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37년 전, 1980년 6워루 입대하여 가을에 철원 지역의 포병부대에 배체받고 이등병으로 군 생활을 시작하였습니다. 내무반에는 겨울 난방용으로 페치카(난로)가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이 페치카를 가동하고 담당하는 사병을 "페치카 당번"라 했는데, 이걸 줄여서 "빼당"이라고 불렀습니다. 총 3개의 페치카가 잇어 3명의 "배당"이 필요했는데, 내무반 생활과 모든 다른 활동을 열외로 해준다는 말에 혹해서 "빼당"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제일 졸병이었고, 제 위로 손 일병과 이 일병, 두 명의 선임이 있었습니다. 페치카는 내무반 안의 난방을 맡고 있지만, 불을 지피고 재를 펴내는 것은 내무반 밖에서 이루어집니다. 장작을 페치카 안에 넣고, 그위에 가루탄을 물에 개어 빈대떡처럼 만들어 여러 개를 얹어놓고 장작에 불을 지피면 얼마 지나 가루로 개어놓은 탄에 불이 옮겨붙게 되고, 그다음부터는 계속 탄 위에 다시 빈대떡 같은 탄을 얹어주고, 그 아래 다 타고 남은 재는 긴 쇠꼬쟁이로 긁어내어 버리는 과정을 반복합니다. 만일 이 작업 중 실수라도 하여 불이 꺼져 내무반이 추운 사태가 일어나게 되면, 선임들에게 말로 다 할 수 없는 얼차려를 받게되기 때문에 밤낮으로 바짝 긴장하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이 생활 중 가장 어려운 일이 탄가루를 퍼 르는 일이었습니다. 이 시커면 탄가루는 고운 가루인지라 쉽게 날려서 내무반에서약 100여 미터 밖에 보관하는데 "당카"라고 하는 운반기구에 실어서 두 명이 들고 날라야만 했었습니다. 한두 번 퍼 나르고 나면 손과 옷에 시커먼 가루가 묻는데 저하고 이 일병이 추운 날 하루에도 십여 차례 이상 가루를 지고 나르는 일은 정말로 힘든 일이었습니다.그래서 하루는 제가 선임에게 제안했습니다. "이 일병님! 우리 이렇게 겨우내 고생할 게 아니라 부대 옆 마을에 내려가서 리어커를 한 대 훔쳐 옵시다. 가끔 그 마을 갈 때 본 적이 있는데 몇 대가 굴러다니더라구요." 이 일병은 잠시 생각하더니 선뜻 그러자며 당장 오늘 밤에 결행하기로 했습니다.우리는 모두 깊은 잠에 빠진 새벽 4시경에 행동을 개시했습니다. 후문을 이용해서 약 1Km정도 떨어져 있는 마을로 들어갔고, 여기저기 돌다 마침내 어느 집 문 앞에 세워져 있는 리어카 한 대를 발견했습니다. 제가 리어커를 앞에서 끌고, 이 일병은 뒤에서 망을 보면서 부대로 들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한 3분의 1쯤 지나왔는데 갑자기 하늘에서 눈이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거의 반쯤 왔을 때는 눈이 꽤 쌓여 지나가는 길에 바퀴 작국이 선명하게 나서 이대로 가다가는 영락없이 꼬리를 밟히게된다고 생각하니 겁이 덜컥나서 "이 일병님! 안되겠습니다. 다시 원위치시켜야 할 거 같습니다"라고 외쳤습니다. " 천신만고 끝에 여기까지 끌고 왔는데 어저겠냐? 너는 그냥 몰고 들어가고 나는 싸리 빗자루로 쓸어서 이 바퀴자국을 다 지우고 들어갈게. 다 쓸어버리고 그 위에 눈이 또 쌓여 덮히면 아무 일 없을 거야." 그리고 리어카는 당장 쓰지 말고 한 이틀 정도 상황을 본 다음에 아무 일 없으면 사용하자면서 부대 뒷산 깊은 곳에 숨겨두었습니다. 우리는 아무 일 없이 지나가기만 바라면서 아침을 맞았습니다.
그런데 아침 점호 후 7시가 좀 넘었는데 갑자기 정문 앞이 소란스러웠습니다. 마을 주민 서너 분이 몰려와 있었습니다. 우리는 직감적으로 우리가 저지른 일에 대해서 따지러왔다는 걸 느꼈습니다. 그리고 전체 부대원 모두 열외 없이 연병장에 집합했고, 전날 당직 사관이었던 소위 장교가 앞에 격앙된 소리로 외쳤습니다. " 지금 앞마을에서 새벽이 리어커 한 대를 도둑맞았다고 항의가 들어왔는데, 바퀴자국을 따라와 보니 ㅜ우리 부대 후문으로 이어졌다고 한다. 어제 리어커를 훔친 사실이 있다면 지금 바로 이실직고하기바란다." 저희는 이실직고를 하고 그 증거물을 끌고 정문 주민들 앞으로 갔습니다. "어제 이 사병들이 이걸 가져왔습니다. 대단히 죄송합니다." 당직 사관은 주민들에게 사과와 함께 우리에게 어서 잘못을 사과하라고 명령하듯 말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용서해 주세요.
