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샘별곡 Ⅲ-4]아름다운 사람(36)-내장산수목원 주인은 시민?
어쩌다 <아름다운 사람>를 시리즈로 쓰게 됐을까? 사실은 난데없는 일이었다. 22살에 군대에서 사고로 시력을 잃게 된 고향 후배를 최근 알게 됐는데, 절망하지 않고 끊임없는 노력하는 그의 삶이 아름답다고 느껴, 쓰게 된 것이 이제 36번째에 이르렀다(송경태 사회학박사는 시인이자 책도 여러 권 냈는데, 그보다 장애를 갖고서도 에베레스트를 등반하고 사하라사막 등 세계 4대 극한 마라톤을 완주한 철인이다).
아무튼, 나의 주변을 되돌아보니, 새삼스럽게도 맨 아름다운 사람뿐이었다. 아름다운 인연이든 아름다운 만남이든 아름다운 친구든 ‘아름다운’이라는 수식어는 매한가지일 터. 엊그제 정읍에 사시는 형님의 초대로 아주 훌륭한 친구를 처음 만나, 모처럼 차수를 변경하며 담소를 나눴다. 내가 자주 쓰는 말처럼 ‘인간적으로’ 사귀게 된 친구는 동갑내기로 정읍의 향토사학자를 넘어선 대한민국의 녹록치 않은 역사학자였다(알고보니 칠보 출신으로 내 친구의 친구. 참 세상 좁다). 그동안 역사책만 10여권도 넘게 펴냈으며, 인문학특강을 수백회 한 전문가. 고교 역사선생님 노릇을 20여년 하다 중도하차, 정읍역사문제연구소를 차려 글을 쓰고 전국을 돌며 역사강의를 한다는 것. 최근에 펴낸 『김재영의 역사산책』(2024년 4월 선인 펴냄, 332쪽, 23000원)을 절반쯤 읽고 있는데, 책제목 그대도 ‘역사를 산책하게’ 하는 맛이 났다. 주제도 참으로 다양했다. 박사논문은 <일제강점기 형평운동의 전국 전개과정>. 하지만, 그를 아름다운 사람 주인공으로 내세우려는 것이 아니다.
정읍 형님이 김재영 박사를 만나기 전에 들를 곳이 있다해 간 곳이 <내장산 수목원>과 <내장산 조각공원>. 듣보잡, 처음이다. <내장산 수목원>은 미원그룹(현 대상그룹) 임대홍(1920-2016) 회장이 국가에 기부채납한 내장산 자락의 5만㎡(1만5천평)을 자생수목을 중심으로 관목류와 화초류를 식재하여 수목원으로 조성, 대상문화재단이 무상으로 개방. 운영하고 있다고 한다. 임회장은 25세에 공무원을 그만 두고 모피가공업으로 사업을 번창시키다 일본회사 ‘아지노모도’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조미료 <미원味元>을 개발, 국내 시장을 석권한 굴지의 기업인. 오죽했으면 삼성의 이병철 회장이 미원을 이겨먹으려고 <미풍味豊>을 개발, 추격했으나 끝내 판정패하고 “임 회장을 따라갈 수 없는 세 가지가 미원과 자식농사, 골프”라고 했다는 이야기가 지금껏 회자되겠는가. 아무리 통큰 기업인이래도 5만㎡를 국가에 무상 기증하고, 국민들의 힐링장소로 무료제공하기가 어디 쉬운 일일까? 가을이면 꽃무릇 군락지가 벌겋게 물들어 그런 장관이 없다고 했다. 근처에는 동학농민혁명 100주년기념탑이 내장호를 바라보며 1854cm(1854는 혁명 발발의 해를 상징)의 높이로 서있다. 세계적인 천재 조각가 전수천 작가의 작품. 임회장의 손녀가 재벌3세와 어찌됐다는 둥 하는 가십성 이야기가 무에 중요할까. 임회장은 세상을 뜨는 순간까지 근면검소하여 다른 사람의 귀감이 된 분이다.
우리는 또한 50여년간 조성한 사유림 200여만평(당시 시가 1000억원)의 숲 전체를 2012년 국가(산림청)에 무상으로 기증한 손창근(1929년생) 선생을 기억해야 한다. 용인의 석포숲공원을 걷다 보면 손선생과 그의 부친 손세기 선생의 거룩한 뜻에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손창근 선생은 국보인 추사 김정희의 <세한도歲寒圖>도 국립박물관에 아무 조건없이 기증했다. 진정한 ‘노블레스 오브리제’가 무엇인지를 온몸으로 보여준 부자父子의 이야기가 어찌 아름답지 아니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