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교양과 훈계로 엡6:4
2002-01-29 11:11:53 read : 404
살아가는 동안 우리에게 참 으로 중요하고 소중한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일이 있다면 그것은 자녀를 바르게 양육하는 것일 것입니다. 하 나님을 믿는 믿음을 제외 한다면 세 상에 그보다 더 중요한 일은 아마 없을 것입니다.
사업이 어려움을 당하고 직 장에 문제가 생겨도 참으로 힘들고 어렵습니다. 그리고 인간관계에 문 제가 생겨도 참으로 괴롭습니다. 그 러나 아무리 그와 같은 것들이 힘들 고 어렵다고 하여도 자녀에 문제가 생기는 것과는 비교가 되지 않습니 다. 그만큼 자녀의 문제는 중요한 것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그렇게 중요한 자녀를 문제 없이 키운다는 것이 좀처럼 쉽지 않아서 많은 사람 들과 가정에 자녀로 인한 갈등과 고 민과 어려움이 있다고 하는 사실입 니다. 많은 가정이 부모와 자녀 사 이의 갈등으로 인하여 고통을 받고 있습니다.
요즘 우리는 자녀를 바르게 양육하기에 참으로 힘들고 어려운 여건속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세 상의 문화적인 환경과 여건이 우리 의 자녀들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문화적인 환경 과 여건은 참으로 자녀를 바르게 양 육하는데 큰 걸림돌이 됩니다. 그러 나 문제는 세상에만 있는 것이 아닙 니다. 보다 더 크고 보다 더 직접적 인 원인은 우리 부모들에게 있습니 다.
부모들이 자녀들을 사랑하 는 것은 사실이지만 무조건 사랑한 다는 것 하나만 가지고 자녀를 문제 없이 기를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자녀를 자기 생명보다 더 귀히 여기 고 사랑은 하지만 정작 자녀를 바르 게 양육하는데 이런 저런 문제가 있 어서 자녀들이 잘못되는 경우가 얼 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사랑은 물론 자녀를 바르게 양육하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 입니다. 그러나 사랑만으로 모든 문 제가 다 해결되는 것은 아닙니다. 자녀를 바르게 양육하는데 있어서 문제가 되는 부분들을 찾아내 그것 을 개선하지 않으면 사랑 때문에 문 제가 더 심각해 질 것입니다.
우리 부모들에게 있는 문제 가 여러 가지 있을 수 있지만 저는 오늘 이 시간 몇가지 문제를 말씀드 리려고 합니다. 그것은 '무지함'과 ' 무례함' 그리고 '본이 되지 못함'입 니다.
많은 부모들이 자녀에 대하 여 모릅니다. 무지합니다. 가장 큰 이유는 공부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자녀의 마음과 생각 그리고 심리에 대하여 거의 잘 모릅니다. 저들을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도 거의 모 릅니다.
별 것 아닌 자동차도 운전 을 하려면 많은 훈련과 공부가 필요 합니다. 그와 같은 훈련과 공부를 통하여 자동차를 이해하고 자동차를 운전하는 식을 배웁니다. 그리고 운 전을 합니다. 그래도 실수하는 경우 가 있습니다. 자기 자신을 과신하여 그와 같은 공부와 훈련을 받지 않고 자동차를 운전하려고 한다면 세상에 그것처럼 위험한 일은 아마 있을 수 없을 것입니다. 가끔씩 운전 면허가 없는 중고등학생들이 부모의 자동차 를 몰래 운전하다가 큰 사고를 내는 경우를 뉴스를 통하여 보곤 하는데 바로 그것이 훈련과 공부없이 자기 자신을 과신하다가 일으키는 큰 사 고인 것입니다.
그런데 바로 그와 같은 식 의 사고를 우리 부모들이 자녀 교육 에서 일으키고 있다는 것입니다. 자 녀를 바르게 양육하기 위해서도 많 은 공부와 훈련이 필요합니다. 그런 데 대부분의 부모들이 그와 같은 공 부와 훈련을 하지 않습니다. 비유하 자면 대부분의 부모들이 자녀 교육 에 있어서 무면허자들입니다. 그래 서 사고가 많이 나는 것입니다.
공부해야 합니다. 훈련을 받아야 합니다. 책도 읽어야 하고 세미나에도 참석하여 좋은 강의들도 들어야만 합니다. 그리하여 자녀들 을 이해하고 저들을 바르게 운전하 는 식을 배워야만 합니다.
대부분의 경우 부모들은 자 녀들의 문제가 무엇인지를 알고 저 들에게 무엇을 가르쳐야 하는지를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많은 부모들 이 저들에게 그것을 어떻게 가르쳐 야만 하는지를 모르고 있습니다. 교 육에 있어서 '무엇을 가르치느냐'도 중요하지만 보다 중요한 것은 그것 을 '어떻게 가르치느냐'입니다.
많은 부모들이 바로 이 '어 떻게?'에 대하여 무지합니다. 이에 대한 공부가 필요합니다. 훈련이 필 요합니다.
자녀를 바르게 교육함에 있 어서 무지 보다 더 나쁘고 무서운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자녀들에 대 한 부모들의 무례함입니다. 많은 부 모들이 자녀들에 대하여 무례합니 다. 자녀들의 대한 부모의 무례함이 라는 표현 자체가 이상하게 들리고 불편하게 들리는 부모님들이 혹 여 러분들중에 있으실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여러분 많은 자녀들이 바로 이 보모들의 무례함으로 인하여 상 처와 고통을 받고 있으며 그 상처와 고통이 자녀들이 잘못되는 가장 큰 이유가 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만 합니다.
그것은 부모와 자식의 경우 뿐만이 아닙니다. 부부간에도 마찬 가지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사랑할 때 무례해지기 쉽습니다. 그러나 그 것은 매우 위험한 일입니다. 사랑할 수록 더 예의를 지켜야만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 무례함 때문에 사 랑이 깨지게 될 것입니다. 부부간에 문제가 생기는 가장 큰 이유중에 하 나가 바로 이 무례함입니다. 사랑하 는 사람의 무례함으로 인하여 깊은 상처를 입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얼 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런데 가장 큰 무례함은 자녀에 대한 부모들의 무례함입니 다. 사랑하기 때문에 그리고 어리기 때문에 함부로해도 된다고 잘못 생 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 습니다. 자녀들이 비록 어리기는 해 도 저들도 하나의 소중한 인격들입 니다. 물론 아직 미숙한 인격이기 때문에 저들을 가르쳐야만 합니다. 때로는 꾸짖기도하고 필요하다면 매 도 들어야 할 것입니다. 서양에서는 아이들에게 매를 드는 것을 미개한 것으로 보지만 잠언 13:24에 보면 ' 초달을 차마 못하는 자는 그 자식을 미워함이라 자식을 사랑하는 자는 근실히 징계하느니라'는 말씀이 있 습니다. 필요하다면 자녀들에게 매 도 들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꾸짖고 교훈하고 심 지어 매질을 할 때에도 저들의 인격 을 존중해 주어야 합니다. 예의를 갖추어야만 합니다. 아이들의 인격 을 함부로 무시하고 저들에게 무례 함으로 저들에게 정신적이고 인격적 인 폭력을 가해서는 안됩니다.
오늘 성경에도 보면 '자녀 를 노엽게 하지 말라'는 말씀이 나 옵니다. 자녀들이 언제 부모에 대하 여 노여움을 품게 되는지 아십니까? 부모에게 꾸짖음을 당할 때 아니면 부모들에게 매를 맞을 때인줄 아십 니까? 아닙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저들도 부모들에게 꾸짖음을 받고 심지어 매를 맞는 것이 당연한 일이 라고 알고 있습니다. 저들이 상처를 받고 그 때문에 문제가 생기는 가장 큰 이유는 부모들이 자녀들의 인격 을 무시하고 무례하게 행동하기 때 문입니다.
부모들이 자녀들을 인격적 으로 대우하고 저들에게 나름대로의 예의를 갖추어 준다면 저들은 부모 의 꾸짖음과 초달을 인정하고 받아 줄 것입니다. 그리고 그 꾸짖음과 초달은 아주 좋은 효과를 가져와 아 이들을 바르게 자라나게 하는데 큰 도움을 줄 것입니다.
많은 부모들이 아이들이 말 을 듣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반항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들이 부모들 의 말을 잘 들으려고 하지 않고 반 항을 하려고 하는 중요한 이유는 꾸 짖음과 매 때문이 아닙니다. 부모들 이 자신들의 인격을 무시하고 함부 로 말하고 행동하는 무례함 때문입 니다.
부모도 자식에게 최소한의 예의를 갖출 줄 알아야 합니다. 예 의는 아이들이 어른에게만 갖추는 것인줄로 아는 분들이 많이 있습니 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예의는 모두에게 필요한 것입니다. 어른들 이 먼저 아이들에 대하여 예의를 갖 출 줄 알 때 우리 아이들이 예의를 배우게 될 것이고 어른들에 대해서 도 예의를 갖추게 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자녀들을 바르 게 양육하는데 큰 문제가 되는 것은 '부모가 자녀의 본이 되지 못함'과 '정직하지 못함'입니다. 참된 교육은 말에 있지않고 삶에 있습니다. 보통 의 경우 삶이 따르지 않은 말은 힘 이 없습니다. 그러나 부모의 경우는 다릅니다. 부모의 '삶이 따르지 않 는 말'에는 힘이 있습니다. 그것은 자녀를 바르게 하지 못하고 오히려 삐뚤어지게 하는 힘입니다.
사랑하지 않는 사람의 '삶 이 따르지 않는 말'에는 힘이 없습 니다. '그 사람은 말만 해'하고 돌아 서 버리면 그만입니다. 그러나 부모 는 '그 사람'이 아닙니다. 다시 말해 서 남이 아닙니다. 사랑하는 사람입 니다. 남들과 특히 친구들에게 자랑 하고 싶은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런 부모가 말과 삶이 일치하지 않는다 면 그것은 자녀들에게 큰 쇼크가 아 닐 수 없습니다.
물론 부모라고 늘 '말과 삶 '이 일치 할 수는 없습니다. 잘못을 할 수도 있고 실수를 할 수도 있습 니다. 그래도 상관없습니다. 아이들 도 온전한 사람은 없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럴 경우 정직하면 됩니 다. 자신의 한계와 실수를 솔직히 인정하면 됩니다. 그러면 자녀들은 그런 부모를 오히려 존경하고 자랑 스럽게 생각하게 됩니다.
그런데 보통의 경우 쓸데없 는 권위 의식 때문에 자녀들 앞에서 그것을 인정하지 않고 은폐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을 아이 들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럴 때 아 이들의 눈에 부모는 위선자로 보이 게 됩니다. 이것은 아주 치명적인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사랑하는 부모가 그리고 자랑스러워야 할 부 모가 자녀들의 눈에 위선자로 보이 게 될 때 아이들이 받는 충격은 엄 청난 것입니다. 그것으로 부모의 자 녀에 대한 교육은 끝입니다. 더 이 상 교육이 불가능한 상태가 될 것입 니다.
말씀을 마치려고 합니다. 시편 127편 3절에 보면 '자식은 여 호와의 주신 기업이요 태의 열매는 그의 상급이로다'라는 말씀이 있습 니다. 맞습니다. 자녀는 하나님이 우 리에게 주신 기업이요 상급입니다.
세상의 다른 일들이 아무리 잘되고 성공한다고 하여도 자녀가 잘못되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러 나 극단적으로 세상의 다른 일들이 다 실패하고 어려워진다고 하여도 자녀들이 성공하고 잘된다면 그 실 패와 어려움 또한 아무것도 아닙니 다.
세상에 자녀를 바르게 양육 하는 것 보다 중요한 일은 없습니 다. 자녀를 바르게 양육하는데 있어 서 부모보다 중요한 사람은 없습니 다. 아이들에게 있어서 최고의 스승 과 교사는 부모입니다. 오늘 많은 부모들이 아이들의 스승과 교사가 되는데 실패하고 있습니다. 열심히 돈을 벌어서 저들을 잘 먹이고 잘 입히면 그것으로 좋은 부모가 되는 줄로 착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열심히 학비를 주어서 공부를 시키 면 훌륭한 자녀들이 되는 것으로 오 해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아닙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자녀에 대한 보다 중요한 부모의 책 임은 저들에게 세상과 인생 그리고 신앙을 가르치는 참된 교사와 스승 이 되는 것입니다. 부모를 인생의 스승으로 만나 자녀들이 복이 있습 니다. 부모에게서 인생에 있어서 중 요한 것 모든 것을 배울 수 있는 아 이들이 복이 있는 있습니다. 물론 부모들이 아이들에게 저들이 필요한 모든 것을 다 가르쳐 줄 수 없습니 다.
저는 지금 제 실력으로 아 이들이 필요한 영어와 수학 그 밖의 세상적인 지식들을 가르쳐 줄 수 없 습니다. 그래서 저는 아이들을 학교 에 보내고 선생님들에게 저들을 맡 기는 것입니다. 그러나 보다 중요한 삶과 신앙은 제가 가르칠 수 있습니 다. 그리고 그런 것들은 제가 가르 쳐야만 합니다.
저는 제 아이들의 목사가 되고 싶습니다. 선생이 되고 싶습니 다. 아이들에게 인정받고 존경받는 부모가 되고 싶습니다. 그렇게 될 때 진정으로 좋은 동안 교회의 목사 도 될 수 있을 것입니다. 만일 여러 분들이 자녀들에게 인정받고 존경을 받는 목사와 함께 교회 생활을 할 수 있다면 그것이 여러분들에게 복 이 될 것입니다.
말씀을 마치려고 합니다. 하나님은 저와 여러분에게 사랑하는 자녀들을 맡겨 주셨습니다. 그리고 주의 교양과 훈계로 잘 양육해 달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훌륭 한 일군으로 키워 달라고 부탁하셨 습니다.
세상적으로도 승리하고 성 공하시는 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 다. 그러나 무엇 보다도 자녀 교육 에 승리하고 성공하시는 분들이 되 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러기 위 하여 먼저 공부하는 부모가 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열심히 성경을 공 부하여 저들에게 무엇을 가르쳐야 할 것인가를 배우실 수 있기를 바랍 니다. 그리고 저들의 심리와 성격을 공부하여 저들에게 그와 같은 진리 를 어떻게 가르쳐야 할 것인가를 배 우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자녀들을 인격적으 로 대하는 법을 연습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저들의 인격을 존중해 주 고 자녀에 대해서도 예의를 갖추어 말 한마디라고 실수하지 않도록 조 심하는 부모가 되실 수 있기를 바랍 니다.
그리고 삶으로 가르치는 부 모가 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자 신의 실수와 잘못에 대하여 정직하 고 솔직한 부모가 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자녀들에게 인 정받고 존경받는 부모가 되실 수 있 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날마다 자 녀를 위하여 기도하는 부모가 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하면 비록 세상이 아무 리 혼탁하고 유혹이 많다고 하여도 틀림없이 하나님은 우리 아이들을 훌륭하고 반듯한 아이들도 키워 주 실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이 말씀하 신대로 우리들의 자녀들은 우리들의 기업이 될 것이요 우리들의 상급이 될 줄로 믿습니다.
좋은 믿음의 부모들이 되어 서 자녀를 기업과 상급으로 받으시 는 축복을 다 받아 누리시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실 수 있기를 바랍니 다.
주의 훈계로 양육하라 엡6:1-4 곽선희목사
2002-01-29 11:10:52 read : 548
현대인의 가장 큰 죄가 세 가지 있다고 합니다. 첫째가 공부하지 않는 죄가 있다고 합니다. 그는 물 질문명에 취해서 편리한 것들만 찾 아 나가고 있습니다. 언젠가 좀 깊 이 공부하는 일이 없습니다. 심지 어는 요새는 컴퓨터라고 하는 기계 를 통해서 많은 정보를 얻습니다만 은 아주 부분적인 것들을 수집하고 있을 뿐입니다. 깊이 공부하며 책 을 읽는 그러한 일들이 점점 멀어지 는 것을 이렇게 마음 아프게 생각합 니다. 깊이 생각하고 인간의 가치 를 묻는, 지혜를 얻는 그런 공부가 없다는 것이올시다. 둘째는 실천하 지 않는 겁니다. 아는 대로 행하질 않습니다. 부득이 하다는 말로, 인 간은 약하다는 말로 변명하면서 가 지고있는 지식을 그대로 생활에 옮 기지 않는 것입니다. 말은 많고, 비 판도 많고 아는 것도 많은데 행하는 것은 너무 적습니다. 너무 비참할 정도로 실천에 옮기지 않는다는 겁 니다. 그래서 의지 박약, 그것이 바 로 현대인의 특징입니다. 세번째는 가르치지 않는다는 겁니다. 너무나 이기주의이기 때문에 아무에게도 가 르치지 않을 뿐더러 자녀에게까지도 가르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일본에 어느 제 아는 친구 목사님이 또 다른 일본 목사님과 이야기한 얘 기를 제게 옮겨 주었습니다. 그 일 본 목사님에게는 자녀가 셋이 있는 데 자녀가 하나같이 교회에 나오지 않습니다. 그 뿐만 아니라 세상적 으로 삽니다. 이것이 너무 마음이 아픈데 가만히 보니깐 자녀들에 대 한 관심이 없는 것 같아서,
"그래 어떻게 목사님은 그 자녀들이 이렇 게 교회에 안나오는데 어떻습니까?"
하고 물었더니,
"그거요? 종교는 자유인데요. 애들에게 왜 내가 예 수 믿으라고 해야 합니까?"
깜짝 놀랐다는 겁니다. 여러분 가르쳐야 됩니다. 저절로 되는 게 아닙니다. 내버려두면 악으로 키웁니다. 이걸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합니다. 부지 런히 자녀들에게, 친구에게, 이웃에 게 내가 깨달은 바 소중한 것 또 진 리를 가르쳐야 됩니다. 부지런히 가르쳐야 됩니다. 그것이 바로 전 도요 교육이 아니겠습니까?
한국이 이 만큼, 세계적으로 볼 땐 아주 잘 삽니다. 특별히 IMF라 고 하는 이 경제제재를 받으면서도 이만큼 잘 견디어 나가고 있습니다. 이 문제에 대해서 말입니다. 우리 는 미처 생각하지 못 하지만 세계 사람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한국은 저것을 잘 견딜 수 있는데, 그것은 바로 한국인의 교육열 때문이라고. 땅도 좁고, 사람은 많고, 자연 자본 도 없지만은 한국사람들 자녀들 공 부시키는데는 극성입니다. 이것이 밑천입니다. 이것 때문에 이만큼 살아갈 수 있는 겁니다.
우린 6·25를 통해서 이 엄청난 희생과 큰 사건을 통해서 배운 바가 많습니다만은 정리해보면 중요한 세 가지를 배웠어요. 첫째가 교육이 먼저다. 그 동안에는 양반이니 귀 족이니 뭐 해 가지고 돈을 많이 벌 어서 자자손손이 땅을 물려주고 살 면 이것이 제일이다. 그래서 돈, 땅 이것만 생각했습니다만은 전쟁을 치 르고 보니까 아무 것도 아니에요. 이 땅문서 소용없어요. 지식이요. 지식이 없으면 안된다는 걸 배웠습 니다. 그래서 땅을 팔아서 가르치 고, 한 마리밖에 없는 소도 팔아서 자식을 가르치려고 듭니다. 이 한 국사람의 교육열은 지나칠 정도로 극성맞습니다. 그러나 이것으로 인 해서 오늘 우리가 이만큼 살고있는 것이올시다. 또 하나는 6·25를 통 해서 우리는 공산주의가 무엇인가를 배웠습니다. 우리가 배우고 온 세 계에 증거했습니다. 이제는 나아졌 습니다만은 50년 전만 해도 공산주 의가 세계의 희망인 것처럼 생각했 습니다. 많은 지식인들이 매혹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한국전쟁, 여기 서 공산주의의 정체가 노출이 됩니 다. 그리고 온 세계에 증거하게 됐 습니다. 이렇게 역사가는 말합니다. 만일에 6·25가 없었더라면 우리 한 국은 틀림없이 월남이나 캄보디아같 이 되었을 거라구. 완전 공산화 되 가지고 지금 얼마나 비참해 집니까? 캄보디아에서요 킬링필드의 얘기를 하지 않습니까? 한 곳에서 150만을 죽였어요. 사람 죽이기를 뭐 거침 없이 해요. 이러한 무서운 상황을 보면서 이 남의 얘기가 아니요. 우 리가 일찍이 6·25전쟁을 만나지 않 았더라면 이래 될 뻔했다 하는 겁니 다. 정신이 아주 아찔합니다. 공산 주의를 배우게 됐어요. 또 세번째 는 우리 한국민족은 정말로 신앙의 색으로 드러났어요. 6·25를 통해 서 교회가 부흥되고 영적 세계의 소 중함을 알아서 철저한 종교성이 높 은 그러한 민족으로 발전하게 됩니 다. 자 이제 보세요. 결국은 이만 큼 우리가 하나님께서 6·25를 통해 서 우리를 가르쳐 주시고, 깨우쳐 주시고 많은 사건을 통해서 우리를 양육하여 오늘에 이르게 하셨다 이 말씀입니다.
오늘 성경말씀은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
"자녀들을 양육 하라"하고 말합니다. 양육이라는 데는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우 리는 먹이고, 하나님은 자라게 하십 니다. 자라게 하시는 일, 생명을 자 라게 하시는 일은 하나님뿐이십니 다. 그런데 그가 자라게 하실 텐데 우리에게 부탁한 게 있어요.
"먹이 라"
그랬어요. 먹일 것을 먹여요. 그래야 가르칠 수 있는 것이올시다. 더 키울 수 있는 것이올시다. 사도 바울은 그래서 갈라디아 4장에서 말 합니다.
"나는 너희를 위하여, 너희 속에 그리스도의 형상에 이르기까지 해산의 수고를 한다."
이렇게 말하 고 있습니다. 해산의 수고가 지속 되는 것이올시다. 누가복음 2장 52 절에는, 기독교 교육에 아주 교육철 학의 기본이라고 하는 말씀이 있습 니다.
"예수는 지혜와 키가 자라가 며 하나님과 사람에게 사랑스러워 가시더라."하는 말입니다. 키가 자 라며 '체육', 지혜가 자라며 '지육' 그리고 하나님 앞에 사랑스러워 가 더라 '종교', 사람에게 사랑스러워 가더라 '도덕', 이런 네 가지 측면으 로 우리는 자녀들을 양육해야 합니 다. 육체적인 것도 중요합니다. 계 속 영향을 공급해야 됩니다. 균형 있는 영향, 잘 먹여야 건강합니다. 알게 모르게 영향이 불균형이 되고 실조가 되어서 잘못되는 경우가 참 많습니다. 이 분위기나 이것이 얼 마나 중요한 것인지 모릅니다. 더 구나 우리 북한에 가 보면은 그런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얼마나 아이 들이 비참한지요. 저희가 이 자리 에서 말씀을 드립니다만은 약 삼천 명의 고아를 저희 소망교회에서 계 속 식량을 오래 전부터 대고 있습니 다. 그 아이들은 잘 자라고 있습니 다. 그런데 이렇게 어려운 아이들 을 보면은 영양실조가, 비틀어지고 말라지고, 울지도 못하고 지쳐 있는 거, 앞으로 커서 사람될는지 모르겠 어요. 그런데 말입니다 얼마나 끔 찍한 지 거기 지도자들도
"목사님, 그 애들 만나지 마세요. 그 애들 비참한 거 보고나면 목사님 아마 한 달 동안은 식사를 못 할겁니다."