" 그런데 우리가 말을 마치기도 전에 갑자기 주민 한 분이 키득키득 웃으며 "아이고 저 몰골하고는 장교님! 아이들 솜 씻기며 일 좀 시키소" 말했습니다. 추워서 군대용 벙거지를 쓴 우리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탄가루가 묻어 외부인이 보면 영락없는 거지처럼 보였던 것입니다. 그러더니 "장교님, 일단 잃어버린 리어커를 찾았고 저 사병들을 보니 엄청 고생하는 거 같아 더 얘기 안하겠고, 앞으로 이런 일이 없도록 단단이 일러주시고, 우리는가겠습니다" 하며 돌아갔습니다. 이런 사건은 대부분 군기교육대에 가는 게 기정사실이지만 우리 "빼당"이 모두 바지면 엄동설한에 내무반 페치카를 땔 수가 없다는 결론에 이르자, 포대장님은 고민 끝에 완전군장하고 연병장 20바퀴를 도는 것으로 벌을 대신하게 해주셨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그때 왜 그런 엉뚱한 일을 했느지 참으로 어이가 없었지만, 아직도 잊히지 않는 즐거운 군대 추억입니다.
@음악과 대화우리 남자들은 삼년 군대생활하고 삼십년을 풀어먹어도 끝이 없다고 하는 말이 실감 나는군요~! 이동에 도평리로 연료수령하러많이 다녔어요~! 103에서 근무 했지만 3종을 맡아 연료를 관리 했지요~! 현리라면 합동 검문소가 있는곳에서 근무하셨나 봅니다, 물까치님의 글을 읽고 오해한게 아니고 너무 재밌어서 하는 말입니다, 저는 그정도의 사건???을 해보진 못했구요~! 겨울에 운전병들하고 짚단을 훔치러 갔다가 짚가리 속에 숨어 계신 주인 어르신에게 들켜서 혼난적이 있어요~!ㅋㅋㅋ 짚단은 겨울 방한용으로 쓰려고 훔치러 갔었어요~!ㅋㅋㅋ
우하하하 와이고 배꼽 탈영..... 저는 경비소대 부소대장하면서 겨울에 결재서류 뭉치를 들고 당직사령실로 갈 때마다 꽤 먼거리를 가야하는 불편함을 해소하기 위해 정말 죄송하지만 자전거 한대를 입대시켜 얼른 페인트 칠로 위장을 하고 다녔습니다. 걸어다니다가 자전거 타고 다니니 얼마나 빠르고 힘도 안든지 정말 좋았던 추억이 있습니다. ㅎㅎㅎㅎ
첫댓글 "페치카"라는 단어는 원래 러시아 말로 " 난로"라고 하네요.
우리는 군대에서 "빼치카" 라고 불렀죠.
사실 페치카 당번은 겨울에 고생 많이 하죠.
그러기에 불침번과 보초 등 을 열외 시켜줍니다.
모두 알고 있는 내용이지만,
한 때 군대에서의 추억입니다.
모처럼 좋은 날씨입니다.
즐거운 주말 보내시기 바랍니다. 맹호
기억이 생생하게 떠오릅니다
그때그시절 철원학저수지에 배가 한척있어지요
질통을 만들기위해서 새벽 1시 그배를 분해해서 가지고오던 생각이떠오름니다
참 힘든 군생활이엇는데
지금은 아름다운 추억이군요
태창리님. 안녕하세요
동송 읍내를 지나 연천 방향 서쪽으로 가면 노동당사와 백마고지전적비로 갈 수 있습니다.
가는 중에 학저수지 이정표는 보질 못했는데,
질통을 만든다고 배를 분해해서 만들었군요.~~~
하기야 안되면 되게해야 하기 때문이었겠죠.
참 여려웠던 시기에 고생 많이하셨어요.
우후죽순 처럼 솟아나는 생명들이
본격적으로 성장하며 푸른 산야로 변하겠죠.
사월의 마마지막 날이며, 한 주간이 시작되는 날
좋은 일을 기대합니다. 맹호~
나보다 일년먼저군대가셔군요 우리동기도 빼치가 당번했엇답니다 고참놈들 야밤에 라면끊여오라하고요
맛잇게먹는모습볼때마다 먹고싶었는데 쫄따구라 먹는입만바라보았네요 따뜻한옆에는 고참님들에자리가되었고요
지금은 빼치카있는부대는없겠지요 석탄가루에 황토흙도넣었어고요 물길어오기도힘들어었네요
좋은 추억글감사합니다
빼치카 하면 라면이 제일 먼저 생각나겠죠.
