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문시집_밥상머리인문학 '차려진 밥상의 그 먹먹함'
전통 소반에 차려진 밥상을 보면 조선 말기의 밥상 사진이 떠오른다. "우와 우리 조상님들 한 밥 하셨구나! 모름지기 이 정도는 먹어야 먹었다고 말할 수 있지!" 라고 외치던 기억이 겹쳐진다.
책 읽다 말고 시대별 밥상 변천사를 검색해 보았다. 고증을 통하여 차려진 시대별 밥상 사진을 보니, 밥상에도 문화접변의 흔적이 가득하였다. 기술이 흙과 나무와 불이던 시절은 질그릇과 도자기로 구성된 식기들이라서 그런지 큰 변화보다는 그 자제로 품격있는 밥상으로 보인다.
다만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90년대까지는 밥상차림에 사용된 그릇도 혼돈의 시기였던 것 같다. 그러다 다시 식기들이 도자기로 회귀한다. 여전히 현재에서도 플라스틱 그릇이 쓰이지만 일반 생활에서는 도자기류가 식기로 거의 사용된다.
고증된 밥상 차림들을 보면 조상들은 음식을 부족하게 먹는 스타일은 아니었다. 조선말기에 와서 밥그릇이 커지고 밥량이 크게 늘어났는데 아마도 고기류와 반찬이 부족했기 때문인 듯하다.
한국인의 밥상 변천사는 그 자체로 우리의 음식문화 변천사이다. 책 <<밥상머리 인문학>>에 올라온 시인의 밥상은 작고 소박하지만 절대로 소박함에만 그치지 않는다. 거기에는 감성의 품격이 공존하고 있다.
책은 봄 여름 가을 겨울 밥상 차림으로 구성되어 있다. 각 밥상마다 시인의 재료 선정에 대한 소감과 그 재료에 대한 기억과 레시피가 설명되기도 한다. 그리고 그 밥상마다 시인의 산문시가 곁들여져 있다. 산문시들은 밥상에 곁들여진 인문학적 양식이자 반주이기도 하다. 그 바탕에서 피어난 시간의 숙성이자 그리움의 발효이기도 하다. 그 숙성에 의해 품격이 인간 사회로 온다. 시인의 밥상머리 인문학은 '품격'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였다.
때마다 밥상에 차려진 다양한 반찬과 김치, 그에 맞는 밥과 국 때로는 탕과 국수 그리고 제철 푸성귀들, 조림과 구이 등에서 보자면 모든 조리방식이 총동원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ㅎ 단, 튀김 조리방식은 안 보였다.
우리나라의 국은 하나의 '요리' 그 자체로 보아도 손색이 없겠다. 바지락감자쑥국, 도다리쑥국, 들깨쑥국, 우럭조개쑥국, 백합탕, 대합미역국, 문어애호박국, 소라감잣국, 민어맑은탕, 순댓국, 아욱된장국, 송잇국, 고사리토란국, 바지락탕국, 홍합두붓국, 냉콩나물국, 소고기미역국, 황탯국 매생이굴국, 물메깃국, 새조개시금칫국, 소고기뭇국 등등의 셀 수도 없을 다양한 '국'이 있다.
'육해공'의 산물들은 웬만하면 '국'의 재료가 될 수 있다. 그 재료와 다른 재료들과 혼합하고 간을 맞추는 것만이 그 국이 가진 본연의 맛을 살려낸다. 그 '국물' 한 수저 떠먹고 있는 상상을 하게 된다. 소반에 차려진 음식을 앉아서 먹는 상상을 하면서 그 맛과 그때의 밥을 먹는 내 모습을 상기하여 본다. 그때 정말 괜찮은 기분이 들겠구나! 싶었다.
그 자신이 누군가를 위해 차린 밥상과 누군가가 나를 위해 차린 밥상의 느낌은 어떻게 차이가 날까. 나 아닌 타인을 위해 차린 밥상은 많아도 누군가 나를 위해 차린 밥상을 받아 본 것은 그리 많지가 않다.
그러므로 우리는 '엄마의 밥상'을 떠올리는지도 모르겠다. 남자보다 여자가 엄마의 밥상을 더 떠올리지 않을까 싶겠지만 내가 기억하기로는 여자들보다 남자들이 더 엄마의 밥상을 자주 떠올리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물론 이것은 나만의 생각일 수도 있고 일반화에는 다소 무리가 있다고도 생각한다.