그 분들이 하는 말입니다. 그 만큼 비참합니다. 먹지 못한다는 것, 먹 지 못해서 비틀어져 가는 영양실조, 얼마나 비참한 지 모릅니다. 자 그 런고로 육체적으로도 우리가 키워야 겠지요. 잘 키워서 잘 먹여야 됩니 다. 그래야 건강하게 자랄 수 있겠 지요. 더구나 입맛은 부모가 만드 는 겁니다. 대단히 중요한 말입니 다.
"먹고 싶은 대로 먹어라"가 아 닙니다. 먹어야 할 것을 먹도록 해 야 합니다. 먹이도록, 먹도록, 그래 서 충분한 영향을 공급해야 합니다. 또한 정신적으로는 많은 지식을 주 어야 됩니다. 들어야 될 것은 듣고, 보아야 할 것은 보고, 경험할 것은 다각도로 경험하도록, 그래야 지능 이 발달합니다. 이런 우스운 얘기 가 있어요. 수다스러운 어머니를 가진 아이의 I.Q.가 높다고. 말없는 것보다 나은가 보죠. 수다스러운 어머니가 자꾸 말을 하니까 생각이 발전한다고 그래요. 멍청한 어머니 는 아이들을 멍청하게 만들 수밖에 없어요. 많이 듣고 지식을 얻어야 합니다. 이게 양육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영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들려주어야 합니다. 진리를 경험하 게 해야 됩니다. 경건을 보여 줘야 되고 기도를 가르쳐야 됩니다. 내 가 기도하고, 함께 기도하고, 기도하 는 사람으로 키워 나가야 합니다. 자, 낳는 것은 쉽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으로 키워간다고 하는 문제는 참 어려운 문젭니다. 긴 노력과 수 고와 희생이 요구되는 거 아니겠습 니까.
오늘 본문의 말씀은 간단한 말씀 이지만은 두 가지로 요약합니다. 부정적으로는 노엽게 하지 말라. 긍정적으로는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 다.
"노엽게 하지 마라."
이게 뭡 니까? 화를 내게 만들지 말아요. 가르친다고 하면서 자녀의 감정을 상하게 만듭니다. 그러면 안됩니다. 왜 그러냐? 분위기에 맞추지 못했 기 때문에, 때와 장소를 잘못한 거 예요. 아이들이 지쳐있을 때에 할, 들어야 할 말이 따로 있어요. 저들 도 피곤합니다. 그 때에 우리가 무 슨 말을 할 것인가를 생각해야 합니 다. 생각없이 나 나름대로 명령조 로 분노를 일으킨단 말이요. 그래 서 교육이 빗나갑니다. 마음이 빗 나갑니다. 또한 이해의 수준이 있 고 경험의 정도가 있습니다. 소화 능력의 한계가 있습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조용히 기다리면서 인내하면 서 저들을 가르쳐야 합니다. 너무 서두르고 급진적으로 하면은 이게 또 문제가 되는 겁니다. 요샛말로 눈 높이를 맞추어가야 할 것입니다. 이게 맞지 않으면 아무리 좋은 얘기 를 해도 저들은 화가 납니다. 이보 다 더 우선적인 것은 사랑의 확증입 니다. 사랑의 줄이 끊어지면 아무 소용없습니다. 저 어머니가 나를 사랑한다. 이것을 알면서부터 비로 소 교육은 교육되는 것이올시다. 아이들이 자랄 때, 어렸을 때는 나 혼자가 다인 줄로 알고 아버지, 어 머니, 할아버지, 할머니가 다 나를 사랑하는데 조금 있다가 동생이 태 어나니까 사랑이 이동합니다. 그 쪽으로 옮겨가요. 이 아이는 하늘 이 무너지는 것 같아요. 어머니는 배신자가 돼버려요. 아버지가 미워 요. 이렇게 되기 시작하면 이제 무 슨 교육이 통하겠습니까? 화가 났 거든요 지금. 사랑을 빼앗겼으니까 요. 이 배신자들 그들의 원수 같은 사람들의 말을 내가 들을 수가 없 죠. 여기서 한번 삐뚤어져서 일생 가는 거예요. 참으로 무서운 겁니 다. 심지어는 어떤 책에는 그런 말 도 있습니다. 아이들이 젖 땔 때가 문제라구요. 젖 땔 때. 분명히 어 머니에게 젖이 있는데 저걸 먹지 말 라는 거예요. 이건 보통 고민이 아 니요. 이건 누구도 설득할 수가 없 는 거예요. 이건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은 고통이예요. 그런데 알 바 아니오. 여러분, 화내게 하지 마세 요. 기분 나쁘게 해서는 안됩니다. 그리고는 교육이 안 통한다는 얘깁 니다. 자 사랑이라는 것은 그런고 로 존재를 인정하고, 믿어주고, 참아 주고, 기다려주고 이것이 진정한 사 랑이라는 말입니다.
여러분 요새 크게 화제가 되고 있는 오토다케 히로타다의 이야기를 아실 겁니다. 한번쯤은 꼭 이 책을 읽어보았으면 합니다. '오체불만족' 이라는 책입니다. '오체불만족'. 이 아이는 세상에 태어날 때 선천성 사 지절단 장애인으로 태어납니다. 팔 다리가 하나도 없습니다. 그런데 그 팔이라는 것이 도대체 10cm밖에 안됩니다요. 이런 고구마 같은, 몽 땅한 것으로 태어납니다. 이것을 의사가 받아놓고, 의사가 깜짝 놀란 겁니다. '이걸 어떻게 하나, 어머니 가 이걸 보면 아마 기절할것이다.
그래서 핑계를 대고 한달 동안 어머니로 하여금 아이를 못 보게 했 습니다. 한달 후에 어머니와 아들 이 첫 상봉을 합니다. 기가 막힌 장면을 봅니다. 여러분 어떻게 상상을 하십니까? 이 어머니는 분명 히 기절할 거예요. 그래 준비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어머니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어머, 귀여운 우리아 기."
조금도 티없이 아이를 사랑합 니다. 자랑스럽게 여기고, 귀하게 여겼습니다. 이제 그의 간증을 들 어보세요. 대학 다닐 때까지 자기 는 자기가 장애인이라는 것을 몰랐 답니다. 집에서 꼭같이 키우고 있 으니까, 편안하게 키워줬으니까. '남과 다르다. 남이 있는 것이 하나 가 없다.' 그것뿐이지. 내가 장애인 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는 겁니다. 정신적으로는 전혀 그걸 느끼지 않 았다는 겁니다. 전혀. 그리고 그에 게 모든 일을 하게 했습니다. 심지 어는 이 보세요. 야구 선수가 되고, 축구를 하고요. 수영도 하고, 컴퓨 터를 하고, 붓글씨를 쓰고……. 못 하는 게 없어요. 모든 일을 하면서 명랑하게 자랐어요. 이제 결과는 이렇게 나옵니다. 이 청년은 이렇 게 말하고 있습니다.
"장애는 특별 한 개성일 뿐이다."
너무너무 엄청 난 얘기 아닙니까?
"남과 좀 다를 뿐이지, 개성이 강할 뿐이지 별거 아니다."
이렇게 극복하고 있구요. 또, 특별히 책을 읽으면서 감동되는 부분은 여기 있습니다.
"마음을 열 고 나면, 장애인이기 때문에 친구가 더 많다."
남이 나를 업신여긴다던 가 생각하지 말고, 자기 존재에 대 해서 충만하고 마음을 열고 보니까 모두가 친구더라는 거예요.
"친구 가 많다."
얼마나 귀한 얘기입니 까? 그리고 마음을 열라고 외칩니 다. 또 하나 할 수 있는 일은 다 할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깨 달았습니다. 할 수 있는 일이 있고, 할 수 없는 일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래 그는 이렇게 말합니 다.
"할 수 있는 일 하고, 할 수 없 는 일은 다른 사람이 하고, 특별히 나만이 할 수 있는 일이 있고, 나만 이 해야 할 일이 있다."
이렇게 외 칩니다. 그것이 내 삶의 보람이라 고 말합니다. 저는 이 책을 읽으면 서 많이 생각해봅니다. 더욱이 그 림에도 보면은 그 얼굴이 얼마나 밝 은지요. 특별히 휠체어를 타고 다 니는데 휠체어를 스위치를 눌러서 이렇게 높여요. 이렇게. 높여.
"왜 높이느냐?"
하니깐 자기하고 걸 어가는 사람하고 눈 높이를 맞추려 고. 얼마나 멋진 얘기이에요. 눈 높이를 맞춰가며, 그는 명랑하게, 그 밝은 얼굴을 보면서 생각합니다. 그 어머니의 얼굴을 생각해 봅니다. 어머니가 밝았기 때문에 그 아들을 밝게 키울 수가 있었던 거예요. 그 는 헬렌켈러 여사의 말을 인용합니 다. 장애는 불편한 것이지, 불행한 것은 아니라고. 이 어머니가 조금 도 낙심하지 않고, 밝은 마음, 밝은 얼굴이었기 때문에 이 불편한 장애 인 오토를 이렇게 밝은 얼굴로 키울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사 랑이라는 겁니다.
오늘 성경은 말씀합니다.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
교양이 라는 말이 뭡니까? 주님의 말씀. 주님이 가르쳐 주신 것을 말하는 겁 니다. 내 지식으로가 아니고, 내 지 혜로, 내 마음으로가 아니라, 주의 교양으로 가르치라. 제가 오래 전 에 읽은 책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어떤 아이가 거짓말을 한다고 하자,
"거짓말하면 못쓴다. 거짓말하면 매 맞는다."
이렇게 가르칠 게 아 니라
"성경을 가져와라. 몇 장 몇 절을 읽어라."
내 생각으로가 아니라, 성경이 말씀하는 거예요. 그렇게 가르쳐놓으면 앞으로 커서도 모든 문제를 성경에서 풀게 됩니다. 성 경에서 해답을 얻게 됩니다. 성경 진리로 가르칠 것이지 인생철학으로 가르칠 것도 아니고, 내 경험으로 강요할 것도 아니요. 그저 주의 교 양으로 가르치라 하는 말씀입니다.
지난 주간에 있었던, 미국 오클 라호마에 있었던 총기 난사 사건을 알지 않습니까? 40여명의 사상자를 낸 두 젊은 사람. 고등학생이 총을 그대로 마구 쐈어요. 이 엄청난 사 건이 있은 후에 미국은 벌컥 뒤집혔 는데, 두 가지를 생각합니다. 도대 체 총기가 문제다. 총기를 쓰지 않 도록 법을 통과해야겠다. 두번째, 성경을 다시 가르쳐야겠다. 종교는 자유인데, 왜 기독교 성경만 강요하 느냐? 그래서 공립학교에서 오랫동 안, 수백년동안 가르쳐 온 성경을, 그 과목을 폐지해버렸어요. 이거 폐지한 다음에 이 모양 됐다. 다시 성경을 가르치고, 이걸 입법화해야 겠다고 사방에서 부르짖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여러분, 마음속에 성경 이 들어 있어야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들어 있어야 됩니다.
여러분, 요새 음악도 그렇습니다. 우리 교인이 제게 CD 한 편을 보내 왔어요. 한 장을 보내왔는데, 그 아 무 곡명도 없고,
"Music Clinic"
딱 고 몇 자만 써있어요. 이 음악을 들으면 병이 치료된다는 거죠. 음 악으로 병을 고친다는 겁니다. 그 런데 그 음악은 제가 늘 듣던 아주 쉬운 클래식 음악들이에요. 쇼팽, 모차르트, 뭐 그런 것들이에요. 이 론은 이렇습니다. 요새 락이라는 음악이 있고, 랩이라는 음악이 있고, 그런 그 리듬 자체가 발광적인 것들 이 많습니다. 이제 보세요. 동물에 게도 좋은 음악을 들려주면 계란도 잘 낳고, 새끼도 잘 나요. 우유도 잘 나오고. 이 동물에게도 락을 들 려주면은 발광을 해요. 낙태를 해 요. 아시겠어요? 요새는 또 식물 에게다 합니다. 식물도 여기다가 좋은 음악을 틀어주면은 식물이 40% 더 잘 자란답니다. 거기다가 또 락을 틀어주니까요. 전부 고개 를 돌리더랍니다. 이 미친 리듬이 이 발광적인 리듬이 그 다 듣고 나 가서 뛰쳐나가서 범죄화가 되는 거 예요. 심성이 고요해져야지. 음악 도 조용한 음악으로, 좋은 음악을 듣고 잘못되는 사람은 없어요. 불 량아들은 하나같이 이런 음악을 좋 아하는 거예요. 요새 더구나 이렇 게 워크맨이라는 걸 끼고 돌아가는 데요. 이거 많이 끼고 돌아가는 아 이들이 I. Q가 40% 떨어진답니다. 미쳐요. 발광하는 거예요. 공부가 안 되요. 보세요. 무엇을 들어야 합니까? 듣는 대로 마음속에 담게 되는 것이거든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진리를 들어서 담아야 거예요. 그래야 하나님의 역사가 이루어지 죠. 또,
"주의 훈계로 양육하라."
그랬습니다. 주의 훈계. 주의 제자 훈련을 말합니다. 예수님 자신이 먼저 실천하면서 본을 보여준 그 훈 계의 맥락을 말하는 것이에요. 사 랑을 보여주고 신뢰를 보여줘야 됩 니다. 가치관을 보여줘야 됩니다.
먼저 선행의 본을 보 여주고, 진실로 사는 본을 보여주고, 봉사를 보여주고, 특별히 섬기는 본 을 보여줘야지요. 섬기면서 기뻐하 는 그런 생활을 자녀들에게 본을 보 여주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깊이 생각해야 하십니다. 사랑과 믿음, 소망을 먹고사는 것이 자녀들입니 다. 우리의 영혼은 하나님의 말씀 을 먹고삽니다.
"오직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
어린이 천국 잔치 마18 : 1-10 석원태목사
2002-01-29 11:09:47 read : 379
1그 때에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 와 가로되 천국에서는 누가 크니이 까 2예수께서 한 어린아이를 불러 저희 가운데 세우시고 3가라사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돌이켜 어린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 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 하리라 4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어 린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그이 가 천국에서 큰 자니라 5또 누구든 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아이 하나 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니 6 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소자 중 하 나를 실족케 하면 차라리 연자 맷돌 을 그 목에 달리우고 깊은 바다에 빠뜨리우는 것이 나으니라 7실족케 하는 일들이 있음을 인하여 세상에 화가 있도다 실족케 하는 일이 없을 수는 없으나 실족케 하는 그 사람에 게는 화가 있도다 8만일 네 손이나 네 발이 너를 범죄케 하거든 찍어 내버리라 불구자나 절뚝발이로 영생 에 들어가는 것이 두 손과 두 발을 가지고 영원한 불에 던지우는 것보 다 나으니라 9만일 네 눈이 너를 범죄케 하거든 빼어 내버리라 한 눈 으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눈을 가지고 지옥 불에 던지우는 것보다 나으니라 10삼가 이 소자 중에 하 나도 업신여기지 말라 너희에게 말 하노니 저희 천사들이 하늘에서 하 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얼굴을 항상 뵈옵느니라
누군가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18 세기는 남자를 발견했고, 19세기는 여자를 발견했고, 20세기는 어린이 를 발견했다."고 하였습니다. 인간 이해에 대한 변화를 나타내는 말 같 습니다. 그러나 이미 역사의 신기 원이시던 예수님은 어린아이를 불 러 저희 가운데 세우셨습니다. 그리 고 저 위대한 자신의 천국 복음을 입증하였습니다. 20세기에 이르러서 야 어린아이들의 중요성을 발견한 사람들에 비한다면 예수님은 이런 의미에서도 확실히 세기적(世紀的) 선구자였습니다.
Ⅰ. 예수님과 어린아이와 천국에 대한 교훈을 보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따르던 제자들은
"천국 에서는 누가 제일 큰 자입니까?"
하 는 질문을 하였습니다. 그때 예수님 은 자기 앞에 모인 여러 어린이들 가운데 한 아이를 불러 저들 가운데 세우셨습니다.
그리고 「너희가 돌이켜 어린아이 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마 18:3)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예수님 은 어른들의 교만(방자함)을 염두에 두시고, 어린아이들의 겸손을 지목 하고 있습니다.
다시 4절에 「누구든지 이 어린 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그이가 천국에서 큰 자니라」고 하심으로 어린이를 겸손의 상징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또 다시 5절에 「누구든지 내(예수) 이름으로 이 런 어린아이 하나를 영접하면 곧 나 (예수)를 영접함이니」라고 하심으 로 어린이가 크게 환영을 받아야 될 사실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다시 6절에 「누구든지 나(예수) 를 믿는 이 소자 중 하나」를 실족 케 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실족케 하지 말라는 말은 거침돌이 되지 말 라고 한 것입니다. 그런 사람에게는 화가 있을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다시 10절에 「삼가 이 소자 중에 하나도 업신여기지 말라」고 하시 고, 그 이유는 하나님이 저들을 위 하여 항상 수호 천사를 파송하고 있 기 때문이라고 하셨습니다. 다시 14 절에서 「이와 같이 이 소자 중에 하나라도 잃어지는 것은 하늘에 계 신 너희 아버지의 뜻이 아니니라」 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디베랴 언덕에서 한 어 린아이가 갖고 있던 보리떡 다섯 개 와 물고기 두 마리를 받아 가지고 저 놀라운 이적의 재료로 삼았습니 다(요 6:9-13). 그 어린이가 가진 보 잘것없는 소유가 예수님으로 하여금 '세상에 오신 그 선지자'(요 6:14)의 표적을 보이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많은 어른들을 먹여 주는 간접적 요 인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그의 최후 예루살렘 입 성과 함께 성전에 들어가셨을 때, 거기에서 자신을 보고
"호산나, 다 윗의 자손이여!"
하는 아이들의 열 광적인 환영을 받은 일이 있었습니 다. 이때 유대교권주의자들인 대제 사장들과 서기관들이 분을 내며, 예수님께 저 아이들의 시끄러운 소 리를 듣느냐고 불평하였습니다.
그때 예수께서 가라사대 「그렇다 어린 아기와 젖먹이들의 입에서 나 오는 찬미를 온전케 하셨나이다 함 을 너희가 읽어 본 일이 없느냐」 (마 21:16)라고 하시며, 구약 시편 8 편의 예언을 인용하여 하나님을 높 이는 젖먹이들의 감사 찬송을 하나 님이 기쁘게 열납하고 있다고 대답 하였습니다. 예루살렘 성전에서 '호 산나 다윗의 자손'을 외치던 어린 아이들의 소리는 결코 시끄러운 소 리가 아니라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 시는 온전한 찬미의 제사라고 한 것 입니다.
오늘 본문에 「예수께서 한 어린 아이를 불러 저희 가운데 세우시 고」 천국 시민의 자질을 말씀했다 는 사실을 중요하게 여겨야 합니다. 디베랴 언덕에서 행하신 오병이어의 이적도 사실상 그 한 어린아이가 저들 가운데 중심이 되고 말았습니 다. 예루살렘 성전에서도 호산나 찬송하며 예수를 다윗의 자손으로 고백하는 어린아이들이 저들 가운데 중심인물로 부각되고 있습니다.
예수의 만져 주심을 바라던 사람 들 중에는 어린아이를 예수께로 데 리고 오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 때 제자들이 그 일을 꾸짖었습니 다. 그것을 보신 예수님은 제자들을 향하여 분을 내시고 「어린아이들의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 라 하나님의 나라가 이런 자의 것 이니라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 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하나님의 나 라를 어린아이와 같이 받들지 않는 자는 결단코 들어가지 못하리라」 (막 10:13-15)고 하셨습니다. 그리 고 「천국이 이런 자의 것이니라」 (마 19:13-14, 눅 18:16-17)고 하시 며 어린아이들을 안고 저희 위에 안 수하고 축복해 주셨습니다(막 10:16).
예수님은 교만한 무리(어른들) 가운데 한 어린아이를 세우셨습니 다. 그리고 그 어린아이들의 심성의 특징인 겸손과 신뢰성과 순진성과 단순성과 봉사와 희생성과 이타적 애정성을 들어 천국 시민의 영적 자 질을 교훈하신 것입니다.
이 세상 사람들은 한가운데 자기 를 세우고 자기를 나타냅니다. 사람 들은 역사의 한가운데 자기의 업적 과 공로와 명예를 나타내기를 좋아 합니다. 아니면 역사의 한가운데 영 웅이나 호걸이나 가인들을 세우고 교훈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한 어 린아이를 가운데 세우시고 천국을 교훈하셨습니다.
Ⅱ. 천국은 어린이의 세계입니다.
예수님이 이 세상에서 연령적으 로, 체력적으로, 지적으로 미숙한 한 어린아이를 한가운데 세우고 천국을 교훈하신 것은, 결국 그가 이룩하실 하나님의 나라 곧 천국은 사실상 어 린아이들이 중심된 세계임을 웅변 적으로 예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사야 선지자가 내다 본 메시야 왕국의 특징 중의 하나는 그 왕국의 시민들이 모두 어린아이로 묘사된 평화의 나라였습니다. 예수 자신이 「한 아기」, 「한 아들」로 예언 되었습니다(사 9:6). 천국에서는 「어린아이」에게 양과 표범과 어린 염소와 송아지와 어린 사자와 살진 짐승들이 끌려 다닌다고 하였습니다 (사 11:6).
「젖먹는 아이」가 독사의 구멍에 서 장난하며, 「젖뗀 어린 아이」 가 독사의 굴에 손을 넣어도 아무 해됨이나 상함이 없는 평화 충만의 세계라고 하였습니다. 이렇게 이사 야는 천국의 시민을 「어린아이」, 「젖먹는 아이」, 「젖뗀 아이」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사도 베드로는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 태어난 그리스도인을 가리켜 「갓난아이」라고 하였습니다(벧전 2:2). '방금 태어난 아이'를 뜻합니 다. 그 아이는 순전하고 신령한 젖 을 빨면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가 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이 말은 예 수 그리스도의 교회는 본질적으로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 새로운 피조 물들의 모임이라는 뜻입니다(요 3:3, 5, 고후 5:17). 새 사람, 곧 아이들 의 세계라는 것입니다. 이전 것은 지나가 버리고, 옛 것은 벗어 버린 사람들의 모임이란 뜻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자신의 감사 기도 가운데 하나님 나라의 복음의 비밀이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 게는 숨겨져 버리고 어린아이들에 게 나타나게 됨이 감사한 일이라고 하였습니다(마 11:25). 이것이 아버 지의 뜻이라고 하였습니다(마 11:26). 이른바 유대교권주의자들이 아닌 예수님의 갈릴리 제자들, 죄인 들, 병든 자들, 가난한 자들 곧 구원 받기로 작정된 모든 자들을 어린아 이로 비유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장차 우리가 이를 하나 님의 나라(천국)는 아이들만의 세 계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천국이 이런 자의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천 국에는 이른바 어른들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 과 방언에서 아무라도 셀 수 없는 큰 무리, 곧 오른손에 종려 가지를 들고 보좌 앞과 어린 양 앞에서 저 들이 받은 구원의 감격을 고백하는 모든 무리는 예외 없이 그리스도 안에서 새롭게 된 어린아이들입니다 (계 7:9-10). 영적으로 천국은 거듭 난 새 사람의 세계, 곧 어린아이들 의 세계입니다. 어린아이들이 판을 치는 세계입니다.
