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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講解(35) 사도바울의 슬픔
로마서 9장 1-5절
➤“1. 내가 그리스도 안에서 진실을 말하고 거짓말을 하지 아니하노라. 내 양심도 [성령님] 안에서 나에 대해 증언하거니와 2. 내게는 마음속에 큰 근심이 있고 계속해서 슬픔이 있노라. 3. 육체에 따른 내 형제들, 내 친족들을 위해서라면 차라리 내 자신이 그리스도로부터 저주받기를 바랄 수도 있으리니 4. 그들은 이스라엘 사람들이니라. 그들에게는 양자 삼으심과 영광과 언약들과 율법을 주심과 [하나님]을 섬김과 약속들이 속해 있고 5. 조상들도 그들의 것이요, 육체에 관한 한 그리스도께서도 그들에게서 나셨으니 그분은 모든 것 위에 계시며 영원토록 찬송 받으실 [하나님]이시니라. 아멘.”(롬9:1-5 KJV)
로마서 9장에서 11장은 로마서의 절정입니다 로마서 1장부터 8장까지가 서론이요. 12장부 터 16장까지가 결론이라고 말한다면 로마서 9장부터 11장까지는 본론입니다. 그러나 많은 주경학자들은 이 부분을 소홀히 했습니다. 그들은 로마서 1장부터 8장만 중요하게 생각을 했지 9장부터 11장에 나타난 놀라운 하나님의 경륜과 섭리를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로마서 1장부터 8장에는 어떻게 구원을 받았는가? 구원이 무엇인가? 어떻게 구원을 얻는가? 하는 종교개혁을 일으킬만한 위대한 교리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 교리가 한 개인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이 구원이 온 우주에 전 인류에 완성되는가? 하는 내용이 9장부터 11장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 위대한 장을 자신의 개인적인 고통으로부터 시작합니다.
유대민족의 슬픔
사도 바울에게는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후 영광과 기쁨 감격이 있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 8장 35-36절에서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35,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떼어 놓으리요? 환난이나 곤경이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벌거벗음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36, 이것은 기록된바, 우리가 종일토록 주를 위해 죽임을 당하며 도살당할 양같이 여겨졌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이처럼 복음의 승리 감격을 이야기 한 사도 바울은 동시에 자신에게 말할 수 없는 고통이 있다고 합니다. 이것은 자신의 동족이요 골육의 친척인 이스라엘이 복음을 거부하고 그리스도를 거부하기 때문에 겪는 고통입니다. 이런 이유 때문에 사도 바울이 겪는 고통은 분노가 아니라 아픔이요. 저주가 아니라 애통에 가까웠습니다.
1-2절을 함께 보시겠습니다. ➤“1. 내가 그리스도 안에서 진실을 말하고 거짓말을 하지 아니하노라. 내 양심도 [성령님] 안에서 나에 대해 증언하거니와 2. 내게는 마음속에 큰 근심이 있고 계속해서 슬픔이 있노라.”
사도 바울은 마음에 그치지 않는 고통이 있다고 했습니다. 사람마다 다 고통이 있습니다. 병들어서 고통을 받고 먹을 것이 없고 집이 없어 고통을 받으며 결혼을 해서 고통을 받고 이혼을 해서 고통을 받습니다. 사도 바울은 나에게 그치지 않는 한 고통이 있는데 이것은 먹을 것이 없거나 실패해서 겪는 고통 병들어서 받는 고통도 아니라. 이 고통은 나의 동족 나의 민족 골육의 친척이 예수 그리스도를 거부하고 하나님을 믿지 않는 고통이다. 라고 말합니다. 이 고통은 그리스도를 알면 알수록 커지는 고통이요. 이 고통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 커지는 고통입니다.
사도 바울의 고통을 두 가지 예를 들어 설명하겠습니다. 어떤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를 알게 되었습니다. 매우 기뻤습니다. 그는 자신만 그 기쁨을 누릴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전도를 했습니다. 그리고 자기에게 전도를 받은 사람들은 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었습니다. 이 사람은 나중에 목사가 되고 선교사가 되었습니다. 주님을 위해 일을 합니다.