추운 겨울이니까요.
저가 내무반장 할 땐
그런 거 일절 없었는데,
2.4종 보급품을 비롯 취사반장까지 했으니,
내무반에서 라면먹는다는거 꿈도 못꿨습니다.
즐거운 하루 보내시기 바랍니다. 맹호!
빼당은 일석점호도 열외시켜 주기 때문에 이른바 3디업종이라도 할려는 사병들이 많았지요
연탄공장 일꾼처럼 새까만 얼굴로 대대연병장을 돌아다녀도 예사로 보였지요
42년전 와수리 1대대 빼당의 초최한 몰골이 눈에 선합니다
물까치님. 안녕하세요.
휴일 잠시 어디라도 다녀오셨는지요.
아무래도 내무반 불침번과 외곽근무,
사역 등 거의 모든 부분이 열외이니까
추워도 검정이 묻어도 선호했나 봅니다
사람들은 어느틀에 갇힌것을 싫어하니까요.
와수리면 백골부대에서 군복무 하셨군요
고생 많이하셨어요. 맹호
저도 이등병때 빼당조수 1개월 했어요
82년도 논산군번 입니다
충성!
등파라림. 안녕하세요.
청춘방에서 처음 만나는 거 같습니다.
빼당의 장본인이시군요^^^
설명이 필요 없겠습니다.
지금은 어느부대라도 페치카는 없겠지요
자주 방문 부탁합니다.
추억이야기, 삶의 이야기도
모두 좋습니다. 맹호
넵 ^^
자주 마실올께요
등파란![!](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tc/texticon54.gif)
님 맹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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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운 주말 보내시기 바랍니다.
저도 군대를 다녀 왔지만 빼당 이란 말은 예서 첨 들었습니다~! 리어카 훔친것도 재미있지만 태창리님의 질통이 뭔지 뭘하려고 하는건진 몰라도 배를 분해해서 만들었다는 얘기는 황당하기만 합니다~! 전 69년도서울 30사단 군번이구요~! 훈련마치고 운전 교육대를 거처서 일동에 103야전 병원에서 근무하다 만기제대 했습니다~!
벽계수요![!](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tc/texticon54.gif)
님 ![안녕](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tc/texticon3.gif)
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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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방에서 처음 인사드립니다. 반갑습니다. 맹호
"빼당"이라는 단어느,70년대 초 중반에도 많이 불렀던 겨울 페치카 당번의 줄입말입니다.
배를 분해 했다는 말은 불쏘기개(석탄가루)를 나르는 당가를 만들려고 했던 것입니다.
의무대에서 환자 눕히고 이동시킬 때 쓰는 물건을 뜻하지요.
유동리 103병원에서 근무하셨군요.
저는 가평 현리서 근무했구요.
자란 곳은 일동 지나 이동입니다.
4년 전 맹호부대 신병이 장갑차 훈련을 나갔다가 그만 불의에 사고로 사망하여
103병원 영결식에 다녀 왔지요. 안타가운 일이었지요.
물까치 친구님의 댓글에 오해 없으시기 바랍니다. 맹호
@음악과 대화 우리 남자들은 삼년 군대생활하고 삼십년을 풀어먹어도 끝이 없다고 하는 말이 실감 나는군요~!
이동에 도평리로 연료수령하러많이 다녔어요~! 103에서 근무 했지만 3종을 맡아 연료를 관리 했지요~!
현리라면 합동 검문소가 있는곳에서 근무하셨나 봅니다, 물까치님의 글을 읽고 오해한게 아니고 너무 재밌어서 하는 말입니다, 저는 그정도의 사건???을 해보진 못했구요~! 겨울에 운전병들하고 짚단을 훔치러 갔다가 짚가리 속에 숨어 계신 주인 어르신에게 들켜서 혼난적이 있어요~!ㅋㅋㅋ 짚단은 겨울 방한용으로 쓰려고 훔치러 갔었어요~!ㅋㅋㅋ
@벽계수요 예. 벽계수요님.
현리시내 정비대대에서 근무했습니다.
103병원에서 현리 가려면 15분 정도면 도착합니다/
4차선 확장도로로 서파에서 좌회전 하여 가면 됩니다. 맹호
우하하하 와이고 배꼽 탈영..... 저는 경비소대 부소대장하면서 겨울에 결재서류 뭉치를 들고 당직사령실로 갈 때마다 꽤 먼거리를 가야하는 불편함을 해소하기 위해 정말 죄송하지만 자전거 한대를 입대시켜 얼른 페인트 칠로 위장을 하고 다녔습니다. 걸어다니다가 자전거 타고
다니니 얼마나 빠르고 힘도 안든지 정말 좋았던 추억이 있습니다. ㅎㅎㅎㅎ