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맛비에 관한 시모음 4)
장마비 1 /홍경임
꺼져가는 내 영혼을 부르는 소리있어
그제는 장마비를 마중하며
북한강과 남한강이 상봉하는
꿈속에서만 키워오던
내 마음의 고향 양수리에 갔습니다
어제는 연일 내리는 장마비에도
메말라붙은 한 줌 내 마음 적시어주려
내 몸같은 그이는 나를 태우고
강변마을 샛터를 몇 번인가 오갔습니다.
장마비 2 /홍경임
어느 시인의 숨결이 나를 부르는 소리있어
오늘도 계속되는 장마비에
46번 도로 물안개를 날리며
한참을 달려 둘이 당도한 곳은
파가니니 영혼을 담은 바이올린 선율이
잔잔히 부서지는 무너미 카페
둘이 주인 백발의 시인과 마주하여
꽤나 한참을 머물러 담소할 때
카페의 음악은 바뀌어
정신적 배가본드 내 영혼에도
나를 사랑한 덕에 구멍난 그의 가슴에도
생애 어느 세월 20년 절필하여
허스키해진 노시인 마음에도
비발디는 우리의 주치의가 되어
서로의 영혼에서 영혼으로
사계중 여름이 조용히 흐른다
그이와 난 치유된 가슴을 안고
둘만이 충만한 귀향을 서두른다
흩뿌리는 장마비로 얼룩진
101번 도로에 들어서서.
장마비 되어 /오보영
굵은 장마비 타고
하늘 높이 오르고 싶어요
오직 그 곳까지만
그대 얼굴 보이고
그대 마음 보이는 그 곳 까지만
빗줄기 따라 하늘로
올라가고 싶어요
그 곳에서 마냥
그대 모습
그대 움직임 바라보다가
장대비 되어
그대있는 창가에 떨어지고 싶어요
빗소리 되어
내 마음 전하고 싶어요
빗방울 되어
그대 가슴 적시고 싶어요
오뉴월 장마비 /강세화
오뉴월 장마비가 몸을 풀어 내린다
옹졸아 마른 땅에 작정하고 내린다
부옇게 흐린 하늘도 씻어주며 내린다.
타는 풀잎 꽃대궁에 초록으로 내린다
답답한 가슴에도 다정하게 내린다
어디나 촉촉 적시며 느긋하게 내린다.
걸음걸음 돌아보며 차근차근 내린다
주룩주룩 느릿느릿 눈감은 듯 내린다
똘똘한 낙숫물 소리 절절하게 내린다.
마음을 비우고 나면 따스하게 내린다
서로가 조금씩 져주면서 내린다
세월아 환해져라고 열두 번 소망이 내린다.
장맛비에 걸음을 멈추고 /이한명
먼 기억의 아픈 속 울림으로
토해내던
비린내 나는 거리
낙숫물 떨어지던
유년의 양철 지붕 아래
타박타박 세상 떠돌다
되돌아온 빗속의 그 아이
잃어버렸던 시간 속으로 되돌아와
낙숫물 소리 듣는
장맛비 내리는 날에
높은 산맥을 넘어
호우주의보를 안고 기어 오던
늙은 기상정보는
범람한 하천에 막혀
발길이 묶인
안갯속에 남겨 둔
낯섦도 익숙함도 아닌
인연 하나 둘
장맛비 소명 /未松 오보영
어쩌면
네 덕분인지 모르겠다
계곡물이
웅덩이에 고여
썩어가지 않고
소명 따라
앞을 향해
흘러내릴 수 있음은..
틀림없이
네 덕분일 게다
맑은
계곡물에서
산천어가
마음 놓고
여유로이
헤엄치며
살아갈 수 있음은..
때가 되면
줄줄 쏟아져 내리는
장마
빗줄기
너의 은덕임이
분명할 지라
장마의 추억 /강정식
어릴 적 장마는 긴 기다림이다
물 새는 지붕과 벽면 곰팡이가
전장의 기념비 같은 커다란 지도를
상처처럼 남겨
고단하게 살아가던 궤적으로 쌓였다
우묵 배미 안마당
정강이 넘게 흙탕물이
문지방에 찰랑거릴 때쯤
붉은 기와 용마루에도 틈이 자라서
하늘이 보이고
천장을 적시며 영토를 넓혀가
물받이 그릇이
방 안 가득하던 시절에도
우리는 강가로 물 구경 갔다
장마 비 /박인걸
들고양이 한 마리가
힘없는 눈동자로
허리를 구부린 채
비가 그치기를 기다린다.
쏟아지는 빗물을 맞으며
굼뜬 걸음의 노인이
파지 몇 장을 수레에 끌고
그쪽으로 가고 있다.
흠뻑 젖은 가로수가
손사래를 저으며
제발 멈춰달라고 애원해도
비는 듣지 않는다.
미친 듯 장마 비는
며칠 째 퍼붓고 있다.
절박한 아우성을 모른 채
야속하기만 하다.
해마다 한 번씩
홍역처럼 치러야 하지만
장마 비는 일 년치
생수 배급이라 한다.