Ⅲ. 경향 어린이 천국 잔치
지금 우리는 새 예배당 입당과 함께 주일마다 어린이 천국 잔치를 개최하고 있습니다. 주일 오전 예 배와는 별도로 주일 오후에 특별한 프로그램을 가지고 어린이를 위한 특별한 모임을 갖고 있습니다. 이 것은 우리가 이곳에 새 성전을 시작 하고 금요 밤마다 모이는 기도회에 서 이미 하나님께 서원했던 것입니 다. 우리는 3년이 가깝도록 새 성전 신축 완공과 입당 그리고 어린이 천 국 잔치를 위하여 기도해 오고 있습 니다. 지난 1년 동안은 우리 교회 교육국으로 하여금 어린이 천국 잔 치에 관한 여러 프로그램들을 연구 하고, 계획하고, 준비하도록 하였습 니다.
하나님은 우리 기도를 응답하셨습 니다. 성전이 완공되고 역사적인 새 성전 입당 예배를 마쳤습니다. 그리 고 지난 5월 24일 주일 오후부터 마침내 경향 어린이 천국 잔치를 열 었습니다. 첫날부터 잔치는 대성황 입니다.
경향 어린이 천국 잔치 중에 진행 되는 주요 프로그램의 내용들은 어 린이 찬양과 율동, 동화, 성경 이야 기, 미니 올림픽, 성화(영화) 상영, 기독교 명사들을 초대하여 각종 묘 기(진기 명기) 등을 시범적으로 보 여 주는 일(축구, 태권도, 연극… 등) 등 다채로운 순서들이 주일마다 준비되어 있습니다.
이 어린이 천국 잔치는 바로 예 수님 자신이 기뻐하시는 뜻입니다. 우리는 새 성전 한가운데 어린이들 을 세우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저들 에게 천국 복음을 전하기를 원합니 다. 이 천국 어린이 잔치를 통하여 저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기를 원합니다. 적어도 어린이 전도는,
① 어른 전도보다 효과적입니다.
그 이유는 저들에게 있는 겸손과 순진과 신뢰심과 순종심이 어른들보 다 더하기 때문입니다. 저들은 예 수 복음의 진리를 흡수하는데 훨씬 빠르기 때문입니다.
② 가정 전도의 첩경입니다.
닫혀 버린 가정의 문을 두드리 고, 그 문을 열고 들어가는 지름길 이 바로 그 가정의 어린이를 통하여 이루어집니다. 여기에 어린이 새소 식반과 어린이 선교원이 한몫을 하 고 있습니다.
③ 교회의 미래 성장을 보장하는 결정적인 비전이 됩니다.
그러므로 교회가 받은 축복의 묵 시(vision)가 있다면 그것은 어린이 전도입니다. 어린이가 없는 교회는 그 앞이 캄캄합니다.
④ 어린이 전도는 미래지향적입니 다. 생산적이고 창조적입니다. 21세 기를 대비하는 복음 운동의 모든 자원들이 바로 어린아이들에게 있 습니다. 어릴 때부터 받은 복음의 진리가 저들에게 바른 신관, 바른 인생관, 바른 구원관, 바른 존재적 가치관을 정립시켜 줍니다.
그래서 저들 속에 내일의 위대한 구령 운동의 목회자, 선교사, 신학 교수, 사회 봉사자, 정치가, 경제가, 교육가, 예술가, 과학자들이 자라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어린이 세계는 무한한 미래의 잠재력이요 폭발력입 니다. 아니 위대한 축복의 미래적 물결입니다. 아니 그 어린이 자체 가 천국 운동이요 천국의 전령사들 입니다.
그러므로 이 세계의 위대한 사건 들은 전쟁이나, 지진이나, 기타 여러 종류의 폭풍이 아닙니다. 바로 이 세계의 위대한 사건들은 자라나고 있는 아이들 그 자체입니다. 바로 이 아이들은 역사 가운데 지진이요 폭풍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한 어린아이' 를 가운데 세웠습니다. 그래서 예수 님은 어린아이를 품에 안고 축복하 신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어린 아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금하지 말 라, 천국이 이런 자의 것이니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새 성전 입당과 함께 경향 어린이 천국 잔치 를 시작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사무엘 스마일즈(Samuel Smiles) 는 '유년기는 거기에 비친 영상 (image)을 내세에 반사해 주는 거 울과 같다.'고 하였습니다. 유명한 셀렉트(Selected)는 이렇게 말했습 니다. '어린이의 마음 속에 당신이 무엇을 쓰든지 물로 지울 수 없다. 모래는 파도가 사나울 때 옮겨질 수 있다. 그리고 시간의 노력은 썩어 버릴 수도 있다. 어떤 이야기들은 없어지고 어떤 노래들은 잊혀질 것 이다. 그러나 어린이의 마음 속에 새겨 놓은 이 기록들…, 세월도 그 것은 변경하지 못하리라. 어린이의 가슴 속에 무엇을 써넣든지 기쁨의 이야기든 근심의 이야기든, 하늘이 축복했든지 땅이 모독했든지, 변함 없이 거기 남아 있을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과연 그렇습니다. 우 리 경향 4반세기 25년은 이 놀라운 사실을 경험하고 말았습니다. 을지 로에서, 동자동에서, 여의도에서의 교회 운동이 그러했습니다. 우리 모 두 하나님의 새 성전 한가운데에 어린이들을 세웁시다. 교회의 한가 운데에 어린이들을 세웁시다. 그리 고 저들의 입에서 '호산나, 다윗의 자손!'을 부르짖게 합시다.
우리 모두 하나님의 새 성전 한가 운데에 어린이들을 세웁시다. 그리 고 저들의 입에서 터져 나오는 신 앙의 고백과 감사의 서원이 경향의 자원과 미래가 되게 합시다. 우리 모두 하나님의 새 성전 한가운데에 어린이들을 세웁시다. 그리고 저들 이야말로 경향이 받은 천국 운동의 기수들이 되게 합시다. 이 위대한 어린이 천국 잔치에 수종드는 모든 경향인들에게 축복이 있기를 축원합 니다.
기독교와 어린이 마18장 1-10절 김홍도목사
2002-01-29 11:08:47 read : 404
1그 때에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 가로되 천국에서는 누 가 크니이까 2예수께서 한 어린아이를 불러 저희 가운데 세우시고 3가라사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돌 이켜 어린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 가지 못하리라 4그러므로 누 구든지 이 어린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그이가 천국에 서 큰 자니라 5또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아이 하나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 접함이니 6누구든지 나를 믿 는 이 소자 중 하나를 실족케 하면 차라리 연자 맷돌을 그 목에 달리우고 깊은 바다에 빠뜨리우는 것이 나으니라 7 실족케 하는 일들이 있음을 인하여 세상에 화가 있도다 실족케 하는 일이 없을 수는 없으나 실족케 하는 그 사람 에게는 화가 있도다 8만일 네 손이나 네 발이 너를 범죄 케 하거든 찍어 내버리라 불 구자나 절뚝발이로 영생에 들 어가는 것이 두 손과 두 발을 가지고 영원한 불에 던지우는 것보다 나으니라 9만일 네 눈이 너를 범죄케 하거든 빼 어 내버리라 한 눈으로 영생 에 들어가는 것이 두 눈을 가 지고 지옥 불에 던지우는 것 보다 나으니라 10삼가 이 소 자 중에 하나도 업신여기지 말라 너희에게 말하노니 저희 천사들이 하늘에서 하늘에 계 신 내 아버지의 얼굴을 항상 뵈옵느니라
18세기는 민중을 발견한 세 기요, 19C는 여자를 발견했 고, 20C는 어린이를 발견한 세기라고 말한 이가 있습니 다. 그러나 예수님은 2,000년 전에 사람 수에도 들지 못하 던 어린이를 존귀히 여기고 사랑해 주어야 할 것을 가르 쳐 주었습니다. 본문에 보면
"천국에서는 누가 가장 큽니 까?"하고 묻는 제자들에게 어 린이를 내세우며 어린이가 큰 자라고 말씀하시면서 누구든 지 어린아이와 같이 되지 아 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 지 못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뿐 아니라
"작은 아이 하 나라도 실족케 하는 사람은 연자 맷돌을 목에 걸고 깊은 바다에 빠뜨리는 것이 나으니 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어린 이를 얼마나 귀중히 여기시는 가 하는 것을 알 수 있지 않 습니까?
로마 제국만 해도 부모는 자식을 죽일 수도 있고 마음 대로 버릴 수도 있고 노예로 팔아 버릴 수도 있었습니다. B.C1세기에 편지하기를
"만 일 당신이 낳을 아이가 사내 라이라면 기르고 계집아이라 면 버리시오"하고 펴지 했고 세네카는
"약하거나 못생긴 아이들은 우리는 버린다"고 말했습니다. 예수님 당시만 해도
"여자와 아이 외에 오천 명"이라고 한 것을 보면 아이 들과 여자들은 숫자에 넣지도 않을 만큼 천대한 사실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잘못된 사 상을 말씀으로 행동으로 바로 잡아 놓았습니다. 한번은 많 은 부모들이 어린아이들을 데 리고 예수님께서 기도해 주시 기를 바랄 때에 제자들은 꾸 짖으며 아이들을 가까이 오지 못하게 할 때에 예수님은 오 히려 제자들을 꾸짖으시며
"어린아이들이 내게 오는 것 을 금하지 말라(누가복음 18 장 16절)"고 하셨습니다. 그 러므로 그리스도인의 정신은 어린이를 귀중히 여기고 잘 교육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어린이를 무시하거나 학대하 는 가정은 복을 받을 수 없고 어린이를 소홀히 여기는 교회 는 부흥하지 못하고 어린이를 무시하고 업신여기는 국가와 민족은 번영하지 못하는 것입 니다.
1. 어린이를 사랑해야 합니 다.
아일랜드의 역사가 나피엘 은 어느 날 길을 가다가 어린 소녀가 유리 조각을 주우며 우는 것을 보고 왜 그러느냐 고 물었더니 몹시 사나운 주 인집의 유리병을 잘 못하여 깨뜨려서 그런다고 걱정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때 나피엘 은 자기가 그 깨어진 그릇을 사 주겠다고 했지만 마침 자 기에게 돈이 하나도 없었습니 다. 그리하여 내일 그 자리에 서 만나기로 약속을 했는데 그 이튿날이 마침 자기의 연 구비를 도와주는 사람이 만나 자고 연락이 왔습니다. 이 때 나피엘은 어느 쪽을 택해야 좋을지 몰라 망설이다가 많은 연구비를 못 받는 한이 있어 도 그 어린 소녀에게 상처를 주지 않기 위해 거절을 하고 그 소녀를 만나서 깨어진 그 릇을 사주고 돌아왔습니다. 그랬더니 그 스폰서가 그 다 음날 더 많은 연구비를 가져 다주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들은 예수님의 정신과 어긋나게 어린이들을 무시하고 무관심하게 키울 때 가 많습니다. 어느 교회 학교 어린이가 부모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려고 추운 겨울 새벽 에 아버지가 일어나시기 전에 내복을 따뜻하게 해 드리려고 입고 있었습니다. 그랬더니 아버지가 일어나시자 마자
"아침부터 어린것이 어른의 옷을 왜 입고 있니?"
하고 꾸 짖었다고 하니 그 어린 동심 에 얼마나 큰 상처를 받았겠 습니까?
어느 26세의 젊은이가 자신 이 열등감이란 고정관념에 사 로 잡혀 고민하는 이야기를 털어놓았습니다. 그 청년의 어린 시절을 더듬어 올라갔더 니 그의 부모는 자기가 어려 서부터 공부를 잘 해도, 운동 에 우승을 해도, 모형 비행기 를 잘 만들어도 부모가 칭찬 은 해주지 않고 만족하지 못 하다는 듯이 트집만 잡았다고 합니다. 그 결과 이 청년은 만사에 자신이 없고 열등감에 사로잡히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런 사람은 사회생활 할 때 에 회사에서는 사장에게, 교 회에서는 목사님께, 학교에서 는 선생님께 반항적이고 불평 만 하는 사람이 되고 만 것 입니다.
우리가 지나치게 칭찬해 주 면 교만한 성격이 자리잡게 될 염려도 있기는 하지만, 부 모가 말과 행동으로 잘 표현 해 주고 인정해 주는 것이 대 단히 주요합니다. 말뿐만이 아니라 행동으로도 사랑을 표 현해 주어야 합니다. 꼭 안아 주며, 궁둥이를 두들겨 주거 나 뺨에 뽀뽀해 주거나 어깨 를 툭툭 치고 어루만져 주는 것입니다. 부모의 사랑을 못 받고 자란 사람이 문제아가 되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2. 사랑의 채찍을 가져야 합니다.
어린이들이 잘 할 때에는 잊지 말고 사랑해 주고 칭찬 해 주어야 하지만, 사회의 법 을 어기거나 하나님의 규율을 어기면 고통이 따른다는 것도 알려주어야 정상적인 인격을 소유하게 됩니다. 그러기 위 해서는 잘못했을 때 깨닫도록 타이르거나 채찍을 가해야 합 니다.
요한 웨슬레의 어머니 수산 나는 많은 자녀들을 훌륭히 키운 어머니인데, 그녀는 말 하기를
"자녀들의 고집을 즉 시 꺽어버려라 이것을 빨리 꺾을 수록 좋다. 자녀들에게 지나치게 친절하고 그들을 제 멋대로 하게 내버려두는 부모 는 사실상 잔인한 사람이다. 이런 부모는 타파되어야 할 악습을 기르는 것이 된다."고 했고 또
"자녀들을 제멋대로 하게 내버려두는 부모는 마귀 의 일을 하는 사람이며 신앙 을 무의미하게 하며 구원을 불가능하게 하고 영혼과 육신 을 멸망케 하는 사람이라"라 고 했습니다.
오늘 날 이 세상이 무법천 지처럼 되어 가고 자식이 부 모를 구타하거나 죽이기도 하 는 등 청소년들의 범죄가 심 각하게 증가되고 악화되는 것 은 부모들이 자녀들을 제멋대 로 하게 내버려두었기 때문입 니다. 교육 철학 자체가 잘못 된 이유도 있습니다. 선생님 이 학생에게 체벌을 못하게 하고 못된 짓을 해도 가만 내 버려두면 저절로 고쳐진다고 하는 것입니다. 큰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① 하나님의 규휼이나 사회 의 규율을 어겼을 때는 고통 이 오는 것을 깨우쳐 줘야 합 니다.
② 부모에게 불순종하거나 반항할 때는 반드시 고집을 꺾어야 합니다. 부모에게 자 기 고집을 꺾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께도 순종하지 않는 사 람이 됩니다.
③ 거짓말하거나 속이는 버 릇은 어려서부터 고치도록 징 계해야 합니다.
④ 출처 모를 물건을 가져 왔을 때 묵인하지 말고 반드 시 그 근거를 캐내어 징계를 해야 하고 제자리에 돌려놓도 록 해야 합니다.
어느 강도 흉악범이 법의 심판을 받아 사형 집행을 당 하게 되었습니다. 죽기 전에 어머니의 면회를 청하더니 철 창속에서 어머니의 얼굴을 끌 어당기더니 그 코를 이빨로 물어뜯더랍니다. 이유를 물어 보니까 어려서 물건을 훔쳐 와도 책망하지 않고 그대로 내버려둬서 자기가 결국 사형 을 당하는 신세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고통을 주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을 것입니다. 육체 적인 고통을 주는 방법이나, 방안에서 혼자 벽을 향하여 한 시간씩 앉아서 반성하게 한다든지, 좋아하는 것을 하 루나 한 두시간 못하게 한다 든지, 회초리를 따끔하게 때 려서 깨닫게 해 주는 방법 등 이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고 걸핏하면 때리라는 것은 아닙 니다. 일평생에 몇 번, 꼭 필 요할 때 채찍을 들 필요가 있 습니다.
벌을 줄 때는 반드시 기억 해 둬야 할 것이 있습니다.
① 부모의 화풀이를 때려서 는 안됩니다. 부모가 감정을 완전히 통제 할 수 있어야지. 화풀이로 때렸구나 하는 인상 을 주어서는 안됩니다. 그렇 게 되면 부모의 권위도 땅에 떨어지는 것입니다. 어떤 부 모는 도끼나 칼을 가지고 쫓 아다니며 죽일 듯이 덤벼드는 것을 볼 수 있는데, 그것은 상식 이하의 행동입니다.
② 공평하게 징계해야 합니 다. 어느 아이는 더 사랑하고 어느 아이는 더 많이 때리거 나 하면 자녀가 감정을 사서 더 삐뚤어진 길로 가게 됩니 다.
③ 징계 받는 이유를 보여 줘야 합니다. 이유 없이 고통 을 주면 징계가 무의미하고 반항심만 갖게 합니다.
④ 부모가 공동으로 책임을 지고 의논해서 벌을 주어야 합니다. 아버지는 때리는데 어머니는 역성을 든다던가하 면 역효과가 납니다. 어머니 는 때리는데 아버지는 어머니 를 나무란다던지 하면 교육이 안됩니다.
⑤ 매를들때 욕구 불만을 말하지 말고 기도하는 마음으 로 해야 될 것입니다. 요한 웨슬레는
"필요 없이 때리기 만 하지 말라. 매를 쥘 때는 하나님께 그것을 축복하시도 록 기도하라 그렇지 않으면 부모 자신의 심령이 해를 입 고 자녀에게도 유익이 없다"
고 했습니다.
⑥ 시작과 끝이 있어야 합 니다. 한번 벌을 주면 그것으 로 용서해 주고 끝나야지 한 번 지난 일을 두고두고 되풀 이해서 말하면 안됩니다. 하 나님도 우리가 한번 회개하면 빽빽한 구름의 사라짐같이, 아침 안개가 사라짐같이 우리 의 죄를 도말 하시고 기억도 하지 않으신다고 했습니다.
⑦ 그 아이에게 맞도록 벌 을 주고 그 아이만 있는데서 벌을 줘야지 사람이 많은데서 망신을 주면 안됩니다.
잠언 22장 6절에
"마땅히 행할 것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그리하면 늙어도 그것을 떠나 지 아니하리라"고 했고 잠언 13편 24절에
"초달을 차마 못 하는 자는 그 자식을 미워함 이라 자식을 사랑하는 자는 근실히 징계를 하느니라"했으 며 잠언 29편 15절에는
"채찍 과 꾸지람이 지혜를 주거늘 임의로 하게 내버려두면 그 자식은 어미를 욕되게 하느니 라"고 했습니다. 제사장 엘리 는 자식들이 하나님의 법을 어기고 못된 짓을 해도 가만 히 내버려두었기 때문에 하나 님께서 진노하셔서 그 자식들 은 한날에 다 전사하고 이 소 식을 들은 엘리는 쓰러지면서 목이 부러져 죽었습니다.
3. 부모가 생활로 본이 되 어야 합니다.
부모의 말은 자녀들이 들을 수도 있고, 안 들을 수도 있 지만 눈을 보는 것은 결코 잊 지 않고 깊은 감화를 받습니 다. 그러므로 가정에서 진실 한 신앙생활과 헌신의 생활을 보여주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 다. 자기 자신은 속일 수 있 을지 모르나 자녀는 속이지 못합니다. 자식들 보는 데서 성경 읽고, 기도하는 모습, 정 성껏 헌금 드리는 모습을 보 여 주면 그것이 백번 말하는 것 보다 낫습니다. 꿈에도, 교 회나 목사를 비판하는 말을 하면 안됩니다. 그 보다 더 큰 저주는 없습니다.
헛된 약속을 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지키지 못할 약 속을 아무렇게나 해 놓고 지 키지 않으면 부모의 위신도 떨어지고 거짓말쟁이가 됩니 다. 무엇을 달라고 하면 잘 생각해서 줘야 할 것은 약속 을 하고 그렇지 않으면 약속 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부모의 명령은 끝까지 시행 하도록 해야 합니다. 자식들 에게 명령을 내린 뒤에는 반 드시 시행했는지 여부를 확인 해야 됩니다. 말만해 놓고 내 버려두면 부모의 말이 권위가 서질 않습니다. 적당히 기회 만 넘기면 된다는 생각을 갖 게 해야 합니다. 또 시행하지 못할 것은 명령을 하지 말아 야 합니다.
4. 자녀들은 반드시 예수님 께 데려와야 합니다.
자녀를 낳거든 제일 먼저 교회에 나와서 예배를 드리고 예물을 드리며 축복 기도를 받도록 해야 합니다. 또 유아 세례를 받게 하고 교회에 출 석할 것을 가르쳐 주어야 합 니다. 강제성을 띠더라도 예 수님께 인도해야 합니다.
어떤 장로님의 아들이 고3 이라고 교회에 나오지를 안길 래 물어 봤더니, 입학하면 나 오게 하겠다고 하더랍니다. 하나님의 더 큰 영광을 위해 서 지금은 예배를 못 드리게 했다는 이유를 그럴듯하게 말 하더랍니다. 그런데 그 다음 에 대학에 떨어져서 온 가족 이 우울해 하고 슬퍼하는데, 그 집에 가서
"대학에 떨어진 것은 걱정하면서 자식이 지옥 으로 떨어 질 것은 걱정 안합 니까?"라고 했답니다.
어려서부터 성실하게 예배 출석하는 일과 십일조와 감사 헌금 드리는 습관을 길러 주 어야 합니다. 그리고 자녀들 을 밥과 옷으로만 키우지 말 고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키워야 한다는 잊지 말아야 합니다. 미리미리 말씀으로 양육하고 기도를 많이 해 주 어야 합니다.
부모의 과제/신6:5-9
2001-12-08 23:31:50 read : 244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은 가정입니다. 그곳에는 쉼이 있고, 평안이 있고, 참 자유함이 있습니다. 가족 모두가 아침이 되면 밖에 나갔다가도 저녁이 되면 모두 집으로 돌아옵니다. 주위에 호텔이 있고, 맛있는 음식점이 있어도 모두 집으로 돌아와 잠을 자고, 집으로 들어와서 저녁 식사를 하게 됩니다.
그것은 내 집이 최고의 안식처이기 때문입니다. 집을 나가서 잠을 자는 것에 더 평안함을 느끼는 사람이 있다고 하면 그것은 뭔가 잘못된 것입니다. 그 가정에 문제가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집을 나가게 되면 안정감이 없고, 불편하고, 부자유함을 느낍니다. 이것이 정상적인 생각입니다. 왜냐하면 이 세상에서 내 집처럼 자유하고, 평안하고, 안식하기에 더 좋은 곳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가정이라고 해서 다 행복하고 평안한 것은 아닙니다. 그곳에는 자녀들이 있어야 합니다. 자녀들이 없는 가정은 쓸쓸합니다. 외롭습니다. 그래서 세상의 여인들은 아이를 잉태해서 낳아 기르는 과정이 어렵고 고되지만 그것을 마다하지 않고 그 희생을 감수하면서 까지 아이를 낳아 기르려고 합니다. 왜냐하면 그 길이 가정의 행복의 요소이고, 기쁨의 요소이기 때문입니다.