그런데 막상 자신의 부모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습니다. 자기 자식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습니다. 자기가 사랑하는 아내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습니다. 이 사람의 고독과 고통을 아시겠습니까? 다른 사람은 다 믿고 복을 받는데 왜 내 집안 식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가? 하는 고통입니다.
또 다른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어떤 사람이 형편이 어려운 학생에게 장학금을 주었습니다. 그 학생은 장학금을 아껴서 공부를 합니다. 2끼 밥을 먹으며 공부를 해서 정말 훌륭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자기 자식은 아무리 잘 해주어도 비뚤어 나가고 공부도 하지 않고 싸움을 하다 살인을 해서 결국 감옥에 갑니다. 사도 바울의 고통은 이런 자식을 둔 부모의 고통과 같습니다. 이 부모는 남의 자식이 잘된다는 소리를 들을수록 고통스럽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잘 믿을수록 고통스럽습니다. 자기 식구들은 믿지 않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것이 사도 바울의 고통이었습니다. 차라리 내가 저주를 받더라도 내 가족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을 받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차라리 내가 예수님에게 쫓겨난다 하더라도 내 자식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을 받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사도 바울은 이런 고통을 토로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후
사도 바울은 예수님을 싫어했습니다. 그는 [예슈아]는 사기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예수님을 핍박하기로 결심했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을 잡아서 감옥에 넣고 죽이는데 앞장섰습니다. 그는 그만큼 율법에 열심이 있었고 하나님에 대하여 열심이 있었습니다. 그러던 사도 바울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을 잡으러 다마스쿠스로 가는 도중에 예수 그리스도를 만납니다.
➤“3. 사울이 길을 가다가 다마스쿠스에 가까이 이르렀을 때에 갑자기 하늘로부터 빛이 나와 그를 둘러 비추더라. 4. 그가 땅에 쓰러져 들으매 한 음성이 있어 그에게 이르시되, 사울아, 사울아, 어찌하여 네가 나를 핍박하느냐? 하시거늘 5. 그가 이르되, [주]여, 누구시나이까? 하니 [주]께서 이르시되,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라. 가시 채를 걷어차기가 네게 고생이라, 하시거늘 6. 그가 떨며 놀라 이르되, [주]여, 내가 무엇을 하기 원하시나이까? 하매 [주]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도시로 들어가라. 그러면 네가 반드시 해야 할 일을 듣게 되리라, 하시니라.”
그 순간 사도 바울은 빛을 만나고 시력을 잃어버립니다. 그는 사람들의 손에 이끌려 다마스쿠스로 갑니다. 그곳에는 준비된 사람이 있었습니다. [아나니아] 라는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사도 바울에게 안수를 해줍니다. 사도 바울이 눈을 떴습니다. 그가 눈을 떴을 때 그는 그리스도에 대해 눈을 떴습니다. 눈을 떴을 때 그는 구원에 대해 눈을 떴습니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는 [메시아] 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자기가 죽이려고 했던 그렇게 핍박했던 그분이 모든 인간의 죄를 용서하기 위하여 하나님이 보낸 메시야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때부터 사도 바울의 인생은 180도 뒤집어지기 시작합니다. 저는 여러분의 생애가 이렇게 뒤집어지기를 바랍니다. 과거에는 예수 그리스도 믿는 사람과 교회를 핍박했을지라도 이제는 눈을 떠서 그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이요, 메시야요 나를 위하여 십자가에 피 흘려 돌아가셨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사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후에야 인간의 노력이나 종교적인 행위나 인간의 의지나 방법으로는 구원받을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니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 한다. 종교를 가진 유대인이나 종교를 갖지 못한 이방인이나 다 마찬가지로 죄인이다. 하나님 앞에서는 의인이 한사람도 없다. 스스로 구원받을 수 있는 인간은 하나도 없다.
사도바울이 인간의 실존에 대해 눈을 뜨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인간은 마귀의 자식이며 구원을 받아야 하는 존재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구원하기 위하여 그의 아들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주신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로마서 5장 ➤“7. 의로운 사람을 위해 죽으려는 자가 거의 없고 선한 사람을 위해 감히 죽고자 하는 자가 혹 있거니와 8. 우리가 아직 죄인이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한 자신의 사랑을 당당히 제시하시느니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우리를 해방하셨다.” 예수 그리스도가 내 죄를 용서해 주었고 예슈아는 하나님의 아들이었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는 이 영광스럽고 놀라운 진리를 그는 알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순간 병이 떠나가고 귀신이 떠나가고 어둠의 세력이 떠나가고 절망이 떠나가는 것을 경험하기 시작했습니다.
