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아 고급차 K9은 수입차보다 나은 선택일까?
이제 국산차는 수입차보다 못하다는 편견을 깰 때다
k-plaza
작성일자2019.02.09.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다. 어쩌면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선택만 하다가 끝나는지도 모른다. 당장 설 명절 전후 며칠을 보자. 고향에 내려갈 때 차를 몰고 갈지 기차나 고속버스를 타고 갈지 고민한 사람이 한둘이 아니다. 정체를 피하기 위해 귀성이나 귀경 시간과 요일을 결정하는 일도 머리 아프다. 국내에 남을지 해외로 뜰지 결정하는 문제로 고민한 사람도 많다. 모처럼 집에서 시간을 보내면서도, 명절 내내 쏟아지는 특선 영화 중 무엇을 볼지 선택의 고민에 빠진다. 이번 설처럼 수요일에 연휴가 끝나면 남은 목요일과 금요일에 휴가를 내고 주말까지 내리 쉴까 고민하게 된다.
인생에 몇 번 찾아오지 않거나 큰돈이 들어가는 일은 선택하기가 더욱더 쉽지 않다. 따져야 할 것도 많고, 선택한 이후에 후회하지 않을지 수없이 앞일을 예측해야 한다. 결혼 상대방을 고르는 일이나, 아이를 가지는 일, 집을 사는 일 등이 그렇다.
집 다음으로 돈이 많이 드는 자동차 구매도 빼놓을 수 없다. ‘결정 장애’라는 말을 쓸 정도로 선택의 갈림길에 서게 된다. 하나만 결정하고 끝이면 좋으련만 선택해야 하는 요소가 수도 없이 튀어나온다. 그나마 다행은 영화 속 한 장면처럼 시한폭탄을 막기 위해 몇십 초 내에 파란 선과 빨간 선 중 어느 하나를 선택해 잘라야 하는 급박한 상황이 아니라는 점이다. 물론 시간이 길어지면 그만큼 고민도 깊어지지만...
자동차를 살 때 하는 고민은 꽤 많다. 연비 좋은 디젤이냐 조용한 가솔린이냐, 납작한 세단이냐 껑충한 SUV냐, 비용 덜 드는 기본형이냐 후회하지 않을 풀옵션이냐, 무난한 중형차냐 돈 조금 더 보태더라도 준대형차냐, 깔끔한 흰색 차냐 광택이 끝내주는 검은색 차냐 등... 보험사는 어디로 할지, 영업사원이 주는 선물은 무엇으로 받을지, 인수는 탁송으로 할지 출고사무소에서 받을지, 틴팅은 어느 제품으로 할지 등 선택은 끊임없이 이어진다.
수많은 선택 상황에 놓이지만 요즘 차를 살 때 가장 고민하는 문제는 국산차와 수입차 중에 무엇을 사느냐가 아닌가 싶다. 수입차를 택하는 이유는 국산차와 다른 새로운 차를 타고 싶은 욕구, 성능이나 기술의 다양성, 해외 브랜드 경험 등 다양하다. 수입차 대중화가 이뤄져서 주변 사람들 대부분이 수입차를 사는 듯 보이지만 따지고 보면 그렇지도 않다. 우리나라 수입차 점유율은 대략 20% 정도로, 구매자의 상당수인 80%는 여전히 국산차를 선택한다. 수입차 점유율이 어디까지 높아질지는 정확히 예측할 수 없지만 높게 잡아야 30% 선이다. 앞으로도 10명 중 7명은 국산차를 산다는 뜻이다.
국산차를 사는 이유 역시 수입차를 선택하는 이유만큼 다양하다. 수입차와 비교한다면 예산 범위에 맞는 가격, 유지와 관리의 용이성, 높은 가성비 등이 주요 이유다. ‘돈 있으면 수입차로 넘어간다’는 사람도 많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국산차가 홈그라운드의 이점이 크기 때문에 여전히 대부분의 구매자는 국산차를 선택한다. 수입차 대중화가 상당히 이뤄지는 동시에 국산차에 대한 인식도 많이 바뀌었다. 과거에는 ‘수입차는 좋고 국산차는 나쁘다’는 인식이 컸지만 지금은 국산차도 수준이 높아졌다는 인식이 퍼졌다. 꼭 수입차를 사겠다는 사람이 늘어난 반면, 국산차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여전히 많다.
실제로 중형 이하는 여전히 국산차의 경쟁력이 높다. 수입차와 국산차 격차가 벌어지는 곳은 중형 이상 고급차 분야다. 우리나라 수입차 시장은 대중차보다는 고급차가 강세를 보이기 때문에 대중차 위주인 국산차가 열세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런 상황도 이전과 달리 많이 바뀌었다. 국산차도 고급차 전용 브랜드가 나오고, 일반 모델도 고급화가 이뤄지면서 수입차와의 차이가 현격하게 줄어들었다.