또 가정에 아이들이 있다고 해서 모두 기쁨이 되고 행복이 되는 것도 아닙니다. 그 아이들이 성실하고, 진실하고, 신앙 안에서 복되게 자라가야 행복한 것입니다. 만일 아이들이 불량하고, 탈선을 하고, 사고나 저지르고 다닌다면 오히려 부모들에게 근심만 더할 뿐입니다. 그것은 오히려 행복을 앗아가는 경우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오늘 성경 본문은 세 가지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마음을 다 하고, 성품을 다 하고,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라"(5)는 것이고, 둘째로는 "내가 명한 것을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라"(7)는 것이고, 세 번째는 "말씀을 손목에 매고, 미간에 붙이고, 문설주에 발라 기호를 삼으라"(8)는 것입니다. 이것은 부모들에게 강조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강조하신 이유가 있습니다. 거기에 다음의 세 가지 목표가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는 자녀들로 하여금 "선량한 시민을 만들기 위해서"입니다.
부모는 자녀들을 우선 선량한 시민으로 만들어야 할 책임이 있는 사람입니다. 이것이 부모에게 주어진 최대의 과제입니다. 그래서 세상의 부모들은 한결같이 자녀들로 하여금 잘 자라도록 최선을 다 합니다. 부모들의 자식을 향한 간절한 마음은 그 어느 것에 비교도 될 수 없을 만큼 애처롭습니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세상의 부모들에게 주신 아름다운 마음이기 때문입니다.
이같은 부모들의 한결같은 마음에도 불구하고 오늘을 보면 불량한 청소년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탈선하고, 반항하고, 제를 일으켜서 선량한 시민의 자격을 포기한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오늘 이것이 부모들의 근심이고 사회의 문제입니다. 어린 청소년들이 이렇게 되는 이유가 몇 가지 있습니다.
하나는 유전적인 요소입니다. 이 타락된 정신은 피를 통해서 유전적으로 내려오는 경우가 있습니다. 도벽이나, 방랑성 그리고 주벽, 불성실, 유흥성의 기질은 유전됩니다. 이것은 어쩌면 우리 모든 사람들의 핏속에 다 들어 있는 유전적인 요소일 것입니다. 아담으로부터 물려받은 타락된 본성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주된 원인은 환경에 있습니다. 청소년의 시기는 정신의 변혁기이기 때문에 정서적으로 아주 예민한 시기일 수밖에 없습니다. 이 시기의 청년은 조용하고 안정된 분위기에서 자라나야 합니다. 그래야 곧고 고루 균형된 인격을 지닌 인격체로 자라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중요한 때에 결손 가정에서 정서적으로 불안정한 환경에서 자라게 되면 우선 정신의 균형이 깨지기 때문에 아이들의 정서에 틈이 생기기 쉽습니다. 그리고 불화하고 갈등이 있는 환경에서는 정서의 불안을 느끼기 때문에 안정성을 잃고 밖으로 나가게 될 수밖에 없게 됩니다. 그러면 그렇게 밖으로 나온 아이들끼리 어울리게 되어 자연스럽게 탈선이 시작되게 되는 것입니다.
사람은 어느 날 갑자기 만들어지는 존재가 아닙니다. 사람은 하나님의 섭리에 의해서 일방적으로 만들어지는 경우도 있기는 합니다. 모세나 삼손이나 세례요한 같은 경우는 하나님에 의해서 만들어진 경우입니다. 그러나 그 경우는 매우 특이한 경우입니다.
대부분은 인간은 태아 때부터 만들어집니다. 어느 임상학자가 이 경우를 실험했습니다. 산모의 태 중에 전깃줄을 넣어 불을 키니까 태 속의 어린아이는 눈을 가리더라고 합니다. 이 아이는 빛이 무엇인지 모릅니다. 그런데 갑자기 빛이 켜서고 어둡던 곳이 밝아지니까 반사적으로 눈을 가리더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큰 소리를 내고, 문을 쾅하고 닫으니까 이 아이는 태 중에서도 놀라더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부드러운 소리를 내니까 그 때서야 안정하고 조용히 있더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술 주정을 피우고 부부싸움을 자주 하는 환경에서 잉태되고, 자라난 아이들은 늘 긴장 속에서 자라게 된다는 것을 쉽게 알 수가 있습니다. 그 아이는 자라서 성인이 되면 틀림없이 난폭한 성품의 사람이 될 것이고 신경질적인 사람이 되고 말 것입니다. 그리고 안정된 분위기에서 자라고 성장한 아이라야 부드러운 성품과 인격을 지닌 아이로 성장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들이 실내에 있으면 밖의 소리를 잘 듣지 못합니다. 그 대신 안에서 들리는 소리는 더 크게 듣게 됩니다. 이 말은 어린 태아는 태 중에서 어머니의 심장 박동 소리를 크게 듣고 자란다는 이야기입니다. 그 심장 박동 소리가 정상적이고 평온을 유지할 때는 안정되고 균형 잡힌 심성을 유지하면서 자라겠지만 불규칙적인 박동 소리를 듣고 자라나는 어린아이는 쉽게 불안정한 아이로 형성될 것이 분명 합니다.
그러니까 늘 싸우고, 화를 내고, 흥분을 하고, 욕을 하고, 신경질적인 어머니에게서 잉태되고, 자라고, 성장한 아이의 심성이나 성품이 어떻게 되리라는 것을 우리들이 쉽게 생각해 볼 수가 있습니다. 이점을 생각해 보면 부모의 책임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생각하게 됩니다. 그래서 본문 5절에서 말씀하시기를 "너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 하여 네 하나님을 사랑하라" 고 했습니다. 이 말씀이 자녀양육의 필수적인 교훈의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는 "신앙인 육성을 위해서" 입니다.
7절을 보면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 이 말씀을 강론하라" 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아이들로 하여금 경건한 신앙인으로 육성하기 위해서 입니다. 만사는 심은 대로 거둔다고 했습니다. 심은 대로 나중에는 거두게 됩니다. 그래서 어렸을 때 신앙교육이 중요한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교회학교의 교사들의 역할도 대단한 역할입니다.
아이들은 분위기에 따라서 만들어지고 형성되는 존재입니다. 분위기와 환경에 따라서 신앙인으로 만들어지지도 하고, 비신앙으로 만들어지기도 합니다. 신앙의 분위기에서 자란 아이들은 자란 후에 잠시 이탈을 하는 수가 있어도 후에는 다시 돌아옵니다. 그렇지만 비신앙 적인 분위기에서 자란 아이들은 후에 신앙생활을 하다가 이탈을 하게 되면 다시 돌아오기가 쉽지 않습니다. 기초가 그만큼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그런 면에서 인생의 기초는 그만큼 중요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63빌딩을 짓는데 기초공사만 3년이 걸렸다고 합니다. 기초가 그만큼 단단하고 잘 되어 있으니까 그 기초 위에 63층을 올려도 흔들리거나 기울지 않는 것입니다. 모태 신앙 자들이 뜨겁거나 신앙의 활발성은 적으나 끈질기고 좀처럼 흔들리지 않는 것은 이 기초가 든든하기 때문입니다.
미국이라는 나라가 오랜 동안 세계 위에 군림을 했습니다. 정신적으로나 도덕적으로 든든함을 보여준 나라입니다. 그것은 청교도들의 보수적인 신앙을 바탕으로 해서 나라가 세워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나라는 세계에서 일어나는 불의한 사건들에 대해서는 사명의식을 가지고 대처했고 개입해서 해결을 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좀처럼 실패를 모르고 살았습니다. 이것이 미국이라는 나라가 지닌 자랑이었습니다.
그런데 요즘에 와서의 미국은 이제 더 이상 미국이 아닙니다. 완전히 한물간 나라입니다. 쇠퇴했습니다. 약화되었습니다. 그 이유를 사람들은 케네디 대통령이 공립학교들이 수업시작 전에 기도하던 제도를 폐지했던 그 시점으로 보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 때 까지만 해도 미국의 모든 학교들은 수업을 시작하기 전에 기도를 하고 공부를 했습니다. 이것은 미국이 자랑하던 힘이었고, 구심점이었고, 미국의 정신이었습니다. 그런데 케네디가 대통령이 되면서 먼저 그것부터 폐지시켰습니다. 그 때부터 미국의 힘은 쇠퇴하기 시작했고 구심점도 사라졌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서 미국이 얻은 것 가운데 가장 두드러진 것이 월남전의 패배입니다. 그 때 부터 미국은 세계 도처로부터 신뢰도를 잃게 되었고, 도덕성을 상실하게 되었고, 의지도 모호해 지기 시작했습니다. 오늘의 미국은 이제는 완전히 종이 호랑이로 변해 버리고 말았습니다.
오늘 미국의 몰골을 보십시요. 세계에서 아주 작은 나라, 북한으로부터 질질 끌려 다니는 저 모습을 보면서 이 나라가 어쩌다 이렇게 까지 되었나 싶을 정도로 안타까운 마음을 갖고 바라보게 됩니다. 국가든 사회든 그곳이 가정이든지 이같이 권위를 상실하게 되면 힘이 약화되고 구심점이 흔들리게 됩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은 "네 자녀들에게 부지런히 가르치고 ... 그 말씀을 강론하라" 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자녀들로 하여금 경건한 신앙인을 만들기 위해서 입니다.
세 번째는 "하나님의 일꾼을 만들기 위해서" 입니다.
집집마다 가보면 가훈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그 가훈의 목적은 순전히 교훈성입니다. 자녀들로 하여금 이런 사람이 되게 하겠다는 그 가정의 뜻을 반영한 내용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 가훈을 중심으로 해서 온 가족이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집집마다 가보면 좋은 정신이 들어 있는 가훈이 있습니다.
본문 8절을 보면 "너는 하나님의 말씀을 손목에 매어 기호를 삼고, 미간에 붙여 표를 삼고, 문설주에 기록하여 가르치라" 고 했습니다. 이것이 소위 가훈입니다. 하나님의 일꾼을 만들기 위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강력하게 가훈으로 가르치라는 말입니다.
자녀는 낳아 놓는 것만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먹이고, 키우는 것만도 다가 아닙니다. 육신의 양식도 먹여서 잘 키워야 하지만 정신의 양식도 공급해 주어야 하고, 영의 양식도 충분히 먹여서 골고루 섭취시켜 하나님의 사람으로 만들어 내야 합니다. 이것이 부모에게 부여된 역할입니다.
오늘은 특히 어린이 주일로서 40명의 어린아이들이 헌아식을 하게 됩니다. 바라기는 선량한 시민으로 양육하고, 경건한 신앙인으로 키우고, 하나님의 일꾼으로 세상을 위해서 쓰임 받을 수 있는 아이들로 키울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것이 오늘 부모들에게 주어진 최대의 과제인 것입니다.
주의 교양과 훈계로/엡6:4
2001-12-08 23:30:25 read : 225
살아가는 동안 우리에게 참 으로 중요하고 소중한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일이 있다면 그것은 자녀를 바르게 양육하는 것일 것입니다. 하 나님을 믿는 믿음을 제외 한다면 세 상에 그보다 더 중요한 일은 아마 없을 것입니다.
사업이 어려움을 당하고 직 장에 문제가 생겨도 참으로 힘들고 어렵습니다. 그리고 인간관계에 문 제가 생겨도 참으로 괴롭습니다. 그 러나 아무리 그와 같은 것들이 힘들 고 어렵다고 하여도 자녀에 문제가 생기는 것과는 비교가 되지 않습니 다. 그만큼 자녀의 문제는 중요한 것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그렇게 중요한 자녀를 문제 없이 키운다는 것이 좀처럼 쉽지 않아서 많은 사람 들과 가정에 자녀로 인한 갈등과 고 민과 어려움이 있다고 하는 사실입 니다. 많은 가정이 부모와 자녀 사 이의 갈등으로 인하여 고통을 받고 있습니다.
요즘 우리는 자녀를 바르게 양육하기에 참으로 힘들고 어려운 여건속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세 상의 문화적인 환경과 여건이 우리 의 자녀들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문화적인 환경 과 여건은 참으로 자녀를 바르게 양 육하는데 큰 걸림돌이 됩니다. 그러 나 문제는 세상에만 있는 것이 아닙 니다. 보다 더 크고 보다 더 직접적 인 원인은 우리 부모들에게 있습니 다.
부모들이 자녀들을 사랑하 는 것은 사실이지만 무조건 사랑한 다는 것 하나만 가지고 자녀를 문제 없이 기를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자녀를 자기 생명보다 더 귀히 여기 고 사랑은 하지만 정작 자녀를 바르 게 양육하는데 이런 저런 문제가 있 어서 자녀들이 잘못되는 경우가 얼 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사랑은 물론 자녀를 바르게 양육하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 입니다. 그러나 사랑만으로 모든 문 제가 다 해결되는 것은 아닙니다. 자녀를 바르게 양육하는데 있어서 문제가 되는 부분들을 찾아내 그것 을 개선하지 않으면 사랑 때문에 문 제가 더 심각해 질 것입니다.
우리 부모들에게 있는 문제 가 여러 가지 있을 수 있지만 저는 오늘 이 시간 몇가지 문제를 말씀드 리려고 합니다. 그것은 '무지함'과 ' 무례함' 그리고 '본이 되지 못함'입 니다.
많은 부모들이 자녀에 대하 여 모릅니다. 무지합니다. 가장 큰 이유는 공부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자녀의 마음과 생각 그리고 심리에 대하여 거의 잘 모릅니다. 저들을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도 거의 모 릅니다.
별 것 아닌 자동차도 운전 을 하려면 많은 훈련과 공부가 필요 합니다. 그와 같은 훈련과 공부를 통하여 자동차를 이해하고 자동차를 운전하는 식을 배웁니다. 그리고 운 전을 합니다. 그래도 실수하는 경우 가 있습니다. 자기 자신을 과신하여 그와 같은 공부와 훈련을 받지 않고 자동차를 운전하려고 한다면 세상에 그것처럼 위험한 일은 아마 있을 수 없을 것입니다. 가끔씩 운전 면허가 없는 중고등학생들이 부모의 자동차 를 몰래 운전하다가 큰 사고를 내는 경우를 뉴스를 통하여 보곤 하는데 바로 그것이 훈련과 공부없이 자기 자신을 과신하다가 일으키는 큰 사 고인 것입니다.
그런데 바로 그와 같은 식 의 사고를 우리 부모들이 자녀 교육 에서 일으키고 있다는 것입니다. 자 녀를 바르게 양육하기 위해서도 많 은 공부와 훈련이 필요합니다. 그런 데 대부분의 부모들이 그와 같은 공 부와 훈련을 하지 않습니다. 비유하 자면 대부분의 부모들이 자녀 교육 에 있어서 무면허자들입니다. 그래 서 사고가 많이 나는 것입니다.
공부해야 합니다. 훈련을 받아야 합니다. 책도 읽어야 하고 세미나에도 참석하여 좋은 강의들도 들어야만 합니다. 그리하여 자녀들 을 이해하고 저들을 바르게 운전하 는 식을 배워야만 합니다.
대부분의 경우 부모들은 자 녀들의 문제가 무엇인지를 알고 저 들에게 무엇을 가르쳐야 하는지를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많은 부모들 이 저들에게 그것을 어떻게 가르쳐 야만 하는지를 모르고 있습니다. 교 육에 있어서 '무엇을 가르치느냐'도 중요하지만 보다 중요한 것은 그것 을 '어떻게 가르치느냐'입니다.
많은 부모들이 바로 이 '어 떻게?'에 대하여 무지합니다. 이에 대한 공부가 필요합니다. 훈련이 필 요합니다.
자녀를 바르게 교육함에 있 어서 무지 보다 더 나쁘고 무서운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자녀들에 대 한 부모들의 무례함입니다. 많은 부 모들이 자녀들에 대하여 무례합니 다. 자녀들의 대한 부모의 무례함이 라는 표현 자체가 이상하게 들리고 불편하게 들리는 부모님들이 혹 여 러분들중에 있으실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여러분 많은 자녀들이 바로 이 보모들의 무례함으로 인하여 상 처와 고통을 받고 있으며 그 상처와 고통이 자녀들이 잘못되는 가장 큰 이유가 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만 합니다.
그것은 부모와 자식의 경우 뿐만이 아닙니다. 부부간에도 마찬 가지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사랑할 때 무례해지기 쉽습니다. 그러나 그 것은 매우 위험한 일입니다. 사랑할 수록 더 예의를 지켜야만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 무례함 때문에 사 랑이 깨지게 될 것입니다. 부부간에 문제가 생기는 가장 큰 이유중에 하 나가 바로 이 무례함입니다. 사랑하 는 사람의 무례함으로 인하여 깊은 상처를 입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얼 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런데 가장 큰 무례함은 자녀에 대한 부모들의 무례함입니 다. 사랑하기 때문에 그리고 어리기 때문에 함부로해도 된다고 잘못 생 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 습니다. 자녀들이 비록 어리기는 해 도 저들도 하나의 소중한 인격들입 니다. 물론 아직 미숙한 인격이기 때문에 저들을 가르쳐야만 합니다. 때로는 꾸짖기도하고 필요하다면 매 도 들어야 할 것입니다. 서양에서는 아이들에게 매를 드는 것을 미개한 것으로 보지만 잠언 13:24에 보면 ' 초달을 차마 못하는 자는 그 자식을 미워함이라 자식을 사랑하는 자는 근실히 징계하느니라'는 말씀이 있 습니다. 필요하다면 자녀들에게 매 도 들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꾸짖고 교훈하고 심 지어 매질을 할 때에도 저들의 인격 을 존중해 주어야 합니다. 예의를 갖추어야만 합니다. 아이들의 인격 을 함부로 무시하고 저들에게 무례 함으로 저들에게 정신적이고 인격적 인 폭력을 가해서는 안됩니다.
오늘 성경에도 보면 '자녀 를 노엽게 하지 말라'는 말씀이 나 옵니다. 자녀들이 언제 부모에 대하 여 노여움을 품게 되는지 아십니까? 부모에게 꾸짖음을 당할 때 아니면 부모들에게 매를 맞을 때인줄 아십 니까? 아닙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저들도 부모들에게 꾸짖음을 받고 심지어 매를 맞는 것이 당연한 일이 라고 알고 있습니다. 저들이 상처를 받고 그 때문에 문제가 생기는 가장 큰 이유는 부모들이 자녀들의 인격 을 무시하고 무례하게 행동하기 때 문입니다.
부모들이 자녀들을 인격적 으로 대우하고 저들에게 나름대로의 예의를 갖추어 준다면 저들은 부모 의 꾸짖음과 초달을 인정하고 받아 줄 것입니다. 그리고 그 꾸짖음과 초달은 아주 좋은 효과를 가져와 아 이들을 바르게 자라나게 하는데 큰 도움을 줄 것입니다.
많은 부모들이 아이들이 말 을 듣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반항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들이 부모들 의 말을 잘 들으려고 하지 않고 반 항을 하려고 하는 중요한 이유는 꾸 짖음과 매 때문이 아닙니다. 부모들 이 자신들의 인격을 무시하고 함부 로 말하고 행동하는 무례함 때문입 니다.
부모도 자식에게 최소한의 예의를 갖출 줄 알아야 합니다. 예 의는 아이들이 어른에게만 갖추는 것인줄로 아는 분들이 많이 있습니 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예의는 모두에게 필요한 것입니다. 어른들 이 먼저 아이들에 대하여 예의를 갖 출 줄 알 때 우리 아이들이 예의를 배우게 될 것이고 어른들에 대해서 도 예의를 갖추게 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자녀들을 바르 게 양육하는데 큰 문제가 되는 것은 '부모가 자녀의 본이 되지 못함'과 '정직하지 못함'입니다. 참된 교육은 말에 있지않고 삶에 있습니다. 보통 의 경우 삶이 따르지 않은 말은 힘 이 없습니다. 그러나 부모의 경우는 다릅니다. 부모의 '삶이 따르지 않 는 말'에는 힘이 있습니다. 그것은 자녀를 바르게 하지 못하고 오히려 삐뚤어지게 하는 힘입니다.
사랑하지 않는 사람의 '삶 이 따르지 않는 말'에는 힘이 없습 니다. '그 사람은 말만 해'하고 돌아 서 버리면 그만입니다. 그러나 부모 는 '그 사람'이 아닙니다. 다시 말해 서 남이 아닙니다. 사랑하는 사람입 니다. 남들과 특히 친구들에게 자랑 하고 싶은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런 부모가 말과 삶이 일치하지 않는다 면 그것은 자녀들에게 큰 쇼크가 아 닐 수 없습니다.
물론 부모라고 늘 '말과 삶 '이 일치 할 수는 없습니다. 잘못을 할 수도 있고 실수를 할 수도 있습 니다. 그래도 상관없습니다. 아이들 도 온전한 사람은 없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럴 경우 정직하면 됩니 다. 자신의 한계와 실수를 솔직히 인정하면 됩니다. 그러면 자녀들은 그런 부모를 오히려 존경하고 자랑 스럽게 생각하게 됩니다.
그런데 보통의 경우 쓸데없 는 권위 의식 때문에 자녀들 앞에서 그것을 인정하지 않고 은폐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을 아이 들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럴 때 아 이들의 눈에 부모는 위선자로 보이 게 됩니다. 이것은 아주 치명적인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사랑하는 부모가 그리고 자랑스러워야 할 부 모가 자녀들의 눈에 위선자로 보이 게 될 때 아이들이 받는 충격은 엄 청난 것입니다. 그것으로 부모의 자 녀에 대한 교육은 끝입니다. 더 이 상 교육이 불가능한 상태가 될 것입 니다.
말씀을 마치려고 합니다. 시편 127편 3절에 보면 '자식은 여 호와의 주신 기업이요 태의 열매는 그의 상급이로다'라는 말씀이 있습 니다. 맞습니다. 자녀는 하나님이 우 리에게 주신 기업이요 상급입니다.
세상의 다른 일들이 아무리 잘되고 성공한다고 하여도 자녀가 잘못되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러 나 극단적으로 세상의 다른 일들이 다 실패하고 어려워진다고 하여도 자녀들이 성공하고 잘된다면 그 실 패와 어려움 또한 아무것도 아닙니 다.
세상에 자녀를 바르게 양육 하는 것 보다 중요한 일은 없습니 다. 자녀를 바르게 양육하는데 있어 서 부모보다 중요한 사람은 없습니 다. 아이들에게 있어서 최고의 스승 과 교사는 부모입니다. 오늘 많은 부모들이 아이들의 스승과 교사가 되는데 실패하고 있습니다. 열심히 돈을 벌어서 저들을 잘 먹이고 잘 입히면 그것으로 좋은 부모가 되는 줄로 착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열심히 학비를 주어서 공부를 시키 면 훌륭한 자녀들이 되는 것으로 오 해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아닙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자녀에 대한 보다 중요한 부모의 책 임은 저들에게 세상과 인생 그리고 신앙을 가르치는 참된 교사와 스승 이 되는 것입니다. 부모를 인생의 스승으로 만나 자녀들이 복이 있습 니다. 부모에게서 인생에 있어서 중 요한 것 모든 것을 배울 수 있는 아 이들이 복이 있는 있습니다. 물론 부모들이 아이들에게 저들이 필요한 모든 것을 다 가르쳐 줄 수 없습니 다.