이것이 로마서 1장부터 8장까지의 내용입니다.
하지만 사도 바울이 예수 그리스도는 나의 구원이요, 나의 기쁨이요, 나의 소망이요, 나의 복이라는 것을 깨달은 순간, 그의 마음 깊은 곳에는 슬픔과 고통이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나는 이렇게 구원을 받았는데 내 가족은 어떻게 하면 좋단 말인가?”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만큼의 고통입니다. 받는 복만큼의 슬픔입니다.
같이 복을 받으면 좋겠는데 우리나라는 복을 받았지만 다른 나라는 어떻게 하지? 내 가족은 어떻게 하지?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몰라서 다 지옥에 갈 것인데? 하룻밤에 몇 천명, 몇 만명이 지옥에 가는데 누가 저걸 막지 이런 생각이 사도 바울의 영혼을 고통스럽게 만들었습니다. “나는 끊어질지라도” 이런 마음을 가진 사람은 바울만이 아닙니다. 구약성경을 보면 그런 심정을 가진 사람을 볼수 있습니다. 모세는 그 심정을 가진 사람들 중의 하나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집트에서 끌어내셨습니다. 이집트에 열 가지 재앙을 내리시고 홍해를 건너서 광야로 오게 하셨습니다. 사막같이 살 수 없는 곳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먹을 것을 주셨습니다. 만나를 주셨고 물이 없는 곳에서는 샘물을 주셨습니다. 낮에는 더위를 피하게 하기 위해 구름기둥을 주셨고 밤에는 추위를 피하게 하기 위해 불기둥을 주셨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인도하셨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 감사다고 하지 않았습니다. 도리어 작은 일에 원망하고 불평했습니다. 결국에는 아론과 공모하여 금송아지를 만들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진노하셨습니다. “내가 돌격하리라‘ 한 순간에 쓸어버리리라!” 모세도 황당하였습니다. 얼마나 분하고 화가 났던지 그는 하나님께 받은 율법이 새겨진 돌판을 땅에 던져서 깨버렸습니다. 그러면서도 모세는 다시 산에 올라가 하나님께 무릎을 꿇고 이렇게 기도합니다.
➤탈출기 32장 31-35절입니다. “30. 다음 날 모세가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가 큰 죄를 지었도다. 내가 이제 {창조주}께로 올라가리니 아마도 너희 죄로 인해 내가 속죄하여야 하리라, 하고 31. 모세가 {창조주}께로 돌아가 아뢰되, 오 이 백성이 큰 죄를 짓고 자기들을 위해 금으로 신들을 만들었나이다. 32. 그러나 이제 주께서 그들의 죄를 용서하시옵소서. 그리하지 아니하시려면 원하건대 주께서 기록하신 주의 책에서 나를 지워 버리소서. 하니 33. {창조주}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내게 죄를 지으면 내가 그를 내 책에서 지워 버리리라. 34. 그러므로 이제 가서 내가 네게 말한 곳으로 백성을 인도하라. 보라, 내 [천사]가 네 앞에 가리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징벌하는 날에 그들의 죄를 그들에게 벌하리라, 하시니라. 35. {창조주}께서 백성에게 재앙을 내리셨으니 이는 그들이 송아지 곧 아론이 만든 송아지를 만들었기 때문이더라.”
모세도 화가 났지만 우선은 이 죄지은 사람들을 살려야 했습니다. 모세는 하나님께 매달렸습니다. 이것은 엄격한 아버지가 아들을 때릴 때 어머니가 아들을 감싸 안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소돔과 고모라를 멸하시겠다고 했을 때 롯을 기억했습니다. 자신에게 폐만 끼치는 조카였지만 아브라함은 하나님께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 의인 50명이 있어도 그곳을 멸하시겠습니까? 좋다 멸하지 않겠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50명이 안 됩니다. “하나님 의인 40명이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이렇게 10명까지 갑니다. “좋다 의인 명이 있으면 심판하지 않겠다.” 이것이 중보기도자의 마음입니다. “하나님 제가 저주를 받아도 좋습니다. 제가 그리스도에게서 떨어져도 좋습니다. 내 조국. 내 민족 이스라엘을 보호해 주십시오.” 이것이 사도 바울의 마음이었습니다.