사실 국산차와 수입차는 일대일 비교가 쉽지 않다. 물 건너 온 차와 국내에서 만든 차 사이에는 각각 침범하기 힘든 고유한 영역이 존재한다. 수입차가 성능이나 브랜드 인지도에서 앞선다고 무조건 우세하지도 않다. 국산차는 국산차대로 수입차가 따라오지 못하는 장점이 있다. 특히 차급과 가격의 상관관계에서 생기는 국산차의 장점은 꽤 많다. 같은 차급이라면 가격이나 제원, 기능 등에서 국산차가 앞선다. 가격이 같다면 수입차 살 돈으로 한 등급 높은 국산차를 살 수 있다. 요즘에는 완성도가 높아져서 국산차의 제품 경쟁력이 더 향상됐다. 수입차가 영향력을 넓히는 상황에서도, 여전히 국산차를 살지 수입차를 살지 선택의 고민에 빠지는 이유다.
기아 K9을 예로 들어보자. 길이가 5m가 넘는 대형 세단이자 기아자동차의 기함이다. 국산 세단 중에서는 제네시스 G90 살짝 아래 자리 잡은 최상위 그룹에 속하는 모델이다. 가격은 5,000만 원대 중반에서 9,000만 원대 초반까지 아우른다. 엔진은 V6 3.8L 315마력, 3.3L 터보 370마력, V8 5.0L 425마력 세 가지. 수입차와 비교하면 크기와 엔진 라인업으로는 대형 세단 급이고, 가격으로 따지면 중형이나 준대형 고급 세단 급에 속한다. 위아래로 대응 범위가 은근히 넓다. 수입차냐 국산차냐를 놓고 고민하게 하는 차다.
아메리칸 럭셔리카, 캐딜락 CT6
출처 : 캐딜락 이론상 크기로 치면 메르세데스-벤츠 S클래스나 BMW 7시리즈와도 경쟁 관계로 놓을 수 있지만, 냉정히 따지면 가격(가장 아래급이 1억3,000만 원대)이나 브랜드 파워 면에서 맞상대하기에는 쉽지 않다. 현실적으로 눈을 돌리면 고급 대형 세단 중에서는 6,000~9,000만 원대 캐딜락 CT6, 8,000만 원대 링컨 컨티넨탈과 경쟁할 만하다. 준대형급인 메르세데스-벤츠 E클래스나 BMW 5시리즈, 아우디 A6 등과는 차급은 다르지만 가격대에서 겹친다. K9이 오너드리븐과 쇼퍼드리븐 성격을 동시에 갖춘 반면 준대형 고급 세단은 오너드리븐 성격이 강하다. 그렇지만 K9이 오너드리븐 용으로도 잘 어울리기 때문에 성격 차이는 그리 크지 않다. 비슷한 가격에 좀 더 크고 다양한 기능을 갖춘 차를 원한다면 K9으로 넘어가는 일도 고려해볼 만하다.
K9의 강점은 대형 세단이지만 쇼퍼드리븐은 물론 오너드리븐 용으로도 잘 어울리는 콘셉트다. 2세대로 넘어오면서 세련되게 바뀐 스타일도 호감이 가고, 고급스럽게 다듬은 실내도 만족도가 높다. 기함 급에 맞게 갖춘 각종 안전 및 편의장비는 ‘없는 기능이 없다’라고 할 정도로 풍성하다. 수입차 못지않은 매력 요소를 갖췄고, 특히 가성비나 전국적인 네트워크를 바탕으로 한 편리한 정비 면에서는 수입 경쟁차를 멀찌감치 앞선다. 특히 K9의 반자율주행 성능은 프리미엄 수입차와 비교하더라도 우세한 세계 최고 수준을 뽐낸다.
국산차는 수입차와 비교해서 늘 가격 대비 가치가 주목받았지만, 요즘은 성능이나 디자인, 기능 등 여러 다른 요소로 높은 평가를 받는 차들이 늘고 있다. K9 역시 ‘비슷한 가격에 살 수 있는 수입차보다 한 등급 높은 차’라는 것은 여러 장점 중 하나일 뿐이다. 차 자체로만 놓고 봐도 수입차 대신 선택할 가치가 충분한 차다. 선택은 늘 복잡하고 머리 아픈 일이지만, 잘 만든 국산 고급차는 당신의 고민을 덜어줄 수 있을 것이다.
자동차 칼럼니스트 임유신 (월간 <탑기어> 한국판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