장맛비 개인 날 /권태응
활짝 장맛비 개었습니다
새빨간 봉숭아 눈부십니다
맴 맴 매미들 울어 댑니다
이젠 장맛비 개었습니다
잠자리도 좋아서 날라 댑니다
우리들은 고기잡이 개울 갑니다
장맛비 /최남균
화살이 빗발치는 전란
발치의 강둑이 범람하여
파란 깻잎 속으로 숨은
청개구리
농탁해진 시는
출구 없는 창가에
유폐한 시간을 들이켜고
검은 피가 낭자한
청개구리
조물주가 쏜
엇나간 화살이 빗발치는
전쟁터
장맛비 /수진 김선균
요란한 비명을 지르며
숨 가쁘게 달려 와서는
지붕을 두들기고 땅을 패고 야단인데
반기는 사람 아무도 없고
젖은 툇마루 아래 멍멍이조차
빗물 머금은 눈빛이 좋지 않다.
성난 하늘 문 닫힐 줄 모르고
천지창조의 울림을 담은 폭수는
산산이 부서지며 가슴을 내리 치고
지상의 아우성 소리에 귀 기울이다가
한풀 꺾인 시늉으로 슬며시
감춰 놓은 해를 내밀 적에
노아의 떨리는 가슴엔
소망의 무지개가 뜬다.
우산을 접고 올려 다 본 하늘
하얀 구름을 빨랫줄에 털어 널며
철없는 미소를 띠우고는
한껏 기지개를 켠다.
참회한 아담의 눈물이
용서의 강물에 이를 즈음
원초적 죗값을 치루고
생명나무에 매달려 빛날 때
하늘은 파랗고 마음은 투명한
아지랑이로 피어오른다.
장마비 내리는 밤 /최다원
모두가 잠든 까만 밤
구성진 장마비가 어둠을 채운다
희미한 가로등의 눈썹 끝에 매달린 물방울
부풀어 오른 비만한 무게를 지탱하지 못하고
산산이 부셔진다
반쯤 열려진 창가에 서서
두 손을 모으듯 가만히 빌어본다
잉태한 교만과 이기심
질긴 탐욕을 꺼내 무게를 덜어내야 한다
순결한 마음과 비워낸 가슴 가득
꿈 하나만 간직하고픈
장마비 내리는 밤
장맛비 /최봄샘
호각소리 울렸다
하늘창문 열렸다
쏟아 붓는다
물
물
빗자루 들고 나선 그 양반
껄
껄
껄
꼭꼭 숨어라
잘 난 사람들아
못난 사람들아
노아의 방주는 어디에 있는가?
모두 모두 엎드려 있거라
고개 들지 말고 납작 빌거라
죄 없는 나무들만 미치광이 머리채 뒤흔든다
뿌리채 뽑혀가며 질러대는
저 비명소리
대청소 기간이다
지글거리는 가슴에 끼얹어대는
저 물소리
저 바람소리
장맛비 /박인걸
태초 이후 지금까지
한번도 거르지 않고 쏟아지는 비
쏟아 부어도 끊어지지 않는
가슴 속 무수한 욕망들
채워지지 않는 불만족의 삶
잡동사니로 뒤엉킨 너저분한
탐욕의 깊은 골짜기로
범람한 강물이 휩쓸고 지나간
젖은 옷을 훌훌 털어내는 숲처럼
이끼를 제거한 강가 돌멩이처럼
장맛비야 내 가슴에 퍼부어라.
비갠 하늘을 가볍게 나는 새
구름도 떠나간 햇살만 빛나는
무공(無公)의 하늘
내일에 염려에서 해방 된
밝게 웃으며 감사하는 꽃처럼
내가 나를 씻어낼 수 없는 누렇게 찌든
오욕(五慾)의 가슴 벽을
여름 장맛비여 맑게 닦아 주려무나
장마비 /박기숙
우르르 쾅쾅
번개가 서에 번쩍 동에 번쩍
가슴을 후려친다.
마음도 덩달아 쿵쿵쿵,
놀람 교향곡으로 반주를 시작한다.
후두둑 장대비가 대지 위를 두드려 대고
번개는 진홍빛 에메랄드빛으로
환상의 그림을 모델링 해 나간다.
하늘의 여신의 별들은
어디론지 가버린 지금
장대비만 요란스럽게
온 세상을 감싸 안으며
춤을 추면서 내려앉는다.
지루한 장마비여!
하늘에서 내려오는 너의 긴 여행의
물줄기를 이제 그만 말아 치우고
맑고 고운 너의 본향의 길인
은하수 길을 따라
운무와 함께 사라지길
나는 또 다시 간구와 기도로
이 밤을 보내고저 한다.
장맛비가 내리던 저녁 /이상국
비가 오면
짐승들은 집에서
우두커니 세상을 바라보고
공사판 인부들도 집으로 간다
그것은 지구가 쉬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비가 오면
마당의 빨래를 걷고
어머니를 기다리던 시절이 있었고
강을 건너던 날 낯선 마을의 불빛과
모르는 사람들의 수런거리는 소리를 들었다
비는 안 가본 데가 없다
빗소리에 더러 소식을 전하던 그대는
어디서 세상을 건너는지
비가 온다
비가 오면 낡은 집 어디에선가
물 새는 소리를 들으며
나의 시도 그만 쉬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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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모음. 주제별
장맛비에 관한 시모음 4)
와룡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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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7.15 1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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