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그처럼 찬란했던 광채가
이제 눈 앞에서 영원히 사라졌다한들 어떠하리
초원의 빛, 꽃의 영광 어린 시간을
그 어떤 것도 되돌려놓을 수 없다한들 어떠하리
우리는 슬퍼하지 않으리, 오히려
뒤에 남은 것에서 힘을 찾으리라
지금까지 있었고 앞으로도 영원히
있을 본원적인 공감에서
인간의 고통으로부터 솟아나
마음을 달래주는 생각에서
죽음 너머를 보는 신앙에서
그리고 지혜로운 정신을 가져다 주는 세월에서.
― 윌리엄 워즈워드, 〈초원의 빛〉 중에서
□ 영화관 밖에서 영화처럼
어린 시절에는 누구나 풀 한 포기, 꽃 한 송이 속에서도 장려함과 영광을 찾는다. 하지만 우리가 자라면서 환상은 일상의 빛 속으로 서서히 사라진다. 1961년 제작된 영화 〈초원의 빛〉은 1920년대 캔자스의 작은 마을에서 일어나는 한 남녀의 사랑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첫사랑의 추억을 간직하는 사람에게 이 영화는 잔잔한 감동과 애틋함이 가슴 절절히 다가올 것이다. 특히 첫사랑이자 한때 연인이었던 윌마와 버드가 재회하는 마지막 장면은 두고두고 보아도 애잔하고 뭉클하다.
결혼을 앞둔 윌마는 첫사랑의 추억이 서린 버드의 농장을 찾아간다. 재회한 두 사람은 여전히 서로를 사랑하지만 이미 서로 다른 길에 서 있기에 그 마음을 묻기로 한다. 작별인사를 하고 돌아서 나가는 윌마를 불러 세운 버드는 “잘 가.”라고만 말할 뿐이다. 그때 기다렸다는 듯이 애절한 눈빛으로 돌아보는 윌마의 낙담한 표정이란. 버드와의 짧은 만남을 끝으로 되돌아가는 초원길에서 윌마는 하얀 드레스를 휘날리며 마음속으로 워즈워드의 시 〈초원의 빛〉을 읊조린다. 서서히 멀어져 가는 농장의 풍경 속에 〈초원의 빛〉 한 구절이 흐르는 이 장면의 애틋함은 더 이상 말로는 표현이 불가능하다.
이 시는 〈어린 시절을 회상하여 영생불멸을 깨닫는 노래〉라는 208행에 걸친 송시의 일부분이다. 워즈워드는 이 시에서 어린 시절에 보는 사물은 모두 꿈같은 생기와 광휘에 싸여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성장하면서 그 ‘찬란한 빛’을 잃어가는 현실을 안타까워한다. ‘젊음의 상실은 곧, 모든 경험을 둘러싸고 있는 생기와 광희의 상실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에겐 영원한 상실만이 존재할까. 찬란한 환상을 되찾을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그는 그것을 ‘뒤에 남은 것’이라고 말한다. 그것은 바로 근원적인 공감, 즉 인간의 고통으로부터 솟아나 마음을 달래주는 생각 또는 죽음을 투시하는 믿음이다. 또한 사색하는 마음이 생길 때, 그 속에서 힘을 찾을 수 있다고 한다. 세월이 지나면 고통 속에서 위로를 찾는 방법을 배우고 살아갈 힘을 얻게 되는 것이다.
초원의 빛, 꽃의 영광 어린 시간을 그 어떤 것도 되돌려놓을 수 없다한들 어떠리. 우리는 슬퍼하지 않으리, 오히려 뒤에 남은 것에서 힘을 찾으리라.
여기 적힌 먹빛이 희미해질수록
당신을 향한 내 마음이 희미해진다면
난 당신을 잊겠습니다.
여기 적힌 먹빛이 희미해질수록
당신을 사랑하는 마음이 희미해진다면
이 먹빛이 하얗게 마르는 날
나는 당신을 잊을 수 있겠습니다.
< ‘당신을 행복하게 하는 단 하나의 시, 지치고 힘든 당신에게(조서희, 아마존북스, 2019)’에서 옮겨 적음. (2020.01.23. 화룡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