이런 마음을 가진 사람이 또 있습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마태복음 23장37절에 주님은 예루살렘을 보면서 우셨습니다. ➤“37. 오!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대언자들을 죽이고 네게 보낸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 암탉이 자기 병아리들을 자기 날개 아래 모음같이 내가 얼마나 자주 네 자녀들을 함께 모으려 하였더냐! 그러나 너희가 원치 아니하였도다. 38. 보라, 너희 집이 버림받아 너희에게 황폐하게 되었느니라.”
여러분 {창조주}의 마음은 이스라엘에 있습니다. 예수님의 마음도 이스라엘에 있습니다. 예수님의 심정은 마치 자기 자식이 타락하고 나쁜 짓을 하며 자신으로부터 멀어지는 것을 보는 부모의 심정과 같았습니다. 예수님은 돌 위에 돌 하나 남지않겠구나! 라고 탄식하시며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예수님은 이외에도 몇 번 우신 적이 있습니다. 요한복음 11장35절에 “35. 예수님께서 우시더라.” 라는 간단한 말씀이 있습니다.
그리고 마태복음 23장에서 예수님이 우셨습니다. 또한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실 때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히브리서 5장7절에는 “심한 통곡과 눈물로 기도했다”는 표현이 있습니다. 여러분은 어느 때에 눈물을 흘리십니까? 어떤 사람은 드라마를 보면서 웁니다. 왜 우십니까? 값 싼 눈물을 흘리지 마십시오. 아무 때나 함부로 눈물을 보이지 마십시오.
이스라엘 하나님의 통로
➤3절을 보십시오. “3. 육체에 따른 내 형제들, 내 친족들을 위해서라면 차라리 내 자신이 그리스도로부터 저주받기를 바랄 수도 있으리니 그들은 이스라엘 사람들이니라.”
우리는 여기서 냉정하게 생각해 봐야할 주제를 만납니다. 그것은 모세나 아브라함이나 바울이 그렇게 눈물을 흘리며 기도할 수 있었던 것은 자신의 조국이요, 자신의 민족이기 때문이 아닌가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이스라엘 사람이기에 예루살렘을 위해 울 수 있지 않겠나? 것입니다.
여러분 이등박문은 일본 사람들에게는 영웅이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아주 나쁜 사람입니다. 반대로 안중근 의사는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영웅이지만 일본 사람들에게는 기분 나쁜 사람입니다. 이렇듯 자기 나라를 생각하는 것은 당연하지 않습니까? 자기 민족을 위해 눈물을 흘리고 죽고 순교하는 것은 어쩌면 마땅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그렇다면 이 사람들이 자기민족을 위해 기도한 것이 뭐가 그리 대수인가는 생각을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과연 그렇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이것은 단지 자기 조국을 위해 눈물을 흘렸기 때문에 귀한 것이 아닙니다.
이것보다 더 깊은 영적인 의미가 이 안에 있습니다. 온 인류를 구원하기 위한 하나님의 섭리와 그에 대한 고통이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살펴보아야 할 부분이 이 부분입니다. 왜 이스라엘 백성들이 메시야를 거부했을까요? 왜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리스도를 거부했을까요? 단순히 그냥 거부한 것일까요? 그러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구원을 받지 못할까요? 여기에는 놀라운 신비와 섭리가 있습니다. 앞으로 이러한 이야기를 듣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택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잘났기 때문에 택하지 않았습니다. 아브라함을 택하신 것은 아브라함이 잘났기 때문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구원의 도구로 쓰기 위하여 아브라함과 이스라엘을 택하신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택함을 받지 않았다면 우리와 별 다른 것이 있었겠습니까? 아브라함이 택함을 받지 못했다면 그도 갈데아 우르의 한 장사꾼에 불과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으로 삼기 위하여 그를 불러 믿음의 사람으로 만들기 시작했고 구원의 도구로 쓰시기 위하여 이스라엘을 만드셨습니다. 문제는 인류가 타락한 것입니다 아담 이후에 모든 인류가 타락했기 때문에 하나님은 독생자를 보내 이 인류를 모두 구원해야만 했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예수님을 세상에 보내야 하는가가 문제입니다. 박혁거세처럼 알에서 깨어나게 해야 할는지 하늘에서 떨어지게 해야 할는지 이 방법이 문제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그처럼 이상한 방법이 아닌 인간과 같은 방법을 택하셨습니다. 여자의 몸을 빌린 것입니다. 그러나 남자의 씨가 아닌 성령으로 하여금 잉태 하게 했습니다.
