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되는 법에 대한 열풍을 불러일으킨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 시리즈가 출판된 이후로 우리 사회에는 부자가 되고 싶어하는 열망을 가진 사람들이 많아졌고, 좀 지나자 10억 만들기 광풍이 만들어졌으며 급기야 관련 토픽을 소재로 하는 동명의 보드 게임까지 만나볼 수 있게 되었다.
명분보다는 실리가 중요하다고, 일단 먹고는 살아야겠기에 제목만으로 손이 가게 만드는 책을 만드는 것이 출판계의 대세지만서도 평소 부자되기 스킬배우기류에 대해 지극한 혐오심을 가지고 있어 부자 아빠 시리즈 하나 들춰본 적도 없는 내가 시간에 쫓기어 눈감고 집어온 책이 지은이의 의도와는 전혀 관련없게도 이러한 부자 열풍에 기대어 한 몫 잡아보려는 상술에 기반한 책이었다는 것이 다소 불쾌했음을 숨길 수 없다. 인터넷을 보면 알 수 있다. 그 수많은 온라인서점에서는 한 목소리로 이 책을 '부자의 돈버는 비밀을 알려주는 책'으로 소개해 왔었다.
그러나 이 책은 다큐물이다. 만석꾼 경주 최씨 집안이 10대 300년에 걸쳐 어떻게 재산을 만들고, 지켜왔는지를 보여주는 기록물이다. 통사적 구성이 아닌, 특정한 관점에 특정한 사건에 대처하는 처세/경영법이 일화로 소개되며, 그에 대한 평가를 경영/사회적 관점에서 평가한다.
현대인들이 원하는 부자되는 방법, 즉 경영학적 관점에서 뽑아낼 수 있는건 다음과 같다. 노사관계를 잘 관리하라. 예산관리해라. 근검하게 생활해라. 1등이 되지 않더라도 그만큼 노력한다.
처세에 관련된 사항도 심심치 않다. 정경유착하지 마라. 정당한 방법으로 재산을 불려라. 자신을 낮춰 상대의 경계심을 푼다. 군림하지 않는다.
대부분은 나눔의 철학과 관련된 가르침들이다. 받은 만큼 사회에 환원한다. 재산은 만석 이상 가지지 않는다. 주위사람을 항상 후하게 대접하라. 사방 백리에 굶는 사람이 없도록 하라.
쓸데없는 부분도 있다. (막연히) 벼슬과 재산은 상극이다. 최남선과 김성수는 애국자다. 친일화되는 것을 피할 수 없었다 등.
읽어본 사람은 알겠지만 결국 이 책이 말하고 싶어하는 건 '노블레스 오블리주'로 정리된다. 부자는 자고로 사회적 책임을 다해야 한다는 거다. 이 책의 반 이상이 그러한 내용을 일화의 형식을 빌려 길게 풀어쓰고 있다. 최씨부자의 기반을 다진 최진립의 의병활동으로부터 시작하여, 소작농에 대한 소출 인하, 흉작기 창고 방출 등을 거쳐 마지막 부자 최준대에 시행된 교육사업(현 영남대학 건립)으로 끝난다.
이러한 '나눔의 철학'이 경영철학으로 생각되어진다면 문제는 없다. 그러나 내가 보기엔, 수많은 서평과 소개에서 떠들어댄 부자되는 방법을 이 책에서 찾기는 어렵다. '나눔의 철학'은 부자가 되기 위한 필요조건은 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충분조건은 되지 못하기 때문일게다. 부자가 되는 과정에서 나눔의 철학을 실천하며 부자되긴 어려운거다. 더우기 머리말에서 보여지는 지은이가 의도한 바도 경주 최씨부자의 정신을 존경하고 본받으라는 것이지 결코 부자되라는 비법을 알려주는 것이 아니다. 결국 이 책은 부자되는 법이 아니라 한 부자가문이 계승해왔던 처세/경영술의 누적에 대한 기록물이다.
책을 읽은 최종의 느낌은 너무 나이브하다는거다. 명색이 실용서로 분류되고 있는데, 일반 회사원들이 생활접목을 위해 도출할수 있는 교훈이라는 것이 없다. 죄다 특이한 관점없이 모두가 알고 있는 너무나 당연한 것들 뿐이다. 또한 나눔의 철학과 부의 상관관계에 대한 인과관계도 굉장히 미약해 그들만의 '비밀'을 밝히기엔 고민의 농도가 너무 연하다. 그렇다고 공동체적 사회를 만들자는 주장도 결코 아니다. 포인트가 '최부자집' 관점에 국한되어 국소적으로 진행되는걸 보면 쉽게 알게 된다. 만일 책을 집필한 원인이 실용적 측면이 강하다면, 무엇을 위한것인지에 대한 답을 얻기가 상당히 난해해지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