저는 지금 제 실력으로 아 이들이 필요한 영어와 수학 그 밖의 세상적인 지식들을 가르쳐 줄 수 없 습니다. 그래서 저는 아이들을 학교 에 보내고 선생님들에게 저들을 맡 기는 것입니다. 그러나 보다 중요한 삶과 신앙은 제가 가르칠 수 있습니 다. 그리고 그런 것들은 제가 가르 쳐야만 합니다.
저는 제 아이들의 목사가 되고 싶습니다. 선생이 되고 싶습니 다. 아이들에게 인정받고 존경받는 부모가 되고 싶습니다. 그렇게 될 때 진정으로 좋은 동안 교회의 목사 도 될 수 있을 것입니다. 만일 여러 분들이 자녀들에게 인정받고 존경을 받는 목사와 함께 교회 생활을 할 수 있다면 그것이 여러분들에게 복 이 될 것입니다.
말씀을 마치려고 합니다. 하나님은 저와 여러분에게 사랑하는 자녀들을 맡겨 주셨습니다. 그리고 주의 교양과 훈계로 잘 양육해 달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훌륭 한 일군으로 키워 달라고 부탁하셨 습니다.
세상적으로도 승리하고 성 공하시는 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 다. 그러나 무엇 보다도 자녀 교육 에 승리하고 성공하시는 분들이 되 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러기 위 하여 먼저 공부하는 부모가 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열심히 성경을 공 부하여 저들에게 무엇을 가르쳐야 할 것인가를 배우실 수 있기를 바랍 니다. 그리고 저들의 심리와 성격을 공부하여 저들에게 그와 같은 진리 를 어떻게 가르쳐야 할 것인가를 배 우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자녀들을 인격적으 로 대하는 법을 연습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저들의 인격을 존중해 주 고 자녀에 대해서도 예의를 갖추어 말 한마디라고 실수하지 않도록 조 심하는 부모가 되실 수 있기를 바랍 니다.
그리고 삶으로 가르치는 부 모가 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자 신의 실수와 잘못에 대하여 정직하 고 솔직한 부모가 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자녀들에게 인 정받고 존경받는 부모가 되실 수 있 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날마다 자 녀를 위하여 기도하는 부모가 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하면 비록 세상이 아무 리 혼탁하고 유혹이 많다고 하여도 틀림없이 하나님은 우리 아이들을 훌륭하고 반듯한 아이들도 키워 주 실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이 말씀하 신대로 우리들의 자녀들은 우리들의 기업이 될 것이요 우리들의 상급이 될 줄로 믿습니다.
좋은 믿음의 부모들이 되어 서 자녀를 기업과 상급으로 받으시 는 축복을 다 받아 누리시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실 수 있기를 바랍니 다.
주의 훈계로 양육하라/엡6:1-4
2001-12-08 23:29:25 read : 219
현대인의 가장 큰 죄가 세 가지 있다고 합니다. 첫째가 공부하지 않는 죄가 있다고 합니다. 그는 물 질문명에 취해서 편리한 것들만 찾 아 나가고 있습니다. 언젠가 좀 깊 이 공부하는 일이 없습니다. 심지 어는 요새는 컴퓨터라고 하는 기계 를 통해서 많은 정보를 얻습니다만 은 아주 부분적인 것들을 수집하고 있을 뿐입니다. 깊이 공부하며 책 을 읽는 그러한 일들이 점점 멀어지 는 것을 이렇게 마음 아프게 생각합 니다. 깊이 생각하고 인간의 가치 를 묻는, 지혜를 얻는 그런 공부가 없다는 것이올시다. 둘째는 실천하 지 않는 겁니다. 아는 대로 행하질 않습니다. 부득이 하다는 말로, 인 간은 약하다는 말로 변명하면서 가 지고있는 지식을 그대로 생활에 옮 기지 않는 것입니다. 말은 많고, 비 판도 많고 아는 것도 많은데 행하는 것은 너무 적습니다. 너무 비참할 정도로 실천에 옮기지 않는다는 겁 니다. 그래서 의지 박약, 그것이 바 로 현대인의 특징입니다. 세번째는 가르치지 않는다는 겁니다. 너무나 이기주의이기 때문에 아무에게도 가 르치지 않을 뿐더러 자녀에게까지도 가르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일본에 어느 제 아는 친구 목사님이 또 다른 일본 목사님과 이야기한 얘 기를 제게 옮겨 주었습니다. 그 일 본 목사님에게는 자녀가 셋이 있는 데 자녀가 하나같이 교회에 나오지 않습니다. 그 뿐만 아니라 세상적 으로 삽니다. 이것이 너무 마음이 아픈데 가만히 보니깐 자녀들에 대 한 관심이 없는 것 같아서,
"그래 어떻게 목사님은 그 자녀들이 이렇 게 교회에 안나오는데 어떻습니까?"
하고 물었더니,
"그거요? 종교는 자유인데요. 애들에게 왜 내가 예 수 믿으라고 해야 합니까?"
깜짝 놀랐다는 겁니다. 여러분 가르쳐야 됩니다. 저절로 되는 게 아닙니다. 내버려두면 악으로 키웁니다. 이걸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합니다. 부지 런히 자녀들에게, 친구에게, 이웃에 게 내가 깨달은 바 소중한 것 또 진 리를 가르쳐야 됩니다. 부지런히 가르쳐야 됩니다. 그것이 바로 전 도요 교육이 아니겠습니까?
한국이 이 만큼, 세계적으로 볼 땐 아주 잘 삽니다. 특별히 IMF라 고 하는 이 경제제재를 받으면서도 이만큼 잘 견디어 나가고 있습니다. 이 문제에 대해서 말입니다. 우리 는 미처 생각하지 못 하지만 세계 사람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한국은 저것을 잘 견딜 수 있는데, 그것은 바로 한국인의 교육열 때문이라고. 땅도 좁고, 사람은 많고, 자연 자본 도 없지만은 한국사람들 자녀들 공 부시키는데는 극성입니다. 이것이 밑천입니다. 이것 때문에 이만큼 살아갈 수 있는 겁니다.
우린 6·25를 통해서 이 엄청난 희생과 큰 사건을 통해서 배운 바가 많습니다만은 정리해보면 중요한 세 가지를 배웠어요. 첫째가 교육이 먼저다. 그 동안에는 양반이니 귀 족이니 뭐 해 가지고 돈을 많이 벌 어서 자자손손이 땅을 물려주고 살 면 이것이 제일이다. 그래서 돈, 땅 이것만 생각했습니다만은 전쟁을 치 르고 보니까 아무 것도 아니에요. 이 땅문서 소용없어요. 지식이요. 지식이 없으면 안된다는 걸 배웠습 니다. 그래서 땅을 팔아서 가르치 고, 한 마리밖에 없는 소도 팔아서 자식을 가르치려고 듭니다. 이 한 국사람의 교육열은 지나칠 정도로 극성맞습니다. 그러나 이것으로 인 해서 오늘 우리가 이만큼 살고있는 것이올시다. 또 하나는 6·25를 통 해서 우리는 공산주의가 무엇인가를 배웠습니다. 우리가 배우고 온 세 계에 증거했습니다. 이제는 나아졌 습니다만은 50년 전만 해도 공산주 의가 세계의 희망인 것처럼 생각했 습니다. 많은 지식인들이 매혹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한국전쟁, 여기 서 공산주의의 정체가 노출이 됩니 다. 그리고 온 세계에 증거하게 됐 습니다. 이렇게 역사가는 말합니다. 만일에 6·25가 없었더라면 우리 한 국은 틀림없이 월남이나 캄보디아같 이 되었을 거라구. 완전 공산화 되 가지고 지금 얼마나 비참해 집니까? 캄보디아에서요 킬링필드의 얘기를 하지 않습니까? 한 곳에서 150만을 죽였어요. 사람 죽이기를 뭐 거침 없이 해요. 이러한 무서운 상황을 보면서 이 남의 얘기가 아니요. 우 리가 일찍이 6·25전쟁을 만나지 않 았더라면 이래 될 뻔했다 하는 겁니 다. 정신이 아주 아찔합니다. 공산 주의를 배우게 됐어요. 또 세번째 는 우리 한국민족은 정말로 신앙의 색으로 드러났어요. 6·25를 통해 서 교회가 부흥되고 영적 세계의 소 중함을 알아서 철저한 종교성이 높 은 그러한 민족으로 발전하게 됩니 다. 자 이제 보세요. 결국은 이만 큼 우리가 하나님께서 6·25를 통해 서 우리를 가르쳐 주시고, 깨우쳐 주시고 많은 사건을 통해서 우리를 양육하여 오늘에 이르게 하셨다 이 말씀입니다.
오늘 성경말씀은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
"자녀들을 양육 하라"하고 말합니다. 양육이라는 데는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우 리는 먹이고, 하나님은 자라게 하십 니다. 자라게 하시는 일, 생명을 자 라게 하시는 일은 하나님뿐이십니 다. 그런데 그가 자라게 하실 텐데 우리에게 부탁한 게 있어요.
"먹이 라"
그랬어요. 먹일 것을 먹여요. 그래야 가르칠 수 있는 것이올시다. 더 키울 수 있는 것이올시다. 사도 바울은 그래서 갈라디아 4장에서 말 합니다.
"나는 너희를 위하여, 너희 속에 그리스도의 형상에 이르기까지 해산의 수고를 한다."
이렇게 말하 고 있습니다. 해산의 수고가 지속 되는 것이올시다. 누가복음 2장 52 절에는, 기독교 교육에 아주 교육철 학의 기본이라고 하는 말씀이 있습 니다.
"예수는 지혜와 키가 자라가 며 하나님과 사람에게 사랑스러워 가시더라."하는 말입니다. 키가 자 라며 '체육', 지혜가 자라며 '지육' 그리고 하나님 앞에 사랑스러워 가 더라 '종교', 사람에게 사랑스러워 가더라 '도덕', 이런 네 가지 측면으 로 우리는 자녀들을 양육해야 합니 다. 육체적인 것도 중요합니다. 계 속 영향을 공급해야 됩니다. 균형 있는 영향, 잘 먹여야 건강합니다. 알게 모르게 영향이 불균형이 되고 실조가 되어서 잘못되는 경우가 참 많습니다. 이 분위기나 이것이 얼 마나 중요한 것인지 모릅니다. 더 구나 우리 북한에 가 보면은 그런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얼마나 아이 들이 비참한지요. 저희가 이 자리 에서 말씀을 드립니다만은 약 삼천 명의 고아를 저희 소망교회에서 계 속 식량을 오래 전부터 대고 있습니 다. 그 아이들은 잘 자라고 있습니 다. 그런데 이렇게 어려운 아이들 을 보면은 영양실조가, 비틀어지고 말라지고, 울지도 못하고 지쳐 있는 거, 앞으로 커서 사람될는지 모르겠 어요. 그런데 말입니다 얼마나 끔 찍한 지 거기 지도자들도
"목사님, 그 애들 만나지 마세요. 그 애들 비참한 거 보고나면 목사님 아마 한 달 동안은 식사를 못 할겁니다."
그 분들이 하는 말입니다. 그 만큼 비참합니다. 먹지 못한다는 것, 먹 지 못해서 비틀어져 가는 영양실조, 얼마나 비참한 지 모릅니다. 자 그 런고로 육체적으로도 우리가 키워야 겠지요. 잘 키워서 잘 먹여야 됩니 다. 그래야 건강하게 자랄 수 있겠 지요. 더구나 입맛은 부모가 만드 는 겁니다. 대단히 중요한 말입니 다.
"먹고 싶은 대로 먹어라"가 아 닙니다. 먹어야 할 것을 먹도록 해 야 합니다. 먹이도록, 먹도록, 그래 서 충분한 영향을 공급해야 합니다. 또한 정신적으로는 많은 지식을 주 어야 됩니다. 들어야 될 것은 듣고, 보아야 할 것은 보고, 경험할 것은 다각도로 경험하도록, 그래야 지능 이 발달합니다. 이런 우스운 얘기 가 있어요. 수다스러운 어머니를 가진 아이의 I.Q.가 높다고. 말없는 것보다 나은가 보죠. 수다스러운 어머니가 자꾸 말을 하니까 생각이 발전한다고 그래요. 멍청한 어머니 는 아이들을 멍청하게 만들 수밖에 없어요. 많이 듣고 지식을 얻어야 합니다. 이게 양육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영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들려주어야 합니다. 진리를 경험하 게 해야 됩니다. 경건을 보여 줘야 되고 기도를 가르쳐야 됩니다. 내 가 기도하고, 함께 기도하고, 기도하 는 사람으로 키워 나가야 합니다. 자, 낳는 것은 쉽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으로 키워간다고 하는 문제는 참 어려운 문젭니다. 긴 노력과 수 고와 희생이 요구되는 거 아니겠습 니까.
오늘 본문의 말씀은 간단한 말씀 이지만은 두 가지로 요약합니다. 부정적으로는 노엽게 하지 말라. 긍정적으로는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 다.
"노엽게 하지 마라."
이게 뭡 니까? 화를 내게 만들지 말아요. 가르친다고 하면서 자녀의 감정을 상하게 만듭니다. 그러면 안됩니다. 왜 그러냐? 분위기에 맞추지 못했 기 때문에, 때와 장소를 잘못한 거 예요. 아이들이 지쳐있을 때에 할, 들어야 할 말이 따로 있어요. 저들 도 피곤합니다. 그 때에 우리가 무 슨 말을 할 것인가를 생각해야 합니 다. 생각없이 나 나름대로 명령조 로 분노를 일으킨단 말이요. 그래 서 교육이 빗나갑니다. 마음이 빗 나갑니다. 또한 이해의 수준이 있 고 경험의 정도가 있습니다. 소화 능력의 한계가 있습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조용히 기다리면서 인내하면 서 저들을 가르쳐야 합니다. 너무 서두르고 급진적으로 하면은 이게 또 문제가 되는 겁니다. 요샛말로 눈 높이를 맞추어가야 할 것입니다. 이게 맞지 않으면 아무리 좋은 얘기 를 해도 저들은 화가 납니다. 이보 다 더 우선적인 것은 사랑의 확증입 니다. 사랑의 줄이 끊어지면 아무 소용없습니다. 저 어머니가 나를 사랑한다. 이것을 알면서부터 비로 소 교육은 교육되는 것이올시다. 아이들이 자랄 때, 어렸을 때는 나 혼자가 다인 줄로 알고 아버지, 어 머니, 할아버지, 할머니가 다 나를 사랑하는데 조금 있다가 동생이 태 어나니까 사랑이 이동합니다. 그 쪽으로 옮겨가요. 이 아이는 하늘 이 무너지는 것 같아요. 어머니는 배신자가 돼버려요. 아버지가 미워 요. 이렇게 되기 시작하면 이제 무 슨 교육이 통하겠습니까? 화가 났 거든요 지금. 사랑을 빼앗겼으니까 요. 이 배신자들 그들의 원수 같은 사람들의 말을 내가 들을 수가 없 죠. 여기서 한번 삐뚤어져서 일생 가는 거예요. 참으로 무서운 겁니 다. 심지어는 어떤 책에는 그런 말 도 있습니다. 아이들이 젖 땔 때가 문제라구요. 젖 땔 때. 분명히 어 머니에게 젖이 있는데 저걸 먹지 말 라는 거예요. 이건 보통 고민이 아 니요. 이건 누구도 설득할 수가 없 는 거예요. 이건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은 고통이예요. 그런데 알 바 아니오. 여러분, 화내게 하지 마세 요. 기분 나쁘게 해서는 안됩니다. 그리고는 교육이 안 통한다는 얘깁 니다. 자 사랑이라는 것은 그런고 로 존재를 인정하고, 믿어주고, 참아 주고, 기다려주고 이것이 진정한 사 랑이라는 말입니다.
여러분 요새 크게 화제가 되고 있는 오토다케 히로타다의 이야기를 아실 겁니다. 한번쯤은 꼭 이 책을 읽어보았으면 합니다. '오체불만족' 이라는 책입니다. '오체불만족'. 이 아이는 세상에 태어날 때 선천성 사 지절단 장애인으로 태어납니다. 팔 다리가 하나도 없습니다. 그런데 그 팔이라는 것이 도대체 10cm밖에 안됩니다요. 이런 고구마 같은, 몽 땅한 것으로 태어납니다. 이것을 의사가 받아놓고, 의사가 깜짝 놀란 겁니다. '이걸 어떻게 하나, 어머니 가 이걸 보면 아마 기절할것이다.
그래서 핑계를 대고 한달 동안 어머니로 하여금 아이를 못 보게 했 습니다. 한달 후에 어머니와 아들 이 첫 상봉을 합니다. 기가 막힌 장면을 봅니다. 여러분 어떻게 상상을 하십니까? 이 어머니는 분명 히 기절할 거예요. 그래 준비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어머니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어머, 귀여운 우리아 기."
조금도 티없이 아이를 사랑합 니다. 자랑스럽게 여기고, 귀하게 여겼습니다. 이제 그의 간증을 들 어보세요. 대학 다닐 때까지 자기 는 자기가 장애인이라는 것을 몰랐 답니다. 집에서 꼭같이 키우고 있 으니까, 편안하게 키워줬으니까. '남과 다르다. 남이 있는 것이 하나 가 없다.' 그것뿐이지. 내가 장애인 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는 겁니다. 정신적으로는 전혀 그걸 느끼지 않 았다는 겁니다. 전혀. 그리고 그에 게 모든 일을 하게 했습니다. 심지 어는 이 보세요. 야구 선수가 되고, 축구를 하고요. 수영도 하고, 컴퓨 터를 하고, 붓글씨를 쓰고……. 못 하는 게 없어요. 모든 일을 하면서 명랑하게 자랐어요. 이제 결과는 이렇게 나옵니다. 이 청년은 이렇 게 말하고 있습니다.
"장애는 특별 한 개성일 뿐이다."
너무너무 엄청 난 얘기 아닙니까?
"남과 좀 다를 뿐이지, 개성이 강할 뿐이지 별거 아니다."
이렇게 극복하고 있구요. 또, 특별히 책을 읽으면서 감동되는 부분은 여기 있습니다.
"마음을 열 고 나면, 장애인이기 때문에 친구가 더 많다."
남이 나를 업신여긴다던 가 생각하지 말고, 자기 존재에 대 해서 충만하고 마음을 열고 보니까 모두가 친구더라는 거예요.
"친구 가 많다."
얼마나 귀한 얘기입니 까? 그리고 마음을 열라고 외칩니 다. 또 하나 할 수 있는 일은 다 할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깨 달았습니다. 할 수 있는 일이 있고, 할 수 없는 일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래 그는 이렇게 말합니 다.
"할 수 있는 일 하고, 할 수 없 는 일은 다른 사람이 하고, 특별히 나만이 할 수 있는 일이 있고, 나만 이 해야 할 일이 있다."
이렇게 외 칩니다. 그것이 내 삶의 보람이라 고 말합니다. 저는 이 책을 읽으면 서 많이 생각해봅니다. 더욱이 그 림에도 보면은 그 얼굴이 얼마나 밝 은지요. 특별히 휠체어를 타고 다 니는데 휠체어를 스위치를 눌러서 이렇게 높여요. 이렇게. 높여.
"왜 높이느냐?"
하니깐 자기하고 걸 어가는 사람하고 눈 높이를 맞추려 고. 얼마나 멋진 얘기이에요. 눈 높이를 맞춰가며, 그는 명랑하게, 그 밝은 얼굴을 보면서 생각합니다. 그 어머니의 얼굴을 생각해 봅니다. 어머니가 밝았기 때문에 그 아들을 밝게 키울 수가 있었던 거예요. 그 는 헬렌켈러 여사의 말을 인용합니 다. 장애는 불편한 것이지, 불행한 것은 아니라고. 이 어머니가 조금 도 낙심하지 않고, 밝은 마음, 밝은 얼굴이었기 때문에 이 불편한 장애 인 오토를 이렇게 밝은 얼굴로 키울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사 랑이라는 겁니다.
오늘 성경은 말씀합니다.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
교양이 라는 말이 뭡니까? 주님의 말씀. 주님이 가르쳐 주신 것을 말하는 겁 니다. 내 지식으로가 아니고, 내 지 혜로, 내 마음으로가 아니라, 주의 교양으로 가르치라. 제가 오래 전 에 읽은 책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어떤 아이가 거짓말을 한다고 하자,
"거짓말하면 못쓴다. 거짓말하면 매 맞는다."
이렇게 가르칠 게 아 니라
"성경을 가져와라. 몇 장 몇 절을 읽어라."
내 생각으로가 아니라, 성경이 말씀하는 거예요. 그렇게 가르쳐놓으면 앞으로 커서도 모든 문제를 성경에서 풀게 됩니다. 성 경에서 해답을 얻게 됩니다. 성경 진리로 가르칠 것이지 인생철학으로 가르칠 것도 아니고, 내 경험으로 강요할 것도 아니요. 그저 주의 교 양으로 가르치라 하는 말씀입니다.
지난 주간에 있었던, 미국 오클 라호마에 있었던 총기 난사 사건을 알지 않습니까? 40여명의 사상자를 낸 두 젊은 사람. 고등학생이 총을 그대로 마구 쐈어요. 이 엄청난 사 건이 있은 후에 미국은 벌컥 뒤집혔 는데, 두 가지를 생각합니다. 도대 체 총기가 문제다. 총기를 쓰지 않 도록 법을 통과해야겠다. 두번째, 성경을 다시 가르쳐야겠다. 종교는 자유인데, 왜 기독교 성경만 강요하 느냐? 그래서 공립학교에서 오랫동 안, 수백년동안 가르쳐 온 성경을, 그 과목을 폐지해버렸어요. 이거 폐지한 다음에 이 모양 됐다. 다시 성경을 가르치고, 이걸 입법화해야 겠다고 사방에서 부르짖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여러분, 마음속에 성경 이 들어 있어야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들어 있어야 됩니다.
여러분, 요새 음악도 그렇습니다. 우리 교인이 제게 CD 한 편을 보내 왔어요. 한 장을 보내왔는데, 그 아 무 곡명도 없고,
"Music Clinic"
딱 고 몇 자만 써있어요. 이 음악을 들으면 병이 치료된다는 거죠. 음 악으로 병을 고친다는 겁니다. 그 런데 그 음악은 제가 늘 듣던 아주 쉬운 클래식 음악들이에요. 쇼팽, 모차르트, 뭐 그런 것들이에요. 이 론은 이렇습니다. 요새 락이라는 음악이 있고, 랩이라는 음악이 있고, 그런 그 리듬 자체가 발광적인 것들 이 많습니다. 이제 보세요. 동물에 게도 좋은 음악을 들려주면 계란도 잘 낳고, 새끼도 잘 나요. 우유도 잘 나오고. 이 동물에게도 락을 들 려주면은 발광을 해요. 낙태를 해 요. 아시겠어요? 요새는 또 식물 에게다 합니다. 식물도 여기다가 좋은 음악을 틀어주면은 식물이 40% 더 잘 자란답니다. 거기다가 또 락을 틀어주니까요. 전부 고개 를 돌리더랍니다. 이 미친 리듬이 이 발광적인 리듬이 그 다 듣고 나 가서 뛰쳐나가서 범죄화가 되는 거 예요. 심성이 고요해져야지. 음악 도 조용한 음악으로, 좋은 음악을 듣고 잘못되는 사람은 없어요. 불 량아들은 하나같이 이런 음악을 좋 아하는 거예요. 요새 더구나 이렇 게 워크맨이라는 걸 끼고 돌아가는 데요. 이거 많이 끼고 돌아가는 아 이들이 I. Q가 40% 떨어진답니다. 미쳐요. 발광하는 거예요. 공부가 안 되요. 보세요. 무엇을 들어야 합니까? 듣는 대로 마음속에 담게 되는 것이거든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진리를 들어서 담아야 거예요. 그래야 하나님의 역사가 이루어지 죠. 또,
"주의 훈계로 양육하라."