하나님은 한 인간이 어머니 뱃속에서 자라는 모든 과정을 예수님이 똑같이 겪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이 여자 하나를 위하여 오래 전부터 한 사람을 택했습니다. 그 사람이 아브라함입니다. 한 민족을 택했습니다. 그 민족이 이스라엘입니다 한 국가를 택했습니다. 그 국가가 다윗의 국가입니다. 육신적으로는 아브라함과 다윗으로부터 예수님이 태어나셨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메시야가 태어날 수 있도록 길을 만드신 것입니다.
드러나는 비밀
그럼 이스라엘은 무엇입니까? 이스라엘은 세례 요한이 예수님의 길을 준비했듯이 메시야가 태어나도록 돕는 역할을 했습니다. 그래서 3-5절을 보면 이 이스라엘이 얼마나 많은 복을 받았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3. 육체에 따른 내 형제들, 내 친족들을 위해서라면 차라리 내 자신이 그리스도로부터 저주받기를 바랄 수도 있으리니 4. 그들은 이스라엘 사람들이니라. 그들에게는 양자 삼으심과 영광과 언약들과 율법을 주심과 [하나님]을 섬김과 약속들이 속해 있고 5. 조상들도 그들의 것이요, 육체에 관한 한 그리스도께서도 그들에게서 나셨으니 그분은 모든 것 위에 계시며 영원토록 찬송 받으실 [하나님]이시니라. 아멘.”
첫째,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에게 양자가 되는 복을 주셨습니다. 특별한 백성으로 만드신 것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많은 민족 중에 이스라엘을 택하셔서 양자로 삼으셨습니다. 이런 복을 주셨습니다. 이렇듯 성경 곳곳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얼마나 사랑하는지를 발견하게 됩니다.
탈출기 4장21-22절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21 {창조주}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네가 가서 이집트로 돌아가거든 내가 네 손에 둔 그 모든 이적들을 파라오 앞에서 행하라. 그러나 내가 그의 마음을 강퍅하게 할 터인즉 그가 백성을 가게 하지 아니하리니 22. 너는 파라오에게 이르기를, {창조주}가 이같이 말하노라. 이스라엘은 내 아들 곧 나의 처음 장자(長子)니라.”
➤신명기 14장 1-2절입니다. “1. 너희는 {창조주} 너희 [하나님]의 자녀이니 죽은 자들을 위하여 너희 몸을 베지 말며 너희 눈 사이에 털을 밀지 말라. 2. 너는 {창조주} 네 [하나님]께 거룩한 백성이니 {창조주}께서 땅 위의 모든 민족들 위로 너를 높여 자신에게 특별한 백성으로 택하셨느니라.”
➤호세아 11장1절. “1. 이스라엘이 아이였을 때에 내가 그를 사랑하였고 내 아들을 이집트에서 불러내었노라.”
둘째,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양자로 삼으셨을 뿐만 아니라 영광을 주셨습니다. 이스라엘을 영화롭게 만들어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소유된 백성으로서 물 붓듯이 복을 쏟아 부어 주셨습니다. 여러분 이스라엘이 나라도 없이 방황하면서도 많은 노벨상을 휩쓴 것을 아실 것입니다. 또한 굉장한 부자나라입니다. 그들이 메시야를 거부했을지라도 하나님의 영광은 그들 가운데 있습니다. 그러니 그들이 하나님을 영접하면 그 영광이 얼마나 크겠습니까?
