년이 지냈는데도 정대현 소년?은 담임선생님 미당의 웃은 얼굴을 보고 싶어 한다.
국화 옆에서(서정주)
한 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나 보다.
한 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천둥은 먹구름 속에서
또 그렇게 울었나 보다.
그립고 아쉬움에 가슴 조이던
머언 먼 젊음의 뒤안길에서
이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내 누님 같이 생긴 꽃이여.
노오란 네 꽃잎이 피려고
간밤엔 무서리가 저리 내리고
내게는 잠도 오지 않았나 보다.
― 서정주, 국화 옆에서
2013년 12월 송년 파티에서.
5년 전 처음 Mrs.정을 보는 순간 어디서 많이 뵌 분이란 느낌을 받았는데 그로 부터 얼마 후 천경자 화백의
길례언니을 보고 "바로 이 그림에서다" 했다.
그녀(천경자)는 고흥에서 유치원과 고흥보통학교를 다니며 화가의 꿈을 키웠다.
또한 그녀는 보통학교 시절 교정에서 열린 박람회장에서 소록도 나병원 간호부로 있던 선배 길례 언니를 보고 깊은 인상을 받았다. 이후 길례언니는 천경자의 연작에 등장하는 상징적인 여인이 되었다 -인터넷에서 발췌-
정대현은 광주일고를 거처 서울대 공과대학 화공과에 1954년 입학하고
FLI(서울대 영어 강습소), 개인적으로 미군 상사에게 영어 회화를 배웠다.
1954년 정부 고위직 관료와 고급장교의 만찬장(진해)에 통역관으로 착출 되여
열심히 파티장을 누비며 통역을 하는데 어떤 노인이 불려 묻는 말에
자기의 신분, 어떻게 영어를 배웠는가를 대답하였드니 그 노인분이
비서 같은 사람을 부르더니
" 이 학생 국비장학생으로 미국에 유학을 보내라."
후에 안 사실은 그 노인분은 당시 국회의장 신익희선생님이셨다.
이렇게 그 어러운 시기에 쉽게 1955년 미국 유학을 오르고
펜실바니아주립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MIT Research associate,
Lawrence Livermore Laboratory,대학교수등을 역임 하고
지금은 나파에서 골프,여행, 作詩하시며 아릿다운 길례언니와 여생을 즐기신다.
일반적으로 첫사랑은 헤여진 후에 다시 만나질 못하는데
이 분은 악연인지 행운인지는 모르겠지만 1986년 방한 당시
형수님의 안내로 호암갤러리 오픈 기념식장에서 천경자화백을
만나 편지를 건낸 학생이 자기임을 밝혔으나 무심도 하시지
전혀 편지건을 기억을 못하시고
" 아~ 그런적이 있었나? "하시며
어린 소년이 세계적인 과학자(영국 캠브리지 국제저명인사센타가 선정한 20세기 과학자 2,000명에 포함)가
되여 자기 앞에 서 있다며 반갑게 대해주셨다.
1993년 사랑하던 첫부인을 사별하시고 만나신 분이 첫사랑 천경자화백이 혼신을 기울린 대표작
길례언니를 닮은 분이시니 이 두분은 늦게 만나셨지만 천생연분이시다.
Always Aceentuate Looking Up.
-정대현-
We sometimes see subtractions when we are ill.
Theyare not just subtractions.
I am not me minus anything;
I am me plus this experience.
Optimism is the courage to look for at
Something and say;
"However bad this is, it isn't bad infinitely."
Accentuate the positive; and
Stay on the bright side of life.
Keep your sunny side up
While embracing life's challenge!
201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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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다고 생각하세요?"
동서양의 음식 문화가 다르지만 맛을 즐기는 것은 같은가 보다.
두 아들이 8, 10살 될 쯤인가 작은집에서 저녁을 먹고 후식으로
형수님이 만드신 식혜를 두 녀석은 처음 먹어 보곤 그리 좋아 한다.
그 후 기회가 있으면 엿기름 사다가 만들어 주곤 했는데 언제부터인가
마실 기회가 사라졌다.
하루는 식사 후 냄비바닥에 누러케 앉은 누렁지를 물을 붓고 끓인 다음
후식으로 한그릇씩 주는데 두 아들 녀석이 한 숫갈씩 먹더니 서로 얼굴을
쳐다 보며 한 녀석이 말한다."작은 엄마가 만든 것 하고 맛이 다르네요."