나는 엄마 밥상이 가장 그리울 때가 독립해서 살 때였다. 음식을 직접 만들고 밥상을 차리지만, 내가 차린 밥상에 익숙하지 않고 그 맛에도 익숙해지지 않을 때였던 것 같다. 아직 엄마의 음식 맛에 젖어 있어서 엄마 김치가 그립고 반찬과 국이 그리워서 더 엄마가 생각나고 엄마한테 더 잘하려고 하거나 찾아가게 되었던 것 같다. 그 맛에 대한 간절함과 향수가 겹쳐지는 순간이었다. 그것을 먹어야 살 것 같은 그런 기분이 들 때가 있었다.
지금은 어떤가. 내 음식에 익숙해져서 엄마의 음식 맛도 내 음식에 흡수되어서 엄마의 음식 맛에 대한 향수는 거의 사라졌다. 이제는 내가 어릴 때 엄마와 함께하던 그 시간의 틈바구니에 쌓인 기억들이 더 우세해졌다.
음식도 어쩌면, 그 자신이 직접 하는 것에서 그 자신 안으로 흡입되는 것이라서, 어떤 특정 맛에 대한 향수 역시 같이 그 자신 안으로 내재하는 것이지 않을까. 나에게 엄마의 맛을 흡수해서 엄마의 맛은 나와 늘 함께 한다. 나는 내 음식 맛에 익숙해져서 어떤 음식 맛이 그립지는 않다. 다만, 비록 밖에서 사 먹는 음식일지라도 누군가 나 대신 차려준 그 밥상을 보면 기분이 좋아진다.
물론 때로는 내가 누군가에게 밥상을 차려줄 때도 그 밥상에 대해 간섭이나 시간적 제약이 크지 않다면 음식을 만드는 그 과정을 즐길 수 있어서 즐겁다. 나 아닌 누군가에게 음식을 만들어 주는 일은 더 정성을 들일 수밖에 없다. 그리고 좀 더 밥상의 품격을 고려할 수밖에 없다. 받아서 기분 좋은 음식이어야 하니까 말이다.
오인태 시인의 <<밥상머리 인문학>>은 한 끼 밥을 먹는 시간에 대해 더 깊게 생각하게 한다. 날마다 반복되는 밥 먹는 일이 때론 지겹다고 여겨질 때도 있고, 음식 만드는 일이 귀찮게 여겨질 때도 있지만, 일상에서 그런 일들은 대체로 묵묵하게 진행된다. 우리도 그 묵묵함을 따라가고 있고 모든 엄마도 그 묵묵함으로 가족들 밥상을 차렸다. 그 묵묵함을 시인은 '밥상'의 흔적을 찾아서 붓으로 낡은 먼지를 털어내듯이 해내었다. '남자'가 차린 밥상에서 '엄마의 향기'가 날 경지라면, 그 밥상은 과연 어떤 밥상일까.
한편으로는 이 모든 시간이 먹먹하게 다가 온다. 조금 있으면 김장철이고 여기에는 엄마들의 지난 시절이 스러지고 그 시절을 흡수한 자식들이 그 손맛을 이어가는 시간이 되었다는 그 우두컨한 나의 시간에 대한 울컥이다. 울컥하는 먹먹함은 반복되어도 익숙해지지는 않는 감정이다(아마 이런 먹먹함은 지금 시대, 오늘의 시간대도 직접 영향을 준 듯하다. 세상이 슬프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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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상에연민이있고거기서삶도정도나오는_그것이인문학의본체인지도_품격있는밥상_정성이깃듯밥상 #밥상의고수 오인태
*2022/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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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다리소반(충주반=개다리 소반)
'충주반의 특색은 다리에 있다. 흔히 다른 지방반(地方盤)에서 볼 수 있는 중대(中帶)가 없고, 반면 바로 밑부분에서 마치 개다리〔狗足〕모양을 한 다리가 4개 부착되어 있어 일명 개다리소반이라고도 불린다.'
*호족반
호랑이의 다리모양을 하여 굽은 선이 많고 조각장식 등으로 위용을 보여주어, 대궐용 수라상이나 궁내 제례용 소반, 또는 상류가정의 의례용 소반 등으로 널리 사용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