셋째, 하나님은 우리에게 언약을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과 특별한 계약을 맺었습니다. 첫째 계약은 아브라함과 맺었습니다. ➤“13. 그분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확실히 알라. 즉 네 씨가 자기들의 소유가 아닌 땅에서 나그네가 되어 그들을 섬기겠고 그들이 사백 년 동안 그들을 괴롭히리라. 14. 또한 그들이 섬길 그 민족을 내가 심판하리니 그 뒤에 그들이 큰 재물을 가지고 나오리라. 15. 너는 평안히 네 조상들에게로 가겠고 또 충분히 나이 들어 묻힐 터이나 16. 그들은 네 세대 만에 여기로 다시 오리니 이는 아모리 족속의 불법이 아직 충만하지 아니하기 때문이라, 하시니라.”(창15:13-16)
둘째는 모세와 맺었습니다. 하나님은 또 다윗과 계약을 맺었습니다. 다윗의 자손에서 메시야가 나올 것을 약속해 주셨습니다. 넷째. 복은 율법(律法)입니다. 어느 나라가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습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은 율법을 받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백성입니다.
다섯째, 이스라엘은 예배드리는 복을 받은 백성입니다. 레위기에 나오는 모든 제사와 성막의 복을 다 받은 백성입니다. 예배만한 큰 복이 없습니다. 예배를 드릴 수 있는 사람은 최고의 복을 받은 사람입니다. 우리교회도 예배공동체를 최고의 목표로 삼지 않습니까? 예배는 하나님을 언제든지 만날 수 있는 특권입니다.
여섯째, 약속들을 받았습니다. 성경에는 수천가지의 약속이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이 약속들을 받았고 약속의 절정은 메시야가 오신다는 것이었습니다. 일곱째, 조상의 복을 받았습니다. 우리들끼리도 각자의 가문이야기를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매일 설교하고 듣는 것이 이스라엘의 조상이야기입니다. 아브라함, 이삭, 야곱, 모세, 등 이런 사람들이 다 그들의 조상입니다.
이런 복 외에 진짜 복이 있습니다.
육신으로 그리스도가 저희에게 나신 것입니다. 우리 가문에서 예수님이 태어나셨다면 얼마나 놀라운 일이겠습니까? 육신으로는 메시야가 이스라엘에게서 나왔습니다. 그런데 이 복을 그들은 거부했습니다. 이 사실이 사도 바울에게는 고통스러운 것입니다. 여러분 그리스도가 누구이십니까? 예수님은 만물 위에 계셔서 세세에 찬양을 받으실 {창조주}하나님이십니다. 할렐루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세계 방방곡곡에 다니면서 예수님을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그런 기대와 일을 하지 못하고 결국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고 맙니다. 여러분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복 받고 구원을 받은 성도들입니다. 하지만 어떤 사람은 자기 집에 굴러들어온 복을 거부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기도는 복입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것도 복입니다. 전도하고 헌금하고 선교사로 가는 것도 복입니다.
우리 민족은 1백년 전만해도 어두움에 있던 민족이었습니다. 저는 이 백성이 하나님에 대해 눈을 뜨고 올림픽을 하고 경제기적을 일으킨 것을 복중의 복이라고 믿습니다. 자원도 없는데다 그나마 반쪽이 된 나라입니다. 그런 우리를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때문에 특별히 사랑하신다고 믿습니다.
저는 여러분에게 한 가지 질문을 던지고 설교를 마치려고 합니다. 왜 이스라엘이 메시야를 거부했을까요? 이스라엘이 메시야를 거부한 것은 여러분과 저를 구원하기 위함입니다. 여기에 하나님의 비밀이 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고통입니다. 이것이 사도 바울의 고통입니다. 하지만 이스라엘은 성경의 약속대로 곧 회복될 것입니다. 그리고 역사는 완성될 것입니다. 이번 로마서 공부를 통하여 깊은 하나님의 섭리(燮理)와 경륜(經綸)을 깨닫게 되기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기도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주의 크신 이름을 찬양합니다. 이 시간에 창조주의 종들에게 기름 부어 주셔서 구원의 깊은 진리를 알게 하시고 이스라엘을 잠시 멈추게 하시 이방인들 구원하여 주셔서 감사와 영광 돌립니다. 개인의 구원을 넘어 민족의 구원과 온 이방인의 구원과 예루살렘의 구원과 하나님의 구원의 완성을 보는 복을 허락하여 주옵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하용조목사 저서 로마서강해 타이핑 / 김은영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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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예수님좋다오 원문보기 글쓴이: (一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