식혜로 오인을 한 모양이다. 밥풀이 물에 둥둥 더 있으니 그리 보인 모양이다.
생활하기 편하게 모든 것이 변하여 이제 식혜는 작은 캔으로 나와 주로 그것을 사 먹는다.
장가 간 아들 녀석들도 한국식품점에서 구입하고 자기 자식들에게 주는 모양인지라
손주들이 LA에서 온다면 준비해 놓고 주는데 할아버지 닮아서 어찌나 잘들 먹는지...
하루는 하나 밖에 남지 않은 캔이 들고 마시려는데 6살 된 손녀가 닦아 오며
할아버지 혼자 마실거냐?는 표정을 짓는다.
"아니~ 컵 하나 가지고 오너라."
컵에 따라 주고 캔을 들고 마실려는데 "Is It Same?" 한다.
작은 컵 안에 얼마가 들었는지 눈으로 알 수 없지만 더 많아 보인 모양이다.
아니 실제로 더 많았다. 주책 없이 할비가 더 마실 요령으로 그랬나 보다.
한방 먹었다.
할비 체면이 있기에 "너의 몸집과 할아버지 몸집을 비교 해 봐라. 너 보다 많이 마세야 한다."
할 말이 없는지 "그렇게 하세요.(OKAY)" 한다.
이 사건을 두고 집사람은 두고두고 할아버지 체면 꾸긴 일이라 놀린다.
그런 어린 손녀가 당차고 귀여웠지만 사실 챙피? 당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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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주들은 할머니 편이다.
작은 동네에 사는 둘째 아들네 손녀, 손주와 점심을 같이 이런 저런 얘기로 꽃을 피우며 먹을 때
8살짜리 손주녀석(Dylan) 예기치 않은 방귀를 낀다. (방귀 ; 귀여운 것. 방구 ; 구린네 남. 방고: 고약함)
"밥상에서 방귀를 끼면 돼냐? 참던지 일어나서 다른 곳에 가서 끼던지 해야지!".
10살 손녀가 동생 편을 드는지 한마디 한다.
"우리 집에선 아빠가 그러는데 방구는 자연현상이라 밥상에서도 괜찮다고 합니다."
주의를 주다가 오히려 주의를 받는 꼴인지라 할 말을 잃은 나를 쳐다보며 집사람이 쌈통이다 하는
표정을 지으며 박장대소를 한다.
요란한 웃음 소리 와 함께 예상치 않은 요사한 음이 들린다. "뽕"하고.
이번에 내가 박장대소를 하며 얼굴을 서로 쳐다보며 웃음을 참는 두손주에게
"이게 무슨 소리지?"
두 녀석이 합창을 한다
손으로천장(하늘)을 가르키며 ."천둥소리입니다."
두녀석이 의견 조율도 없이할머니를 위해서 순간적으로 같은 생각을 해 낸 것도 신기하다.
"천둥은 번개를 친 다음 소리가 난다. 이렇게 맑은 날 무슨 천둥이냐?"
할머닌는 옆에서 손주들이 귀여워 어쩔 줄 모르면 좋아 한다,
"아냐1 이건 누가 낀 방구 소리다.!!! 누구냐?" 알면서 물었다.
진작 범인인 할머니는 웃고만 있으니
손주녀석이 손을 들고는 "I DID!" 내가 끼었어요."
할머니의 사랑을 받겠끔 행동하는 손주들.
집안의 보배요, 행복의 샘이다.
*이 글을 진작 쓰고 싶었는데 할머니가 본의 아닌 실수도 실수인지라 싫어하기에
5년이 흐른 오늘에서나 써 본다. 2019년 5월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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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라카나의 치욕"
1950년 브라질에서 첫 번째 개최된 월드컵 결승전은 지금도 그들에겐 악몽이다.
1946년 월드컵을 아르헨티나에서 열리기로 했는데 2차대전 바로 후라
각국이 전쟁복구에 정신이 없어 불참하는 나라가 많아서 취소되었다.
4년 후인 1950년에 당연히 Argentina에서 열릴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브라질이 개최 희망하여 FIFA가 승인하는 바람에 화가 난 Argentina가 참가를 포기한다.
강력한 경쟁국이 사라지고 유럽의 강호 스웨덴을 7대1,스페인을 6대1로
결승에 오른다.