그랬습니다. 주의 훈계. 주의 제자 훈련을 말합니다. 예수님 자신이 먼저 실천하면서 본을 보여준 그 훈 계의 맥락을 말하는 것이에요. 사 랑을 보여주고 신뢰를 보여줘야 됩 니다. 가치관을 보여줘야 됩니다.
먼저 선행의 본을 보 여주고, 진실로 사는 본을 보여주고, 봉사를 보여주고, 특별히 섬기는 본 을 보여줘야지요. 섬기면서 기뻐하 는 그런 생활을 자녀들에게 본을 보 여주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깊이 생각해야 하십니다. 사랑과 믿음, 소망을 먹고사는 것이 자녀들입니 다. 우리의 영혼은 하나님의 말씀 을 먹고삽니다.
"오직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
어린이 천국 잔치/마18:1-10
2001-12-08 23:28:36 read : 249
누군가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18 세기는 남자를 발견했고, 19세기는 여자를 발견했고, 20세기는 어린이 를 발견했다."고 하였습니다. 인간 이해에 대한 변화를 나타내는 말 같 습니다. 그러나 이미 역사의 신기 원이시던 예수님은 어린아이를 불 러 저희 가운데 세우셨습니다. 그리 고 저 위대한 자신의 천국 복음을 입증하였습니다. 20세기에 이르러서 야 어린아이들의 중요성을 발견한 사람들에 비한다면 예수님은 이런 의미에서도 확실히 세기적(世紀的) 선구자였습니다.
Ⅰ. 예수님과 어린아이와 천국에 대한 교훈을 보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따르던 제자들은
"천국 에서는 누가 제일 큰 자입니까?"
하 는 질문을 하였습니다. 그때 예수님 은 자기 앞에 모인 여러 어린이들 가운데 한 아이를 불러 저들 가운데 세우셨습니다.
그리고 「너희가 돌이켜 어린아이 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마 18:3)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예수님 은 어른들의 교만(방자함)을 염두에 두시고, 어린아이들의 겸손을 지목 하고 있습니다.
다시 4절에 「누구든지 이 어린 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그이가 천국에서 큰 자니라」고 하심으로 어린이를 겸손의 상징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또 다시 5절에 「누구든지 내(예수) 이름으로 이 런 어린아이 하나를 영접하면 곧 나 (예수)를 영접함이니」라고 하심으 로 어린이가 크게 환영을 받아야 될 사실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다시 6절에 「누구든지 나(예수) 를 믿는 이 소자 중 하나」를 실족 케 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실족케 하지 말라는 말은 거침돌이 되지 말 라고 한 것입니다. 그런 사람에게는 화가 있을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다시 10절에 「삼가 이 소자 중에 하나도 업신여기지 말라」고 하시 고, 그 이유는 하나님이 저들을 위 하여 항상 수호 천사를 파송하고 있 기 때문이라고 하셨습니다. 다시 14 절에서 「이와 같이 이 소자 중에 하나라도 잃어지는 것은 하늘에 계 신 너희 아버지의 뜻이 아니니라」 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디베랴 언덕에서 한 어 린아이가 갖고 있던 보리떡 다섯 개 와 물고기 두 마리를 받아 가지고 저 놀라운 이적의 재료로 삼았습니 다(요 6:9-13). 그 어린이가 가진 보 잘것없는 소유가 예수님으로 하여금 '세상에 오신 그 선지자'(요 6:14)의 표적을 보이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많은 어른들을 먹여 주는 간접적 요 인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그의 최후 예루살렘 입 성과 함께 성전에 들어가셨을 때, 거기에서 자신을 보고
"호산나, 다 윗의 자손이여!"
하는 아이들의 열 광적인 환영을 받은 일이 있었습니 다. 이때 유대교권주의자들인 대제 사장들과 서기관들이 분을 내며, 예수님께 저 아이들의 시끄러운 소 리를 듣느냐고 불평하였습니다.
그때 예수께서 가라사대 「그렇다 어린 아기와 젖먹이들의 입에서 나 오는 찬미를 온전케 하셨나이다 함 을 너희가 읽어 본 일이 없느냐」 (마 21:16)라고 하시며, 구약 시편 8 편의 예언을 인용하여 하나님을 높 이는 젖먹이들의 감사 찬송을 하나 님이 기쁘게 열납하고 있다고 대답 하였습니다. 예루살렘 성전에서 '호 산나 다윗의 자손'을 외치던 어린 아이들의 소리는 결코 시끄러운 소 리가 아니라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 시는 온전한 찬미의 제사라고 한 것 입니다.
오늘 본문에 「예수께서 한 어린 아이를 불러 저희 가운데 세우시 고」 천국 시민의 자질을 말씀했다 는 사실을 중요하게 여겨야 합니다. 디베랴 언덕에서 행하신 오병이어의 이적도 사실상 그 한 어린아이가 저들 가운데 중심이 되고 말았습니 다. 예루살렘 성전에서도 호산나 찬송하며 예수를 다윗의 자손으로 고백하는 어린아이들이 저들 가운데 중심인물로 부각되고 있습니다.
예수의 만져 주심을 바라던 사람 들 중에는 어린아이를 예수께로 데 리고 오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 때 제자들이 그 일을 꾸짖었습니 다. 그것을 보신 예수님은 제자들을 향하여 분을 내시고 「어린아이들의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 라 하나님의 나라가 이런 자의 것 이니라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 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하나님의 나 라를 어린아이와 같이 받들지 않는 자는 결단코 들어가지 못하리라」 (막 10:13-15)고 하셨습니다. 그리 고 「천국이 이런 자의 것이니라」 (마 19:13-14, 눅 18:16-17)고 하시 며 어린아이들을 안고 저희 위에 안 수하고 축복해 주셨습니다(막 10:16).
예수님은 교만한 무리(어른들) 가운데 한 어린아이를 세우셨습니 다. 그리고 그 어린아이들의 심성의 특징인 겸손과 신뢰성과 순진성과 단순성과 봉사와 희생성과 이타적 애정성을 들어 천국 시민의 영적 자 질을 교훈하신 것입니다.
이 세상 사람들은 한가운데 자기 를 세우고 자기를 나타냅니다. 사람 들은 역사의 한가운데 자기의 업적 과 공로와 명예를 나타내기를 좋아 합니다. 아니면 역사의 한가운데 영 웅이나 호걸이나 가인들을 세우고 교훈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한 어 린아이를 가운데 세우시고 천국을 교훈하셨습니다.
Ⅱ. 천국은 어린이의 세계입니다.
예수님이 이 세상에서 연령적으 로, 체력적으로, 지적으로 미숙한 한 어린아이를 한가운데 세우고 천국을 교훈하신 것은, 결국 그가 이룩하실 하나님의 나라 곧 천국은 사실상 어 린아이들이 중심된 세계임을 웅변 적으로 예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사야 선지자가 내다 본 메시야 왕국의 특징 중의 하나는 그 왕국의 시민들이 모두 어린아이로 묘사된 평화의 나라였습니다. 예수 자신이 「한 아기」, 「한 아들」로 예언 되었습니다(사 9:6). 천국에서는 「어린아이」에게 양과 표범과 어린 염소와 송아지와 어린 사자와 살진 짐승들이 끌려 다닌다고 하였습니다 (사 11:6).
「젖먹는 아이」가 독사의 구멍에 서 장난하며, 「젖뗀 어린 아이」 가 독사의 굴에 손을 넣어도 아무 해됨이나 상함이 없는 평화 충만의 세계라고 하였습니다. 이렇게 이사 야는 천국의 시민을 「어린아이」, 「젖먹는 아이」, 「젖뗀 아이」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사도 베드로는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 태어난 그리스도인을 가리켜 「갓난아이」라고 하였습니다(벧전 2:2). '방금 태어난 아이'를 뜻합니 다. 그 아이는 순전하고 신령한 젖 을 빨면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가 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이 말은 예 수 그리스도의 교회는 본질적으로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 새로운 피조 물들의 모임이라는 뜻입니다(요 3:3, 5, 고후 5:17). 새 사람, 곧 아이들 의 세계라는 것입니다. 이전 것은 지나가 버리고, 옛 것은 벗어 버린 사람들의 모임이란 뜻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자신의 감사 기도 가운데 하나님 나라의 복음의 비밀이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 게는 숨겨져 버리고 어린아이들에 게 나타나게 됨이 감사한 일이라고 하였습니다(마 11:25). 이것이 아버 지의 뜻이라고 하였습니다(마 11:26). 이른바 유대교권주의자들이 아닌 예수님의 갈릴리 제자들, 죄인 들, 병든 자들, 가난한 자들 곧 구원 받기로 작정된 모든 자들을 어린아 이로 비유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장차 우리가 이를 하나 님의 나라(천국)는 아이들만의 세 계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천국이 이런 자의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천 국에는 이른바 어른들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 과 방언에서 아무라도 셀 수 없는 큰 무리, 곧 오른손에 종려 가지를 들고 보좌 앞과 어린 양 앞에서 저 들이 받은 구원의 감격을 고백하는 모든 무리는 예외 없이 그리스도 안에서 새롭게 된 어린아이들입니다 (계 7:9-10). 영적으로 천국은 거듭 난 새 사람의 세계, 곧 어린아이들 의 세계입니다. 어린아이들이 판을 치는 세계입니다.
Ⅲ. 경향 어린이 천국 잔치
지금 우리는 새 예배당 입당과 함께 주일마다 어린이 천국 잔치를 개최하고 있습니다. 주일 오전 예 배와는 별도로 주일 오후에 특별한 프로그램을 가지고 어린이를 위한 특별한 모임을 갖고 있습니다. 이 것은 우리가 이곳에 새 성전을 시작 하고 금요 밤마다 모이는 기도회에 서 이미 하나님께 서원했던 것입니 다. 우리는 3년이 가깝도록 새 성전 신축 완공과 입당 그리고 어린이 천 국 잔치를 위하여 기도해 오고 있습 니다. 지난 1년 동안은 우리 교회 교육국으로 하여금 어린이 천국 잔 치에 관한 여러 프로그램들을 연구 하고, 계획하고, 준비하도록 하였습 니다.
하나님은 우리 기도를 응답하셨습 니다. 성전이 완공되고 역사적인 새 성전 입당 예배를 마쳤습니다. 그리 고 지난 5월 24일 주일 오후부터 마침내 경향 어린이 천국 잔치를 열 었습니다. 첫날부터 잔치는 대성황 입니다.
경향 어린이 천국 잔치 중에 진행 되는 주요 프로그램의 내용들은 어 린이 찬양과 율동, 동화, 성경 이야 기, 미니 올림픽, 성화(영화) 상영, 기독교 명사들을 초대하여 각종 묘 기(진기 명기) 등을 시범적으로 보 여 주는 일(축구, 태권도, 연극… 등) 등 다채로운 순서들이 주일마다 준비되어 있습니다.
이 어린이 천국 잔치는 바로 예 수님 자신이 기뻐하시는 뜻입니다. 우리는 새 성전 한가운데 어린이들 을 세우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저들 에게 천국 복음을 전하기를 원합니 다. 이 천국 어린이 잔치를 통하여 저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기를 원합니다. 적어도 어린이 전도는,
① 어른 전도보다 효과적입니다.
그 이유는 저들에게 있는 겸손과 순진과 신뢰심과 순종심이 어른들보 다 더하기 때문입니다. 저들은 예 수 복음의 진리를 흡수하는데 훨씬 빠르기 때문입니다.
② 가정 전도의 첩경입니다.
닫혀 버린 가정의 문을 두드리 고, 그 문을 열고 들어가는 지름길 이 바로 그 가정의 어린이를 통하여 이루어집니다. 여기에 어린이 새소 식반과 어린이 선교원이 한몫을 하 고 있습니다.
③ 교회의 미래 성장을 보장하는 결정적인 비전이 됩니다.
그러므로 교회가 받은 축복의 묵 시(vision)가 있다면 그것은 어린이 전도입니다. 어린이가 없는 교회는 그 앞이 캄캄합니다.
④ 어린이 전도는 미래지향적입니 다. 생산적이고 창조적입니다. 21세 기를 대비하는 복음 운동의 모든 자원들이 바로 어린아이들에게 있 습니다. 어릴 때부터 받은 복음의 진리가 저들에게 바른 신관, 바른 인생관, 바른 구원관, 바른 존재적 가치관을 정립시켜 줍니다.
그래서 저들 속에 내일의 위대한 구령 운동의 목회자, 선교사, 신학 교수, 사회 봉사자, 정치가, 경제가, 교육가, 예술가, 과학자들이 자라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어린이 세계는 무한한 미래의 잠재력이요 폭발력입 니다. 아니 위대한 축복의 미래적 물결입니다. 아니 그 어린이 자체 가 천국 운동이요 천국의 전령사들 입니다.
그러므로 이 세계의 위대한 사건 들은 전쟁이나, 지진이나, 기타 여러 종류의 폭풍이 아닙니다. 바로 이 세계의 위대한 사건들은 자라나고 있는 아이들 그 자체입니다. 바로 이 아이들은 역사 가운데 지진이요 폭풍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한 어린아이' 를 가운데 세웠습니다. 그래서 예수 님은 어린아이를 품에 안고 축복하 신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어린 아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금하지 말 라, 천국이 이런 자의 것이니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새 성전 입당과 함께 경향 어린이 천국 잔치 를 시작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사무엘 스마일즈(Samuel Smiles) 는 '유년기는 거기에 비친 영상 (image)을 내세에 반사해 주는 거 울과 같다.'고 하였습니다. 유명한 셀렉트(Selected)는 이렇게 말했습 니다. '어린이의 마음 속에 당신이 무엇을 쓰든지 물로 지울 수 없다. 모래는 파도가 사나울 때 옮겨질 수 있다. 그리고 시간의 노력은 썩어 버릴 수도 있다. 어떤 이야기들은 없어지고 어떤 노래들은 잊혀질 것 이다. 그러나 어린이의 마음 속에 새겨 놓은 이 기록들…, 세월도 그 것은 변경하지 못하리라. 어린이의 가슴 속에 무엇을 써넣든지 기쁨의 이야기든 근심의 이야기든, 하늘이 축복했든지 땅이 모독했든지, 변함 없이 거기 남아 있을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과연 그렇습니다. 우 리 경향 4반세기 25년은 이 놀라운 사실을 경험하고 말았습니다. 을지 로에서, 동자동에서, 여의도에서의 교회 운동이 그러했습니다. 우리 모 두 하나님의 새 성전 한가운데에 어린이들을 세웁시다. 교회의 한가 운데에 어린이들을 세웁시다. 그리 고 저들의 입에서 '호산나, 다윗의 자손!'을 부르짖게 합시다.
우리 모두 하나님의 새 성전 한가 운데에 어린이들을 세웁시다. 그리 고 저들의 입에서 터져 나오는 신 앙의 고백과 감사의 서원이 경향의 자원과 미래가 되게 합시다. 우리 모두 하나님의 새 성전 한가운데에 어린이들을 세웁시다. 그리고 저들 이야말로 경향이 받은 천국 운동의 기수들이 되게 합시다. 이 위대한 어린이 천국 잔치에 수종드는 모든 경향인들에게 축복이 있기를 축원합 니다.
기독교와 어린이/마18:1-10
2001-12-08 23:27:37 read : 241
18세기는 민중을 발견한 세 기요, 19C는 여자를 발견했 고, 20C는 어린이를 발견한 세기라고 말한 이가 있습니 다. 그러나 예수님은 2,000년 전에 사람 수에도 들지 못하 던 어린이를 존귀히 여기고 사랑해 주어야 할 것을 가르 쳐 주었습니다. 본문에 보면
"천국에서는 누가 가장 큽니 까?"하고 묻는 제자들에게 어 린이를 내세우며 어린이가 큰 자라고 말씀하시면서 누구든 지 어린아이와 같이 되지 아 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 지 못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뿐 아니라
"작은 아이 하 나라도 실족케 하는 사람은 연자 맷돌을 목에 걸고 깊은 바다에 빠뜨리는 것이 나으니 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어린 이를 얼마나 귀중히 여기시는 가 하는 것을 알 수 있지 않 습니까?
로마 제국만 해도 부모는 자식을 죽일 수도 있고 마음 대로 버릴 수도 있고 노예로 팔아 버릴 수도 있었습니다. B.C1세기에 편지하기를
"만 일 당신이 낳을 아이가 사내 라이라면 기르고 계집아이라 면 버리시오"하고 펴지 했고 세네카는
"약하거나 못생긴 아이들은 우리는 버린다"고 말했습니다. 예수님 당시만 해도
"여자와 아이 외에 오천 명"이라고 한 것을 보면 아이 들과 여자들은 숫자에 넣지도 않을 만큼 천대한 사실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잘못된 사 상을 말씀으로 행동으로 바로 잡아 놓았습니다. 한번은 많 은 부모들이 어린아이들을 데 리고 예수님께서 기도해 주시 기를 바랄 때에 제자들은 꾸 짖으며 아이들을 가까이 오지 못하게 할 때에 예수님은 오 히려 제자들을 꾸짖으시며
"어린아이들이 내게 오는 것 을 금하지 말라(누가복음 18 장 16절)"고 하셨습니다. 그 러므로 그리스도인의 정신은 어린이를 귀중히 여기고 잘 교육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어린이를 무시하거나 학대하 는 가정은 복을 받을 수 없고 어린이를 소홀히 여기는 교회 는 부흥하지 못하고 어린이를 무시하고 업신여기는 국가와 민족은 번영하지 못하는 것입 니다.
1. 어린이를 사랑해야 합니 다.
아일랜드의 역사가 나피엘 은 어느 날 길을 가다가 어린 소녀가 유리 조각을 주우며 우는 것을 보고 왜 그러느냐 고 물었더니 몹시 사나운 주 인집의 유리병을 잘 못하여 깨뜨려서 그런다고 걱정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때 나피엘 은 자기가 그 깨어진 그릇을 사 주겠다고 했지만 마침 자 기에게 돈이 하나도 없었습니 다. 그리하여 내일 그 자리에 서 만나기로 약속을 했는데 그 이튿날이 마침 자기의 연 구비를 도와주는 사람이 만나 자고 연락이 왔습니다. 이 때 나피엘은 어느 쪽을 택해야 좋을지 몰라 망설이다가 많은 연구비를 못 받는 한이 있어 도 그 어린 소녀에게 상처를 주지 않기 위해 거절을 하고 그 소녀를 만나서 깨어진 그 릇을 사주고 돌아왔습니다. 그랬더니 그 스폰서가 그 다 음날 더 많은 연구비를 가져 다주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들은 예수님의 정신과 어긋나게 어린이들을 무시하고 무관심하게 키울 때 가 많습니다. 어느 교회 학교 어린이가 부모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려고 추운 겨울 새벽 에 아버지가 일어나시기 전에 내복을 따뜻하게 해 드리려고 입고 있었습니다. 그랬더니 아버지가 일어나시자 마자
"아침부터 어린것이 어른의 옷을 왜 입고 있니?"
하고 꾸 짖었다고 하니 그 어린 동심 에 얼마나 큰 상처를 받았겠 습니까?
어느 26세의 젊은이가 자신 이 열등감이란 고정관념에 사 로 잡혀 고민하는 이야기를 털어놓았습니다. 그 청년의 어린 시절을 더듬어 올라갔더 니 그의 부모는 자기가 어려 서부터 공부를 잘 해도, 운동 에 우승을 해도, 모형 비행기 를 잘 만들어도 부모가 칭찬 은 해주지 않고 만족하지 못 하다는 듯이 트집만 잡았다고 합니다. 그 결과 이 청년은 만사에 자신이 없고 열등감에 사로잡히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런 사람은 사회생활 할 때 에 회사에서는 사장에게, 교 회에서는 목사님께, 학교에서 는 선생님께 반항적이고 불평 만 하는 사람이 되고 만 것 입니다.
우리가 지나치게 칭찬해 주 면 교만한 성격이 자리잡게 될 염려도 있기는 하지만, 부 모가 말과 행동으로 잘 표현 해 주고 인정해 주는 것이 대 단히 주요합니다. 말뿐만이 아니라 행동으로도 사랑을 표 현해 주어야 합니다. 꼭 안아 주며, 궁둥이를 두들겨 주거 나 뺨에 뽀뽀해 주거나 어깨 를 툭툭 치고 어루만져 주는 것입니다. 부모의 사랑을 못 받고 자란 사람이 문제아가 되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2. 사랑의 채찍을 가져야 합니다.
어린이들이 잘 할 때에는 잊지 말고 사랑해 주고 칭찬 해 주어야 하지만, 사회의 법 을 어기거나 하나님의 규율을 어기면 고통이 따른다는 것도 알려주어야 정상적인 인격을 소유하게 됩니다. 그러기 위 해서는 잘못했을 때 깨닫도록 타이르거나 채찍을 가해야 합 니다.
요한 웨슬레의 어머니 수산 나는 많은 자녀들을 훌륭히 키운 어머니인데, 그녀는 말 하기를
"자녀들의 고집을 즉 시 꺽어버려라 이것을 빨리 꺾을 수록 좋다. 자녀들에게 지나치게 친절하고 그들을 제 멋대로 하게 내버려두는 부모 는 사실상 잔인한 사람이다. 이런 부모는 타파되어야 할 악습을 기르는 것이 된다."고 했고 또
"자녀들을 제멋대로 하게 내버려두는 부모는 마귀 의 일을 하는 사람이며 신앙 을 무의미하게 하며 구원을 불가능하게 하고 영혼과 육신 을 멸망케 하는 사람이라"라 고 했습니다.
오늘 날 이 세상이 무법천 지처럼 되어 가고 자식이 부 모를 구타하거나 죽이기도 하 는 등 청소년들의 범죄가 심 각하게 증가되고 악화되는 것 은 부모들이 자녀들을 제멋대 로 하게 내버려두었기 때문입 니다. 교육 철학 자체가 잘못 된 이유도 있습니다. 선생님 이 학생에게 체벌을 못하게 하고 못된 짓을 해도 가만 내 버려두면 저절로 고쳐진다고 하는 것입니다. 큰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① 하나님의 규휼이나 사회 의 규율을 어겼을 때는 고통 이 오는 것을 깨우쳐 줘야 합 니다.
② 부모에게 불순종하거나 반항할 때는 반드시 고집을 꺾어야 합니다. 부모에게 자 기 고집을 꺾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께도 순종하지 않는 사 람이 됩니다.
③ 거짓말하거나 속이는 버 릇은 어려서부터 고치도록 징 계해야 합니다.
④ 출처 모를 물건을 가져 왔을 때 묵인하지 말고 반드 시 그 근거를 캐내어 징계를 해야 하고 제자리에 돌려놓도 록 해야 합니다.
