숯이 되라
상처 많은 나무의 가지가 되지 말고 새들이 날아와 앉은 나무의 심장이되라 내가 끝끝내 배반의 나무를 불태울지라도 과거를 선택한 분노의 불이 되지 말고 다 타고 남은 현재의 고요한 숯이 되라
숯은 밤하늘의 별들이 새들과 함께 나무의 가슴에 잠시 앉았다가 간 작은 발자국 밤새도록 새들이 흘린 눈물의 검은 이슬 오늘 밤에도 별들이 숯이 되기 위하여 이슬의 몸으로 내 가슴에 떨어진다
미래는 복수에 있지 않고 용서에 있으므로 가슴에 활활 격노의 산불이 타올라도 산불이 지나간 자리마다 잿더미가 되어 잿더미 속에서도 기어이 살아남아 화해하는 숯의 심장이 되라 용서의 불씨를 품은 참숯이 되라
내 가슴에 걸어 놓은 '돌아온 탕자'
네덜란드 화가 렘브란트의 그림 '돌아온 탕자'를 늘 가슴에 걸어놓고 산다, 아니. 가슴뿐 아니라 실제로 내 작업실 빈 벽에도 걸어두었다. 책상에 앉아 고개만 들면 그림이 눈에 들어온다. 붉은 망토를 걸친, 두 눈도 잘 보이지 않는, 이미 노인이 된 아버지가 아들의 어깨에 두 손을 얻고 아들을 용서해주는 장면의 그림이다,낡은 신발이 벗겨진 채 남루하기 짝이 없는 아들이 아버지의 가슴에 얼굴을 묻고 용서를 청하고 있는 그림이다. 멀리서든 가까이서든 보면 볼수록 감동적이다.
렘브란트는 〈누가복음〉에 나오는 '탕자의 비유'를 토대로 해서 그 그림을 그렸다. 그 내용을 간단히 정리하면 이렇다. 작은 아들이 부자인 아버지에게 유산을 미리 달라고 한다.아버지는 아들의 청을 받아들여 유산을 미리 준다, 아들은 아버지의 유산을 들고 멀리 다른 지방으로 가서 허랑방탕하게 산다. 그러자 돈이 곧 떨어지고 그해에 흉년이 들어 먹을 게 없게 된다.
돼지들이 먹는 쥐엄나무 열매라도 얻어먹으며 굶주림을 면하자 싶어 남의 집 돼지치기로 살게 된다. 그러나 그 열매조차 제대로 얻어먹지 못하고 굶주림에 허덕인다. 그때 아들은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가자, 아버지의 집에 가면 굶어 죽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미 유산을 받았기 때문에 그냥 돌아갈 수는 없다. 당신의 종이라도 삼아달라고 청하자" 하고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간다.
아버지는 돌아온 아들을 반갑게 맞이한다. 아들이 "당신의 종으로라도 삼아달라"고 말도 하기 전에 "사랑하는 아들아!"하고 껴안고 가문의 반지를 끼워준다. 아들을 용서한 것이다. 아버지는 기쁜 나머지 이웃을 불러 잔치를 벌이다.
그때 큰아들이 "나는 아버지의 집을 떠난 적도 없고 아버지를 위해 지금껏 농사를 지으며 열심히 살아왔는데, 나를 위해서는 돼지 새끼 한 마리 잡아주신 적도 없으면서 저 못된 동생을 위해서는 살진 송아지를 잡고 이웃을 불러 춤을 추고 잔치를 하시다니!" 하고 원망의 말을 쏟아놓는다.
아버지는 큰 아들의 손을 잡고 "나의 것은 다 너의 것이다. 내가 잃었던 아들은 되찾았으니, 죽었던 아들이 다시 살아왔으니 이 아니 지쁘지 않을 수 있겠느냐!" 하고 말한다.
나는 아버지의 이 말씀을 통해 절대적 사랑이 무엇인지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포도밭에 일하러 나온 일꾼들에게 품삯을 똑 같이 주는 예수의 사랑에 대해서도 비로소 이해하게 되었다. 예수는 아침 일찍 포도밭에 온 일꾼이나 오후 늦게 일하러 온 일꾼이나 품삯을 똑 같이 주는 포도밭 주인에 대해 이야기한다. 예전에 나는 예수를 이해할 수 없었다. 만일 나보다 몇년 늦게 입사한 후배나 나나 봉급이 똑 같다면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
그러나 예수는 똑 같이 준다. 심지어 늦게 나온 일꾼에게 먼저 준다. 예수의 사랑 또한 상대적인 사랑이 아니라 절대적 사랑이었던 것이다. 절대적 사랑은 조건과 상황을 따지지 않고 초월한다. 돌아온 탕자에 대한 아버지의 사랑역시 절대적 사랑인 것이다.
렘브란트는 삼십 대 때부터 탕자 이야기에 관한 그림을 동판화로 많이 그렸다. 삼십 대 때 그린 '돌아온 탕자' 그림은 무척 역동적이다. 아버지가 문밖으로 달려 나와 아들을 맞이하는 장면이 있을 정도다. 그러나 만년에 죽기 직전에 그린 이 그림은 무척 정적이고 고요한 가운데 용서의 진정한 의미를 깨닫게 해준다.