상대 팀은 브라질에 인접하여 항상 정치,경제적으로 압박을 받고 있는
우루과이인데 그들은 스웨덴에 3대2로 간신히 이기고 스페인과는 2대2
무승부로 올라왔기에 시합 전부터 우승은 따놓은 단상으로 여겼다.
1950년 World Cup Champion Brazil -FIFA-라고
우승컵에 새겨 넣고 경기 전에 선수들은 이 컵을 중심으로 사진 찍고
선수들의 출신 도시는 축제를 준비하고 시간을 다투는 신문은"챔피언 브라질"이라
찍어서 아침에 돌리고... 이 신문을 호텔에서 본 우루과이 선수들은 신문을
가운데 놓고 오줌을 누면서 악에 받처 죽을 각오로 임 할것을 다짐한다.
이 두 나라 관계는 韓日관계와 비슷하다.만났다하면 필사적이다.
운명의 날은 2년간 이날을 위하여 건축된 Rio de Janeiro의 마라카낭축구장.
그 날 관중이 20만 명(173,500명~230,000명 숫자가 제각기 다르다.)이
Maracana 축구장을 메웠다.
20만 명의 관중과 전 국민이 라디오 중계 청취에 보답이라도 하듯이 브라질은
맹공격을 퍼붓는다. 전반전에 슈팅만 17개이지만 우루과이 골키퍼의 선방에
막히면서 전반전은 0 대 0.
아침 우루과이 코치가 호텔에서 마지막 작전 지시를 내린다.
저들의 공격은 무섭다, 수비 위주로 경기를 풀어야 한다.
코치가 나가자 주장이 "코치 말은 항상 옳았다. 하지만 오늘은 아니다.
만약 수비 위주로 하면 우리도 7, 6점을 주면서 대패할 것이다.
그들이 예상치 못한 공격 위주로 죽을 각오로 싸우자."
후반 2분 만에 브라질이 선제골을 뽑는다.
관중은 물론 전국이 축제 분위기로 들뜬 상태.
관중의 일방적인 응원,조롱석인 함성등 분위기에 하나도 주눅 들지 않고 당당히
경기를 펼치던 우루과이가 21분에 동점 골을 넣는다.
당시 경기방식에 의하면 비기기만 해도 승점을 1 가진 우루과이보다
무려 10점이 많은 11점이기에 브라질이 차지하게 된다.
동점된 후 주장은 "자~ 이제부터 다!" 한마디에 우루과이 선수들의
몸동작은 지질 줄 모르고 뛴다.
관중들은 동요하기 시작하고... "혹시? 혹시?"하며.
34분 "기자아"가 결승골을 작열시키고 10분 후 휘슬이 울리고 경기가 끝난다.
이 순간을 FIFA 관계자는 "이런 적막을 어떻게 표현 할지 모르겠다.?"
관중의 한 사람은 "20만 명이 모인 곳에 파리 날아다니는 소리도 듣겠더라."
실신한 사람이 20여 명,심장마비로 2명이 죽고 2명은 권총으로 자살한다.
10만 명은 경기장을 떠나지 않고 밤새도록 울었단다.
이 경기를 두고 "마라카나의 치욕"이란다.
정부는 弔旗를 게양하고 1914년 부터 입던 흰유니폼을 현재 사용하고 있는
노란색으로 바꾸고 경기 때 입었던 옷은 모두 거두서 소각시키고 선수들은 모두
대표선수에서 퇴출시켰다.
골키퍼였던 "바르보사"가 길을 걷는데 어느 소녀가 엄마에게
"저 사람 누구지?"하고 물으니 "브라질을 절망의 속으로... 온국민의 기대를 저버린 사람.'
그는 "브라질에서 아무리 중범죄자라 할지라도 43년간 은둔생활은 안 할 것이다."란
유언을 남기고 50년간의 은둔생활을 마감한다.
다른 선수들도 마찬가지였다고 한다.
50년이 지난 후 결승골을 넣었던 우루과이의 "기지아"가 브라질을 방문할 때
20여세 된 여세관원이 자기를 알아 보더란다.
"당신이 태어나기 훨씬 오래전인데 어찌 늙은 나를 알아 보시죠?"
"브라질사람들은 그날을 영원히 기억하고 있지만 기억하고 싶지 않습니다."
축구는 그들에게 종교 보다도 강하다.
브라질은 1970년 월드컵 4강전에서 우루과이를 3 대 1로 이기고 우승까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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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전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