어느 강도 흉악범이 법의 심판을 받아 사형 집행을 당 하게 되었습니다. 죽기 전에 어머니의 면회를 청하더니 철 창속에서 어머니의 얼굴을 끌 어당기더니 그 코를 이빨로 물어뜯더랍니다. 이유를 물어 보니까 어려서 물건을 훔쳐 와도 책망하지 않고 그대로 내버려둬서 자기가 결국 사형 을 당하는 신세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고통을 주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을 것입니다. 육체 적인 고통을 주는 방법이나, 방안에서 혼자 벽을 향하여 한 시간씩 앉아서 반성하게 한다든지, 좋아하는 것을 하 루나 한 두시간 못하게 한다 든지, 회초리를 따끔하게 때 려서 깨닫게 해 주는 방법 등 이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고 걸핏하면 때리라는 것은 아닙 니다. 일평생에 몇 번, 꼭 필 요할 때 채찍을 들 필요가 있 습니다.
벌을 줄 때는 반드시 기억 해 둬야 할 것이 있습니다.
① 부모의 화풀이를 때려서 는 안됩니다. 부모가 감정을 완전히 통제 할 수 있어야지. 화풀이로 때렸구나 하는 인상 을 주어서는 안됩니다. 그렇 게 되면 부모의 권위도 땅에 떨어지는 것입니다. 어떤 부 모는 도끼나 칼을 가지고 쫓 아다니며 죽일 듯이 덤벼드는 것을 볼 수 있는데, 그것은 상식 이하의 행동입니다.
② 공평하게 징계해야 합니 다. 어느 아이는 더 사랑하고 어느 아이는 더 많이 때리거 나 하면 자녀가 감정을 사서 더 삐뚤어진 길로 가게 됩니 다.
③ 징계 받는 이유를 보여 줘야 합니다. 이유 없이 고통 을 주면 징계가 무의미하고 반항심만 갖게 합니다.
④ 부모가 공동으로 책임을 지고 의논해서 벌을 주어야 합니다. 아버지는 때리는데 어머니는 역성을 든다던가하 면 역효과가 납니다. 어머니 는 때리는데 아버지는 어머니 를 나무란다던지 하면 교육이 안됩니다.
⑤ 매를들때 욕구 불만을 말하지 말고 기도하는 마음으 로 해야 될 것입니다. 요한 웨슬레는
"필요 없이 때리기 만 하지 말라. 매를 쥘 때는 하나님께 그것을 축복하시도 록 기도하라 그렇지 않으면 부모 자신의 심령이 해를 입 고 자녀에게도 유익이 없다"
고 했습니다.
⑥ 시작과 끝이 있어야 합 니다. 한번 벌을 주면 그것으 로 용서해 주고 끝나야지 한 번 지난 일을 두고두고 되풀 이해서 말하면 안됩니다. 하 나님도 우리가 한번 회개하면 빽빽한 구름의 사라짐같이, 아침 안개가 사라짐같이 우리 의 죄를 도말 하시고 기억도 하지 않으신다고 했습니다.
⑦ 그 아이에게 맞도록 벌 을 주고 그 아이만 있는데서 벌을 줘야지 사람이 많은데서 망신을 주면 안됩니다.
잠언 22장 6절에
"마땅히 행할 것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그리하면 늙어도 그것을 떠나 지 아니하리라"고 했고 잠언 13편 24절에
"초달을 차마 못 하는 자는 그 자식을 미워함 이라 자식을 사랑하는 자는 근실히 징계를 하느니라"했으 며 잠언 29편 15절에는
"채찍 과 꾸지람이 지혜를 주거늘 임의로 하게 내버려두면 그 자식은 어미를 욕되게 하느니 라"고 했습니다. 제사장 엘리 는 자식들이 하나님의 법을 어기고 못된 짓을 해도 가만 히 내버려두었기 때문에 하나 님께서 진노하셔서 그 자식들 은 한날에 다 전사하고 이 소 식을 들은 엘리는 쓰러지면서 목이 부러져 죽었습니다.
3. 부모가 생활로 본이 되 어야 합니다.
부모의 말은 자녀들이 들을 수도 있고, 안 들을 수도 있 지만 눈을 보는 것은 결코 잊 지 않고 깊은 감화를 받습니 다. 그러므로 가정에서 진실 한 신앙생활과 헌신의 생활을 보여주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 다. 자기 자신은 속일 수 있 을지 모르나 자녀는 속이지 못합니다. 자식들 보는 데서 성경 읽고, 기도하는 모습, 정 성껏 헌금 드리는 모습을 보 여 주면 그것이 백번 말하는 것 보다 낫습니다. 꿈에도, 교 회나 목사를 비판하는 말을 하면 안됩니다. 그 보다 더 큰 저주는 없습니다.
헛된 약속을 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지키지 못할 약 속을 아무렇게나 해 놓고 지 키지 않으면 부모의 위신도 떨어지고 거짓말쟁이가 됩니 다. 무엇을 달라고 하면 잘 생각해서 줘야 할 것은 약속 을 하고 그렇지 않으면 약속 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부모의 명령은 끝까지 시행 하도록 해야 합니다. 자식들 에게 명령을 내린 뒤에는 반 드시 시행했는지 여부를 확인 해야 됩니다. 말만해 놓고 내 버려두면 부모의 말이 권위가 서질 않습니다. 적당히 기회 만 넘기면 된다는 생각을 갖 게 해야 합니다. 또 시행하지 못할 것은 명령을 하지 말아 야 합니다.
4. 자녀들은 반드시 예수님 께 데려와야 합니다.
자녀를 낳거든 제일 먼저 교회에 나와서 예배를 드리고 예물을 드리며 축복 기도를 받도록 해야 합니다. 또 유아 세례를 받게 하고 교회에 출 석할 것을 가르쳐 주어야 합 니다. 강제성을 띠더라도 예 수님께 인도해야 합니다.
어떤 장로님의 아들이 고3 이라고 교회에 나오지를 안길 래 물어 봤더니, 입학하면 나 오게 하겠다고 하더랍니다. 하나님의 더 큰 영광을 위해 서 지금은 예배를 못 드리게 했다는 이유를 그럴듯하게 말 하더랍니다. 그런데 그 다음 에 대학에 떨어져서 온 가족 이 우울해 하고 슬퍼하는데, 그 집에 가서
"대학에 떨어진 것은 걱정하면서 자식이 지옥 으로 떨어 질 것은 걱정 안합 니까?"라고 했답니다.
어려서부터 성실하게 예배 출석하는 일과 십일조와 감사 헌금 드리는 습관을 길러 주 어야 합니다. 그리고 자녀들 을 밥과 옷으로만 키우지 말 고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키워야 한다는 잊지 말아야 합니다. 미리미리 말씀으로 양육하고 기도를 많이 해 주 어야 합니다.
한나의 신앙고백을 본받는 성도가 되자!/삼상1:23-28
2001-11-21 23:15:43 read : 317
오늘은 어린이 주일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귀한 자녀들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이들을 훌륭한 인물로 키우는 것이 우리들의 사명이고 책임입니다. 따라서 어린이 주일에 우리는 다시 한번 우리의 자 녀들의 신앙을 점검해 보는 귀한 기회가 되시기 바랍니다. 한나는 자식이 없어서 마음이 아픈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그에게는 남이 가지지 못한 영적 지혜가 있었습니다. 자녀는 사람의 힘으로 낳거나 키우는 것이 아니고 그 근원이 하나님께로부터 라는 사실을 기억하고 하나님의 성전에 올라가서 하나님께 기도하여 귀한 아들 사무엘을 선물로 받았습 니다. 그는 서원한 것도 이루고 그 자녀를 훌륭한 인물로 키우기 위하여 하나님의 성전에 데리고 가서 엘리 제사장에게 맡겼습니다. 그리고 그로 인하여 훌륭한 인물 사무엘이 만들어지게 되었습니다. 사무엘은 선지자요 제사장이요 당시의 나라를 책임진 지도자였으며 백성들의 어려움을 해결 해 주는 재판관이기도 했습니다. 그는 한나라와 그 백성을 책임지는 어려운 사명을 너무도 잘 감당하여 성경에 별과 같이 빛 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이세상 모든 부모들이 자녀들이 잘 되기를 바라고 그를 위하여 최선의 노력을 기울입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모든 자녀가 부모를 기쁘게 하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사람들로 되어 지지 않는 것을 우리는 우리 주변에서 너무도 많이 봅니다.
그런데 한나는 어떻게 하여 사무엘 같은 이런 귀한 아들을 얻을수 있었습니까? 오늘 그의 자녀 교육을 바라보며 우리에게 주시는 지혜를 깨닫고자 합니다. 들으시고 우리의 자녀와 손자들에게 그렇게 행하실 수 있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 로 축원합니다.
1. 하나님께 열심히 데리고 나와야 합니다. 젖을 덴 후에 그를 데리고 올라갈 새 수소 셋과 가루 한 에바와 포도주 한 가죽 부대를 가 지고 실로 여호와의 집에 나아갔는데 아이가 어리더라 그들이 수소를 잡고 아이를 데리고 엘리에게 가서 (삼상1:24-25)
한나는 사무엘을 훌륭한 인물로 만들기 위해서 그를 하나님께 가야 한다는 것을 너무도 깊 이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아이를 젖을 뗀 후에 남편의 허락을 받고 하나님의 전으로 데려 가서 거기 살게 하고 엘리 제사장 앞에 두게 되었습니다. 어떻게 얻은 아들입니까? 너무나 귀한 아들이었습니다. 이것만으로도 아들을 떼어놓기 힘들 것입니다. 그런데 더 안타까운 것은 그 아들이 너무도 어리다는 것입니다. 젖을 뗀 후라고 했으니 아무리 우리가 넉넉히 잡아도 5살 내외였을 것입니다. 그 어린것을 엄마가 남의 집에 떼어놓는다는 것은 너무도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그렇게 귀하고 귀한 아들을 가슴을 저미며 남에게 맡기고 가는 한나의 모습이 우리 눈에 선 합니다.
사랑하는 무성교회 성도 여러분! 무엇 때문에 한나는 이 아픈 일을 자원하여 할 수밖에 없었습니까? 하나님 가까이 있어야 하나님의 성전에 있어야 하나님이 책임져 주시고 하나님이 그 앞길을 축복해 주신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사랑하는 무성교회 성도 여러분! 우리는 한나처럼 아예 하나님의 사람으로 맡길 수는 없어도 언제나 기도하고 찬송하고 하나 님께 경배하고 예배드리는 교회에 우리 자녀들을 데리고 나오셔야 합니다.
우리는 학교는 하루만 빠지면 큰일나는 줄 알고 교회는 시간 나면 보내는 부모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아이들은 예배를 드리는 일에 방해가 될 때가 많습니다. 울고 보채 고 가만있지 못하고 움직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런 이유 때문에 우리가 교회에 열심을 내지 못하거나 또는 우리 자녀들을 교회로 인도하지 못해서는 절대 안됩니다.
전에 주일학교를 지도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얼마나 아이들이 개구쟁이인지 설교를 하면서도 정신이 없습니다. 헌금을 드리고 헌금기도를 할 때는 눈감고 있으면 언제와서 돈을 꺼내 가는지 모릅니다. 그래서 헌금 바구니를 손으로 꼭 붙들고 입구를 손으로 막고 기도했던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말썽쟁이들이 자라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당장은 힘들고 어렵습니다. 그러나 그들을 계속해서 하나님의 전에 데리고 오면 그들의 머리속에 예배의 방법을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배우게 되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지식이 그들의 마음속에 본인도 모르는 사이 에 들어가 훌륭한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장성했건 어리건 간에 우리 자녀들을 하나님의 전으로 이끌어 오시기 바랍니 다. 그래서 우리가 책임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 하나님이 책임지는 자녀를 만들어 우리 자 녀들이 하나님의 축복하심으로 사무엘 같은 귀한 인물들로 만들어 지기를 우리 주님의 이름 으로 축원합니다.
2. 자녀를 위하여 기도하는 부모가 되십시다. 한나는 사무엘을 위하여 누구보다도 열심히 기도한 사람이었습니다. 그 아들을 얻기 위하여 밤을 새우고 서원하고 통곡하며 기도해서 그 모습이 너무도 지나쳐 엘리 제사장은 술 먹은 사람인줄 알고 포도주를 끊으라고 책망할 만큼 기도한 사람이었습니 다. 그렇게 기도해서 아들을 잉태하였으니 이제 가진 뱃속의 아이를 위하여 기도하는 일에 게으 르지 아니했을 것입니다. 자연히 하나님의 도우심을 요청하는 기도를 최선을 다하여 하였 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아들을 낳고 또한 기도를 쉬지 아니하였을 것은 너무도 자명한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한나는 그 아들 사무엘을 데리고 성전에 와서 자신을 소개 할 때에 에브라임에 사는 엘가나의 아내 한나라고 소개하지 않았습니다.
자신을 기도하던 여자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한나가 가로되 나의 주여 당신의 사심으로 맹세하나이다 나는 여기서 나의 주 당신 곁에 서서 여호와께 기도하던 여자라 이 아이를 위하여 내가 기도하였더니 여호와께서 나의 구하 여 기도한 바를 허락 하신지라 (삼상1:26-27)"
그렇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자녀들이 잘 되기를 바라십니까? 그들을 위해서 열심히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저희 가정에 첫아기 예찬이를 낳고 나니 할머니가 녹용을 넣은 보약을 지어와서 아이에게 먹이라고 합니다. 그것을 먹어야 감기도 이기고 건강하게 자란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값을 물어보니 입을 벌릴 정도의 비싼 것인데 자식을 위해서 서슴없이 지었습니다.
육신의 강건을 위하여 녹용같은 보약을 먹여 키워야 한다면 자녀들의 영혼의 건강을 위해서 는 어머니와 아버지의 기도가 바로 보약이 되는 것입니다.
모니카는 성자 어거스틴의 어머니입니다. 그런데 어거스틴이 처음부터 성자는 아니었습니다. 성자가 아니라 탕자였습니다. 도박과 술과 여색을 탐하는 옳지 않은 길을 걸어갔습니다. 어머니가 아무리 권면 해도 책 망해도 듣지 않고 그 길을 갔습니다. 소망이 없었습니다. 틀린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그의 어머니는 포기하지 아니했습니다. 언제나 변함없이 그 아들을 위하여 바른길로 가기 위해서 40년을 변함없이 기도하였습니다. 드디어 어느 날 하나님이 강권적으로 역사 하셔서 자신의 가는 길이 허무하고 멸망의 길임 을 깨닫고 회개하고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그 당시의 교계 지도자인 암브로시우스 감독에 게 가서 그 몸을 의탁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성자가 되었습니다. 어거스틴과 그의 어머니의 기도를 본 암브로시우스 감독이 깨닫고 "기도의 어머니의 자식은 망하는 법이 없다"라는 명언을 남기게 되었습니다.
무성교회 성도 여러분! 우리 자녀들을 위해서 얼마나 기도하십니까? 기도는 잊어버리고 먹이는 것, 입히는 것, 공부시키는 것 만 관심 가지시지는 않습니까? 기도는 돈이 들 필요도 없습니다. 때와 장소가 필요하지도 않습니다. 길을 가면서도 버스를 타고서도 하나님과 교통하며 자식의 장래를 위하여 간구 할 수 있는 우리성도에게 주신 최고의 축복입니다. 하나님이 우리 자녀들을 도와 주셔야 그들의 길이 열립니다. 하나님이 도와 주셔야 형통한 축복을 얻습니다. 이삭은 하나님이 도와 주실 때에 어디를 가던지 파는 곳마다 샘이 쏟아지는 축복을 얻었습 니다. 이 귀한 어린이 주일 아침에 우리의 사랑하는 자녀들을 위해서 기도에 힘쓰시는 성도 여러 분들이 되셔서 여러분의 자녀들이 파는 샘마다 터져 나오는 역사를 체험하시기를 주의 이름 으로 축원합니다.
3. 부모가 신앙의 본이 되어야 합니다. 한나는 어린 아들을 엘리에게 맡기면서 사무엘에게 명했습니다. 이제 너는 이곳에서 엘리 제사장을 아버지로 모시며 하나님을 섬기며 살아야 한다 하였을 때에 24절에 보면 아이가 어리더라하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어린것이 엄마와 떨어지지 않겠다고 울고 보챌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사무엘의 모습을 이렇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나도 그를 여호와께 드리되 그의 평생을 여호와께 드리나이다 하고 그 아이는 거 기서 여호와께 경배하니라(삼1:28)" 울지도 않고 보채지도 않고 하나님께 경배하는 절을 했다는 것입니다. 그 모습이 상상이 가십니까? 이제는 다시 어머니와 함께 사는 일은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아이가 어린아이 입니다. 울어도 조금도 잘못된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울기는커녕 어머님의 명령에 순종하고 하나님께 겸손히 절하는 어린아이의 모습이 너무나도 놀랍지 않습니까? 그러면 사무엘은 특별한 어린이레서, 천재여서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비록 짧은 기간이지만 어머니의 삶을 통하여 하나님을 존귀히 여기고 섬기는 자세를 배웠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어머니와 떨어지는 것이 슬프지만 하나님이 그보다 더 중요하다는 것을 어린 사무엘 은 어머니로부터 배웠기 때문에 가능한 것입니다.
이제 우리 무성교회 성도들은 자녀들에게 신앙의 본을 보이시기 바랍니다. 기도하는 아버지 어머니로 보여야 합니다. 찬송하고 성경을 읽는 어머니와 아버지로 보여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들이 어려서부터 하나님을 존중하고 귀중히 여기며 그 뜻을 따라 행하는 것이 몸 에 배여서 설사 나쁜 환경 속에 처하여도 넉넉히 이길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한나는 훌륭한 신앙교육으로 사무엘을 만들어 냈습니다. 과실의 좋고 나쁨은 과원지기의 솜씨입니다. 자녀들의 앞길은 그 부모의 신앙교육의 결과입니다. 이제 우리모두 우리의 자녀들을 열심히 하나님께 인도하고 이를 위하여 기도에 힘쓰며 신앙 의 본을 보여서 훌륭한 하나님의 인물들을 배출하는 복된 여러분의 가정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
자녀교육의 지침/시78:1-8
2001-11-21 23:14:19 read : 481
오늘 시편 78편은 이스라엘 민족의 자녀 교육의 지침서라고 할 수 있습니다. 본문에 보면 세 가지 중요한 말씀이 나옵니다. ① 전하라! ② 알게 하라! ③ 행하게 하라!고 하였습니다. 무엇을 전하고, 무엇을 알게 하고, 무엇을 행하게 하라는 것입니까? 본문에 보면, 역사를 전 하고, 율법을 알게 하고, 계명을 지켜 행하도록 하라고 하였습니다. 오늘 우리는 스승의 주 일을 맞이하면서 우리들 2세들의 교육에 관하여 다시 한번 생각해 보는 시간이 되어야 하겠 습니다.
유대인 랍비에게 어느 날 한 어머니가 어린이를 데리고 와 물었습니다. "이 아이를 몇 살부터 가르치면 좋을까요?" "그 아이가 몇 살입니까?" "두살입니다" "그렇다면 벌써 2년이 늦었습니다" 라고 말하였다고 합니다.
교육은 몇 살부터란 말이 있을 수 없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요즘에는 임신 중에도 태교라는 말까지 등장하여 실제로 그렇게 태교를 실시하고 있는 부부들이 많습니다. 뱃속에 있는 태 아들이 부모의 핏줄을 통해 심장의 고동을 들으며, 부모의 대화를 듣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 런 면에서 우리 한국의 부모님들의 교육관은 학교 교육만 교육으로 알고 있는 경우들이 너 무나 많았습니다. 지금도 그렇게 알고 있는 부모님들이 많습니다. 교육은 학교에 가야 되는 것인 줄 그렇게 알고 있는 부모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학교에서 가르치는 것은 글자 공부요, 지식 공부이지만 가정과 교회에서 가르치는 것은 생 활 교육이란 말입니다. 생활 교육처럼 중요한 교육은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말에도 '세살 버 릇이 여든까지 간다'는 말이 있습니다. 일찍 생활 교육이 바로 설 때 참된 인생 교육이 이 루어짐을 깨닫게 됩니다.
아마 생활 교육에서 단연 으뜸은 이스라엘 민족의 가정 교육이라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미국에 사는 유대인은 미국 전체 인구의 3% 정도라고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 전 체 대학교수의 30%가 유대인이요, 노벨 수상자의 24%가 유대인 계층이라면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한번쯤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것은 다름이 아 니라 그들의 가정 교육이 너무나 뚜렷했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유대인의 교육 지침은 율법(토라)입니다. 즉 <하나님의 말씀>이란 말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생활 교육의 지침이 되었기에, <말씀>에 있는 약속 그대로 그 이름이 열방 위에 뛰어나게 하리라는 대로 이루어지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오늘날 하나님의 말씀을 기초로 교육하는 나라들, 하나님의 말씀을 생활 속에 실천하며 사 는 민족들을 보시기 바랍니다. 모두 선진국 대열에 드는 나라들입니다. 유럽의 앞서가는 나 라들이 모두 그런 나라들입니다. 모두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아가는 기독교 문화를 형성 한 나라들이란 말입니다. 그런 면에서 오늘 본문 말씀은 우리에게 깊은 교훈을 주는 말씀입 니다.
1. 먼저 자녀들에게 과거의 역사(歷史)를 바로 '전해 주라'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이를 그 자손에게 숨기지 아니하고 여호와의 영예와 그 능력과 기이한 사적(史蹟) 을 후대에 전하리로다"(4절) 역사는 그 민족의 걸어온 발자취입니다. 그 역사를 바르게 전해 줄 책임이 기성 세대들에게 있다는 말입니다. 민족 교육이 잘 된 나라들일수록 역사를 바르게 전하는 나라들입니다. 아무리 발달하고 스 스로 선진국이라고 하지만 일본은 그런 면에서 독일을 따라 갈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아직도 자기들의 역사를 바르게 후손들에게 전하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몇 해전 저는 예루살렘을 방문하였을 때, 제일 인상 깊었던 것은 지가론 언덕에 '야드 바셈 '(Yad Vashem)에 들렀을 때였습니다. 이곳은 유대인의 학살 기념관이 있는 곳이었는데, 길 양쪽에는 탕자의 비유에 나오는 쥐염나무가 많이 심어져 있었고, 그리고 각 노각 밑에는 국 적과 이름을 써 놓은 팻말이 있는데, 이것은 유대인들이 핍박받고 학살당할 때 그들을 숨겨 주거나 도와준 사람들의 이름들이었습니다. 우리 나라에서도 상영된 '쉰들러 리스트'의 주인 공인 <오스카 쉰들러>의 이름도 있었습니다.
기념관 안으로 들어서면 암흑의 역사를 표현하려고 했는지 전시실은 검정색으로 뒤덮였고, 끌려가는 수많은 유대인들 / 그리고 그들을 향해 총을 겨눈 독일 나치군들 / 그리고 산더미 처럼 쌓인 시체들 / 그리고 안경테들 / 그 참혹한 장면들을 볼 때마다 가슴이 미어지는 것 을 느꼈습니다 / 더더욱 천진난만한 아이들이 굶어서 뼈만 앙상하게 남은 채 죽어 있는 장 면 / 유대 여성들이 머리를 깎인 채 나체로 독일군에게 끌려가 희롱 당한 후 총에 맞아 죽 는 장면 / 살아 있는 사람을 마취도 않고 살을 찌르고 배를 가르는 장면 / 참으로 처참한 장면들을 보면서 저들의 역사가 얼마나 비참했던가를 잘 알 수 있었습니다. 우리도 과거 일 본 제국주의 밑에서 생체실험을 당하였던 민족이기도 하였습니다.
