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소월 시모음
/산유화/ 산에는 꽃 피네 꽃이 피네. 갈 봄 여름 없이 꽃이 피네. 산에 산에 피는 꽃은 저만치 혼자서 피어 있네. 산에서 우는 작은 새여 꽃이 좋아 산에서 사노라네. 산에는 꽃이 지네 꽃이 지네.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 갈 봄 여름 없이 꽃이 지네. 봄가을 없이 밤마다 돋는 달도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 이렇게 사무치게 그리울 줄도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 달이 암만 밟아도 쳐다볼 줄을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 이제금 저 달이 설움인 줄은예전엔 미처 몰랐어요.
/진달래 꽃/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말없이 고이 보내 드리오리다. 영변에 약산 진달래 꽃아름 따다 가실 길에 뿌리오리다. 가시는 걸음걸음 놓인 그 꽃을 사뿐이 즈려 밟고 가시옵소서.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오리다.
/가는 길/ 그립다 말을 할까 하니 그리워 그냥 갈까 그래도 다시 한 번, 저 산에도 까마귀, 들에 까마귀 서산에는 해 진다고 지저귑니다. 앞 강물 뒷 강물 흐르는 물은 어서 따라 오라고 따라 가자고 흘러도 연달아 흐릅디다요.
/개여울/ 당신은 무슨 일로 그리합니까? 홀로 이 개 여울에 주저앉아서 파릇한 풀 포기가 돋아 나오고 잔물은 봄바람에 해적일 때에 가도 아주 가지는 않노라 시던 그러한 약속이 있었겠지요, 날마다 개 여울에 나와 앉아서 하염없이 무엇을 생각합니다. 가도 아주 가지는 않노라 심은 굳이 잊지 말라는 부탁인지요,
/금잔디/ 잔디 잔디 금잔디, 심심(深深) 산천에 붙는 불은 가신 님 무덤 가에 금잔디, 봄이 왔네, 봄빛이 왔네. 버드나무 끝에도 실가지에, 봄빛이 왔네, 봄날이 왔네. 심심 산천에도 금잔디에,
/길/ 어제도 하루 밤 나그네 집에 가마귀 가왁가왁 울며 새었소. 오늘은 또 몇 십 리 어디로 갈까, 산으로 올라갈까 들로 갈까, 오라는 곳이 없어 나는 못 가오. 말 마소, 내 집도 정주 곽산 차 가고 배가는 곳이라오. 여 보소, 공중에 저 기러기 공중엔 길 있어서 잘 가는가? 여 보소, 공중에 저 기러기 열 십자 복판에 내가 섰소. 갈래갈래 갈린 길 길이라도 내게 바 이 갈 길은 하나 없소. 나는 세상 모르고 살았노라. 가고 오지 못한다'하는 말을 철없던 내 귀로 들었노라. 만수산(萬壽山)을 올라서서 옛날에 갈라선 그 내님도 오늘날 뵈올 수 있었으면 나는 세상 모르고 살았노라. 고락에 겨운 입술로는 같은 말도 조금 더 영리하게 말하게도 지금은 되었건만. 오히려 세상 모르고 살았으면! '돌아서면 무심타'고 하는 말이 그 무슨 뜻인 줄을 알았으랴.
제석 산 붙는 불은 옛날에 갈라선 그 내님의무덤엣 풀이라도 태웠으면!
/먼 후일/ 먼 훗날 당신이 찾으시면 그 때의 내 말이 잊었노라. 당신이 속으로 나무라면 무척 그리다가 잊었노라. 그래도 당신이 나무라면 믿기지 않아서 잊었노라. 오늘도 어제도 아니 잊고 먼 훗날 그때에 잊었노라.
/못잊어/ 못 잊어 생각이 나겠지오. 그런 대로 한 세상 지내시구료. 사노라면 잊힐 날 있으리다. 못 잊어 생각이 나겠지오. 그런 대로 세월만 가라시구려. 못잊어도 더러는 잊히오리다. 그러나 또 한껏 이렇지요 그리워 살뜰히 못 잊는데 어쩌면 생각이 떠지나요?
/산/ 산새도 오리나무 위에서 운다. 산새는 왜 우노 시메 산골 영 넘어 갈려고 그래서 울지 눈은 내리네 와서 덮이네. 오늘도 하룻길은 칠팔십 리 돌아서서 육십 리는 가기도 했소. 불귀(不歸) 불귀 다시 불귀 삼수갑산에 다시 불귀 사나이 속이라 잊으련만 십 오 년 정분을 못잊겠네. 산에는 오는 눈, 들에는 녹는 눈, 산새도 오리나무 위에서 운다. 삼수 갑산 가는 길은 고개의 길,
/초혼/ 산산히 부서진 이름이여! 허공 중에 헤어진 이름이여! 불러도 주인 없는 이름이여!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여! 심중에 남아 있는 말 한 마디는 끝끝내 마저하지 못하였구나. 사랑하는 그 사람이여! 사랑하는 그 사람이여! 붉은 해는 서산 마루에 걸리었다. 사슴의 무리도 슬피 운다. 떨어져 나가 앉은 산 위에서나는 그대의 이름을 부르노라. 설움에 겹도록 부르노라. 설움에 겹도록 부르노라. 부르는 소리는 비껴가지만 하늘과 땅 사이가 너무 넓구나. 선 채로 이 자리에 돌이 되어도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여!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