나는 이 그림을 성당에서 가끔 보곤 했다. 그런데 20세기의 마지마 영성가로 일컬어지는 네덜란드의 사제 핸리 나우웬이 쓴 《탕자의 귀향》을 읽고 아들을 용서하고 기다리는 아버지의 마음에 큰 감동을 받았다. 핸리 나우웬은 어느 사무실에 포스터로 걸려 있는 '돌아온 탕자'를 처음 본 뒤,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예르마타시 미술관의 허락을 얻어 이틀 동안이나 의자를 놓고 앉아 그림을 감상 했다.
그 때 그는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에서 사랑과 용서를 영성적 측면에서 깊이 묵상했으며, 마침내 '돌아온 탕자'는 우리 자신뿐 아니라 인류 전체의 모습이라고 갈파하고 있다. 헨리 나우웬의 책을 읽고 나도 '돌아온 탕자'를 직접 보고 싶다는 열망에 휩싸였다 때마침 교보문고 주최 문학기행이 러시아 기행이라 나는 오직 그 그림을 보기 위해 러시아로 갔다. 나는 렘브란트의 그림을 가능한 한 빨리 많이 보고 찍기 위해 전자동 소형 카메라까지 새로 샀다.
그런데 정작 커다란 '돌아온 탕자' 앞에 서자 손발이 떨리고 가슴마저 떨려 사진을 제대로 찍을 수 없었다. 렘브란트의 그림을 감상할 수 있는 시간이 십여 분밖에 주어지지 않아 재빨리 스무여 장의 사진을 찍었는데 나중에 보니 제대로 초점이 맞은 사진이 한 장밖에 없었다. 그만큼 렘브란트의 그림을 보는 손간의 감동을 자제할 수 없었던 것이다.
돌아온 탕자는 1668년, 렘브란트가 죽기 전해에 그린 그림이다. 렘브란트의 마지막 그림이라고 한다. 머리가 다 빠진 채 낡아빠진 황갈색 옷차림을 하고, 다 닳아 해진 구두가 벗겨져 상처투성이 발을 드러낸 채, 무릎을 꿇고 아버지의 가슴에 머리를 기대고 있는 아들, 그리고 눈이 반쯤 감긴 늙은 아버지가 그 아들의 어깨에 두 손을 얻고 부드럽게 쓰다듬는모습이 그려져 있다. 아버지는 눈물로 지새우며 아들을 기다리느라 눈이 다 짓물러서 정작 아들을 잘 볼 수 없었다고 한다.
이 그림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아버지의 두 손이다.하나는 남성인 아버지의 손, 또 하나는 여성인 어머니의 손으로 그려져 있다. 아버지의 손은 옷에 주름이 질 만큼 어깨를 움켜쥔 채 아들에게 힘과 용기를 불어넣어주는 힘있는 부성의 손이고, 어머니의 손은 아들의 어깨를 어루만지며 위로해주는 부드럽고 유연한 모성의 손이다.
그림을 제다로 그리려면 두 손 다 남성의 손, 즉 아버지의 손을 그려야 했을 것이다. 렘부렌트는 왜 하나는 부성의 손, 또 하나는 모성의 손으로 그렸을까, 무슨 의도가 있었던 것일까.
나는 이 대조적인 손의 형상을 통해 하느님의 사랑을 보여주는 상징으로서 절대적 사랑을 나타내고 싶었다고 생각한다. 또 인간에게도 절대적 사랑이 존재하며 그것은 모성을 통해서만 이루어진다는 것을 의마하고자 했다고 생각된다. 하느님의 사랑에는 모성적 측면이 있다는 것이 렘브란트의 생각이 아니었을까.
누구나 살다 보면 뜻하지 않게 누구를 용서해야 하고, 뚜 누군가에게 용서를 청해야 한다. 그럴 때 어떤 자세로 용서해야 하고, 어떤 자세로 용서를 청해야 할까. 바로 렘브란트의 그림 속에 있는 아버지와 아들의 자세로 용서를 하고 용서를 청해야 한다.
누구를 용서하지 못한다는 것을 몸속에 총알이 박혀 있는 것과 같다고 한다. 몸속에 총알이 박힌 사람은 즉시 총알 제거 수술을 받어야만 생명을 부지할 수 있다. 그런데 몸속에 총알이 박혀 있으면서도 제거 수술을 받지 않으면 그 사람은 끝내 사망에 이르고 만다. 즉 용서하지 못함으로써 생명을 잃게 되는 것이다. 렘브란트의 '돌아온 탕자' 그림은 어제도 오늘도 내 가슴속에 걸려 있다.
내가 나 자신을 용서하지 못하고 남을 용서하지 못할 때 가끔 그 그림을 꺼내 보고 다시 집어넣는다. 그리고 내가 용서해야 할 일보다 용서받아야 할 일이 더 많지 않은지 성찰해보기도 한다. 진정한 사랑이란 바로 용서하는 사랑이라고, 용서하지 못하면 사랑하지 않는 것이라고, 모든 사랑에는 언제나 용서가 전제돼 있다고, 용서만이 절대적 희망이라고, 렘브란트의 그림 '돌아온 탕자'는 늘 내게 속삭인다.
- 정 호 승의
시가 있는 산문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