더욱 인상 깊었던 것은 지하에 세워진 기념관 입구에 들어서면 세 살쯤 되어 보이는 한 아 이의 초상이 조각되어 있는데, 전시실은 천장과 사면이 모두 거울로 장식되어 있고 중앙에 는 오직 한 개의 촛불이 타고 있는데, 그 촛불이 어두운 방을 비취면서 반사하여 마치 수 천, 수 만개의 빛으로 비치어 별들이 반짝거리는 우주의 한 가운데 선 기분이었습니다.
그리고 무거운 음악이 흐르면서 독일 나치군에게 학살당한 150만 명의 어린이들의 이름이 하나 하나 불려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비석 위에는 "우리는 용서한다. 그러나 잊지 않는다 "라는 글귀가 마음을 뭉클하게 하였습니다. 역사를 바로 전하지 못하면 과거를 되풀이하게 된다는 경고라고 봅니다. 그래서 지금도 이스라엘 정부에서는 이곳을 민족 학습교육현장으로 이스라엘의 어린이들과 청소년들에게는 누구나 한번씩 다 볼 수 있도록 교육정책으로 만들어 놓았다고 합니다.
이 <야드 바셈> 학살 기념관을 찾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입구로 들어갈 때와는 달리 나올 때는 눈물로 얼룩진 눈동자들을 반짝이면서 누가 뭐라고 하지 않아도 나라 사랑하는 마음으 로 충만케 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도 보면, 과거사(過去史)를 자녀들에게 바로 전하라고 하였습니다. 즉 역 사 교육을 바로 시켜야 한다는 말입니다.
오늘 시편 78편을 이스라엘의 역사적 시편이라고 합니다. 단순한 역사적 시(詩)가 아니라 마 스길(maskil), 즉 '교훈시'라고 합니다. 과거 조상들이 겪은 실패와 아픔을 다시 겪지 않도록 하기 위한 교훈시란 말입니다.
역사를 왜곡하거나, 역사를 숨기는 일은 범죄의 행위입니다. 이것은 하나님 앞에서는 인정되 지 않습니다. 그런 면에서 일본이 아무리 경제적으로 선진국이라 해도 우리 한국에 대하여 는 아직도 역사를 사실대로 전하지 않는 나라이기에 선진국이라고 볼 수 없습니다. 그런 면 에서 독일은 일본보다는 선진국이란 말입니다. 저들은 깨끗이 인정하였고, 사과하였기 때문 입니다.
한 민족의 번영의 기초는 올바른 역사 교육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합니다. 역사를 단순한 지 식전달로만, 교육이 단순하게 실용주의적 교육으로만 그친다면 민족혼(民族魂)을 말살시키는 것 일 뿐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우리 나라의 과거사를 자녀들에게 올바르게 전하는 책 임이 우리들 신앙인의 가정에서부터 일나야 하겠습니다.
2. 둘째로, 자녀들에게 하나님의 율법(律法)을 바로 '알게 하라'고 하였습니다. "여호와께서 증거를 야곱에게 세우시며 법도(法道)를 이스라엘에게 정하시고 우리 열조에게 명하사 저희 자손에게 '알게 하라' 하셨으니...,"(5절) '알게 하라'는 것은 교육하라는 말입니다. 즉이것은 민족정신의 교육을 의미합니다. '조상 야곱에게 세우신 법도를 알게 하라'고 하였습니다. 조상 야곱에게 세우신 법도가 무엇입니 까? 바로 율법입니다. 그러므로 유대인의 자녀 교육의 텍스트는 바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즉, 하나님의 말씀 을 "마음에 새기고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에 행할 때에든 지 누웠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 너는 또 그것을 를 삼고 또 네 집 문설주와 바깥 문에 기록할지니라"(신6:6-9)고 하였습니다.
왜 하나님의 말씀을 후대들에게 바로 알게 하라는 것입니까? 거기에서부터 모든 축복의 계 기가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복의 근원 되신 하나님을 떠나서 어디에서 번영을 기대하겠는 가' 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만이 올바른 민족 교육의 교육 지침서란 말입니다. 해방 후 오늘까지 우리 는 많은 시행 착오들을 겪으면서 살아왔습니다. 아직도 우리 민족의 아쉬운 점은 민족 교육 의 결여입니다. 올바른 교육의 지침이 서 있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 나라의 교육 이념을 홍익인간(弘益人間)에 두고, 바람직한 민주시민의 양성에다 둔다고 합니다. 하지만 기성세대들이 과연 얼마나 우리의 자손들에게 그것을 바르게 교육하고 있느냐? 입니 다. 모두가 인격보다는 기능위주로, 점수 따기 교육으로 그리고 고소득의 직장에서 자기 하나만, 자기 가족만 잘 먹고 잘 쓰고 누리며 사는 것이 행복이라고 그렇게 알게 하는 것이 우리의 현실 교육이 아닌지? 깊이 반성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자녀들에게 바르게 알게 하는데 교육의 목표를 두어야 하겠습니다. 우리 교회 학교의 중요성이 그래서 더 하다는 것입니다. 교회 학교의 교육은 민주 시민의 양성 이전에 <하나님의 사람>으로 '모든 선한 일에 예비 된 인물'을 양성함에 있습니다. 다시 말 하면, <하나님 나라> 건설에 이바지 할 수 있는 인물을 양성하는데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 우리 기성세대들의 시행착오를 바르게 알려주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우 리가 해방을 받고도 그것을 바르게 교육시키지 못했습니다. 6.25의 비참한 공산당의 동족상 쟁의 교훈을 아직도 바르게 교육하지 못한 채 과거사를 망각해 가고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오늘의 우리들의 책임은 중차대합니다.
3. 끝으로 자녀들에게 하나님의 계명(誡命)을 '지켜 행하도록 하라'고 하였습니다. "저희로 그 소망을 하나님께 두며 하나님의 행사를 잊지 아니하고 오직 그 계명을 지켜서 그 열조 곧 완고하고 패역하여 그 마음이 정직하지 못하며 그 심령은 하나님께 충성치 아니 한 세대와 같지 않게 하려 하심이로다"(7-8) ① 역사를 바로 전해주고, ② 하나님의 말씀대로 바로 교육하여, ③ 그 하나님의 말씀을 지 켜 행하도록 하라는 것입니다. 바로 전해주고, 바로 교육하여, 결국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 도록 하게 하라는 것이 오늘 본문의 내용입니다.
즉, 소망을 하나님께 두고 살도록 하기 위하여 계명을 지켜 행하도록 하라고 하였습니다. 그 래서 진정한 교육은 신앙교육이어야 합니다. 과거의 부패한 물질만능의 세대에서부터 나와 서 그 정신이 하나님께 향하는 신앙 교육으로 바뀔 때, 민족의 장래와 자녀 교육의 성패는 달려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 그런 면에서 우리 나라의 미래를 염려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얼마나 젊은이들의 건전 한 꿈들이 있는가 생각해 볼 때 너무나 물질 만능 주의에 일찍 물들어 가는 것을 금할 수 없습니다. 지난번 코스닥이니 중권이니 하면서 하루 밤사이에 20대, 30대 초반에서 수십 억대를 벌었 다니, 수백 억대를 벌었다는 소문이 성하더니 요즘은 또 하루 사 이에 증권업계 바람이 빠 져 가는 것을 보면서, 너무 쉽게 돈 버는 법을 배워 주지 않아야 하겠는데.... 하는 그런 생 각을 해 보았습니다.
정의로운 사회 건설을 위해서는 지식도 중요하지만, 그 지식을 바르게 행하는 것을 더욱 중 요시 해 주는 풍토가 조성되어야 하겠습니다. 연령과 수입의 상한선을 두어서라도 하나님의 정의로움의 말씀대로 행하도록 공권력을 세워 나가야 하겠다는 말입니다.
물질의 유산보다 신앙의 유산이 귀한 것임을 새삼 깨달아야 하겠습니다. 가정의 달에 우리 모두 깊이 깊이 자녀들에게 신앙을 물려주는 부모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돈은 좀 못 벌어도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는 자녀들이 되도록 우리 어른들이 앞장서 행 위로 본을 보여야 하겠습니다. 왜냐하면 신앙의 유산만이 영원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자녀들에게 ① 바로 전하고, ② 바로 알게 하고, ③ 바로 행하게 하라는 오늘의 이 말씀을 바로 실천하여 하나님의 사랑 받는 가정들이 다 되시기 바랍니다.
어린이는 어른의 거울/마19:13-15,엡6:4-
2001-11-21 23:13:21 read : 432
어느 나라든지 그 나라의 국민의 특유한 국민성(國民性)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영국을 말할 때는 신사의 나라라고 하고, 독일은 근면(勤勉)과 검소(儉素)한 나라 라고 하고, 미국을 말할 때는 실용주의(實用主義)의 나라라고 합니다. 그런가하면 우리 민족을 일컬어 동방예의지국(禮儀之國)이라고 하였습니다. 이렇게 모든 나라들마다 그 나라의 국민의 특성을 말하는 말들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천국 시민의 성품은 어떠한 것일까? 생각해 보게됩니다. 오늘 우리 주님께서는 바로 그 점을 어린이들을 통하여 가리켜 주었습니다.
유대인들은 우리처럼 어린아이들과 부녀자들은 수(數)에 치지를 아니했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모든 숫자에서 여자와 아이들은 제외되었습니다. 예를 들어 해마다 예루살렘 성전에 올라가 순례의 예배를 드리는 것도 성인 남자들만이었 고, 출애굽의 숫자도 20세 이상 된 남자들만으로 60만이라고 하였고, 그 밖에 전쟁에 나갈 때도 남자들만의 수를 말하곤 하였습니다. 그러한 사회적 배경에서 오늘 성경에 나오는 주님의 말씀은 매우 파격적이라 할 수 있습니다. 어느 날, 예수님에게 어린아이들을 데리고 나와 안수하여 기도해 주기를 원하였 습니다. 그것을 제자들이 거절하였습니다. 본문에 보면 '꾸짖었다'고 하였습니 다. 그것을 본 주님께서는 도리어 "어린아이들을 용납하고 내게 오는 것을 금하지 말라 천국이 이런 자의 것이니라"고 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천국 백성의 성품 이 어떠해야 함을 어린이들을 통하여 배우게 됩니다.
1. 어린이를 통하여 우리 어른들의 거짓됨을 보게 합니다. 어린이를 내세워 "천국은 이런 자들의 것이니라"고 하였을 때, 어린이들의 무엇 을 보고 그렇게 말하였다고 보십니까? 그것은 어린이들의 순진성을 의미한다고 봅니다. 어린이들은 있는 그대로 보고, 있는 그래도 말합니다. 어린이들은 꾸미 거나 가식이 없습니다. 어린이들은 체면도 모릅니다. 너무나 솔직합니다. 있는 그대로, 본 그대로 말하고, 갖고 싶은 그대로를 말합니다. 세계 어느 나라 어린이들도 이 점이 공통성입니다.
어른이 되었다는 것은 그만큼 정직함에 때가 묻었다는 뜻입니다. 어린이들은 있는 그대로 솔직하지만 어른들은 벌써 가식으로 꾸밉니다. 천국 백성의 모델을 어린이로 삼은 것은, 우리로 하여금 어린이를 통하여 자신 이 천국 시민의 합당한 삶을 살고 있는가를 살펴보게 합니다. 어린이들의 말, 행동, 마음씨 하나 하나에서 우리의 본래의 모습을 찾아야 하겠 습니다. 요한계시록에 보면 마지막 유황불에 들어갈 자들이 어떤 자들이라고 하 였습니까? 우상숭배자들과, 짐승의 표에 인 맞은 자들과, 음행자들과 술객들 과, 거짓말하는 자들이라고 하였습니다. 이런 자들은 모두 불 못에 던짐을 받겠 다고 하였습니다.
이 세상에서는 거짓말 잘하는 자들이 도리어 출세도 하고, 사업도 성공하고, 남 보다 앞서 갑니다. 사업도 정직하게 하면 돈을 못 벌게 되어 있습니다. 부정직 하게 섞어서 팔고, 음식물에도 먹어서 안될 것도 넣어서 팔고, 가짜를 진짜로 속여서 팔아야 돈을 빨리 벌어들입니다. 공부도 마찬가지입니다. 남의 것을 도 용하고, 남의 글을 자기의 것으로 인용하고, 거짓으로 사람들을 속이는 사람들 이 빨리 성공합니다. 그래서 지식에도 지적소유권을 보존하려는 국제법이 생겼 습니다. 이번에 국회 의원 선거에서도 이력을 속이고 나온 사람들이 있었던 같 습니다. 학벌도 속입니다. 고향도 속입니다. 이렇게 어른들의 세계에서는 모두 속이는 것들로 차 있습니 다. 심지어 결혼 상대에까지 속이고 결혼하는 경우들도 있습니다.
이 얼마나 가증스러운 일들입니까? 앞에서는 칭찬하고 뒤에서는 욕하는 것이 어 른들입니다. 그러나 어린이들은 그렇게 하지는 못합니다. 싫으면 그 자리에서 싸울지언정 남을 모함하는 일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리고 속으로 미워하면서 속 이려는 어린이들은 하나도 없습니다. 이렇게 천국은 마치 어린이들처럼 정직한 자들의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2. 어린이를 통하여 우리 어른들의 고집과 교만을 보게 합니다. 어린이들은 자기 생각, 자기 주장, 자기 뜻이 없습니다. 벌써 자기 주장이 생기 고 자기 생각이 앞서면 어린아이의 성품은 아닙니다. 본문에 나타난 <어린아이> 란 고집을 부리는 어린이가 아닌 순진한 어린이를 의미합니다. 어린이는 모든 것을 받아들입니다. 그래서 백지와 같다고 하였습니다. 그 백지 같은 마음에 어떤 그림을 그리느냐에 따라 달라진다고 주장한 사람들도 있습니다. 어린이는 누구의 말도 다 들으려고 합니다. 그래서 호랑이하고도 말하고, 토끼하고도 얘 기하고, 새들과 꽃들과도 대화 나눕니다. 그러므로 어린이는 누구와도 친해집니 다.
어른들은 그것이 없습니다. 어른들은 서로의 불신이 앞서기 때문입니다. 어린이는 원수라는 것이 없습니다. 오로지 겸손만이 있을 따름입니다. 누군가가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겸손이란 단어를 아는 사람은 벌써 겸손할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그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 어린이들은 겸손이란 말 의 의미도 모르면서 겸손하다는 뜻입니다. 세상의 참으로 겸손한 자들은 겸손의 의미도 모 르고 살아가는 순박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어른들은 겸손이란 의미를 알기에 겸손해지려고 합니다. 그렇게 되면 벌써 겸손을 의식하게 되었기에 그것은 참된 겸손만이 못된다는 의 미입니다. 그런 것은 꾸며진 것 뿐이란 뜻입니다. 그래서 주님도 마태복음 18:3 절에 "가라사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돌이켜 어린아이들과 같이 되 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을 한 배경을 보면, 제자들 사이에서 이 후에 '천국에서는 누가 큰 자일 까?' 하는 것으로 논란이 벌어졌습니다. 이것을 본 주님께서 '한 어린아이를 불 러 저희 가운데 세우고'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너희가 돌이켜 어린아이들 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고 하였습니다. 여기 '결단코'라는 말에 유의해야 하겠습니다. 천국에는 교만한 자들은 결단코 들어갈 수 없다는 뜻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어린아이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돌이켜>라는 말은 뉘우치고, 회개하라는 말입니다. 우리는 지금 너무 어른들 이 되었습니다. 교만한 마음들을 뉘우치고 회개해야 하겠습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게서 겸손은 자기를 포기하고 자기의 생각을 접어놓고 주님의 말 씀에 자신을 쳐서 복종시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런 사람은 어린이의 마음을 소유한 사람 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나라는 혈(血)과 육(肉)으로 들어갈 수 없 다고 하였습니다. 즉 교만한 마음, 고집스러운 생각을 버리지 않고는 들어갈 수 없다는 뜻입 니다. 그 겸손의 가장 큰 모델은 예수 그리스도 자신이었습니다. 그는 하나님과 본체였지만, 스스로 낮추어 사람의 몸으로 나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여 구속 사역을 완성하였습니다.
그런데 우리 어른들은 왜 겸손해지지 못한다고 보십니까? 모두 자기(自己)라는 것을 죽이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자기를 아직도 주님께 명도(名渡)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아직도 믿는 자들이라고 하면서도 자기의 주장과 생각과 자존심을 더 의 지하면서 살아갑니다. 누가 나의 자존심을 건드리면 불쾌해집니다. 자존심이란 본래대로 보면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받은 유일한 존재임을 존중히 여기는 의 미에서는 필요하지만, 그것이 하나님과 주님을 대항하는 의미에서 자존심이란 천국 백성의 성품이 되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그것을 쳐서 복종시켜야 합니다. 그래야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3. 끝으로 어린이를 통하여 참된 신앙생활의 모습을 보게 합니다. 어린이는 걱정이 없습니다. 어린이는 근심이 없습니다. 어린이는 고민이 없습니 다. 그래서 어린이입니다. 단지 부모가 있으면 그것으로 만족입니다. 어린이는 절대적인 신뢰 속에서 살아갑니다. 엄마 품에만 안기면, 아빠와 함께 하면, 모 든 것이 만사형통입니다. 약속을 그대로 믿습니다. 의심 없이 믿기에 부모들은 자녀와의 약속을 지킵니다. 어른들은 스스로 약속을 해 놓고도 서로가 믿지를 못합니다. 그래서 계약을 하고도 그 약속을 못 믿어 공증(公證)을 합니다. 그리고도 각서(覺書)를 쓰라고 합니다. 그러고도 약속을 파기합니다. 결혼식 서약을 할 때 뭐하고 합니까? "병들거나, 부하거나, 가난하거나, 어떠 한 경우에서도 이 남자(여자)를 사랑하고 도와주며 위로하면서 일정한 부부의 대의와 정조를 굳게 지킬 것을 엄숙히 서약하십니까?" "예!" 라고 대답은 쉽게 잘합니다. 그렇게 서약을 하고도, 얼마 못 가서 쉽게 갈라서는 것이 어른들의 약속입니다. 그러나 어린이들은 약속대로 믿습니다. 아빠가 무엇을 사주기로 약속을 했으면 그것을 그대로 믿습니다. 그 믿음이 너무나 진지하기에 부모들은 자녀들과의 약 속을 꼭 지키려고 합니다. 하나님도 우리에게 그럴 것입니다. 그렇게 어린이들 처럼 믿는 자들에게는 왜 하나님이 약속을 지키지 안겠습니까?
아브라함의 신앙을 본받자고 합니다. 아브라함이 어떻게 하나님의 약속을 믿었 습니까? 갈 바를 알지 못하고도 나그네 길을 걸어갔습니다. 정처 없이 하나님 의 약속 하나만을 믿고 걸어갔습니다. 이 얼마나 천진난만한 신앙입니까? 우리 는 그런 면에서 너무나 불신의 어른들이 되었습니다. 너무나 하나님과 겨루어보 려는 어른들이 다 되었습니다. 그래서 어른의 세계는 불신의 세계요, 염려와 근 심과 고민에 쌓여 있는 세계입니다.
그러나 동심의 세계는 무지개 같이 아름다운 세계입니다. 근심이 없습니다. 어린이들 중에 근심하며 자라는 어린이가 어디 있습니까? 모두가 그 날 그 날 을 있는 그대로 살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모든 사람을 빈 손으로 태어나게 한 것은 모든 것이 하나님께 속하였음을 깨닫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런데 어른들 은 무엇을 입고 살까?, 무엇을 먹고살까?, 어떤 집에서 살까? 그런 것에 걱정 근심으로 뜬 눈으로 새웁니다.
주님은 분명히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 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라"고 하였지만, 우리는 그것을 믿지 못하고 있습니 다. 그래서 먼저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만 걱정합니다. 하나님의 나라 와, 그의 의를 구하지 못하고 살아가기에 이 땅은 이렇게 불안하고 걱정이 끊이 지 않는 줄 압니다.
하나님의 의(義)를 구하면서 사는 나라라면 부(富)의 편중이 가져온 불행들은 없을 것입니다. 오늘 우리의 사회도 보면, 부가 너무나 편중되어 있기에 데모를 하고, 성토 를 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아모스 선지자는 당시 불의한 사회를 향하여 하나님의 공의(公義)를 강같이 흐르게 하라고 하였습니다. 어린이를 통하여 이렇게 참된 믿음이 무엇인지를 배우게 합니다. 어린이의 믿음 은 무엇인가 섞이지 않은 순수한 믿음입니다. 그래서 원수도 없습니다.
루마니아의 살아있는 순교자란 말을 듣는 리처드 범브랜드 목사가 투옥되었을 때 일입니다. 약 30명의 크리스천들과 함께 감옥에 있었는데, 하루는 자기들을 체포하고 취 조하던 사람이 들어왔습니다. 그래서 무슨 죄를 짓고 들어왔는지 알아보았더니, 어느 날 어 린 소년이 자기를 찾아와 꽃다발을 주면서 이렇게 말하더랍니다. "대위님! 오늘은 우리 엄마 생일예요. 나는 엄마의 생일이면 꼭 꽃다발을 사서 엄마에게 선물하였는데, 금년에는 당신이 우리 부모님을 체포해 갔기 때문에 엄마에게 꽃을 선물할 수 없게 되었어요. 우리 엄마는 크리스천이 기 때문에 나에게 늘 원수까지도 사랑하라고 하고, 악을 선으로 갚으라고 하였 어요. 나에게는 지금 어머니가 안 계시기 때문에 대위님의 부인에게 이 꽃을 전 달해 주실 수 있겠어요?" 대위는 그 꽃다발을 받은 후 양심에 가책을 느껴 눈물로 회개하고 그 후에 예 수 그리스도를 믿는 크리스천이 되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결국 감옥에 들어오 게 되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 얼마나 천진난만한 믿음입니까? 원수까지도 사랑하라는 말씀을 그대로 믿은 것은 때묻지 아니한 어린이의 마음이었기 때문 입니다.
어른들에게는 그런 마음이 없습니다. 겉으로는 원수를 사랑해야 한다고 하면서 도, 그것은 입으로 말할 뿐, 행동으로 옮기지 못하는 것이 어른들입니다. 이런 면에서 어린이는 어른들의 신앙의 거울입니다. 어린이들을 통하여 우리의 일그러진 신앙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왜 순수한 믿음을 가지지 못하는지.... 깊이 오늘 어린 이들을 보면서 반성하고 회개해야 하겠습니다. 돌이켜 이 어린아 이들과 같이 되지않으면 결단코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고 하였기 때문입니 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는 어린이 날이라고 무엇 선물이나 사주는 날로 알아서는 안되겠습니 다. 사실 어린이날은 어른들의 반성의 날이라고 해야 옳을 것입니다. 지금까지 못한 것이 있다면, 다시 이제부터라도 어린이들을 보면서 ① 거짓 없 는 정직과 ② 누구와도 교제할 수 있는 겸손한 마음을 가지고, ③ 참된 믿음의 생활을 하다가 주 앞에 설 수 있게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이것이 어린이 주 일을 맞는 진정한 의의일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